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천재와 영웅을 좋아하지만,
그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몰락이다.
나는 자기계발서가 싫다. 아니 사실은 희망을 노래하는 것들 대부분을 싫어한다. 뭐가 청춘이고 뭐가 아파도 된단 말인가. 내가 힘들고 내가 괴롭다는데! 그걸 한 번쯤 앓아도 되는 열병인 셈, 모두가 아픔을 잠시 겪고 나면 온전한 어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그 반짝반짝한 분위기가 나를 질리게 한달까.
그런 이유로 나는 자기계발서들을 학생들을 가르칠 때 빼고는 직접 돈을 주고 산 기억이 없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싫어도 가끔 그런 책들을 구매해야 했는데, 자기계발서가 일으키는 열풍에는 무려 중·고등학생도 안전할 수 없어서였을 뿐. 맹세컨대 나는 내가 원하거나 읽고 싶어서 자기계발서와 그 비스무리한 책을 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왜 이 책을 읽었는가- 그것은 바로 저자의 실패담 때문이었다. 저자는 사실 꽤나 유명인이다. 패션계 쪽의 인물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들어봤을지도 모르는 인물이다. 그는 무려 스물한 살부터 미국의 유명 의류 브랜드인 아메리칸어패럴의 전략가로 활동하기 시작해, 곧 마케팅 담당자가 되었다. 무려 스물한 살의 나이에!
이쯤 되면 감이 오시려나, 그렇다. 내가 바로 그 의류 브랜드의 팬이다. 지금은 망해서 한국에서도 철수한 그 브랜드를 무척 좋아하는 나는 뻔해 보이는 책의 앞표지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 깜짝 놀랐다. ‘이사람.. 책 썼던 건 알았지만…’ 일상을 살다가, 그가 누군지는 알아도 전혀 내 삶과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인물의 책이 우연히 손에 들려지게 되는 경우의 수는 과연 얼마나 될까. 그것도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하면서 말이다.
서문을 읽고 깨달았다. ‘일단은 다르군.’ 무엇이 다른가 하면, 일반적인 사람들이 좋아하고, 서로 권하고, 누군가의 삶의 나침반이 되리라 평가받는 자기계발서들은 보통 이런 식이다.
- 자신을 계속해서 직시할 것.
- 좀 더 노력할 것.
- 남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날 것.
- 나 자신이 정말 소중한 존재임을 잊지 말 것.
- 나는 남들보다 나으며, 남다른 존재임을 잊지 말 것.
그리고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잘난 척 하지 마 인마.”
맘에 들었다. 그러니까 꼭 그걸로 보였다. 주류의 의견에 반기를 드는 그 중2병 스러운 느낌. 나는 그걸 좋아한다. 근데 심지어 이건 잘나가고, 실패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거나한 표정으로 오찬파티를 열며 느긋하게 말하는 “젊은이들은 모두 실패를 겪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허허허” 하는 느낌과는 다르다.
왜냐? 저자는 진짜 참혹하게 실패해봤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가 승승장구하며 애정을 쏟았던 아메리칸어패럴은 사실상 폭망했다. 저자가 몸담았던 연예기획사도 ….폭망했다. 심지어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특히 비즈니스의 세계에 몸담고 있다면 누구나 필요로 하는 존경받을만한 멘토 중 한 명과 척을 지기도 했으며… 그냥 한마디로 실패의 연속이었다.
젊은나이에 여러 곳에서 ‘유망주’, ‘천재’라는 타이틀로 저자를 절찬리에 팔아대던 언론과 세간의 시선은 그에게 기대를 걸었던 만큼 끔찍한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의 선망과 기대는 시기와 질투에 맞닿아다. 젊고 성공한 사업가이자 크리에이터의 추락은 언론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사람들은 영웅이나 천재의 비참한 말로나 실패를 즐긴다.
그래서 그런 것을 겪고 난 후의 그가 어떻게 했느냐. “여러분 실패는 누구나 겪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겨내야 합니다. 더 노력해야 합니다. 다시 올라서기 위해 밤낮의 시간을 가리지 않고 할애해야 합니다” 등등을 지껄이며 돌아다녔느냐. 전혀 아니다.
그는 깨달았고, 이 책을 썼다.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법을 가르쳐주고, 좀 더 자신의 허리띠를 졸라매고 혹독하게 채찍질을 하는 법들이 담긴 책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그런 사람들을 후려쳐 주는 책을.
성공 가도를 달리는 중인 사람, 자신이 잘살아가고 있다고, 뭐든 잘 해내고 운이 좋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자신하거나 맹신하는 사람들이라면 더 읽어야 하는 책. 성공에 대한 신기루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비하하지 않는 법을 알려주는 책을 말이다.
이 책의 내용 중에서 성공에 대한 챕터를 보자. 소제목들도 끝내준다. 다른 책들과 진짜 다를 것 같은데..? 하는 느낌을 나는 바로 여기에서 강렬하게 느꼈다. ‘성공’챕터의 소제목 중 몇 가지를 보자.
성공, 지속되지 않는 환상
- 스스로 쓰는 신화의 위험
- 성공의 그림자, 권한과 통제, 그리고 집착
- ‘나’라는 질병
- 무한 속의 작은 존재일 뿐
정말 멋진 소제목들이 아닌가? 보통의 자기계발서에서 속삭이는 성공에 대한 쓰잘데기 없는 희망은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이는 소제목들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이 있다는 것. 읽다 보면 저자가 말하는 희망의 본질이 보이고, 그것이 설탕 발린 작은 과일보다 같이 일하는 직장의 동료가 아무 말 없이 건네는 쓴 커피 한잔이나 퇴근 후 함께 부딪히는 맥주 한잔과 닮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내가 이 책을 읽고 가장 좋다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실패했을 때에도 그 실패에 매몰되지 않도록 돕는 책.
성공만을 바라보지 말라고 말하는 책이라더니 무슨 말인가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마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일 것이다. 많은 책에서는 말한다. 계속해서 자신을 마주 보라고.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끼거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정신적으로 고무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다. 저자로서 나는 당신이 이 책을 다 읽은 뒤에 내가 이 책을 완성했을 때와 같은 기분을 느끼기를 바란다. 그 기분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예전보다 덜 생각하게 되는, 에고에 덜 휘둘리는 마음 상태이다.
나는 이 책이 꽤 마음에 든다. 왜냐하면, 사실 내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 친구들 중에서 현재 꽤 ‘잘 지내는’ 축에 속한다. 많지 않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돈을 벌고, 그러면서도 또 꿈을 향해 나아가고 꿈이 있다고 지껄이는 거. 이십 대 후반의 직장인이 “나는 꿈을 가지고 있어.”라며 자신의 일과 그 꿈을 위한 단계들을 병행하는 것은 그 자체가 꿈이라고 할 수 있다.
동창이나 대학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이 말하는 “너, 좋아 보여.”에 나는 심취해 있었던 것 같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그냥 일하는 게 좋아서. 내가 바쁜 게 좋아서 나를 혹사시키고 시간을 쪼개고 잠을 쪼개서 나를 억지로 끌고 가는 나날이었다. 아파서 며칠 동안 병가를 냈을 때조차 나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아깝고 내가 한심해서 우느라 제대로 쉬지 못해서 며칠을 내리 앓았다.
그런 내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티브 잡스나 카니예 웨스트를 가리키는 말로, 무려 ‘에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성공한 예외적 인물‘이라 표현하는 이 책을 읽고는 좀 더 편해졌다.
이 책을 읽기 전의 내가
“나는 먼지니까 더 노력하자. 잠을 줄이고 시간을 쪼개야 성공할 수 있다.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그리고 난 해낼 수 있어. 나는 먼지지만 남다른 먼지다.”
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래! 난 먼지야!!!!하지만 성공하고 싶은 먼지지! 어쩌라고! 난 존나 작고 보잘것없어! 실패할 수도 있지! 누구나 실패를 겪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맘 편히 해볼게!!”
정도랄까.
나는 이 책을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실제로 새벽에 직접 친구들에게 권하기도 했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여성으로서 유리천장을 뚫으려 노력하고 있는 내 친구 A에게, 인생에서 별다른 실패를 겪은 적이 없다며 의기양양해 하는 커리어우먼이자육식계 여성인 B에게, 사시에 합격하고 부모님이 벌써부터 선 자리를 알아본다며 곤란하다는 듯이 은근슬쩍 자랑하는 친구 C에게 등등…
그들과 이 책을 살 사람들에게 저자가 서문에서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고 싶다.
부디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가능한 한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기만의 특별함에 매몰되지 않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당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루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교보문고 / 알라딘 / 예스24 / 인터파크 도서 / 네이버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