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 https://ppss.kr 필자와 독자의 경계가 없는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Sun, 23 Mar 2025 14:00:22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5.8.10 https://ppss.kr/wp-content/uploads/2015/07/ppss-100x100.png ㅍㅍㅅㅅ https://ppss.kr 32 32 한국에서 포모증후군과 성인ADHD의 유병률이 급증한 원인은 뭘까? https://ppss.kr/archives/265721 Sun, 23 Mar 2025 14:00:22 +0000 http://3.36.87.144/?p=265721 1.

포모(FOMO)증후군이란 말은 2004년부터 사용되었지만,  스마트폰과 유튜브, SNS가 만연한 2010년도부터 널리 퍼졌습니다. 포모증후군은 원래는 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였습니다. 나 혼자 뒤처질까 두려워하는 현상이나, 대인관계에서 홀로 도태되어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해 가지는 강박적 불안입니다. 하지만 부동산 폭등, 2차 전지 관련주 폭등, 비트코인, 벼락거지 등의 출현으로 인해 한국에서는 경제적인 의미가 과도하게 부각된 단어죠.

포모증후군의 가장 무서운 점은 무엇일까요? 내면의 성장이나 성숙에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는 대신, 타인이 이룬 강남 아파트나 포르쉐, 롤렉스 같은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성과에만 가치를 두고 과몰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진득하게 집중하지 못하게 됩니다. 관심을 가져야 할 정보와 주제가 너무 많다 보니, 타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할 시간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죠.

책을 한 권 읽을 시간도 에너지도 없는 탓에, 그 책을 10분으로 요약한 유튜브 시청으로 독서를 대신하게 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유튜브 콘텐츠를 30초로 요약한 숏폼이나 릴스에 탐닉하게 되죠.

Image by freepik

 

2.

최근 한국에서 성인ADHD 유병률이 급증한 것은 포모증후군이 만연하기 시작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손흥민, 오타니 같은 스포츠 재벌이나 비트코인으로 벼락부자가 된 타인의 성공을 볼 때 우리 중뇌변연계의 보상회로와 도파민이 자극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쾌감과 불안을 동시에 경험하게 됩니다. 성공에의 강렬한 갈망과 질투심을 느끼고, 왜 나는 저런 걸 이루지 못했는지 후회하고 열등감을 느끼며 초조해하죠.

이대로 있으면 나는 망해! 뭐라도 해야 해!

강박적인 충동과 불안은 자신으로 하여금 사전에 계획되지 않은 행동을 하게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실수가 반복되면서 자책과 우울에 빠지게 됩니다. 이로 인해 집중력과 인지 능력, 의사 결정능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집니다. 이게 바로 성인 ADHD의 원리입니다.

Image by atlascompany on Freepik

 

3.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을까요? 간단한 팁을 드릴까 합니다.

  1. 멀티 태스킹이 아닌 싱글 태스킹을 할 것.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온전히 집중하기)
  2. 새로운 일이나 아이디어를 찾기보다는, 현재 일과 문제를 먼저 정리할 것.
  3. 타인의 일상·가십·인터넷 기사를 최소 1주일 이상 끊고 자신의 일상에만 몰두할 것
  4. 자기 과시, 허세를 부리는 사람을 멀리할 것.
  5. 실현 가능한, 구체적이고 단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조금씩 실행해 나갈 것.

원문: 박종석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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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소가 건물주들의 최애 브랜드가 된 이유 https://ppss.kr/archives/267848 Wed, 05 Mar 2025 00:44:15 +0000 http://3.36.87.144/?p=267848 이제 스세권보다 다세권

한때 ‘맥세권’, ‘스세권’이라는 단어가 유행했습니다. 역세권에서 파생된 표현으로, 맥도널드나 스타벅스를 도보로 이용할 수 있는 입지를 뜻하는데요. 이 두 브랜드는 아무 상권에나 입점하지 않기 때문에, 매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해당 지역이 좋은 부동산으로 평가받곤 했습니다.

특히 스타벅스는 ‘건물주의 꿈’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스타벅스가 입점하면 건물 가치와 토지 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건물주들은 어떻게든 스타벅스를 입점시키고 싶어 했고, ‘건물주 위에 별다방’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국내 스타벅스 매장이 2,000개를 넘어설 만큼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이제는 과거만큼 선호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신 새롭게 주목받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다이소입니다. 다이소는 경기 영향을 비교적 덜 받기 때문에 폐업 위험이 낮고, 고객을 끌어들이는 힘도 강력합니다. 게다가 임대료 방식에서도 스타벅스와 차이가 있는데요. 스타벅스는 월 매출의 10~12%를 임대료로 내는 반면, 다이소는 고정 월세를 선호합니다. 요즘처럼 내수가 위축된 시기에는 건물주 입장에서도 안정적인 임대 수익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겠죠.

특히 복합 쇼핑몰과 대형마트 같은 대형 리테일 시설들이 다이소 입점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모습입니다. 다이소가 집객력과 매출 면에서 꾸준한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인데요. 최근에는 백화점뿐만 아니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프리미엄 아웃렛에도 다이소 매장이 입점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서로에게 득이 됩니다

하지만 아무나 다이소를 유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이소의 입점 조건이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인데요. 우선 300평 이상의 단층 매장을 선호하며, 단층이 아닐 경우 복층 구조도 가능하지만 대신 전용 엘리베이터 설치가 필수라고 합니다. 여기에 주차장 지원이 가능한 건물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고 하죠.

다이소가 이렇게 입지를 철저하게 따지는 이유는 5,000원 이하 균일가라는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싸게, 많이 팔아야 성장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더 다양한 상품 카테고리로의 확장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대형화 전략이 필수적이죠. 그래서 넓은 매장, 그리고 한번 오면 여러 상품을 두루 둘러보기 편한 단층을 요구하는 겁니다.

또한, 한 번 방문한 고객이 더 많은 물건을 구매하도록 유도해야 하기에, 주차가 가능한 매장은 매출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다이소는 넓은 공간뿐만 아니라, 주차 인프라가 갖춰진 입지를 더욱 선호하는 거죠. 실제로 주차장 유무에 따라 매장 매출이 많이 차이 난다고 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다이소 입장에서도 대형 리테일 시설은 매력적인 입점 대상이 됩니다. 넉넉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주차장 같은 필수 인프라도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이유로 다이소는 매년 타 유통시설 내 입점 매장의 수와 비중을 꾸준히 늘려가고 있습니다.

다이소는 전략적으로 매장의 대형화를 추진 중이며, 이로 인해 테넌트 매장 수와 비중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반대로 리테일 기업과 건물주 입장에서도 다이소는 매우 소중한 브랜드입니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는 넓은 공간을 안정적으로 채울 수 있는 브랜드 확보 자체가 중요한데요. 다이소는 이를 충족하는 대표적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다이소는 특유의 강한 집객력을 바탕으로 건물 전체, 매장 전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특히 대형마트의 경우, 다이소 입점을 통해 약점으로 지적받는 생활용품 경쟁력을 보완할 수 있는 최적의 파트너가 될 수 있죠.

이처럼 건물주와 다이소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다이소 매장은 더 빠른 속도로 대형화 및 확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변해 갈 겁니다

이와 같은 건물주와 다이소의 동행이 지속되려면, 다이소의 저비용 구조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상품 가격 경쟁력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인데요. 다이소는 상품당 마진을 최소화하는 대신, 판매량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따라서 고정비를 줄이는 것이 핵심 과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정 임대료는 건드릴 수 없기 때문에, 매년 매장 운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죠.

대표적인 예가 줄어드는 매장 직원 수입니다. 매장은 커지고 있지만, 필요 인력은 줄여 수익성을 맞추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는데요. 이를 위해 다이소는 2020년을 기점으로 셀프 계산대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매장에서 셀프 계산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죠.

뿐만 아니라 물건을 찾는 것도 인력 대신 ‘매장 상품 찾기’ 기능으로 대체하려 하고 있기도 합니다. 아예 최근에는 고객이 반경 5km 이내의 다이소 매장을 찾고, 해당 매장의 영업시간뿐만 아니라 재고 현황까지 확인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사실 셀프 계산대, 무인 자동화 매장 등 혁신 기술은 그동안 여러 유통업체에서 테스트됐지만, 본격적인 확산은 더딘 상황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완전 무인 편의점은 이미 2021년에 등장했지만, 매장 운영 비용 절감 효과보다 초기 구축 비용이 더 컸기 때문에 빠르게 확산되지 못하고 있죠.

하지만 다이소는 이러한 흐름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대형 매장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만큼, 기술의 경제성을 가장 빠르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앞으로 다이소의 이러한 운영 효율화 전략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게 된다면, 당분간 ‘다세권’ 시대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원문: 기묘한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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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삶을 정말로 좋아하고 있는가?” https://ppss.kr/archives/258778 Fri, 28 Feb 2025 02:24:24 +0000 http://3.36.87.144/?p=258778 1.

살아가다 보면 ‘내가 내 삶을 정말 좋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때가 있다. 좋아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다. 삶을 좋아한다, 라는 말은 자주 쓰는 말이 아니고 어딘지 어색하게도 느껴지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핵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중요한 진실은 언제나 드물게 마주하게 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내가 내 삶을 좋아하는가, 라는 질문 앞에서 다른 질문들은 오히려 부차적인 것이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얼마나 가졌는가, 내가 남들보다 얼마나 잘살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얼마나 이루었는가,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라는 건 모두 핵심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질문이 핵심에 가까울까?

내가 원하는 게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인가?

내가 남들보다 잘산다고 표현할 때의 기준은, 내가 진짜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인가?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지 헤아릴 때 그것들은 내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일까?

내가 행복을 가늠할 때 그 행복은 진짜 내가 원하는 행복인가?

이 질문들이 핵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질문들을 하나로 모으면, ‘나는 내 삶을 정말 좋아하고 있는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사진: UnsplashKelly Sikkema

 

2.

살다 보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아닌데도 어느덧 원하고 있는 경우가 참 많다. 남들이 중요하다고 하니 나도 좇고 있고, 남들로부터 느끼는 박탈감이나 소외감이 무서워서 남들을 따라 살고 있다. 내가 원한 삶은 이게 아니었는데도, 그저 남들이 원하는 직장, 동네, 상품 같은 것들을 나도 좇아 살고 있다. 그럴 때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다.

그런 것들을 좇느라 정신없이 견뎌내고 있는 이 나의 삶을 정말 좋아하는가?

내가 이 삶을 좋아한다면, 내가 사랑하는 것들 때문이다. 여유로운 주말 아침에 나서는 가족과의 산책, 회사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나누는 수다, 늦은 밤 홀로 책 읽는 시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 삶에 바로 그런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삶을 좋아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삶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좇는 것들, 강박을 느끼는 것들, 집착하는 것들 때문이다. 특히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무의식적으로 강요받는 것들 때문이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라는 것들이 어느덧 내 안에 들어와 나를 조종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 부분들이 너무 커져서 삶을 뒤덮어버릴 정도가 된다면 “나는 내 삶을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

 

3.

하나의 삶을 부여받은 한 명의 인간에게 의무가 있다면, 자기 삶을 좋아할 의무일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내 삶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내 삶을 좋아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느낀다.

삶이 너무 메말라 있다고 느낀다면, 당장 오늘부터 서점에 달려가 좋아할 수 있는 책 한 권을 고른다. 음악이 부족하지 않나 싶으면, 음악을 챙겨 듣는다. 데이트가 부족한 것 같으면, 양손에 아내와 아이의 손을 하나씩 잡고 달려 나간다.

그리고 내 삶을 싫어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가 있다면, 그 요소에 대한 ‘제거’를 다짐한다. 때로 그 요소는 어떤 사람일 수도 있고, 다른 문제일 수도 있다. 내게는 내 삶을 좋아할 의무가 있으므로, 내 삶을 싫어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제거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삶을 개척할 용기를 지닌다는 건 그런 의무로부터 비롯되기도 할 것이다.

사진: UnsplashJessica Rockowitz

나는 아내와 아이랑 함께 바다 앞에 고요히 앉아 있을 때, 삶을 좋아한다고 느낀다. 그러려면 내게 무엇이 없어야 하고 있어야 하는지를 확신한다. 확신이 삶의 추동력이다. 이 삶을 사랑하기 위한, 절실한 이유들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다. 죽는 날까지 이 삶을 더 온전히 좋아하는 것이다.

원문: 문화평론가 겸 변호사 정지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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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방지: 무기력을 존중하며, 슬금슬금 회복하자 https://ppss.kr/archives/268390 Thu, 20 Feb 2025 00:22:00 +0000 http://3.36.87.144/?p=268390

박사학위 논문 초고를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보내자마자 엄청난 무기력, 허탈감, 공허함이 밀려왔다. 솔직히 힘들 줄 알았지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한 학기 먼저 졸업하신 동기쌤이랑도 통화했는데 그 쌤도 졸업하고 3개월은 번아웃이셨다고 하셔서 지금 이 상태가 정상이구나 싶었다. 논문 심사도 아직 못 받았는데 심사받고, 수정하고, 제출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까마득하더라.

그래도 배운 게 심리코칭이고, 완벽주의와 무기력 회복으로 먹고사는 심리 코치인지라, 지금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빨리 파악할 수 있었다. 에너지를 많이 쓴 이후에는 지치는 게 당연하다. 이럴 때는 빠른 회복이 목적이 아니라, 천천히 연착륙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지금껏 달려온 나 자신의 수고스러움을 인정해 주자. 지칠 수밖에 없는 지금을 존중해주자. 쉬어야 한다고 내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말자. 그다음 일은, 그다음에 생각해도 충분하다.

원문: 서늘한여름밤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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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연락 좀 자주 해라!” 오랜만에 연락 받았을 때 하면 안 되는 말 https://ppss.kr/archives/268420 Sun, 16 Feb 2025 15:04:45 +0000 http://3.36.87.144/?p=268420

야, 연락 좀 자주 해라.
연락 좀 하고 살자.
왜 이렇게 오랜만에 연락해!

어느 주말이었습니다. 간밤에 꿈속에 나타난 옛 친구가 있어서 궁금한 마음에 먼저 전화를 걸었습니다. 실로 오랜만의 연락입니다. 그런데 벨이 울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가 받자마자 “야, 연락 좀 자주 해라. 나 까먹은 거 아냐?”라고 투덜거렸습니다. 순간 기분이 묘했지요. 반가우면서도 지적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조금 씁쓸했달까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에휴, 본인도 나한테 연락 한번 안 했으면서… 내가 연락 안 한 거나, 네가 연락 안 한 거나 피장파장 아닌가?

그런데 문득 생각해 보니, 저 역시 누군가에게 “왜 이렇게 오래 연락이 없어? 연락 좀 하고 살자”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반가운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고 여겼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어떻게 들렸을지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았지요. 그러자 “상대방도 분명 이런 감정을 느꼈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친구가 던진 “야, 연락 좀 자주 해”라는 말은 어쩌면 아주 사소한 토라짐이나 친근한 투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오랜만에 들은 이 한마디가 왜 거슬리는지 곰곰이 떠올려 보았습니다.

“야, 연락 좀 자주 해라!” / Image by freepik

연락은 쌍방향이고 서로 노력해야 한다는 점은 다들 알지만, 왜 마치 한 사람만 노력하지 않은 듯이 받아들여지는 걸까요. 심리학을 공부하며 접했던 의사소통과 감정에 대한 여러 관점을 떠올리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라는 주제를 깊이 생각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연락’이라는 마음의 다리

연락은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연결고리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가족, 친구, 연인, 지인 등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과의 유대감을 이어가는 데 꼭 필요한 도구이기도 합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이란, 서로가 마음을 주고받으며 이뤄지는 자연스러운 유대감입니다. 궁금해서 먼저 연락을 하면 상대방도 내 안부를 묻고, 이렇게 주고받는 흐름 자체가 관계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죠. 한편, 상대방에게 건네는 작은 관심과 호의는 교류분석에서 말하는 ‘긍정적 자극(Strokes)’으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지내?”라는 짧은 메시지가 주는 온기는 생각보다 크거든요.

다만, 이 따뜻함이 책망 섞인 표현으로 바뀔 때는 오히려 불쾌감과 부담감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연락 좀 자주 해”라고 들었을 때 느끼는 압박감

반가움에서 비롯된 표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듣는 순간 왠지 모를 죄책감이나 방어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첫째, 의무감 vs. 자발성 문제입니다. 연락은 자발적으로 해야 서로가 편안합니다. 그런데 “연락 좀 자주 해”라는 말은 상대에게 ‘너는 연락할 의무가 있다’라고 전달하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내가 보고 싶다는 마음을 솔직히 드러내기보다, 연락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 약간의 책임을 묻는 듯 비칠 때도 있는 거죠.

둘째, “왜 이렇게 연락이 없었어?”라는 표현에는 은근히 “내가 서운하다” 혹은 “네가 잘못했다”라는 의미가 묻어납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안부를 물어보는 게 아니라 책망을 듣는 기분이 들 수 있어, 마냥 반갑지는 않을 때가 있죠. 나도 나름대로 바빴던 사정이 있었을뿐더러, 어쨌든 상대방도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나에게 연락을 안 한 거잖아요. 모처럼 큰맘 먹고 연락을 딱 했는데, 연락이 왜 없었냐고 뭐라 한 소리 듣는다면, 아무리 의도가 좋았다 해도 오해를 사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Image by storyset on Freepik

물론 직장 상사나 웃어른으로부터 “자주 연락해”라는 말을 듣는 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등한 관계인 친구나 동료 사이에서 이러한 말이 나올 경우, 괜히 불편한 지시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연락 좀 자주 해라, 내가 싫어진 거야?

하지만 정작 저 말을 한 사람 입장에서는 그걸 대개 모른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혹여 상대방이 언짢아하는 기색을 보이면 ‘난 반가워서 그런 건데 왜 저러지’ 생각하며 오해를 갖게 되는 거죠. “왜 속 좁게 그러냐?”라고 되려 역공을 가하기도 해서, 결과적으로 오랜만에 연락한 일이 도리어 관계를 해치는 원인이 되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대신 건네면 좋은 말

심리학에서 말하는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은 누구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도 비난받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안전감은 사실 사소한 표현 하나로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위에서 계속 말씀드린, 표면적인 비난(“왜 연락을 안 하니?”)도 그 예시겠고요.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게 더 이롭습니다.

1. “바쁠 텐데 이렇게 연락해 줘서 고마워.”

이러면 상대방이 늦게라도 전화를 줬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함을 전할 수 있습니다. 다음 연락도 훨씬 부드러워지죠.

2. “다음에는 내가 먼저 연락할게.”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돕고 이해하는 동등한 관계라는 느낌이 전해질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훨씬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겠죠.

3.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어.”

진심으로 너의 근황을 궁금해하고 있었다는 표현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연락이 늦었던 이유를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고, 친밀함도 쌓을 수 있습니다.

왜 이 말들이 더 효과적일까요? 저는 이런 말들이 ‘연락의 쌍방향성’, ‘호혜적 성질’을 암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적 연락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상대방이 부모님이나 중요한 집안의 어른이 아닌 다음에야 연락이 의무는 아닙니다. 서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유대를 다지는, 그러나 어느 한쪽이 부담스럽다면 강요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죠.

그래서 “연락 좀 해”라는 말은 상대방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느낌이지만, “다음에는 제가 먼저 연락할게요”는 서로가 같이 노력하자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습니다. 대등한 관계에서는 이런 방식이 훨씬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느껴집니다.

“바쁠 텐데 이렇게 연락 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면 훨씬 더 기분이 좋아질 겁니다. / Image by freepik

 

마치며

우리가 매일같이 쓰는 말 중 상당수가 의도치 않게 상대방의 마음을 건드리기도 합니다. “연락 좀 자주 해라” 역시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나름대로는 친근감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때, 상대방에게 미묘한 압박감이나 서운함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로 전하고 싶은 마음은 무엇일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일입니다. 상대방을 책망하고 싶은 마음인가요, 아니면 진심에서 우러나온 반가움인가요?

그 차이를 분명히 알고, 더 다정한 방식으로 꺼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그러면 ‘연락’이라는 두 글자가 더 이상 부담이 아니라 반가움과 편안함의 매개체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원문: 허용회의 사이콜로피아


작가의 말

심리학적 글쓰기, 직장심리, 자존감, 목표관리, 마음건강, 메타인지, 외로움 극복, 공간활용의 심리학 등 다양한 주제로 강연 가능합니다. 출강 제안도 환영합니다. 허작가의 사이콜로피아 홈페이지에서 제 소개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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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이상을 향해 달리고 있나요?” https://ppss.kr/archives/267112 Tue, 11 Feb 2025 05:14:54 +0000 http://3.36.87.144/?p=267112 1.

우리 시대에 ‘꿈을 좇는 일’을 나쁘게 말할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정신분석학적으로 볼 때, 꿈을 좇는 일은 현실과 이상의 격차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 격차는 사실 해소될 수 없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모두 ‘이상’을 좇아야 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해소될 수 없는 현실과 이상의 격차가 항상 존재한다는 걸 의미하게 된다.

여기에서 아주 흥미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정신분석학에서 볼 때, 이 현실과 이상을 좁히려는 시도는 인간에게 ‘무한동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가령, 어릴 적 아버지를 무의식적으로 롤모델로 삼은 아이가 있다고 했을 때, 이 아이는 죽을 때까지 자기 안의 아버지를 무한하게 좇을 수 있다. 아버지라는 이미지에 도달하고자 끝없이 공부하고, 일하고, 노력하면서 한 평생을 갈아 바칠 수 있다. 그 동력은 그야말로 죽을 때까지 ‘무한’하다.

Image by pch.vector on Freepik

 

2.

이졸데 카림의 『나르시시즘의 고통』에는 자본주의가 이런 개인 내면의 ‘무한 동력’에 기생하고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예를 들어 SNS도 그렇다. SNS에 우리는 삶을 적당히 화려하게 편집하여 올리는데, 사실 그 삶의 이미지는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다.

SNS 속의 나는 필터나 구도를 통해 나 자신보다 더 아름답게 만들어진 얼굴로만 장식되어 있다. 옷가지나 먹다 마신 물컵이 널부러진 집안이 아니라, 잠깐만 유지되는 완벽하게 정돈된 이미지만이 전시된다. 우리는 우리가 전시한 그 이미지에 도달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를 ‘무한’하게 전시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바로 그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서 ‘무한동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끝없이 내가 최고로 잘 나온 사진, 내가 최고로 행복한 순간, 내가 최고로 돈을 많이 쓴 시간에 대해서 올린다. 그 이유는 그것이 내가 현실을 지우고 뛰어들고 싶은 유토피아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미지를 잠시 만들어낼 수는 있을지언정, 그 이미지 속에서 살 수는 없다.

Image by pch.vector on Freepik

참 흥미롭게도, 이런 개인의 내면적인 문제가 한 사회 전체의 동력이 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내 안에 있는 부자가 되는 이미지, 내 인생의 경영자이자 주인이 되는 이미지, 세상의 인기와 명예를 얻는 이미지에 사로잡혀 그 이미지와 지금 현실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인생의 모든 에너지를 투여한다.

자본주의란 그런 개개인들의 투쟁이 만들어낸 부산물처럼 존재하고 지탱된다. 그 과정에서 당신을 ‘이상’에 도달하게 해주겠다고 하는 수많은 상품과 브랜드, 강의 등이 만들어진다.

 

3.

여기서 하나 생각해 볼만한 점은, 인간이 이 ‘무한동력’을 생산해 내는 현실과 이상의 격차라는 구조를 없앨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가능한 건 어떤 방식으로 그 격차를 해소하는 달리기를 이어갈까 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평생 달려야 하는데, 무엇을 좇아 어떻게 달릴지만을 조정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누군가에게 그 이상은 붓다나 예수다. 누군가에게는 에르메스나 포르쉐다. 누군가에게는 노벨문학상 작가나 자연 속 도서관 주인이고, 근래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이게는 강남 대단지 아파트 주민 같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상을 포기하는 건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이상을 다루는 방식이고, 이상과 공생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가능할지는 몰라도, 할 수 있다면 이상에 영혼을 팔지 않는 선에서 내 삶에 이로운 이상과의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도 있다고 믿는다.

이상은 우리를 목숨 바치는 열광적인 상태로 만든다. 나의 이상이 ‘도박의 신이 강림한 존재’ 같은 게 되면 삶은 파멸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상이 이웃들과 더불어 살며, 강박적으로 삶에 쫓겨 다니지 않으면서, 하루하루를 충분히 사랑할 수 있는 ‘삶의 장면’이 된다면, 구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원문: 변호사 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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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의 심리학적 의미 https://ppss.kr/archives/268398 Mon, 03 Feb 2025 03:26:29 +0000 http://3.36.87.144/?p=268398

요즘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긁?”이라며 상대방에게 날을 세우듯 말을 건네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님 지금 긁혔음?
아, 이건 제대로 긁혔는데?
긁?

…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대체 왜 이런 표현을 쓸까 궁금해지더군요. 묘하게 신체적 상처와 연결돼 있는 듯한 ‘긁다’와 ‘긁히다’가, 감정적인 영역에서 도발과 상처를 묘사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왜 하필 “긁”일까요? “찌르다”, “때리다”, “쑤시다” 같은 표현도 많은데 말입니다.

 

왜 ‘긁?’을 쓰며 도발하는 걸까?

사람들이 인터넷상에서 “긁?”이라며 시비(?)를 거는 이유 중 하나는, 이 표현이 단순한 욕설이나 강도 높은 비난보다 훨씬 ‘재미있고 미묘하게’ 상대방의 신경을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예를 들어 “야, 빡쳤냐?”라고 직설적으로 묻는 것보다, “너 혹시 긁힌 거 아님?ㅋㅋ” 하는 식이 훨씬 자극적인 동시에 미묘하게 굴욕감을 주죠. 정색하며 ‘기분 나쁘다’고 항의하기도 애매한 애드리브 같은 느낌이랄까요.

또, “긁?”이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 짧고, 듣는 순간 귀에 꽂힙니다. ‘찌르다’나 ‘때리다’는 물리적 통증을 연상시키지만, ‘긁히다’는 생채기가 나긴 했는데 치명적 부상은 아닌 상태를 떠올리게 해요. 그래서 상대방 심기를 은근하게 건드리는 언어적 ‘쟁기질(?)’이 가능해지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서 특정 표현이 유행할 때는, 그 표현이 현시대의 사회적·문화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SNS로 대표되듯 모두가 바쁜 세상 속에서 빠른 의사소통을 원하는 한편, 감정을 예리하게 건드려 손쉽게 재미를 얻으려는 심리도 깔려 있죠. 그렇다고 날것의 ‘욕’으로 도배할 수도 없고, 조금은 ‘재치 있게’ 상대방을 웃으며 건드리는 전략이 필요한 겁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긁?”은 우리 사회가 점점 더 ‘감정 소통’에 민감해지고 있다는 점도 시사합니다. 예전에는 “열 받았냐?”라든지 “화났어?”처럼 직접적으로 물어보거나 조롱하곤 했죠. 하지만 지금은 조금만 틈이 생겨도 서로의 감정을 툭툭 건드리며, 때론 그것이 곧 밈이 되고 문화가 되는 것 같습니다.

 

상대방을 “긁?”하는 사람들의 심리

심리학적으로 보면, 사람들은 종종 ‘미묘한 공격성’으로 타인을 건드려서 자극을 탐색하려고 합니다. 아주 대놓고 공격하기에는 부담되고, 그렇다고 완전히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기엔 뭔가 심심한 거죠. 그래서 한 번 떠봤으면 좋겠는 마음이 생기는데, 이때 쓰기 딱 좋은 표현이 “긁?”이 됩니다.

또,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긁혔음?”이라고 했을 때 정말 “아니, 나 안 긁혔어”라고 부정하면서도 조금은 신경이 쓰인다면, 이미 게임에서 반쯤 진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이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끼리 서로 “울어?”하고 놀리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울어? 할 때의 놀리는 맛이 이젠 긁?으로 돌아왔네요.

 

‘긁혔다’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긁혔다”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어딘가 얕은 상처를 입은 느낌을 받습니다. 손톱자국 정도의 사소해 보이지만 은근히 쓰라린 상처 말이죠. 심리학적으로 ‘긁힌다’는 건, 누군가가 내 마음의 약점이나 콤플렉스를 살짝 건드렸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그렇게까지 심각하지는 않아도, 무시받거나 우습게 보였다는 생각이 들면 우리의 자존감이 가벼운 찰과상을 입게 되죠.

“긁히다”는 순간적인 당혹감과 불쾌감을 동시에 안겨줍니다. 하지만 너무 직접적으로 “속상해 죽겠네!”라고 표현하기엔 약간 과해 보이고, 그냥 아무 일 없는 척 넘기기엔 은근히 기분 나쁜 상태인 거죠. ‘긁혔다’는 표현이 딱 그 미묘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잡아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가시에 긁혔다”든지 “유리 조각에 살짝 스쳤다”든지, 우리 일상에서도 ‘긁히다’는 사건은 대개 작은 생채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은근히 오래 아립니다. 그처럼 “아주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계속 신경 쓰이는 상태”를 적확하게 표현하기엔 ‘긁혔다’가 딱 들어맞는다고 느껴집니다.

콤플렉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분석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을 언급해 보고 싶은데요, 융은 인간의 심리적 구조를 개인적 무의식과 집단적 무의식으로 나누며, 그 속에 억압된 감정, 트라우마, 또는 콤플렉스가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중 콤플렉스는 무의식에 뿌리를 두고 우리의 행동과 감정을 강하게 흔들 수 있는 심리적 요인입니다.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이 우리가 가진 콤플렉스를 자극할 때, 마치 얕게 긁힌 상처처럼 우리의 자존감은 가벼운 찰과상을 입게 됩니다.

이러한 상처는 겉으로 보기에는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심리적 차원에서는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상징적 그림자(shadow)를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융의 관점에서 ‘그림자’란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워 억압해 온 부정적인 성향이나 감정의 집합체로, 우리의 자아(self)가 인정하지 못한 부분들입니다. 누군가의 말이 우리를 ‘긁는’ 순간, 그 반응은 단순한 감정적 반발을 넘어, 내면의 그림자와 마주하게 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는 거죠.

 

가벼워 보이지만 은근히 쓰라리고,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

언어가 주는 ‘느낌’이 한 시대를 풍미할 때가 있습니다. 한때 “즐~”이 인터넷 공간을 떠돌며 누군가를 삐딱하게 놀리는 말로 유행했던 것처럼, 지금은 “긁?”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죠. 그리고 이 흐름은 계속 변주를 거듭하며 또 다른 표현으로 탈바꿈할 겁니다.

예전에 ‘즐~’이 참 재미있었다.

다만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이러한 재미와 도발이 한 끗 차이로 상대방을 심각하게 상처 입힐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재미나 유머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작은 긁힘이 돌이킬 수 없는 응어리가 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결국, ‘긁힌다’는 건 우리 마음의 작은 자존심에 손톱으로 콕 찍고 지나가는 일과 같습니다. 가벼워 보이지만 은근히 쓰라리고, 무시하려 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남기죠. 그래서 사람들은 상대방을 ‘은근히 놀리고’, 상대방이 “긁혔는지” 확인하며 은밀한 우위를 점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 ‘긁?’ 문화는 단순히 싸움을 일으키는 도발이 아니라, 누군가의 감정을 알아보고 교감하고자 하는 사회적·문화적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너는 과연 이 말에 얼마나 예민해질까?”라고 떠보는 심리 말이죠. 중요한 건 그 선을 지키는 겁니다. 말로 긁고 긁히는 걸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무심코 뱉는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 영영 아물지 않을 상처가 되지 않도록, 서로 조금씩 조심하고 헤아리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결국은 ‘긁’이냐 ‘때리기’냐의 표현 차이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 배려와 재미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일 테니까요. 그러니, 누군가가 “긁?” 하고 묻거든, 가볍게 흘려보낼지 혹은 정색하고 대응할지는 스스로의 기분과 상황을 잘 살펴본 뒤 결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살짝 생기는 긁힘은 금방 아물지만, 때론 후벼 파듯 오래 남을 수도 있으니까요.

“긁?” 한 번에 우르르 몰려가는 것이 아니라, 유연하게 받아넘기고 서로 예의를 지켜 나가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또 하나의 작은 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원문: 허용회의 사이콜로피아


작가의 말

심리학적 글쓰기, 직장심리, 자존감, 목표관리, 마음건강, 메타인지, 외로움 극복, 공간활용의 심리학 등 다양한 주제로 강연 가능합니다. 출강 제안도 환영합니다. 허작가의 사이콜로피아 홈페이지에서 제 소개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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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보는 방식을 바꿔주는 마크 트웨인의 25가지 명언 https://ppss.kr/archives/268412 Fri, 31 Jan 2025 04:32:18 +0000 http://3.36.87.144/?p=268412 ※ Viral Chatter에 기고된 「25 Mark Twain Quotes That Will Change How You See life」을 번역한 글입니다.


마크 트웨인의 재치와 지혜는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날카롭고 의미가 깊다. 시대를 초월한 그의 명언은 단순히 기발한 표현 그 이상이다. 삶, 사랑, 용기, 인류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도전을 북돋는다.

트웨인은 단순히 삶을 관찰하는 데에서 끝내지 않았다. 유머와 통찰력으로 삶을 해부하며 세대가 지나도 공감할 수 있는 교훈을 남겼다. 다음은 잊을 수 없는 트웨인의 25가지 명언을 소개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전해줄 것이다.

 

1. 앞서 나가는 비결은 시작하는 것이다.

The Secret of getting ahead is getting started.

미루는 것은 발전의 적이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든, 평생의 꿈을 추구하든, 단순히 일상적인 할 일 목록을 처리하든, 가장 어려운 부분은 종종 그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트웨인의 이 말은 우리가 기꺼이 행동에 나설 때만 성공이 가능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2. 입을 닫고 있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너를 바보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게, 입을 열어서 의심을 확인시켜 주는 것보다 낫다.

It is better to keep your mouth closed&let people think you are a fool than to open it&remove all doubt.

소셜 미디어를 통해 우리의 모든 생각과 의견을 공유하도록 장려하는 시대에 트웨인의 이 조언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때로는 판단을 서두르거나 생각 없이 말하기보다는, 단순히 경청하고 관찰하는 것이 현명하다.

 

3. 좋은 친구와 좋은 책, 그리고 살아있는 양심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삶을 만든다.

Good friends, Gook books, & a sleepy conscience: this is the ideal life.

빠르게 진행되는 초연결 사회에서는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단순한 즐거움을 놓치기 쉽다. 트웨인은 진정한 행복이 종종 우리가 유지하는 회사, 읽은 이야기, 내면에서 발견하는 평화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상기하게 만든다.

 

4. 다수의 편에 선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잠시 멈추어 자신을 돌아봐야 할 때다.

Whenever you find yourself on the side of the majority, it is time to pause&reflect.

순응이 보상받는 경우가 많은 세상에서 트웨인은 우리에게 현상 유지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권유한다. 어떤 아이디어나 신념이 인기 있다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다. 잠시 멈추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게 군중을 거스르는 것을 의미한다 해도, 그것은 곧 우리가 자신의 의견을 발전시키고 자신이 믿는 것을 옹호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5. 용기란 두려움에 저항하는 것, 두려움을 정복하는 것이지 두려움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Courage is resistance to fear, mastery of fear – not absence of fears.

두려움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두려움이 우리를 좌지우지하게 놔두어서는 안 된다. 트웨인은 진정한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두려움이 우리를 가로막지 못하게 하는 것임을 상기시킨다.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든 오랫동안 간직해 온 공포증에 맞서든, 용기는 우리가 매일 내리는 선택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6.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책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보다 나을 게 없다.

The man who does not read has no advantage over the moon who cannot read.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즐거움을 위해 읽든, 개인적인 성장을 위해 읽든 좋은 책의 변혁적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7. 나이는 마음의 문제다. 당신이 신경 쓰지 않는다면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Age is an issue of mind over matter. If yoou don’t mind, it doesn’t matter.

나이가 들수록 늙었다는 신체적 신호에 몰두하기 쉽다. 하지만 트웨인은 숫자에 불과하며, 우리의 사고방식이 현실을 형성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8. 친절은 들을 수 없는 사람도 들을 수 있고, 볼 수 없는 사람도 볼 수 있는 언어다.

Kindness is the laungauge which the deaf can hear & the blind can see.

논쟁의 여지 많은 분열된 세상에서 트웨인의 이 말은 친절의 보편적인 힘을 상기하게 해준다. 우리가 누구든 어디에서 왔든, 우리 모두는 타인에게 연민과 공감을 보여줄 수 있다.

 

9.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삶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도 언제든지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The fear of death follows from the fear of life. A man who lives fully is prepared to die at any time.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두려움과 불안의 원천이다. 트웨인은 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열쇠가 매 순간을 마치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포용하며 최대한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제안한다.

 

10.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날은, 당신이 태어난 날과 그 이유를 찾는 날이다.

The two most important days in your life are the day you are born & the day you find out why.

삶은 자기 발견의 여정이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필생의 일이다. 이 말은 우리가 태어날 때의 상황은 통제할 수 없지만,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을 힘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우리의 가치, 열정, 목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자. 그러면 진정한 우리만의 삶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11. 이상하게도 세상에 신체적 용기는 흔한 반면 도덕적 용기는 드물다.

It is curious that physical courage should be so common in the world & moral courage so rare.

순응에 보답하고 반대 의견을 처벌하는 경우가 많은 세상에서 자신의 믿는 것을 위해 일어서기 위해서는 특별한 종류의 용기가 필요하다. 트웨인의 관찰은 역경에 직면했을 때 도덕적 용기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불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든, 단순히 자신의 가치를 옹호하는 목소리를 내든 진정한 용기는 내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12. 진실을 말한다면, 그 어떤 것도 기억할 필요가 없다.

If you tell the truth, you don’t have to remember anything.

정직은 도덕적 의무일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의무이기도 하다. 진실을 말할 때 우리는 자신의 거짓말과 속임수를 추적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말은 정직이 그 자체로 보상이며, 명확한 양심은 강력한 것임을 상기시켜 준다.

 

13. 나는 학교가 내 배움을 방해하도록 내버려둔 적이 없다.

I have never let my schooling interfere with my education.

정규 교육도 중요하지만, 지식과 개인 성장을 위한 유일한 길은 아니다. 트웨인은 여행, 대화, 개인적인 탐구 등 교실 밖에서도 배움의 기회를 찾으라고 권한다.

 

14. 분노는 분노 자체보다 저장된 그릇에 더 큰 해를 끼칠 수 있는 산성 물질이다.

Anger is an acid that can do more harm to the vessel in which it is stored than to anything on which it is poured.

분노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방치하면 자신과 주변 모두를 파괴시킬 수 있다. 분노하거나 분노를 붙잡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평화와 안녕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다. 반면 분노를 풀고 용서를 실천하는 법을 배우면 삶에 대해 긍정적이고 회복력 있는 관점을 키울 수 있다.

 

15. 주름살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웃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Wrinkles should merely indicate where smiles have nee.

나이가 들면 지난 세월의 신체적 흔적에 몰두하기 쉽다. 하지만 웃으며 생긴 주름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삶을 잘 살았다는 증거다.

 

16. 자신을 격려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을 격려하는 것이다.

The best ways to cheer yourself up is to try to cheer somebody else up.

기분이 우울해지면 불행에 빠져들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트웨인은 자신의 기분을 개선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도움이 필요한 친구에게 손을 내밀거나 친절한 행동을 하면 우리의 관점이 바뀐다. 주변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 오는 기쁨을 기억하자.

 

17. 지속적으로 조금씩 고쳐 나가는 것이 나중에 완벽해지는 것보다 낫다.

Continuous improvement is better than delayed perfection.

완벽주의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이는 일을 미루는 증상의 원인이 될 수도 있으며, 자기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트웨인의 이 말은 완벽이 아닌 진보가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는 사고방식을 받아들이자. 작은 승리를 축하하자.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씩 추진력을 키우고 꿈을 이룰 수 있다.

 

18.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다는 것은 기억력이 나쁘다는 확실한 신호다.

A clear conscience is the sure sign of a bad memory.

트웨인의 재치 있는 관찰은 인간 기억의 오류와 자기 성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가 항상 정직하게 행동해 왔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확신하기는 쉽지만, 진실은 종종 더 복잡하다. 우리는 자신의 결점과 실수를 인정함으로써, 더 정직하고 진정성 있는 자아를 형성할 수 있다.

 

19. 여행은 편견, 고집불통 및 편협함을 깨뜨리는 데 결정적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여행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Travel is fatal to prejudice, bigotry, and narrow-mindedness, and many of our people need it sorely on these accouts.

이 말은 삶에 대한 관점을 넓히고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여행을 추천하고 있다. 다양한 경험과 관점에 자신을 노출하는 행동에 대한 강력한 발언이다. 통찰력 있는 사회적 논평으로 유명한 트웨인의 명성과 잘 일치하고 있다.

 

20. 개 싸움에서 개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더 투지가 있는 개가 이긴다.

It’s not the size of the dog in the fight, it’s the size of the fight in the dog.

성공과 규모, 지위를 동일시하는 세상에서 트웨인의 이 말은 진정한 힘이 내면에서 비롯된다는 강력한 교훈을 준다. 개인적인 어려움이나 직업적인 장애물에 직면하고 있다면, 자신의 태도와 결단력이 상황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21.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무지와 자신감이라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To succeed in life, you need two things: ignorance and confidence.

트웨인은 지나친 생각이 발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머러스하게 강조한다. 자기 의심을 무시하면 두려움 대신 행동에 집중할 수 있다. 자신감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성공을 향해 과감하게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22. 가난은 만악의 근원이다.

The lack of money is the root of all evil.

트웨인은 불평등을 지속하는 시스템을 비판하며 사회적 병폐의 책임을 탐욕에서 빈곤으로 전환한다. 가난은 종종 도덕적 딜레마와 갈등으로 이어진다. 그의 말은 이러한 문제의 증상보다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도록 촉구한다.

 

23. 인간에는 정말 효과적인 무기가 하나 있다. 바로 웃음이다.

The human race has one really effective weapon, and that’s is laughter.

트웨인은 유머가 긴장을 풀고 사람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웃음은 오락 그 이상으로, 어려운 진실에 맞서기 위한 방법에 가까웠다. 이 강력한 도구는 분열을 방지하고 연결을 촉진한다.

 

24. 사실이 좋은 이야기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라.

Never let the truth get in the way of a good story.

트웨인의 유머러스한 이야기 방식은 상상력과 창의성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사실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꾸밈이 이야기를 더 매력적이고 기억에 남게 만들 수 있다. 이는 청중을 사로잡는 기술이 될 수 있다.

 

25. 올바른 일을 하라. 그러면 몇몇 사람들은 고마워할 것이고, 나머지는 놀라워할 것이다.

Do the right thing. It will gratify some people and astonish the rest.

트웨인의 이 말은 진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윤리적 행동은 우리의 가치와 일치할 뿐만 아니라, 종종 그 희귀성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옳은 일을 함으로써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

원문: 피우스의 책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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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불안을 느낀다면, 업무 이메일 활동을 늘리세요 https://ppss.kr/archives/267208 Tue, 21 Jan 2025 04:40:27 +0000 http://3.36.87.144/?p=267208

지금 현재 불안하지 않다면, 당신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2017년 뉴욕 타임즈가 미국을 ‘Untited States of Xanax’로 규정하며 덧붙인 말이다. 자낙스(Xanax)는 알프라졸람의 상품명으로 불안증, 공황장애, 우울증에 일시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의약품인데, 미국에서는 대표적인 오남용 의약품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일터에서 불안을 느끼면, 업부 집중력 저하로 인해 생산성의 손실로 이어진다. WHO는 직장 내 불안감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1조 달러가량의 손실로 추정하고 있다. 직장 내 불안은 점점 확산되고 있고, 관련 비용 역시 증가함에 따라 직장 내 불안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방법을 조직 내 HR과 리더들은 반드시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직장 내 불안이 항상 나쁜 것일까?

사실 그동안의 직장 내 불안 연구들은 주로 성과 저하와 비생산적 행동 증가, 비윤리적 행동 증가, 이직의도 증가 등 주로 부정적 영향에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진화적으로 인간에게 불안은 ‘투쟁 또는 도피(Fight of Flight)’라는 복합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불안은 불안 상태에서 도망치려는 행동을 야기하기도 있지만, 불편한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맞서 싸우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다음 날 시험을 봐야 하는 아이들이 만약 전날 저녁에 아무런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면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을 것이다. 스포츠 선수도 마찬가지다. 뛰어난 선수들은 두근거리는 불안감을 싸움에서 이기고자 하는 열망과 흥분의 신호로 바꾸는 달인들이다. 이처럼 인간에게 불안은 무조건 회피해야 할 대상만은 아니다.

최근 조직연구에서도 이러한 변화의 기류가 뚜렷하다. 불안을 부정적이고 없애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조직 내부에 무엇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에 관한 내부 경보 시스템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장 내 불안을 적응적으로 활용할 경우, 문제 예방 행동과 친사회적 행동을 조장할 수 있다는 증거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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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불안은 일상적인 경험이다. 생각해 보자. 직장 내 불안이 일상적인 경험이라면 일상적 활동으로 적절히 대응하게 만드는 것은 얼마나 지혜로운 일인가? 최근 이렇게 직장 내 불안을 일상적 활동으로 대응하는 방법에 관한 논문이 〈Journal of Vocational Behavior〉에 발표돼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논문의 제목은 <You’ve got mail! How work e-mail activity helps anxious workers enhance performance outcomes>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메일 수신! 어떻게 업무 이메일 활동이 불안한 직장인의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는가?“다.

 

“메일과 불안이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한 당신에게

직장인들이 불안을 느끼는 원천은 다양하지만, 크게 3가지 요인으로 나눠볼 수 있다.

  1. 업무 난이도, 업무량, 시간적 압박과 등의 ‘직무 요구’
  2. 리더의 공격성, 동료와의 갈등 등의 ‘대인관계 요인’
  3. 스킬 및 역량 부족 등의 ‘개인적 요인’

이 중, 직무 요구는 대표적인 직무 스트레스와 번아웃 요인으로 꼽힌다. 현대의 직장인에게 직무 요구는 직무기술서에 있는 내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직장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지는 이메일과 메신저를 통한 업무적 압박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이메일이나 메신저를 통한 업무 관련 압박에 즉시 응답하려는 집착과 충동을 텔레프레셔(telepressure)라고 하는데, 텔레프레셔가 클수록 불안을 크게 느낀다. 텔레프레셔가 높은 사람들은 일상의 직장 생활에서 긴장의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 수치가 클수록 일상의 스트레스와 불안 수준, 일 중독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궁금하면 아래 문항에 응답해 보길 바란다.

  1. 나는 누군가로부터 메일이나 메시지를 받으면 다른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
  2. 나는 메시지에 응답하고 난 후에 다른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다.
  3. 나는 메시지 응답을 완료하기 전까지 메시지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다.
  4. 나는 다른 사람의 말에 즉시 반응하고 싶은 충동이 높다.
  5. 나는 누군가의 요청을 받는 순간 바로 응답해야 한다는 느낌이 든다.
  6. 메시지에 즉시 응답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어렵다.
  • 출처: Barber, L. K., & Santuzzi, A. M. (2015). Please respond ASAP: workplace telepressure and employee recovery. Journal of Occupational Health Psychology, 20(2), 172.

그렇다면, 불안을 크게 느끼는 직장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일을 회피하고 잠깐 쉬는 시간을 가지면 업무 불안이 사라지고 집중력이 높아질까? 안타깝게도 그렇진 않다.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는 효능감(efficacy)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고 결과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일, 즉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정답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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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시작할 수 있고 결과가 바로 보이는 일은 여러 직무 요구 중 이메일을 활용한 업무가 딱 맞다. 이메일을 작성하여 전송을 클릭하면 완료 결과가 뜬다. 작지만 작은 성취의 순간이다. 또한 업무 이메일을 통해 업무 수행에 필요한 여러 중요 정보를 교류하기 때문에 업무 관련 내용을 논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전체 상황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러한 경험은 자신의 업무에서 보다 주도적으로 활약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다른 팀원들의 업무 현황에 대한 객관적 파악이 가능해 필요시 도움행동을 나타낼 수도 있다.

한 마디로 불안할 때 대인 관계가 필요한 업무는 오히려 불안감을 가중시키지만, 접촉을 피하고 업무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면 불안을 낮출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업무가 이메일 중심으로 처리되는 일이라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메일을 활용한 업무가 단발성이 아니고 이메일 중심적으로 진행되는 업무일 경우, 불안감을 느낄 때 이메일에 집중하는 것은 현명한 대처다.

딱 이것만 기억하자. 불안할 때는 작고 구체적인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 답이다.

출처: Cheng, B. H., Zhou, Y., & Chen, F. (2023). You’ve got mail! How work e-mail activity helps anxious workers enhance performance outcomes. Journal of Vocational Behavior, 144, 103881.

실제 현장 연구에서도 불안감을 느낄 때, 이메일을 활용한 일 처리가 불안을 낮추고 주도성과 도움행동을 더 많이 보인다는 결과를 얻었다. 특히 이메일 중심으로 업무가 처리되는 일일수록 그 효과는 더 컸다.

직장에서 불안은 언제 어떻게 우리를 덮칠지 모른다. 적절한 대처 방식을 잘 알고 있다가 불안이 엄습할 때, 활용하는 것은 성과는 물론이고 개인적 웰빙 수준을 유지하거나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한 스킬이다. 자기 스스로 통제감을 가지고 있다고 느낄 때 불안은 서서히 사라진다. 대인 접촉을 피하고 이메일을 활용한 업무 처리를 하는 건 이 효과를 누리기에 매우 적절한 기술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조직과 리더는 불안을 크게 느낄만한 업무 환경이나 구성원에게는 업무 이메일을 활용한 소통과 업무처리를 보다 빈번하게 할 필요가 있다.

원문: 박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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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구’도 아빠가 되겠지, 그래도 이 여름날을 기억해줘 https://ppss.kr/archives/267122 Tue, 21 Jan 2025 04:40:06 +0000 http://3.36.87.144/?p=267122 나는 짱구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빠다. 그래서인지 이 장면을 만난 순간 갑자기 마음이 울컥하는 게 느껴졌다.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어른제국의 역습〉에서의 한 장면이다.

아버지가 태워주는 자전거 뒤에 타고 있던 소년이 / 출처: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어른제국의 역습〉
장면이 전환되면서 짱구의 아버지 신형만이 된다. 등 뒤에는 아들인 짱구를 태우고 있다. / 출처: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어른제국의 역습〉

짱구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빠로서, 이 장면을 오랜만에 만난 순간 갑자기 마음이 울컥하는 게 느껴졌다. 이 장면에는 슬프다고밖에 할 수 없는 면들이 구석구석 담겨 있다. 하나는, 짱구가 아빠의 등을 바라보며 아빠의 자전거 뒤에 타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이날이 여름이라는 점이다. 세 번째는 별 생각 없어 보이는 짱구의 평온한 표정이다.

어 아이가 아빠의 뒤에 앉아 등을 바라보며 자전거를 타는 시간은 길어도 이삼 년 남짓이다. 그보다 어릴 때는 아이가 위험할 수 있어 등 뒤에 태우기 어렵다. 그보다 크면 스스로 자전거를 타려고 하지 굳이 등 뒤에 타려고 하지 않는다. 인생에서 패달에 발이 닿지 않는 아이를 등 뒤에 태우고 달리는 일은 아주 잠시, 지나고 나면 잘 기억나지도 않을 짧은 시절의 일이다.

낚시대를 어깨에 올린 채 자전거를 몰며 여름에 떠나는 나들이라는 것도, 그리 자주 있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어쩌면 짱구 아빠는 매일같이 회사에 출퇴근하며 일하다가, 일 년에 딱 한 번 낸 여름휴가를 가족과 보내기 위해 힘을 냈을 것이다. 뭉게구름이 솟아 있는 좋은 날, 아직 아이는 부모와 함께 여름을 보내는 그런 날, 인생에 몇 번 없을 여름휴가가 그 속에 담겨 있다. 몇 년 뒤 아이가 아빠의 자전거 뒤에 타서 낚시를 따라나서는 일은 끝날 것이다.

인생과 시간의 진실이랄 것을 딱히 알 리 없는 짱구의 표정은 마치 자신이 영원히 그대로 그 자리에 있을 거라 믿는 것처럼 평온하다. 인간의 삶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지나가며 잊혀지는 일이라는 걸 아이는 아직 제대로 모른다. 아이는 언젠가 자신이 어른이 되고, 아빠가 될 거라는 걸 머리로는 알겠지만 그래도 지금이 그대로 영원할 줄 믿고 있다. 언젠가는 엄마와 아빠로부터 떨어져, 다른 누군가와 여름을 보내며, 삶을 사랑할 것을 아직은 모르고 있다.

사진: UnsplashPriscilla Du Preez ????????

요즘 가끔씩 아이의 두 눈을 뚫어지게 바라볼 때가 있다. 언제 이렇게 컸나, 아직 어린데, 아직 앳된 얼굴인데, 아직 이렇게 귀여운데 참 많이 컸다. 그리고 아이가 아내와 이야기 나누는 걸 가만히 듣는다. 아직 발음이 아이 발음인데, 완벽한 어른 발음은 아닌데, 아직 아기 같은데, 그래도 정말 많이 컸다. 그래도 아직 부모가 자기의 세계이고, 엄마와 아빠랑 함께 있는 걸 좋아하고, 같이 놀아달라고 하고, 어디든 따라다니는 나의 강아지인데, 이제는 친구랑 노는 걸 더 좋아하기도 하고, 자기 세계도 만들어간다. 그런 것들이 눈앞에 손에 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가끔 아이를 곁에 누이고 아이가 해달라고 하는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하는 안도의 마음이 든다. 문어 나라 이야기, 굼벵이 세상 이야기 같은 걸 제멋대로 지어내 들려주면, 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는 듯 깔깔 웃는다. 내가 집에서 운동을 할 때마다 옆에 와서 따라 하는 걸 보고 있으면, 아직 나와 너는 연결되어 있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이 여름도, 우리 셋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보내는 나날들도 점점 끝나가고 있다는 건 안다.

나는 삶을 우울하게 보는 사람이 아니고, 내가 어떤 삶의 국면에서도 나름의 기쁨을 잘 찾아낼 것을 스스로 믿는다. 그렇지만 삶이 본질적으로 슬프다는 사실은 잊지 않으려 한다. 언젠가 나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준 아버지, 나에게 그림을 가르쳐주고 이야기를 들려준 어머니의 자리에 내가 와 있듯이 아이도 커서 다시 이 자리에 서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때쯤 되어 나의 흩어질 마음을 아이가 기억해 주고 이해해 준다면 삶의 가장 깊은 위로가 될 것 같다. 우리는 어쨌든 한 번뿐인 삶의 슬픔을 껴안고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아야 한다.

아마 20년쯤 뒤에도, 짱구는 여전히 짱구일 것이고, 짱구 아빠는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한 뒤 돌아와 땀 채인 발의 냄새를 풍기는 짱구 아빠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빠의 자리에는 아이가 있을 것이고, 아이는 또 다른 짱구를 품에 안으며 이 시절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원문: 정지우 문화평론가 겸 변호사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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