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때 우리 집은 제법 넓은 논과 밭에 농사를 지었다. 부모님은 교육열이 높지도 낮지도 않으셨고 세 명의 형과 나는 주말이면 미력이나마 농사 일을 돕곤 했다. 형들은 지금 나에게 “너는 막내여서 별로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요즘 아이들 기준으로 보면 상상도 못할 일을 상상도 못할 만큼 하고 자랐다.
커가면서 비닐하우스 농업이 확산되고 각종 농기계도 보급되는 등 환경은 많이 바뀌었지만 작은 농기구는 여전히 많이 사용됐고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물론 내가 다 커서 보급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외발 손수레를 보면 농사 일을 돕던 옛날 생각에 젖어들곤 한다. 나처럼 이따금씩 일을 돕는 경우나 도회지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처음엔 외발 손수레를 보면 “요 정도야” 하며 선뜻 달려들곤 하지만 이내 손수레를 넘어뜨려 담긴 물건을 바닥에 쏟곤 한다.
모든 농기구가 그렇지만 특히 이 외발 손수레를 다루기는 여간 힘들지 않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외발 손수레 작동하는 것은 마치 자식 훈육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두 아이를 이제 어느 정도 성장시킨 지금 돌아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우선 섣불리 얕잡아본 나머지 준비 없이 대했다가 낭패를 보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식 훈육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특히 자식 훈육의 경우 요즘은 이런 저런 사전 준비와 공부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막상 닥치면 배운 것과 어찌 그리 다른 것이 많은지 놀라게 되며, 더우기 일단 아이가 태어나면 연습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안타깝게 느껴질 때가 많다. 손수레의 경우야 물론 잘못해서 담긴 물건을 바닥에 쏟으면 다시 주워담으면 그만인 경우가 많지만 자식 훈육 시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비슷한 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외발 손수레를 작동할 때는 비탈길에서는 손수레를 앞세우고 속도를 늦춰줘야 하며 오르막길에서는 손수레를 앞에서 힘차게 끌어야 한다. 이 때 속도 조절을 잘 못하거나 끌어 당기는 힘이 너무 세면 낭패를 당하기 쉽다. 자식을 훈육할 때도 그렇다. 아이가 어떤 일에 너무 심하다 싶게 몰입해 정상적인 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가 되면 부모는 적당히 아이의 관심을 분산시키거나 해서 속도 조절을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아이가 너무나 힘들어하는 일이 있을 때는 부모는 오르막길에서 수레를 천천히 끌고 올라가듯 아이를 달래서 고개마루까지 끌고 가 줄 필요가 있다. 물론 이 때도 무리해서 힘을 쓴다면 부모가 지쳐버리거나 수레에 무리가 가게 된다. 적절한 힘 조절이 필요한 것이다. 그 밖에도 외발 손수레를 보며 자식 훈육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결국 손수레는 제 바퀴로 굴러가야 한다는 것이다.
간혹 제대로 굴러가기 힘든 큰 장애물을 만날 때나 넓은 도랑을 만나면 잠시 여러 명이 달려들어 손수레를 들어 올려 옮겨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결국 손수레는 제 바퀴에 의존해 작동하는 것이 원칙이다. 자식 훈육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불가피할 때는 부모가 아이를 번쩍 들어 장애를 건너게 해 줄 수 있지만 인생은 결국 제 스스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물론 자식과 손수레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있다. 그것은 바로 손수레는 잘못되면 새 것으로 장만하면 되지만 자식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부모들이여, 손수레가 제 바퀴로 원만히 굴러가도록 손잡이만 살포시 잡고 천천히 손수레가 감당할 보조에 맞춰 다뤄야 함을 잊지 말자.
출처: KoreaVi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