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나오기 전에 계산은 계산자나 미리 계산을 해둔 계산표를 가지고 하는 것이 보편적이었습니다. 이러한 기구를 이용해서 ‘계산하는 사람’을 컴퓨터라고 불렀죠.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오류가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계산하는 기계, 계산기 발명 시도가 있었습니다.
기계식 계산기가 처음 등장한 것은 1623년 빌헬름 시카르트(Wilhelm Schickard)에 의해서였습니다. 6자리 숫자의 덧셈과 뺄셈을 수행할 수 있는 기계였죠.
이후 1642년에는 파스칼에 의해 기계식 계산기가 개발되었고, 1671년 라이프니츠에 의해 곱셈, 나눗셈까지 가능한 사칙연산 계산기가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단순 계산기가 아닌 본격적인 현대 컴퓨터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것은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였죠.
1821년 찰스 배비지는 천문학자 존 허셜(John Herschel)과 함께 수치 계산표를 검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산표에서 오류를 발견했고, 계속해서 오류가 나타나자 화가 난 배비지는 본인이 직접 증기기관을 이용한 계산 기계를 만들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배비지는 영국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아 증기기관으로 작동하는 계산기를 만들기 시작해 1832년 샘플에 해당하는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배비지는 자동으로 계산하기 위해 곱셈을 덧셈으로 바꿔서 복잡한 계산을 단순하게 만들어주는 계산 방식인 차분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 기계를 차분기관이라고 불렀죠. 하지만 끝내 만들어지지는 못했습니다. 1834년까지 차분기관 제작에 진척이 없어 정부 지원금이 끊겼거든요.
하지만 배비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해 명령어를 입력해 다양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기계의 아이디어를 떠올렸죠. 이 기계는 해석기관이라고 불렸으나, 역시 설계도만 있을 뿐 실제로 제작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해석기관을 이해한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는 만들어지지도 않은 해석기관을 이용해 베르누이 수를 구하는 알고리즘을 작성했는데, 이것이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참고로 완성되지 않은 찰스 배비지의 차분기관은 1991년 런던 과학박물관에서 배비지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 완성합니다.
18세기 중반, 태엽 달린 기계 장치들은 오르골처럼 실린더 위의 돌기나 구멍을 이용해 움직임을 반복했습니다. 이것을 산업 분야에서 처음 사용한 곳은 섬유산업이었죠.
1725년 바실레 부숑(Basile Bouchon)이 천공카드를 이용해 베틀을 제어하는 방법을 발명하고 1805년 조셉 마리 자카르(Joseph Marie Jacquard)가 산업적으로 완성하죠. 자카드의 베틀을 본 나폴레옹과 조세핀은 자카드 베틀에 대한 특허를 부여했고, 그 대가로 자카드는 3,000프랑의 연금과 6년가 베틀마다 로열티를 받았습니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노예제가 폐지되면서 인구가 급속하게 늘었고, 세금을 거두기 위한 인구조사를 빠르게 해야 했죠. 허먼 홀러리스(Herman Hollerith)는 섬유 산업에 쓰이던 천공카드를 도입해 인구조사에서 얻은 결과를 한 사람당 한 장의 카드에 저장하는 방식을 개발했습니다.
홀러리스 천공카드 기계의 가장 큰 혁신은 전기의 사용이었습니다. 홀러리스의 기계는 천공카드에 구멍이 있으면 금속 바늘이 구멍을 통과해 수은에 닿아 전기신호를 전달하는 원리였습니다. 홀러리스는 TMC라는 회사를 설립해 천공카드 기계를 납품하면서 천공카드는 인구통계, 보험, 군수 관리 등에 쓰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TMC는 훗날 IBM이 되죠.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은 독일군의 암호화 장치 에니그마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비밀정보국은 에니그마 해독을 위해 과학자들을 모아 암호해독 전담팀을 만들었죠. 이때 차출되었던 앨런 튜링(Alan Mathison Turing)이 1939년 봄베 컴퓨터를 개발합니다. 봄베 컴퓨터 제작에 관한 영화가 바로 <이미테이션 게임>이죠.
하지만 곧이어 에니그마의 상위 버전인 로렌츠 암호 전신기가 등장하며 봄베보다 더 성능이 좋은 암호해독기가 필요해졌습니다. 그렇게 개발하게 된 것이 콜로서스입니다.
콜로서스는 당시 최신 기술인 진공관을 사용했는데요. 진공관은 쉽게 망가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장치를 끄지 않는 것이었죠. 장치를 끄지 않으면 진공관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거나 내려가 생기는 충격을 피할 수 있었거든요.
그리하여 1943년 1,500여 개의 진공관과 릴레이만으로 완성된 디지털 컴퓨터 콜로서스가 개발됩니다. 콜로서스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해냈죠.
1943년 영국이 콜로서스를 만들었을 때, 미국은 대공 미사일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컴퓨팅 장치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벨 연구소에서 담당했던 이 프로젝트에는 레이더와 같은 다른 장치로부터 직접 데이터를 받기 위해 전기회로를 사용한 컴퓨팅 기계를 개발하죠. 2년에 걸쳐 제작된 이 기계가 바로 에니악으로, 농구장만 한 크기를 자랑했습니다. 진공관은 총 17,468개가 사용되었는데 역시 전원을 끄지 않는 것으로 진공관 고장을 예방했습니다.
에니악이 하나의 문제를 풀고 난 다음 다른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복잡한 전선을 사람들이 일일이 다시 연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푸는 데는 금방이었으나 전선을 연결하는 작업에는 며칠씩 걸렸죠.
이러한 에니악을 본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은 데이터뿐만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도 코드로 만들어 컴퓨터에 입력해야 한다는 ‘내장형 프로그램 개념’을 떠올립니다. 이 프로그램 내장 방식은 오늘날 컴퓨터의 기원이 됩니다.
폰 노이만은 1945년 에니악 개발팀과 논의한 끝에 새로운 <에드박 보고서 1차 초안> 보고서를 제작하고, 이 방식을 바탕으로 1951년 에드삭이 개발됩니다.
사실 컴퓨터에 대한 아이디어는 봄브와 콜로서스, 에니악이 등장하기 전부터 있었습니다. 1936년 앨런 튜링의 <계산 가능한 수에 관하여, 수리 명제 자동생성 문제에 응용>이라는 논문에 처음 등장했죠.
이 논문은 수학자 힐베르트(David Hilbert)의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 썼던 것이었는데요. 힐베르트의 생각은 지금까지 수학자들이 어떠한 문제를 증명하기 위해 해왔던 과정은 몇 개의 추론 규칙을 반복해서 적용하는 것이 전부이며, 이런 규칙들을 찾아서 자동으로 추론해 주는 기계를 만들면 수학자들이 더 이상 고생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죠.
이에 앨런 튜링이 ‘만능기계’를 제시해 이 만능기계가 못 푸는 문제가 있음을 보임으로서 힐베르트가 틀렸음을 증명합니다. 이 만능기계의 원리가 폰 노이만의 프로그램 내장 방식의 유래가 됩니다.
튜링은 세계대전 동안 암호해독기를 만드느라 범용 컴퓨터의 설계는 전쟁 이후에 시작했습니다. 이 컴퓨터는 자동 컴퓨팅 엔진(ACE, Automatic Computer Engine)이라고 불렸으며 1950년에 첫 시험 모델이 완성되었죠.
참고로 튜링의 에이스는 폰 노이만의 에드박과 아주 다른 방식의 기계였습니다. 에드박은 에드박의 논리 구조는 계산을 빠르게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에이스는 다양한 문제에 사용할 수 있게 논리 구조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죠.
전쟁 이후에는 컴퓨터가 민간에 쓰이기 시작합니다. 1947년 당시 영국에서 큰 회사들 중 하나였던 라이언스(J. Lyons & Co. Ltd)는 관리부서 업무를 자동화하기 위해 컴퓨터 전문가들을 수소문했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만든 컴퓨터를 사업용으로 쓰기에는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라이언스는 직접 컴퓨터를 제작하기로 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컴퓨터가 레오(LEO, Lyons Electronic Office)이죠. 레오는 기존 컴퓨터보다 기업에서 사용하기에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포드 같은 기업이나 기상청에서 채택했습니다. 미국에서는 1946년 존 모클리(John William Mauchly)와 존 에커트(John Presper Eckert Jr)가 컴퓨터 회사를 세워 유니박을 만듭니다. 유니박을 처음 구매한 곳은 미국 통계국이었죠.
이후 기업용 컴퓨터가 점차 많은 곳에서 쓰이게 되는데, 여기에는 트랜지스터가 등장한 영향이 컸습니다. 트랜지스터를 이용하면 진공관을 이용한 컴퓨터 기계보다 훨씬 작고, 전기도 조금 들고 저렴했기 때문에 기업들도 컴퓨터를 사는데 부담이 적어진 거죠.
트렌지스터는 1947년 벨 연구소의 윌리엄 쇼틀리(William Bradford Shockley)와 그의 연구소 동료였던 존 바딘(John Bardeen), 월터 브래튼(Walter Brattain)과 함께 개발한 것이었죠. 이후 쇼클리는 벨 연구소를 떠나 1955년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를 설립합니다. 하지만 쇼클리의 연구소는 새로운 연구 결과물을 내지 못했고 자기 고집대로만 연구소를 운영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연구소를 떠났습니다.
1957년 쇼클리의 연구소를 떠난 8명의 연구원은 페어차일드 반도체라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해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곳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또다시 여러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회사가 바로 인텔이죠.
IBM는 컴퓨터의 표준을 만들어 컴퓨터가 널리 쓰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기존 컴퓨터는 각 컴퓨터를 위해 특별히 개발된 소프트웨어만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한 회사에서 만든 컴퓨터끼리도 소프트웨어를 공유할 수 없었죠.
1964년, IBM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50억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해 모든 소프트웨어가 잘 동작하는 System/360을 개발합니다. System/360으로 IBM의 컴퓨팅 분야 매출은 2배가 증가했고, 이를 통해 여러 업체가 만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컴퓨터 종류에 상관없이 작동하는 개방형 표준이 만들어집니다.
세계 최초의 가정용 컴퓨터는 1974년에 등장한 알테어 8800Altair 8800로 1년 만에 5,000여 대가 넘게 팔렸죠. 알테어 8800은 오늘날로 치면 본체만 있는 셈으로 확장 장치를 이용하던가, 전면 패널의 토글스위치와 LED만을 이용해 컴퓨터를 사용해야 했는데, 스위치를 이용해 기계어 명령어를 메모리에 주입하고 프로그램을 실행 후 결과를 LED로 표시하는 식이었죠. 즉 컴퓨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는 기계였습니다.
이처럼 한계가 많은 제품이었지만 컴퓨터의 역사에는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빌 게이츠(Bill Gates)와 폴 앨런(Paul Gardner Allen)은 알테어 8800을 보고 이를 위한 프로그램인 알테어 BASIC을 납품하며 마이크로 소프트를 설립했고, 스티브 잡스(Steven Paul Jobs)와 스티브 워즈니악(Steve Gary Woz Wozniak)은 더 나은 PC를 만들겠다며 애플을 창립하죠.
Figure.13 SAGE 콘솔을 사용하는 모습 ⓒcomputerhistory.org
일반 사람들이 컴퓨터를 많이 쓰이게 된 계기는 사용하기 편리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가 등장한 이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초의 GUI는 1958년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에서 사용했던 SAGE(Semi-Automatic Ground Environment)라는 방공망 관제용의 전산 시스템의 제어 콘솔이었습니다. SAGE 제어 콘솔에는 레이더 스크린이 있었는데, 라이트펜으로 화면을 찍으면 아군기인지 적기인지 알려주는 기능이 있었죠. 다만 군사 기밀이라 민간용으로 쓰이지는 않았습니다.
1973년에는 GUI 운영체제를 탑재한 최초의 컴퓨터 제록스 알토가 등장합니다. 다만 제록스에서 상용화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어 연구소 내에서만 사용하고 있었는데요. 이를 본 애플은 제록스에 100만 달러어치의 애플 주식을 주고 기술 자료와 제품을 개발할 권리를 얻습니다.
그렇게 해서 애플이 내놓은 제품이 1983년 애플 리사 LISA, 1984년 매킨토시 128K이고, 매킨토시 128K의 성공으로 GUI가 대중화됩니다.
매킨토시 128K의 성공으로 80년대 개인용 컴퓨터 시장은 애플이 점령했습니다. 그때까지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지 않은 IBM은 당시 연구원이었던 돈 에스트리지(Philip Donald Estridge)에게 1년 만에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라는 미션을 주었습니다.
돈 에스트리지는 가격을 낮추기 위해 IBM에서 모든 부품을 제작하는 것이 아닌, 다른 회사에서 만든 기성품을 가져다 썼습니다. 그리고 다른 회사에서 주변 기기나 호환 기종을 만들 수 있도록 아키텍처를 개방하는 정책을 결정하죠. 그러니까 오늘날 조립PC의 시초인 셈이었죠.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IBM PC 5150은 사무용 컴퓨터로 큰 인기를 얻으며 성공합니다. IBM PC 5150의 성공으로 PC는 IBM의 모델명에서 개인용 컴퓨터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죠.
IBM PC 5150의 아키텍처 개방 정책은 컴퓨터 업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제조하는 회사가 많이 늘어나 컴퓨터 산업 전체가 커지는 계기가 됩니다. 특히 인텔과 마이크로소프가 가장 큰 혜택을 얻었죠. 그리고 현재까지 MS OS의 IBM PC 호환 기종과 Mac OS의 매킨토시로 시장이 양분되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원문: 사소한 것들의 역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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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뜨거운 여름을 맞이할 우리에게 기후변화는 생존과 직결된 중대한 문제입니다. 우리의 일상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미래 세대의 삶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텐데요. 지난 8월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에서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이 부족하면 국민의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결정이 나오면서, 지금의 정책이 미래 세대의 삶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법적으로 확인되었어요. 미래 세대에 대한 현세대의 책임이 다시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기후 위기의 주요 원인이 되는 기업에게도 대응할 의무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기업의 기후 위기 대응의 일환으로, 세계 곳곳에서는 기업이 얼마나 많이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지 공개하는 ‘탄소 배출량 정보 공시’를 의무화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움직임에 기업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오늘은 지난 8월 발생한 기후 소송 이슈와 함께, 기업의 리스크 대응 방안으로써 시각화 대시보드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 기후 위기 관련 지표 중 보다 구체적인 예로 ‘탄소 배출량’을 시각화한 대시보드 사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기후 위기
지난 8월, 헌법재판소에서 역사적인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아시아 최초로 기후 소송의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왔는데요. 지금의 탄소중립기본법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아서,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소송의 요지입니다.
탄소중립기본법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만들어진 법으로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요. 해당 법에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로 감축해야 한다는 목표가 규정되어 있지만, 그 이후의 목표가 없다는 것이 한계점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2050년 탄소 중립의 목표 시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장치가 없으므로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했다’고 보고, 소송 청구인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 탄소 중립 :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 증가를 막기 위해 인간 활동에 의한 배출량을 감소시키고 흡수량을 증대하여 순 배출량이 ‘0’이 되는 것, ‘넷제로(Net-Zero)’라고도 부름. (출처: 탄소중립 정책포털)
소송에 참여한 대리인에 따르면, 이번 결정이 ‘기후 위기 대응에 관한 국가의 헌법적 보호 의무를 처음으로 인정’한 데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요. 미흡한 기후 위기 정책이 미래 세대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고, 정부가 국민에 대한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판결은 미래 세대를 위한 현세대의 책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더욱 활발하게 만들었는데요. 개인을 비롯한 정부, 국회, 기업 등 다양한 주체들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책무를 다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어요.
2) 기업의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Scope 3 공시
특히 기업의 경우 경제 활동에 관한 사회적 책임 이행 차원으로, 기업을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정보 공개를 요구받고 있는데요. 기업의 탄소 배출량을 세 가지로 나누어 산정하는 ‘Scope 1, 2, 3’이 대표적인 측정 범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중 Scope 3은 최근 국제사회에서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업에게 의무적으로 정보를 공개하도록 요구되는 범주입니다. Scope 3은 기업이 직접 소유하거나 관리하지 않아도, 공급망 안에 포함되는 모든 시설과 협력 업체 등에서 배출되는 탄소량을 전부 포괄하는 개념인데요. 협력사에서 가동하는 공장부터 직원이 출장을 가는 길에 타는 비행기, 소비자가 기업 제품을 사용하고 폐기하는 데까지 기업 공급망 전체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해당합니다.
기업이 운영하는 공장이나 제품 운송 과정에서 직접 배출하는 탄소량만을 의미하는 Scope 1이나 기업이 외부에서 구매한 에너지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만을 의미하는 Scope 2보다 훨씬 큰 범위의 탄소 배출량을 의미하죠!
EU 등 주요국에서 Scope 3에 대한 공시 기준을 마련하고 시행을 준비하기 시작함에 따라 국내에서도 공시 의무화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4월 ‘2026년 이후 Scope 3 의무 도입 계획’의 초안이 발표된 만큼, 우리나라 기업들도 공급망의 탄소 배출량 측정 및 관리 역량 보유가 관건이 되었습니다.
기업들은 공급망 전체의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취합하고 분석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을 텐데요. 이어서 탄소 배출량 데이터 관리를 하고자 하는 기업에게 유용할 다양한 탄소 배출량 시각화 차트 사례를 알아보겠습니다.
탄소 배출량 데이터를 관리하기 위해 다양한 시각화 방법을 활용할 수 있지만, 효과적으로 시각화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떤 데이터를 어떤 목적으로 보고 싶은지를 정확히 정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데이터를 어떤 목적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서 활용할 수 있는 시각화 유형이 달라지기 때문인데요. 탄소 배출량 데이터로 도출할 수 있는 세 가지 주제의 인사이트마다 적합한 시각화 유형을 살펴보겠습니다!
1) 연도별 탄소 배출량의 변화를 확인하고 싶을 때
가장 먼저 기업의 입장에서 모니터링해야 하는 데이터 인사이트는 무엇일까요? 바로 시계열에 따른 탄소 배출량의 변화입니다. 기업에서 배출하는 탄소의 양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항목인데요. 이에 적합한 시각화 사례를 알아보겠습니다!
위 시각화는 2016년부터 2022년까지의 연도별 탄소 배출량을 나타낸 누적 막대 차트입니다. 막대가 시간 순서대로 정렬되어서, 막대 높이의 변화를 통해 지난 시간 동안의 데이터 변화 추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사례를 보면 2016년부터 2021년까지는 탄소 배출량이 2.2~2.5M 수준으로 유지되다가, 2022년에 들어 전체 배출량이 약 6M로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이 눈에 띕니다.
사례에서 사용한 누적 막대 차트는 항목별 데이터 조각을 쌓아 데이터를 표현하는 시각화 유형입니다. 막대 전체 길이를 기준으로 데이터를 비교할 수 있고, 막대별 조각으로 세부 항목별 데이터를 비교할 수도 있어요. 위 차트에서는 탄소가 배출된 출처별로 막대 조각을 분류하고, 각기 다른 색상으로 나타냈습니다. 범례를 보면, 출처는 고정 오염원(Stationary Sources), 차량(Vehicles), 스코프 3(Scope 3), 기타로 분류됩니다.
범례를 바탕으로 차트를 해석해 보면, 2016년부터 2021년까지는 Scope 3으로 배출된 양이 전부였으나 2022년의 경우 탄소 배출 출처가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22년 막대의 경우 고정 자산과 기타 출처로부터 배출된 탄소량이 각각 3M, 2.8M로 전체 배출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Scope 3으로 배출된 양은 크게 감소했습니다.
따라서 2022년에는 전체 탄소 배출량이 급격하게 늘었지만, Scope 3으로 배출된 양은 대폭 줄어들었다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2) 특정 기간과 비교하여 탄소 배출량의 차이를 확인하고 싶을 때
앞서 데이터를 시계열 순서에 따라 확인했다면, 특정 기간과 1:1로 비교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시각화 방법도 알아보겠습니다. 매년 탄소 배출량 감소에 더 큰 노력을 쏟는 기업 입장에서는 전년도에 비해서 얼마나,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그 효과를 직관적으로 비교해보고 싶을텐데요!
위 시각화는 Scope 3 탄소 배출량을 카테고리별로 확인할 수 있는 도넛 차트입니다. 선택 기간(Selected Period)과 비교 기간(Comparison Period)을 지정해서 카테고리별 탄소 배출량 비중과 값을 대조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인데요. 두 도넛 차트를 동시에 확인함으로써, 시차를 두고 카테고리별 탄소 배출량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위 사례에서는 선택 기간(왼쪽 차트)을 2022년, 비교 기간(오른쪽 차트)을 2021년으로 조회해 보았는데요. 각 차트 중앙의 텍스트를 비교해 볼 때 Scope 3 배출량이 2.4M에서 195k로 대폭 감소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차트에서는 투자(Investments)와 구매한 상품 및 서비스(Purchased Goods and Services)라는 두 가지 카테고리를 각각 연두색과 청록색 조각으로 표현했는데요. 조각의 면적을 서로 비교하면, 전체 데이터에서 각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선택 기간(왼쪽 차트)의 경우 청록색 조각의 면적이 연두색 조각보다 큰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비교 기간(오른쪽 차트)의 경우 청록색, 연두색 조각의 면적이 동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2022년 투자로 인한 탄소 배출량의 비중이 높아진 것 역시 알 수 있습니다.
3) 공급처별 배출량을 비교하고 싶을 때
앞서 언급했듯이 Scope 3 범위는 기업이 직접 소유하거나 관리하지 않아도, 공급망 안에 포함되는 모든 시설과 협력업체 등에서 배출되는 탄소량을 전부 포괄하는데요! 따라서 탄소 배출량을 감축하기 위해, 기업은 공급망 내 탄소를 많이 발생시키는 공급처가 어디인지 검토하여 협력 관계를 관리해야 합니다. 이때 공급처별 탄소 배출량을 나타낸 위 막대 차트를 참고할 수 있는데요. 사례를 보면 왼쪽부터 순서대로 선택 기간의 탄소 배출량, 비교 기간의 탄소 배출량, 그리고 이 두 기간 사이의 변화율을 나타내는 가로형 막대 차트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차트의 Y축에는 공급망에 속한 공급처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두 번째 행에 위치한 ‘Glasgow Catering’ 기업의 탄소 배출량을 살펴볼까요? 2021년인 두 번째 차트(비교 기간)에서는 배출량이 470이었다가, 2022년 첫 번째 차트(선택 기간)에서는 88로 줄어듭니다. 따라서 세 번째의 보라색 막대 차트로 해당 기업의 배출량 변화율은 -81.28%인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만약 기업이 공급망 내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렇게 각 공급처의 배출량과 그 변화율을 비교해 보고, 탄소 배출량을 줄여나가고 있는 업체와 협력을 강화하고, 탄소 배출량 변화가 미미한 공급처는 더욱 직접적인 관리 방안을 실행하는 등의 액션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 시각화 사례의 아쉬운 점 한 가지는 첫 번째 차트(선택 기간)와 두 번째 차트(비교 기간)의 X축 범위가 서로 다르다는 점인데요. 각 차트 안에서 공급처끼리의 배출량을 비교하기엔 용이하지만, 선택 기간과 비교 기간의 배출량을 막대의 길이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어요. X축 범위를 동일하게 조정하면 두 기간의 배출량 차이를 막대 길이만 가지고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업 차원의 기후 위기 대응 책임을 묻는 ‘공시 의무화’ 이슈와 함께, 공급망의 탄소 배출량 관리를 위한 시각화 사례를 살펴봤습니다. 이번 글에서 살펴본 다양한 시각화 차트를 한 화면에 모아서 배치하면 아래와 같은 대시보드로 나타낼 수도 있는데요.
하나의 대시보드에 여러 차트를 배치하여 종합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새로운 인사이트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탄소 배출량 연간 추이 변화에 영향을 준 세부 카테고리는 무엇인지, 공급처는 어디인지를 함께 확인해서, 공급망 내 탄소 배출량 관리 방안을 보다 종합적으로 세울 수 있습니다.
사실, 기업 입장에서 공급망 전체의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고 관리하는 건 꽤나 어려운 일입니다. 데이터를 측정하고 수집하는 데 비용이 많이 발생하기도 하고, 공급망의 어느 지점까지 데이터를 측정하고 수집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와 결정도 필요하죠. 공급망에는 여러 국가에 위치한 업체와 시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징후를 체감하고 있듯이 기후 위기는 모든 주체가 참여해야 하는 시급한 사안입니다. 이러한 ‘기후 리스크’에 대처하기 위해선, 효율적인 데이터 관리와 이에 기반한 의사결정이 필요한데요. 앞서 살펴본 Scope 3 대시보드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기후 데이터를 데이터 시각화로 나타내면 기업이 기후 위기에 얼마나 잘 대응하고 있는지를 가시화할 수 있습니다. 기업의 효과적인 기후 리스크 관리를 위해 시각화를 도입해 보면 어떨까요?
원문: NEWS JE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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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만 아는 달인의 파스타 맛집부터 르 꼬드동 블루 출신의 셰프가 만드는 정통 파스타, 100% 국내산 팥으로 만드는 팥칼국수까지! 부평 구석구석 자리한 맛집 발굴을 위해 매년 개최되는 경연 대회에서 선발된 부평의 숨은 맛집 5곳을 소개한다.
‘생활의 달인’에서 파스타의 달인으로 출연한 실력의 사장님이 운영하는 부평 ‘에픽’. 에픽의 대표 음식인 ‘누룽지 마레크레마’ 라는 파스타 메뉴로 맛자랑 경연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해산물 크림 파스타인 ‘누룽지 마레크레마’는 느끼하지 않으면서 부드럽고 고소하며 살짝 매콤한 맛이 특징이다.
싱싱한 해산물과 매콤하면서 부드러운 크림소스가 잘 어울리는 누룽지 크림 파스타는 파스타 밑에 누룽지가 깔려있어 면을 다 먹은 후 누룽지를 리조또처럼 먹을 수 있다.
주택가 골목에 꽁꽁 숨어있는 맛집 ‘더히든키친’. 세계 3대 요리학교인 르 꼬르동 블루 출신의 미국인 오너 쉐프가 운영하는 홈메이드 생면 파스타 전문점이다. 모든 요리가 생면으로 요리되며 반죽부터 직접 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퓨전 파스타보다는 정통 파스타만을 추구하는 셰프의 철학으로 베이컨을 제외한 모든 재료는 전부 수제품이다.
대표 메뉴인 새우 바질 페스토 파스타를 출품해 좋은 평을 받았다. 겨울에는 생바질이 없어 판매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한다. 직접 만든 페스토와 구운 통새우가 토핑으로 올라가는 파스타는 새로운 식감과 신선한 재료로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맛을 볼 수 있다.
21년 부평구 맛자랑 경연 대회에서 녹두삼계탕으로 대상을 차지한 ‘1982 삼계정’. 무항생제로 사육한 국내산 웅추(40~50일 된 영계 수컷)로 조리한 삼계탕을 판매한다. 웅추는 육질이 쫄깃하고 기름기가 적어 콜레스테롤이 적은 닭으로 맛이 담백하다. 김치를 포함한 모든 반찬은 국산 식재료를 사용해서 신선함까지 겸비했다.
작은 녹두 누룽지가 올라가 있는 녹두삼계탕은 녹두의 고소함이 가득한 맛으로 16가지 곡물과 한방재료로 영양까지 만점이다. 진한 국물에 부드러운 닭고기까지 한 그릇 먹으면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부추를 첨가한 웰빙 면으로 요리하는 ‘들내음들깨칼국수’. 면과 수제비, 팥, 김치, 만두까지 모두 수제로 직접 만들어 판매한다. 칼국수가 나오기 전에 보리밥에 열무김치를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비벼 먹으면 입맛을 돋우는 애피타이저로 훌륭하다. 부추를 넣은 쫄깃한 면에 깔끔하고 시원한 들깨 국물이 들어간 들깨칼국수는 담백하면서 고소하다.
맛자랑 경연 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팥칼국수는 100% 국내산 팥만을 선별해 맷돌로 곱게 갈아 만들어 진한 팥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추억을 소환하는 우리 동네 경양식집 ‘샐돈키친’. 추억의 팝송이 흐르고 소품 하나하나가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경양식집으로 가격이 저렴하면서 맛도 일품이다. 제주산 냉장 안심만을 사용하여 정제된 깨끗한 기름에 튀기는 제주 통안심 커틀렛이 대표 메뉴로 제주 통안심 커틀렛과 리얼 치즈 카츠가 셋트로 된 커플카츠로 맛자랑 경연 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튀김은 바삭하고 속은 연하고 부드러운 고기로 꽉 차 있는 통안심 커틀렛은 제대로 된 겉바속촉의 진수를 보여준다.
원문: 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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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는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금융 루틴을 찾는 것이 ‘행운의’ 큰 결정 하나를 내리는 것만큼이나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억만장자 투자자인 워런 버핏에게 물어보세요. 그는 놀랍도록 단순하면서도 집중된 일상 루틴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Finty.com 기사에서는 그가 깨어 있는 시간부터 잠들 때까지 어떤 일을 하는지, 그리고 그의 일상 루틴이 그의 성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루고 있습니다.
버핏은 매일 아침 일어나서 코카콜라 한 캔을 마신 후, 근처 맥도날드에서 아침 식사를 합니다. 2017년 HBO 다큐멘터리 〈워런 버핏이 된다는 것 (Becoming Warren Buffett)〉에서 그는 부유하다고 느낄 때는 베이컨, 달걀, 치즈 비스킷을 사 먹는다고 했으며, 당시 가격은 3.17달러였습니다.
버핏은 자신의 일상을 촬영하는 촬영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아침 시장이 하락했어요. 저는 3.17달러 대신 2.95달러짜리를 선택하겠어요.
그의 순자산이 1,462억 달러인 상황에서 22센트를 아끼는 것이 필요하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버핏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합니다. 그는 겉보기에 작은 금융 결정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65년을 상상해 보세요.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했고, 그해 주가가 19달러였다고 가정합시다. 매일 25센트를 76일 동안 저축한 후, 그 19달러를 투자하는 겁니다. 2023년 휴가 시즌으로 넘어오면, 보유 중인 그 한 주의 주식은 가치가 거의 4,400,000% 증가했습니다. 76일 동안 하루 25센트 저축은 지금 833,121달러의 가치가 됩니다.
버핏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 주로 투자 관련 자료를 읽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는 기업 재무 문서, 투자자 보고서, 산업 출판물 등을 활용해 투자를 연구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투자를 조사할 때, 버핏은 해당 기업의 이야기를 깊이 파고듭니다. 가능한 한 많은 역사를 읽고, 기업의 발전과 재무 상태를 추적하며, 성장 전략을 분석합니다.
투자 대상에 대한 이해는 버핏의 금융 전략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는 1996년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투자자에게 필요한 것은 선택한 기업들을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여기서 ‘선택한’이라는 단어에 주목하세요. 모든 기업에 대해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또는 많은 기업에 대해 알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의 능력 범위 내에서 기업을 평가할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그 범위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지만, 그 한계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기업이 하는 일을 이해하면 연구가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 됩니다. 기업의 재무 상태를 해석하고, 기업이 왜 그렇게 성과를 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전략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그것이 유망한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박사 수준의 전문 지식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이해는 필수적입니다.
버핏은 항상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시해 왔습니다. 그는 매일 저녁 5시에서 6시 사이에 집에 도착하는데, 이는 보통 맥도날드 드라이브스루를 다시 이용한 후입니다. 이 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버핏은 다른 사람들이 그의 경계선을 존중하지 않을 때 좌절감을 느낀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제시간에 퇴근하는 것이 버핏의 성공 비결 중 하나일 수는 없지만, 균형 잡힌 생활은 그가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됩니다. 개인 시간을 갖는 것은 스트레스를 줄여주며, 이는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오후 4시 또는 5시에 업무를 마감함으로써, 버핏은 뇌를 재충전하고 다음 날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준비를 합니다.
일과를 벗어난 저녁 시간을 즐긴 후, 버핏은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고, 30분간 독서를 하며, 10시 45분에 불을 끕니다. 그의 단순한 라이프스타일은 전설적인 투자자로서의 그의 위상과는 다소 상반될 수 있지만, 그것이 바로 효과적인 것입니다.
원문: 피우스의 책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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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시작은 ’간단하게 한잔하자’지만 현실은 먹다 보면 하도 많이 먹어서 웬만한 고깃집만큼 가격이 나온다. (꼬치구이 집에서 식사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싶었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늘 다찌석에 앉아 숯불로 꼬치 굽는 걸 구경하면서 도란도란 수다를 떠는 게 일주일의 완벽한 마침표다.
꼬치 굽는 직원(혹은 알바)은 일본 스포츠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이글이글한 눈으로 꼬치를 굽는다.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처럼 짧은 머리에 빠른 손으로 숯불 위 꼬치를 지휘하듯 현란한 손놀림으로 뒤집고, 옮기고, 가위로 탄 곳을 떼 낸다. 중간중간 소스가 담긴 항아리에 꼬치를 통째로 넣다 빼서 양념 옷을 입히며 맛을 더한다.
그가 꼬치 굽는 모습은 숯불 위에서 손으로 탭댄스를 추는 것처럼 잔 동작 없이 빠르고 간결하다. 쉴 새 없이 꼬치를 뒤집으면서도 여유가 느껴질 정도니 일정 수준 이상의 수련을 마친 숙련자가 분명했다. 기름과 소스가 떨어져 연기가 직원의 몸을 휘감을 때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노동’을 끝내고 피로에 찌든 몸을 맥주로 씻어내기 위해 꼬치구이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숯불대 앞에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꼬치 굽는 보급형 강백호 직원(혹은 알바)보다 느지막이 출근하며, 양손 가득 사 온 커피를 직원들에게 나눠주던 매니저(혹은 사장)가 꼬치를 굽고 있었다. 보급형 강백호 직원은 휴무일인가? 아니면 퇴직한 건가? 이유가 궁금했지만, 조용히 입을 닫고 메뉴판부터 탐독했다.
메뉴를 고르는데 기본 안주인 양배추가 담긴 접시를 놓는 알바생의 얼굴을 흘깃 봤는데, 신선하다. 꼬치구이를 제외한 기본 세팅, 술, 주방 음식 서빙을 담당하던 문신 많은 알바생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검은색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쓴 하얀 얼굴의 20대 초반 어린 알바생이 일을 배우고 있었다. 크고 작은 손님의 요구를 혼자 판단할 수 없어 수없이 매니저에게 물어보고, 엉뚱한 메뉴를 주문서에 넣는 실수를 했다. 뭘 해야 할지 몰라 잔뜩 긴장한 초식동물의 자태로 매장 보초를 서고 있었다.
같이 간 사람과 수다를 떨면서도 사라진 사람과 새로 온 사람의 동작을 유심히 살폈다. 숙련자와 초보의 차이가 느껴졌다. 숙련자는 최소한의 동작으로 최대의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불필요한 동작을 하느라 에너지를 허튼 곳에 흘려버리지 않기 위해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반면 초보자는 부단하게 움직이는데 손에 쥐는 건 얼마 없었다. 손님이 말한 소주 브랜드를 잘못 알아듣고 다른 브랜드 소주를 가져다줘서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해야 했다. 또 처음 탄산음료를 낼 때 얼음 컵을 같이 서빙했으면 됐을 일을 탄산 캔만 서빙한 후 다시 빈 컵 그리고 또 얼음을 채워 오는 헛수고를 했다.
자기 머리에 꿀밤을 콩 때리며 자책하는 알바생의 모습에 손님도 사장도 이렇다 저렇다 말을 더하지 않았다. 알바생은 일이 서툴러도 질책보다 침묵이 더 무섭다는 걸 아는 사람이었다.
돌이켜 보면 나도 그랬다. 초보 시절에는 뭐가 맞는지 몰라 수없이 선배들에게 묻고, 30분이면 끝낼 일을 종일 붙들고 있곤 했다. 마음이 앞서 괜히 움직였다가 두 번 세 번 일을 하는 건 다반사였다. 시간이 지나 일이 손에 익으면서 잔 동작이 줄었다. 점점 타율이 높아졌다. 헛스윙이 줄고, 안타를 넘어 홈런이 잦아졌다는 건 숙련자 반열에 올랐다는 뜻이다. 하루아침에 숙련자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초보 시절을 잘 견뎌야 숙련자가 될 수 있다. 못남, 찌질함, 무능을 견뎌내는 자만이 숙련자의 여유를 누릴 수 있다.
남들은 쉽게 해내는 것 같은 일을 몇 날 며칠 끌어안고 있느라 자괴감에 빠질 때 첫날을 떠올린다. 입학 첫날, 출근 첫날, 요가 첫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첫날 등등 모든 첫날을 돌이켜 보면 뭐든 지금이 낫다. 그만두지 않는 한 첫날보다 후퇴할 일이 없다.
어른이란 ‘첫날의 짜침’을 견뎌내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성인이면 뭐든 척척 해낼 거 같지만 현실은 여전히 처음 하는 일은 헛발질이 당연하다. 포기하는 대신 ‘으른’이니까 수준이 모자라거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물을 안고도 첫날이니까,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어 ‘라는 말로 자괴감이란 수렁에 빠진 나를 끄집어내야 한다.
원문: 호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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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데이션 모델과 그 내부 작동 방식과 학습 과정, 그리고 실제 적용 사례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GPT나 BERT와 같은 트랜스포머 아키텍처 기반 모델과 같은 파운데이션 모델은 다양한 데이터 세트에 대한 광범위한 사전 학습과 특정 작업에 대한 파인튜닝을 통해 작동됩니다. 다음은 이러한 모델이 어떻게 작동되는지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전 훈련(Pre-Training)
파인튜닝(Fine-Tuning)
배포(Deployment)
파운데이션 모델은 아키텍처, 훈련 목표와 애플리케이션이 매우 다양하며, 각 모델은 학습과 데이터와의 상호 작용의 다양한 측면을 활용하도록 맞춤화되어 있습니다. 다음은 다양한 유형의 파운데이션 모델에 대한 자세한 설명입니다.
자동 회귀 모델(Autoregressive Model)
GPT 시리즈(GPT-2, GPT-3, GPT-4)와 XLNet과 같은 자동 회귀 모델은 이전의 모든 단어가 주어진 시퀀스에서 다음 단어를 예측하는 훈련 방식을 사용합니다. 이 훈련 방법을 통해 이러한 모델은 일관성 있고 맥락에 맞는 텍스트를 생성할 수 있으며, 이는 특히 창의적인 글쓰기, 챗봇과 개인화된 고객 서비스 상호 작용에 유용합니다.
오토인코딩 모델(Autoencoding Models)
BERT와 RoBERTa를 포함한 오토인코딩 모델은 일반적으로 훈련 중에 모델에서 임의의 토큰을 숨기는 마스크드 언어 모델링(Masked Language Modeling)이라는 기술을 사용하여 먼저 입력을 손상시켜 입력을 이해하고 재구성하도록 훈련합니다. 그런 다음 모델은 문맥만을 기반으로 누락된 단어를 예측하는 방법을 학습합니다. 이러한 능력은 언어 구조를 이해하고 텍스트 분류, 개체 인식, 질문 답변과 같은 애플리케이션을 이해하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인코더-디코더 모델(Encoder-Decoder Models)
T5 (Text-to-Text Transfer Transformer) 및 BART와 같은 인코더-디코더 모델은 입력 텍스트를 출력 텍스트로 변환할 수 있는 다목적 툴입니다. 이러한 모델은 입력 시퀀스를 잠재 공간으로 인코딩한 다음 출력 시퀀스로 디코딩하는 방법을 학습하여 요약, 번역, 텍스트 수정과 같은 복잡한 작업을 처리하는 데 특히 능숙합니다. 이러한 학습에는 다양한 텍스트 to 텍스트 변환 작업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러 도메인에 걸쳐 폭넓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멀티모달 모델(Multimodal Models)
CLIP(OpenAI의)와 DALL-E와 같은 멀티모달 모델은 텍스트와 이미지 등 다양한 데이터 유형에 걸쳐 있는 콘텐츠를 처리하고 생성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러한 모델은 멀티모달 콘텐츠를 이해하고 생성함으로써 이미지 캡션, 텍스트 기반 이미지 검색, 텍스트 설명에서 이미지 생성 등 이미지와 텍스트 설명 간의 관계를 해석하는 작업에 매우 유용하게 활용됩니다.
검색 증강 모델(Retrieval-Augmented Models)
검색 증강 모델(예: RETRO (Retrieval-Enhanced Transformer))은 외부 지식 검색 프로세스를 통합하여 기존 언어 모델의 기능을 향상시키게 됩니다. 이 접근 방식을 사용하면 예측 단계에서 모델이 대규모 데이터베이스나 말뭉치에서 관련 데이터를 가져와 더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정확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이 모델은 특히 질문 답변이나 콘텐츠 검증과 같이 사실에 대한 정확성과 깊이가 필요한 애플리케이션에 효과적입니다.
시퀀스 투 시컨스 모델(Sequence-to-Sequence Models)
Google의 트랜스포머나 Facebook의 BART와 같은 시퀀스 투 시퀀스 (seq2seq) 모델은 입력 시퀀스를 밀접하게 관련된 출력 시퀀스로 변환해야 하는 작업을 처리합니다. 이러한 모델은 전체 콘텐츠 또는 그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다른 형태로 전달해야 하는 기계 번역이나 문서 요약의 기초가 됩니다.
이같이 각 유형의 파운데이션 모델은 각각의 고유한 학습이나 운영 설계 덕분에 특정 작업에 고유하게 적합합니다. 다음 섹션에서는 몇 가지 사용 사례를 통해 파운데이션 모델의 기능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파운데이션 모델은 대규모 데이터 세트에서 학습할 수 있는 적응성과 역량으로 다양한 산업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다음은 몇 가지 흥미로운 예시입니다:
이는 파운데이션 모델의 활용 사례 중 일부에 불과하며, 연구자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함에 따라 잠재적인 응용 분야는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파운데이션 모델은 다양한 산업과 일상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엄청난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파운데이션 모델 훈련은 상당한 컴퓨팅 리소스와 전문 지식이 필요한 복잡한 작업입니다. 주요 단계를 간단하게 아래와 같이 소개합니다.
파운데이션 모델을 훈련하는 것은 지속적인 과정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연구원들은 모델 성능과 성숙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데이터 처리, 모델 아키텍처, 자기 지도 학습 작업에 대한 새로운 기술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습니다.
파운데이션 모델은 다양한 영역에서 널리 채택되고 사용되는 데 기여하는 상당한 이점을 제공합니다. 몇 가지 주요 장점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파운데이션 모델은 뛰어난 기능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연구자들이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몇 가지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다음은 몇 가지 주요 과제들입니다.
파운데이션 모델은 AI 기능의 획기적인 도약을 가져다줍니다. 다용도성, 효율성,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통한 학습 능력은 다양한 산업과 일상생활을 변화시킬 차세대 지능형 애플리케이션의 기반을 닦고 있습니다.
원문: Digital Marketing Cu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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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고 견뎌 왔던 그간의 경험을 공유해봅니다.
매출 몇천만 원이 나오는 것도 좋지만 결국 남는 건 ‘내 손에 얼마나 돈이 벌리냐’입니다. 남는 게 없다는 말 심심치 않게 하시는 분들 많은데, 카페 하면서 느낍니다. 정말 남는 게 없습니다. 왜 안 남을까요? 저도 근 몇 년간 장부상, 재무제표상 이익은 나왔지만 남는 게 없다는 말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입니다.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매출 싸움이 아니라 이익 싸움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간 시행착오를 돌이켜보면 모두 매출 싸움으로 승부를 보려고 했던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습니다.
저는 스타트업도 함께 운영하기에 매출 싸움으로 승부를 보려던 경향이 더 강했습니다. 그래야 거래액 증가를 통해 향후 기대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스타트업 서비스는 매출액이 증가하면서 커지는 이익 구간을 검증해서 이를 바탕으로 이후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계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카페는 아니었습니다. 이익을 포기하고 매출에 신경 쓰면 매출 싸움을 그만둔 후에도 관성처럼 유지되는 구조는 아닙니다.
힘드니까 알바 한 명 더, 알바가 힘들어하니 한 명 더, 오늘은 바쁘니까 한 시간 더. 재료가 부족할 거 같으니 넉넉하게, 재고가 비어버리면 불안하니 추가로 왕창왕창. 이렇게 여러 가지 요소들이 많은데, 이런 게 모이면 정말 큰 지출이 됩니다.
일례로 스텝 비용은 평균 하루 20만 원 정도를 잡아먹습니다. 1달이면 6백만 원 수준입니다. 직원 1명은 하루 10~15만 원입니다. 역시 한 달 워킹데이 기준으로 250~300만 원입니다. 여기에 4대 보험과 보이지 않는 비용을 더하면 순식간에 친구들에게 지급되는 인건비가 몇백을 차지합니다.
재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자재야 나중에 사용한다고 치지만, 부피감 큰 부자재들은 재고 공간을 잡아먹습니다.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상태라면 추가로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실제 20평 카페에서 임대료가 월 200만 원이라고 치면, 평당 보증금 100만 원에 10만 원으로 계산할 수 있습니다. 1테이블 2인석 기준으로 1평을 잡으면 기대 매출은 월 100만 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실제 재고 수준에서는 공간을 금액으로 환산하지 않기도 하고 애매하기도 하니 넘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지출이 쌓이면 생각보다 큰 지출이 됩니다.
그뿐일가요. 어디에 어떤 게 위치해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급하게 추가로 구매하게 됩니다. 손님은 기다려주지도 않고 우리의 사정을 이해해 주지도 않기 때문에, 급하게 구매하는 경우도 그날의 지출이 되어버립니다.
인건비는 정말 큰 이슈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지출이 필요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법적인 이슈와 세금 이슈가 그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매뉴얼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괜한 시간적 허비가 발생하게 됩니다.
귀찮아서 미룬 근로계약서, 확인되지 않은 증빙서류 등을 생각해 보세요. 해고와 관련한 어정쩡한 태도와 구두로 전달된 모든 거래 등이 하루아침에 문제로 돌변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안 좋고 매장이 안 바쁘니 퇴근할래? 이렇게 말해도 어떤 친구들은 계약상 근무기간을 산정해서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모든 거래와 계약에 의거해야 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4대 보험 역시 들어달라고 하면 들어줘야 합니다. 이 역시 거부하면 바로 신고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주휴수당과 식대 그리고 휴게시간에 대해서도 명확히 해야 합니다. 특히 휴게 시간을 주지 않으면 이 부분 역시 신고 대상입니다. 인사관리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친하게 지내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악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역시 불가근불가원이 맞는 말 같습니다. 모든 거래는 기록으로, 행위는 계약으로 남기고 증빙해야 합니다. 향후 소명이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둘 때 협의하는 것도 구두로만 하기보다는 구두 후 문자/톡 전달/사직서 받기를 기본적으로 생활화해야 합니다. 서류가 불편하다면 전자 계약서를 사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프랜차이즈라면 일반적인 제품라인업이 갖춰져 있겠지만 개인 카페는 그렇지 않습니다. 빨리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제품을 찾는 게 필요합니다. 메인 상품, 시그니처 상품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음료보다는 디저트가 좋습니다.
메뉴에서는 회전율 좋고 이익률 좋은 제품으로 구성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부피감 있는 게 지출을 일으키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빵류에 자신 있다면 베이커리 쪽으로 하는 것도 좋으나, 어렵다면 생지를 받아서 하는 것도 좋습니다. 메인 메뉴를 중심으로 매출 상승 판을 올리는 게 필요합니다.
만약 적합한 제품을 찾기 어렵다면 괜찮은 아이템 하나를 받아서 이를 음료나 브런치와 종합한 패키지로 개발하거나, 자기 생각을 넣어서 디벨롭하는 것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어쨌든 가게에 오게 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유의할 점은, 이익률이 높은 상품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그니처 상품은 소비자가 첫 방문 시 구매할 확률이 높습니다.
여기서 유명한 게 뭐예요? 잘 나가는 게 뭐예요?
이런 질문을 들었을 때 올인할 상품을 개발한다고 생각하면 좋습니다. 제 브랜드도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했지만, 지금은 메인 디저트가 전체 매출의 50% 수준입니다.
저는 초반에는 메인 디저트를 중심으로 브랜드 프랜차이즈를 전개하려고 했던 전략을 생각했으나, 지금은 HACCP 디저트 공장을 중심으로 생산과 납품 사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거래처를 늘리고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프랜차이즈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러니까 모두 나만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어떤 매장이든 메뉴는 평이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많이 소비하는 메뉴는 대동소이하다는 말입니다. 제 체감으로는 아메리카노, 라테, 바닐라라테, 마끼아또, 에이드, 과일라테 순일 듯싶습니다.
여기서 벗어나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하거나 다양한 소비자를 맞추겠다고 한다면 여유자금이 넉넉해야 합니다. 재고 부담 없는 제품군으로 준비해 두면 다 팔 수 있는 게 아니냐 하겠지만, 그래도 재고 부담은 발생하고 관련된 인력에게 제조을 해야 한다는 이슈가 있습니다.
그러니 내 가게에 적합한 메뉴를 구성하는 게 좋습니다. 저희도 처음에는 메뉴만 50가지가 넘었습니다. 지금은 절반 가까이 줄였는데, 매출이 크게 줄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매달 구매해야 하는 재료비가 20% 정도 낮춰진 듯합니다. 거기에 디저트 역시 파생상품처럼 비ㄹ슷한 재료로 구성하면서 재고 부담을 낮추는 데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메뉴가 많을 때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 부자재입니다. 부자재는 일회성 발주로 이루어지는데, 한 번에 소량 발주하는 건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략 발주를 해놔야 하는데, 생각보다 이 비용이 큽니다. 컵홀더와 컵은 어쩔 수 없지만, 디저트 메뉴마다 다양하게 포장 용품을 갖춘다면 부자재 비용이 계속 발생할 겁니다. 안 팔리기까지 한다면 무리한 재고비용이 발생하는 셈이겠죠.
배달 매출 비중이 높은 경우 3천만 원을 팔아도 남는 게 없다는 말을 하게 됩니다. 20평 매장에서 배달 포함 3천 매출이면 아주 훌륭해 보이죠. 하지만 면밀히 들여다보면 3천 매출에서 인건비, 부가세, 재료비, 임대료, 운영비가 빠집니다. 여기에 수수료, 광고비, 정산 대기에 대한 기회비용까지 고려하면 현타가 오는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괜히 배달 플랫폼이 공공의 적이 되는 게 아닌 듯합니다.
카드 매출 역시 2~3일에 걸쳐서 들어옵니다. 오늘 매출이 발생해도 내일 들어오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니까 한 텀이 발생하면 개인 돈으로 메꾸는 상황이 공매도처럼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하면 실제 손에 쥐는 이익금이 낮은 게 당연한듯합니다. 결국 내 손에 쥐는 돈을 높이기 위해선 운영하는 매장의 경쟁력이 어디서 발생하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목돈이 한 번에 들어오게 되면 실제 내가 계획대로 운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죠. 하지만 매일 짤짤이 들어오는 돈은 생각 구조를 바꿉니다. 어느 순간부터 카드 매출이 조금 더 많이 들어오는 특정 요일에 시선이 쏠리게 되거든요. 그 돈으로 개인적 용무, 대출, 카드값, 지출 등을 해결하다 보면 통장에 남아있는 현금은 매우 부족해집니다. 그러다 보니 계속 땡겨쓰거나 늦게 대금을 지급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계획적 소비가 사실상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매일매일 돈이 빠져나갈 곳이 예상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매일 돈이 들어온다고 착각하고 하루하루 돈을 써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습관부터 고칠 필요가 발생하는데 여간해서는 쉽지 않습니다.
특히 부가세 납입 기간이나 소득세 기간에는 이러한 계획 없이 지출했다가 크게 한 방 먹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지출도 계획적이어야 합니다.
일이 잘 안될 때 가장 먼저 하는 게 새로운 상품 개발, 도입, 신사업 기획 등입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이 확보되어 있지 않고 유동성 위기라면 가급적 자제하는 게 좋습니다. 기회비용으로 리스크를 높이면서 현금을 까먹기보다, 현재 돈맥경화를 살펴보고 막힌 걸 뚫어주는 것에 집중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카페를 오랫동안 했지만 저 역시 현금이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새로운 사업을 벌리는 것에 대해서도 주의하지만, 가능성을 믿고 디저트 주문제작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금은 K-디저트를 정의하는 새로운 솔루션 ‘디저트콜라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갈 길은 멀지만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강의 및 제휴, 제안 문의 메일은 아래 연락처로 부탁드립니다. (사업/창업/콘텐츠/마케팅/1인 미디어/F&B/사회학 인문학 분야)
미디어자몽은 콘텐츠 비즈니스 컴패니빌더입니다.
저녁 식사 시간이었나, 흔한 예능 프로의 마지막에서나 나올 법한 질문을 아내에게 들었다.
현재 꿈이 뭐야?
어렸을 때 같으면 뭐가 되겠다는 꿈을 얘기했겠지만, 아이를 키우면서부터 내 꿈(목표)은 아이에 관한 것이 될 수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큰 고민 없이 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아이가 큰 문제 없이 학창 시절을 잘 마무리하는 것뿐이야.
내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결코 쉽지 않았다. 아니 누군가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갈래?’라는 비현실적 질문을 던져도 나는 ‘아니, 결코 돌아가지 않을 거야’라는 현실적 답변을 할 것이다.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과연 내가 그걸 다시 할 수 있을까?
내 학창시절은 여러 이유로 복잡하고 힘겨웠다. 지금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딱히 어떠한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는다. 내 경우에는 ‘어떻게 고통을 견뎌냈지?’라는 의문보다는 ‘그럼에도 왜 삐뚤어지지 않았지?’라는 의문이 더 앞설 정도로, 어떻게 흔들리지 않고 혹독한 시간을 견뎌왔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조금 특이한 경우였을지 모르나, 모두의 중고등학교 시절은 각자의 이유들로 쉽지 않은 시간들이다. 그것을 알기에 나는 내 아이가 커다란 사건이나 힘겨움 없이 이 시기를 잘 보내는 것이 언제부턴가 목표가 됐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 (Adolescence, 2025)〉은 힘겨운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제이미라는 한 소년과 그가 연루된 사건을 배경으로 한 범죄·사회 드라마다(원제인 ‘Adolescence’는 청소년기라는 다소 형식적이고 담백한 제목인데, ‘소년의 시간’이라는 우리말 제목에는 좀 더 많은 복잡한 의미를 담았다). 총 4회 분량의 비교적 짧은 드라마인데, 편당 약 50~60분 정도로 편성되어 4편으로 나뉜 드라마라기보다는 1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이 드라마를 얘기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원테이크 촬영이다.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컷을 끊지 않고 진행되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많은 준비가 필요한 작업이다. 보통은 액션 영화에서 현장감을 배가 시키기 위해 사용되지만, 감정이 주가 되는 드라마에서도 원테이크 촬영이 얼마나 효과적인 기법인지 〈소년의 시간〉을 보면 알 수 있다.
원테이크 촬영이다 보니 촬영 장소가 한정적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한정된 공간 내에서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가끔은 제3자가 되어 해당 공간의 분위기를 한발 물러나 전체적인 시점으로 볼 수도 있고, 가끔은 극 중 공감대를 느끼게 되는 인물(상담사나 제이미의 아버지 등)이 느끼는 감정을 아주 가까운 곳에서 현실처럼 체험하게 된다.
이 드라마가 다루는 감정이 매우 격렬하게 요동치다 보니,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전달자 역할을 하고 있는 원테이크 촬영 방식은 여느 액션 영화의 그것 못지않게 효과적이다.
(이후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총 4개의 에피소드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3편과 4편이다. 먼저 3편에서는 시설에 구금되어 있는 제이미가 심리상담사와 긴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담겼다. 이 에피소드는 거의 이 대화가(이걸 대화라고 할 수 있을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전부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긴 시퀀스를 통해 〈소년의 시간〉이 보여주고자 했던 현재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시퀀스에서는 흔히 ‘인셀’이라고 하는 현재 10대 남자들의 민낯을 피하고 않고 들춰낸다. 이들이 갖고 있는 여성에 대한 삐뚤어진 가치관과 세상을 바라보는 어긋난 시선을 극 중 제이미의 대사와 태도로 담아내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판타지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현재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문제가(갈등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심화되고 있는 10대 남자들의 어긋난 가치관이 얼마나 정상적인 것과 거리가 있는지, 그 폭력성이 어디까지 닿아있는지 이 작품은 상세히 보여주는 것에 그친다.
다음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세히 말하겠지만, ‘보여주는 것에 그친다’는 것은 이 작품의 중요한 미덕이다. 특히 어쩌면 수많은 범죄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소년의 어긋난 정체성과 사회성에 관해 말하고 있기 때문에, ‘소년의 시간’은 섣불리 결론짓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현재 사회에는 더 선행되어야 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이미의 행동이나 언행에 대해 작품 스스로가 결론짓지도, 교정하지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시청자는 이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 주변을 다시 둘러보게 된다. 아주 복잡해진 마음으로 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4번째 에피소드였다. 4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제이미의 아버지인 에디(스티븐 그레이엄)의 생일날 벌어지는 일들을 담는다. 3번째 에피소드에서 제이미의 현실을 마주했다면, 4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당사자이자 제3자이기도 한 가족, 더 직접적으로 제이미를 낳고 길러낸 부모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이 에피소드 역시 차로 이동하는 장면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에디와 아내, 그리고 딸의 대화로 이뤄져 있다. 나는 이 에피소드 속 대화 한 줄 한 줄을 보면서 〈소년의 시간〉 작가와 제작진들이 얼마나 이 현실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연구하고 조심스레 접근했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제이미 부모의 대화를 귀 기울여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말들과 감정들로 여과 없이 담아내는데, 내 분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타인이기도 한 자녀라는 존재. 그 자녀를 상대로 한 원초적인 감정들부터 부모로서 느끼게 되는 무기력함과 죄책감까지 그 꾹 눌린 답답함을 가감 없이 마주한다.
가장 가슴 아팠던 건 대화의 말미에 너무 어른스럽고 잘 자란 딸아이를 보며 에디가 묻는 장면이다.
우리가 저 애를 어떻게 저런 애로 만들었지?
그러자 아내가 대답한다.
제이미와 똑같은 방법으로.
이 대답을 듣고 에디는 하루 종일(어쩌면 처음 사건이 있던 날 이후로 쭉) 억눌러 왔던 감정이 폭발하며 오열한다.
너무 가슴이 아팠다. 똑같은 방법으로 자녀들을 키웠는데, 제이미와 누나는 너무 다른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극 중 제이미처럼 청소년들이 인셀이 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 어른과 사회는 쉽게 원인을 규정짓곤 한다. 부모가 가정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거나, 학교, 사회 등의 만연한 문제들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소년의 시간’에서도 제이미가 다니고 있는 학교를 보면 여러 문제들이 해결책 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학교에 다니는 모든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닌 것처럼, 똑같은 부모의 똑같은 방법으로도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결론짓지 않는 이 작품의 유일한 결론이자 희망이다.
글의 서두로 돌아가 내 아이가 큰 문제 없이 학창 시절을 마무리하길 바라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처음엔 부모가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나쁜 것들로부터 접촉을 막아 내면 끝까지 괜찮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불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인터넷을 모두 끊고 사회에서 벗어나 우리 가족만 고립되어 어른이 될 때까지 지낼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이의 학교, 사회생활은 부모가 아무리 관심을 가져도 정확히 알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그저 미뤄 짐작하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 끝까지 몰랐으면 하는 나쁜 것들, 끝까지 접할 일이 없었으면 하는 나쁜 일들을 부모가 영원히 막아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럼 결국 결론은 그런 나쁜 것들을 아이가 독립적으로 판단하여 스스로 거르고 피하거나 이겨낼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이른다. 쉽게 말해 다소 공허할 수도 있지만 아이가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말고는 나쁜 것들의 유혹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부모의 힘만으로 막아낼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이야기다.
이 결론밖에는 없다는 것이 매번 불안하고 무력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 할 수 있어!’라고 쉬이 결론짓는 이야기보다 ‘소년의 시간’처럼 그 무기력함을 뼛속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는 것으로 위로하는 이야기가 더 치명적으로 와닿을 수밖에 없었다.
원문: 아쉬타카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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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서늘한여름밤
안녕하세요, 코치 이서현입니다. 아마도 저를 창작자 서늘한여름밤으로 알고 계신 분들이 더 많겠지만, 저는 사실 코칭심리학으로 박사를 수료한 심리학자이기도 합니다.
심리상담이 물리치료라면, 코칭은 헬스PT와 비슷합니다.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 심리상담이라면, 전반적인 마음의 근력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심리코칭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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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19일은 화요일이었다. 전날, 평화적 시위를 마치고 귀가하던 고려대학생들이 경찰과 공모한 정치깡패들의 무차별 테러로 다친 뒤라 분위기는 잔뜩 격앙되어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하나둘 국회의사당에 모인 학생들은 선언문을 낭독하고 거리로 나섰고 이내 경무대 방향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애당초 ‘부정선거규탄’과 ‘학원의 자유’를 외쳤던 학생들의 평화적 시위는 경찰의 폭력 진압 앞에서 질적 변화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날의 구호는 ‘3·15부정선거 다시 하라’, ‘1인 독재 물러가라’, ‘이승만은 하야하라’ 등 독재정권 퇴진과 민주주의 수호를 요구하는 혁명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전우와 애국가를 부르며 달려가는 젊은 학생들의 대열에 하나둘 시민들도 합류했고, 서울 시내는 온통 민주 수호와 독재 타도를 외치는 10만 명이 넘는 시위대열로 뒤덮였다. 경무대로 나아가려는 학생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의 공방은 점차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최루탄과 공포탄으로 시위대를 막던 경찰의 1차 저지선은 잔뜩 고양된 학생과 시민들 앞에서 이내 무너졌고, 시위대는 경찰의 최후 저지선인 경무대를 향해 달려갔다. 소방차를 앞세운 시위대와 경찰의 간격이 10여 m로 좁혀졌을 때, 실탄을 장전한 경찰의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경무대에서의 발포를 비롯하여 서울 시내 곳곳에서 경찰의 무차별 사격으로 숱한 학생과 시민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분노한 시민들은 반공청년단 본부와 왜곡 보도를 일삼은 신문사를 불태웠으며, 시위를 진압하려 출동한 소방차를 빼앗고 경찰서를 습격하는 등 시위를 한층 격렬하게 전개하기 시작했다.
혁명의 불길을 댕긴 실마리는 전날인 4월 18일, 청계천 4가에서 벌어진 테러였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구속된 학생들의 석방과 학원 자유를 요구하며, 평화적 시위를 벌인 후 고려대생들이 귀갓길에서였다. 경찰의 비호 속에 반공청년단이라는 정치깡패들의 무차별 테러로 학생 수십 명이 다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학생들의 평화 시위마저 폭력으로 진압한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마침내 임계점에 이르렀다. 이 고대생 피습 사건은 학생시위의 주역을 지방의 고교생으로부터 서울의 대학생으로, 시위목적도 ‘부정선거규탄’에서 ‘독재 타도’로 전환하게 한 변곡점이었다.
서울 시내가 완전히 무정부 상태에 빠지자 당황한 이승만 정부는 이날 오후 3시, 서울 일원에 이어 유혈사태가 벌어진 부산·대구·광주·대전에도 계엄령을 선포했다. 밤늦게까지 산발적으로 이어진 시위는 계엄군이 서울에 진주하면서 일단 가라앉았다. 계엄군은 중립을 선언하고 소극적으로 시위진압에 임하였고, 유혈사태 방지와 치안 유지, 혼란 수습 등에 치중하였다.
이날 하루 동안의 시위로 서울에서만 1백여 명, 부산에서 19명, 광주에서 8명 등 전국적으로 186명이 사망했고, 6026명이 부상했다. 이날을 ‘피의 화요일’이라 부르는 이유다.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학원의 자유를 요구하면서 시작된 학생시위는 마침내 그 비등점에서 폭발하고 만 것이었다.
사월혁명은 2월 28일, 대구에서 시작된 고교생들의 부정선거규탄 시위가 시발점이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는데, 당국은 대구에서 개최될 민주당 선거 유세에 학생들이 참석하지 못하도록 학생들을 등교시켰다. 공휴일에 학교에 불려 나온 학생들은 영화 관람과 토끼사냥 등에 동원되었다.
전날, 학교의 의도를 간파한 경북고·대구고·사대부고 학생 8명은 부당한 등교 지시에 항의하고자 시위를 조직하고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해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는 결의문도 작성했다. 28일 오후 1시 학생 800여 명이 반월당을 거쳐 경상북도청으로 행진하며 벌인 시위에 다른 학교 학생들이 합류하며 시위대는 1200여 명으로 늘어났고, 120여 명이 경찰에 체포되었다.
시위가 번질 것을 우려한 경찰은 주동자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학생을 석방하였지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시위는 보름 뒤 정·부통령 선거일에 자행된 부정선거로 다시 불이 붙었다. 선거는 이승만(1875~1965)의 장기 집권과 유고 시 뒤를 이을 부통령 후보 이기붕(1896~1960)의 승리를 위해 추악하고 불법적인 부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상 유례없던 부정선거의 양상은 다음과 같다.
이처럼 투표는 부정과 폭력이 난무한 가운데 진행되었고,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대구에서 타오른 불길은 이은 곳은 마산이었다. 민주당 마산지부의 선거무효 선언과 함께 시작된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하자, 이승만정권은 무차별 진압에 나섰다. 마산에서는 만여 명이 넘는 시위대에 경찰이 총격을 가하자 시민들은 돌을 던지며 맞섰다. 이날 경찰의 발포로 7명이 사망하고, 870명이 부상했다.
3·15 시위에 대한 국회 조사단은 경찰의 총격이 시위대 해산이 아닌 살상 목적으로 자행된 것을 밝혀냈지만, 대통령 이승만은 시위가 ‘공산당의 사주’로 벌어진 일인 양 주장하였다. 부통령 당선자 이기붕은 “쏘라고 준 것이지 가지고 놀라고 준 게 아니”라는 망언도 서슴지 않았다.
국회 조사 등으로 진정된 시위는 3·15 시위에 참여한 학생 김주열(1944~1960) 군의 주검이 마산 중앙부두 앞 바다에서 눈에 미제 최루탄이 박힌 채 떠오르면서 다시 불이 붙었다. 마산 시민은 물론, 전국에서 자유당의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4월 19일의 시위와 항거는 2·28이래 이어져 온 일련의 저항을 매듭짓는 항거의 정점이었다. 혁명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자유당 정권은 사건 무마에 온 힘을 기울였지만, 민심은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독재정권의 종말을 결정짓는 시위는 4월 25일에 일어났다. 전국의 대학교수 대표들이 모여 시국 수습을 위한 선언문을 발표하고 시위에 나선 것이다. 이날 오후 3시, 서울대학교 교수회관에 모인 27개 대학교수 258명은 ‘대통령을 위시한 여야 국회의원들과 대법관 등은 3·15부정선거와 4·19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동시에 재선거를 실시하라’고 하는 요지의 14개 항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어서 교수 4백여 명은 ‘4·19의거로 쓰러진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구호를 내걸고 평화적인 시위를 시작, 서울시가를 행진했다. 이 4·25 교수단 시위는 시민과 학생들의 절대적 지지를 불러일으켜 그날 밤부터 다시 시민·학생들의 궐기로 이어졌다.
4월 26일, 서울 시내엔 경계 태세가 삼엄했지만, 시위대의 규모도 엄청나게 불어났다. 교수단 시위 이후 국민의 요구는 이승만의 하야로 정리되었다. 4·19 때 경찰의 발포로 친구를 잃은 초등학교 학생도 어깨동무하고 시위에 참여했다.
경무대를 지키던 계엄군은 실탄을 장전하고 있었지만, 엄정중립의 입장을 지켜 더는 국민의 희생을 초래하지 않았다. 달리 사태를 수습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승만 대통령은 결국,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당일 오후 4시에 경무대를 떠나 이화장으로 돌아간 이승만은 4월 28일, 이기붕 일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이승만의 하야 후 허정 내각 수반이 과도정부를 이끌었고, 학생들은 파괴된 질서를 회복하는 데 힘썼다. 그리하여 1960년 8월, 의원내각제의 제2공화국 장면 내각이 새롭게 출범하였다. 그러나 제2공화국은 이듬해인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이 이끈 군부 쿠데타로 무너졌다. 4·19가 ‘미완의 혁명’이 된 이유다. 4·19는 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에서는 ‘의거(義擧)’로 불리다가 문민정부 때가 되어서야 ‘혁명’이라는 이름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당시 한국 상황이 “이승만정권의 권력 구조와 정치의식 계층, 특히 학생들의 가치관과의 사이에 크고 명백한 균열이 있었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시위 학생과 시위군중들은 “조직화 된 지도력”을 갖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또, 이러한 “명백한 지도력의 부재가 이승만의 조속한 사임을 가져오게 하”였지만, 이는 “이승만정권의 붕괴 후에 ‘혁명’을 완성시키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4·19가 ‘미완의 혁명’이 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원문: 이 풍진 세상에
유관순 18살, 이재명 22살, 윤봉길 24살, 안중근 30살, 이봉창 34살. 독립운동의 빛나는 순간들 속에서 독립운동가들은 2030 청춘이었다.
100년 전에 찍은 한 장의 사진으로 남은 ‘청춘의 초상’이 들려주는 뜨겁고 강렬한 대한의 독립운동 이야기. 반백의 노구와 주름진 얼굴의 흑백사진 속에서 기억되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에게도 조국의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청춘의 시절이 있었다.
독립운동가들의 2030 시절의 한때를 포착한 단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읽는 색다른 근현대사 책. 100년 전 사진으로 되묻는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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