중국의 쑹훙빙이라는 사람은 대단한 듯 하다. 이전에도 화폐전쟁 혹은 경쟁적 평가절하라는 단어가 없지는 않았으나 중앙은행의 모든 정책을 화폐전쟁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하게 된 일은 쑹씨의 어이없는 책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화폐전쟁이란 대체 무엇인가?
화폐전쟁은 사실상 경쟁적 평가절하, 근린궁핍화(인근궁핍화, beggar-thy-neighbor)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이들 정책의 목표는 수출을 촉진시켜 자국의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예로 고정환율제도를 운영하던 국가에서 갑자기 환율을 30% 절하, 즉 자국화폐의 가치를 떨어뜨렸다고 하자. 이 경우 자국산 수출품의 경쟁력이 높아져 고용과 수출이 증가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상대방 국가는 수출은 줄고 수입은 늘어나게 된다.
너무나 단순한 착각: 금리가 환율을 움직인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한 나라의 통화가치 절하가 주변국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맞다.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그렇지만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하였을 때 그 목표가 단순히 환율절하에 의한 수출증대일까? 그렇다면 0.25%p 정도의 금리인하 가지고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금리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명확하지도 않다.
(물론 시기별로는 다를 수 있지만) 위험거래 이자평가(Covered interest parity; 양국간 이자율 차이는 환율변동을 고려할 경우에 같다. 예를 들어 A국의 이자율이 2% B국의 이자율이 5%라고 하자. 그럴 경우 만기 1년짜리 선물환율은 이자율 차이인 3%p를 완벽하게 반영하여 결정된다고 보는 이론)는 유럽과 미국간에서는 어느 정도 성립하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통계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중국, 인도는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채권이 아니라 주식투자까지 고려하는 경우 금리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을 금리인하 시점에서 예단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만약 금리를 내렸는데 외국인의 채권투자는 감소하고 주식투자는 증가한다면, 금리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 수도 있다. 물론 금리인하로 경상수지가 악화되어 외화유입이 줄어든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화폐전쟁이라는 단순한 프레임
물론 화폐전쟁으로 의심되는 사례는 여럿 있다. 1993~94년 중국은 위안화 가치를 39.1% 떨어뜨리는 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는 인근 경쟁국가인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의 수출감소였다. 어떻게 보면 중국의 통화가치 절하가 인근 국가의 금융위기, 즉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촉발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어 더해 1994년 이후 이어진 강달러 현상, 즉 미국의 금리인상의 영향도 무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아시아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동남아시아 국가의 자본자유화 정책, 저금리였다. 자본자유화는 이들 국가의 유동성을 증가시켜 내수부문의 팽창과 무역수지 악화로 이어졌다.
1차대전 이후의 상황도 어떻게 보면 화폐전쟁이라는 틀에서 바라볼 수 있다. 종전 이후 영국은 파운드 환율을 전쟁 전의 가치로 복귀, 즉 인위적으로 환율을 절상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서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이 필요하였다. 전쟁으로 물가상승률이 높아지면서 금의 가치가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높은 금리로 통화량을 줄이고, 긴축재정을 필요로 했다.
반면 프랑스는 전쟁 전의 프랑화 가치에 연연하지 않고 현실을 반영하여 50% 정도 프랑화를 절하시키는 결정을 내린다. 그에 따라 영국의 제조업은 수출경쟁력을 급속하게 잃게 되었다. 자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현상만 본다면 프랑스는 영국에 대해서 화폐전쟁, 환율전쟁을 치른 것인가?
영국이 만약 전쟁의 영향을 받아들여 적정 수준의 통화가치로, 즉 금본위제로 복귀하였다면, 유동성을 축소할 필요도 금리를 높게 유지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영국경제는 금본위제라는 도그마에 의해 침체에 빠진 것이지 반드시 프랑스 때문이라고 볼 이유는 없다.
물론 프랑스가 경상수지 흑자를 통해서 벌어들인 늘어난 금을 통화량 확대에 쓰지 않고 쌓아두어서 영국의 경기침체에 일조했다는 의혹은 있다. 그렇지만 영국이 금본위제에 얽매이지 않고, 통화량을 줄이지 않았다면 영국경제는 더 나은 상태에 있었을 것이다.즉 영국의 대공황 탈출은 빨랐을 것이다.
금리인하, 화폐전쟁의 틀로 해석하면 곤란
대공황에 대한 아이켄그린(Eichengreen)의 연구를 보면, 금본위제를 철폐하고 국내의 유동성을 중앙은행의 금보유와 결부시키지 않은 정책, 즉 변동환율제를 채택한 국가… 그러니까 쑹씨가 보면 ‘화폐전쟁을 치른 국가’가 더 빠른 회복을 보였다.
어이 없게도 대공황이 터지기 직전에 금본위제(와 태환)에 복귀한 일본은 재빠르게 금본위제를 갖다 버렸는데, 이후 일본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이는 통화량이 금보유량에 따라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은 공식통계로는 통화량과 재정지출이 크게 늘지 않았으나, 샤흐트라는 걸출한 중앙은행 총재가 만들어낸 제2의 화폐(Mefo), 혹은 재정증권까지 고려한 경우 통화량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늘어난 통화를 아우토반 건설 등 재정지출확대에 사용하여 독일은 대공황을 상대적으로 빠르게 극복하였다.
즉 독일의 빠른 회복은 통화가치 절하에 있다기 보다는 통화량을 늘린데 있다. 당시에는 프랑블럭, 파운드 블럭 등으로 독일이 수출을 늘릴 여지가 크지 않았다.
금본위제에나 적용될 쑹홍빙의 낡은 논리, 화폐전쟁
통화전쟁, 화폐전쟁이라는 단어는 과거 19세기말 금본위제(와 고정환율제)에서나 유효하다. 통화량이 금보유량에 의해서 결정되는 상황에서 특정 국가에서 통화가치를 절하하는 경우 상대국은 금을 잃게 되어 통화량을 줄일 수 밖에 없고 그에 따라 금리를 높일 수 밖에 없으며 그 나라는 경기침체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금본위제가 아니고 통화량이 중앙은행의 재량에 따라 결정되는 상황이라면, 인근 국가의 금리인하가 국내의 통화량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통화가치가 움직여 수출의 가격경쟁력이 하락할 수도 있지만 인근 국가의 금리인하가 수출품의 수요를 늘릴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 GDP 대비 수출비중이 50%가 넘는 나라이니 환율 변동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의 금리인하를 전부 그 틀로 보는 것도 우습지 아니한가? 브라질이 최근 금리를 인상했다. 브라질은 통화전쟁, 즉 화폐전쟁에서의 패배를 스스로 자초하는 것인가. 인도가 금리를 내렸는데 이는 통화전쟁에서 이기기 위함인가?
아니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금리를 올리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저 다른 나라가 금리를 내렸다고해서 우리도 내려야 하다는 것은 순진한 주장이다. 게다가 경상수지 흑자가 연간 1000억 달러에 이르는 나라에서 수출경쟁력 운운하면서 금리인하를 전 언론이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재정에 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엄격함을 요구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