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0일을 마지막으로 ㅍㅍㅅㅅ 대표에서 물러납니다.
이후 ㅍㅍㅅㅅ의 경영은 MHN미디어 주진노 대표님께서 맡게 됩니다. 다양한 사업 경험이 풍부하신 분이라, 저보다 더 훌륭히 매체를 이끌어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ㅍㅍㅅㅅ를 시작한지도 13년이 지났습니다. 긴 시간만큼 힘든 일도 많았지만, “ㅍㅍㅅㅅ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라고 말하는 독자님들 덕에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아마 ㅍㅍㅅㅅ가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그건 전문성을 기꺼이 공유한 필진 분들 덕분일 겁니다. 좋은 글로 ㅍㅍㅅㅅ가 빛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필자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ㅍㅍㅅㅅ가 MHN미디어 주진노 대표님과 함께 더 훌륭한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당분간 휴식을 취하며 다음 사업을 준비할 계획입니다. 혹시 ㅍㅍㅅㅅ 관련하여 궁금한 점이 있거나, 제안 등이 있으면 [email protected] 로 메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말 기준 국내 화장품 판매 업체가 3만 개를 넘어섰습니다. 2017년 1만 개를 넘어선 지 6년 만에 무려 세 배 이상 증가한 것인데요. 역사상 가장 많은 화장품 브랜드가 국내 시장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열풍의 주인공은 이른바 ‘인디 화장품 브랜드’로 불리는 작은 규모의 신생 화장품 브랜드입니다.
실제로 올리브영, 다이소 등의 오프라인 커머스와 뷰티 컬리, 지그재그 등의 온라인 커머스를 살펴보면 다소 생소한 이름의 ‘인디 화장품 브랜드’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과거 K-뷰티를 이끌었던 브랜드가 아모레퍼시픽, LG 생활건강 등의 대기업 브랜드였다면, 최근에는 인디 화장품 브랜드가 ‘하드 캐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디 화장품 브랜드의 ‘대세’는 2~3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잘나가는’ 인디 화장품 브랜드 사례도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죠. 한 해 매출 1,000억 원 이상을 달성하는 인디 화장품 브랜드가 여러 개에 달하고, 가파른 매출 및 영업 이익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자금력이 풍부한 대기업과 사모 펀드는 인디 화장품 브랜드의 가능성을 보고 M&A 시장에 뛰어들고 있고요.
화장품 브랜드의 증가는 낮은 진입 장벽과 시장의 성장 덕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더 궁금해집니다. 화장품 산업의 진입 장벽은 왜 점점 낮아지고 있는지, 브랜드 파워가 약한 인디 화장품 브랜드도 어떻게 고객의 선택을 받게 됐는지 말이죠. 그 이유를 소비의 변화, 마케팅의 변화, 생산의 변화 관점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가장 큰 변화는 ‘소비’에 있습니다. 소비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성장은 없죠. 첫번째 소비 변화는 ‘성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객의 증가입니다. 예전에는 화장품 성분을 세세하게 살펴보는 소비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또한 온라인 상품 페이지에 성분 표시가 제대로 안 보이는 상품도 많았죠. 모델 광고와 제품 콘셉트를 통한 브랜드 파워로 제품 판매를 견인하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성분’ 정보 중심으로 소비가 발생합니다. 브랜드 파워는 약하더라도 성분이 좋아 ‘제품력’이 뛰어나면 장바구니에 담기죠. 좋은 성분에 합리적인 가격과 긍정 리뷰까지 더해지면 ‘히트 제품’으로 올라서게 됩니다. 건강에 민감한 소비자가 늘어나며 ‘성분’을 꼼꼼히 따지는 소비자가 늘었습니다.
성분 중심 화장품 소비의 큰 배경은 ‘성분’을 알기 쉬워진 환경도 한몫했습니다. ‘화해’와 같은 화장품 플랫폼에서는 각 화장품마다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 위험한 성분은 없는지 시각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지그재그는 아예 ‘성분’ 탭을 만들어 제품의 추천 성분과 전 성분의 배합 목적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죠. 또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뷰티 제품을 추천할 때 ‘성분’ 분석으로 이야기하고요.
이런 성분 중심의 소비 덕분에 ‘제품’ 자체가 좋으면 구매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말인즉슨, 신생 브랜드 또는 인디 브랜드더라도 제품이 좋으면 승산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덕분에 주목받는 인디 화장품 브랜드가 꾸준히 등장하고 매출 천 억원 이상의 메가 브랜드로 성장하게 됐습니다.
두 번째 소비 변화는 ‘K-뷰티’의 인기입니다. 몇 년간 이어진’ K-컬처’의 인기로 인해 ‘K-뷰티’ 역시 주목받게 됐습니다. 특별한 점은 ‘중국’ 이외 국가에서의 높아진 관심인데요. 이전에는 ‘화장품 수출’하면 중국을 가장 먼저 떠올렸습니다. 한국 화장품의 수출 국가로 중국은 독보적이었죠.
하지만 최근 수출 지형도를 보면 미국, 일본, 유럽 등으로의 수출이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24년 6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중국 수출액은 2억 8000만달러로 23년 같은 기간 보다 2.9% 증가에 그쳤으나 2위 미국(2억7000만달러)은 60.5% 크게 뛰었고 3위 일본(1억7000만달러)은 18.3% 늘어났죠. 미국 수출액이 중국 수출액을 곧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옵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 이후 온라인으로 화장품을 구매하는 흐름이 생겼고, 덕분에 아마존에서 화장품 분야별 Top10에 우리나라 브랜드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수출이 활성화되면서 ‘시장 파이’가 커지게 되었고, 인디 화장품 브랜드도 충분히 판매 경로를 마련할 수 있게 됐습니다. 국내에서는 성분 중심의 ‘제품력 위주’의 소비가 인디 화장품 브랜드에게 ‘기회’를 제공했고, 해외에서는 K-뷰티의 인기 덕분에 글로벌 수출이 늘어나 매출과 영업이익이 파격적으로 늘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케팅의 변화도 인디 화장품 브랜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첫 번째는 바로 ‘플랫폼’의 성장입니다.
이전에는 화장품 브랜드가 로드샵을 보유해야 했습니다. 직접 보고 테스트 해보고 사야 하는 화장품 제품의 특성상 오프라인 매장이 꼭 필요했죠. 그래서 아리따움, 에뛰드, 스킨푸드, 이니스프리, 네이처 리퍼블릭 등의 기성 화장품 브랜드는 로드샵 늘리기에 노력했고, 이는 자본이 넉넉한 대기업 화장품 브랜드가 잘할 수 있는 분야였습니다. 진입장벽이 높았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이제 화장품 구매는 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일어납니다. 다이소, 올리브영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곳에서는 수 많은 화장품 브랜드를 한곳에 모아 판매합니다. 덕분에 인디 화장품 브랜드도 ‘전국’ 오프라인에서 소비자를 만날 기회가 생겼습니다. 매대 중 일부만 우리 것으로 만들면 되기 때문이죠.
일례로 24년 6월에 진행한 올영세일 데이터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세일 기간 매출액 기준 인기 상품 Top10의 모든 상품이 ‘인디 화장품 브랜드’였습니다. 플랫폼의 성장이 인디 화장품 브랜드가 적은 자본으로도 오프라인 고객 접점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죠.
두 번째는 ‘디지털 마케팅’입니다. 화장품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1020세대는 SNS에 친숙한 세대입니다. 이전에는 화장품 알리기가 TV, 오프라인 광고 등으로 진행됐다면 이제는 ‘디지털’로 진행됩니다. SNS 마케팅, 구글 애드센스 등을 통해 과거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도 화장품을 홍보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커지면서 신생 브랜드도 얼마든지 입소문 버즈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됐고요.
오프라인 플랫폼의 성장, 그리고 디지털 마케팅으로의 마케팅 변화가 인디 화장품 브랜드도 적절한 타깃에게 발견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은 생산의 변화입니다. 요즘 화장품 업계에서는 화장품을 잘 아는 사람보다 ‘사업’을 더 잘 아는 사람이 몰린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그 이유는 화장품 전문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훌륭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바로 ‘ODM’ 시스템 덕분입니다.
인디 화장품 브랜드 대다수는 공장이 따로 없습니다. 화장품을 전문적으로 연구, 제조, 생산하는 한국콜마나 코스맥스와 같은 화장품 제조업자 개발생산(ODM) 업체에 위탁을 맡기고 있죠. 이전에는 연구와 개발은 브랜드가 하고 ‘제조’만 맡기는 OEM 방식이 성행했다면, 최근에는 연구와 개발까지 위탁하는 ODM 방식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ODM 업체들은 오랜 기간 다수 브랜드의 화장품 위탁 생산을 해오면서 표준화된 ‘화장품 레시피’를 보유하게 됐고, 이를 통해 ‘화장품 컨설팅’ 기업으로 거듭나게 됐습니다. 그 결과, 한국콜마는 2023년 한 해만 고객사 253곳과 신규 계약을 체결했고, 2024년에는 매출 1조를 넘기며 인디 화장품 브랜드가 꼭 거쳐 가는 ‘성지’가 됐습니다.
이런 생산의 변화로 인해 ‘제품 아이디어’만 있다면 ODM 업체와의 협의를 통해 1년 안에 ‘시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코스맥스는 브랜드 콘셉트 제안부터 상품 개발, 패키지 디자인 개발, 심지어 네이밍 설계까지 전 과정을 컨설팅해 주는 전담 조직까지 세팅했죠. 화장품을 모르는 ‘사업가’도 충분히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디 화장품 브랜드가 어떻게 끊임없이 생겨날 수 있게 됐는지 살펴봤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이유 외에도 더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화장품 특성상 마진율이 높다는 점(통상 50%), 긴 유통기한으로 재고 관리가 쉽다는 것 등 산업의 구조적 특징도 인디 화장품 브랜드 전성시대의 원인으로 꼽힙니다.
결국 돌아보면, 새로운 브랜드가 등장 하기 위해서는 ‘환경적 요인’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비, 마케팅, 생산의 변화가 새로운 화장품 브랜드가 태어나고 쑥쑥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됐죠. 시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업가들이 몇 년전부터 화장품 브랜드 창업에 욕심 내는 것도 같은 이유일테고요.
인디 화장품 브랜드를 바라보는 시선은 나뉩니다. ‘K-뷰티’ 2막으로 인한 글로벌 시장의 성장으로 인디 화장품 브랜드 전성시대는 더 지속될 것이라 보는 분이 있는 반면, 경쟁이 가열되어 어느덧 포화에 다다르게 될 것이라 보는 분도 있습니다. 대기업과 사모펀드에 브랜드를 넘기고 엑시트를 하는 인디 브랜드 화장품 창업가가 점점 많아지는 것이 포화의 시그널로 받아들이는 분도 있죠.
3만 개까지 늘어난 화장품 브랜드는 어떻게 될까요. 인디 화장품 브랜드가 ‘메이저’ 화장품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인디 화장품 브랜드가 ‘원 히트 브랜드’가 아닌 지속 가능한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요. 이런 고민에 답을 잘 찾은 브랜드가 몇 년뒤에도 접하는 ‘메가 브랜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문: 생각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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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정기고사 시즌이 되면 교무부장과 평가 담당 교사가 바빠진다. 고사 관련 연수를 준비하고 시험 매뉴얼을 정비하는 일이 수능시험 대비하는 일 못지않게 촘촘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 모든 일이 학생과 학부모에게서 제기되는 민원에 대비하는 차원임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고사 관련 연수에서 만나는, 수십 페이지로 구성된 연수 피피티 슬라이드와 양면으로 복사된 수십 장짜리 매뉴얼 묶음을 보면 숨이 턱턱 막힌다.
학교 현장에 이런저런 수식어를 앞에 붙인 ‘매뉴얼’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때는 대략 2010년대 중반 이후였던 것 같다. 초창기만 하더라도 매뉴얼을 보는 시각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매뉴얼 만능주의가 자연스럽게 통용되었다. 업무 처리의 효율성이나 객관성, 공정성 측면에서 상당한 이점이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컸다.
매뉴얼 등장 이전에도 학교 현장에는 여러 가지 지침과 규정이 있어서 학교 내 교육과 행정 업무의 절차를 통제했다. 그런 각종 지침과 규정이 행사하는 구속력이 매뉴얼보다 낮았던 것 같진 않다. 그런데 매뉴얼이 등장하면서 전반적인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기존의 지침과 규정은 물론이고, 이들의 존재 근거가 되는 상위 법령이 학교 안팎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교육의 권위와 교육활동의 근거를 이들 규범 체계에서 찾는 교사들이 늘어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이었다. 학교 내 관행이나 문화가 교육과 행정의 틈 사이로 끼어들 여지는 거의 없었다.
법을 포함한 명시적인 규범에 따른 교육은 이상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사가 만나고 관계를 맺으면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상황이나 국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규범 체계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눈에 보이는 규범 체계에서 교육적 권위와 교육활동의 근거를 찾는 일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 우리나라 학교의 거의 유일하고 최종적인 목표가 ‘졸업’이라는 사실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이 거의 없으리라 믿는다. 이마저도 그 유통 기한이 얼마 남은 것 같지 않다. 졸업 인증이라는 권위의 원천을 근본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탈학교 학생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고등학교의 현실을 생각해 보라. 해마다 2만 명 안팎의 고교생이 다니던 학교를 자퇴한다.
학교와 교사가 교육적 권위와 교육활동의 근거를 명시적인 규범 체계에서 찾는 일의 한계는 무력함으로 나타난다. 학교와 교사의 무력감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이 ‘교육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학교는 더는 전통적인 의미의 교육기관이 아니며, 교사는 교육자가 아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학원 숙제를 하거나 자습으로 부족한 수면을 채우고, 그사이 다양한 부가 활동과 급식 서비스를 제공받는 소비자처럼 지낸다. 많은 교사들이 학생들의 요구와 욕망을 눈감아 주거나 그것에 영합한다.
교실 청소, 당번제, 학급 회의 등에 나름의 교육적 의미를 부여하여 진정성을 갖고 실시하는 학교와 교사가 얼마나 될까. 나는 지금 극히 일부 학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교에서 바람직한 의미의 공동체와 질서와 규율 교육을 학교교육활동에 체계적으로 반영하여 실시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독일 살렘학교 교장 베른하르트 부엡이 163쪽짜리의 조그만 책 『왜 엄하게 가르치지 않는가』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교육과 교육자의 권위이다. 원칙과 관용, 훈련과 사랑, 일관성과 배려 사이에서 길과 균형감을 잃었다는 부엡 교장의 이야기를 고개를 끄덕이며 들으면서도 우리 시대 교육과 교육자가 과연 교육적 권위를 찾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원칙과 관용, 훈련과 사랑, 일관성과 배려, 통제와 신뢰 사이에서 중용을 찾는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꾸 관용, 사랑, 배려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엄하게 교육하다가 아이들의 마음이 닫힐까 봐 두려워하고, 훈련이 아이들의 마음에 부담이 될까 봐 염려합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합니다. 엄한 태도가 오히려 아이들을 강하게 만들고, 너무 배려해 주고 과잉보호하는 것이 아이들을 약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 35쪽
그러나 탈권위와 탈진실을 지향하는 오늘날의 시대는 역설적으로 모두가 권위의 주체이자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믿고, 또 그렇게 되도록 노력한다. 한 사회가 합의한 것으로 전제하는, 그리하여 거의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삶의 목표와 기준이 되는 참된 권위가 설 자리가 갈수록 줄고 있다. 교사가 권위를 지니고 진실하고 진정성 있는 교육을 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지게 된 까닭이다.
권위 없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과거에는 정전(正典, canon)과 정전의 권위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나의 텍스트와 한 명의 교육자가 쉽게 권위의 원천이 될 수 있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교육의 목표와 대상이 쉽게 자리매김될 수 있었으므로 교육적 권위나 진실을 둘러싼 시비나 다툼이 일어나기 힘들었다.
이제 우리는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에게서 그런 원천을 찾을 수 있을까. 온갖 첨단 도구와 시스템의 도움 아래 극단과 편향과 혐오가 표준이 된 듯한 이 우울한 세상에서 우리가 교육이라고 일컫는 행위의 끝이 어떻게 귀결될지, 그 끝에서 어떤 인간들이 나올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렵다.
원문: 정은균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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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틸콩, 귀리 등 통곡물 최적 비율로 혼합…“한국인의 흰쌀밥 습관 대체”
프리미엄 곡물 브랜드 신농작소(대표 김현미)가 8월 신제품 ‘느린혼합곡’을 출시했다. ‘느린혼합곡’은 저속노화 식습관을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7종 곡물 블렌드다. 인지 건강과 염증 관리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진 ‘MIND 식단’의 핵심 원리를 반영했다.
한국인의 식습관에서 저속노화 MIND 식단의 핵심이자 첫걸음은 흰쌀밥을 잡곡밥으로 바꾸는 것이다. 저속노화 전문가 정희원 교수는 “매일의 흰쌀밥은 가속노화로 가는 액셀”이라며 렌틸, 귀리, 현미 등을 섞은 잡곡밥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느린혼합곡’은 이러한 취지를 일상에서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제품이다. ▲고단백·고식이섬유의 렌틸콩과 귀리 ▲항염 작용을 돕는 찹쌀 ▲맛과 영양을 더하는 쥐눈이콩 등 7종 곡물을 최적의 비율로 혼합했다.
느린혼합곡의 통곡물은 백미에 비해 비타민·미네랄·식이섬유 함량이 높고, 낮은 혈당지수(GI)로 식후 혈당 급상승을 완화해준다. 풍부한 식이섬유는 장내 유익균 활성에 기여하고, 다양한 파이토케미컬이 세포 손상과 염증 억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건강과 함께 편의성도 고려했다. 여러 곡물을 따로 살 필요 없이 ‘느린혼합곡’을 백미와 섞어 평소처럼 취사하면 된다. 특히 300g 파우치는 봉지를 뜯어 그대로 밥솥에 부은 뒤 취사만 하면 돼 편의성을 극대화했다. 가구 구성에 따라 1~2인용 300g과 3인 이상 가족용 1kg 중 선택할 수 있다.
‘느린혼합곡’은 SSG, 오아시스, 쿠팡 등 주요 이커머스 플랫폼에 동시 입점했으며, 오는 18일에는 홈쇼핑 채널 홈앤모아를 통해 소비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신농작소 김현미 대표는 ‘타다’, ‘바디럽’, ‘그릭데이’ 등 다양한 브랜드 프로젝트를 리드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김 대표는 “국내 곡물 소비가 쌀 위주로 편중된 현실이 늘 아쉬웠다”며 “누구나 쉽게 일상에서 저속노화 식습관을 실천할 수 있도록 맞춤형 곡물 라인업을 순차적으로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나는 이것을 지난 몇 개월의 취재를 통해 아주 이성적으로 확신하고 말았다. 단지 한국의 위대한 전통 술들을 빚는 곳을 갔는데 그곳에는 어김없이 고양이, 아니 술냥이들이 있었거든.
조선시대 가장 널리 알려진 부자 가문.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지역과 나라를 챙긴다는 경주 교동 최부자댁을 누가 지킬까? 그 해답은 최부자댁 건물에 들어가면 알 수 있다. 고양이다. 이 녀석들은 마루 밑 그늘에 앉아서 오가는 평민 집사들을 지켜본다.
마치 최부자댁에서 비기로 내려오는 집안의 술 ‘교동법주’ 같은 노란빛의 녀석들이다. 교동법주는 최부자댁 바로 옆 건물에서 빚어지는데 달착지근하지만 기품 있는 맛으로 많은 사람들을 홀렸다. 마치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눈빛으로만 취하게 하는 이 고양이들처럼.
진달래꽃이 피는 봄이면 가장 바쁜 마을. 충남 당진시 면천면에는 진달래꽃으로 빚는 술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그렇게 찾아온 면천두견주 보존회. 그런데 우리를 맞아주는 것은 술 빚는 사람도, 술도 아닌 진달래꽃밭을 헤치고 나온 한 마리의 고양이였다. 위풍당당하게 나타나 초면인 사람들에게 박치기를 한 번씩 해줬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다가오는 걸 보아 주인을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면천두견주 역시 주인을 잃어버렸던 술이다. 술을 빚는 전승자가 세상을 떠나면서 사라질 뻔한 것을 지역 주민들이 합심해서 ‘보존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 건물을 서성이는 고양이도 종종 돌봐주고 있다.
눈치채신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앞선 고양이들을 만난 곳은 모두 국가에서 지정한 무형유산에 등재된 전통술 양조장이다. 전국에 3개뿐인데 갈 때마다 고양이들을 만났으니. 언제부터인가 나는 술맛이 아니라 고양이를 볼 생각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김포에 있는 문배주 양조장에 갔다.
하지만 문배주 양조장 근처에는 아직(?) 고양이가 없었다. 배의 향기가 나지만 배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술 문배주처럼. 고양이가 없는 양조장에서 고양이를 생각하게 되다니. 아이러니하지만 참 술의 이름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과거에는 양조장 근처에 언제나 고양이가 있었다고 한다. 술은 쌀과 같은 곡식으로 만들고, 곡식이 있는 곳에는 쥐가 생기기 마련이고, 이런 쥐를 막기 위해 고양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멀리 스코틀랜드에서도 위스키 양조장에 ‘위스키 캣(마우저)’이라는 정식직원을 뽑았다고 한다.
나중에는 시설이 발달해 쥐의 위험이 없어졌어도 고양이는 그 자체의 귀여움으로 양조장들의 마스코트가 되고 있다. 사람들의 근심을 잊게하는 술만큼이나, 고양이들은 귀여움으로 즐거움을 주고 있다고. 여러분이 보시기에 술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고양이는 무엇인가? 선택을 부탁드린다.
원문: 마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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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재적 동기는 보상, 인정, 처벌 회피 등 외부 요인에 의해 행동이 유발되는 것을 말한다. 급여, 상사로부터의 칭찬, 승진 기회처럼 ‘외부에서 부여된 가치’가 행동의 이유가 된다. 예를 들어, 상사의 칭찬을 받기 위해 과제를 일찍 끝내거나, KPI를 달성하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을까 봐 밤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반대로, 내재적 동기는 활동 그 자체에서 즐거움이나 만족을 느끼며 나타나는 자발적 동기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기쁨, 문제를 해결했을 때의 성취감처럼 활동 그 자체가 보상인 상태를 의미한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동기이론에서는 내재적 동기를 가장 바람직한 동기로 여겨왔다. 강한 내재 동기를 가진 사람은 더 높은 몰입, 더 오래 지속되는 행동, 더 깊은 창의성을 발휘한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Ryan & Deci(2000)의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SDT)은 자율성, 역량, 관계성이라는 세 가지 욕구가 충족될 때 내재적 동기가 강화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최근의 동기 연구들은 이 통념에 의문을 던진다.
내재적 동기라면 무조건 좋은 것일까?”
“즐거움만으로도 몰입이 가능할까?”
영국 브리스톨 대학교 다니엘 베넷(Daniel Bennett) 박사 등은 디지털 경험 사용자들을 분석한 결과, 흥미로운 한 가지 유형을 발견했다. 활동은 분명 즐거운데 의미도 없고, 만족도도 낮은 사람들이었다. 연구진은 이를 Hedonic Amotivation, 즉 쾌락적 무동기라 명명했다. Bennett의 연구는 즐거움이 반드시 긍정적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내가 왜 이걸 했지?
한 시간 동안 SNS, 숏츠 등을 탐닉한 후의 허무감, 넷플릭스 드라마 몰아보기가 끝나고 밀려오는 공허함, 게임을 실컷 하고 느껴지는 후회… 그동안 우리는 이 경험을 의지력 부족 탓으로 돌렸지만, Bennett 등은 즐거움 자체가 문제일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전통적으로 “내재적 동기 = 즐거움 + 의미”로 정의되지만, 실제로는 즐거움이 넘치는데도 공허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Bennett 등은 연구를 통해 내적 동기-외적 동기 스펙트럼 상 5개의 동기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 무동기 집단 (Amotivated)
2. 쾌락적 무동기 (Amotivated I.M. Hedonic Amotivation) 집단
3. 외재적 동기 중심 (External)
4. 전반적으로 중간 정도의 동기 수준 (Medium)
5. 내재적 동기 높음 (High quality)
즉각적인 즐거움은 활동의 가치, 목적, 정체성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정서적 피로와 자기효능감의 저하를 남긴다. 즐거움만 강조한 조직 프로그램의 설계는 분명 한계가 있다. 재미있기만 하면 몰입도는 높을 것이라는 생각은 허상이다. 그렇다면, 왜 즐거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즐거움은 누군가를 끌어들이는 훌륭한 출발점이지만, “왜 이것이 내게 중요하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몰입은 지속되지 못한다. 재미만으로는 사람을 움직일 수 없다.
1. 즐거움 + 의미
도파민 기반의 즉각적 즐거움은 내재성이 강하지 않고, 장기 몰입이나 의미 통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의 자아 이미지를 보호하기 위해 행동을 의미와 연결하려 한다. 따라서 즉각적 피드백 외에도 “당신의 가치·목표와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보여줘야 한다.
2. 자율성 욕구 충족
‘내가 선택했다’는 감각이 없다면 즐거움은 곧 의무감으로 전환된다. 더 많은 선택권과 통제감을 주는 설계가 필요하다.
3. 성장과 정체성 연결
과제에 성장, 성취 요소가 부재하면 무기력·무동기로 이동한다. 단순한 반복 대신, 점진적 도전과 자아 확장 기제(self-expansion)가 포함되어야 한다.
내재적 동기는 더 이상 “즐겁다”는 말로 대체될 수 없다. 즐거움은 중요하지만, 지속 가능한 몰입을 위해서는 의미감, 자율성, 성장과 정체성의 연결고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원문: 박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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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으로 유명한 지역을 뽑았을 때 북한을 빼놓을 수 없다. 메밀이 많이 나는 북한에서는 예로부터 냉면이 유명했는데 주로 평양, 함흥, 해주, 원산, 강계 등에서 지역적 특색을 반영한 냉면들이 생겨났다. 가장 널리 알려진 건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이다.
평양냉면은 메밀 함량이 높은 면과 동치미 또는 소고기 육수의 맑고 차분한 맛이 특징이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은은한 감칠맛이 입안에 오래 남는다. 국수의 온도는 차갑되 지나치지 않으며,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정적인 인상을 준다. 실향민을 통해 서울에 뿌리내린 평양냉면은 현재 한국식 냉면의 기준이자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함흥냉면은 감자·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쫄깃한 면발과 매콤달콤한 양념장의 조합이 특징이다. 대표 메뉴는 회냉면으로, 홍어 또는 가자미회가 푸짐하게 올라가며 새콤한 양념장의 뒷맛을 당긴다. 탄력 있는 면과 강한 양념이 대비를 이룬다.
해주냉면은 육수를 돼지고기로 내고 면발이 거의 쫄면 수준으로 두꺼운 것이 특징으로, 한국에 피난 온 해주 출신 피란민들이 양평 옥천면에 자리를 잡으면서 옥천냉면으로 계승되었다.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하되 슴슴한 편으로 평양냉면과는 결이 다른 또 다른 별미다.
지역별로 더 나아가면 우리나라에는 진주냉면이 있다. 소고기 육전, 지단, 배, 오이, 실고추 등 다양한 고명이 화려하게 올려져 보는 맛도 풍부하다. 육수는 고기육수와 해산물 육수를 각각 내어 섞는 것이 특징. 다양한 재료가 맛의 레이어를 쌓으며 보는 것만큼이나 화려한 맛을 자랑한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부산 밀면이 있다. 밀가루와 전분을 섞은 면에 달큰한 양념을 섞은 고기 육수를 쓰며, 전쟁 직후 냉면을 대신해 만들어졌지만 현재는 별개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강원도의 막국수도 빼놓을 수 없다. 구수한 메밀면을 사용하여 들기름과 옅은 양념장, 김가루 등을 넣어 심플하게 비벼서 먹는다. 칡가루 특유의 쌉싸래한 맛이 좋은 칡냉면은 살얼음 육수와 어우러져 여름철 별미로 사랑받는다.
이처럼 냉면은 같은 이름 아래 전혀 다른 식감과 향, 구성을 갖는다. 메밀과 전분, 육수와 양념, 고명과 장식까지. 취향은 갈릴 수 있지만, 선택지는 넓다. 이번 여름엔 스타일이 다른 냉면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각자의 기준에 맞는 ‘올여름 냉면’을 찾아볼 때다.
연남동에서 이름난 평양냉면 전문점 ‘우주옥’이 청담으로 정식 이전해 문을 열었다. 1~3층 구조의 여유 있는 공간에서는 기존 연남 시절부터 이 가게의 기조였던 ‘술+냉면’ 페어링을 위한 세심한 환경 세팅이 돋보인다.
대표메뉴는 ‘물냉면’으로 소금으로 간을 해 투명하다 싶을 정도로 맑은 육수에 메밀면 타래와 수비드로 익힌 홍두깨 살을 올려내는 스타일이다. 붉은 고기의 색이 살아있는 수육 고명의 비주얼이 가히 압권이라 SNS를 중심으로 많은 화제가 되었다. 육수는 투명한 색감에 비해 간간한 편으로 시원하고 감칠맛 나는 여운을 남긴다. 곁들임 메뉴로는 ‘제육’이나 ‘녹두전’도 추천할 만하다.
진주냉면은 평양냉면, 함흥냉면과 견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인정받는 전통 냉면 유형이다. 진주 양반들이 술 마신 뒤 속풀이 음식으로 즐기던 음식으로 냉면 중에서는 가장 화려한 것이 특징.
‘진주냉면 산홍’은 20년 경력의 진주교방 음식 연구가 이종상 셰프가 진주의 향토 식문화를 선보이는 공간이다. 앉은뱅이 밀, 고구마, 보리, 메밀 4가지 곡물을 섞어 수제 면발을 만들며, 육수는 고기육수에 쇠고기 육수를 섞어 감칠맛이 매우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쇠고기 육전, 오이채, 배, 계란지단을 가지런히 올려 시각적 풍성함을 자랑한다. 특히 육전의 고소한 향이 육수에 배어들어 감칠맛을 더하는 것이 특징.
천연 과일을 갈아 수제 어육장에 숙성해 만든 비법 양념의 ‘진주산홍’ 비빔 냉면도 인기가 좋다. 사이드로는 크고 넓적하게 부쳐낸 육전을 테이블 위에서 직접 커팅해주는 퍼포먼스의 ‘소고기육전’이 가장 인기가 좋다.
여수 이순신광장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위치한 ‘함남면옥’. 1955년 함경도에서 내려와 여수에 터를 잡고 문을 연 후 60년 넘게 자리를 지키며 전국적으로 알려진 함흥냉면 노포다. 식당 입구부터 실내까지 역사와 전통이 느껴지는 인테리어가 특징.
이곳 냉면 메뉴는 일반 비빔냉면인 ‘냉면’과 회가 올려진 ‘회냉면’ 뿐인데, 일반 냉면에 양념장과 육수를 취향에 따라 조합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즉, 기본 비빔형 냉면으로 제공되고 육수를 추가해 물냉면으로도 즐길 수 있는 ‘하이브리드 스타일’인 것.
면은 고구마 전분으로 뽑은 가늘고 쫄깃한 전분 면이다. 일반적인 함흥냉면보다 덜 질기고 탄력적인 식감으로 “매콤 담백한 양념과 잘 어울린다”는 평을 받는다. 은은하면서도 감칠맛 넘치는 고기 육수를 부어 남은 양념이 어우러지면 개운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금호역 인근 금남시장 초입 골목 어귀에 ‘골목냉면’이라는 간판이 있다. 이름처럼 수수한 외관이지만, 매운 냉면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꽤나 오래된 명소다. 1966년 문을 연 이곳은 3대째 운영 중인 동네 노포로, 서울에서 흔치 않은 정통 ‘매운 냉면’을 고집하는 집이다. 냉면은 넉넉한 육수의 ‘물’과 자작하게 양념을 비벼 먹는 ‘비빔’으로 나뉜다.
이 집은 청양고추 베이스의 양념장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으로 자극적인 캡사이신 계열의 매움이 아니라, 혀끝을 깨우는 깔끔한 칼칼함이 중심이다. 주문 시 매운맛은 단계별로 조절 가능하며, 평소 매운 음식을 즐기지 않는 이들도 ‘보통 맛’으로 무난히 즐길 수 있다. 보통 맛도 상당히 매콤한 편이니 매운맛에 약하다면 주의하는 것이 좋다.
면발은 전분을 사용한 함흥식 계열로 쫄깃하고 탄력 있는 편. 비빔냉면 스타일로 먼저 맛본 뒤, 후반에는 육수를 부어 물냉 스타일로 바꿔 즐기는 방식도 가능하다. 얇은 피의 김치만두 3알이 제공되는 세트가 마련되어 있는 것도 장점이다.
광안대교가 보이는 광안리 해변 바로 앞, 시원한 오션뷰를 자랑하는 밀면 맛집. 밀면의 핵심인 면발은 고급 밀면 전용 밀가루를 사용해 쫄깃한 식감이 남다르다. 맑은 고기 육수는 청량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이 특징으로, 육수를 사발째 들고 마시는 손님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물냉면 또한 양념장이 들어있는 상태로 나오기 때문에, 원치 않는다면 미리 ‘양념 따로’를 요청해도 좋다.
고명으로 얹어진 고기는 24시간 저온 숙성 후 진공 상태에서 총 48시간의 숙성을 거쳐 나와 큼직한 크기에 반해 부드러운 식감과 육향이 특징. 고기를 많이 얹어주는 것도 장점이다. 사이드 메뉴로는 거의 모든 테이블에서 ‘만두’를 주문한다. 촉촉한 고기소와 야들야들한 만두피가 꽤나 맛이 좋다.
매장은 깔끔하고 캐주얼한 분위기로,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할 수 있는 자리를 최대한 넓히기 위해 매장 입구가 건물 뒤편에 있는 것도 독특하다.
원문: 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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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커리어에 쉼표를 찍고 있지만 직간접적으로 취업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취업의 핵심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트렌드라는 것이 있고,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도 변하지만, 그 핵심엔 큰 변화가 없다. 지금 내가 누군가에게 해주는 조언들 대부분이 20년 전 취준생이었던 내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특히 시대가 변해도 변함없는 취업 1원칙이 있다.
될놈될, 될 놈은 된다는 뜻이다. 취업 컨설팅을 할 때마다 강조하는 말이 있다. 바로 컨설턴트의 역할은 준비된 지원자가 억울하게 탈락하는 일을 막는 것이지, 준비가 덜 됐는데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합격하게 돕는 것은 아니란 사실이다.
평소 꾸준하게 공부한 학생이 시험을 잘 보는 것이 당연한 결과다. 마찬가지로 목표한 회사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부단히 준비한 사람이 좋은 조건으로 이직할 확률이 월등히 높다. 취업에서 요행을 바라지 말자. 1%의 행운도 노력한 자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될놈될인 상황을 운명주의처럼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될 놈이 될 자격은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될 놈이 되기 위해 얼마나 철저히 준비했느냐에 따라 커리어의 운명의 결정된다. 될 놈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을 알아보자.
될 놈이 되기 위해선 우선 마음먹기를 해야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과 사소해도 좋으니 어떤 계기를 통해 마음을 먹고 시작하는 것은 다르다.
내 첫 직장은 삼양사였다. 삼성전자 연구원과 삼양사 경영지원부문 두 곳에 최종 합격했지만 지원할 때부터 이미 삼양사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았다.
이 마음먹기엔 확실한 계기가 있었다.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문과 체질이었던 내게 전공불문으로 선발했던 삼양사는 일종의 탈출구였다. 여기만 붙으면 그동안 울며 겨자 먹기로 했던 공학을 멀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기왕 도전한 거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내자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전공 면접 날에도 집중력을 발휘해서 어려운 전공 질문에도 대학원 진학 상담할 때 교수님과 나눴던 대화를 기억해 내서 대학원 수준의 답을 해 스스로 놀랄 정도였다.
다른 문과 출신 지원자들에 비해 내세울 게 없었지만 임원 면접 전날 상경해서 무턱대고 회사를 찾아가 명함 한 장을 얻었다. 그리고 포토샵으로 미래의 내 명함을 만들어 손바닥보다 큰 사이즈로 코팅 출력해 면접 날 임원들에게 나눠주는 똘끼를 부린 덕분인지 최종 합격했다. HR팀장에 따르면 삼양사 경영지원부문에 입사한 최초의 공대생이었다. 돌이켜보면 마음먹기에서 절반은 합격했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캐나다에 와서 많지는 않지만 여러 곳에 지원했지만 결과가 다 좋지 않았는데 결국 마음먹기 문제였다. 취직이 되지 않아도 플랜 B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여러 개 있었기 때문에 간절함도 부족했고, 특별히 마음먹기를 한 것도 아니었다. 이곳에서 장기적으로 무엇을 할지 마음을 먹게 되면 보다 확실한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
마음먹기가 작심삼일이 되지 않기 위해선 최대한 빨리 행동에 옮겨야 한다. 건너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도 좋고, 본인에게 확실하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작은 것이어도 좋다.
남들은 부러워했던 외국계 직장에서 이직을 마음먹은 계기는 다름 아닌 사장님이었다. 어느 날부터 없는 꼬투리도 찾아서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독일 본사 자료에서 ‘Ecosystem’이라고 표시된 부분을 ‘생태계’로 번역했더니 ‘그냥 번역기 돌렸지? 에코시스템이 무슨 생태계야!’라고 성질을 부리는 모습을 보며 신뢰가 무너졌다. 내 직속 임원은 ‘마크 너를 테스트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라며 위로했지만 마음은 이미 떠났고, 몸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바로 헤드헌터를 통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알아봤다.
독기를 품을 정도였던 터라 내 장점과 성과에 대해 자신 있게 어필한 결과 규모가 더 큰 외국계 기업, 컨설팅회사와의 인터뷰가 바로바로 잡혔다. 사장님의 눈이 틀렸다는 것을 결과로 보여주고 싶었고, 결국 대표와 뜻이 잘 맞았던 데이터 분석 컨설팅회사에 임원으로 이직했다.
마음먹기 직후 바로 행동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마음이 쉽게 고갈되기 때문이다. 마음은 단단히 먹더라도 오래가지 못한다. 상황이 변하면 마음도 바뀐다. 아니 정확히는 약해진다. 그 때문에 작게라도 행동해야 한다.
작년 연말 한국을 방문해서 직장인 멘토로 불리는 신수정 님을 만나 멘토링을 받았었다. 당시 머릿속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 있었지만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멘토링을 통해 구체적으로 조언을 들었다. 그리고 캐나다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추천받은 책을 읽고 앞으로 하려는 일들을 종이에 열심히 정리했다. 하지만 정작 캐나다에 와서는 핑계지만 먹고살기에 바빠 진척이 없었다.
지금 당장 시작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마음먹은 지 반년 넘게 지나서 그런지 몰라도 마음에 있었던 패기와 열정이 사그라들었다. 나중에 협업까지도 대화를 나눴기에 다시 마음먹기를 해야 하는데 한번 식은 열정에 불을 지필 또 다른 동기가 필요한 시기다.
본인 스스로 ‘될 놈’이라고 자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될 놈은 주변 사람들이 알아본다. 여럿이 얘기를 나눠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삼양사에서 인하우스 컨설팅을 할 때 베인앤컴퍼니와 함께 프로젝트팀을 구성했다. 베인앤컴퍼니는 RA(Research Assistant)를 채용했고, 우리도 자체적으로 인턴 한 명을 채용했다. 글로벌 컨설팅펌의 RA는 많은 대학생이 노리는 자리인 반면, 인하우스 컨설팅팀의 인턴 자리는 상대적으로 매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당시 채용했던 인턴은 너무 고맙게도 될 놈이었다. 서른 명이 넘는 동기 중에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는 이들은 한 두 명뿐이지만 그 인턴과는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지금은 유명 패스트푸드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인재로 인정받아 승승장구하고 있다.
당시를 떠올려보면 뭔가 뛰어나거나 천재적인 구석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될 놈으로 인정받은 건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본인 업무를 100% 해냈다. 뭔가 일을 맡기면 그 후로 걱정할 필요가 없던 것이다. 인턴이 하는 일이 별거 아닐 수 있지만, 납기를 반드시 준수하면서도 정확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이 친구는 한 번도 업무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컨설팅 관련 경력이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잡학다식하다 보니 본인이 문제해결 방법을 스스로 찾아서 뚝딱뚝딱 해결했다.
인정받았던 또 하나의 장점은 네트워킹이었다. 컨설팅팀이다 보니 과장이 막내일 정도로 다들 연차가 꽤 있었다. 인턴 혼자 20대였다. 그런데도 본인보다 스무 살 가까이 나이가 많은 직원들에게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던 친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자신감은 업무를 제대로 해낸 데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본인이 현재 하는 일에서 더 나아가 팀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계속해서 물어보고 또 제안했던 것이다.
당시 회사 정책상 인턴의 정규직 채용 시스템이 없던 터라 회사에서 데리고 올 수 없었지만 본인이 원하는 기간만큼 최대한 계약 연장을 해줬다. 회사가 품을 수 없었던 될 놈이었고, 결국엔 ‘될놈될’을 보여줬다.
비슷한 이유로 가끔 주위에 직언을 해주는 동료나 지인이 있다면 자신에 대한 주변 평가를 물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사소한 조언부터 시작해서 본인이 몰랐던 자신의 치명적인 단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될 놈이 되기 위해선 장점도 중요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을 지우는 것도 필요하기에 가끔씩 자기 객관화 작업도 병행하면 좋다.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면 핵심은 본인이 될 놈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이력서를 빽빽하게 채우는 것보다 본인이 될놈될의 적격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효율적이다.
삼양사에서 외국계 회사인 지멘스로 이직할 때 일사천리로 채용 프로세스가 진행됐었다. 내 노력보다는 먼저 연락해 온 헤드헌터가 적극적으로 내가 될 놈이라는 것을 지멘스 측에 어필했다. 당시 지멘스에서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가 특정 사업부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그리는 블루프린트(blueprint, 청사진) 프로젝트였다. 당시 삼양사에서 내가 하고 있던 사업부 영업역량강화 프로젝트와 방법론이 거의 동일해서 적임자라고 할 수 있었다.
사업부를 대상으로 하는 컨설팅 프로젝트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가 사업부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인데, 내 경우 그와 관련한 경험이 풍부했기 때문에 실무 면접, 임원 면접, 대표 면접 모두 초고속으로 진행됐다. 이처럼 유능한 헤드헌터를 만나는 것도 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헤드헌터에게는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안부 인사를 드리고 있다.
맨땅에 헤딩하는 것만큼 힘든 것이 없다. 따라서 어떻게든 본인이 일하고 싶은 회사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얻어야 한다. 방법은 다양하다. 헤드헌터를 통해서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얻는 방법도 추천한다. 또한 블라인드 등 전현직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커뮤니티도 참고하면 좋다.
내가 썼던 방법 중에는 지인을 최대한 동원해서 내가 지원하는 회사 이야기뿐만 아니라 지원 부서와 상사에 대한 이야기도 듣는 게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몇 사람을 건너면 원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는 정도로 사회가 좁다. 내 경우 한 번은 외국계 중장비 회사에서 전략팀장 제의가 온 적이 있었는데, MBA 선배를 통해 그 회사 전략팀이 사람이 모두 나가서 팀빌딩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접었던 적이 있다. 당시 헤드헌터도 이 얘기를 해주지 않았는데 선배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더라면 면접 진행 중에 사실 관계를 들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최대한 회사와 지원 부서에 대한 정보를 얻고, 지금 어떤 스펙의 사람을 찾고 있는 지를 명확히 파악하면 될 놈임을 증명하는 것이 수월해진다. 채용하는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가려운 곳을 당장 긁어줄 사람에게 눈길이 한 번 더 간다. 그 사람에게 일을 맡겼을 때 수월하게 해낼 것 같은 믿음이 생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주도권이 지원자 쪽으로 기운다. 채용 회사 입장에선 다른 회사가 지원자를 먼저 데려갈까 안달하게 되고 서둘러 지원자 요구 조건을 최대한 맞춰 채용하려 한다.
물론 모든 취업과 이직 과정이 이와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을 해보길 권한다. 그것이 본인 성장에도 도움이 되고, 본인이 리더가 되었을 때도 팀을 이끄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될놈될이 유효할까? 유효하다고 본다.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한 인공지능의 경우, 이젠 개발 능력이 아닌 활용 능력이 중요하다. 될 놈의 기본적인 자질이 새로운 것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능력이기 때문에 인공지능 시대에도 이전처럼 여전히 사랑받을 것이다.
원문: Mark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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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의 성공은 ‘갑자기’가 아닌, 10년 간 꾸준히 개발해 온 결과물이다. 김예린 대표는 2016년 국내 최초로 쿨링 강도별 비누를 선보인 뒤, 남성 고객 재구매 데이터를 바탕으로 라인업을 확장해 왔다. 광고 없이 SNS 후기만으로 꾸준히 매출이 상승했으며, ‘남편비누’라는 기억에 남는 이름이 제품력과 결합하며 자사몰과 쿠팡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제품 인기와 함께 카피 논란도 뒤따랐다. 김 대표는 “컨셉과 상세 페이지를 거의 그대로 모방한 사례가 있었지만, 제품력이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한다”며 “즉시 시정 조치를 요청해 해결했다”고 전했다. 그는 “패키지 디자인 역시 동일한 형태로 차용된 경우가 있었지만, 오히려 크렘 디자인의 경쟁력이 증명된 셈”이라고 덧붙였다.
크렘은 제휴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사업 확장에 나선다. YG엔터테인먼트의 블랙핑크, 젝스키스 등과 굿즈 계약을 체결했으며, 글로벌 커피 브랜드 굿즈 제작도 진행했다. 제품 다양화를 위해 섬유용 쿨링 스프레이와 합리적 가격대의 배쓰붐(입욕제) 출시도 준비 중이다.
김 대표는 겨울철 남편비누 활용에 대해 “실내 활동, 운동,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순간적인 열감을 경험하는 겨울철에는 비교적 순한 3% 제품이 인기”라고 밝혔다. 또한 “크렘은 실용성만을 좇지 않는다”며 “일상용품에도 한 끗 차이의 아름다움과 감각을 더해 ‘감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썩은 사과 법칙’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과 상자에 썩은 사과 하나가 있는데 제거하지 않으면 나머지 사과들까지 모두 썩게 된다. 팀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단 한 명의 구성원으로 인해 팀의 분위기가 흐트러지고 성과가 무너질 수 있다.
그렇다면 팀장이 반드시 손절해야 할 팀원 유형은 누구일까? 세 가지 유형을 소개한다.
팀실적이 하도 좋지 않아 연일 고전을 하던 장 팀장이 팀 회의 시간에 아이디어를 모으자고 하니 몇 명이 입을 열었다.
특별 이벤트를 해보면 어떨까요?
그러자 최 차장이 말한다.
그거 한다고 매출이 오르겠어? 해봐서 아는데 힘만 들고 고생하지만 소득은 없어, 괜히 직원들만 고생해.
인플루언서와의 협약을 통해 홍보를 좀 더 강화하면 어떨까요?
요즘 인플루언서 가격이 얼마인 줄 알아? 우리 홍보비로는 괜찮은 인플루언서 잡기도 어렵고, 잡아봐야 잠깐 해주는 것인데 크게 성과는 없어….
뭘 말해도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안되는 이유는 논리적으로 그럴듯하게 제시하지만, 된다는 이유는 말한 적이 없다. 본인만 부정적이면 상관없는데 이 부정적인 분위기는 팀 전체로 퍼지고, 결과적으로 분위기를 망치게 된다.
심리학에 부정성 편향(Negative Bias)이라는 것이 있다. 부정은 긍정보다 힘이 세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10번 받는 것보다 1개의 악플이 더 오래 기억나고, 잊히지 않는다. 한 명의 부정적 인자가 압도적 다수의 긍정적 인자를 이길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팀장은 반드시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
그럼 당신의 대안은 무엇인가요?
정상적인 비판적 사고가 아닌 대안 없는 부정적 피드백만 반복한다면 손절이 필요하다.
팀장이 해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팀의 공정한 기여 관리이다.
어느 날, 임원 대상 팀 프로젝트 발표를 준비하게 되었다. 아이디어 구상부터 자료 수집, PPT 작성까지 대부분의 작업은 김 과장이 도맡아 진행했다. 그런데 마지막 발표자 선정을 앞두고, 이 과장이 자신이 하겠다고 강하게 나섰다. 김 과장은 잠시 당황했지만, 발표 능력 측면에서 이 과장이 낫다고 판단해 흔쾌히 양보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사장님은 자료도 훌륭하고 아이디어도 참신하다며 발표자였던 이 과장을 극찬했다. “고생 많았겠다”며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고, 이 과장은 마치 모든 일을 자신이 한 것처럼 대답했다. 옆에서 음료수를 정리하고 있던 김 과장은 묵묵히 참았지만 속이 상했다.
문제는 이 상황에서 팀장이 정확한 기여 내역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발표 직후 사장님에게 김 과장의 공을 언급할 기회가 있었지만, 팀장은 내막을 알지 못해 지나치고 말았다. 이후 술자리에서 김 과장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팀장은 뒤늦게 미안함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이 과장은 항상 이랬다. 힘들고 보이지 않는 일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반면 팀장이나 임원들 앞에서 돋보일 수 있는 발표·보고·기획 등 눈에 띄는 실적에는 유난히 열정적이다. 협업이 필요하거나 다른 팀원을 배려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시간이 없다”, “바쁘다”며 슬쩍 빠진다.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만 챙기고, 실질적인 공헌에는 소극적인 태도는 팀 내 불균형을 초래한다.
따라서 팀장은 단순히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에서의 기여도와 수고가 정확히 반영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공정하지 않은 보상은 팀원들의 사기를 꺾고, 결국 우수한 인재들이 떠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이 유형은 세 가지 유형 중 가장 위험한 유형이다. 거짓말 자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본인은 거짓말이 문제라는 자각조차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어제 고객과 만나서 합의를 했습니다.
이 대리의 보고를 팀장은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고객과 통화를 해보니 그런 사실은 전혀 없었다. 이 대리를 불러서 다시 확인하자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아… 팀장님, 그걸 합의라고 이해하셨군요. 저는 협의했다는 뜻이었습니다. 완전한 합의는 아니었고요, 가격 문제에 아직 쟁점이 좀 있어서….
이처럼 거짓말을 능청스럽게 반복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는 팀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업무량·마감 기한·성과 등 각종 지표에서 허위 보고를 하거나, 업무 출장을 핑계로 개인 용무를 처리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그 결과, 다른 팀원들은 그의 말이 맞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하며, 이는 귀중한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게 만든다.
팀장은 거짓말이 드러날 때마다 즉각적으로 지적하고, 그것이 잘못된 행동임을 명확히 인식시켜야 한다. 단 한 번이라도 묵인하면, 그는 앞으로도 계속 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이상으로 손절이 필요한 세 가지 유형의 팀원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왜 이들을 “가르쳐서 변화시키라”기 보다 “과감히 손절하라”고 말하는 것일까?
이 세 가지는 유형은 많은 팀장들이 “내가 고치면 바뀔 수 있다”,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고 믿고 시도하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왜냐하면 이는 역량의 문제가 아닌 ‘정직성’이라는 태도와 성격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역량이 부족한 팀원은 팀장이 가르치고, 개선시킬 수 있다. 또한 역량은 특정 영역에 해당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 잘할 수 있는 분야의 업무로 조정을 하면 반전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태도, 특히 성격적 요소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유형 중 하나라도 팀원에게 발견된다면, 무리하게 바꾸려 하지 말고 조직 전체를 위해 과감히 손절하는 것이 옳다.
마음이 아프고, 인간관계에서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그 팀원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다른 팀원들을 생각해 보라. 당신의 우유부단함 때문에 정말 좋은 팀원들이 떠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원문: 장철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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