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논조 때문에 잘 팔릴까?
왜 한겨레나 경향 같은 진보 신문들이 조중동보다 안팔릴까? 국민들이 보수적이라서? 그렇게 생각하고 “신문 이념 정체성을 오른쪽으로 바꿔서 조중동 비슷하게 되면 더 잘 팔릴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바로 바보 인증이다.
왜냐하면, 조선일보가 그렇게 욕먹어도 발행부수 1위를 달리는건 논조가 보수적이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자기들 논조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도 왠지 사보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위력이 있다. 그리고, 사실 북리뷰나 영화 소개 등 재미있게 볼 수 있을만한 연성 기사도 많고, 특종도 많이 때린다. 즉, 이념과 상관없는 부분의 신문 퀄리티로서는 한국에서 경쟁력있는 것이 맞다. 소위 볼거리 많은 신문인 것.
그러니까, “우리 이념이 맘에 안들어? 그래도 니들이 우리 신문 안사고 배기겠어?” 라는 마이웨이로 갈 수 있는거다. 사람들이 신문을 선택하는 기준은 논조와 이념 코드 만이 아닌 것이다. 재미와 볼거리라는 다른 기준이 사실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보수층도 읽는 진보지, NYT와 가디언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뉴욕타임즈나 가디언 같은 외국의 진보.개혁 성향의 메이저 신문들을 보수적인 사람들도 사서 읽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런 신문들은 한국 언론들 보다 훨씬 더 공개적으로 대놓고 당파성을 내세운다. 선거철이 되면 대놓고 미국 민주당(뉴욕타임즈는 언제나 민주당 지지라고 보면 된다.)이나 영국의 노동당 또는 자유민주당(지난 총선에서 영국 가디언은 자유민주당을 공개지지) 같은 정당들을 공개 지지선언하는 신문 들이다. 보수적인 사람도 이런 진보개혁 신문들이 재밌다고, 정보가 많다고 칭찬하면서 읽는다.
결국, 이념과 상관없이 볼거리가 적은데, 이념만 오른쪽으로 가서 더 잘나갈리가 없는거다. 소비자들의 선택 포인트가 단순히 진보냐 보수냐만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문 볼거리는 개선 안하고 중도클릭만 하겠다면 조선일보처럼 잘 팔리는 신문이 아니라 그냥 듣보잡 중도 신문이 될 수 밖에 없다.
여전히 조선일보에 비해서는 볼거리가 적으니까 이념 코드 보다는 볼거리에 더 민감한 중도층에게도 전혀 어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볼거리 좀 적어도 봐주던 기존의 독자들 (소위 집토끼들) 도 놓치게 된다.
한겨레나 경향이 조선일보를 앞서고 싶다면, 중도클릭(우경화)이 필요한게 아니라, 돈을 더 잘벌어서 기자들 월급 더 많이 주고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결국 신문의 볼거리를 늘리려면 돈을 많이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시장의 전체 파이가 줄어들고 있는 신문산업에서 그게 쉽지가 않다는 것이 딜레마다. 돈이 안 벌리면 기자들 월급 제대로 못주고, 그럼 기자들 떠나고… 그럼 신문 볼거리가 더 떨어져서 돈은 더 안벌리는 그런 악순환에 빠지기 쉬운 안타까운 상황이다.
새누리당의 지지율, 단순히 이념 때문이 아니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이 이긴게 과연 새누리당의 이념에 국민들이 동조해서인걸까? 그게 아니라, 민주당보다 상대적으로 유능하고 경험이 많다는 인식을 정치 소비자들에게 심어주는데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 번 마이너 신문이 되면 그게 고착화되서 그 자리를 벗어나기 힘든 것처럼, 한 번 마이너한 정당으로 찍혀버리면 다시 집권 노리기가 쉽지가 않다. 돈도 모으기 힘들고, 사람도 모으기 힘들어진다. 그러니까 일본에서 수평적 정권교체가 50년이 걸린게 아닌가?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다. 한국 같이 중앙집중적인 나라에선 한번 집권해서 국가권력을 장악해보는 것이 엄청난 도움이 된다. 정책 연구 같은 것도 정당의 연구소가 할 수 있는 연구 수준과 국가 소속 연구소가 할 수 있는 연구수준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게다가 직접 집권을 해본 경험이라는 것은 백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한 노하우이다. 외국에서도 후발주자인 정당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연정에 참여한 경험을 발판으로 도약한 사례가 자주 있다.
그런데, 민주당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10년이나 김대중과 노무현을 통해 집권을 해보고서도 집권당이었던 티가 안나고, 도대체 집권당이었던 동안 무슨 경험을 쌓았는지도 모르겠고, 여전히 아마추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니 답이 없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중도클릭이라고 오른쪽으로 가봤자, 그냥 기존 새누리당 지지자들의 비토 심리만 좀 누그러뜨릴뿐이고, 그러나 구태여 지지하고 싶지는 않은, 상품으로 치자면 혐오감이 적으나 매력도 전혀 없어서 돈주고 사기 아까운 듣보잡 상품이 되는거 아닐까? 공짜로 끼워주면 구태여 버리지는 않을 정도의 상품 말이다.
중도 클릭을 한다고 저절로 유능한 정당이 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중도적으로 무능한 정당이 될 뿐이다. 정당이 유능해지려면 일관되고 체계적인 비전을 가져야하고, 또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말해야 중도적으로 보일까?”, “어떻게 답해야 선거에 유리할까?” 라고만 궁리하는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를 진심으로 고민하는 진정성이 있어야 그 정당은 유능한 정당이 될 수 있다.
‘중도 집착’를 버려야 중도시장을 얻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중도적으로 보이는 것은 스탠스를 바꾸는 것만으로 간단히 가능하지만, 능력을 키워 유능한 정당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돈도 필요하고, 사람도 필요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라의 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다. 단기적인 선거공학에 매몰되지 않는 장기적 시야가 필요하며, “이런 주장을 하면 과연 내가 중도적으로 보일까?”라는 이미지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야 한다.
중도 무당파층이 진정으로 원하는 정당은 중도 아마추어 정당이 아니라,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이 유능한 정당이다.
wandtattooIts Cultural and Managerial Impl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