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신촌 커피빈에서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갑자기 점원이 우리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와 곧 장관님께서 방문하실 거라 자리를 만들어야 하니 죄송하지만 좌석을 좀 옮겨달라고 했다.
장관이 뭐 별 거라고 평일 점심 시간대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그렇게 유난을 떠나. 우리는 투덜거리며 자리를 옆으로 옮긴 후, 도대체 어떤 부처 장관이 무슨 일로 왔나 알아보기 위해 기다렸다. 솔직히 우리는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을 기대하고 있었다. 해양. 크크…
애초에 별로 시원하지도 않았는데 장관의 방문에 맞추어 정부 기준에 맞게 실내온도가 더 올라갔다. 곧 보좌진들이 우르르 몰려와 수선을 떨며 정찰 및 테이블 세팅을 했다. 한편 카페 바깥 복도에는 알바지킴이 청소년리더라는 어색한 문구 – 알바라는 단어와 리더라는 단어가 하나의 문장 안에 공존 – 의 어깨띠를 걸고 주홍색 티셔츠를 유니폼으로 입은 다수의 청소년들이 운집하기 시작했다. 엄마 뭐야 나 무서워…
고용노동부 건물 놔두고 왜 신촌 카페에서 간담회 같은 걸 하나 싶기도 하고, 게다가 저런 대규모 인원을 카페 밖에 방치해둔 채 뭐 대단한 걸 하나 싶어서 더 의아함을 느꼈다. 친구가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보더니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이 신촌에서 청소년 근로조건 개선 홍보를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나서 알바지킴이 청소년리더들과 간담회를 한다”고 알려주었다.
20분동안 커피를 만든 장관의 ‘일일체험’
잠시 후 주인공인 방하남 장관이 국회방송을 비롯한 십몇 대의 카메라와 함께 카페에 들어왔다. 그는 일일알바체험을 하겠다며 근로계약서를 쓰더니 카운터로 들어가 커피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일일체험’이 아니라 ’20분 체험’이었다. 그 와중에도 사진기자들은 계속해서 플래쉬를 터트렸으며 국회방송 카메라도 열심히 녹화를 하더라. 겨우 서류 한 장 쓰고 커피 몇 잔 만들고서 ‘일일알바체험’을 했다고 생색을 내며 그 커피를 받아먹은 시민에게 기자들이 달라붙어 인터뷰까지 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한심해 보였다. 그리고 손학규 전 의원의 민심대장정을 ‘쇼’라고 무시한 내 자신을 반성했다.
그러나 레알 한심한 일은 다음에 일어났다.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학생들과 함께 청소년 알바의 실태와 근로권 보장에 대해 ‘대담’을 하겠다는 거다. 아이고. ‘일일알바체험’을 하느라 바쁜 장관 대신 보좌관이 학생들을 앉혀놓고 썰을 풀었다.
거기다가 그 굿판에 학부모로 추정되는 어른들까지 따라와 장관과 자기 아이가 함께 있는 모습을 휴대폰으로 찍어대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건 한 편의 거대한 부조리극이라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 대담이 진행되는 동안, 장관과 대담을 나누는 영광스러운 ‘청소년 리더’로 선정되지 못한 나머지 들러리 학생들은 여전히 복도 바닥에 앉거나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장관이 정말로 알바문제에 관심이 있었으면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할 정도로 여유있는 학생들에게 커피나 사주고 있을 게 아니라,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카페베네를 기습방문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나중에는 이날 벌어진 일련의 희극이 청소년 노동문제에 정부가 신경쓰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한 전시행정임을 넘어서, 입학사정관제를 위한 스펙을 만들어주는 기획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부유층 학생들을 위한 이상한 대담
어제 대담에 참여한 ‘알바지킴이 청소년리더’는 올해 5월에 고용노동부에서 모집한 홍보단이다. 그리고 이 모집에 응모하여 선정된 집단이 바로 어제 캠페인과 대담에 참여했던 ‘알바-틴-키퍼’인데, 이들은 용인외고와 청심국제고 학생들이 연합하여 결성한 단체이며, 소위 ‘건전한 아르바이트와 근로의식’을 강조하며, 스스로의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가히보다는 업주의 선의에 호소하는 전형적인 온정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즉, 이들은 그야말로 평생 아르바이트 할 일이 없을만한 온실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학생들의 집단에 불과한 것이다. 아직 고등학생들인지라 미안하기는 하지만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자면, 자신들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 청소년 알바들의 처지를 이용하는 교활하면서도 순진한 바보들인 셈이다.
후속 보도 내용을 확인해보니 장관은 이들을 만나 함께 가두행진을 한 후, “청소년 리더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아르바이트생들의 애로사항과 건의사항을 청취”하다가 전시행정을 하지 말라며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한 알바연대의 기습적 항의를 받고는 “얼굴이 굳”은 채 황급히 빠져나갔다고 한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현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명문고에 재학중인 중상층 학생들의 교외활동을 통해 청소년 노동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것인데, 이쯤되면 과연 장관이 청소년 노동 문제를 심각한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진다.
고용’노동부’장관이 있을 곳은 ‘노동자’의 곁
장관은 등장한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청소년들을 대동하고 떠났다. 함께 있던 친구는 로스쿨에 재학중인데, 얼마 전 실업계 고등학교로 노동교육을 나갔다가 겪은 안타까운 이야기들를 해 주었다. ‘노동자의 권리’라는 개념이 불온한 것으로 간주되어 이를 추구하는 집단행동이 이해받지 못하며, 청소년들 스스로도 이런 개념에 익숙하지 못한 현실에 부딪혀보니 참 힘들더라는 얘기였다.
친구가 다니는 로스쿨의 다른 학생은 “직장에서 임금이 오르지 않거나 해고가 되면 새로운 직장을 구하면 되는데 왜 비합리적으로 노동운동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더라는 얘기와, 교사가 리베이트를 받고 특정 업체에 학생들을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일괄 취업시켜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얘기도 인상적이었다.
평소 중산층 모범생들의 ‘실태보고’를 들어온 장관의 눈에 실제 청소년 알바들은 공부도 못하며 교양도 없어 거칠고 천박한 ‘불량 청소년’이며, 힘든 일자리밖에 구할 수 없는 자질을 가졌다고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관이 있어야 할 곳은 날것 그대로의 청소년 노동현실 한가운데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 수단인 노동, 그리고 청소년이 노동현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환경이 존재하는 이상 우리는 청소년 노동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노동권은 노동자의 품성이나 자질을 조건으로 보장되는 권리가 아니라 기본적 권리이며, 자본가의 선의에 의해 베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무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제와 같은 쓸모없는 행사를 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