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망친 가장 큰 단일 직종은 역시 택배기사일지 모른다
택배비는 개인이 신청하면 약 4천 원 정도, 업자 계약으로는 2,500원으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싸다. 지하철을 이용해 물건을 사 오는 교통비만도 2,500원이다. 그마저도 건당 약 700원 정도의 백마진을 판매업자가 가져가기에 실제 택배회사가 챙기는 비용은 1,700원 정도 된다. 좁은 국토, 높은 인구밀도, 최적화된 물류 시스템을 고려하더라도 어떻게 이 가격에 서비스할 수 있는지 놀랍다.
회사에서 설비가 아닌 일반 직원이 쓰는 비용은 원가로 따지면 종이와 펜값 정도다. 나머지 인건비는 얼마든지 후려칠 수 있는 부당 지출에 포함된다. 서비스직인 택배기사도 마찬가지다. 우선 트럭을 스스로 마련하도록 하고 개인사업자 자격으로 계약한다. 직원에게 응당 투자되어야 할 4대 보험 등의 아까운 손해는 이것으로 막을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인권의 침해다. 정상적으로는 9 to 5(8시간)의 근무를 가정한 비용을 책정해야 하지만, 5 to 10 (17시간)으로 근무를 하게 하면 효율을 두 배로 높일 수 있다. 물론 개인 사업자니까 근무를 그렇게 강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일하지 않으면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건당 수수료를 맞춰주면 된다. 어쨌든 택배기사들이 먹고사는 것을 보니, 비록 일만 하면 살더라도 수지가 간신히 맞긴 맞는 모양이다.
택배기사들이 안 되는 것을 되게 한 덕분에, 소비자들은 생수조차 전국 최저가로 정렬해서 원터치로 사 먹게 됐다. 택배비가 정당한 가격으로 책정되었다면 상당히 비싼 전자제품 정도나 인터넷으로 사고 나머지 생필품은 집 앞 가게에서 사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왕복 지하철비 정도밖에 되지 않는 택배비는 지역 경제를 붕괴시켰다.
대형마트가 소상공인을 망하게 했다는 비판은 이에 비하면 애교다. 적어도 대형마트는 자사가 망하게 한 지역주민의 일부나마 직원으로 흡수시켰다. 하지만 인터넷 최저가 정렬은 10원이라도 더 싼 가격을 올린 타 지역 최저가 사업자만 돈을 벌고 나머지는 망하게 만들었다.
비정상적으로 저렴한 택배에 길들여진 사회
이상하다. 분명히 우리는 2,500원 택배와 인터넷 최저가 정렬로 모든 물건을 전국 최저가로 사서 돈을 아끼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예전보다 더 살기가 힘들다. 내가 운영하는 서점에 와서 돈을 쓸 슈퍼마켓 주인의 형편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물론 자금이 빠듯한 슈퍼마켓 주인도 자신이 책 한 권을 살 때 인터넷 최저가 당일 주문을 이용할 것이다.
이 상황에 대한 문제 제기는,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대형마트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과는 성질이 다르다. 인터넷 쇼핑과 최저가 가격경쟁은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되는 시대의 흐름이다. 다만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해야 할 택배기사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지 못하고 밤에 출근해 밤에 퇴근하는 비인간적인 삶을 받아들인 덕분에, 비정상적인 가격이 정상으로 받아들여져 시장을 교란하고 있는 상황이 문제라는 것이다.
초기 대형마트는 떨어지는 접근성을 보완하고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 규모의 경제를 이용해 할인된 가격을 내세운 ‘대형할인마트’였다. 그러나 소상공인들이 대형마트에 패배해 완전히 경쟁력을 잃어버린 지금, 대형마트는 결코 시장에 비해 싸지 않다. 사람들은 대형마트의 편한 서비스에 길들여져 이젠 대형마트가 동네 슈퍼보다 더 비싸다 할지라도 습관처럼 대형마트에 가게 되었다. 이제 와 대형마트를 규제한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지갑을 닫으면 닫았지 불편한 재래시장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제 와서 택배 비용을 정상화할지라도, 온라인 쇼핑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은 동네 상권을 이용하지 않는다. 다만 소비 자체를 줄일 뿐이다. 또한 밤 10시까지 일해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는 택배기사를 강제로 5시에 퇴근시킨다면, 그들의 수입은 최저 생계비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처음부터 단추를 잘 끼웠어야 했다.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 우리는 모두 ‘택배기사’다
이때 한 택배사가 정도 경영을 실현하겠다며 택배기사를 개인사업자가 아닌 직원으로 편입해 권리를 보장해주고 칼퇴근을 보장해준다면 어떻게 될까?
사례가 있긴 하다. 대우 좋기로 소문난 ‘쿠팡맨’ 배송기사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외부 자본을 끌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결과이지, 아직 영속적으로 자생할 수는 없는 시스템이다.
양심적인 경영은 비양심적인 경영에 밀려 도태되는 상황이다. 시장경제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개입해야 할 부분은 명확하고 단순하다. 택배기사 ‘역시’ 인권에 따라 저녁이 있는 삶을 살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야근수당이니, 출산 장려니, 일자리 나누기니 하는 것은 이 큰 틀의 일부 표현형에 불과하다. 택배기사들은 밥 먹을 시간, 여가시간, 자식을 기를 시간을 포기해 생존권만은 확보했다.
하지만 그들이 포기한 것은 자신들만의 권리가 아니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비싼 월세를 내는 슈퍼마켓 주인이, 택배기사가 수용한 야간 배송을 통해 대중교통비보다 싼 비용으로 강원도에서 하루 만에 배달되는 생수와 싸워야 하는 불공정 경쟁을 하게 만들었다. 내 가게에서 물건을 사줄 동네 사람들의 형편이 어려워지면 결국 나도 인터넷 주문조차 할 여력이 사라진다.
우리는 모두 택배기사다. 이제는 희생이 아니라 권리의 균형이 작동하는 진짜 시장경제를 보고 싶다.
원문: John Lee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