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에 대한 단상
Disclaimer
미국 대학교의 경우를 얘기하고자 한다. 한국 대학교의 상황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다. 내가 한국 대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으므로 한국에서의 경영학부가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른다. 다만 자신이 경영학을 전공하는 이유가 공인회계사라든지 CFA 같은 전문 자격증을 취득해서 안정적으로 살아가려는 것이라면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본 글은 학부 전공을 경영학으로 선택하는 일에 관한 얘기다. 경영대학원은 ‘리서치’ 중심이므로 이 글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바와는 관계가 별로 없다.
만일 내가 1학년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고민의 여지 없이 경영학부에서 벗어나 인문학을 공부했을 것이다. 정치학, 경제학, 심리학이든지 뭐가 됐든 간에 경영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 이유는 4년간 경영학부에서 공부하며 배운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오만무도한 발언일 수도 있겠지만 조금 시시하다. 아주 명문 경영학부를 다니는 사람들은 다소 공격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와튼, 슬론, 로스 학부를 다니는 분들도 사실 학문 자체로 경영학이 깊이 있다는 주장에는 공감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한다. 명성 덕에 취업이 잘 되고, 대학원에 잘 가고, 네트워킹이 잘 되고 하는 거지 배움에 있어 경영학부에서 대학생이 얼마나 배우겠나 싶다. ‘경영학’이라는 학문 자체도 깊이가 매우 얕고 교수님들도 학생의 교육보다는 당신의 연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건…인문계열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경영학부 학생으로서는 전공에 대한 영양가가 매우 적다는 것을 느꼈다.
상위 15위권 명문대학교 중 대부분이 경영학부를 두지 않는다. (Wharton, Sloan, Haas 제외)이유는 경영학부로부터 배움이 없다는 것을 느끼는 내 의견과 일치하다. 얕기 때문이다.
1. 물론 경영학을 졸업하면 취업은 문제가 없다.
내가 전공하고 있는 경영학은 영어로 Information Systems and Information Technology and Marketing (경영 정보시스템, 마케팅학 복수 전공)이다.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일리노이대학교 어바나 샴페인)의 Information Systems (경영 정보시스템) 전공의 평균 초봉은 $62,000달러 (약 7400만 원) 수준으로 경영학부 내에서도 가장 높은 전공이다. 또한, 졸업 후 3개월 이내 취업률은 96%에 육박한다.
IS/IT 전공은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 SAP, Salesforce와 같은 대형 B2B 소프트웨어 (ERP나 CRM 위주) IT기업들로부터 오퍼를 어렵지 않게 받는 전공이다. 경영학부 내에서도 첫 번째로 초봉 평균이 높고 높은 취업률 덕에 (졸업 후 3개월 내 취업률 96%) 학생들의 인기도 많다.
우리 학교의 경우 내 전공 외에도 회계학은 미국에서 두 번째로 좋다 (1위는 University of Texas – Austin, Mccombs School of Business). Big 4라 불리는 세계 4대 회계법인인 Deloitte, PwC, Ernst & Young, KPMG에서 학교 건물도 지어주고 기부금도 몇백만 달러씩 내가며 우리 학교에서 미래의 인재들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취업이 능사가 아님을 알게 됐다. 4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을 ‘취업형 인재’로 키워내는 경영학부의 부정적 측면을 보게 됐다. 그에 반해 리버럴 아츠 학부에서는 학문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열정으로 학생들을 ‘학자’로 키워내는 모습을 보게 될 때마다 1학년 때 결정한 내 선택을 후회하기도 했다. 요새는 대학이 사실 회사가 favorable 할 만한 학생을 키워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학자로 키워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임을 대학교들도 망각하는 듯하다.
2. 그러나 학문의 깊이가 없으므로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겠다.
제대로 배운다는 가정하에 따라 (그리고 본인이 열심히 공부한다는 가정 하에) 경제학을 공부하면 시장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기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게 된다. 정치학을 공부하면 국가와 정부가 어떻게 세워졌고 왜 세워졌으며 국가의 정치 구조, 그리고 정치론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면 경영학을 공부하면 도대체 무엇을 배우게 될까.
이론적이라면 어떻게 사람과 조직을 경영해야 하는지에 대해 배우게 될 것이다. 경영학을 제대로 배운다면 사람과 조직을 경영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그런데 4년 동안 사람과 조직을 어떻게 다루는지 배울 수 있을까…? 물론 경영학 공부가 쉽지는 않다. 학부 수준에서는 경영학이든 뭐든 간에 딱 그 정도 (학교별 학점 인플레이션이나 전공 별 차이가 조금씩은 있을 수 있…)다.
3. 대학원 진학을 고민할 경우 경영학은 불리한 것 같다.
대학원 입시에 불리하다는 것은 잘 모르겠다. 전공과 상관없이 professional degree의 경우 (ex. J.D, M.D, M.B.A, M.S.A, D.D.S, etc.)들으라는 수업 다 듣고 학점 잘 받고 대학원에 맞는 시험 (GMAT, LSAT, MCAT 등)만 잘 보면 된다 (granted: 매우 어려움). 다만 학부를 경영학부에서 졸업하면 대개는 진학 후 특정 분야에서 연구하고 공부를 하게 되면서 적용하게 될 background experience가 다른 전공에 비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경영학 M.S, Ph.D 과정에서도 경영학부 출신보다는 인문계나 공학 쪽이 더 유리한 것 같다. 예를 들어 학부시절 Industrial Engineering 같은 공부를 한 경우라면 오퍼레이션 리서치 등 경영과학 분야에서 기본 배경지식이 (이공계적 접근) 풍부하므로 그렇지 못한 경영학부 출신에 비해 유리할 수밖에 없다.
4. 사실 취직도 불리할 수는 있다.
경영학부에는 Supply Chain Management라는 전공이 있다. 그런데 Industrial Engineering (산업공학)에서도 SCM 쪽을 공부하는 분야가 있다. 차이가 뭘까? 내 추측으로는 경영학부에서는 공급망을 말 그대로 ‘관리’만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그런 반 면에 IE에서는 공급망이 어떻게 해야 최적화될 수 있고 (business process/operation optimization) 잘 운영될 수 있는지 과학적인 접근을 택한다.
5. 경영학부의 커리큘럼은 동아리 활동이나 대외 활동으로도 충분히 습득할 수 있다.
우리 학교의 경우에는 준법인 컨설팅 서비스 업체들이 있다 (Illinois Business Consulting, OTCR Consulting, Cube Consulting 등). 내가 속해 있는 IBC의 경우에는 포춘500대 기업들에 경영 전략 컨설팅을 제공하고 fee를 받는 미국에서 가장 큰 Fee-based 영리 목적 학생 단체다. IBC에서 컨설턴트로 활동을 하면 경영학부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것들 (전략 분석, 금융 차트 분석, 컨설팅 툴 [ex. SWOT, BCG, Porter’s 5, etc.] 사용방법 등)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이처럼 동아리 활동으로도 충분히 배울 수 있는 것들인데 4년이란 시간을 그런 것에 쓰기엔 아깝다고 생각했다.
6. 대학교에서 뭘 공부할지 정해야 할 시점인 후배들에게
내가 사회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며 내 경영학 학위를 갖고 이렇다 할 마일스톤을 성취해본 적도 없으므로 쉽게 단정 지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중상위권 경영대를 4년을 다닌 사람으로서 어떤 느낌인지 정도는 알려 줄 수 있을 것 같다.
C-level executive (CEO, CFO, CMO, COO, etc.: 기업 사장)가 되기 위해 경영학을 전공하는 건 목적과는 무관한 추측성 선택에 불과하다. 경영학을 공부한다고 임원이 되는 데 필요한 자질이나 실력을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영학부에서 가르치는 99%의 수업 내용은 사실 혼자서도 충분히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 독학으로도 깨우칠 수 있는 지식을 4년 동안 천천히 습득할 이유는 없다.
보통 사람들에게 왜 경영학을 공부하느냐고 물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일반적으로 나중에 나중에 사업하려고, 취직을 하려고 정도일 것 같다. 사업하는 것과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하는 지에 대한 상관관계는 0에 가깝다. 또한 취업률을 높이려면 경영학보다는 공대를 가라. 공대는 아카데미아로도, 인더스트리로도 대우를 받는 학부다.
그럼에도 경영학을 전공하면 얻게 되는 것은?
사람들과 어떻게 일할 수 있는지 배우게 되는 것 같다. 4년간 수행해야 할 그룹 프로젝트만 수십 개다. 또한 전반적인 ‘프로페셔널리즘’을 배운다. 경영학부는 산업이나 공업이든, 학계 공부든 한 분야에서 ‘프로’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왜 해야하는 지 학습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한다. 이것 역시 혼자서 배울 수는 있겠지만 조금 더 세밀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가르쳐주는 것 같다.
글을 마치며.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학문의 깊음을 느끼는 사람이 있긴 할 것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어쨌든 이런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경영학도로서 이 글을 읽으며 분노를 느꼈다면 이 글은 내 의견에 불과하므로 너그러이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또한 본인이 대학교에서 뭘 공부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인문계열 공부부터 시작해 보아라. 어차피 1, 2 학년 때는 젠에드 공부를 해야하니까. 그것에 맞춰 재밌어 보이는 수업들부터 서서히 탐구하다 보면 본인이 무슨 공부를 해야 열정을 느낄 수 있는지 차츰 깨달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원문: soob in su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