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 https://ppss.kr 필자와 독자의 경계가 없는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Thu, 22 Sep 2022 02:19:11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5.8.10 https://ppss.kr/wp-content/uploads/2015/07/ppss-100x100.png ㅍㅍㅅㅅ https://ppss.kr 32 32 꼭두새벽부터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 https://ppss.kr/archives/256914 Thu, 22 Sep 2022 02:19:11 +0000 http://3.36.87.144/?p=256914 1.

장르가 불분명한(아무튼 희망찬) 배경 음악이 흐르고, 진행자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발효기 안을 살펴본다. 라디오에서 울리는 오프닝 시그널을 기점으로 치아바타를 구울지 말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멘트까지 완벽히 외워버린 중간 CM송이 나오면 바게트 반죽의 상태를 확인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백오십 그람씩 나눈다. 무게에만 치중하느라 각 없이 잘려 나간 반죽을 매끈히 다듬고 다시 삼십 분을 기다린다.

새벽 방송이니만큼 아주 가끔 진행자가 늦거나 돌발 상황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럴 땐 빵이고 뭐고 내가 늦기라도 한 것처럼 같이 초조해진다. 밀가루와 사투를 벌이면서도 라디오 속 DJ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쇼케이스 안엔 빵이 빵빵하게 채워져 있다. 라디오를 통해 시계를 보지 않아도 시간을 가늠하고 진행 코너에 따라 순간 잊고 있던 요일을 상기한다. 여러모로 고마운 라디오다.

어릴 적엔 라디오를 맡에 두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세탁소 아저씨를 지나칠 때마다, 듣지도 않으면서 온종일 라디오를 켜 두는 저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정읍에 계시는 할머니가 다 낡아빠진 라디오를 애지중지하는 모습이 눈에 밟혀 알바로 받은 첫 월급으로 카세트 라디오를 선물해드린 기억도 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틱톡까지 합세해 영상 콘텐츠가 차고 넘치는 요즘 세상에 라디오를 붙들고 있는 내 신세가 어째 좀, 세상을 거꾸로 들어 올리는 느낌이긴 하다.

 

2.

나의 라디오스타는 중학생부터 고등학생이던 시절까지 다양하게 포진해 있다. 지금도 명맥을 이어가는 <영스트리트>와 <별이 빛나는 밤>은 그 시절 청춘스타만이 진행할 수 있었다.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 속 그의 촌철살인은 타이핑해서 간직할 정도로 사춘기이던 우리의 마음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가 게스트로 나오는 날엔 공테이프를 준비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라디오 앞에 섰다. 주파수가 맞지 않아 지지직거리면 온 신경을 곤두세워 조심스레 레버를 돌렸다. 녹음을 마친 따끈한 테이프는 다음날 학교에 가져가서 다 같이 돌려 들었다. 프로그램을 놓친 친구에게도, 이미 외울 정도로 듣고 또 듣는 내게도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

하도 들어서 테이프가 늘어지는 바람에 말간 목소리가 기괴해져도 날짜와 프로그램명을 적어 책상 한편에 착착 모셔두었다. 지금은 팟캐스트로 언제든 듣고 또 들을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DJ의 목소리는 오로지 그 시간 라디오를 통해서 들을 수 있을 뿐, 지나간 순간은 다시 듣지 못했다. 그래서 더 소중했다.

라디오를 그만 듣겠다는 결심은 한 적은 없는데 멀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딱히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배우도 없고 머리 좀 굵어졌다고 DJ의 선곡보다 내 취향 가득한 플레이리스트를 더 아끼게 된 것이다. 나이가 찰수록 라디오 따위를 들으며 가만히 앉아있을 여유도 없었다. 대학생이 된 이후로 라디오를 즐겨 듣던 저녁은 가장 바쁜 시간이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던 것 같다. 끝까지 라디오를 놓지 못한 친구 하나는 신해철 씨가 고인이 되고 난 뒤로 라디오는 아예 곁에 두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러던 내가, 그것도 이 시대에, 방송국의 개편 사정까지 꿰뚫는 형편이 된 것이다. 라디오스타는 정녕 어른들만의 세계였을까. 이제야 라디오 앞에서 꾸벅꾸벅 졸던 세탁소 아저씨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엔 아흔이 다 되어가는 정읍 할머니께 신식 카세트 라디오를 사서 보내드렸다.

라디오의 속도에 맞춰 쇼케이스도 채워진다

모두가 잠들어있는 새벽녘 출근길은 고되고 또 외롭다. 새벽 다섯 시에 시작하는 프로그램을 꾸리기 위해 나와 마찬가지로 힘겹게 집을 나섰을 제작진이나 진행자, 게스트를 떠올리면 무거운 새벽 공기가 그제야 가벼이 흩날리는 것 같다. 어느 날은 DJ가 빵을 구우면서 잠깐 짬을 내어 보냈다는 청취자의 문자를 읽어주었는데 그게 뭐라고 키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말고도 커다란 트럭을 운전 중인 청취자, 삼 교대 근무로 인한 새벽 출근하는 청취자, 급기야 퇴근 중인 사람까지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이 시간에 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고단하고 억울한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3.

새벽을 여는 사람은 골목에도 있다. 업무 특성상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는 사람도 꽤 보인다. 종종 환경 공무원과도 마주치는데 우리는 그 고요한 골목이 떠나가도록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안녕하세요!

그사이 새벽 배송을 하는 분들도 분주히 박스를 실어 나른다. 네모난 전동카트를 끌며 가게 앞을 지나는 일명 요구르트 아주머니들의 위풍당당한 모습도 볼 수 있다. 껌껌한 새벽이어도 빠른 걸음으로 산책을 하거나 러닝을 하는 부지런한 사람도 간혹 눈에 띈다.

가게를 시작하면서부터 당연하게만 여겼던 것에 대해 일종의 경외심을 느낀다. 예전이었으면 일상의 진부 정도로 치부했을 모든 일이 이젠 놀랍도록 생경하다. 빵집을 하지 않았다면 영영 마주치지 못했을 하루를 빨리 맞이하는 사람들, 나를 포함해서 이들은 대개 남들보다 하루를 일찍 끝내느라 일상에선 만나기 쉽지 않다.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의 활동만이 사회의 동력이라 생각했던 내 키가 한 뼘은 더 자란 것 같다.

그나저나 나도 참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이지 싶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쳇바퀴인 일상이 싫다고 했으면서, 매일 같은 시간에 흐르는 라디오 시그널이 그렇게 특별하고 소중하다니. 때마침 일곱 시를 알리는 시그널이 들려왔다. 내 손엔 어김없이 갓 뽑은 뜨끈한 커피가 들려있다. 밀가루를 뒤집어쓴 채로, 가게 문을 열고 좌우를 살피면서 커피 한 모금을 넘긴다.

여유도 아주 잠시, 타이머가 자르르 울리기 시작한다. 거참, 눈치도 없지!

원문: 오가닉씨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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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딸에게 해주는 당근라페: 비록 그게 볶음일지라도 https://ppss.kr/archives/251739 Wed, 23 Feb 2022 05:03:32 +0000 http://3.36.87.144/?p=251739 1.

이게 뭐야?”

“뭐긴. 너 맨날 먹는 그거, 당근.”

“그래, 당근. 그러니까 당근라페 말하는 거야?”

“뭐? 당근라떼? 러페?”

아직도 엄마는 나를 어린 애로 여기는 것이 틀림없다. 이따금 직접 만든 반찬을 내보이면 엄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애’가 반찬을 해오다니 엄마 눈엔 그게 얼마나 어설퍼 보였는지, 피식 웃기까지 하신다.

얼마 전에는 제주 당근이 가장 맛있을 때라 하여, 당근라페를 만들어 가게에 가져갔다. 활동량이 많은 만큼(아니 실은 그 이상으로) 먹어대서 불어난 살을 빼려고 가볍게 끼니를 때울 요량이었다. 마침 내가 만든 빵과도 잘 어울렸으니 이만한 채소 반찬도 없었다.

당근라페는 당근을 잘게 썰어 소스에 절인 프렌치 샐러드다. / 출처: ROUXBE

파릇한 잎채소 위에 오른 주황의 당근. 이 추운 겨울에 푸성귀만 먹으려니 허한 데다가 비주얼도 영 심심했는데, 주황빛의 가느다란 당근채를 얹으니 한결 나아 보였다. 내가 먹는 걸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엄마는 말했다. 네가 어쩐 일로 그럴듯한 반찬을 해냈냐는 말씨였다.

당근이야? 채도 얇게 잘 썰었네.

겨우 한 이틀 도시락을 자급했을 뿐인데 그마저 힘겨웠다. 이를 귀신같이 알아챈 엄마는, 다음 날부터는 당신이 샐러드를 가져다주겠노라 했다. 엄마의 샐러드는 투박할 것이 분명했지만 가릴 처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다음 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엔 내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무슨 일인가. 엄마가 당근라페를 해온 것이 아닌가!

 

2.

사실 인천에 가게를 열게 된 몇 가지 이유 중에는 엄마가 사는 도시라는 점도 있었다. 퇴사를 결정하고 가게를 알아보면서 당연히 내가 살던 동네를 일 순위로 고려했다. 하지만 왜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던 중 엄마네에 들렀다가 우연히 예전에 살던 지금의 동네를 지나게 된 것이다. 주름이 늘어버린 내 얼굴과 마음과는 달리 모든 게 그대로인 이 동네에 나는 흠뻑 빠져버렸다. 엄마 집과 차로 15분 거리라 그런지, 왜인지 이곳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확신이 섰다.

가게를 열고 두어 달쯤 지나 엄마가 합류했다. 엄마는 두어 시간 동안 새벽녘 내가 이끈 전쟁터를 정리했다. 다음 날 치를 전쟁을 준비하는 것도 엄마의 몫이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주방 경험이라곤 집밖에 없던 엄마에겐 꽤 어렵고 낯선 일이었을 것이다(나는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이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엄마가 주로 해온 일이 비교적 활동적인 마트 판매일이었으므로, 이 어두컴컴한 주방에 선 엄마는 꽤 외로웠을 것이다. 그나마 말동무라고는 딸내미뿐인데, 모든 게 서툴던 그때는 극도로 예민하던 때라 가시가 잔뜩 돋친 내게 쉬 말을 걸거나 볼멘소리는 전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의 도시락

모든 것이 낯선 상황. 나였다면 꽤 괴로웠을 그 상황에, 그래도 엄마가 유일하게 마음 놓고 웃는 시간이 있었다. 내가 당신이 싸 온 도시락을 먹을 때였다. 한참이나 때를 놓치고 점심이라고 하기도 무색한 끼니를 때워야 하는 내게 엄마는, 매일같이 갓 지은 밥과 다른 종류의 반찬을 내놓았다.

여름엔 커다란 통에 시원한 냉국을, 겨울엔 따끈한 수제비를 담아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거의 매일을 보는데도 엄마의 손엔 한 달은 너끈히 먹고도 남을 양의 음식이 담긴 보따리가 들려있었다. 엄마는 때가 아니라며, 겨우 앉아 허겁지겁 식사하는 나를 말 없이 바라봤다. 그때만큼은 종종 늘어놓던 잔소리를 내려놓았다.

들릴 듯 말 듯 혼잣말로 뭔가 먹고 싶다고 하면 다음 날 엄마의 보따리엔 꼭 그 음식이 들려있었다. 국물보다 건더기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잘 아는 엄마가 엄마가 끓여준 된장찌개는 정말 묵직했다. 국물은 그저 양파, 호박, 묵직한 두부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을 뿐, 뜨끈하고 구수한 자신의 역할은 해내지 못했다.

급기야 엄마의 보따리는 우리 집 냉장고에까지 들어섰다. 어떻게 너만 먹냐며 남편에게도 챙겨주라는 것이었다. 거의 매일같이 반찬이 수급되니 애매하게 먹다 남은 반찬이 냉장고가 칸칸이 자리했다. 솔직히 가끔 숨이 막혔다. 나도 내 뜻대로, 내 방식대로 해 먹고 싶은 것이 있는데 냉장고를 열 때마다 빈틈없이 들어찬 통을 보면 그럴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살 안 찌는 김밥은 없을까? 하는 한 마디에 등장한 엄마의 창작 요리

이 때문에 엄마와 다투는 일이 잦았다. 엄마의 밥상머리에선 금기(?)나 다름없는 간에 대한 불평부터, 아직 집에 많이 있는데 또 가져다주면 어떡하냐, 보지도 않고 대뜸 뭘 또 그리 많이 가져왔냐는 나의 말이 화근이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나와 팽팽히 맞서기도 했고, 때론 그냥 웃어넘기기도 했다. 그리고는 꼭 오래된 건 버리라는 말을 덧붙였다.

대체 엄마의 반찬을 아무렇지 않게 내다 버릴 자식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하지만 손에 닿지도 않는 냉장고 저 끝에 둔 반찬은 결국 쉬어버리기 일쑤였다. 그 괴로움 덩어리를 앞에 두고 혹시나 더 두고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이리저리 살피며 한참을 서성였다. 엄마의 반찬은 한참이나 내 속을 끓이다 결국 음식물쓰레기봉투로 곤두박질쳤다.

 

3.

엄마의 당근라페 아니아니 당근볶음(!)

엄마가 당근라페를 알 리 없었다. 한 번도 그에 관해 말한 적도 없었고, 엄마가 물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근라페의 핵심인 홀그레인 머스터드가 엄마의 냉장고에 있을 리 없다. 그렇지만 엄마는 보란 듯이 당근라페를 만들어 주었다. 당근을 얇게 채 썰어 기름에 볶고 참깨를 뿌린, 이게 엄마표 당근라페였다.

당근라페, 아니 당근 볶음을 받아 든 나는 말 없이 웃었다. 깔깔거리니 엄마는 그렇게 그게 좋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두 번이나 힘주어 말했다.

당근은 역시 기름에 볶아야 그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어.

당근을 채 썰어 볶은 게 얼마나 맛있겠냐만은, 정말로 맛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달큰한 당근임이 틀림없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엄마 손에 들린 보따리에 토를 달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딸이 좋아하는 걸 해먹이고 싶은 엄마 마음을 꼬박 서른여덟 해를 넘기고 나서야 겨우 알아챘기 때문이다. 참 오래도 걸렸다.

 

진짜 당근라페 만들기

제주도의 대표적인 월동채소 중 하나인 당근. 본래는 가을 뿌리채소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따뜻한 날씨로 제주의 당근 출하량이 평년보다 15% 정도 증가했다고 해요. 그래서 지금 가장 맛있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어요.

제 빵과 먹을 때가 가장 맛있어요 ㅎㅎ

  1. 당근을 채 썰어 준비합니다. 되도록 슬라이서를 이용하는 게 좋아요. 최대한 얇게 썰어야 식초, 홀그레인 머스터드의 향이 잘 베니까요.
  2. 채 썰어둔 당근에 소금을 살짝 넣어 절여둡니다. 10분~15분 정도면 충분해요.
  3. 당근을 절이는 동안 홀그레인 머스터드, 올리브 오일, 레몬즙(혹은 식초도 가능), 취향에 따라 설탕을 섞어줍니다. 이런 절임 소스를 만들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이 모든 건 ‘취향’에 따릅니다. 그래서 저는 계량도 제대로 하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시큼한 맛보다 홀그레인 머스터드의 걸걸한 향을 좋아해서 잔뜩 넣었습니다. 맛있는 당근은 그 자체로 달큰해서 따로 설탕은 넣지 않았습니다.
  4. 절여둔 당근과 위의 소스를 비비적거립니다. 대부분의 음식이 그렇듯 당근라페도 최소 하루는 지나야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새를 참지 못하고 간을 핑계로 입에 넣었습니다.

술안주로도 훌륭합니다

사실 당근라페의 진짜 매력은 다른 음식과 곁들여 먹을 때 드러납니다. 저는 빵쟁이라 주로 빵과 샐러드와 먹는 걸 선호합니다. 달큰하면서 아삭한 당근 사이로 홀그레인 머스터드가 톡 터지며 자칫 심심한 빵의 포인트가 되어주거든요.

물론, 엄마표 당근라페, 아니 당근 볶음도 당근을 맛있게 즐기는 데에 충분합니다.

원문: 오가닉씨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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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은 아닐 거예요, 크리스마스에는 슈톨렌을 https://ppss.kr/archives/248970 Mon, 27 Dec 2021 03:11:11 +0000 http://3.36.87.144/?p=248970 실패는 쉽게 물러서는 법이 없다. 기어이 다음을 기약하고야 만다. 기약한 다음은 기척 없어도 나긋하다. 달콤하기까지 하다.

작년 이맘때 일이다. 가게를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파네토네를 준비하고 있었다. 파네토네는 이탈리아 밀라노 지역의 빵으로, 연말을 큰 명절로 삼는 유럽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즐기는 다양한 빵 중 하나다. 정신없이 바쁠 때였지만 가게를 열고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라 특별한 빵을 굽고 싶었다.

가장 먼저 체리, 크랜베리, 살구, 무화과를 럼(rum)에 절여두었다. 뭐가 됐든 크리스마스 빵이라면 반드시 요긴히 쓰일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나는 11월 말부터 12월 중순까지 짬이 날 때마다 맛있는 파네토네를 위해 반죽하고 굽기를 반복했다. 결과는 실패. 썩 나쁘지 않았지만 내 입맛엔 무언가 부족했다. 명색이 빵집인데 크리스마스엔 민망할 정도로 조용한 연말을 보냈다.

파네토네의 실패 따윈 인정하면 그걸로 그만이었다. 그런데 절여둔 건과일이 문제였다. 치열한 싸움에서 지고 난 뒤라 극도로 예민한 상태이던 나는 그 길로 모든 걸 하수구에 부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니지, 그건 정말 아니지, 거친 호흡을 겨우 고쳐 다듬었다.

럼에 절여둔 건과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풍미가 진해진다고 하니 언젠가 쓰일 일이 있겠지 싶었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파네토네나 슈톨렌을 만들 때 길게는 수년 동안 절인 건과일을 사용한다니까, 아쉽고 화나지만 내년 크리스마스를 기약하며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는 손에 닿지 않고 쉽게 보이지도 않는 선반의 맨 꼭대기에 올려두었다. 벌써 1년이 지난 일이다.

건과일이 든 커다란 통은 일 년 동안 저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폭염이 기승이던 날엔 오븐 앞에서 뻘뻘 땀을 흘리던 나를, 스스로 시험대에 오르락내리락하다 날카로워진 나를, 추운 겨울인 더뎌진 발효를 애타게 기다리는 나를 말이다. 어쩌다 눈에 띄면 실패의 쓴 기억이 떠올라 죄 없는 통을 쏘아보기도 했다. 그러다 드디어 결전의 12월을 맞은 것이다. 저것들을 어떻게든 써먹어야 한다. 복수다!

 

환상적인 달콤함, 슈톨렌

독일에서는 12월 초부터 크리스마스 당일까지, 매주 일요일마다 가족과 슈톨렌을 나눠 먹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브뢰첸(Brötchen)이나 풀콘 브로트(Volkorn brot) 등 평소에 독일인이 즐겨 먹는 담백한 빵에 비하면 슈톨렌은 혀가 녹을 정도로 달달한 편이라 한 번에 먹지 않고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번 나누어 먹는다.

슈톨렌은 가운데부터 썰어 먹고 남은 두 덩이를 붙여 보관한다.

얇게 썬 슈톨렌 한 조각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보통 크리스마스 당일) 마지막 조각이 남는데, 이 조각은 가장 달콤하고 절정의 풍미가 돈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숙성하고 촉촉해지는 슈톨렌의 특징 때문이다. 한 해의 끝을 코앞에 두고 절정의 달콤함을 즐기려는 점잖은 인내였을까.

슈톨렌 겉에 잔뜩 뿌려진 새하얀 슈가파우더는 중세 수도사가 걸친 망토 혹은 아기 예수 위에 쌓인 눈을 형상화했다는데, 이 독특한 모양만 봐도 사연 많은 특별한 빵으로 여겨진다. 반죽에 들어가는 시나몬, 카다몬, 레몬 등 향신료의 조화도 그야말로 크리스마스 맛 그 자체다. 슈톨렌 특유의 맛을 헤치지 않고, 맛을 돋우는 홍차나 와인과 함께라면 더 풍성한 크리스마스 식탁을 완성할 수 있다. 그래서 올해는 슈톨렌을 구워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몇 번의 테스트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어냈다. 토종밀인 백강밀도 원 없이 썼다. 개인적으로 너무 단 것은 부담스러워서 덜 달게, 향신료의 맛이 튀지 않도록 레시피를 다듬었다. 발효가 잘된 반죽을 넓고 기다랗게 펴고, 동글게 굴린 마지판과 그 양쪽 끝으로 졸인 보늬밤도 올렸다.

이렇게 하면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즈음, 즉 슈톨렌을 다 먹어갈 즈음 달콤한 보늬밤을 맛볼 수 있을 테다. 몇 번의 주말을 반납하고 한 작업이라 체력이 바닥난 지 오래지만, 손님과 이 독특한 맛과 경험을 나눌 수만 있다면야 이까짓은 충분히 견딜만했다.

다행히 슈톨렌을 맛본 손님들의 반응이 꽤 좋았다. 슈톨렌의 안녕을 묻는 것이 곧 손님의 안부를 묻는 것과 같았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풍미에 대한 수다도 떨었다. 이미 한 덩이를 해치우고 또 구매하는 분도 계셨고, 슈톨렌은 처음인데 성공이라며 뿌듯해하는 손님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지난 한 달 동안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손님과 슈톨렌 이야기를 한 것 같다. 파네토네, 팡도르와 같은 다른 크리스마스 빵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12월 한 달 동안 손님과 나는 유독 더 깊고 진한 안부를 나누었다. 드디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마지막 하나 남은 슈톨렌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빵이라 내용물은 물론 포장도 중요하다.

기분이 묘했다. 지난 1년 동안 애를 썼던 기억이 떠올랐나 보다. 가게를 열고 지금까지 단 하루도 자책하지 않은 날이 없다. 빵의 모양이 조금만 틀어져도 스스로 어찌나 모난 말을 했는지 헤아려보니 밖으로 꺼내지 못할 정도로 거친 말뿐이었다. 반죽 덩어리를 오븐에 넣으면 이미 손을 떠난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끝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짧고 굵은 자극이 몰려왔다. 나 자신에게 이 정도까지 해야 했나 싶어 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물론 빵이 맛있다는 손님의 한 마디가 큰 힘이 되었지만, 끝내 멈추지 못한 자책은 맘속에 켜켜이 쌓여갔다. 아무래도 작년 크리스마스의 실패를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아 두었나 보다.

어쩌면 단 몇 번의 테스트만으로 원하는 풍미를 얻은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일 년 동안 럼에 절여둔 건과일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까 작년의 실패 덕인 것이다. 사실 실패가 어디 이뿐이랴. 주방 곳곳엔 크고 작은 실패를 메운 흔적이 역력했다. 처음엔 없던 서큘레이터와 전기히터, 이중 진열대도 적절히 자리했다. 여름엔 덥다, 겨울엔 춥다, 비좁다고 징징댈 때마다 남편이 나서 구멍을 메워준 흔적이다.

향이 좋은 커피, 꽉 찬 간식 통, 하나둘씩 늘어난 화분 덕에 차가운 겨울인데도 가게는 따뜻하다. 실패와 자책으로 헛헛한 마음을 누군가 보듬고 있던 것이다. 럼의 향을 빨아들인 건과일의 풍미가 진해지는 것처럼, 나도 모르는 새에 진한 위로가 가게에 스미고 있었다. 처음 반죽을 만져보고 작은 가게를 상상하던 때부터 줄곧 이 순간을 꿈꿔왔지만, 앞만 보고 달리느라 알아채지 못했다.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다.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내 노력의 결실이다. 슈톨렌처럼 달콤히, 이번만큼은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별안간 떠오르던 묘한 기분을 매만졌다. 큰 탈 없이 지난 1년을 버틴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하얗고 고운 습자지에 마지막 슈톨렌을 넣고 안도를 담아 봉인했다.

남편과 나를 위한 슈톨렌 한 덩이는 따로 남겨두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드디어 마지막 한 조각을 썰었다. 알코올 향이 달아난 건과일과 향신료가 뒤섞인 오묘한 향이 혀를 감돈다. 쿠키와 파운드케이크 사이를 오가는 식감이 재밌다. 달큰한 건과일 사이로 오독오독 씹히는 견과가 묵직하다. 지난 1년의 찐한 풍미가 느껴진다.

잘 영근 슈톨렌 한 조각 = 온 세상

이 한 해, 그 끝에서, 부디 당신도 미치도록 환상적인 달콤함을 만끽하길 바란다. 달콤함은 우연이 아니다. 부단히 살아온 한 해, 그 자체다.

 

마치며

겨울, 특히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밤이면 꼭 듣던 곡입니다. 스무 살 무렵, 밤이 되면 동네 친구랑 근처 공원에서 만났어요. 그렇게 수다를 떨어 놓고 아쉬워서 그 야밤에 친구네로 올라갔어요. 눈이 펑펑 내리던 날인데 그날도 어김없이 친구네에 갔죠. 음악을 참 좋아하던 그 친구가 꺼낸 CD에서 이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왜인지 눈도 펑펑 눈물도 펑펑 흘렸던 기억이 나요.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르고 흘러서 그 친구는 아직도 그 집 근처에 살고 저는 그 집 근처에서 빵 가게를 해요. 종종 친구가 아이들이랑 가게에 찾아오면 아직도 그때 듣던 노래 이야기를 한답니다. 레미 숀드(Remy Shand)는 캐나다 아티스트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엔 활동이 뜸한 것 같아요. 캐나다의 겨울이 깊어서일까요.

이 ‘록스테디(Rocksteady)’ 포함, ‘더 웨이 아이 필(The way I feel’ 앨범 전곡이 겨울에 귤 까먹으면서 듣기 참 좋습니다. 물론 저는… 알코올과 함께 듣는 걸 좋아해요!

원문: 오가닉씨의 브런치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수플레)’는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았을까 궁금해 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시길 추천합니다.

구독과 공감, 댓글은 더 좋은 매거진을 위한 원동력이 됩니다. 매주 수요일 ‘수플레’를 기다려주세요! (비슷한 감성의 음악 공유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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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여름의 빵을 추억하며, 빵집의 한여름 https://ppss.kr/archives/246596 Thu, 14 Oct 2021 04:06:02 +0000 http://3.36.87.144/?p=246596

지금 감자가 맛있을 땐데 빵에 좀 넣어봐.

매일 아침 들르는 단골손님께서 들릴 듯 말 듯 말씀하셨다. 순간 아차 싶었다. 여름과 감자. 아아! 여름이지 참.

나의 지난 브런치 글을 유심히 본 분이라면 알겠지만 여름은 그야말로 글 대목이다. 여름 글 맛집이라고 자부할 정도인데 하마터면 올해는 그냥 넘어갈 뻔했다. 사실 몇 해 전 여름부터는 무더위로 푹 퍼져서는 배달 음식만 먹어댔다. 먹을 게 지천이라 손 바쁜 여름이 어쩐 일로 잠잠해진 것 같아 서글프다는 그해 고백은 현실이 되었다.

올해는 더했다. 빵집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에 시작된 일상은 여름이 되어서야 겨우 적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폭염으로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했다. 반죽을 떼어 뭉치고 돌아서면 부풀고, 이전과 같은 양의 물을 넣어도 끓는 온도에 반죽이 축축 처졌기 때문이다. 레시피를 조금씩 수정해야 했고 작업 순서 변경이 불가피했다.

아무리 에어컨을 틀어도 거대한 오븐의 열기를 이기진 못했다. 아직 여름을 입지 못한 두꺼운 작업복 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사이 토마토는 영글고 감자는 단단해졌으며 옥수수는 알알이 맺혔다. 푸성귀는 더 푸릇해지고 바질 향도 진해졌다.

손님이 가게를 떠난 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길로 근처 생협에서 하지(여름) 감자와 가장 많이 보이는 방울토마토를 사서 돌아왔다. 그새를 못 참고 방울토마토 하나를 꺼내 앙 베어 물었다. 짭조름하고 달았다. 껍질은 단단했고 맛이 진했다. 방울토마토는 오븐에서 낮은 온도로 오래 말리기로 했다. 이것이 날린 수분만큼 달콤하고 짭찌름한 맛이 농축된 ‘선드라이드 토마토’다.

볕이 아니므로 정확히는 ‘오븐 드라이드 토마토’겠지만.

게다가 토마토는 수분이 많아서 빵 반죽에 그대로 들어가면 반죽을 헤칠 수 있기 때문에 말리는 건 여러모로 당연한 선택이다. 감자는 아주 얇게 썰었다. 이대로 오븐 열이 닿으면 은은한 감자 향이 맛이 강한 방울토마토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런데 뭔가 빠진 느낌이 들었다. 뭘까, 뭐지. 바로 그때 앞집 서점 사장님이 준 바질이 생각났다. 이거다. 화룡점정 비장의 무기가!

서점 사장님은 여름부자다.

감자와 토마토 그리고 바질. 듣기만 해도 완벽한 여름 조합이다. 그렇게 한여름을 듬뿍 얹은 빵이 탄생했다. 꾸덕해진 방울토마토를 보니 지난여름 내내 해 먹던 오일 절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여름을 그득그득 담은 일명 ‘한여름병’도 진열대 한 편에 자리했다.

애초 빵집을 구상할 때부터 계절이 있는 빵집을 꾸리는 것이 계획이었다. 사실 다른 음식과는 달리 빵에 계절을 담긴 어렵다. 주재료인 밀가루만큼 더 들어가는 것이 계절과는 거리가 먼 버터, 달걀, 설탕, 우유 등이기 때문이다. 물론 요새는 제철 과일이나 밤, 쌀, 등의 곡물을 이용한 빵이 시중에 많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1년 내내 볼 수 있는 빵이 대부분이다. 엄밀히 계절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오픈 당시만 해도 나의 욕심으론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설탕, 버터, 우유, 달걀을 넣지 않는 빵을 만들고, 부재료를 많이 넣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밀과 그 풍미에 집중하는 빵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건과나 견과류, 곡물을 넣어 반죽에 어울리는 재료로 다양한 맛을 낸다.

여기에 한 가지 정도는 계절에 맞게 만들고 싶었다. 이를테면 가을엔 곡식, 여름엔 과채, 봄엔 나물 등을 말이다. 손님들도 밋밋한 빵보단 담백하면서 풍성한 맛을 좋아해 주시기 때문이다.

한여름 시리즈.

사실 이런 부재료 말고도 ‘제철 빵’이라는 것이 있긴 하다. 빵의 주재료를 생각하면 쉽다. 생각할 것도 없이 밀가루다. 밀은 한여름에 수확한다. 따지자면 빵의 제철은 여름인 셈이다. 우리에겐 아직 생경한 ‘햇밀’이 그것이다. 대개 우리밀이나 수입밀은 각지에서 수확한 밀을 한 군데에 모아 제분해, 포대에 담긴 것이 1년 내내 쓰인다. 나는 기성 우리밀과 유기농밀을 섞어 쓴다. 수입 유기농밀을 섞어 쓰는 건 우리밀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제빵력 때문이다.

신념을 내세워 우리밀만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빵이 무거워지고 산미가 강해져서 손님의 선택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자영업이 처음인 나는 거듭 고민 끝에 이를 장기적인 목표로 삼기로 했다. 물론 지금도 일부 빵에 지역에서 토종 밀 등을 직접 제분하는 일명 ‘농가밀’을 쓰긴 하지만 아직 내세울 정도는 아니다.

빵의 제철을 고민하면서 토마토, 감자, 바질을 빵에 넣은 건 여러모로 좋은 선택이었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이 무겁다. 이 햇밀을 마음껏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햇밀을 잘 사용하려면 해마다 밀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토마토가 매일, 매해 다른 것처럼 밀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레시피만 몇 번을 바꿔야 한다고 한다.

게다가 우리 집은 양이 많지 않고, 농가밀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축적한 데이터가 부족해 아직 농가 밀을 쓰긴 엄두가 안 난다. 틈틈이 써보고는 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다. 이 때문에 당분간 기성밀을 사용하고 다양한 농가밀을 사용하는 것을 장기적인 목표로 삼자고 스스로 타협한 부분이다. 물론 시기가 더 앞당겨질 수도 있겠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현재 햇밀에 대한 연구와 여러 협업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도시장터인 마르쉐@는 해마다 이 햇밀을 다루는 워크숍과 장을 마련하는데 올해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병행된다고 한다. 햇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나로선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2020년 마르쉐@혜화 ‘햇밀장’. / 출처: 마르쉐@

빵집에서 처음 맞는 한여름이 완벽하진 않아도 분명 고무적이긴 하다. 비록 나는 느끼지 못한 여름을 우리 집에 다녀간 손님들은 충분히 만끽한 듯싶다. 한여름을 단 빵과 병을 사간 손님들이 인스타그램 댓글이나 메시지로 이런저런 후기를 남겨주었다. 마치 한여름을 통째로 먹는 것 같다고도 했고, 아이스크림보다 시원해서(?) 입안이 얼얼하다는 재치 있는 후기도 있었다. 토마토가 이렇게 빵과 잘 어울리는 건지 처음 알았다는, 빵쟁이로서 뿌듯한 말씀도 해주셨다.

계절을 식탁에서 접한다는 나의 고집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건 아니다. 이렇게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빵에 담아보려고 한다. 계속해서 햇밀에 대한 고민과 연구는 제철인 여름을 지나도 겨울, 또 다음 해 봄에도 이어질 것이다. 이것이 그간 내가 경험으로 쌓은 가치를 빵에 담는 방식이다.

손님들의 반응을 찬찬히 읽는데 문득, 내게도 여름이 밀려왔다. 오븐 앞에서 그 누구보다 더운 여름을 보내면서 정작 여름을 느끼지 못한 신세가 야속했지만, 올해는 이만하면 되지 싶었다. 그 어느 해보다 특별한 여름을 즐겼으니 말이다.

원문: 오가닉씨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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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카레만 생각했다 https://ppss.kr/archives/243179 Wed, 04 Aug 2021 05:18:54 +0000 http://3.36.87.144/?p=243179

보글보글, 도도도돌, 두둘두둘.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 같은데 당최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당장 열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금 열면 특유의 향이 날아갈지 몰라, 놀라서 달아날지 몰라.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시간을 벌어보다가 괜히 칼을 쥐어 보고, 싱크대 위 부스럼을 정리하기도 한다. 정확히 몇 분 후라고 말하기엔 어렵지만, 여하튼 그 냄새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드디어 그 순간이 왔다. 냄비 뚜껑을 열어 볼 시간이 말이다.

 

맛있어져라!

그 냄새의 역사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감자, 당근, 양파, 양송이, 닭가슴살을 크게 크게 썰라는 R언니의 주문이 이어졌다. 그때만 해도 난 요리에 관심이 전혀 없었을 뿐 아니라 칼질조차 하지 못했던 때라 채소를 요리조리 옮겨보면서 칼을 대는 시늉을 했다. 옆에 있던 B언니가 “어휴! 이리 줘!”라며 칼을 가져갔다.

이렇게 크게?

응, 아니 아니 더 크게. 아주 큼지막하게, 그러니까 (손가락 마디를 내보이며) 이만하게.

물러난 나는 하릴없이 뒤에 서서 고군분투하는 두 언니를 바라보았다. 제일 막내인 내가 이래도 되나 싶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얍!

두 언니가 번갈아 가면서 주문 아닌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더 맛있을 거라고 했다. 흡사 마녀가 기괴한 수프를 끓이다가 손을 휘휘 젓는 것 같았다.

안 돼! ○○야, 아직 절대 열지 말고 기다려! 응?

그새를 못 참고 뚜껑을 열어젖히려던 나를 향해 R언니가 다급하게 말했다.

조금 뒤, 투명한 뚜껑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히자 R언니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냄비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드디어)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는 카레 가루를 물에 개어 냄비 안에 넣고 휘휘 저었다. 냄비 안이 금세 카레 빛깔로 노란 물이 들었다. 물이 든 건 냄비만이 아니었다. 너무 반가운 그 냄새, 아니 그 향은 집안 전체의 공기를 물들였다. 그리고 인생 카레를 먹었다.

그 후엔 가장 자신 있는 요리로 꼽을 정도로 카레는 내게 친숙한 음식이 되었다. 덩어리는 무조건 크게 썰고, 절대 그 ‘냄새’가 나기 전까지 열어보지 말 것, 그리고 뚜껑을 닫고 맛있어지라는 주문을 욀 것. 카레를 끓일 때마다 늘 같은 과정과 생각을 반복한다. 그러다 7년이 지나고서야 이 알 수 없는 과정의 정체가 비로소 명확해졌다. ‘마크로비오틱’ 요리법을 배울 때의 일이다.

그러니까 이 재료들이 냄비 안에서 ‘합방’할 시간을 주는 것이죠. 다른 땅에서, 다른 기운으로, 다른 농부가 기른 이 식자재가 한방에 있는데 적어도 통성명할 시간 정도는 주는 게 맞지 않겠어요? 열어보지 말고 기다려야 해요.

그리고 지금, 이 냄새를 잘 기억하세요. 집집마다 식자재와 집기가 달라서 이 냄새가 나는 시점을 정확히 알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뚜껑을 여는 시점은 이 냄새가 나는 순간! 지금이다! 이리 오셔서 맡아봐요.

그 순간, 마침내 잃어버린 한 조각의 퍼즐을 찾아 그림을 완성한 느낌이 들었다. 노란 빛깔과 각종 채소가 어우러진 먹음직스러운 카레 그림을.

 

냄비를 열어보고 싶은 이유

급한 내 성격은 주방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기어코 뚜껑을 열어보려는 순간, 어떻게 알았는지 엄마가 다급히 쫓아와서는 ‘아직!’이라고 외치는 건 예삿일이다.

사실 뚜껑을 열고 싶은 여러 이유가 있다. 냄비 속 내용물이 잘 섞이고 있기는 할지, 쪼그라들어 타버리진 않을지, 열이 고르지 않아서 아래위로 저어줘야 할 타이밍은 아닌지. 그건 한 마디로 명료하게 설명하기엔 아주 복잡하다. 어떤 호기심과 궁금증, 우려와 걱정, 조바심이랄까. 참을성 없기로는 자타 공인인지라 나를 좀 아는 사람들에게는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호기심도 많고, 의욕도 많은 나는 일을 잘 벌이는 축에 속한다. 성질이 급해서 일단 벌여 놓고, 호들갑을 떠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좀 변태 같긴 하지만 더 솔직히는 호들갑을 떨어야 맘이 좀 편해진다.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닌 일. 뭐든 호들갑부터 떨고 보는 내게 남편이 가끔 해주는 말이다.

이런 아름다운 일화의 궁극의 목적(?)대로라면 ‘급한 내 성격이 달라졌어요’ 정도의 후기가 있어야 할 텐데, 애석하게도 주방 밖에선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산다. 나는 여전히 급한 성격에 쉽게 뜨거워지고 차가워지면서 일희일비하는, 호들갑을 떠는 덴 일인자다. 그래도 주방에서만큼은 평정을 찾으려는 내 모습에 스스로 대견해진다. 적어도 주방 안에서는 아래의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 중이다.

  • 우직하게 그 앞을 지키고만 있으면 된다.
  • 다른 것들이 만나면 ‘틈’과 ‘뜸’은 필수다.
  • 조바심은 금물이다.
  • 생각보다 그 안은 평화로울 것이다.
  • 희한하게도 카레는 하루가 더 지나야 맛있다.

 

그 후로 수프만 생각했다

유난히 고요한 이른 아침, 냄비 뚜껑을 닫고 나니 별안간 난데없는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카레와 수프는 매우 닮아있다. 양파를 볶아 달큼한 물을 내고, 거기에 각종 채소를 넣고 그들끼리 어우러져 나온 수분을 감칠맛 삼아, 다시 또 무언가를 넣고 뭉근히 끓여내는 것이 말이다.

갑자기 책 한 권이 떠올랐다. 냄비가 펄펄 끓는 사이 책장으로 가서 찾아보았다. ‘2015년 봄이 오기 전 겨울, 나도 ‘수프’만 생각할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는 첫 장의 메모가 눈에 띈다. 사실 줄거리는 희미하고, 소설 마지막 장에 있는 ‘이름 없는 수프 만드는 방법’ 부분이 떠올라서 다시 찾아보았다. 그 사이 냄비 안 채소는 어느덧 합방을 마치고 그 ‘냄새’로 나를 재촉했다.

그러니까 열어보지 말 것, 궁금해하지도 말 것, 주문을 외기만 하면 될 것, 다 잘되고 있을 테니까.

 

그 후로 카레만 생각했다

채소는 큼지막하게, 시간을 두고.

제일 좋아하는 카레 조합입니다. 이렇게 하면 실패는 없어요!

  • 냄비를 달구고 기름을 살짝 두릅니다. 이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양파를 넣습니다. 토마토를 넣으면 더 맛있어져요.
  • 코가 싸한 내가 없어지고 달큼한 냄새가 나면 감자, 당근 등 단단한 채소도 넣어줍니다.
  • 뚜껑을 닫고 있다가 채소가 뒤섞인 조화로운 그 ‘냄새’가 퍼지면 닭가슴살, 양송이를 추가로 넣습니다.
  • 닭가슴살 냄새(?)가 배어난다 싶을 때까지 역시나 기다립니다.
  • 중요합니다. 맛있어지라는 주문을 외는 겁니다.
  • 저는 주로 이 기다림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십니다.
  • 물에 카레를 개어 냄비에 부어 뒤섞어 주고 뭉근히 끓이면 완성!
유독 카레와는 푹삭 익은 김치와 아보카도가 잘 어울린다.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나만의 카레.

오랜만에 요시다 아쓰히로의 『그 후로 수프만 생각했다』를 펼쳐보았습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큰 이슈 없이 잔잔하게 흐르는 스토리였던 것 같아요. 내용은 나중에 다시 보기로 하고, 읽고 싶은 마지막 장을 펼쳐봤습니다. 그때는 그냥 표현이 좋아서 마킹해 두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냄비 안은 삶의 이치와 매우 닮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 적힌 ‘이름 없는 수프 만드는 방법‘ 중 몇 가지를 옮깁니다.

  • 기대를 하지 말 것.
  • 그러나 모든 것은 냄비에 맡긴다. 그러면 냄비가 만들어준다.
  • 뭐든지 상관없지만 좋아하는 감자는 넣는 것이 좋다.
  • 물론 감자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이것만큼은 빠뜨릴 수 없다 하는 것을 뭐든지 한 가지 넣는다.
  • 냄비에서 올라오는 김 역시 위대하다.
  • 날씨가 맑든, 흐리든, 비가 오든 수프는 어떤 하늘과도 잘 어울린다.
  • 전부 위대하다.
  • 흐물흐물해져서 재료들의 구분이 없어지면 그걸로 완성.
  • 사실 완성은 아니지만 그만하면 됐다.
  • 그리고 식기 전에 이웃에게도,
  • 아니면 생각나는 사람에게,
  • 귀찮으면 생각하는 것만으로 좋다.
  • 이것을 수프가 식지 않는 거리라고 한다.
  • 여기에 쓴 것을 전부 잊고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하면 된다.
  • 어쨌든, 맛있다!

오늘도 어쨌든, 맛있는 한 끼를 먹었습니다!

원문: 오가닉씨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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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봉뵈르, 그 심플한 속사정 https://ppss.kr/archives/242596 Fri, 30 Jul 2021 07:51:09 +0000 http://3.36.87.144/?p=242596

덮는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속을 꽉 채워 빵을 꾸왁- 누를 때, 여기저기 떨어지는 자투리를 주워 빵 틈바구니에 넣을 때마다 그 빈약한 샌드위치가 떠오른다.

주머니는 가볍고 꿈만 많던 그 시절에 먹던 빈약한 샌드위치는 어느새 추억이 되어버렸다. 속이 텅텅 빈 샌드위치는 젊은 날 차마 채우지 못했던 패기였고, 나는 빵과 빵 사이를 채우려 아등바등했다. 마침내 그사이를 가득 매워 여기저기 자투리가 떨어질 지경이 되었을 때 비로소 기뻐했다. 샌드위치의 두께는 곧 여유의 척도라고 여긴 것이다.

통장에 따박따박 꽂히던 ‘월급’은 마치 샌드위치의 속 재료와 같았다. 해마다 월급이 찔끔 오를수록 나의 샌드위치는 다양한 재료로 채워졌다. 온갖 것이 나고 자라는 6월부터는 빵과 빵 사이에 푸성귀와 가지, 오이, 토마토가 끼워졌다.

시장 보는 재미가 덜한 겨울 즈음에는 캔 참치와 달걀이, 또 어떤 때는 진짜 게살을 끼워 넣기도 했다. 하다 하다 먹다 남은 닭갈비도 잘게 다져 넣었더란다. 모든 게 결핍돼있던 지난날이 떠올라서 싫다던 나의 얇은 샌드위치(정확히는 크로크뮤수st. 였다)는 그렇게 진화했다.

그렇게 속이 꽉 찬 샌드위치는 맛있긴 했지만, 가볍게 먹으려던 요량이 요리로 틀어져 곤혹을 치루기도 했다. 애초에 간단하게 먹자고 만들던 샌드위치이거늘, 자고로 그 속은 꽉꽉 채워야 한다는 의지가 때론 피곤하게 느껴진 것이다. 그래도 야무지게 채운 그 속은 세상 어떤 샌드위치보다 훌륭했다.

빵집을 열기로 결정하고서부터는 이 샌드위치 제품군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옹골지게 채운 속 재료에 내가 만든 빵이라니. ‘두께는 여유의 척도’라던 믿음에 비로소 완성의 마침표를 찍은 것 같았다.

사실 맛있는 빵이라면 뭘 끼워도 맛있긴 하다

그리하여 나는 직접 만든 바게트에 속재료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거듭 테스트를 했다. 평소에 즐겨 먹던 조합부터 유행한다는 각종 레시피, 샌드위치 관련 책도 참고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딱히 이거다 싶은 맛이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만든 빵의 풍미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게다가 바로 먹는 것이 아니다 보니 금세 물기가 생겨 빵이 눅눅해졌다. 터질 것만 같은 속을 무리하게 누른 탓에 모양도 흐트러지기 일쑤였다.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다 보니 맛이 얽혀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경우도 있었다. 내가 먹는다면 아무렴 상관없지만 상품으로써는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하릴없이 물기가 많은 채소부터 하나둘 빼기 시작했다. 급기야 토마토 없는 샌드위치는 초코 없는 칸초와 같다고 여기던 내가, 결국 토마토를 빼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남은 건 치즈와 햄뿐. 그렇다. 젊고 없던 시절에 지겹도록 먹던 그것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내 바게트의 훨씬 풍미가 돋보였다는 것이다. 날렵하게 선 바게트의 칼집이 부드러운 속 재료와 어울려 입속에 재미를 더했다. 그러다 문득 우연히 보게 된 프랑스 어느 빵집의 이미지가 생각났다.

쩍 갈린 바게트 안에 햄과 노란 것이 끼워져 투박하게 쌓여있던 그것. 그게 ‘잠봉뵈르 Jambon beurre’라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여기서 ‘잠봉Jambon’은 햄을 뜻하고 ‘뵈르Beurre’는 버터를 뜻한다. 말 그대로 햄과 버터가 든 샌드위치이다. 안 그래도 햄과 치즈의 조화가 다소 뻔한 맛이어서 고민이 되던 차였다. 햄과 버터, 복잡한 샌드위치의 속내는 이렇게 두 가지만 있으면 될 것이었다.

속은 심플하지만 다양한 술의 안주(?)가 되어준다

프랑스 햄인 ‘잠봉Jambon’은 돼지 뒷다릿살을 염장한 것이다. 겨울에 묻어두고 봄에 숙성하고, 여름부터 가을까지 건조해 완성되는 느릿한 음식이다. 스페인의 프로슈토나 이탈리아의 살라미도 나라별 명칭만 다를 뿐 만드는 과정과 부위는 동일하다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잠봉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였다. 버터는 좋은 버터가 시중에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프랑스 전통 햄을 한국에서 찾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육가공류 특성상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햄은 보기 어려운 것도 걱정이었다.

역시나 걱정은 기우였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우리나라에도 국내산 돼지 뒷다리로 첨가물 없이 잠봉을 만드는 곳을 알아냈고, 몇 번의 테스트를 거쳐 지금의 잠봉뵈르를 완성했다. 특히 첨가물이 없고 담백한 맛에 깊은 의의를 두기로 했다.

프랑스 현지에서 먹는 잠봉뵈르는 간이 세다고 하지만, 나의 잠봉뵈르는 짠맛이 거의 없다. 무염버터를 넣고 짜지 않은 잠봉을 구한 건 나의 바게트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한입 베어 물면 잠봉이 씹히고, 이게 뭐지 싶을 정도로 다소 밋밋한 버터가 훅 혀를 감싼다. 이내 고소해진 버터의 풍미를 즐기다 보면 바삭한 바게트가 미끄덩한 입안을 개운하게 쓸어준다.

물론 속재료가 푸짐한 샌드위치를 즐기는 것도 여전히 즐겁다. 다만, 이때는 바게트나 깜빠뉴같이 풍미가 중요한 빵보다 식빵이나 잉글리시 머핀같이 풍미가 짙지 않고 부드러운 빵을 선호한다. 이런 빵들은 오히려 속재료의 맛을 끌어올리는 재주가 있다.

오늘도 잘 나왔다 만세!

바게트의 반을 가르며 고르게 성긴 기공을 살피는 일은 매일 겪어도 기쁘다. 여기에 가느다랗게 썬 버터와 잠봉을 꾸깃하게 넣을 때마다, 속 재료에 열을 올리던 그때가 떠오른다. 빵과 빵 사이를 꾸악- 눌러 결핍된 속을 채우던 그때가 말이다.

이런 연유로 추측건대, 프랑스의 샌드위치가 화려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그러니까 내가 만약 실력을 갖춘 유능한 베이커라면, 바게트 본연의 풍미를 해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최소의 재료만 고집했을 것 같다. 바게트와 잠봉 그리고 버터는 속을 가득 채워야만 하는 샌드위치 틈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속이 그득그득 들어차지 않아도 된다. 빵의 풍미를 돋궈주는 싱싱한 버터와 시간으로 천천히 염도를 축적한 잠봉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나도 이제 빵을 굽는 인간이 된 이상, 속재료 대신 빵의 풍미를 중요히 여기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빵과 빵 사이를 좋은 식재료로 적당히 채우는 일, 이제 나의 업이 되었다.

원문: 오가닉씨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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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맛, 토마토의 맛 https://ppss.kr/archives/243177 Fri, 23 Jul 2021 05:39:47 +0000 http://3.36.87.144/?p=243177 습기로 끈적한 장판 바닥, 무거운 공기 속. 회전하는 선풍기를 따라가다 아-하면 아——하는 소리가 난다. 이 기괴한 놀이에 심취하기 시작할 즈음, 엄마는 둥근 접시를 내왔다.

설탕 좀 더 뿌려줘.

어휴, 하는 소리도 잠시. 이내 설탕이 수북이 담긴 숟가락이 다가와 토마토를 적신다. 너무 차갑고 미끄덩한 식감에 입에 넣자마자 단맛을 쪽쪽 빨아 뱉고, 다시 입으로 넣는 몇 번의 호들갑을 떨고 나면 비로소 대미를 장식해야 할 순간이 온다.

단 한 방울도 놓칠 수 없다. 이때만을 위해 달지 않은 순간도 참아왔다. 토마토 씨가 잔뜩 벤 설탕 국물 앞에서 한 방울이라도 흐를까,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입안에 무사히 털어 넣었다. 그렇게 한여름의 순간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무더운 여름이 지나갔다.

열대 과일이 올라간 빙수, 물 건너온 아이스크림, 젤리, 디저트…. 요즘이야 맛있는 여름 간식이 널렸지만, 어릴 적 이맘때 우리 엄마가 준 간식이라고는(사실 그냥 우리 엄마 간식이었던 듯) 토마토, 옥수수, 찐 감자, 수박이나 자두 정도였다. 가끔 길쭉한 플라스틱 통에 주스와 과일을 넣고 얼린 형형색색의 ‘하드’를 먹는 그 날은 소위 ‘엄마의 계 탄 날’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설탕을 뿌린 토마토는 정말이지 우주 최고의 간식이었다. 우리 엄마는 토마토를 입에 넣자마자, 달달하다는 둥 짭지름하다는 둥, 시큼하다는 둥 여하간 표현을 다양하게도 하셨다. 고작 소금 뿌린 토마토를 두고 말이다(엄마는 소금을 뿌려 드셨다).

그러다 토마토에 설탕을 넣으면 토마토 고유의 영양성분이 파괴된다는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이야길 들은 다음부터 간식으로 설탕 토마토를 보기 어려워졌다. 그렇게 나도 토마토와 멀어졌다.

맞아맞아

어느 날인가부터 밥상 위에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빨갛고 동그란 토마토’가 아닌 토마토소스나 케첩, 주스, 통조림, 심지어 아이스크림까지 다양한 형태의 토마토(?)가 오르기 시작했다. 달달한 설탕 토마토 국물의 추억을 잊었다 깨닫기도 전에 난 이미 토마토 ‘맛’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 사이 토마토를 두고 과일이냐, 채소냐로 언쟁을 벌이는 게 예삿일이던 시절도 있던 것 같다.

여하간 토마토와 당류의 상관관계 때문인지, 여름 간식의 대명사였던 설탕 뿌린 토마토는 우리네 밥상에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급기야 여름마다 토마토 찬양을 하는 내게 무슨 (토마토) 소스를 먹길래 그렇게 맛있다고 호들갑이냐고 묻는 지인이 늘기 시작했다. 이러다 토마토가 무형의 액체나 무슨 향쯤으로만 각인되어, 끝내는 아이들이 토마토와 케첩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의 셰프인 제이미 올리버가 진행한 리얼리티 다큐멘터리 <스쿨 디너(Jamie’s School Dinner, 2005)>를 보면 어느 오지라퍼의 괜한 걱정이라고만 치부하긴 어렵다. 아이들이 평소에 즐겨 먹는 가공품(케첩, 프렌치프라이, 코울슬로, 과일향 우유 등)과 그 원재료인 토마토, 감자, 옥수수 등의 채소를 매칭해보라는 요청에 대부분이 난감해하며, 끝내는 몇몇이 오답을 외치는 장면을 보면 말이다.

비단 토마토만이 아니다. 딸기‘향’ 우유, 멜론‘맛’ 아이스크림, 오렌지‘맛’ 주스 등 합성착향료로 색과 맛을 내고, 농축 과정에서 다 빠져버린 영양소를 인위적으로 주입한 일종의 ‘ooo 맛’과 ‘ooo 향’을 즐기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다.

그렇게 나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뻔한 토마토와 재회하게 된 계기가 있다. 5년 전에 일어난 일명 ‘토마토 사태’때문인데, 당시 나는 공동체지원농업(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이라 불리는 제철 농산물 꾸러미 사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25주간 농산물이 쉬지 않고 꾸려(?)지는데, 토마토가 한창인 이때가 문제였다.

토마토를 ‘따도 따도 또 난다’는 생산자와 ‘먹고 먹어도 쌓인다’는 소비자 사이에 끼어 적잖이 애를 먹었다. 6월부터 8월까지 거의 매주 그랬으니 양측 모두 그럴 만했다. 결국엔 많지만 이렇게라도 즐기시라는 마음을 담아 지지고, 볶고, 짜고, 으깨고, 끓이는 등 국적 불문의 각양각색 레시피를 상자 안에 넣기 시작했다.

제때 나는 걸 제때 먹으면 굳이 지지고 볶고 할 것도 없어요. 많이 난다는 건, 그만큼 맛있을 때라는 거지요. 영양소가 오를 대로 오른 토마토 한 알이면 이 더운 여름도 거뜬히 날 텐데….

한여름 토마토의 맛을 알아서일까, 왜인지 그 말씀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그 사이 끌어모으다 못해 영혼까지 갈아 넣은 레시피는 바닥이 났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몇 줄의 메시지를 적어 보냈다.

설탕을 뿌려 드세요. 아이에게도 주시고요. 설탕을 넣으면 영양소가 파괴된다지만, 추억으로 먹으면 없던 영양소도 생길 거예요. 아니면 소금을 살짝 뿌려 드셔 보세요. 저희 엄마는 그게 제일 맛있다고 하네요.

설탕 토마토의 맛을 기억했던 걸까. 연일 쌓여만 가는 토마토 때문에 한동안 퉁명했던 소비자의 반응이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토마토‘맛’ 대신 진짜 토마토를

글로 배우고, 내 멋대로 옮겨 적은 토마토 요리 백과

  • 썩둑 썬 토마토에 양파와 부추, 그리고 매콤한 고추장 소스를 살짝 넣어 비비면 여름에 어울리는 김치 같은 느낌이다. 더 맛있는 건 쫄면이나 비빔면에 넣어 먹는 거다. 콩국수에도 넣어 먹으면 밍밍한 맛 속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 볶음 요리를 할 때 팬 한쪽에 토마토를 조심조심 익혀 굽거나, 재료와 함께 볶아내면 고급진(?) 맛이 난다. 열을 가한 토마토는 음미할수록 달고, 짜고, 신맛이 더 잘 느껴진다. MSG의 원료인 ‘글루탐산’이 토마토에 들어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카레에 넣으면 카레가 더 맛있어진다.
볶으면 더 맛나다
  • 토마토는 올리브유와 단짝이다. 소금과 후추, 허브 가루, 토마토에 올리브유를 넣어 설설 비비면 최고의 와인 안주가 된다.
  • 껍질을 벗긴 미끄덩한 토마토에 단식초(발사믹도 가능)를 끼얹어 냉장고에 하루 정도 두면 이름도 있어 보이고 시간도 많이 들인 것 같은 토마토 마리네이드가 완성된다. 시큼하고 시원한 것이 여름 간식으로 딱이다. 술안주로도 최고다.
술이랑 먹으면 더 맛나요
  • 올리브유에 맞서는 또 다른 단짝, 바질과 루꼴라. 잎을 손으로 찢어 토마토와 곁들여 먹으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온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마치 토마토 쌈을 싸 먹듯.
이것저것 곁들이면 더 맛나요
  • 더운 여름, 우리의 삼계탕처럼 유럽의 보양식st.로 애호박, 양파 등 여름 채소를 잔뜩 넣어 볶다가 토마토를 넣어 뭉근히 끓인다. 여기에 고기를 넣으면 헝가리에 가지 않아도 굴라쉬를 즐길 수 있다. 해장에 딱이다.
어떻게 먹든 맛나요
  • 채소와 토마토를 넣어 끓이다가 잘잘한 고기를 넣어 졸이면 볼로네즈 소스가 된다. 미트볼을 넣어 굴려도 좋다. 여기에 달걀 몇 개를 깨 넣으면 에그인헬(샥슈카) 완성.
  • 특별한 아침을 먹고 싶을 때 ‘토달토달(토마토달걀토마토달걀토마토달걀…토마달..갸…ㄹ)’ 을 먹으면 우리 집이 호텔이다.
  • 살짝 데쳐서 껍질을 벗기고 이맘때 나는 채소와 과일을 모아 윙 갈아 마셔도 좋다. 남편에게 넣지도 않은 꿀을 잔뜩 넣었다는 뻥치는 재미는 덤이다. ‘역시 꿀을 넣어 달달하다’는 말을 듣는 재미. 낄낄.
갈아 마셔도 맛나요(비트주스임)
  • 사실 토마토가 토마토마한 이 여름엔 그냥 먹는 게 최고다. 추억을 즐기려면 설탕도 좋고, 소금을 살짝 뿌려 먹으면 토마토의 갖가지 맛을 골고루 느낄 수 있다. (Feat. 선풍기)

여하튼 토마토 사태 이후로 잊고 살던 토마토를 찾았다. 여러 조리법이 있지만, 사실은 요리를 하다가 한 조각 집어 후딱 입에 넣는 토마토가 제일 맛있다.

지지고 볶아도 맛있고, 그냥 먹어도 맛있는 여름 토마토. 부디 이 여름의 맛이 세대와 밥상의 장벽을 넘어 쭈욱 이어지길.

원문: 오가닉씨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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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빼고 난리인 세상 속에서 ‘빵의 속도’로 달리는 것은 https://ppss.kr/archives/241460 Thu, 20 May 2021 02:08:53 +0000 http://3.36.87.144/?p=241460

세상이 온통 난리다, 나만 빼고. 암호화폐, 주식, 부동산 등의 뉴스가 연일 차고도 넘친다. 한때는 나도 이 어지러운 세상을 따라잡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었다. 남들 배우는 거, 사는 거, 들고 다니는 거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해봐야만 직성이 풀렸다. 오죽하면 손해 보는 것마저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정도였으랴.

바쁜 마음에 비하면 발걸음은 정반대였다. 느릿해지거나 빨라지기도 했지만 리듬은 없었다. 스스로 혹은 타인에게 따져 묻거나 매사 재느라 정신없던 발은 땅에서 즐겁게 구르지 못했다. 술 한 잔 거나하게 걸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만이 이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다.

매사에 조바심이 났다. 마치 나는 ‘조금 더’이라는 말을 당근 삼아 달리던 경주마와도 같았다. 좋은 걸 먹는 이유는 나쁜 걸 먹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과정을, 과정은 결과를 남발하며 서로를 의심했다. 곰곰 원인을 따져보니 통근 시간까지 합하면 일상에서 8할을 차지하는 게 ‘직장 생활’이라 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속했던 곳은 비교적 경쟁 구도가 덜했던(나만의 착각이었을까)조직이었다. 인사 시즌이라고 매서운 피바람이 불던 곳도 아니었고, S나 A 같은 애매한 알파벳으로 나에게 등급을 매기지도 않았다. 다른 조직과는 다른 잣대가 버거운 적도 있었지만 그냥 묵묵히 내 일을 하면 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바깥을 살폈다. 혹시나 나도 모르게 느긋해진 내가 뒤처질까 싶어서였다. 사내에서 하지 않은 경쟁을 바깥에서 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무언가 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늘 노심초사했다. 그렇게 일궈온 커리어는 마치 회전 초밥집에 쌓인 접시 같았다. 욕심껏 놓치지 않고 옆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쌓아야 하는. 높이 쌓고 싶은 나의 접시는 삶의 바퀴였다. 바퀴 없는 일상은 구를 리 없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한동안은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울타리 밖을 동경하면서도 감히 넘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감정에 충실히 무뎌지기로 했다. 사표를 던지지 말아야 할 이유는 던져야 할 이유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울타리 밖을 엿보는 매 순간이 올 때마다 ‘별것’ 아니라며 술잔을 넘겼다. 물론 그날의 술은 지독하게도 썼다.

Photo by KWON JUNHO on Unsplash

‘별것’ 아닌 순간은 포인트 적립되듯 찔끔찔끔 쌓여갔다. 어느 날 우연히 들여다보니 목돈으로 쓸 수 있을 만큼 불어있었다. 다른 것보다 회의가 문제였다. 논점은 흐려지고 산으로 강으로 나자빠진 회의가 미칠 듯이 싫었다. 회의가 끝나는 시간은 결론에 다다랐을 때가 아니라, 마무리를 위해 애써 웃음을 지을 때쯤이었다. 회의가 끝나면 우리가 쏟아낸 말은 휘발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아닌 회의도 있었지만)내가 담당하는 업무 회의를 마치면 회의록을 써야 하는 압박만 덩그러니 남았을 뿐이다.

발언된 내용을 곱씹으며 쓰는 회의록은, 그러니까 날것의 음성을 정제된 언어로 기록하는 일은 그 어느 업무보다 고역이었다. 써 내려가는 문장 한 줄 한 줄로부터 화가 잔뜩 났다. 그러다 어느 날은 그 권태가 절정에 다다랐고 모든 것을 놓고 싶었다. 거짓말처럼. 나는 왜 화를 내야 하며, 이 화의 원인으로 타인을 지목해야 하며, 일일이 토를 달아야 하며, 그리고 이 흩어진 문장을 대체 왜 기록하고 있는 것인가. 해마다 업데이트되는 ‘비전 보고서’가 사내에 돌았지만, 거기엔 내 비전은 없었다.

그렇게 바로 퇴사를 결정했다고 하면 이 글은 완벽한 기승전결을 이루겠지만, 착실한 나는 그로부터 이 년을 더 버텨냈다.

타이머의 노예.jpg

지하철로 향하는 수많은 발걸음에 장단을 맞추는 것이 군무라면, 작은 빵집을 여는 새벽은 전쟁터다. 적은 그 누구도 아닌 타이머로 사방에 널리고 널린 것이 특징이다. 초 단위로 째깍거리는 이 타이머가 울리면 나는 모든 행동을 멈추고 다시 그를 올려다보여야 한다. 당최 초 단위로 움직여본 적이 없던 나는 이 작은 요물 앞에서 매일을 절절맨다.

새벽부터 오픈 전까지의 여섯 시간 동안은 오로지 빵과 나만의 시간이다. 잠이 들기 전까지 한참을 뒤적이던 뉴스도, 재밌는 영상도, 경쟁할 타자도 없다. 트집거리를 잡아낼 시간도 사람도 물론 없다.

내가 경쟁해야 할 것은 오로지 빵일 뿐이다. 직장 생활할 때와 마찬가지로 쳇바퀴와 다름없이 빙빙 도는 일과이지만, 아니 어쩌면 더(초 단위로 움직이니까) 단단하게 조여 있지만, 매일이 다르다. 온도, 습도 등에 예민한 이 녀석을 상대하는 건 정말이지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섯 평 남짓한 이 작은 공간에서의 시간은 오로지 빵이 이끄는 대로다. 발효가 빨라지면 덩달아 나의 시계도 빨라진다. 이어폰에서 경제와 시사를 읊는 라디오 DJ의 말이 어느새 들리지 않는다. 빵을 만드는 아침엔 세상의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다. 코인이 머리 끝까지 올랐어도, 주가가 곤두박이쳐도 집값이 미친 듯 들썩여도 나는 빵의 시간을 따를 뿐이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빵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지금이 괜찮을지 말이다. 이렇게 하다가는 세상 물정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이 든다. 누군가 어마한 부를 축적하고 있을 동안 내게 남은 건 오븐에 덴 상처뿐이면 어쩌지 하는 조바심도 난다.

‘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멋지고 뻔한 말로 스스로 위로하고 싶지만,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다. 풍족한 부는 행복의 많은 필요조건 중 하나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부와 삶의 질이 별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더 솔직히 말해서 아직 나는 경제적 여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 그렇다면 이 기다란 바게트를 꾸준히 팔면 나는 언젠가 경제적 여유를 누릴 수 있을까? 과연 그럴까?

오늘도 빵은 무사히(?) 나왔습니다!

그래도 행복하지 않아?

체력이 달려 고생이라는 말에 친구가 기습 질문을 해왔다. 통화 내내 힘들다 징징거린 내게 행복하냐니. 그런데 의외로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응, 행복해.

어떤 게? 라고 되묻는 질문엔 뜸을 들였다.

남을 탓하지 않아도 돼서 좋아.

엥? 아무리 내 입이지만 이런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쨌거나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가야 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지난 십 년 동안 일이 잘 풀리건 안 풀리건 간에, 나는 그 원인을 타인 혹은 제3의 요인으로 지목했다. 하물며 칭찬을 받거나 성과가 좋은 일에도 타인에게 영광을 돌렸다. 스스로를 한없이 작은 사람이라고 여기면서도 그렇다고 또 내가 못난 인간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뭘 해도 생산적인 에너지를 축적하지 못했고 나의 시계는 항상 타인을 향해 있었다.

세상의 시간을 따른 탓이다. 레이스는 앞으로 길게만 뻗어 있었고 출발점은 나란했다. 만약 레이스가 직선이 아닌 원형이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각자 출발점이 달라도 전혀 상관없을 것이다.

둥근 레이스는 우리를 일렬로 세우지 않는다. 그저 나의 출발점이 어느 지점인지, 내가 몇 바퀴를 얼마 만에 돌았는지만 생각하면 될 뿐이다.

이렇게 일을 벌인 이상 때론 희망 회로를 돌릴 필요가 있다. 빵의 시간을 따르다 보면 언젠가 무슨 형태로든 대가가 있을 거라는 믿음 같은 것 말이다. 사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말을 좋아하지 않아서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여하간 그 대가가 경제적인 것이면 좋겠지만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으로선 괜찮을 것 같다. 다다라야 할 목표가 아직 많기 때문이다. 그 목표 중엔 물론 경제적 여유가 있긴 하지만, 우선순위는 아니다. 나의 일 순위는 오로지 작지만 소중한 이곳에서 오래도록 맛있는 빵을 굽는 것뿐이다. 만약 그게 이 고생의 대가가 된다면 나는 기꺼이 빵의 시간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다.

오늘도 나는 또각또각 구두 대신 끈 풀린 운동화를 신고 빵의 속도로 달린다. 핏이 매끈한 코트 대신 벙벙한 작업복을, 머리엔 투박한 빵모자를 얹고서 말이다. 하여간 뭘 해도, 하지 않아도 매사 노심초사하던 지난날보단 낫겠지 싶다. 혹시 누가 알까. 오늘은 저 기다란 바게트가 어떤 행운을 가져다줄지 말이다.

오늘도 나는 나의 속도로 달린다.

원문: 오가닉씨의 브런치 


몇몇 분들이 제 빵집을 궁금해하셨어요. 부끄럽지만 인스타그램 주소 남깁니다.

홍보 목적으로 오해하실까 싶어 따로 상호를 남기지 않았는데요. 그냥 아기자기하게(?) 운영 중인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부족한 글에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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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워라, 한 번도 남아돌지 않은 것처럼 https://ppss.kr/archives/238419 Mon, 12 Apr 2021 07:00:16 +0000 http://3.36.87.144/?p=238419 새벽녘. 창밖엔 봄비가 내린다. 요 며칠 하늘에 잔뜩 낀 미세먼지를 씻어내는 이 비는, 돋아나는 새싹을 흠뻑 적셔줄 이 비는, 차디찬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을 알리는 이 비는, 동네 작은 빵집엔 그저 무거운 물줄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 아무래도 오늘 장사는 그른 것 같다. 일기예보에 봄비가 내린다고는 했지만, 내심 비켜갔으면 하는 기대로 끝끝내 고집을 피운 게 화근이었다. 전날 반죽을 준비하고 당일 새벽에 빵을 만드는 패턴이라 사실 이런 날엔 반죽 양을 줄였어야 했다. 몸집만큼 잘 부풀어 오른 반죽이 오늘만큼은 버겁기만 하다.

길바닥이 젖은 만큼 작업장도 축축해졌다. 그럼에도 숨을 쉬던(발효하는) 빵은 대견하게도 반죽막을 힘껏 차고 올랐다. 이를 보고 있자니 평소와 다름없이 빵을 굽지 않을 수 없었다. 들쭉이지 않는 일정한 힘으로, 빠르지만 꼼꼼히, 모난 것 없이 반듯한 모양으로.

커다란 반죽을 정량으로 떼어낼 때엔 두 손이 바쁠 뿐이지 머리는 느긋하다. 별별 생각이 드는 순간이기도 해서 아무런 모양 없이 헐렁해진 반죽 덩어리에 별안간 ‘너는 꼭 주인을 찾아야만 해’ 같은 실없는 주문을 건다거나, 유난히 예쁘게 모양이 잘 잡힌 반죽 덩어리엔 안도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같이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꼭 부정적인 생각이 마음을 파고든다. 어차피 손님도 없어서 팔리지도 않을 건데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거지? 누군가의 식탁은커녕 쓰레기통으로 직행할지도 모르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아, 대체 나는 뭣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지? 만신창이가 된 마음이 끊임없이 자문한다. 대답 없는 질문은 그렇게 계속 새벽을 배회한다.

사실 빵이 남은 것 없이 다 팔린 다음 날이면 이보다 행복한 순간도 없다. 작은 작업장 안에는 오븐과 작업대 사이를 누비며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의 흥겨운 내가 있다. 반죽은 보드라운 살결과 같아서 손에 착 감겨서 원하는 대로 잘 빚어진다. 이 작은 마음은 반죽 덩어리만큼, 아니 그보다 더 부풀어 올라있다. 매일 이러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축 처진 건 마음뿐만 아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수분을 머금어 그런지 평소보다 반죽도 어째 늘어진 느낌이다. 빵. 나의 정성이 밀가루와 물과 섞여 구수한 향을 내는 빵. 어딘가 식탁에 놓여 누군가에게 맛있는 기쁨을 주었으면 하는 빵. 푸짐한 한 끼를 차릴 여유가 없는 이에게 위로를 전하는 기특한 바람이 깃든 빵이거늘. 요리 한 접시에도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나인데, 이 빵에겐 오죽하랴. 밖에는 눈치도 없는 비가 아직 그칠 줄을 모른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새벽녘 마시는 커피는 늘 옳다

그래도 어쩌랴, 허연 밀가루는 이미 물과 섞여 반죽이 되어버렸고 내 손을 거친 반죽 덩어리는 나란히 서서 오븐 앞에 들어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애써 노래를 흥얼거렸다. 커피를 찾는 것도 바로 이때쯤이다. 따끈한 커피 한 모금에, 동이 터 오르는 새파란 새벽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때마침 맞은편에 서점이 눈에 들어온다. 이십여 년 전, 교복을 입고 수시로 드나들던 이 서점은 내가 인천을 떠나 있을 때에도 매일 아침 아홉 시 반이 되면 불이 켜졌을 테다. 지금은 대를 이어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데, 여자 사장님과 부쩍 친해져서 자주 왕래하는 사이가 됐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1995년 서점이 생긴 이래로 단 한 번도 ‘임시’ 휴일은 없었으며 명절 당일을 제외하고는 매일같이 문을 연다고 했다. 그러다 몇 해 전부터는 명절 전날이나 혹은 다음 날 하루 정도는 쉰다고 했다. 이마저 오랜 가족회의 끝에 결정된 것이라고 했다.

이제 고작 삼 개월째 작은 빵집을 운영 중인 나에겐 가뜩이나 커다란 간판이 더 크게 보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서점을 드나드는 학생이 드문 방학에도 저 커다란 문은 아무 이유 없이 닫힌 적이 없다. 매일 아침 부부가 커튼을 치고 불을 켜는 장면과 함께 감히 그 마음을 짚어본다. 단 한 명의 손님이라도 편하게 책을 읽었으면 하는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동네 한편을 지키는 우직함에 대해서 말이다.

사실 빵이 다 팔리지 않으면 다른 것보다 애써 만든 빵이 버려지는 게 제일 맘이 쓰리다. 당일 아침에 만든 빵은 당일에만 판매하는 게 원칙이라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물론 유지비며 뭐며 경제적인 부분도 걱정이긴 하지만, 막상 계산기를 두드려보기 전까지는 그저 나동그라진 빵의 안위가 걱정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일을 준비해야 하며 그 결과가 어떻든 간에 받아들여야만 한다. 책임을 전가하거나 누군가와 나눌 수도 없고, 버겁다고 잠시 쉬어가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곤욕인 것은 어찌 됐든 간에 내일 만들 빵의 반죽을 쳐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틑 날 새벽엔 어김없이 또 빵을 구워야 한다. 어느 날은 몸과 마음이 지친 나머지 미치도록 괴로웠다. 그날 그 순간 마음은 또다시 아득히 깊은 곳에 처박혀버렸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의 우문현답이 떠올랐다.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다룬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었다. 눈치도 없는 VJ가 어느 사장에게 장사가 안될 때는 대체 어떻게 버티냐고 물었다.

아유, 뭘 그런 걸 물어. 그냥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준비하면 되지. 뭐, 오늘 장사 안됐다고 내일도 안될 일 있나. 어제만 신경 쓰면 오늘은 못 해.

사장님은 특유의 구수한 사투리를 섞어 유쾌하게 대답했다. 당시엔 방송이니까 하는 말씀이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기억이 따끔하게 스쳐 간다.

봄비가 내리던 날, 과연 나의 빵은 어떻게 됐을까?

나도 그래야만 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 팔려나갈 것처럼 빵을 굽고 또 구워야 한다. 기왕 ‘동네 작은 빵집’으로 자리 잡기로 한 이상 이 모든 것이 익숙해져야 한다. 한낱 이 작은 빵집을 찾아준 사람들에게 보답할 것이라곤 빵 밖에 없다. 그래서 날이 좋든 궂든 간에, 나는 항상 이곳에서 빵 고수운내를 풍겨야 할 의무가 있다.

물론 그 누구도 내게 강요하지 않은 일이다. 아무도 내게 주지 않은 책임을 품는다는 것, 단언컨대 그건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일이다. 그래서인지 스스로 칭한 ‘동네 작은 빵집’이라는 타이틀이 가끔은 무겁게 느껴진다.

또다시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이번엔 볼륨을 더 높여보았다. 무거운 비로 축 처진 공기에 혹여 음악도 처질까 싶어서다. 나긋한 멜로디가 다음 트랙으로 넘어가면서 둔탁한 비트로 바뀌었다. ‘오로지 한 길 로망’을 외치며 시작되는 이 노래로 말할 것 같으면 십 년도 더 전에 머나먼 타국에서 듣던 노동요였다. 칠흑같이 어두운 그 새벽녘에 비포장 도로를 달리던 봉고 차 위에서 이 노래를 들으며 더 비장해지자고(?) 다짐했던 어린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누군가는 바보처럼 서러워도 걸어야 할 길이었다고, 그리해야만 했다고.

띠디 띠디- 오븐 타이머가 요란하게 울린다. 느긋하게 즐기던 컵을 황급히 내려놓고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제 막 오븐 밖으로 나온 깜빠뉴는 겉은 반질하고 윤기가 흘렀다. 뒤이어 달콤한 무화과 깜빠뉴와 구수한 통곡물빵도 나왔다. 기다란 바게트를 마지막으로 어느새 진열대엔 빵이 그득했다. 틈 없이 빵이(그것도 내가 만든 빵) 가득 찬 진열대를 보고 있자니 참 신기했다. 밀가루가 물과 만나고 내 손을 거쳐 빵이 된다는 것 또한 분명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오픈 시간이 다 되어서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엔 비구름이 부랴부랴 걷히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봄비가 아니던가. 긴긴 겨울이 드디어 끝났음을 알리는.

하아, 그나저나 오늘도 다 구웠다. 단 한 번도 빵이 남아돌지 않은 것처럼!

PS. 글을 쓴 당일, 그러니까 봄비가 내린 토요일엔 기분 좋게 모든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평소보다 빵이 더 일찍 나갔거든요. 새벽에 잠깐 커피를 마시면서 쓴 몇 줄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문장 투성이었습니다. 글을 수정하고 다듬으면서 순화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아마 자영업 하는 분들 대부분 공감하실 것 같아요. 우리 모두 힘내요!(갑자기?) 현재 참여 중인 수플레 매거진  덕에 드문드문 소식 전합니다.

원문: 오가닉씨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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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마다 빵을 먹었다 https://ppss.kr/archives/228116 Tue, 20 Oct 2020 08:26:16 +0000 http://3.36.87.144/?p=228116 빵, 어느 위로의 구체적인 이름

막연함을 구체화하는 동안 상상은 더 커져 있었다. 마치 잘 부푼 빵 반죽처럼. 불안과 희망은 한데 뭉쳐 시큼한 향을 냈다. 이내 어려운 현실을 되뇌면서 힘 있게 차올랐다. 보글보글 꿈틀대던 상상은 마치 반죽 속에 있는 기이한 공기 방울처럼 보기 좋게 자리 잡았다.

모든 건 일단 오븐 안에 들어서야 할 일이다. 그전까진 아무도 이 빵의 맛을 알지 못한다. 그 맛이 궁금해질수록 빵을 먹었다. 빵 한 조각은 확신 한 조각이 틀림없었다.

기가 막히게 맛있는 빵을 먹으면서 나는 예전과는 다른 감정을 느꼈다. 맛있다 또 먹어야지, 하는 마음보다 베이커가 누구였는지 알고 싶었고 질투가 났다. 그러다 그가 선 뜨거운 주방이 떠오르면 질투는 어느새 존경으로 바싹 구워진다. 그래서인지 겉은 그래도 속은 말도 못 하게 쫀득하고 폭신하다. 질서 없이 나 있는 기공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덩달아 뽀글거린다. 뽀글거리는 소리가 경쾌하기까지 하다. 또다시 가벼운 소리를 내며 톡톡 터지는 공기주머니가 잘 익은 르뱅(효모종)이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과정이 눈 앞에 펼쳐진다.

큰 덩이를 그냥 숭덩 뜯어먹기만 하다가 언제는 녹지 않은 차가운 버터를 올려 먹어보기도 했다. 냉장고에 있는 채소를 꾸역꾸역 쌓아 올리고 뚜껑 덮는 행위를 즐기는 건 샌드위치와의 오랜 인연 덕분일 테다.

당이 필요할 땐 달달한 잼을 얹어 먹기도 하고, 어느 날은 얇게 썰어 바짝 구워 먹다가 입천정이 까져도 까르르 웃음이 났다. 수분이 날아간 빵은 버리지 않고 뜨신 수프에 담가 무거워질 정도로 축축하게 적셔 먹는다.

퇴사 후 지난 삼 개월간 나를 가장 불안하게 하면서 동시에 편안하게 해주는 건 다름 아닌 ‘빵’이었다. 조직, 그러니까 회사라는 울타리를 떠난 지 벌써 삼 개월이 되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비슷한 기분과 마음으로 같은 차를 타는 일상은 잊은 지 오래다.

지난 십 년의 흔적은 생각보다 금세, 힘없이 사라졌다. 내가 떠난 빈자리는 예상한 대로 적절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간 그런 경우는 셀 수 없이 봐온 일이라 딱히 놀랍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게 놀라운 일은 아니어도, 조직의 이런 생리는 나를 단 하나의 삶으로 인도했다. 고용되지도, 누군가를 고용하지도 않는 삶을 살겠다는 결심이 점점 굳어진 것이다. 심지가 굳어질수록 나는 ‘슬기로운 조직 생활’로부터 조금씩 멀어졌다. 그렇게 십여 년간 ‘고용된’ 나의 삶으로부터 퇴사하기로 결심했다.

 

다시, 새롭게 베이커리에서 시작하다

퇴사하고 한 달 반 동안 대형 베이커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서른여섯 살에 나는 또다시 병아리 신입이 된 것이다. 밀가루가 흩뿌려진 공기가 낯설었다. 회사에서는 딱히 ‘선명히 볼 일’도 없다며 쓰지 않던 안경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퇴근할 때가 되면 안경알은 밀가루로 뿌옇게 변해있었다. 커다란 오븐이 꽉 들어찬 곳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온종일을 보낸 흔적이었다.

컴퓨터 앞에 종일 앉아만 있다가 몸을 쓰다 보니 가뜩이나 없는 체력이 드디어 바닥을 드러냈다. 중력을 온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내 주방이라면 맘껏 날아다녔을 텐데, 방해가 되기 싫어 다치지 않으려고 부산스럽지 않은 몸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이 긴장통 속에서도, 순간순간 벅차올라서 눈이 아릴 만큼 행복했다. 몸은 지옥이어도 마음은 이 지옥을 내어주고 싶지 않을 만큼 행복했다. 안경알은 뿌예졌지만 눈앞은 선명했다. 불안하면서 확신이 들었고, 맘 편히 걱정도 쌓였다. 행복과 불행을 넘나들다가 어느새 행복 회로를 돌리고 앉았고, 그러다가 차분해지고 냉정해지다가 다시 또 행복해졌다. 감정의 널은 미치도록 날뛰었으며, 나는 어느 쪽 감정이든 집요하게 끌어내리느라 진땀을 뺐다.

몸은 힘들어도 행복했던 시간

경험이 없는 일을 상상만으로 짐작해야 하는 상황은 정말이지 이렇게 기묘하다. 생각해보면 스무 살 때는 모든 일이 그랬다.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생경한 일을 해내는 것이 오히려 익숙했다.

서른 살쯤 됐을까, 그제야 나는 웬만한 일을 예상하고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직접 해보지 않아도, 직접 보지 않아도, 직접 뛰지 않아도 다년간 사람들이 지난 길과 약간의 경험을 조합해 그 길이 대략 어느 정도 험난할지 가늠할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경험치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경험치가 제로에 가까운 일에 도전하고 있다. 이 글을 천천히 따라온 분들 중 몇 분은 예상하셨겠지만, 그렇다. 나는 작은 빵집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이 철딱서니 없는 이의 이야기가 감히 위로가 되길

투박하더라도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음식과 서로를 알아보는 관계가 있고, 무엇이든 음식에 대한 주인의 철학이 있는 식당이라면 더 좋다. 세련되지 않은 노포라도 한 곳에 오랫동안 자리한 이유를 듣게 된다면 음식을 더 맛있게 즐길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느긋하게 음식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나에겐 그곳이 어디든 좋은 맛집이다.

<식탁의 위로> P.140

나의 책에 내가 생각하는 맛집, 그러니까 좋은 식당에 대한 생각을 옮긴 적이 있다. 이 문장을 쓸 때만 해도 빵집 주인은 그저 먼 미래였을 뿐이었는데, 고작 한 계절을 꽉 채우고 나니까 코앞에 맞닥뜨린 현실이 되어있었다.

이제 우리 집 주방에서 전하던 위로를, 뜨거운 열기 가득하고 밀가루 폴폴 날리고 구수한 빵내가 가득한 작업장에서 빵으로 이어가 볼까 한다. 십 년 동안의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밑도 끝도 없이 ‘빵 노동 인간’이 되겠다고 뛰어든 철딱서니 없는 이의 이야기가 이 시대의 빵순돌에게,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다니는 이에게 감히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그렇게 나는 팔 년 만에 내 고향 인천으로 갔다. 비단옷 대신 작업복을 입고 빵의환향한 것이다.

@Portland, Oregon, USA. 2019/Nikon FM2, Kodak gold 200

@Venezia, Italy. 2020/Nikon FM2, Kodak gold 200
출처: 교보문고

원문: 오가닉씨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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