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 https://ppss.kr 필자와 독자의 경계가 없는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Tue, 21 May 2024 02:35:27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5.8.10 https://ppss.kr/wp-content/uploads/2015/07/ppss-100x100.png ㅍㅍㅅㅅ https://ppss.kr 32 32 쉬인은 알리, 테무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https://ppss.kr/archives/266114 Tue, 21 May 2024 02:35:27 +0000 http://3.36.87.144/?p=266114 마지막 주자, 쉬인이 드디어 등장합니다

몇 달째 계속 이슈가 되고 있는 중국 커머스의 국내 진출 본격화. 흔히 언론에서는 이들의 대표 주자로 알리익스프레스(이하 알리), 테무, 쉬인을 꼽으며, 알테쉬라는 약어를 사용하기도 했는데요. 다만 이들 중 유독 쉬인의 존재감은 적었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공격적인 마케팅을 했던 알리, 미친 듯한 성장 속도를 보여준 테무에 비해 무언가 쉬인의 활동은 소극적이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이랬던 쉬인마저 국내 시장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올해 들어 국내 유명 SPA 브랜드에 입점을 제안하고, 알리바바처럼 에이블리 투자를 검토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쉬인의 진출이 본격화될 경우, 국내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 한번 이야기 나눠보려고 합니다.

 

노리는 시장이 작아서 더 위협적입니다

쉬인은 알리, 테무와는 또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례로 최근 국내 주요 언론에서 알리와 테무를 다루는 기조는 살짝 변했는데요. 과거에는 이들의 위협을 매우 심각하게 다뤘다면, 요즘에는 주요 생필품 가격은 알고 보면 알리가 쿠팡보다 비싸다는 등, 중국 커머스의 한계를 지적하는 투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실제로도 알리, 테무의 위협은 어느 정도 과장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우선 이들의 트래픽 성장이 매서웠던 건 사실이지만, 결제 금액 규모는 쿠팡, 네이버 등에 비해 크게 뒤처진 상황이었고요. 더욱이 이들이 강점을 가진 카테고리는 한정적이었던지라, 장기적인 전망도 불투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상위 플랫폼들의 입지는 앞으로도 굳건할 것이며, 분명 여파가 있겠지만 주로, 기존 중국 사입에 의존하던 셀러들에게 그 피해가 집중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쉬인은 애초부터 버티컬 패션 플랫폼, 아니 정확히는 패스트패션 브랜드에 가깝다는 점에서 이와는 다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아마 당분간은 쉬인의 직접적 경쟁자는 유니클로, 탑텐, 스파오, 자라 같은 브랜드들이 될 거고요. 장기적으로도 무신사, 에이블리, 지그재그 등 패션 버티컬 커머스들의 자리를 노릴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이러한 패션 브랜드 혹은 버티컬 커머스의 덩치가 쿠팡, 네이버 등 종합 커머스에 비해 훨씬 작기 때문에, 이러한 외부 위협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쉬인은 아직 본격적인 진출 이전부터 패션 브랜드 앱 중에선 거의 최상위권의 트래픽을 확보한 상황입니다

데이터만 봐도 쉬인은 이미 국내 경쟁자들과의 경쟁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우선 쉬인을 단일 브랜드라고 본다면, 쉬인 앱의 트래픽은 업계 1위인 유니클로와 비슷한 수준에 도달하였였고요. 심지어 패션 버티컬 커머스라고 본다 하더라도, 무신사, 에이블리, 퀸잇 등 최상위 업체들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경쟁자들을 이미 추월하였습니다.

물론 쉬인 역시 매출액 기준으로 확실한 입지를 다졌다고 보긴 어렵겠지만요. 북미 시장에서 아마존과의 거래액 격차가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큰 테무와 달리, 자라와 H&M을 이미 추월한 쉬인의 저력을 생각하면 언제 치고 올라올지 모릅니다. 소형 전자제품, 생활용품 등 일부 카테고리 내에서만 경쟁력을 가졌기에 상한선이 분명한 알리, 테무와 달리, 쉬인은 패션이라는 하나의 시장 안에서는 한계 없이 점유율을 늘려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쉬인은 프리미엄 라인에서도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쉬인X 프로젝트’를 통해 유망한 디자이너들을 섭외하여 이미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고요. 따라서 아예 포지션이 완전히 다른 럭셔리 브랜드라면 모를까, 최근 기세를 올리고 있는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들까지는 쉬인의 사정권에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애매하면 잡아먹힐 겁니다

분명 국내 패션 업계는 최근 디자이너 브랜드들을 중심으로 도약의 기회를 잡은 상황입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고요. 무신사는 물론 신세계, 현대백화점 같은 전통 리테일 기업들까지 이들의 손을 잡고 거대한 패션 생태계를 만들려는 시도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막강한 자본력과 엄청난 생산 인프라를 동시에 갖춘 ‘메기’ 쉬인이 등장한다면, 시장은 매우 크게 흔들리게 될 겁니다. 특히 쉬인은 북미에서 이제는 단일 브랜드를 넘어 하나의 마켓 플레이스로 거듭나고 있기에 위험성이 더욱 큰데요. 근래 들어 쉬인은 포에버21 같은 대형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맺는 등 적극적인 브랜드 유치에 나섰습니다. 유력 국내 SPA 브랜드 입점을 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의 일이고요.

이들이 브랜드를 넘어서 이처럼 플랫폼으로 거듭난다면, 에이블리, 지그재그는 물론 무신사도 안심할 수는 없을 겁니다. 특히 아예 국내 패션 생태계 전체가 위험해질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좋은 기획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자본과 생산 인프라에 더해 판매 채널까지 쉬인에 의존한다면, 결국 종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넷플릭스 사례를 기억할 필요가 있는데요. 국내 콘텐츠 제작 업계는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고, 그 덕에 넷플릭스의 대규모 투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최근에는 이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서, 넷플릭스를 통하지 않으면 콘텐츠를 만들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요. 날이 갈수록 이러한 종속 관계는 계속 심화되고 있습니다.

국내 패션업계는 이를 잘 반면교사 삼아 쉬인과의 관계를 잘 맺어서,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좋은 파트너로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지금부터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겁니다.

원문: 기묘한의 브런치


커머스와 IT에 관한 트렌드를 기록하고 나눕니다

트렌드라이트는 국내 최대 규모의 커머스 버티컬 뉴스레터로, ‘사고파는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매주 수요일 아침, 가장 신선한 트렌드를 선별하여, 업계 전문가의 실질적인 인사이트와 함께 메일함으로 전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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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릿에서 역사적인 아이템, 푸마 스웨이드 https://ppss.kr/archives/265280 Wed, 13 Mar 2024 02:04:06 +0000 http://3.36.87.144/?p=265280 힙합과 패션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아이템은 푸마 스웨이드(Puma Suede)이다

푸마 스웨이드는 화려한 힙합의 이미지와는 상반된 심플한 외관에 날렵한 이미지가 특징인 신발이다. 대체 언제, 어떻게 힙합과 만나게 된 걸까?

힙합이 처음 탄생할 때는 래퍼보다 DJ가 돋보였고, DJ 앞에는 늘 브레이크 댄서가 있었다. 발로 하는 동작이 많은 브레이크 댄서에게 패션만큼이나 중요한 건 신발이었다. 그때 눈에 띈 게 푸마의 스웨이드 신발이었다. 밑창은 적당히 도톰하니 춤을 추기 적합했고, 스웨이드로 만든 어퍼는 부드러워 어려운 동작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

패션으로도 훌륭했다. 특유의 날렵한 모양새는 스웨이드 특유의 재질 덕분에 보다 고급스러워 보였고, 측면의 폼스트립과 스웨이드의 컬러의 다양한 조합은 댄서로서 멋을 부리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뉴욕을 주름잡은 크루 뉴욕 시티 브레이커스와 락스테디 크루의 사랑을 받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1. 무려 390가지 이상의 컬러로 제작된 적 있다

사실 푸마 스웨이드는 당시 뉴욕의 스트릿에서 이미 인기를 끌고 있던 신발이었다. 인기의 촉매가 된 건 바로 NBA의 스타이자 뉴욕 닉스의 선수였던 월트 프래지어(Walt Frazier)와의 협업이었다. 월트 프래지어는 훌륭한 패션 센스와 개성으로 유명한 선수였다.

푸마의 계약 제안에 프래지어는 꽤나 독특한 제안을 내걸었다. 매 경기마다 다른 컬러 조합의 신발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푸마는 이를 적극 반영했다. 그렇게 그렇게 프래지어에게 제공된 컬러 조합은 총 390가지 이상이라고 한다. 신발의 이름도 월트 프래지어의 닉네임을 따 ‘클라이드(Clyde)’로 바꾸었다. 이후 월트 프래지어와 계약이 종료되며 모델명은 ‘클라이드’에서 지금의 ‘스웨이드’로 변경되었다.

 

2. ‘왠지 모르게 쿨한 아이템’이 된 이유

푸마 클라이드였던 푸마 스웨이드가 출시될 때는 이름이 또 달랐다. 바로 ‘푸마 크랙 (Crack)’이다. 스포츠에서 경기의 흐름을 뒤바꾸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을 ‘크랙’이라고 부르는 데에서 착안한 이름이었다.

푸마 크랙은 출시 직후 열린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의 육상 경기에서 의도치 않은 주목을 받았다. 당시 200m 육상에서 금메달을 딴 토미 스미스는 검은 양말을 신고 오른손에는 검은 장갑을, 왼손에는 검은색 푸마 크랙을 쥔 채 시상대에 올랐다. 신발은 시상대 위에 올려둔 후, 미국 국가가 흘러나오자 고개를 숙이고 장갑을 낀 오른손을 번쩍 치켜올렸다.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의미를 담은 퍼포먼스였다.

푸마 스웨이드가 가진 독특한 문화적 위치와 명성, 왠지 모를 쿨함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스케이트 보더의 ‘스테디 픽’이 되며 스트릿에 정착하다

토미 스미스와 프래지어를 거쳐 스트릿에 정착한 푸마 스웨이드는 힙합이 미디어의 큰 관심을 받으며 덩달아 홍보 효과를 누렸다. 핫하다는 힙합 아티스트들이 미국 전국 방송에 나갈 때 스웨이드를 신고 나가며 다른 지방에도 멋있는 아이템으로 소개되기 시작했고, 힙합과 브레이크 댄스를 다룬 영화 〈Beat Street〉을 통해 미국을 넘어 유럽에서도 조명받았다. 힙합 컬쳐를 이루는 하나의 패션 코드로 확실하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스웨이드는 스케이트 보더들과 만나며 스스로 영역을 한 단계 더 확장하게 된다. 어디에든 잘 어울리는 스웨이드의 실루엣과 다양한 컬러, 스케이트를 타기에 무리가 가지 않는 착화감이 한몫했다. 스트릿에서 인기를 얻은 신발이니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 같지만, 모든 신발이 그와 같은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만큼 푸마 스웨이드는 특별한 모델이다.

 

마치며

여러 브랜드의 신발을 찾아봐도 푸마 스웨이드처럼 다양하면서도 깊은 문화적 배경을 품고 있는 신발은 드물다. 긴 시간 사랑받은 신발 또한 손에 꼽을 만큼 적다. 지금도 레드불 BC ONE이나 IBE, 아웃브레이크 유럽, BOTY 등을 보면 푸마 스웨이드를 신고 나오는 비보이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어쩌면 힙합 문화가, 스트릿 문화가 이어지는 한 푸마 스웨이드의 역사는 계속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원문: 스트릿 웨어 컬처 브랜드 DI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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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이 독보적인 브랜드가 된 비결 https://ppss.kr/archives/262427 Fri, 14 Apr 2023 06:29:27 +0000 http://3.36.87.144/?p=262427 ※ 오늘 뉴스레터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 「Louis Vuitton’s Formula for World Domination」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으니, 여유가 되시면 같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루이비통, 그저 압도적입니다

이달 초 유럽 여행 중,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우연히 거닐게 되었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샹젤리제 거리는 주요 명품 브랜드의 매장들이 모두 모여 있는 매우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이처럼 여러 브랜드들이 각기 매력을 뽐내던 와중에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매장이 하나 있었는데요. 바로 쿠사마 야요이와의 협업을 알리기 위해 그녀의 상징인 도트 무늬로 벽면을 장식한 것은 물론, 거대한 쿠사마 인형까지 등장시킨 루이비통의 플래그십 스토어였습니다. 특히 이러한 파격에선, 구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대중에게 사랑받는 작가 쿠사마처럼 루이비통 역시 헤리티지와 트렌드 모두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고요.

그리고 이러한 미친 존재감만큼이나, 최근 루이비통이 보여준 성장세 역시 눈부십니다. 특히 지난해에는 명품 브랜드 최초로 연 매출 200억 유로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는데요. 이는 한화로 환산하면 약 28조 원에 달하는 금액으로, 구찌와 에르메스의 매출을 합한 금액과 비슷한 규모니 정말 엄청나지 않습니까? 더욱이 루이비통의 위상은 매출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브랜드 가치 역시 모든 패션 브랜드를 통틀어 1위라고 하니까요.

그렇다면 이처럼 루이비통을 세계 최고의 패션 브랜드로 만든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럭셔리 브랜드 특유의 희소성을 지키면서, 동시에 루이비통 고객의 외연을 끊임없이 확장하는 데 성공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쿠사마와의 협업과 같은 브랜드 캠페인 활동부터, 가격 정책, 유통 전략까지 전방위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습니다.

 

모순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사실 하나의 브랜드가 희소성과 확장성을 동시에 가진다는 건, 말은 쉽지만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루이비통만큼 이를 성공적으로 달성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든데요. 국내에서 비슷하게 묶이는 에르메스와 샤넬만 하더라도, 범접 불가능한 이미지는 갖추고 있지만, 대신 외형적인 규모의 성장은 어느 정도 포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루이비통이 3대 명품 브랜드라 불릴 정도의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건, 항상 수요보다 적게 만들고, 그나마도 쉽게 살 수 없도록 통제하였기에 가능했습니다.

알고 보면 처음부터 루이비통이 지금처럼 비싸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일례로 2014년만 해도 핸드백의 절반 이상이 1,500유로 미만의 가격이었다고 하는데요. 2021년 기준으로는 그 비중이 20%로 줄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돈이 충분하다고 해도, 루이비통을 쉽게 살 수 없다는 겁니다. 지난 10년 동안 루이비통의 매장 수는 거의 변하지 않았고요. 현재까지도 직접 판매 원칙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루이비통의 매출이 30% 성장하는 동안, 매장 수는 고작 9% 늘었을 뿐입니다

물론 이러한 지속적인 가격 인상과 독점적인 유통 전략은 샤넬과 같은 경쟁 브랜드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전략이긴 합니다. 다만 이들과 루이비통의 결정적 차이는, 상업성을 추구한다고 비판받기도 했지만 십여 년간 적극적인 외연 확장을 동시에 진행했다는 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루이비통은 에르메스나 샤넬과 견줄만한 초고가 핸드백 라인을 꾸준히 늘려왔습니다. 한편으로는 보다 쉽게 고객이 접근 가능한 비교적 저렴한 제품 라인도 꾸준히 출시하였습니다. 취급하는 상품군도 가죽 제품에서 의류, 신발, 보석, 향수 등으로 계속 넓혀가고 있고요. 이로 인해 매장 수는 10년 전과 비슷하지만, 평균적인 크기는 30% 이상 커졌다고 합니다. 이렇듯 확장성에 대한 끊임없는 시도 덕분에 경쟁자 대비 훨씬 큰 규모의 매출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겁니다.

특히 1997년 마크 제이콥스를 크리에티브 디렉터로 기용한 것을 시작으로 세간의 이목을 끄는 트렌디한 이미지를 선점한 건, 고객 확장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더욱이 근래 들어선, 2017년 슈프림과의 협업이나, 2018년 버질 아볼로 영입 등을 통해 젊은 고객들의 열렬한 지지 또한 받고 있기도 하고요. 지금은 럭셔리 브랜드를 넘어, 패션 전반에서 이러한 경계 없는 협업과 확장이 대세가 되었지만, 루이비통은 여전히 그중에서도 가장 파격적으로 움직이는 브랜드입니다. 올해 2월 버질 아볼로의 후임으로 패션 비전공자인 가수 출신 셀럽 퍼렐 윌리엄스를 기용하며 세상을 다시 놀라게 했던 것이 한 사례고요.

당연히 이러한 행보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이들도 존재하긴 합니다. 때론 명품 브랜드가 장인정신이 아닌 매출과 수익에만 너무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하고요. 더욱이 이렇게 너무 확장성에 매몰되다 보면, 본연의 희소성을 잃어버리고 평범한 브랜드로 전락할 위험성도 있습니다.

 

루이비통에게 남은 과제는

하지만 이처럼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도, 루이비통은 희소성과 확장성 2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노력을 꾸준히 지속해 나갈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어려운 과업인 만큼 그 결실도 달콤하기 때문인데요. 전문가들은 작년 루이비통의 수익 마진이 무려 50%에 가깝다고 추정합니다. 매년 꾸준히 성장하여 수백억 유로에 이르는 엄청난 매출 규모에, 말도 안 되게 높은 이익률까지 정말 사기적이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루이비통처럼 되려고 노력합니다. 아주 소수지만, 비슷한 경지에 다다른 브랜드가 간혹 있기도 한데요. 속한 시장은 다소 다르지만 나이키가 대표적입니다. 나이키는 D2C를 강화하며 재고를 통제하고, 한정판 전략을 통해 상품 가치를 높이며, 럭셔리 브랜드들의 전략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안 그래도 시장 1위였던 매출 규모를 더욱 빠르게 성장시키며 2위 아디다스와의 격차를 벌리는 중이고요. 또한 패션 브랜드 가치 1,2위를 루이비통과 다투는 최대 경쟁자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루이비통이 패션 브랜드 1위 자리를 두고 펼쳐지고 있는 나이키와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찾아야 할 마지막 퍼즐은 역시나 디지털 전환이 아닐까 싶은데요. 명품 브랜드는 온라인 판매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기에, 루이비통 역시 이를 잘 활용하고 있지는 못한 상황입니다. 다만 지속적으로 게임 산업에 투자하는 등 디지털 채널에서도 고객 경험을 증진시키는 방안에 대해 고민 중인 걸로 보이는데요. 과연 루이비통이 새로운 혁신을 통해 나이키마저 물리치고 더 압도적인 위상을 구축할 수 있을지 앞으로도 관심 있게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문: 기묘한의 브런치


커머스와 IT에 관한 트렌드를 기록하고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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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모 후드티가 후드티의 근본?: 후드티의 역사 https://ppss.kr/archives/258794 Thu, 05 Jan 2023 02:01:54 +0000 http://3.36.87.144/?p=258794

후드티

머리 부분을 덮는 쓰개가 달린 티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1. 저지 섬에서 만든 저지

스웨터는 니트나 뜨게질을 한 소재로 만들어진 의복으로 긴 소매를 가진 의복을 말하는데요. 양모로 손 뜨개질을 한 것은 2천 년 전부터이지만 15세기가 되어서야 영국의 저지 섬에서 니트 셔츠가 탄생하게 돼요. 따라서 저지라고도 부르죠. 이 스웨터는 축축해도 따뜻했기 때문에 주로 선원과 어부들에게 널리 사용되었어요.

 

2. 스웨트셔츠, 면으로 만든 땀복

면으로 만든 스웨트셔츠 ⓒ RUSSELL ATHELTIC

1890년, 이 스웨터는 미국 운동선수들에게도 사용되었는데요. 땀을 빼기 좋은 옷이라는 뜻으로 스웨트셔츠가 되었다는 설이 있어요. 하지만 스웨트셔츠는 양모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무겁기도 했고, 양모는 세탁을 하면 옷이 줄어들고 말리는 시간도 오래 걸리는 등 문제점도 있었어요.

1926년 앨라바마 크림슨 타이드 풋볼팀의 쿼터백이었던 벤자민 러셀 주니어가 불편함을 해결할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죠. 바로 면으로 만든 스웨트셔츠였죠. 러셀은 이 아이디어를 아버지에게 말했고, 아버지는 이를 현실화했어요. 1930년에 러셀 애슬레틱 밀스를 설립하여 면으로 만든 스웨터셔츠를 생산했던 거죠. 이 러셀 애슬레틱은 아직도 스웨트셔츠를 판매하고 있어요.

 

3. 맨투맨, 국내 최초의 스웨트샤쓰

맨투맨 스웨트샤쓰 1974년 7월 27일자 신문에 실린 광고 ⓒ 경향신문

한국에서는 이상하게 스웨트셔츠를 ‘맨투맨’으로 부르는데요. 이것은 국내 최초의 스웨트셔츠와 관련이 있습니다. 1953년 창업한 성도섬유라는 회사가 있었는데요, 이곳은 1974년 국내기술로 스웨트셔츠 생산을 성공해 브랜드를 런칭하게 됩니다. 이 브랜드명이 바로 ‘맨투맨 스웨트 샤쓰’였죠. 이후로 한국에서는 맨투맨이 스웨트셔츠를 의미하는 고유명사가 되었어요.

 

4. 후드티, 워밍업용 운동복

경기 중이 아닌 상황인 쉬는 시간, 연습 시에는 활동성이 좋으면서도 더 따뜻한 옷이 필요했었는데요. 그렇게 워밍업용 의류로 후드티가 탄생하게 됩니다. 최초의 후드티를 제작한 회사는 챔피온인데요. 당시의 사명은 니키보커 니팅 컴패니(Knickerbocker Knitting Company)였어요.

챔피언은 이 외에도 옷에 글자를 새기는 법과 세탁 시 옷이 줄어들지 않게 하기 위한 가로로 방직하는 리버스 위브 방식을 발명했죠. 챔피언은 초기부터 운동복을 생산하던 회사였는데요. 웬트워스 군사 학교의 유니폼과 미시간 울버린 팀 유니폼 생산에서부터 시작해, 1990년대에는 NBA의 모든 팀과 NFL의 일부 팀 유니폼을 제작했어요.

원문: 사소한 것들의 역사


참고문헌

스웨터」 Britinnica

Russell athletic 홈페이지

Champion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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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는 믿음: 피비 파일로의 패션 철학 https://ppss.kr/archives/247559 Thu, 16 Dec 2021 05:00:03 +0000 http://3.36.87.144/?p=247559 1973년 1월 1일. 프랑스 파리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피비 파일로(Phoebe Philo).

피비 파일로.

피비는 부모님으로부터 천부적인 미적 감각을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토지 표면의 형태, 고도, 면적, 위치 등을 측정하는 측량사였고, 어머니는 미술품 거래상이자 가수들의 앨범 표지를 디자인해주는 그래픽 디자이너였다. 아버지의 꼼꼼함과 어머니의 섬세함을 가졌던 그는 14살이 되던 해에 재봉틀로 직접 옷을 만들어 입었다.

10대 소녀가 만들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옷의 완성도가 높아, 구매하려고 했던 이웃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패션은 피비에게 놀이이자 행복이었다. 원단의 미묘한 촉감이나 색감을 구별하는 일도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사람들이 좋아할 때 큰 행복을 느꼈다. 그는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피비 파일로는 영국 런던에 위치한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예술대학에 진학해 예술 디자인을 전공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패션을 마음껏 공부하고 실력을 키웠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두 명의 디자이너를 알게 됐다. 바로 미니멀리즘 디자이너의 거장, 헬무트 랭(Helmut Lang)과 질 샌더(Jil Sander)였다.

1990년대의 패션계는 단순함보다 화려함에 무게를 두었다. 이런 주류에도 불구하고 헬무트 랭과 질 샌더는 절제된 디자인, 편안한 색 조화, 실용성과 착용성을 바탕으로 패션을 해석했다. 피비 파일로는 이들의 작품을 보며 단순한 시선으로도 패션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음을 배웠다. 이후 그의 패션 철학이 된 단순함(Simplicity), 실용성(Practicality), 착용성(Wearability) 이 세 가지는 훗날 그가 전설적인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단순함, 실용성, 착용성

1997년, 피비 파일로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명품 브랜드 끌로에(Choloe)’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당시 끌로에의 수장 스텔라 맥카트니(Stella McCartney)를 도우며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스텔라가 물러난 후, 2001년부터 2006년까지 피비 파일로는 끌로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했다.

Chole 2002 collection by Phoebe Philo. / 출처: VOGUE

그는 여성을 위한 옷을 만들고자 했다. 여성들이 ‘여성성’을 위해 짧고 타이트한 드레스, 신체 일부가 노출되는 옷 등을 더 이상 강요받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위의 사진처럼 군더더기 없고(Simplicity), 품이 여유로우며(Practicality), 몸을 편안하게 감싸는(Wearability) 디자인에 집중했다.

피비는 자신의 스타일을 착실하게 지켜나갔다. 끌로에의 매출은 빠르게 상승했다. 매출 상승보다 눈에 두드러진 점은 전 세계에 피비 파일로의 여성 팬이 늘어난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여성을 위한 진정한 옷을 만드는 그를 자신들의 뮤즈로 삼았다.

 

휴식이 주는 것

2006년, 피비 파일로는 출산을 위해 끌로에를 뒤로 하고 런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무기한의 휴식기를 갖기로 결심했다. 그는 그동안 쉴 틈 없이 일해온 탓에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지친 상태였다. 무엇보다 태어나는 딸의 하나뿐인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라도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주변 동료들은 한창 커리어가 쌓이는 지금을 놓쳐선 안 된다고 만류했지만 피비는 자신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이 시기에 피비 파일로는 내적 성장을 경험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모성애의 따뜻함이 무엇인지 알게 됐고, 창문 밖 나무와 꽃을 벗 삼아 명상을 하면서 자연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또한 자녀를 위해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을 줄 아는 자제력을 배웠다.

따뜻한 모성애는 부드럽고 유려한 라인의 디자인으로, 자연의 소중함은 베이지·브라운·카키색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것으로, 자제력은 단순함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념으로 연결됐다. 이를 기반으로 피비 파일로는 프랑스 명품 패션 브랜드 셀린느(Celine)에서 자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유일무이한 디자인 철학

Celine by Phoebe Philo. / 출처: L’officielusa, VOGUE

그는 끌로에에서 활동했을 때보다 발전된 디자인을 선보였다. 의류 장식이나 패턴이 간결해졌고 색감 활용은 무채색에서 베이지, 브라운, 카키 등의 톤 다운 컬러까지 다채로워졌으며, 옷 품은 크게 제작해 착용감을 강조했다.

팬들은 그의 복귀를 환영했다. 피비가 끌로에를 떠나고 난 후, 그 어떤 브랜드에서도 피비 파일로와 같은 패션을 보여주는 곳은 없었다. 심지어 끌로에조차 그가 떠난 자리를 온전히 채우지 못했다.

2008년 피비 파일로는 셀린느에서 첫 시즌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이후로도 셀린느를 떠나는 2018년까지 여성들이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옷을 만들었다. 이제 셀린느에서 피비의 흔적을 볼 수 없지만, 여전히 그는 셀린느의 영원한 수장이자 여성을 위해 노력한 디자이너로서 기억되고 있다.

2018년 셀린느를 끝으로 그의 공식적인 활동은 없는 상태였으나, 2021년 7월 패션계로 복귀한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다국적 패션 기업 ‘LVMH’와 손을 잡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의류 및 액세서리 브랜드를 준비 중이다. 패션계로 돌아오면 이번에도 피비 파일로만의 단순하고 실용적이며 착용감이 좋은 옷이 전개될 것이다.

 

마치며

누군가는 그의 패션이 진부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패션은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해야 하는 영역이 아니다. 트렌드만을 좇아 단기적인 멋을 표현하는 것보다, 디자이너의 색을 더한 멋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색은 곧 고유함이다. 그것은 하루 단위로 바뀌는 패션의 시류에 휩쓸리지 않게 해 주는 힘이다. 그 힘을 잃으면, 디자이너는 패션을 대하는 본인만의 기준을 잃는다.

피비 파일로를 보며 알 수 있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개인의 철학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피비는 어렸을 때부터 보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확고한 이정표를 완성했다. 환경이 변해도, 심적으로 부담을 느껴도, 몸이 고달파도 꿋꿋하게 한 방향으로 걸었다. 그렇기에 그가 추구하는 패션을 완성할 수 있었다.

현실은 잘못된 신념으로 가득하다. 내가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인지 모른다면 그 신념에 의해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다. 나를 규정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래야 나만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며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마치 피비 파일로처럼 말이다.

원문: 코지오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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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다’는 소장할 만한 브랜드인가 https://ppss.kr/archives/247560 Fri, 26 Nov 2021 03:01:02 +0000 http://3.36.87.144/?p=247560 진보와 영원 Progress and Eternity

프라다의 철학을 짧게 함축하면 이와 같다. 끊임없이 소재와 디자인을 진보시키고 진보된 수준을 영원히 유지하려는 집념. 프라다 CEO 미우치아 프라다의 철학이 고스란히 브랜드에 녹아있다. 덕분에 프라다는 특유의 세련미를 뽐내며 수많은 고객층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우치아 프라다는 어떤 계기로 진보와 영원이라는 철학을 가지게 된 것일까? 그리고 프라다의 어떤 부분에서 이 철학이 적용되고 있는 것일까?

1913년 마리오 프라다(Mario Prada)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프라다를 창립했다. 그는 뛰어난 가죽 가방 및 다양한 액세서리 제품을 만들었는데, 1919년 이탈리아 사보이아(Savoia) 왕실에 납품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후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프라다는 쇠퇴의 길을 걸었다. 지속되는 전쟁으로 경제 심리가 위축되어 매출은 급감했고, 제품의 원재료를 구하는 길도 막혔다. 마리오 프라다의 두 딸이 가업을 물려받았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탈리아 전역에 매장 하나만 운영할 정도로 재정 상황은 점점 나빠졌다. 그러나 1978년 창립자 손녀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가 프라다를 인수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몇 년에 걸친 브랜드 리뉴얼을 통해 프라다는 급성장했다. 이 시기 미우치아가 단행한 선택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그녀를 알아야 한다.

미우치아 프라다. / 출처: fashionmagazine

미우치아 프라다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바로 정치학을 전공했다는 것이다. 진보 성향이었던 그녀는 박사학위까지 취득해 이탈리아 공산당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특히 여성 인권에 관심이 많았는데 성숙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시위를 주도하거나 참여했다. 이런 정치 성향을 가지게 된 것은 국가의 사회 분위기와 집안 환경의 영향이 컸다.

당시 이탈리아는 부패가 만연했다. 정경유착은 물론이고 당에 유리한 정책이 최우선으로 여겨지면서 국민들은 고통 속으로 밀려났다. 여성 인권도 존중받지 못했다. 기득권층은 여성들이 일을 하거나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것을 부정적으로 봤다. 그녀의 할아버지 마리오 프라다도 마찬가지였다. 프라다는 여성들이 활동할 수 없는 기업이었다. 그래서 프라다를 자기 아들에게 물려주려 했으나 아들이 원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경영권을 딸들에게 넘긴 것이었다.

답답한 자국 정부와 가족 내 남녀 차별을 보고 자란 미우치아는 세상이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무너지는 현실이 한 차원 더 진보하고, 진보로 얻은 훌륭한 결실은 영원히 지속되길 바랐다. 그렇게 ‘진보와 영원’은 그녀의 철학으로 자리 잡았고 프라다를 운영하면서 브랜드 곳곳에 자연스럽게 적용됐다.

 

포코노 나일론의 탄생

미우치아 프라다는 패션 전공자 못지않은 디자인 감각이 있었다. 패션을 전공하지 않아서 오히려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했다. 틀에 갇혀있지 않는 상상력으로 1979년 그녀는 프라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결과물을 만들었다. 그것이 ‘포코노 나일론(Pocono Nylon)’이다.

프라다의 포코노 나일론백.

당시 경쟁 브랜드 대부분은 가죽으로 만든 가방을 출시했다. 이에 미우치아는 의문을 품었다.

  • 관리도 어려운 가죽을 굳이 고집하는 이유가 뭐지?
  • 가죽보다 튼튼하고 가볍고 관리하기 쉬운 소재는 없을까?
  • 오래 사용할 수 있을 만큼 형태 보존력이 좋은 소재는 무엇일까?

그녀는 제품의 ‘진보와 영원’을 위해 다양한 소재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해서 발견한 것이 나일론이었다. 미우치아는 할아버지가 쓰셨던 가방 보호 천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마리오 프라다는 여행을 다닐 때 나일론 천으로 가방을 감싸 보호했다. 나일론은 굉장히 질긴 섬유다. 내구성이 뛰어나고 오염물이 묻어도 쉽게 세탁 가능하다. 방수까지 되니 관리에 용이하다.

모두 가죽을 사용할 때 그녀는 진보된 시선으로 나일론을 활용해 가방을 만들었다. 완성된 나일론 가방의 존재는 독보적이었다. 가죽 못지않게 멋스러웠다. 가벼워서 여성들이 사용하기 좋았다. 튼튼해서 소비자들이 오랫동안 프라다 제품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이는 프라다의 철학이 고객과 긴 세월 동안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후 프라다는 명품 브랜드로서 입지를 단단히 다졌다. 가방 외에도 다른 액세서리와 의류에 동일한 소재를 활용하면서 시장의 호응을 얻었다. 세련된 검정 포코노 나일론은 브랜드를 대표하는 시그니처로 자리 잡았다.

 

사피아노 가죽

프라다의 두 번째 시그니처 소재는 사피아노 가죽(Saffiano Leather)이다. 표면에 격자무늬를 찍어 왁스 혹은 PVC 등으로 코팅한 가죽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가죽보다 단단하고 외부 오염에 강하다. 미우치아는 가죽도 포기할 수 없었다. 아무리 나일론이 좋아도 가죽 특유의 느낌까지 흉내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질 좋은 사피아노 가죽을 가방과 여러 액세서리에 적용했다.

프라다의 사피아노 토트백.

사실 사피아노 가죽은 프라다에서 1913년부터 사용했으나 주목받지 못했다. 가죽 본연의 느낌을 전달하지 않고 인위적인 가공으로 눈속임을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우치아는 사피아노 가죽의 가능성을 알아봤다. 가죽 가공을 정밀하게 하면 일반 가죽보다 월등한 우위를 가질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뛰어난 공방을 찾아다녔다. 그녀는 공방과 협력해 사피아노 코팅 소재 및 제작 기술 등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노력 끝에 두 번째 시그니처 ‘사피아노 라인업’이 완성됐다. 프라다 사피아노 가죽 제품은 일반 가죽 제품보다 스크래치에 강하고 물이 닿아도 잘 젖지 않는다. 나일론처럼 형태가 오래 유지되어서 구매하면 장기간 사용할 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사피아노 지갑이 인기가 많다. 깔끔하면서도 내구성이 훌륭해 선물하기에 좋은 아이템으로 늘 거론된다.

지금은 다양한 브랜드에서도 사용할 만큼 보편화된 소재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꾸준하게 사피아노 가죽을 발전시키며 제품에 적용한 브랜드는 프라다가 유일하다. 포코노 나일론에 이어서 미우치아 프라다는 또 한 번 ‘진보와 영원’을 적용했다. 가죽을 진보시킴으로써 고객들이 프라다를 오랫동안 소유할 수 있도록 힘썼다.

패션에서 소재는 중요한 요소이다. 디자인이 훌륭해도 소재가 뒷받침해주지 못하면 가치가 떨어진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자기 철학을 표현할 수 있는 존재를 소재라고 판단했다. 그 결과 포코노 나일론과 사피아노 가죽이 세상에 등장했고 사람들은 프라다의 철학을 더 오래 간직할 수 있게 됐다.

 

폰다지오네 프라다

미우치네 프라다와 그녀의 배우자는 예술을 사랑한다. 특정 작가들의 작품을 모을 정도로 예술에 대한 애정이 높다. 1993년 두 부부와 자주 왕래했던 예술가 지인이 이런 제안을 했다.

당신들이 사용하지 않는 의류 창고를 작품 전시회 용도로 쓰는 건 어떻습니까?

2015년에 생긴 밀라노의 폰다지오네 프라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프라다는 예술가들과 함께 문화 재단, ‘폰다지오네 프라다(Fondazione Prada)’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현대 미술 위주로 전시를 했지만, 점차 건축, 문학, 영화, 음악, 철학, 과학, 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며 공간을 구성했다. 예술가들을 직접 발굴해 그들이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하고, 언사를 초청해 시민들과 소통하는 강연도 주기적으로 진행했다.

한 패션 잡지 인터뷰에서 미우치네 프라다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Q. 문화 재단을 운영할 만큼 예술을 각별히 여기는 듯하다. 이유가 있나?

A. 예술은 인간의 아이디어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 아이디어로 인간은 영감을 얻고 세상을 발전시킨다. 영감을 얻은 자아와 발전된 세상은 오랜 시간 유지되며, 다시 예술의 아름다운 아이디어를 만든다. 이것은 반복된다. 예술이야말로 진보와 영원을 담고 있다. 프라다가 지향하는 철학과 부합하다.

집에 돌아와 맥주를 마시며 본 영화 한 편이, 카페에 앉아 무심코 들었던 음악 한 곡이,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소설책 한 권이 인생에 큰 울림을 줄 때가 있다. 낯선 감정을 마주해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거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내일부터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예술가들은 섬세한 시선으로 대중과 세상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그 영향으로 더 나아진 세상을 마주하고, 그 세상 속에서 누리는 풍요가 오랫동안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프라다의 브랜드 정체성과 예술은 결이 맞다. 그들에게 예술은 ‘진보와 영원’이란 철학을 사람들에게 깊게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이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남다른 접근으로 프라다의 진보를 이끌어 왔다. 진보로 이룬 변화가 지속될 수 있도록 했다. 그것이 그녀가 오래전부터 추구해온 ‘진보와 영원’ 정신이다. 프라다는 지금도 끊임없이 발전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존재하고자 노력한다. 그런 의미에서 프라다는 소장할 만한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폰다지오네 프라다의 콜렉션.

취향에 따라 프라다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제품은 한 세기 이상 지켜진 브랜드 철학을 품고 있다. 그 가치는 무시할 수 없으며, 객관적으로 봐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현재보다 더 나은 내일을, 더 나은 내일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프라다의 철학. 이 메시지가 마음을 울렸다면 당신에게 프라다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브랜드일 것이다.

원문: 코지오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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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퍼는 죄가 없어, 문제는 언제 어디서 누가 신었느냐지 https://ppss.kr/archives/218696 Tue, 23 Nov 2021 04:34:02 +0000 http://3.36.87.144/?p=218696 동종업계 사람들이 모이는 대나무 숲 같은 가상공간이 있다. 익명으로 이 바닥에서 밥벌이하며 사는 삶에 대한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때로는 위로와 응원을 주고받는 곳이다. 어느 날, 그곳에 푸념 섞인 글 하나가 올라왔다.

현장에 블로퍼(Bloafer) 신고 왔다고 선배한테 한 소리 들었어요. 참나 하이힐을 신은 것도 아니고… 현장에 블로퍼 신고 오지 말란 법 있나요?

블로퍼는 백리스(Backless)+로퍼(Loafer)+슬리퍼(Slipper)의 합성어로, 앞은 로퍼처럼 막혀 발등을 덮고 뒤는 슬리퍼처럼 뒤축 없이 터져 있는 신발이다. 한때 패션계를 휩쓸었던 구찌의 이 신발이 바로 블로퍼.

줄줄이 이어진 댓글은 다양한 맛의 이야기가 오갔다. 번잡스러운 현장에서 자칫 걸려 넘어질까 걱정된 마음에 한 소리가 아닐까 하는 순한 맛부터 신발 신는 자유까지 빼앗는 꼰대 선배를 규탄하는 불닭맛까지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댓글들을 지켜보다 궁금증이 차올랐다. 만약 후배가 블로퍼를 신고 현장에 나타났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했을까?

그전에, 먼저 현장이란 곳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현장이란 어떤 곳인가? 사무실에서처럼 조용히 앉아 노트북 키보드만 두드릴 수는 없는 곳이다. 고고한 백조가 아닌 부지런한 꿀벌의 자세가 제1덕목이다. 무엇보다 현장은 언제 어디서 ‘변수’라는 폭탄이 뻥뻥 터질지 모르는 곳이다. 머리는 현명한 판단, 몸은 재빠른 대처가 필요한 장소다. 몸과 머리가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그야말로 ‘업무 능력이라는 꽃‘이 만개하는 곳이다.

어쩌면 단순히 현장에 블로퍼를 신고 온 게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평소 마음이 잘 통하고 트러블이 없는 관계라면 블로퍼든, 짚신이든, 나막신이든 상관 안 한다. 뭘 신든 맡은 일을 잘 해내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겨우 신발 ‘하나로’ 지적을 받았다는 건, 겨우 신발 ‘하나도’ 그냥 못 넘어갈 만큼 신뢰가 깨졌거나 관계가 악화됐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삐거덕거리는 관계는 상대에 대한 호감/비호감 차이가 만든 결과다. 후배의 어떤 선택이든 믿지 못하는 선배, 선배의 말이 뭐든 잔소리로 해석하는 후배. 이 관계의 끝이 어떨지는 굳이 세세하게 말하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이 시점에 대다수 상급자들의 뼈에 새겨진 성향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눈에 보이는 모습만으로 그 사람의 마음가짐까지 추측해 성급하게 결론 내리는 그 성향 말이다.

언젠가 시험을 앞두고 책상에 붙어 앉아 있는 나를 본 엄마가 버럭 화를 냈다.

얘! 라디오를 이렇게 크게 틀어 놓고 무슨 공부를 하겠다는 거야? 공부할 자세가 안 됐네. 안 됐어.

사춘기의 반항심 가득한 소녀는 엄마의 고루한 생각에 숨이 콱 막혔다. 대체 공부할 자세란 뭐지? 공부랑 라디오 소리 크기랑 무슨 상관이라고. 분명 라디오를 그리 크게 틀어 놓은 것도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닌 엄마의 그 한 마디에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이렇게 부모님 세대에게 공부하는 곳이란 자고로 절간이나 독서실처럼 개미의 발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한 곳이어야 했다. 그들에게 일정 수준의 백색 소음은 집중력 향상에 효과적이라는 현대의 과학적 분석은 납득할 수 없는 이론일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 다 자기가 겪은 ‘경험의 한계’에 갇혀 산다. 쉽게 깨지지도 않고 또 깰 생각도 없는 그 한계. 나이를 먹을수록 그 ‘경험의 한계’는 견고해진다.

흔히 ‘인생은 낄낄빠빠’라는 말을 한다. 여기서 ‘낄낄빠빠’는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란 뜻의 줄임말. 삶은 때와 장소, 타이밍만 잘 파악해도 성공이라는 의미다. 블로퍼가 끼어야 할 장소가 있고 빠져야 할 장소가 있다. 스니커즈가 필요한 장소에 블로퍼는 분명 불청객일 수밖에 없다.

신발에 대해 고나리를 했던 선배는 후배가 현장에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처할지 그 마음가짐을 블로퍼 하나로 짐작했을지 모른다. 선배 본인 기준에 블로퍼는 현장에 어울리는 활동적인 신발은 아닌 것이다. 블로퍼를 신고도 러닝화를 신은 듯 100m 전력 질주를 할 수 있는 능력자라면야 모를까. 그런 능력자를 만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운 좋게도 그 상위 0.000001%의 능력자가 이 후배일 수도 있다.

후배 입장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보란 듯이 블로퍼를 신고도 러닝화를 신은 듯 날렵한 몸놀림과 빠릿빠릿한 일처리로 고나리를 내뱉던 선배의 입을 다물게 한다. 둘째, 신발 선택의 자유까지 빼앗는 꼰대와 일을 하지 않는다. 정답은 없다. 어떤 선택을 하건 분명 당사자, 본인의 몫이다.

원문: 호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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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하는 여자 패션, ‘스포티 앤드 리치’는 못 참지 https://ppss.kr/archives/241817 Fri, 22 Oct 2021 03:31:19 +0000 http://3.36.87.144/?p=241817 신선함을 담보하는 매력 코드

역설의 시대엔 역시 반대로 가야 한다. 트렌드도 정도껏 해야지 자꾸 밀고 들어오면 소화가 안 된다. 새로운 감각과 느낌만 자꾸 찾는 건 철학의 빈곤을 드러낼 뿐이다. 새로운 것이 솟아날 구멍이 모두 막혀버렸을 때는 버젓한 과거에 기대게 된다. 과거는 대체로 안정적이고 분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세례를 받으며 검증된 스토리와 이미지의 힘은 그래서 강력하다.

패션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패션 브랜드는 과거의 것들에 점을 찍고 ‘이거 봐, 우리는 이런 광고를, 이미지를, 패션을, 스타일을 괜찮게 여길 줄 아는 놈들이라고!”라고 주장함으로써 현재의 좌표를 드러내는데 열심이다.

오프화이트의 버질 아블로는 브랜딩 과정의 곳곳에 옛것을 때려 박기로 유명하다. 1990년대 미국 힙합 씬, 스케이트보드 컬처의 아이코닉한 레퍼런스를 과감하게 차용하고, 앞으로의 패션 트렌드를 내다보면서 이제는 ‘중고(second-hand)’가 대세가 될 거라고 주장할 정도다.

1990년대 힙합 음악과 스케이트보드 문화는 버질 아블로의 크리에이티브 핵심 구성 요소다.

2020-21 F/W 런웨이의 현장에서도 과거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구찌, 드리스 반 노튼, 에르메스는 70년대의 락 스피릿, 보헤미안 스타일이 물씬 풍기는 룩으로 시간을 뒤집었다. 인생도, 유행도, 패션도 돌고 돈다. 이제 과거의 재현은 철 지난 촌스러움이 아니라 도리어 신선함을 담보하는 매력 코드다.

과거의 재현은 이제 신선함을 담보하는 매력 코드다. / 출처: Vogue Paris

 

스포티 앤드 리치 Sporty and Rich

오늘 소개하고 싶은 뉴욕 기반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스포티 앤드 리치(이하 S&R)’ 또한 과거의 멋과 맛을 추종하며 고유의 매력적인 이야기를 쌓아 올렸다. 그것도 매우 성공적으로! 한국에는 스웨트셔츠와 팬츠, 그리고 볼캡으로 이미 널리 알려졌다.

사진만 봐도 알겠다. 천조국 스웨트셔츠의 실제 질감을! 여긴 먼 나라 한국인데. / 출처: S&R 공식 웹사이트

본래 S&R은 1980–1990년대의 광고·매거진 이미지, 빈티지 라이프스타일·럭셔리 굿즈, 미국의 포토그래퍼 ‘슬림 애론즈’ 풍의 사진 등을 아카이빙하던 창업자 에밀리 오버그(Emily Oberg) 개인의 인스타그램 ‘비주얼 무드 보드’였다.

이것이 이후 프린트 매거진의 형태로 변화하고, 이어서 패션 브랜드로 발전하다가 종국에는 총체적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하지만 ‘과거’라는 키워드는 S&R의 오직 반쪽만을 설명해 줄 수 있을 뿐이다. 할 말이 꽤 많은 브랜드이기 때문에 그렇다.

취향의 시대다. 과거는 소중하다. / 출처: S&R 공식 인스타그램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과거로부터 영감받은 거예요. 1970, 1980, 1990년대의 재해석인 셈이죠. 그것들이 더 개성이 있고 깊이가 있어서요.

  • 에밀리 오버그

브랜드 S&R와 에밀리 오버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매력 키워드는 요즘 사람들이 열광할 만한 가치로 가득하다. 일종의 ‘사기캐’랄까.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N잡러, 인플루언서, 건강, 퍼스널 브랜딩, 미니멀리즘, 레트로까지. 어떤가? 관심이 좀 생기지 않나? 무엇보다 요즘 시대의 매력적인 여성 취향이 궁금한 당신이라면 정말 잘 찾아오셨다.

에밀리 오버그는 여성 스트리트 패션 트렌드의 선봉장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과거’를 사랑한다. / 출처: missbish

 

에밀리 오버그, 개인의 확장

S&R의 창업자 에밀리 오버그는 캐나다의 시골 마을 캘거리 출신인데, ‘클럽 모나코’의 바이어로 일하던 그의 고모 덕에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패션’에 눈을 뜨게 되었단다. 이후 그는 성인이 되어 힙한 대도시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다.

미국의 유명 매거진 《COMPLEX》에서 비디오 에디터로 일하던 중, 눈에 띄는 취향으로 빚어진 개인의 명성 덕에 어린 나이에 뉴욕을 대표하는 패션 브랜드 ‘KITH’의 여성 라인 크리에이티브 수장까지 맡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이력도 그의 오직 반쪽만을 설명해 준다. 세계적인 ‘인플루언서’이자 ‘라이프스타일 구루’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기에.

에밀리 오버그를 널리 알린 COMPLEX의 ‘GET SWEATY’ 시리즈. 팝스타들과 함께 운동하며 즐거운 인터뷰를 진행했다.

S&R는 사실 그가 COMPLEX의 에디터로 일하던 2015년에 취미 겸 사이드 잡으로 시작한 개인 프로젝트였다. 기본 2개 이상의 직업을 가지고 여러 가지 사이드 프로젝트를 감당하면서 살아가는 동시대 뉴요커들로부터 받은 자극에 의해 탄생하게 됐다고 하는데, 이러한 시작점은 꾸준한 딴짓으로 기회를 만드는 요즘 시대와 세대에 걸맞은 매력적인 스토리다.

그의 담백하고 절제된 스타일링은 정말 최고다. / 출처: Fashionista
디지털 매거진의 시대, 프린트 매거진이라는 ‘정공법’을 택한 에밀리 오버그. 그런데 먹혔다.

2016년 5월, 에밀리 오버그는 S&R 페이퍼 매거진 창간호를 출간한다. 모든 것이 디지털로 전환되던 시기에 개인 시간을 쪼개 만든 일종의 커피 테이블 북이었다. 매거진은 오리지널 이미지 콘텐츠로 예쁘게 채웠다. 사람들의 공간에 침투해 그들이 직접 보고 만지며 느낄 수 있는 실제적인 브랜딩을 하길 원했다고.

그리고 앞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그만의 취향과 심미안으로 건져 올린 기분 좋은 과거 이미지들을 쌓아 올렸다. 올드카 커머셜, 올드 무비 포스터, 1970년대의 정경을 담은 사진, 1990년대 모델 이미지는 시대를 잘못 만나 더 아름다웠다.

‘스포티 앤 리치’는 인스타그램 무드 보드로부터 시작해 트렌드를 이끄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되었다. / 출처: S&R 공식 인스타그램

모두가 한 방향(디지털)을 바라볼 때, 그곳에서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느니 다른 길(아날로그)을 새롭게 닦아 놓고 기다리는 편을 택했다는 에밀리 오버그. 브랜딩이 결국 깃발 꽂기 게임이라면 그는 철 지난 곳, 사람들이 다 떠난 곳에 S&R의 깃발을 꽂고 과거 여행 가이드를 자처했다. 그렇게 트렌드에 흔들리지 않고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었다.

흡사 1980–1990년대 뉴발란스 광고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편집이 중요한 요즘, 레퍼런스 강자가 승리한다.

 

건강하고 풍부한 삶을 향해

S&R라는 브랜드명은 나쁜 것을 절제하고 건강히 잘 먹으며 열심히 운동하는 삶을 지향하고, 풍성한 행복과 삶의 질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에밀리 오버그 개인의 비전을 담아낸 것이다.

브랜드의 운영 방침도 깔끔하다. 젊은 세대가 건강과 운동에 더 관심을 갖게 하는 것. 이것은 S&R이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태도를 기반으로 한 스트리트 웨어 스타일에 집중하는 이유이자 ’S&R’의 티셔츠와 모자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직설적이고 명쾌한 텍스트가 조금도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Health is Wealth.

Be Nice. Get Lots of Sleep. Drink Plenty of Water.

직설적이고 단순한 표현이 시선을 끈다. 후킹의 시대다. / 출처: S&R 공식 웹사이트

패션 브랜드가 나아갈 길은 역시 선한 영향력이 아닐까? S&R의 공식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질 좋은 상품을 만들기 위한 브랜드의 구체적 노력 또한 확인해볼 수 있다. 더욱이 브랜드의 모든 제품은 공정 무역과 환경친화적 생산을 지향한단다.

 

포스트 코로나 그리고 미니멀리즘

S&R는 국내에서도 이제 나름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길거리에서도 자주 눈에 걸리기 시작했으니까. 특히 유행에 민감한 여성이라면 더욱 모를 수가 없겠다. 그런데 갑자기 왜?

출처: S&R 공식 웹사이트

미국 패션지 ELLE의 한 에디터는 ‘fancy on top, sweats on bottom’이라는 표현으로 비대면 재택근무 시대의 스타일, zoom 시대의 패션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설명했다. 드레스 ‘업’이 도리어 ‘쿨’ 다운으로 느껴지기 쉬운 요즘 시대에 1990년대 스포츠 웨어 감성을 재현하는 S&R의 담백하고 절제된 스웨트셔츠와 스웨트팬츠의 인기는 어찌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에밀리 오버그는 코로나19 이후 캐주얼 라운지 웨어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스포티 앤드 리치’의 매출이 크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랜드로버(Land Rover)가 떠오르는가? / 출처: Harmony Paris

구글 이미지 검색창에 S&R를 검색해보자. 얼핏 보면 단순하고 지루한 디자인으로 가득한 제품 라인업에 당황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찾던 깔끔하고 무심한 디자인이 이런 거였다며 시급히 결제를 시도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상반된 반응을 부르는 지점 위에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놓여있다. 바로 미니멀리즘이다.

저의 인생 철학은 less but better입니다.

  • 에밀리 오버그

단순하지만 질 좋고 입기 편한 옷을 만들겠다는 창업자의 의지, 무심한 듯 귀엽고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깔끔한 디자인을 향한 열정, 입지도 않을 옷을 구매해 매해 쌓아두는 것보다는 한번 사두면 오래 입을 수 있는 ‘데일리 유니폼’을 만들고 싶다는 철학까지. S&R의 모든 상품은 에밀리 오버그 개인의 확장인 셈이다.

일본의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는 무언가를 덜어내는 행위는 결국 소비 방식과 삶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불러온다고 말했는데, S&R의 미니멀리즘 브랜딩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릇이든 옷이든 양말이든 책이든 주 단위로 안 쓰는 물건을 정리하세요. 덜 가지고 살게 되면 마인드도 함께 정리되거든요.

  • 에밀리 오버그
증말 군더더기 없다. 증말 취향 좋다. / 출처: Deftin

 

‘나’로부터 작게, ‘큰’ 세상으로!

당신만의 라이브러리를 만드세요. 적은 리소스와 도구만으로도 할 수 있는 건 많습니다. 집에서 비트를 만들든 웹사이트를 만들든 일회용 카메라로 사진을 찍든요. 대신 최종 목표는 알고 가야죠. 나쁜 이유로는 말고요.

  • 에밀리 오버그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 ‘오바라 가즈히로’는 앞으로의 시대를 내다보며 비효율적인 개개인의 기호가 새로운 자본이 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와 관련한 정보가 가치가 되는 시대 말이다. 좋아하는 것에 매진하는 개인의 열정 그리고 그걸 공감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패션 브랜드라고 예외일 순 없을 것이다. 개인적 차원에서 차근차근 고유의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일, 자기만의 패션 취향을 드러내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뭉치는 과정이 곧 하나의 브랜딩이 되는 것이다.

개인 사이드 프로젝트가 매력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여러분도 할 수 있다. / 출처: Hypebae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의 스웨트셔츠를 좋아하는 에밀리 오버그는 그것을 생산하는 같은 공장에서 ‘S&R’의 스웨트셔츠를 생산해 판매한다. ‘S&R’ 제품의 한정 수량 발매 전략은 다름이 아니라 스케줄이 그 이상의 제품 생산과 판매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평소 이베이 검색을 통해 1980–1990년대 빈티지 티셔츠를 검색해 과거의 매력적인 그래픽 디자인을 구경하길 즐기는 그는 그것들을 스핀 온 해 ‘S&R’ 제품 위에 녹여낸다. 방금 언급한 세 가지 이야기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일상으로부터 출발해 브랜드를 가꿔 나간다는 점이다. ‘나’의 세계로부터 작게, 하지만 더 큰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다.

스타일링 숙제: 볼캡 하나 얹어 하중을 무너뜨려라.

거창한 이야기보다는 개인적이고 소소한 이야기가 더 흥하는 시대다. 또 겉만 그럴싸한 브랜딩이 불공정한 과정이나 그릇된 목적의식을 결코 덮을 수 없는 투명한 사회다. 패션 브랜드 스포티 앤드 리치는 창업자 에밀리 오버그의 일상과 취향, 그리고 철학의 확장판이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걸 꾸준히 아카이빙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패션 스타일을 ‘스핀 온’해서 제품 속에 녹여냈으며, 그 중심에 건강한 메시지를 담아 던졌다. 좋아하는 것의 단면이 잘 연마된 취향 있는 사람 주변에는 결국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법인데, 그는 그것을 ‘스포티 앤 리치’로 증명한 셈이다.

여러분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나요? 여러분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원문: 구하다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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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옷장의 탄소발자국 계산하기 https://ppss.kr/archives/241809 Fri, 15 Oct 2021 03:15:37 +0000 http://3.36.87.144/?p=241809

우리의 패션 생활에서 지구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분명하죠! 가장 좋은 건 덜 사는 것, 그 다음으로 좋은 건 살 때 잘 골라 사서 오래 입는 거죠. 이외에도 선택지는 다양합니다. 재활용 폴리에스터로 만들어진 제품을 고를 수도 있고, 친환경 소재를 조사해볼 수도 있고, 중고제품을 사볼 수도 있고, 리폼이나 수선도 방법이죠.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데 그 선택에 도움이 되는 지표가 있습니다. 바로 ‘탄소발자국’이에요. 탄소발자국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유통하고, 사용하고, 폐기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을 의미합니다. 탄소발자국은 한 제품을 구매하는 행위가 얼만큼의 환경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확인해볼 수 있는 지표인 거죠.

우리가 옷을 살 때, 탄소를 얼마나 많이 배출하게 될까요? 의류제품의 탄소발자국과 관련해 참고할 만한 두 사이트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파페치 Farfetch

파페치 환경 발자국 계산기는 소재별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물 소비량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소재별로 대체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선택지도 소개합니다.

 

스레드업 Thredup

스레드업(Thredup)은 미국판 당X마켓인데, 소비습관과 세탁방법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산해서 알려줍니다. 탄소발자국이라고 하죠!

이런 식으로 질문이 11가지 나오고, 응답내용을 토대로 제가 만들어낸 탄소 배출량을 계산해주더라고요. 저도 한번 직접 계산해보았어요! 각 질문에 대해 임의로 한번 대답해보았습니다.

  1. 얼마나 옷을 자주 사는지: 일주일에 2번
  2. 1년에 얼마나 많은 옷을 사는지: 상의 14벌, 하의 10벌, 외투 4벌, 원피스 7벌
  3. 온라인 구입 및 매장 구입 비율: 온라인 구입 60%, 매장 구입 40%
  4. 구입한 옷 중 환불 비율: 10%
  5. 중고상품 구입 비율: 0%, 지속가능한 브랜드(리포메이션, 파타고니아 등) 구입 비율: 0%
  6. 대여한 옷 개수: 0벌
  7. 한 달 세탁기 가동횟수: 10번
  8. 세탁습관: 항상 온수세탁, 자연건조와 건조기 모두 사용
  9. 한 달에 드라이클리닝하는 아이템 개수: 6벌
  10. 수선해입는 옷 개수: 0벌
  11. 버리는 옷과 팔거나 기부하는 옷 비율: 폐기 95%, 팔거나 기부 5%

결과는 1년에 580kg의 탄소를 배출한다고 하네요.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8.1번 비행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합니다. 좀 많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며 대답해보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많이 나오네요. 그런데 이것도 평균 수치보다는 낮은 정도라고 알려줍니다.

이 측정과정이 인상 깊었던 것은 옷을 판매하고 구입하는 데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뿐 아니라 환불, 세탁, 폐기에까지 소비자가 옷을 사용하는 모든 과정을 포함해서 계산했다는 점이에요. 생각보다 우리가 생활 면면에서 많은 온실가스를 내뿜는다는 걸 잘 보여주는 질문들입니다.

그리고 질문 아래에 지속 가능한 소비 습관에 대해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줍니다! 이게 참 좋더라고요. 한번 모아봤어요.

  •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옷은 자켓과 원피스, 청바지입니다. 이들은 같은 무게의 티셔츠에 비해 4–5배에 달하는 탄소를 배출합니다. 이런 종류의 옷들은 중고상품을 활용하는 것이 좋겠죠.
  • 옷을 환불하는 것은 심각한 환경적 영향을 미칩니다. 환불된 의류의 50% 정도만 의류 재고로 활용되며, 25%는 대부분 매립지로 향하게 됩니다.
  • 중고상품을 구입하면 탄소 배출의 60-70%를 줄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옷을 생산하면서 배출되는 탄소량을 줄일 수 있는 거죠.
  • 세탁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75%는 건조기를 사용할 때 발생합니다. 자연건조하세요. 찬물로 세탁하면 온수로 세탁할 때보다 10%의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습니다.
  • 매년 1,000만 벌의 옷이 매립지에 쌓입니다. 옷을 수선하며 옷의 수명을 1년 늘릴 때마다 25%의 탄소발자국을 줄일 수 있습니다.

 

마치며

‘수치’를 제시하는 것과 관련해서 정말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측정 가능해야 관리할 수 있다.
What gets measured gets managed.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라는 경영학자가 한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영학 관점에서 데이터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인데, 일상생활에서 생각해볼까 해서요. 정말 측정 가능한 것만 관리할 수 있다기보다는, 수치로 말했을 때 확 와닿는 건 있죠. 숫자는 상황의 심각성을 가장 잘 실감할 수 있는 수단이고, 어떤 행동의 효과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위 사이트를 통해서 내가 지금 고민하는 옷을 샀을 때와 사지 않았을 때가 뭐가 달라지는지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거잖아요. 막연히 좋을 거라고 여기고 하는 것보다 얼만큼의 효과가 있는지 알고 하면 훨씬 뿌듯하지 않나요? 사람과 지구를 위한 소비가 무엇인지, 어떤 생활습관이 좋은지 고민하고 계시는 분들께 도움이 될 듯해서 가져와봅니다.

원문: 오렌지망고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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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의 시대에 더 절실한 패션 브랜드, ‘피어 모스’ https://ppss.kr/archives/241823 Tue, 05 Oct 2021 04:46:59 +0000 http://3.36.87.144/?p=241823 나의 영향력을 남을 위해 아름답게 사용한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자기가 가장 잘하는 일로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변화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면 불편하고 껄끄러운 이슈일지라도 마다하지 않고 품을 수 있는 건 또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가!

그런 면에서 본다면 미국의 패션 브랜드 ‘피어 모스(PYER MOSS)’의 창업자 커비 진 레이먼드(Kerby Jean-Raymond)는 진정 아름답고 기특하며 용기 있는 사람이다.

커비 진 레이먼드. / 출처: esquireme

커비 진 레이먼드의 피어 모스는 목적의식이 분명한 패션 브랜드다. 그것은 곧 흑인 인권 신장과 인간 평등이다. 또 패션 디자인과 런웨이 쇼에 담긴 의미가 워낙 풍부하다 보니 스토리텔링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브랜드이며, 정치적인 브랜드를 지향하진 않지만 자기주장이 워낙 강해서 결국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브랜드다.

PYER MOSS 2015. 화이트 부츠의 몸통에 경찰 폭력에 의해 사망한 흑인 남성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PYER MOSS 2015. 2014년, 뉴욕 경찰의 초크로 질식사한 흑인 에릭 가너(Eric Garner)의 “I Can’t Breathe”가 떠오른다.
Spring 2018 컬렉션의 화이트 티셔츠, “STOP CALLING 911 ON THE CULTURE”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 출처: Teen Vogue

패션과 액티비즘의 중간 지점에 빈자리가 하나 있다면 거긴 피어 모스의 자리니까 양보 좀 부탁드린다!

피어 모스와 안나 윈투어(Anna Wintour).

피어 모스의 런웨이 쇼는 마치 #BlackLivesMatter 운동의 예술 무대처럼 느껴진다. 그곳에선 블랙 아메리칸 내러티브가 다양한 형태로 펼쳐진다. 노래가 있고 미술이 있으며 영상이 있고 무엇보다 의미 있는 이야기가 있는 식이다.

백인 경찰 과잉 진압의 피해자 가족들을 쇼의 맨 앞줄에 초청해 그들을 위로하는 비디오와 퍼포먼스를 선사하기도 하고, 빵빵한 성가대가 블랙 파워를 드러내는 음악을 짱짱하게 부르며 무대를 더욱 빛내기도 한다. 이에 질세라 시인, 래퍼, 소울 뮤지션 등도 등판해 피어 모스의 스토리텔링에 가담한다. 경찰의 잔인성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화이트 워시 되어 잊힌 흑인 카우보이 이야기, 그리고 옛 노예 제도 스토리까지, 주제도 다양하다.

레이시즘 비디오가 흐르는 피어 모스 패션쇼 현장. / 출처: nytimes
출처: documentjournal
SPRING 2020 PYER MOSS, Collection 3.

커비 진 레이먼드는 자신을 ‘증폭기’라고 말한다. 모두가 쉬쉬하지만 반드시 논의되어야만 하는 불편한 현실 이야기를 끄집어내 ‘패션’이라는 미디어 속에 녹여 크고 널리 전달하는 증폭기 말이다. 사회(업계)의 불공정, 조직적인 인종 차별주의, 경찰 권력의 잔인성 등을 그는 대놓고 저격한다.

극단적인 인종 차별 사건사고로 매일이 어수선한 작금의 세상 분위기 탓인지 왠지 더 관심이 간다. 올해 초, 미국 역사상 첫 여성이자 유색인종 부통령이 된 카멀라 해리스가 워싱턴DC에 입성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코로나19 희생자를 추모하는 일이었다. 그날 그는 피어 모스의 코트를 입었다. 어째 의도가 꽤 분명하지 않은가?

커비 진 레이먼드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은 패션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할 뿐이라고!

슈퍼카를 사랑한다는 커비 진 레이먼드, 누군들 안 좋아하겠는가. / 출처: COMPLEX
커비 진 레이먼드는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가 주관하는 권위 있는 패션 어워즈인 CFDA AWARDS의 2018년도 우승자가 되었다. / 출처: Highsnobiety

그의 스토리텔링은 뜻밖이지만 적시여서 매력적이다. 그래서 그는 트렌디한, 쿨한, 스트리트 스타일의 브랜드라는 수식어를 싫어한다. 대신 그는 ‘정신적인’ 패션 브랜드라는 말을 듣기 좋아한다.

피어 모스의 스타일은 창업자의 마인드처럼 볼드하고, 브랜드가 건네는 다채로운 이야기처럼 컬러풀하며, 그들이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적, 정치적 숙제처럼 난해하고, 우리가 밟고 선 현실 세계처럼 불완전하다. 물론 의도적으로! 지나치게 긴 소매, 뒤틀린 패디드 재킷, 거대한 라펠의 오버코트처럼.

SPRING 2020 PYER MOSS, Collection 3.

그럼에도 브랜드의 목표는 뚜렷하다. 앞서 이야기했듯 그것은 곧 흑인 자긍심 고취와 인간 평등, 그리고 다양성의 인정이다.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 피어 모스를 둘러싼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은 게 커비 진 레이먼드의 꿈이란다.

S/S 2017 PYER MOSS “COME SHAKE THE MONEY TREE” / 출처: tag-walk
2017 PYER MOSS. 아이티에서 이민 온 창업자 아버지의 영주권 그린카드 사진을 티셔츠 위에 담았다.

F/W 2017 PYER MOSS. / 출처: hypebeast

FALL 2018 PYER MOSS 블랙 카우보이 캠페인. / 출처: FASHIONISTA

우린 누구도 배척하지 않아요. 백인에겐 흑인이 필요하고, 흑인에겐 백인이 필요하죠. 우리에겐 모두 서로가 필요해요. 다만 흑인의 자존감을 일깨우는 방식으로 장사합니다. 그게 다예요.

천천히 인정받길 원해요. 커뮤니티원을 모으는 겁니다.

커비 진 레이먼드는 아이티 공화국 출신의 두 부모님 아래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생활하며 10대 초반부터 신발 디자이너의 꿈을 꾸었고, 이에 따라 패션 고등학교에 진학해 어린 나이부터 케이 엉거(Kay Unger) 등의 브랜드에서 인턴 경험을 쌓았다.

여세를 몰아 그는 2013년 자신의 브랜드 피어 모스를 설립했는데, 경찰 권력에 대한 비판을 담은 2015년 뉴욕 패션 위크 쇼를 통해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또한 리복의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새로운 크리에이티브를 실험하는 리복의 사내 벤처 리복 스터디스(Reebok Studies)의 아트 디렉터로 활약 중이기도 하다. 피어 모스가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간 것은 사실 피어 모스와 리복의 컬래버레이션이 큰 몫 했다.

Reebok by PYER MOSS Trail Fury. 말을 탄 흑인이라면 그 누구라도 올려다봐야 하듯이 신발의 굽을 높였단다.

래퍼 카니예 웨스트나 팝스타 리한나와 계약해서 디자이너로 뜨는 방법이라든가 미국에서 패션 디자이너로서 성공하기 위해 밟아야만 하는 어떤 전형적인 절차라는 게 분명 존재한다. 커비 진 레이먼드는 그것을 몇 년이나 따라 해 봤지만 결국엔 모두 자신과는 맞지 않아 나만의 길을 개척해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고 한다.

나만의 길, 그것은 아마도 정치와 사회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불의를 참지 못하는 불같은 개인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업에 적용시킨 부분일 것이다. 흑인 인종 차별이 정점에 이르렀던 2015년, 그는 실제로 뉴욕 퀸즈에서 경찰의 총구 앞에 섰다. 눈앞에 총이 겨냥되는 첫 경험 그리고 정말 발포될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 그 길로 그는 특유의 저항 정신과 적나라한 정치적 메시지를 잃지 않고 전하는 ‘패션 디자이너’라는 ‘업’에 헌신하기로 한다.

그 어떤 문도 제겐 열리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문을 직접 만들어야만 했어요.

패션 브랜드 ‘피어 모스’의 매력을 배가하는 건 그것을 둘러싼 ‘이야기’다. 창업자 ‘커비 진 레이먼드’는 스타일 재능과 패션의 핏보다 스토리와 콘텍스트를 중시하는 디자이너다. 의미 없는 옷은 안 만든다고, 패션은 스토리텔링의 도구일 뿐이라고 말할 정도이니까.

패션과 정치를 엮어 보겠다는 시도, 그리고 패션에 저항 정신을 녹여내겠다는 태도.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면 어떨까? 여기저기서 냉랭한 비웃음과 걱정의 한숨이 쏟아지지는 않을까? 하지만 피어 모스의 새로운 성공 방정식을 보라. 역시 남들을 따라 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고, 성공의 방식은 단 하나가 아니라는 걸 절감한다.

피어 모스의 80%는 스토리텔링, 20%가 상품입니다.

S/S 2019 PYER MOSS. / 출처: Culture Type

패션 매거진의 브랜드 소개 기사나 디자이너의 인터뷰 기사를 쭉 읽고 나면, 그들의 ‘옷’이 그냥 ‘옷’으로는 안 보이고 ‘이야기’나 ‘철학’으로 보이는 꽤나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흑인들은 대개 비참한 이미지로 그려지죠. 저는 다른 관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성경과 불교 경전을 ‘종교 서적’이 아닌 ‘문학’으로 받아들여 즐길 수도 있듯이, 한 달에 한두 브랜드씩이라도 패션 브랜드 소개 기사와 디자이너 인터뷰를 찾아보며 탐구한다면 지루한 일상이라는 답답한 방구석에 상쾌한 공기를 들이는 것처럼 훌륭한 인사이트를 적지 않게 얻어낼 수 있다.

출처: FASHIONISTA

원문: 구하다 매거진 / 글: 이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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