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 https://ppss.kr 필자와 독자의 경계가 없는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Fri, 14 Feb 2025 04:52:35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5.8.10 https://ppss.kr/wp-content/uploads/2015/07/ppss-100x100.png ㅍㅍㅅㅅ https://ppss.kr 32 32 전 세계 콘센트 하나로 통일 좀 해줘라: 콘센트의 역사 https://ppss.kr/archives/268679 Fri, 14 Feb 2025 04:52:35 +0000 http://3.36.87.144/?p=268679

플러그

전기 회로를 쉽게 접속하거나 절단하는 데 사용하기 위하여 코드 끝에 부착하는 접속 기구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1. 한 집 당 벽면 콘센트 한 개

로터리 컨버터
크기는 대략 이렇습니다

전기 기술은 1800년에 개발된 볼타의 파일을 시작으로 19세기에 급속도로 발전합니다. 불과 100년도 안 되어서 전기가 가정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죠.

전기가 가정용으로 보급될 수 있었던 이유는 1888년 로터리 컨버터(Rotary Converter)가 발명되었기 때문입니다. 로터리 컨버터는 전압, 주파수, 위상 등을 원하는 형태로 바꿀 수 있는 장치입니다. 그러니까 전기가 모든 가정에 동일한 전압의 전기를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단 말이죠.

전기가 가정에 처음 공급되었을 때는 조명용으로만 사용되었기 때문에, 가정에는 천장에 달린 소켓만 있었습니다. 영국을 기준으로 1930년대 초까지도 기술적 한계로 인해 한 가구당 6개의 천장 소켓과 1개의 벽면 소켓만 있었다고 합니다.

1909년의 토스터기 ⓒwww.worldstandards.eu
전구와 비슷해 보이는 초기 전기 플러그

참고로 벽면 콘센트 아니고 소켓 맞습니다. 당시 전기 기기들은 오늘날과 같은 꽂아 쓰는 플러그 형태가 아니라 전구를 끼우듯이 돌리는 형태였기 때문이죠. 이 나사 소켓형 플러그는 1880년대 중반 에디슨에 의해 개발되었고 20세기 초까지 산업 표준으로 활약했습니다.

 

2. 파나소닉을 만들어 낸 멀티탭

대략 이런 느낌의 쌍소켓
마쓰시타 고노스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30년대까지 대부분의 가정에는 벽면에 하나의 소켓만 있었어요. 이러한 이유로 천장 조명을 제외한 2개 이상의 전기 기기를 사용하려면 추가적인 어댑터가 필요했습니다.

이 어댑터는 1918년 일본에서 발명됩니다. 작은 전기용품 가게를 운영하던 일본의 한 전기공이 쌍소켓을 발명한 것이죠. 쌍소켓은 히트 상품이 되어 그의 가게를 어엿한 기업으로 성장시킵니다.

이 기업이 바로 훗날 파나소닉이 되는 마쓰시타 전기 산업입니다. 쌍소켓을 발명한 전기공은 파나소닉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죠.

테이블 탭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멀티탭
멀티탭 절망편 ⓒReiner Hahn

우리가 쓰고 있는 멀티탭 형태는 1929년에 테이블 탭(Table Tap)이라는 이름으로 처음에 등장했습니다. 1970년에는 페드트로(Fedtro)라는 회사에서 콘센트 구멍마다 스위치가 달린 멀티탭을 선보였죠.

 

3. 유럽과 미국의 평행이론?!

에디슨이 발명한 소켓형 플러그는 불편했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꽂는 형태의 플러그가 등장합니다. 흥미로운 건 유럽과 미국에서 각각 독자적으로 발명했는데 발상이 비슷했다는 점이에요.

  • 유럽 승 : 일자형 플러그

꽂는 형태의 플러그는 유럽에서 먼저 등장했습니다. 1882년 영국의 토머스 테일러 스미스(Thomas Taylor Smith)가 ‘전기 회로 연결’에 대한 특허를 낸 것이 최초였죠. 1889년 제너럴 일렉트릭 컴퍼니 카탈로그에도 꽂는 플러그가 등장한 것을 보면 상용화도 빠르게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893년 GEC 카달로그에 실린 전기 플러그
1904년 허벌(Hubbell)의 플러그 제품들

반면, 미국에서는 유럽보다 22년이 늦은 1904년 하비 허벨(Harvey Hubbell )에 의해 발명됩니다. 산업 표준이 소켓형이었기 때문에 그의 발명품은 소켓에 연결해서 사용하는 형태였죠. 하비 허벨은 이후 허벨 회사를 설립하고 다양한 제품을 내놓는데요, 오늘날의 멀티탭과 비슷한 형태의 제품도 있었습니다.

  • 미국 승 : 접지 플러그
Knapp의 접지 플러그
1925년 등장한 슈코 플러그

누전을 방지하기 위한 접지 장치가 들어간 플러그의 발명은 미국이 유럽보다 빨랐습니다. 1915년 허벨 회사에 재직 중이던 조지 냅(George Knapp)이 3핀짜리 콘센트, 즉 접지 장치가 들어간 플러그를 개발한 것이죠.

유럽에서는 그로부터 10년 뒤인 1925년 바이에른 전기 악세사리(Bayerische Elektrozubehör AG)에 재직 중이던 알베르트 뷔트너(Albert Büttner)가 개발합니다. 이 플러그는 안전 콘센트를 의미하는 독일어 ‘Schutzkontakt’의 줄임말인 슈코(Schuko)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죠. 현재는 type F 규격으로 불리며 대부분의 유럽 국가와 우리나라에서 사용 중입니다.

접지 기능이 있는 이 두 플러그는 안전성과 편리성을 인정받아 미국과 유럽의 표준이 되었죠.

 

4. 하나로 통일시켜라 좀…

옛날 스페인의 콘센트. 어떻게 쓰는지 상상도 못 하겠다…
옛날 그리스식 콘센트

플러그와 콘센트는 나라별로 독자적으로 발전되어 왔기 때문에 유럽 내에서도 각자 모양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나라끼리 표준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100년 전 사람들이라고 안 한 것이 아니었죠. 그래서 1906년 영국에서 비영리 국제기구인 국제 전기기술 위원회(IEC)도 창설되면서 총대를 메는가 싶었는데, 하필이면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애매한 상태에서 멈춰버렸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다시 유럽 국가 12개국이 모여서 회의를 했죠. 하지만 1938년 영국과 1939년 프랑스에서 열린 회의는 모두 눈치만 봤고, 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흐지부지되었습니다.

1957년에야 국제 전기 장비 승인 규칙 위원회(IECEE)에서 플러그 및 콘센트의 표준을 발표하긴 했지만, 이는 기술 보고서에 불과했습니다. 1963년이 되어서야 ‘유로 플러그’라고 불리는 것이 등장하긴 합니다만 이미 각국의 전기 인프라가 깔린 상황이었던지라… 통합은 물 건너간 거죠.

세계표준이라 쓰고 남아공 전용이라 읽는 N타입

그래서 세계 표준은 없냐고요? 놀랍게도 있습니다. 1986년 제정된 유니버셜 플러스(Type N)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세계 표준 규격인 만큼 접지도 있고 플러그도 두껍지 않아 합리적인 플러그죠. 하지만 전 세계에 깔린 전기 인프라를 뒤집어엎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전기 인프라가 완전히 구축되지 않았던 애꿎은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브라질에서만 이 플러그를 채택했습니다. Type N의 변형 플러그가 등장했기 때문에, 사실상 남아공 전용 플러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통일된 건 하나 없이 A~O Type이 존재하는 현재에 이르렀는데요. 러프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Figure.16 A-O 까지의 플러그&콘센트 타입 (혼파망…)
  • 미국의 영향을 받은 나라: Type A, B
  • 영국의 영향을 받은 나라 : Type C, D, G, M
  • 독일을 필두로 사실상 유럽 표준 : Type F
  • 소수 국가들에서만 쓰는 : Type H(이스라엘), J(스위스), K(덴마크), L(이탈리아), O(태국)
  • 세계 표준이라 쓰고 남아공, 브라질용이라 읽는 : Type N

 

5.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에너지 경제신문

우리나라에 전기 인프라가 깔리기 시작한 것은 미군정 시기부터입니다. 시대 특성상 자연스럽게 미국 표준인 Type A, B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1970년대 초까지 미국 표준을 잘 쓰고 있었죠.

하지만 문제는 1970년대까지 발전소가 부족해 전력 사정이 열악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 사용량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자, 정부는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하죠. 그렇게 시작된 것이 1973년부터 2005년에 걸친 ‘220V 승압 사업’입니다.

전압이 높아지며 발생하는 감전 등의 안전 문제를 고려해 type F를 채택한 것입니다. Type A, B는 코드를 완전히 빼기 전까지 전기가 통하기 때문에, 살짝만 걸쳐있는 상태에서 돌출된 핀을 잡으면 감전되는 안전성 문제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지금의 콘센트 형태로 자리 잡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원문: 사소한 것들의 역사


표지 이미지 출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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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슐 차(tea) 제조로 대기업 OEM에 이어 글로벌 진출까지 : 메디프레소 김하섭 대표 인터뷰 https://ppss.kr/archives/268116 Wed, 11 Dec 2024 04:07:39 +0000 http://3.36.87.144/?p=268116 잘나가던 SK하이닉스, 창업 오디션 프로그램에 용기를 얻어 창업의 길로

이승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하섭: 메디프레소 대표 김하섭입니다. 바쁜 현대인에게 건강에 좋은 습관을 빠르고 간편하게 제공하자는 의미로 브랜드명을 메디프레소(Medi+Espresso)로 지었습니다. 현재는 간편한 캡슐 형태의 다양한 차를 기존 캡슐 머신에 호환으로 제품화하고 있습니다.

메디프레소 김하섭 대표 (출처: 톱클래스)

이승환: 어쩌다 창업의 길로 들어섰지요?

김하섭: 제가 성균관대에서 산업공학을 공부하면서 연합 벤처창업 동아리인 ‘미래벤처연구회’ 회장을 맡았는데요. 그때부터 창업에 관심을 갖고 있었죠. 졸업 후 ROTC로 장교 복무를 하고 SK하이닉스 공채 1기로 들어갔어요. 하이닉스를 SK가 인수하고 처음 뽑은 공채가 저희 기수였지요.

이승환: 하이닉스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김하섭: SK하이닉스에서는 반도체 통합 시스템 관리를 했어요. 반도체 제조만큼 고도화된 공정이 잘 없어요. 최종 제품으로 만들어지는데 한 300공정을 거쳐야 해요. 덕분에 제조에 대해 많이 알게 됐습니다. 또 직원이 수만 명에 회사가 많이 크다보니 조직에 관해서도 많이 배웠고, 중국 파견으로 2년 차에 대리를 달고 4년 차에 창업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저기 하나하나만 해도 엄청 복잡하다, 그리고 저 뒤에 후공정이 저만큼 있다… (출처: 이베스트증권)

이승환: 실무에서 엄청 뛸 시기에 관두셨네요.

김하섭: 그렇죠. 당시 하이닉스도 빠르게 성장할 때라 다들 성과급 몇천씩 나왔을 때예요. 다행히 제 인사 평가도 좋았고요. 복지도 엄청 좋고… 근데 저도 막 바로 창업 바로 하자! 는 아니었는데 KBS <황금의 펜타곤>이라는 창업 오디션에 나가게 됐어요. 전국 2,800개 팀이 지원해서 최종 18개 팀만 방송에 나오는데, 그 경쟁률을 뚫고 저희 창업팀이 방송에 보도되면서 창업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승환: 이때 이미 그러면 회사를 그만두고 나간 건가요?

김하섭: 회사 다니면서 했어요. 회사에서도 뭐 방송 촬영 몇 번 정도는 너그럽게 봐주셨고요. 그때 아이템이 한약 에스프레소 머신이었어요. 몸에 좋은 한방제를 개인 맞춤으로 넣으면 그 사람에 맞는 한약이 나오는 컨셉이었죠. 근데 막상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하니 창업 정신이 뿜뿜하더라고요. 그렇게 1년 정도 회사 일을 마무리 짓고 ‘바쁜 현대인들에게 건강에 좋은 것을 간편하게 제공하자’라는 사명으로 메디프레소를 창업했어요.

여기 한번 나갔다가 코가 꿰었다고 한다…

 

자신의 부족함에 사기까지 겹치다, 교원그룹과 매경그룹의 투자로 기사회생

이승환: 사업은 잘됐나요?

김하섭: 처음 한 2년간은 되게 힘들었어요. 가진 돈도 다 날리고, 사기도 당하고…

이승환: 시작부터 사기라니, 뭐가 되게 강력한데요;;;

김하섭: 반도체 종합 제조회사 출신이라 제조를 쉽게 봤는데… 저는 공정 쪽만 익숙했지, 금형, 양산, 목업, 이런 쪽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졌어요. 시제품을 만들었는데 도저히 상품화시킬 수준이 아니었어요. 캡슐 머신은 열과 고압이 발생하잖아요. 단순해 보이지만 난이도가 높아요. 네스프레소가 40년 된 머신인데, 그 노하우가 정말 무시할 게 아니더라고요.

다들 따라 하지만 잘 만들기는 힘든 네스프레소 캡슐 머신

이승환: 그래서 얼마를 날린 거죠?

김하섭: 처음에 머신 한 번 만드는데 1억 날리고… 다음 해에 8천만 원 투자해서 2차 시제품 생산 들어갔는데, 투입해서 했는데 또 8천만 원 날리고. 이것저것 하면 2년 만에 2억 넘게 날린 셈이죠. 공장이 제대로 안 한 건 사실이고 사기라 하긴 했지만, 발주처가 진짜 전문성이 높지 않으면 흔한 일이거든요. 그냥 믿고 맡긴 제가 잘 몰랐던 거죠.

이승환: 그래도 그사이에 좀 발전은 있었나요?

김하섭: 네. 비록 두 차례 다 실패했지만 컨셉에서 발전이 있었죠. 첫 번째는 약간 원두커피 머신 같았어요. 한약재를 바로 달이는 형식이었죠. 근데 한의원도 아니고 바쁜 현대인이 이렇게 해야 하나, 그래서 두 번째 제조는 한방 티캡슐로 발전시켰죠. 또 조금만 손보면 시제품도 가능할 수준으로 올라왔어요. 이를 보고 교원과 매경그룹에서 5억 5천만 원을 투자해 주셨고, 다행히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 투자를 바탕으로 교원더오름에서 쌍화, 캐모마일 등 티 캡슐 9종을 출시했다

이승환: 이분들은 어떤 이유로 투자를 결정하셨나요?

김하섭: 교원그룹이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아요. 학습지로만 알려져 있지만, 문화, 호텔 등 다양한 일을 하고 푸드테크 쪽 협업 가능한 아이템을 찾고 있었죠. 특히 저희 캡슐은 렌트, 구독과 잘 맞아서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이때 한방의 인삼, 녹용, 이렇게 너무 딥하게 가기보다, 대중성을 위해 한방차를 내놓는 쪽으로 사업모델을 결정하게 됐죠.

 

끊임없는 개선으로 대기업들의 OEM까지 수행

이승환: 캡슐 하면 다들 커피부터 우선 떠올리는데, 차를 하고 있는 좀 대형 업체들도 있었나요?

김하섭: 네. 티젠, 흥국F&B, 천마하나로 등 다양한 업체들이 있습니다. 차가 커피만큼 시장이 크지 않지만 이미 많이들 뛰어들어 있고 해외 시장이 훨씬 큰 매력적인 시장입니다.

구글에서 ‘capsule tea’를 검색하면 엄청나게 많은 제품이 쏟아져나온다

이승환: 그러면 메디프레소만의 차별점은 어디서 나오나요?

김하섭: 저희는 ‘제조’가 강점이에요. 특허만 22건 등록했어요. 보통 국내 캡슐 업체들은 직접 생산하지 않고, OEM 위주로 생산합니다. 자체 공장을 보유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어요. 반면 우리는 직접 저희 브랜드 제품을 생산함은 물론, 정관장, 공차 등 여러 대기업과 브랜드의 OEM도 맡고 있어요. 커피든 차든 캡슐 영역으로 진출할 거면 저희에게 맡기면 되는 거죠.

이승환: 아, 약간 화장품 업계 같네요. 코스맥스나 한국콜마에 맡기는.

김하섭: 맞아요. 화장품처럼 캡슐도 장치 산업이다 보니까 장비를 갖추고 시행착오를 거치는 데 몇 년이 걸려요. 특허 장벽도 많이 쌓여 있고요. 그럴 바엔 차라리 OEM을 맡기려는 회사가 많죠. 그런데 저희는 물밑에서 이 역량을 쌓아왔어요. 유통과 판로가 있는 곳이 저희의 제조 역량과 만나면 시너지가 잘 나더라고요.

메디프레소 공장의 모습, 다양한 캡슐을 생산 가능하다

이승환: 근데 말이 쉽지, 그 장비를 갖추는 게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

김하섭: 맞습니다. 생산 장비가 국내에는 없다 보니 해외에서 들여와 커스터마이징해야 했죠. 캡슐이 생각보다 섬세한 작업이 많아요. 원물을 캡슐에 넣는 필링 기술, 압착 실링지 붙이는 실링 기술, 완제품을 박스에 넣는 패킹 기술… 그런 것들을 장치화시키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하나하나 하다 보니까, 국내에는 매우 드문 캡슐 대량 생산 역량을 가지게 된 거죠.

이승환: 그 기술을 갖추기가 쉽지 않은 거 아닌가요;;;

김하섭: 맞아요. 그래서 사실 저희가 초반 2~3년까지도 수작업을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4평 공간에서 기계 하나 달랑 놓고 식품 제조 가공 승인 얻고, 다들 손으로 한 땀 한 땀 일했죠. 그렇게 2년이 지난 2020년도에야 가산에 50평 규모의 본격적인 공장을 지을 수 있었어요. 손으로 하나하나 해보며, 이걸 자동화할 수 있는지 계속 테스트하며 개선했던 거죠.

이런 공정 하나하나를 다듬어나간 결과

 

백종원, 한고은 마케팅에 이어 주요 백화점 진출까지

이승환: 그러면서 또 돈은 벌어야 하지 않습니까?

김하섭: 다행이었던 게 저희가 2019년 컬리에 제품을 출시했는데요. 당시 컬리가 강남 주민들의 트렌디한 플랫폼이었잖아요. 사실 큰 욕심 없이 시장 검증 정도로 생각하고 출시했어요. 근데 컬리에서 초기 1천 박스 완판됐고, 또 1천 박스도 완판되고… 이렇게 몇 번 완판이 됐어요. 그러니까 충분히 더 키울 가치가 있겠다 확신이 들었어요. 덕택에 추가도 투자로 들어오고, 생산 설비를 늘릴 수 있었던 거죠.

이게 대박을 터뜨렸다

이승환: 와, 대박이네요.

김하섭: 네. 그 이후에도 몇 년 더 고생하며 생산 자동화를 완성시켰어요. 캡슐이 자동화가 힘들긴 한데, 또 좋은 점이 한번 자동화하면 되게 편해요. 지금 저희 가산 공장이 200평이 넘는데 생산직이 5명밖에 안 되거든요. 그렇게 3~4년 고생해서 2022년쯤 자동화를 좀 시키고 나니 B2B 시장이 열리기 시작했어요. 대기업들이 저희를 알고 캡슐 OEM 주문을 시작한 거죠.

이승환: 대기업이 작은 스타트업을 어떻게 알고…

김하섭: 생산라인을 잡는 3~4년 동안 저희를 알리기 위해 엄청 노력했어요. 박람회, 바이어, 이런 건 기본이고, 롯데마트, 이마트, 메가마트,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 이런 데 다 돌았어요. 근데 백화점 뚫는 게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무리해서 한고은, 백종원, 두 분을 모델로 TV 광고까지 찍었어요. 솔직히 여기에만 10억 넘게 썼습니다.

백주부님을 섭외한 광고 한 방

이승환: 와, 엄청나네요. 작은 스타트업에서 빅 모델 영입까지…

김하섭: 남들 볼 땐 진짜 이상한 짓이죠. 그런데 효과는 확실하더라고요. 롯데백화점 5개 점에 매장을 냈고, 신세계백화은 식품관에도 들어갔어요. 보통 스타트업들이 엄청 크고 TV 광고 하던데, 저는 반대로 생각했어요. TV 광고하는 자체만으로 B2B 신뢰도를 높이려 한 거죠. 덕택에 웬만한 백화점이나 식품 대기업들과 접점이 생겼고, 다행히도 그분들이 저희를 긍정적으로 봐주시고 여러 기회를 주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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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성, 건강기능식품으로 글로벌 진출까지

이승환: 앞으로는 어떻게 회사를 키워가실 생각이신지요.

김하섭: 저희가 2023년 작년에 매출 21억 원을 달성했습니다. 적자도 계속 줄고 있고요. 하지만 몇백억 대 매출로 키우려면 지금 시장보다 더 큰 시장으로 나아가야 해요. 그래서 메디푸드나 케어푸드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기능성 제품에 도전하는 쪽으로 계속 진화해 나가려고 합니다.

이승환: 메디푸드, 케어푸드가 뭐죠?

김하섭: 몸에 좋은 먹거리나 마실 거리를 메디푸드라고 하고, 이를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걸 케어푸드라고 합니다. 저희가 케어푸드 사업을 기획하고 있어요. 이를 위해서는 건강기능식품, 건기식 시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요. 마침 저희가 올해 건강기능식품을 생산할 수 있는 GMP 인증까지 받았고요. 덕택에 국내 캡슐 업계 최초로 건강기능식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됐어요.

건강기능식품에서 볼 수 있는 GMP 마크

이승환: 대단하네요…

김하섭: 네. 그리고 판로 개척도 중요하겠지요. 캡슐이 넣을 수 있는 곳이 참 많아서 좋아요. 집에도 넣을 수 있지만, 머신을 사무실이나 병원에 넣을 수 있죠. 또 호텔 각방 숙소에 넣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저희가 아직 대기업만큼 유통력은 부족한 상황이니, 위의 건기식 등 타 회사에서 만들지 않는 다양한 캡슐을 기반으로 전국망을 확대하고자 합니다.

이승환: 제품군이 정말 다양한가 봐요?

김하섭: 네네. 하다 보니 진짜 많이 늘어났어요. 돼지감자 같은 곡물차도 있고요. 요즘 여성들에게 인기인 히비스커스, 한방재를 이용한 기능성 한방차… 지금까지 출시한 제품만 약 27개 정도예요. 국내에서는 가장 다양한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독특함 덕에 미국 월마트 온라인 몰에서도 판매 중이에요.

제품이 많다 보니 이런 구매도 가능하다

이승환: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김하섭: 바쁜 현대인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어떻게 간편하게 챙길 수 있을까가 저희 메디프레소의 시작점이었어요. 그래서 기존 차 시장에 머물던 “기호성”에서 다양한 효능을 검증받은 “기능성”으로 제품을 계속 진화해 나가고 있는데요. 내년에는 세계 최대의 전자박람회인 “CES 2025”에도 혁 신제품이 모여있는 글로벌 파빌리온관으로 참가하는데, 우리의 자랑스런 K-컨텐츠인 전통차, 한방차를 세계에 알리고자 한참 준비 중에 있어요.

앞으로도 함께 일하는 임직원들과 함께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하게 도전하고 혁신하면서 가치 있는 비즈니스를 이어가는 메디프레소가 되고자 하는 바람이 있네요.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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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주차장 내비에 이어 자율주행까지: 베스텔라랩 정상수 대표 인터뷰 https://ppss.kr/archives/268100 Tue, 10 Dec 2024 03:40:09 +0000 http://3.36.87.144/?p=268100 실내 주차장의 빈 주차면을 알려주고 내비까지 제공하는 ‘워치마일’

이승환: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정상수: 주차장의 빈자리를 알려주고 내비처럼 주차면 안내까지 해주는 ‘워치마일’을 운영하는 베스텔라랩 대표 정상수입니다. 허가 등 장벽만 없다면 실내 주차장에서 자율주행 주차까지 가능합니다.

베스텔라랩 정상수 대표

이승환: 어… 모두의 주차장 등 주차 정보 서비스는 알고 있는데, 빈자리까지 알려주고 주차면 안내까지 가능하다고요?

정상수: 네. 대형 주차장 들어가면 어디가 빈자리인지 몰라서 불편할 때 많잖아요? 그러면 지하 2층, 3층, 4층… 계속 뺑뺑이 돌 때가 많아요. 막상 빈자리는 주차하기 너무 힘든 자리일 때도 있고요. 그런데 ‘워치마일’ 앱을 쓰면 그런 문제가 사라집니다. 들어가기 전부터 어디가 빈자리인지 알려주고, 거기서 내가 주차하고 싶은 자리를 선택하면 내비가 안내해주니까요.

이승환: 저… 내비면 GPS 기반일 텐데, 지하 주차장에서 기술적으로 가능한가요?

정상수: 가능합니다. CCTV만으로도 어느 자리가 비었다는 건 판별할 수 있으니까요.

GPS가 불가능한 지역을 CCTV를 활용으로 커버했다

이승환: 헐… 엄청난 발상의 전환이군요.

정상수: 네. 사실 센서를 많이 때려 박으면 CCTV 없이도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비용도 많이 들지요. 그래서 저희는 기본적으로 기존의 CCTV를 활용합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주차면 상황을 확인할 수 있어요. CCTV만으로는 여러 차량이 움직이는 등 일시적인 사각지대가 생기는 문제가 있는데, 이를 커버하기 위한 센서를 부착합니다. 그러면 주차면 상황도 알 수 있고, 내비로 안내도 가능하지요. 여기에 AI로 정확도를 높이고 있고요.

이승환: 이미 사용하고 있는 곳이 있나요?

정상수: 네. 이미 많이들 쓰고 있습니다. 킨텍스, 인천공항, 잠실 롯데월드, 롯데백화점 잠실점… 공영 주차장은 서울시에서 제일 큰 공영주차장인 천호역 공영주차장, 서울역 공영주차장, 안산시 공영주차장, 울주군 공영주차장 등이 쓰고 있고, 아파트도 안산 그랑시티자이, 호반 DMC 한강 등 점점 많은 곳에서 워치마일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워치마일이 있으면 더는 주차장에서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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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내 자율주행까지 가능한 솔루션 ‘제로크루징’

이승환: 뭔가 쩌는 아이디어인데 어쩌다 이런 일을 하게 된 건가요?

정상수: 테슬라가 뜨면서 자율주행이 엄청 핫한 키워드가 된 지 꽤 됐잖아요. 테슬라뿐 아니라 온갖 완성차 업체들이 자율주행을 깊게 연구하고 있고, 또 자율주행 SW 회사들도 글로벌 유니콘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곳이 바로 ‘주차장’이었어요. GPS 신호가 잡히지 않으니까요. 저희는 GPS로 위치를 확인할 수 없는 환경에서 자율주행이 가능한 기술 개발에 집중했습니다.

이승환: 하긴 며칠 전 테슬라에서 “주차장부터 주차장까지 자율주행”을 이야기했죠.

정상수: 맞습니다. 그런데 그조차도 어느 정도 개방된 공간에서의 주차를 이야기합니다. 또한 내가 원하는 주차면으로 딱 완전한 안내도 힘든 점이 있든 게, 주차장에서는 일반적인 도로 규칙이 적용되지도 않습니다. 저희 워치마일은 이를 기술적으로 완전히 해결했고, 심지어 자율주행도 이미 가능한 상황입니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에디슨 어워드에서 수상했다 (출처: 데일리카)

이승환: 자율주행으로 원하는 주차면에 주차를요?

정상수: 네. ‘제로크루징’이라는 솔루션인데요. 자율주행차량을 위한 실내 내비게이션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말씀드렸듯 자율주행차량은 최종 목적지까지 가고 주차도 가능해요. 하지만, 주차장 안의 현재 상황과 빈 주차면에 대한 정보는 없기 때문에, 딱 빈자리를 찾아 주차하기는 힘듭니다. 제로크루징은 빈 주차면과 장애물을 파악해 동적 지도를 형성하고, 자율주행차와 신호를 주고받으며 주차면까지 자율주행 인도합니다.

이승환: 이것도 이미 상용화되어 있나요?

정상수: 네. 자율주행 업체에서 제로크루징 솔루션을 도입한 바 있습니다. 다만 자율주행도 완전한 안전을 증명하기 전까지 여러 시범 도입 단계가 있듯, 제로크루징 역시 마찬가지라 실제 사용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만 실내에서는 큰 사고의 위험이 없는 데다가, 실내 주차장에서의 사각지대에서의 접촉 사고 문제를 방지할 수도 있기에 국내는 물론, 해외 여러 나라와도 서비스 도입을 의논 중입니다. 스마트 도시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큰 화두이고, 여기서 주차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은 저희 베스텔라랩 뿐이니까요.

실내 자율주행기술 ‘제로크루징’은 CES 2024에서 공개했다

 

서울역, 인천공항에 이어 전 세계로 확장

이승환: 막상 도입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굵직한 곳들을 뚫었나요?

정상수: 뭔가가 빵 터졌다기보다는 차곡차곡 쌓인 결과인데요. 예로 벤츠와의 협업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다임러 그룹이 스타트업과 함께하는 ‘스타트업 아우토반’에 선정됐어요. 이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서울역 공영주차장 ‘워치마일 서울역’을 SKT, 하이파킹과 진행해 협업하게 됐습니다. 이런 식으로 점점 레퍼런스가 레퍼런스를 물며, 이제는 영업 없이도 계속해서 도입 계약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괴로웠던 주차를 손쉽게 할 수 있다

이승환: 결과는 어땠나요?

정상수: 굉장히 좋았습니다. 서울역은 항상 내비게이션 목적지 10위 안에 들 정도로 방문객이 많은 장소입니다. 또한, 주차장이 지상 2층에서 6층까지 다층으로 구성돼 있고, 옥외 주차장이 연결되는 통로가 존재해 주차장의 혼잡도가 높은 편이었는데 워치마일 서울역을 통해 사용자들의 주차 시간을 70% 이상 단축하였습니다.

이승환: 그 레퍼런스 하나만으로도 여기저기 영업하기 쉬웠겠는데요…

정상수: 그렇죠. 그보다 사이즈가 훨씬 큰 인천공항 주차 솔루션도 마련하게 됐고요. 여기에 더해 인천공항공사의 주차관제 플랫폼과 주차 전용 내비게이션을 대국민 시범 서비스로 런칭할 계획입니다.

이승환: 해외 진출 부분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정상수: 중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나라와 협력 중입니다. 월드컵을 치른 카타르는 대형 경기장 주차 문제, UAE는 인구가 급격하게 늘고 있지요. 이들 나라의 주요 기업들과 업무협약을 맺었고요. 사우디아라비아는 투자부, 네옴 등 메가 프로젝트를 기획, 감독, 운영한 기업 등과 협약을 맺었습니다. 인도네시아와는 자카르타 대형 쇼핑몰에 스마트 주차 솔루션을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GPS가 작동하지 않는 환경의 자율주행 기술과 솔루션 세계 1위로

이승환: 굉장히 잘되고 있는 회사 같은데, 돈도 잘 벌고 있나요?

정상수: 큰돈은 아니지만 4년 연속 흑자를 기록 중입니다. 2023년은 영업이익도 6억을 넘었습니다.

매해 안정적으로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다 (출처: 피치덱)

이승환: 다른 자율주행차 업체가 다들 적자인데 흑자라니 대단하네요.

정상수: 제가 회사를 굉장히 보수적으로 키워왔어요. 지금 직원이 40명 정도인데, 3년 전에도 20명 정도였어요. 투자로 회사의 외형을 키우기보다 내실 있는 제품에 집중해 왔고, 그 노력과 결과물을 이제 국내 지자체, 대기업, 해외에서 알아주는 듯해 조금씩 성장에 박차를 가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승환: 그러고 보니 창업 전에는 어떤 길을 걸으셨나요?

정상수: 원래 카이스트에서 박사까지 마쳤고요. 이후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연구원 이후 KT에서 기술을 사업화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여기서 신규 기술 제품에 적용하는 것까지를 지켜봤는데, 실세계에 적용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소요가 되더라고요. 세계 최초 기술이 조금 더 현실에 빠르게 반영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창업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물론 막상 창업하고 나니, 왜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를 알게 되었지만요.

지금은 전세계 여러 국가와 계약을 맺고 있다

이승환: 그래도 자율주행과 주차장 하나로 여기까지 오다니 대단하네요.

정상수: 그렇지도 않습니다. 중간중간에 GPS가 없는 환경에서 인프라 정보를 통한 자율주행 지원이라는 큰 테마 하에, 고객사의 여러 요청에 따른 커스터마이징을 거치며 다듬어져 온 결과예요. 처음 창업할 때만 해도 기술만으로 다 될 줄 알았는데, 이후 시장의 냉정한 반응을 통해 점점 다듬어지는 과정이었죠. 다행히 현재의 주차장 안내와 관제를 맡아주는 ‘워치마일’과 주차장 내 자율주행 ‘제로크루징’은 시장에서의 평가를 어느 정도 마친 듯해, 더 성장에 몰두할 계획입니다.

이승환: 감사합니다. 마지막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정상수: 베스텔라랩은 우리 기술과 솔루션을 자율주행 자동차뿐 아니라, 자율주행 로봇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스마트 물류 분야, 또 특정 루트로만 이동하는 지게차 같은 특수 장비나 스마트 농기구에도 저희 기술을 충분히 접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크게는 선박도 가능할 거고요. GPS 신호가 닿지 않는 실내 모든 공간 정보를 제공하여 모빌리티 산업의 미래이자, 최종 라스트마일에 최고가 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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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프라이어와 전자레인지가 뒤늦게 성공한 이유 https://ppss.kr/archives/266636 Mon, 12 Aug 2024 03:52:06 +0000 http://3.36.87.144/?p=266636

전자레인지

마이크로파의 성질을 이용하여 식품을 가열하는 조리 기구. 고주파 전기장 안에서 분자가 심하게 진동하여 발열하는 현상을 이용한다.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에어프라이어

가열한 공기를 골고루 쐬어 음식을 익히는 조리 기구. 주방 가전제품의 하나로, 기름을 덜 사용하여 튀김 요리를 할 수 있다.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1. 레이더에서 시작된 전자레인지의 역사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방위산업체 레이선(Raytheon)은 레이더 부품을 공급하던 기업이었습니다. 그중에는 마이크로파를 생성하는 ‘마그네트론’이라는 부품을 연구하던 엔지니어 퍼시 스펜서(Percy .L. Spencer)가 있었죠.

그는 1945년 마그네트론을 실험하던 중 우연히 자신의 주머니 속 초콜릿이 녹은 것을 발견합니다. 이 현상이 마그네트론과 관련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마그네트론으로 달걀과 팝콘, 그리고 가재를 조리하기 위한 적정 주파수가 무엇인지 연구해서 특허를 내죠.

레이선 사는 스펜서가 발견한 이 현상을 적극적으로 이용했습니다. 그러던 중 스펜서와 함께 마그네트론을 연구했던 마빈 복(Marvin Bock)이 전자레인지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1954년 레이선은 레이더레인지(Radarange)라는 이름으로 1~3kW(오늘날 가정용이 700w)의 출력을 내는 대형 전자레인지를 상용화했습니다. 이 제품은 호텔, 레스토랑 등 영업용으로 판매되었죠.

1955년 타판 사에 출시한 최초의 가정용 전자레인지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1955년에는 타판(Tappan)에서 레이선의 라이선스를 구매해 최초의 가정용 전자레인지를 출시합니다. 하지만 약 1,300달러라는 높은 가격과 더불어 벽걸이 형태로 출시되는 바람에 일반 가정에서 쓰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1967년이 되어서야 레이선의 자회사 아마나(Amana)에서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가정용 전자레인지를 출시했습니다.

1967년 아마나에서 출시한 진짜 가정용 전자레인지 ⓒnpr.org

1970년대 미국의 전자레인지는 아마나, 타판, GE 등이 시장을 주도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말부터 일본과 한국의 저렴한 제품에 밀리게 됩니다. 심지어 GE는 1980년 모든 전자레인지를 삼성에서 제조하기로 합니다.

 

2. 수출 효자 상품 전자레인지

1976년 삼성전자 임원이 미국에서 우연히 전자레인지를 봤습니다.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는 전자레인지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GE 전자레인지를 리버스 엔지니어링하여 1978년 첫 번째 시제품 ‘RE-7700’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하고, 1979년에는 전자레인지의 핵심 부품인 마그네트론을 자체 제작하는 데 성공했죠.

하지만 당시 국내에서의 전자레인지 보급량은 400여 대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평균 월급의 2배에 달하는 RE-7700의 가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냉동식품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시대적 배경 때문이기도 합니다. 전자레인지의 용도가 애매했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래서 전자레인지는 내수가 아닌 수출에 중점을 뒀어요.

삼성전자는 1979년 파나마에 340대를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1987년에는 영국에 공장을 설립해 빠른 속도로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합니다. 금성사도 1982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 전자레인지를 수출했고, 1983년에는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해 1988년 미국에서만 210만 대를 팔며 세계 시장 점유율 19%로 1위를 기록하죠.

하지만 그해 전자레인지로 조리하면 식중독을 유발하는 리스테리아균이 살균되지 않는다는 소문이 유럽에 퍼지면서 큰 타격을 입습니다. 이러한 악재 속에서 금성의 세계 시장 점유율 순위는 4~5위로 하락했죠. 하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저렴한 가격과 뛰어난 성능으로 일본과 점유율 1위를 다툴 만큼 다시 성장했습니다. 우리나라 전자레인지가 너무 잘 팔리자 1996년 유럽 연합에서는 한국산 전자레인지에 9~24.4%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도 했어요.

 

3. 전자레인지는 위험하다?

전자레인지의 위험성에 관한 이야기는 1973년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소비자 연합회에서 ‘전자레인지에서 방사능이 나올 수 있으니 구입하지 말라’고 권고한 것이죠. 물론 소비자 보고서를 통해 매년 전자레인지를 테스트하면서 몇 년 후에는 이런 두려움이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소비자 단체를 통해 1989년 방사능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 나왔습니다. 국립전파연구원은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전파가 건강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지도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실제로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해도 전자레인지의 문을 닫으면 밖으로 나오는 전파량이 아주 적어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 힘들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실제로 전자레인지가 인체에 해로웠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GE에서 출시한 전자레인지 문틈에서 915MHz의 주파수가 새어 나와 리콜한 적이 있었거든요.

 

4. 에어프라이어? 회오리 오븐!

맥슨스가 만든 회오리 오븐

에어프라이어는 오븐에 팬을 장착해 뜨거운 열을 대류시키는 장치를 의미합니다. 크기가 크면 컨벡션 오븐(Convection Oven)이라고 구분하기도 하죠. 팬이 장착된 오븐은 1914년 전기 공기 압축 오븐(Electric Air Pessure Oven)이라는 이름으로 테크니컬 월드 매거진에 등장합니다. 하지만 개인 발명품에 그쳤죠.

최초의 상용품은 1945년 윌리엄 맥슨(William L. Maxson)에 의해 개발됩니다. 윌리엄 맥슨은 군수품을 발명해 납품하는 일을 했습니다. 다연장포, 자신의 위치를 계산해 주는 비행기용 내비게이터 등을 개발했죠. 그가 발명한 군수품 중에는 냉동식품도 있었어요. 당시는 전자레인지가 발명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맥슨은 냉동식품을 데우는 기계도 직접 만들게 됩니다. 그게 바로 에어프라이어의 시작이 되는 회오리 오븐(Whirlwind Oven)이었죠.

회오리 오븐은 오븐 뒤에 선풍기를 설치한 형태로 뜨거운 공기를 순환시키는 장치였습니다. 이 기계는 일반 오븐보다 2배 빠르게 음식을 데울 수 있었고, 모든 곳을 균일한 온도로 데울 수 있었어요. 회오리 오븐도 군수품으로 납품되면서, 미 해군 항공 수송기에서는 전쟁 중에도 차가운 샌드위치와 전투식량이 아닌 스테이크와 비프스튜를 먹을 수 있게 되었죠.

전쟁이 끝나자 맥슨는 일반 시장에 진출할 계획을 세웁니다. 냉동식품을 슈퍼마켓에 판매하고, 회오리 오븐을 가정용으로 판매할 계획을 세우죠. 1947년에는 일반 항공기에도 도입합니다. 하지만 그해 윌리엄 맥슨이 사망하고, 아무도 그의 회사를 인수하지 않아 계획은 사라지고 맙니다.

 

5. 에어프라이어가 뒤늦게 성공한 이유

맥슨이 사망하고 20년이 지난 후에야 일반 시장에 회오리 오븐(에어프라이기)이 등장합니다. 맥슨의 오븐은 최고 온도가 약 93도에 불과했는데, 노르드스코그 컴퍼니(Nordskog Company)에서 더 높은 온도를 낼 수 있는 회오리 오븐을 만들어 냈죠.

비슷한 시기 멜리어블 아이언 레인지(Malleable Iron Range)에서는 가정용 오븐 크기의 회오리 오븐을 제작했습니다. 하지만 개량된 제품들도 2000년대까지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냉동식품을 데우기 위한 역할은 전자레인지가 꽉 잡고 있었기 때문이죠.

필립스의 에어프라이어 ⓒ필립스

200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회오리 오븐이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우선 2011년 필립스(Philips)에서 에어프라이어(Air Fryer)라는 이름의 제품을 출시합니다. 네, 바로 여기서 에어프라이어라는 이름이 굳어졌죠.

에어프라이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필수품 취급을 받지는 않았어요. 비싼 가격도 문제였지만, 쓰임새가 애매했기 때문이었죠. 당시만 해도 에어프라이어는 ‘기름 없이 튀기는 건강한 튀김기’라는 포지션을 내세웠는데, 막상 에어프라이어는 오븐이었기 때문에 튀김기를 기대하고 산 소비자들에게 실망을 안긴 것입니다.

그러다가 에어프라이어가 튀김기가 아닌 소형 오븐이라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 사이에서 레시피가 활발히 공유되기 시작하면서, 에어프라이어가 인기를 끌게 된 거죠.

 

6. 전자레인지와 에어프라이어, 하나만 산다면 어떤 게 좋나요?

비스포크 큐커 이쁘다 ⓒ삼성전자

전자레인지와 에어프라이어 중에 하나만 산다면 어떤 걸 사야 하나요?

인터넷에 종종 올라오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은 더 이상 안 해도 됩니다. 전자레인지와 에어프라이어를 합친 제품이 이미 출시되었거든요. 2018년 SK매직에서 ‘오븐 레인지’라는 이름으로, 2021년 삼성전자에서는’비스포크 큐커’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제품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물론 가격은 에어프라이어와 전자레인지를 각각 사는 것보다 좀 비싼 30만 원대네요.

 

마무리하며

전자레인지와 에어프라이어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둘 다 불 없이 음식을 조리하는 기기라는 점,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만들어졌다는 점이 있죠.

전자레인지와 에어프라이어 모두 기계 자체가 발명되었을 때보다 기기를 활용할 수 있는 냉동식품과 레시피가 등장했을 때 유의미해졌습니다. 이 모습은 오늘날의 플랫폼 산업과도 비슷해 보입니다. 플랫폼의 기능 그 자체보다, 플랫폼을 구성하는 콘텐츠의 양과 질이 더욱 중요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죠.

결국 옛날이나 지금이나, 제조업이나 IT 산업이나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가 핵심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듯합니다.

원문: 사소한 것들의 역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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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세상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철학적인 질문들 https://ppss.kr/archives/266100 Fri, 24 May 2024 03:35:45 +0000 http://3.36.87.144/?p=266100 정작 잊고 있던 질문, “왜 하는가”

사람들, 특히 한국 사람들은 기술을 배우는데 하는 투자(시간, 정력 포함)는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이루고자 하는 ‘가치 추적’에 대한 투자에는 인색하다. 여기서 말하는 기술과 가치는 방법과 목적으로 바꿔도 무방하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1. 한국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지만, 왜 공부하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2. 직장인들은 투자를 하지만, 왜 돈을 버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3. 고시원에 묻혀 살면서, 고시에 붙어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4. 노후 준비를 한다며 영끌을 하지만, 노후에 뭘 할지는 고민하지 않는다.
  5.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 스팩을 쌓으려고 하지만, 정작 그 직업으로 뭘 할지는 고민하지 않는다.
  6. 열심히 코딩을 배우는데, 정작 코딩을 어디다 써먹을지 고민하지 않는다.

한국사람들에게 왜 공부를 하거나 투자를 하는지, 노후 준비를 하는지 등을 물으면 백이면 백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돈을 잘 벌기 위해. 잘살기 위해, 무시받지 않기 위해’라고 대답한다. 추상적이고 획일적인 대답이다. 아래의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내가 언제 가장 행복한가?

위의 질문들은 굉장히 철학적이지만 동시에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들이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으로 대답 되어야 하고, 절대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사진: UnsplashTowfiqu barbhuiya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실질적으로 동작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고민을, 정교하게 해야 한다. 남이 대신 해줄 수도 없다. 개개인이 오로지 자신만의 답을 찾아야 한다. 한 번에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후의 인생 경험에 의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평생 살아가면서 고민하고 추정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고민 자체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거지. / 남보다 나은 삶. / 돈 많이 벌고 무시 받지 않으며 사는 거지. / 자식을 위해서.

이런 대답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을 뿐더러, 모든 기준의 중심이 ‘자신’이 아니라 ‘남들’이기 때문이다. ‘남들만큼’ 산다는 게 본인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왜 AI가 필요한지’ 고민하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AI가 광풍이다. 너도나도 AI를 해야 한다고 난리다. 여기에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AI를 배우려고 하는가?

대부분은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이제 전 세계가 AI로 덮일 테니까 / AI를 모르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으니까 / 사회에 뒤처지니까 / 다들 하니까

마찬가지로 성립하지 않는 질문들이다. AI가 출현하기 전에 스마트폰 세상이 열렸고, 인터넷 세상이 열렸고, 그전에는 PC(컴퓨터) 세상이 열렸다. 그러면 지금의 세상을 사는 여러분께 묻겠다.

  1. 인터넷의 기반이 되는 이론인 대기행렬이론을 아는가?
  2. 인터넷 프로토콜인 TCP/IP의 스택 구조를 이해하는가?
  3. TCP/IP 구현을 직접 코딩해 본 적이 있는가?
  4. HTML이나 자바스크립트를 사용할 줄 아는가?
  5. 통신 장비의 기본이 되는 모뎀의 동작 원리를 아는가?
  6. 스마트폰의 지도 앱에 쓰이는 GPS 기술을 아는가?

위의 내용에 대해서 전부 “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해당 분야의 전공자들 말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위의 내용들을 몰라도 인터넷을 사용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구글 맵을 본다.

AI 또한 마찬가지다. 정작 몇 년이 지나고 나면, 초등학생도 AI를 코딩해서 사용할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다. AI를 몰라도, 심지어 코딩을 할 줄 몰라도 사용할 수 있는 세상이 오는 것이다. 컴퓨터가, 그리고 인터넷이 발전해 가면서 하이테크 기술들이 일상화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AI를 전문적으로 하는 인력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그 분야를 좋아하고 소질이 있는 사람들이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목적이 오직 ‘잘 사용하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세상에 도움을 주는 기술들은 당신이 굳이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결국 AI를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AI라는 도구를 배우는 데 투자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1. (AI를 이용하여) ‘무엇을’ 할지
  2.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

위의 2가지 질문에 대해 구체적인 대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는 능력은 단순히 AI라는 도구를 배운다고 길러지지 않는다.

작가 rawpixel.com 출처 Freepik

AI 시대가 가고 AI 할아버지의 시대가 오더라도, 변하지 않을 것이 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는 오로지 인간 개인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세상은 여전히 힘들고 답답할 것이다.

원문: Amang Kim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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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인공지능 앞에서 제기되는 철학적 물음들 https://ppss.kr/archives/262468 Wed, 15 Mar 2023 03:37:14 +0000 http://3.36.87.144/?p=262468 ※ 아래는 2023년 3월 2일, 코트(KOTE) 포트락 강연의 후반부를 정리한 글입니다.


1.

앞에서는 언어 생성 인공지능 ChatGPT하고 번역 인공지능 DeepL, 이렇게 언어 인공지능 두 개를 실제 이것저것 해보면서 알아보았습니다. 그럼 여기까지 살피고 나서, 이제 이런 기술에서 출발하는 몇 가지 질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하나하나가 우리가 좀 따져봐야 할 내용들인 것 같아요.

우선, 언어가 도대체 뭐냐? 요약이라는 게 뭐냐? 이런 물음에서 시작해 보겠습니다. ChatGPT는 답변은 물론 요약도 잘해줍니다. 한 5천 단어 정도의 신문 기사를 넣었더니 10줄 정도로 요약해 주더라고요. 근데 도대체 요약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ChatGPT를 살펴보니까, 키워드에 해당하는 것들을 그냥 얼버무려서 우리한테 전달해주더라고요. 따라서 그 키워드 안에 들어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알려준 바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린 강의 내용 1시간 분량을 텍스트로 넣어주고 요약하라고 시키면, ‘연사(Speaker)는 ChatGPT 같은 언어 생성 인공지능과 DeepL 같은 언어 번역 인공지능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끝내요. 이 요약을 들은 사람이 얻어들을 수 있는 정보라는 게 별로 없는 거죠. 이런 경우가 굉장히 많더라고요.

따라서 인공지능이 해주는 요약이라는 건 이를테면 우리가 전체 글을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대충 걸러주는 역할, 마치 논문 맨 앞에 있는 초록(Abstract) 정도 역할을 하는구나, 따라서 이 문서 또는 이 글에서 우리가 얻어갈 수 있는 게 있는지 없는지를 점검하는 정도 수준으로 ChatGPT가 작업하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요약 작업이란 그런 수준에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다음에, 이해(Understanding)라는 게 뭐냐? 이건 되게 어려운 주제입니다. 우리가 어떤 언어적인 내용을 이해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굉장히 철학적인 질문입니다. 도대체 기계가 이해한다는 게, 인간의 언어를 이해한다는 게 무슨 말일까요?

이런 질문과도 연결됩니다. 과연 ChatGPT가 내용을 이해한 걸까요? 이해하고 답변한 걸까요? DeepL은 이해하고 번역한 걸까요? 우리가 물어볼 수 있습니다. 책 한 권 분량의 주제입니다. 그런데 보통 강의에서는 ‘책 한 권 분량의 주제’라고 말하고 강의를 마칩니다. 그냥 넘어가는 거예요. 근데 저는 철학을 하니까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죠. 도대체 여기서 진행되는 일이 무엇일까요?

기계가 이해하느냐, 라는 문제를 보죠. 1950년에 인공지능을 개념적으로 발명한 앨런 튜링(Alan Turing)이 비슷한 질문을 던졌어요.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우리가 ‘생각’이나 ‘이해’ 같은 말을 사전을 찾아서 답할 수도 있습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한번 보겠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1.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2. 깨달아 앎. 또는 잘 알아서 받아들임.
  3.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임.
  4. [철학] 문화를 마음의 표현이라는 각도에서 그 뜻을 파악함. 딜타이의 용어이다.

이게 사전에 나와 있는 정의입니다. ‘이해’의 의미가 이해되나요? 이걸 통해 우리가 이해라는 말을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앨런 튜링은 그래서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제일 많은 답이 나온 걸 그 말의 뜻으로 이해하자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가령 갤럽 여론조사, 그러니까 다수결로 뜻과 의미를 정하자는 거죠. 그런데 그건 좀 어리석은 짓이죠. 왜냐하면 다수결이 항상 맞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앨런 튜링(1912~1954), 잉글랜드의 수학자이자 암호학자, 논리학자, 컴퓨터과학자

그래서 튜링은 이렇게 제안합니다. 튜링이 ‘이미테이션 게임’이라고 부른 겁니다. 커튼을 치고 저 편에 누군가가 있는데 타자기로 친 쪽지로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거예요. 오늘날로 말하면 채팅입니다. 우리가 반대편에 있는 어떤 존재와 5분 정도 캐물어 가며 대화하고 나서… 여기서 캐묻는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튜링은 ‘심문한다(interrogate)’라는 표현을 쓰거든요.

심문이라는 건 검사가 혐의자에게 캐묻는 행위, 아니면 법정에서 증인한테 판사나 검사나 변호사가 묻는 것과 같은 일이예요. 이런 식으로 5분 정도 심층 대화를 나눈 후에 저쪽이 인간인 것 같다, 한 70% 확률로 그렇게 생각된다, 이렇게 되면 그냥 인간으로 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미테이션은 ‘인간을 흉내 낸다’는 뜻입니다. 나중에 튜링이 죽고 나서 그걸 ‘튜링 검사(Turing test)’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이렇게 물어볼 수 있어요. 그렇다면 ChatGPT가 의미를 이해한 거냐? 왜냐하면 아까 본 것처럼 우리가 ChatGPT에게 질문했어요. 철학 공부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근데 답변을 읽고 나면 ChatGPT가 내 말을 잘 알아듣고 심지어 어떤 혜안을 갖고서 그걸 나한테 알려주는구나, 라는 마치 사람과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줘요. 물론 아닐 때도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만, 그런 느낌을 줄 때가 더 많다면, 한 70%는 그렇다고 한다면, ChatGPT가 이해했다고 쳐줄 수 있다는 거죠.

이게 튜링의 아이디어였고, 굉장히 오랫동안 지금까지도 논란거리입니다. 그래서 ChatGPT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느냐 아니냐를 놓고 철학자, 언어학자, 컴퓨터 공학학자가 따지고 있는 중이지요. 사실 철학에 관한 질문을 하면 어지간한 사람은, 여기 인사동에서 길가는 분을 붙잡고 물어보면, 대개는 그런 거 답을 못해요. 그런 거치고, ChatGPT가 훨씬 더 인간에 가까운 게 아니냐 얘기할 수도 있다는 거죠.

 

3.

존 설(John Searle)이라는 미국의 철학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ChatGPT가 튜링 검사를 통과해서 그럴듯하게 얘기하더라도 그건 이해한 게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중국어 방(Chinese room)이라는 사고 실험을 합니다. 중국어 방에 대해 ChatGPT 한테 물어보겠습니다.

존 설의 중국어 방 실험을 설명해줘.

통신 문제 때문인지 답변이 느리네요. 그럼 제가 설명드리죠. 어떤 방이 있고, 안에는 미국인이 있어요. 영어밖에 모르는 이 사람이 바깥에 있는 중국인과 대화를 나누는 상황을 가정한 거예요. 바깥에 있는 사람과 중국어로 타자된 한자로 필담을 나누는 거죠.

중국어 문장을 집어넣어 주면 그 안에 있는 미국인은 영어로 된 매뉴얼을 보고 사전 찾을 때처럼 이 글자는 몇 페이지 어디 어디에 나와 있고 거기에 대해서는 이러이러하게 답변하라고 써 있어서, 그에 맞게 출력해서 밖으로 내보냅니다. 대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인 거죠. 밖에 있는 사람은 저 안에 있는 사람이 중국어를 이해한다고 생각하게 되겠지요.

중국어 방(chinese room) 실험 / 출처: Voegelin view

바로 그런 거대한 중국어 방이 ChatGPT 인 거예요. 뭔가 이해하는 것처럼 우리와 대화를 주고받잖아요. 그러니까 ChatGPT는 편의상 튜링 검사를 통과했다고 쳐줄 수 있는 지점이 있습니다. 가끔 엉뚱한 얘기도 하지만 꽤 잘 얘기하니까요. 만일 그렇다면 ChatGPT 가 중국어를 이해한 걸까요? 존 설은 ChatGPT는 중국어를 이해한 게 아니라고 얘기합니다. 왜냐하면 방 안에 있는 미국인은 규칙대로 그냥 처리했을 뿐이니까요.

영어로 Syntax, 우리말로 ‘통사론’ 혹은 ‘구문론’이라고 합니다. 문법대로 그냥 처리했을 뿐이라는 거예요. 이처럼 설과 튜링의 대결은 지금도 팽팽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설은 ChatGPT는 기계일 뿐이고, 문법대로 즉 프로그램대로 처리하는 것일 뿐 이해한 건 아니라는 겁니다.

 

4.

근데 저는 6년쯤 전에 쓴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에서도 주장했던 것처럼, 튜링이 더 현실적인 게 아닌가 합니다. 왜 그러냐?

가령 이것도 또 하나의 사고 실험인데요, 지금 이 방에서 우리는 모두 한국어로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실 3분의 1은 나노 로봇입니다. 아주 정교하게 만들었고,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있어요. 다른 3분의 1은 사실 높은 지능이 있는 외계인인데 인간처럼 분장했어요. 영화 속 트랜스포머 있죠? 나머지 3분의 1만 한국 사람입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섞여서 대화하고 있을 때, 이 상황에서 과연 인간과 로봇과 외계인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구분할 수 없죠. 절대로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튜링처럼 대화를 나눠서 식별하는 접근 말고는 다른 접근 경로가 없습니다. 튜링의 검사, 이미테이션 게임, 얼마나 흉내를 잘 내는지를 판별하는 게임이 유일한 접근 방법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치면 ChatGPT는 튜링에 의하면 언어를 이해하고 인간처럼 생각하는 존재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거죠.

이 지점에서 한 단계 더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뭐냐 하면, 우리가 ‘생각’이나 ‘이해’ 같은 문제를 다룰 때 어려운 지점이 있어요. ‘나’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다는 걸 거의 확신합니다. 나는 생각하고 있고, 어떤 내용을 이해하고 있거나, ‘적어도 50%는 이해하고 있다’고 자각하고 있어요. 그걸 의식하고 있습니다.

근데 남에 대해, 나 말고 다른 외부 존재에 대해서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이게 중요해요. 나는 1인칭적 존재인데 타인은 3인칭적인 존재예요. 따라서 저 사람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그 사람이 이해하는지 혹은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확인할 길이 1도 없어요.

사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누구의 머리를 뜯어보면 사람처럼 뇌가 있고 따라서 생각한다고 확인할 수 있다는 거예요. 사실은 그것조차도 정교한 나노 로봇이거나 외계인일 수 있습니다. 사실은 여기 계신 이번 코트 포트락 축제의 운영위원장 이지성 감독님이 외계인이었어요. 그래서 ‘부라보콘’ 같은 훌륭한 광고를 만들 수 있었던 거예요. 이건 지구인이 할 수 있는 그런 창작의 산물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외계인인지 인간인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없어요.

그래서 의미를 이해했느냐 혹은 생각하고 있냐, 라는 주제는 항상 논쟁거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ChatGPT의 등장, 혹은 DeepL이나 구글 번역 아니면 파파고의 등장은 이런 질문을, 즉 인간이 뭐냐, 도대체 인간이 생각하고 이해한다는 게 뭐냐를 계속 묻게끔 하는 철학적인 문제 상황을 불러옵니다.

작가 macrovector 출처 Freepik

 

5.

이제 한 단계 더 파고들어 보겠습니다. 이런 번역 인공지능이나 언어 생성 인공지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좀 더 세부적인 내용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오역이나 잘못된 정보가 확인된다는 것을 한 번 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까 지적한 것처럼 제가 철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글을 쓰지 않았다는 걸 압니다. 전문 분야마다 해당 전문 지식과 전문가가 있고, 그 지식에 비추어서 어떤 내용이 실제로 그런지 분별하고 판별하고 평가할 수 있는 지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ChatGPT를 둘러싸고 흥미로운 점은, 자기가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는 얘가 완전 바보라고 얘기하고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이거 엄청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보면, 자기 전문 분야의 지식(domain knowledge), 자기가 기왕에 습득한 전문 지식이 언어 생성이나 언어 번역과 관련해서 평가의 중요한 잣대 역할을 한다는 것이 확인되는 면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평균적인’ 수준의 문장을 번역하거나 정보를 생성하는 일에는 별 문제를 제기하지 않지만, 평균에서 벗어나 있는 ‘변칙(abnormal, anomaly)’에 대해서는 ChatGPT가 잘 모른다고 지적하게 되는 겁니다.

변칙이라는 건 오랜 학습과 경험 속에서 얻게 된 ‘평균에서 먼 지식’입니다. 인간한테 변칙이라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요? 인간 사고의 중심에 있는 어떤 평균적이고 보편적인 것 말고, 예외적이고 뭔가 난데없고 그리고 수적으로 보면 너무 사례가 드문, 그렇게 ‘보통과 평균’ 바깥에 존재하는, 경계 바깥쪽에 존재하는 것, 그래서 기존의 것을 넘어서는 인간 활동과 관련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가령 어떤 중심이 있고, 중심이라는 건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고 평균적으로 빈도가 많은 곳인데요, 점점 중심에서 바깥으로 갈수록 예외가 되고 뭔가 특이한 게 되고 변칙이 되는데, 그 정체는 바로 인간이 평균적으로 습득해 놓은 지식과 지혜, 즉 우리의 유산(legacy)을 넘어선 어떤 지점들입니다. 넘어섰다는 건 두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엉뚱하고 삐딱하다는 뜻일 수 있고, 두 번째는 기존에 없던 뭔가로 한 단계 도약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후자를 창조적 혹은 창의적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creative죠. 중심은 ‘고인 물’입니다. 그러니까 옛날에 누군가가 했던 것들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상태입니다. 현재 안에 있는 과거형이에요. 인간이 그걸 넘어서서 뭔가 다르고 더 재밌는 것을 추구해 찾아내고 만들어내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게 ‘의미 이해’나 ‘생각’의 본질을 고려할 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지점이라고 봅니다. 현재 안의 미래라고 할까요?

작가 starline 출처 Freepik

철학자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인간을 규정할 때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게 ‘초인(Übermensch)’의 의미와 관련됩니다. 인간이되 자기를 넘어서는 존재로서의 인간, 영어로 하면 overcome oneself가 인간의 본질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고인 물, 아까 말씀드린 중간 지대, 평균 지대에 멈춰 있지 않고 바깥쪽으로 가서 뭔가 새로운 걸 보태는, 그러니까 유산에 뭔가 창조적인 내용물들을 보태는, 계속 그렇게 보태 갑니다. 그런 활동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니체는 규정한 겁니다. 이게 왜 중요할까요?

인간의 사고 활동, 생각 활동이라는 게 일이라고 한다면, 남들이 하지 않았던, 보통은 인간이 하고 있지 않은 활동을 하는 게 결국 생각과 이해 같은 말들의 진정한 의미 아닐까요? 과학과 예술과 철학과 그 밖에 온갖 종류의 발명과 창조 작업이 일어나는 그 지점이 유산의 바깥 쪽이고 이와 관련된 활동이 생각과 이해인 것이지, 안쪽, 즉 유산에 머무는 것들이 생각과 이해의 본질은 아니지 않겠냐,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결국 인간이 무엇인지 묻게 되는 거죠.

평균적인 것들은 우리가 되풀이하는 일종의 반복이죠. 그게 아니라 평균을 넘어 평균이 아닌 영역을 자꾸 찾아서 끌고 들어와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그런 부류의 활동을 인간의 생각과 이해 같은 활동의 진정한 의미라고 주장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6.

기묘한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인 인공지능을 통해 인간이 무엇인지 한 번 더 발견하는 상황이 아닌가 합니다. 언어를 단순히 정보를 주고받는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자는 거죠. 최소한 기계 번역이나 ChatGPT 같은 언어 생성 인공지능은 언어를 확정적인 의미로 보고, 서로 전달되는 정보 형태로 존재한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그 이상이 아닐까요?

기계는 언어를 정보 교환의 수준에서 다루지만, 이 지점을 넘어 뭔가 더 창조적인 활동에 수반하는 것으로서 걸러져서 흔적을 남기는 것이 언어의 더 본질적인 측면이 아닐까요? 따라서 본래적인 언어는 기계 수준 언어의 바깥쪽에 있다고까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한 마디 더 콘서트면 같은 장소라면, 그런 것들이 사실은 인간이 집단 존재(collective beings)로서 살아가는 본질이 드러나는 지점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단지 어떤 정보를 얻는 것, 가령 오늘 코트에서 포트락 축제가 열린다는 정도의 정보를 주고받는 거는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인간 또는 인류 전체를 한 묶음으로 묶을 수 있는 측면의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서로 새로운 걸 찾아서 그걸 인간의 공동 저장소(pool)에다가 계속 넣어주는 존재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또는 뭐랄까, 인간에게는 서로의 삶을 강요하는, ‘너 이렇게 해야 해’라고 계속 요청하는, 언어와 비언어를 합해서 뭔가 행동을 요구하는 면모가 있는데, 의미를 서로 주고받는 수준을 넘어 작동하는 측면도 중요합니다(사실 비언어의 대표적인 게 예술이죠). 그래서 그런 점들까지도 활성화되는 지점까지 생각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7,

그래서 마지막으로 도대체 뭘 학습해야 할지도 많이 질문하게 돼요. 어떤 사람들은 이 질문을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과 연관 지으면서 유치한 질문이라고 얘기하기도 해요. 그런데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우면서도 인간보다 많은 부분에서 뛰어난 활동을 할 수 있는 기계가 등장한 이상 그걸 활용해서 더 인간다운 삶을 살고 또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 위해 어떤 능력을 길러야 하느냐고 물으면서 접근한다면 단순히 업무 능력을 키워서 회사에서 일 잘하겠다는 수준의 질문으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여기서 놈 촘스키(Noam Chomsky)라는 미국의 언어학자를 잠깐 언급하겠습니다. ChatGPT는 작년 2022년 11월 30일에 출시됐어요. 미국에서 한 달 반 정도 논의된 시점인 1월 중순에 촘스키가 인터뷰를 합니다. 거기서 가장 먼저 제기된 질문인데요, 학생들이 ChatGPT 이용해서 보고서 써내는 문제를 제일 중요한 이슈로 다뤘습니다.

촘스키는 ChatGPT를 “첨단 기술 표절(High-Tech plagiarism)”이라고 단언했어요. 첨단 기술을 활용해서 하는 표절이라는 거죠. 이 말의 요점이 뭘까요? 인공지능을 통해 보고서를 대충 생성해서 제출하고 일종의 표절과 커닝 같은 짓을 하는 상황이 개탄스럽다는 거였습니다. 전에는 카피 킬러 같은 표절 잡아내는 프로그램들이 있었는데, ChatGPT가 만든 건 적발하기 힘들다, 우리 교수들이 좀 많이 곤란하다는 취지의 말이었습니다. (나머지 내용은 더 정리해서 나중에 페이스북 같은 데 공개하겠습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공유가 안 된 것 같아요.)

에이브러햄 노엄 촘스키(1928~)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로 묘사되기도 한다.

작년 겨울방학 직전에 ChatGPT가 나왔기 때문에 슬슬 소문이 확산하면서 올해 1월, 2월 이렇게 지나면서 한국의 교수들도 비슷한 사안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보고서 쓸 때 ChatGPT를 허용할 거냐 말 거냐, 학생들이 숙제하고 공부할 때 ChatGPT를 금지할 거냐 말 거냐, 인터넷 끊고 시험을 치르거나 보고서를 교실에 모여서 쓰게 하거나, 등등 여러 가지 얘기가 나왔고, 최근에는 그거 어쩔 수 없다, 막을 수 없으니까 활용하되 활용했다는 걸 명기해라, 이런 얘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3월 2일이니까 다 개학했죠. 대부분 학교가 ChatGPT를 문제로 보는데, 사실 촘스키가 제기한 ‘하이테크 표절’이라는 논점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이게 굉장히 불만입니다. 학생들이 ChatGPT를 이용해서 에세이를 쓰고 보고서를 낸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고등교육에서 에세이 과제를 낸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이런 것들을 교육 전반의 차원에서 검토하지 않고 있어요. 표절 문제를 최우선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게 한심하게 보입니다. 대학은 개인의 여러 역량을 키워주고 훈련시켜주는 곳이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 그 능력을 발휘해서, 도구의 도움을 받으며 자기 혼자 뭔가를 처리해야 하는데, 학술 영역이건 비즈니스 분야이건 간에 ‘혼자 뭘 하려고 할 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게 핵심 아닐까요?

그런데 이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표절해서 또는 남의 답안지를 베껴서 좋은 학점을 받게 되는 게 큰 문제라는 식으로 논점을 좁게 가져가니까 제가 불만을 느끼는 겁니다. 물론 윤리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큰 쟁점이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진짜로 물어봐야 하는 건 결국 대학에서 배워야 하는 능력이라는 게 무엇이냐 아닐까요? 교수들이 이 능력을 키워주는 문제에 대해 별 고민이 없고 대안도 없다면, 도대체 대학의 존재의 의미는 무엇이고, 나아가 교육의 의미는 무엇인지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시점에 교육 제도 전반을 다시 물어야 합니다. 교육과 학습의 본질을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들은 거의 논의가 안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런 논의를 하는 사람들이 주로 대학 교수인데 자기들도 답이 없고, 또 그런 문제 자꾸 제기하면 생계에 위협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해서가 아닐까 추정합니다.

에세이를 쓴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요? 글쓰기의 핵심이 무엇일까요? 글쓰기의 전 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요약하고 정리하고, 거기에 자기 생각을 보태고 빚어내서 자기 글로 결과물을 만드는 이 전반적인 과정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훈련되는 일의 핵심이 무엇일까요? 체득이라는 게 뭘까요? 이 지점을 건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단지 그럴싸한 결과물을 내는 게 중요한 건 아닙니다.

근데 교수들은 단지 이걸 평가하는 일, 그러니까 사람이 정말 순수하게 노력해서 쓴 글과 인공지능이 만들어준 글을 구별하지 못할까 봐 겁나는 거 아닐까요? 레포트를 제출하라는 숙제의 본질이 그런 걸까요? 자기 전문 분야라는 게 분명히 있고, 대학 교수는 특히 더 그러한데, 전문 분야에서 아주 세밀한 뉘앙스를 찾아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되는데, 인공지능은 분명 계속 실수하니까 그런 실수를 찾아내야 하는데 그 일에 교수들이 자신감이 없는 게 아닐까요? 뭘 가르쳐야 하는지 자기도 모르겠다는 것 아닐까요?

글쓰기라는 걸 단순히 어떤 내용을 담은 보고서 작성 수준으로 이해할 게 아니라, 생각의 훈련, 즉 자기 생각을 벼리고 잘 키우는 훈련이라고, 그래서 아까 말씀드렸던 인류 유산의 외곽 지대에 있는 문제들에 자꾸 도전할 수 있게 해주는 정신의 근력과 체력을 길러주는 그런 종류의 활동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인간의 생각과 사고의 본질이 그런 것들에 자꾸 도전하고 넘어가는 거라고 치면, 그 부분을 훈련하는 게 교육의 본질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현대의 교육은 그걸 못하고 있고, 동시에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그동안 못해왔다는 게 들통나서 두려워진 상황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요? 해당 분야의 전문가만이 알아챌 수 있는 뉘앙스나 새롭고 더 좋은 점을 분별하는 ‘감식안’을 키우는 게 중요한 것 아닐까요?

예술적 안목도 비슷한 뜻일 테고, 비평 감각(critical sense)이란 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런 걸 길러주는 게 교육의 핵심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웹진X의 동료 편집 위원 민경진 PSB 대표의 말을 빌리면 이렇습니다.

‘건축은 건물을 짓는 거고, 감리는 제대로 지었는지를 확인하는 겁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건축가지 감리사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감리사입니다.’

인공지능이 만들었건 인간이 만들었건 간에, 아니면 과거에 만든 것이건 다른 지역에서 온 것이건 간에, 생산물을 변별하고 분별하고 감식하는 예술가적 혜안 같은 능력을 기르는 일이 교육에서 목표로 삼아야 할 지향점이 아닐까 합니다.

 

8.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영국의 정치인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이 한 말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양반이 20세기 초반에 영국건축협회를 상대로 연설한 게 인상적입니다(1924년). 처칠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건물을 짓는다. 그다음에는 건물이 우리를 짓는다.
We shape our buildings and then they shape us.

처칠이 잘 얘기했고, 그다음엔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 그 후에 들뢰즈(Gilles Deleuze)가 잘 파악했듯ㅇ 인간과 기술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계속 형성하는 방식으로 공진화(共進化)하는 관계를 맺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기왕 이렇게 인공지능 세상에 들어온 이상,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을 어떻게 좀 더 향상시키게 할 수 있을지 모색해야 합니다. 결국 인간이 잘하고 있고 잘할 수 있고 잘 해왔던 측면을 강화하는 형태로 가는 게 교육이어야 하고, 그게 하나의 돌파구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자기를 넘어서는 그런 활동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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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kg→ 1kg의 다이어트 성공기: 노트북의 역사 https://ppss.kr/archives/258453 Fri, 03 Feb 2023 02:23:04 +0000 http://3.36.87.144/?p=258453

노트북

일상적으로 휴대하여 사용하기 편하도록 공책 크기로 만든 경량 컴퓨터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1. 랩탑과 노트북의 차이를 아십니까?

본격적으로 노트북의 역사를 알아보기 전에,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하나 있었습니다. 노트북을 해외에는 랩탑이라고 하잖아요? 두 단어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마침 HP 공식 홈페이지에 노트북과 랩탑의 차이에 대해 설명이 되어 있더군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 랩탑 10인치 이상의 고사양 휴대용 컴퓨터
  • 노트북 15인치 이하의 랩탑보다는 저사양인 휴대용 컴퓨터

하지만 컴퓨터 성능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차이가 점차 없어지고 있다는 설명으로 마무리되었죠. 대표적으로 맥북 프로는 15인치 이하이지만 고사양 노트북입니다.

 

2. 제품이 잘 팔렸지만 파산한 회사 (a.k.a. 오스본 효과)

  • IBM, ‘IBM 5100’ (1975)

최초의 휴대용 컴퓨터는 1975년 등장한 ‘IBM 5100’입니다. 휴대용에 걸맞는 무게 22kg! 하지만 무게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는데요. 내장배터리가 없어 코드를 꽂아야만 작동하는 ‘휴대용’ 컴퓨터였습니다. 그래도 IBM 5100은 혁신적인 제품이었기 때문에, 가격은 약 1,300만 원부터 시작했습니다.

  • 오스본, ‘오스본 1’ (1982)

IBM 5100의 가격과 무게를 봐도 알 수 있다시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휴대용 컴퓨터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1982년에서야 대중을 위한 휴대용 컴퓨터 ‘오스본(Osborne) 1′이 등장합니다. 무게는 IBM 5100보다 절반이나 가벼워진 11kg이었고, 가격도 절반 넘게 저렴한 544만 원이었죠. 물론 코드를 꽂아야만 작동하는 노트북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제품은 출시 8개월 만에 1만 1천 대가 팔리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성공에 힘입어 오스본 회사는 차기 모델을 사전 공개했죠.

오스본 회사 : 우리 회사에서 곧 혁신적인 제품이 나오니까 딴 회사 제품 사지 마세요!

소비자 : 그럼 오스본 다음 제품 나올 때까지 존버해야지!

가 되어서 오스본1도 안 팔리게 되었고, 그 결과 오스본 회사는 파산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처럼 판매 준비가 덜 된 차기작을 미리 발표하여, 현재 판매 중인 제품의 구매가 중단되게 만드는 것을 오스본 효과라고 부릅니다.

 

3. 전완근을 살리느냐, 시각을 살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앱손, ‘HX-20’ (1982)

진짜로 휴대할 수 있는 노트북이 등장한 건 1982년이었습니다. 앱손의 ‘HX-20′이 그 주인공이죠. HX-20은 A4용지만 한 크기에 키보드와 내장 배터리가 있었고, 드디어 진짜로 들 수 있는 무게 1.6kg이었죠.

하지만 동시대 다른 제품에 비해서 성능이 안 좋았고, 자체 OS를 가지고 있어 소프트웨어나 주변기기 호환성이 최악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니터의 상태가…?! 가로로 20자 4줄, 그러니까 총 80자만 출력 가능한 모니터를 가지고 있었죠. 그래도, 지금과 비교해도 양호한 무게와 크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극찬을 받았습니다.

  • 컴팩, ‘컴팩 포터블’ (1982)

같은 해 출시된 ‘컴팩 포터블(Compaq Portable)’은 HX-20에 비해 월등한 성능을 가진 노트북이었습니다. 9인치 CRT 모니터와 인텔 8088 CPU, CGA 그래픽카드도 탑재되어 있었죠. 무엇보다 당시 PC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어 부품 호환성이 좋았고, MS-DOS도 탑재했죠. 아, 물론 무게는 13kg이었습니다…

  • 도시바, ‘T1100’ (1985)

이처럼 당시 소비자들은 시각을 포기할지, 전완근을 포기할지 고민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1985년 이들의 고민을 한큐에 날려버린 제품이 출시되었으니, 바로 도시바의 ‘T1100′이었습니다.

이 제품은 드디어 노트북다운 노트북이었습니다. 화면을 접을 수 있는 외형을 가지고 있었고, 전완근을 적당히 단련시켜줄 무게 4kg, 512kb 램을 가지고 있었죠. 덕분에 490만원이라는 다소 비싼 가격에도 반년 만에 6000대가 팔리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4. 대기업의 고군분투기

  • IBM, ‘PC 컴버터블’ (1986)

도시바의 성공을 보고 PC 시장의 강자 애플과 IBM도 노트북 시장을 눈독 들이기 시작하는데요. 1986년 IBM에서 ‘PC 컴버터블(Compatible)’을 출시하죠. 무엇보다 이 노트북에는 혁신적인 기능이 있었는데요, 노트북의 모니터를 분리해서 본체를 다른 모니터에 연결할 수 있는 기능이었죠. 오늘날 도킹 스테이션의 원조라고 볼 수 있겠죠.

  • 애플, ‘매킨토시 포터블’ (1989), ‘파워북 100’ (1991)

1989년에는 애플의 첫 노트북인 ‘매킨토시 포터블’이 출시됩니다. 애플다운 가격 1,500만 원과 7kg이라는 무게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고, 출시 1년 만에 단종됐습니다.

애플이 다시 정신 차리고 만든 게 ‘파워북 100’인데요. 250만 원이라는 가성비(?!), 트랙볼이 키보드 하단에 위치한 최초의 노트북이기도 하죠.

  • IBM, ‘씽크패드 700’ (1992)

1992년에는 IBM에서 ‘씽크패드(ThinkPad) 700′를 출시합니다. 이 씽크패드 700에는 내장 카메라 탑재, 그리고 씽크패드의 상징인 ‘빨콩’ 트랙 포인트도 이때부터 들어있었죠.

씽크패드는 안정적인 시스템과 성능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고가였기 때문에 매출은 좋지 못했습니다. 결국 2005년 IBM은 씽크패드를 2005년 레노버에 매각하죠.

 

5. 크기를 줄이고, 성능도 줄이고

  • 도시바, ‘리브레또 20’ (1996)

노트북은 점차 작아지고 가벼워졌습니다. 그래서 1996년에는 A4용지 1/3 크기에 840g짜리의 컴퓨터가 등장합니다. 바로 도시바의 ‘리브레또 20’이었죠. 리브레또 20은 당시 PDA보다도 작았지만 윈도우 95가 돌아가는 기기였습니다. 게다가 PDA의 자판은 누르기도 힘들고 인식도 잘 안 되잖아요? 그런 걸 생각해 보면 확실히 혁신적인 제품이었습니다.

이 제품은 특히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전철에서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리브레또 20처럼 7인치 이하의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x86 호환 PC를 UMPC라고 불렀습니다. 이후 여러가지 UMPC 제품이 나왔지만, 2008년 넷북이 유행하면서 멸종하게 됩니다.

  • 아수스, ‘Eee PC’ (2007)

넷북은 인텔의 저전력 CPU인 아톰 프로세서를 사용한 노트북입니다. 싸고 가볍다는 특징이 있죠. 2007년 ASUS에서 출시된 Eee PC의 흥행을 시작으로 여러 제조사에서 넷북을 출시했습니다.

하지만 넷북은 단가를 낮추기 위해 성능이 대폭 낮춘 제품이었기 때문에 간단한 문서 작업이나 웹서핑밖에 할 수 없었죠. 물론 당시는 유튜브도 없던 시대이기 때문에 낮은 사양으로도 충분한 수요가 있었습니다.

  • 애플, ‘맥북 에어’ (2008)

그리고 바로 다음 해, 스티브 잡스가 서류 봉투에서 노트북을 꺼내 드는데.. 바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맥북 에어’ 의 등장이었죠. 이후로 넷북은 멸종하고, 저전력 CPU를 탑재해 얇은 울트라북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맥북 에어가 울트라북 시대를 열었지만 정작 울트라북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울트라북은 인텔에서 만든 구분인데, 애플 제품은 인텔의 인증을 굳이 받지 않았기 때문이죠.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울트라북은 Windows가 돌아가는 맥북 에어다. 인텔 빼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

점차 기술이 발전하면서 얇으면서도 고성능인 노트북이 다수 등장하고 있습니다. 울트라북의 구분도 모호해지고 있죠. 특히 애플의 M1 칩의 등장하면서, 구분이 더 이상 의미 없어지게 된 것 같습니다. (애플만세)

– 나의 Macbook Pro에서 보냄

원문: 사소한 것들의 역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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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 살린 공기청정기의 역사 https://ppss.kr/archives/258457 Fri, 13 Jan 2023 01:47:57 +0000 http://3.36.87.144/?p=258457

공기청정기

공기 속의 먼지나 세균 따위를 걸러 내어 공기를 깨끗하게 하는 장치를 통틀어 이르는 말. 습식 집진기, 정전식 집진기, 필터 따위가 있다.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0. 대기오염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들

  • 황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74년 신라 시대에 우토(雨土)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 최근(2017년) 서울 미세먼지(PM10)와 초미세먼지(PM2.5)는 1990년대에 비해 오히려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어요.
  • 놀랍게도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국의 하늘은 맑았습니다. 제조업 기반의 경제 급속 성장을 하면서 에너지의 대부분은 석탄으로 충족하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죠.
  • 미국에서 대기 오염 규제법이 생기게 된 배경에는 1948년 발생한 도노라 스모그 사건이 있어요. 당시 주민 70명이 사망하고, 6천여 명이 이상 증상을 보였고, 도노라는 10년이 지난 후에도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사망률을 보였죠.
  • 영국은 스모그와 많은 석탄 매장량 덕분에 옛날부터 대기 오염이 심각했습니다. 1301년 대기오염을 참다못한 에드워드 1세가 석탄을 사용 시 사형을 하게끔 법을 제정했어요. 하지만 그런데도 석탄 사용량은 줄지 않았는데요, 나무 땔감보다 석탄이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죠.

 

1. 최초의 공기청정기는 화력발전소 굴뚝 설치용

프레드릭 코트렐 박사의 전기집진기 특허

19세기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수많은 공장이 생겨났습니다. 오늘날 공장은 정부에서 산업단지를 조성해 모여있는데요. 당시에는 원료 공급이 수월하거나 사람이 많은 곳에 그냥 공장을 세웠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구가 많고, 교통이 좋은 대도시에 수많은 공장이 세워졌어요. 심지어 런던에는 버킹엄 궁전 옆에도 커다란 모직공장이 있었죠. 이때는 석탄으로 공장을 가동했기 때문에 대도시는 석탄 그을음과 유독가스가 섞인 매연 문제가 심각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12년 미국의 과학자 프레드릭 코트렐(Frederick G. Cottrell) 박사가 전기집진기를 발명합니다. 이 전기집진기는 화력발전소 굴뚝에 부착하는 것으로, 정전기를 이용해 초고열의 미세한 연기 입자들을 걸러낼 수 있었죠.

 

2. 방사능 분진도 정화하는 필터

HEPA 필터 특허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 일본 및 유럽의 강대국들은 군비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중 미국은 소모적인 군비 경쟁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아주 강력한 무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는데요, 이것이 바로 원자폭탄 개발을 논의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시작이었죠.

하지만 이 맨해튼 프로젝트는 미국 내에서도 거센 반대에 부딪혔는데요.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원자력 사고와 방사능 분진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죠. 따라서 맨해튼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방사능 관련 개발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공기정화 시스템이 필요했는데요. 그렇게 해서 개발된 것이 바로 ‘해파(HEPA)’ 필터입니다.

해파(HEPA)는 ‘고효율 분진 공기(High Efficiency Particulate Air)’의 앞글자를 따 만든 용어인데요. 수많은 주름 필터가 여러 겹을 이뤄 유해한 입자를 걸러내는 필터를 말하죠. 오늘날에도 해파필터는 많은 곳에 쓰이고 있습니다.

 

3. 일반 사람들을 위한 공기청정기

대표적인 사무용 공기 환기 시스템
1961년 알반 바락의 가정용 공기청정기 특허

곧이어 특수한 공업 및 산업 분야뿐만 아니라 일반 노동자들에게도 공기정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는데요. 고층 빌딩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하루종일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었죠. 또한 1955년 미국에서는 대기오염 통제법이 제정되어 많은 사람이 공기 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공기 청정기에 대한 많은 사람의 수요가 생겨나자 이미 개발되어 있던 전기집진기와 헤파 필터를 이용해 사무용 공기청정기가 만들어졌죠. 초기 사무용 공기청정기는 주로 건물 내부에 내장되어, 건축 과정에서 함께 지어졌어요.

사무실에서 공기 청정 시스템이 도입되자 일반 가정에서도 공기 청정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어요. 가정용은 공업용, 사무용과 달리 하나의 가전제품으로 개발되기 시작했죠. 최초의 가정용 공기청정기 특허는 1961년 알반 바락(Alvan Barach)가 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사실 알반 바락은 환자용 산소마스크를 개발한 것으로 더 유명합니다.

 

4. 삼성전자에서 시작된 국내 공기청정기 시장

1975년 삼성전자에서 개발한 공기청정기
1981년 한우전자에서 출시한 가정용 공기청정기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된 공기청정기는 1976년 삼성전자에서 나온 것으로 연구기관, 병원 등 특수시설을 위한 장비였죠. 가정용 공기청정기는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합니다. 1981년 한우전자에서 음이온 공기청정기를 개발한 것을 시작으로, 1987년 금성(현재는 LG)의 에어 클리닉, 1989년 삼성전자에서 공기청정기를 출시했어요.

가정용 공기청정기는 1980년대에는 새집증후군, 2000년대에는 황사, 2010년대에는 미세먼지가 국민 관심사가 되면서 점차 시장을 키워왔죠.

원문: 사소한 것들의 역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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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PN? 그거 야동 볼 때나 쓰는 거 아니냐? 사실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쓰는 겁니다 https://ppss.kr/archives/259086 Thu, 22 Dec 2022 02:00:07 +0000 http://3.36.87.144/?p=259086 인터넷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한때 업무용 도구, 젊은이들의 문화로 여겨지던 인터넷은 이제 분야와 영역을 넘어 현대인의 삶 그 자체가 되었다. 이에 따라 인터넷 위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개념과 서비스도 탄생했는데, VPN도 그중 하나다.

인터넷 좀 한다는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용도에 따라 VPN을 사용해오고 있지만, 아무래도 한국에서 VPN이 가장 많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건 2019년 인터넷 검열 사건 때였을 듯하다. 정부의 갑작스러운 “불법·유해 사이트” 접속 차단에 “선정 기준이 무엇이냐”, “왜 ○○는 차단되지 않았냐”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차단을 우회할 수 있는 VPN과 프록시 서버 등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VPN이 낯선 사람들도 많겠지만, 근래에는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기술이다. / 출처: pixabay

그렇다면 VPN이 정확히 무엇이고, 어떤 원리로 차단을 우회하게 만드는 걸까? 차단 우회 말고 VPN을 쓰면 어떤 이점이 있을까?

 

VPN의 정의와 원리

VPN은 Virtual Private Network의 약자로, 가상 사설망을 뜻한다. 사설망이란 특정 조직에서만 연결된 망으로, 기업이나 군대의 인트라넷을 생각하면 된다.

사설망은 말 그대로 특정 조직만을 위한 망이기 때문에 공용망에 비해 보안성이 높고 안전하다. 그런데 사설망을 까는 데는 비용이 든다. 공용망은 공용이므로 국가나 ISP(인터넷 서비스 공급자)가 깔 수 있지만, 사설망은 내가 깔아야 한다. 그래서 공용망을 이용해 사설망의 인트라넷처럼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바로 VPN, 즉 가상 사설망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사설망의 장점인 보안성을 누릴 수 없다. 그래서 가상의 사설망과 외부의 인터넷을 연결하는 VPN 라우터는 안팎을 오가는 정보를 암호화한다. 밖에서 보기에 데이터가 오간 경로는 라우터까지일 뿐, 정확히 어떤 정보가 어느 컴퓨터로 갔는지는 알 수 없게 된다. 사용자가 접속하는 사이트를 사전에 검열하여 차단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아주 간단하게 표현한 VPN의 동작 원리. / 출처:pixabay

인터넷이 익명의 공간이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가 회선을 통해 보내는 데이터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우리의 인터넷 신원이자 번호판인 IP 주소, 우리가 방문한 웹사이트와 거기서 입력한 정보, 검색 기록과 다운로드한 파일까지. 최근에야 개인정보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이런 정보를 점차 암호화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조금만 마음먹는다면 공유기나 와이파이 신호를 통해 이런 정보를 탈취하는 게 어렵지만은 않다.

비유하자면 인터넷은 바다다. 사용자는 자신의 배를 타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구글 섬, 넷플릭스 섬을 방문하며 항해한다. 문제는 이 바다가 대항해시대와 같아서 무서운 해적과 가짜 섬, 온갖 괴물이 득시글하다는 것이다. 당신이 방문하는 섬에는 당신의 번호판이 기록된다. 그래서 당신이 가진 보물(정보)을 노리는 해적은 당신을 추적할 수 있다.

인터넷을 사용한다는 건 대항해시대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어떤 짐을 싣고 어디로 가는지, 어느 나라의 깃발을 다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 그림: 로렌초 A. 카스트로, <바르바리 해적과의 전투>(1681)

VPN은 특별한 목적을 가진 항구다. 이 항구를 이용하면 원래와 다른 번호판을 쓰고 배를 임대해서 사용할 수 있다. 이러면 사용자를 추적하거나 정보를 탈취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진다. 보안에 특화된 VPN은 아예 잠수함을 이용하는 것과 같아서, 사용자가 출항했다는 사실마저도 숨길 수 있다.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 향상을 도와주는 VPN

인터넷이 치안 좋은 국가의 잘 닦인 도로라면 번호판을 내놓는 게 두려울 이유가 없을 테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인터넷은 해적이 판치는 17세기 카리브해에 가깝다. 전자상거래가 대중화되고 암호화폐가 활성화되며 해적들은 더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런 만큼 VPN의 가치도 커지고 있다. VPN만큼 손쉽게 높은 수준의 보안을 확보할 수 있는 것도 또 없기 때문이다.

검열 방지, 차단 우회, 서비스 속도 증가, 랙 감소, 해외 서비스 이용, 익명화 등 일반적으로 VPN의 사용 목적으로 언급되는 것들은 오히려 VPN의 본 목표가 아니라 부가 효과에 해당하는 것이다.

여러 VPN 서비스들이 OTT나 게임 특화를 제시하지만, 사실 이는 VPN의 본 목적이라기보다는 부가 효과에 가깝다. 그래서 VPN을 선택할 때는 용도와 목적에 따라 충분한 조사가 필요하다. / 출처: ExpressVPN

혹자는 공인된 장소에서 나쁜 짓 안 하고 나쁜 사이트 안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는 ‘공인되지 않은 장소’가 있는데, 바로 카페 등의 공공장소에서 와이파이를 이용할 때다.

공유기도 일종의 사설망이기 때문에, 관리자가 접속된 기기들이 주고받는 정보를 들여다볼 수도 있다. 만약 해커가 악의적인 목적으로 공공 와이파이와 동일한 명칭으로 와이파이 이름(SSID)를 만들거나, 공유기 자체를 해킹한다면 사용자의 정보는 꼼짝없이 탈취당하는 것이다. 만약 공공 와이파이를 통해 이용한 사이트가 제대로 된 암호화를 지원하지 않는다면 ID나 비밀번호는 물론 신용카드 정보까지 털릴 수도 있다. 당신이 해외 직구를 즐기는데 신용카드 정보가 털린 적이 있다면, 안전하지 못한 와이파이를 이용했기 때문일 가능성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공공 와이파이 이용 수칙을 보면 네트워크의 명칭과 보안 적용 여부를 확인하고, 방화벽을 반드시 쓰는 한편, 애초에 민감한 정보를 전송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럼에도 공공 와이파이를 통해 중요한 작업을 해야 한다면 VPN 사용이 권장된다. 설령 와이파이가 해킹당했다 하더라도 VPN을 통해 데이터가 오갔다면 사용자의 정보는 보호되기 때문이다.

공공 와이파이 사용 시 유의 사항을 다룬 의 기사.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으니 꼭 한번 읽어보도록 하자. (링크)

 

VPN을 쓰면 얻는 다른 장점은?

가상의 사설망을 통해 사용자의 데이터를 암호화하는 것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보안이지만, 이를 통해 얻게 되는 여러 가지 부과 효과가 있다.

첫 번째는 검열과 차단을 우회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VPN을 통해 나쁜 짓을 할 생각은 하지 말자. 사실 VPN은 완전한 익명이 아니다. 어쨌든 항구(VPN 서버)에는 내 배가 오간 흔적이 남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차단 우회 목적으로써 VPN은 정보가 제한된 독재국가에서 외국 소식을 얻는 데 주로 이용된다.

두 번째는 해외 서비스 이용이다. 어떤 이유로 한국에만 서비스가 제한되어 있거나, IP가 차단된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다면 특정 국적의 IP를 제공하는 VPN을 이용하면 된다. 유튜브에는 저작권 등의 문제로 한국에서만 감상 불가능한 영상이 꽤 되는데, 이 경우 VPN을 이용하면 감상할 수 있다. 다만 상당수 OTT 서비스가 이런 식의 지역 우회를 약관 위반으로 규정하고 있으니 사전에 충분한 확인이 필요하다.

반대로 한국에서 잘 쓰던 서비스가 차단된 외국으로 여행·출장을 갈 때도 고려할 만하다. 예컨대 중국에는 모종의 이유로 넷플릭스와 페이스북, 구글의 대다수 서비스가 차단되어 있다. 중국 현지에서 이들을 이용하고 싶다면 VPN을 이용해야만 한다.

특정 서비스가 검열·차단된 지역에서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VPN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 출처:instaforex

비슷한 원리로 특정 지역에서만 적용되는 가격으로 물건·서비스를 구매할 때도 이용할 수 있다. 한때 커뮤니티 등에서 유행한 “유튜브 프리미엄 2,000원에 구독하기”도 VPN을 통한 지역 우회를 이용한 것이다. 다만 이 경우 명백한 약관 위반이므로, 웬만하면 하지 않는 게 좋다.

마지막으로 해외 서비스를 주로 쓰는 경우 어느 정도의 속도 증가(유지)와 랙 감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국의 해외망 상황이 썩 좋지 않고, 특히 KT를 제외하면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에 외국 서비스를 이용할 땐 속도와 안정성을 보장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정적인 서비스를 이용할 땐 별로 문제가 되지 않지만, 10ms의 지연시간도 중요한 게임의 경우 큰 문제가 된다. VPN을 이용하면 해외망을 통해 데이터가 오가는 구간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고, 통신사의 속도 제한도 우회할 수 있기 때문에 속도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게임은 VPN의 효과를 크게 체감할 수 있는 영역이다. 사진은 게임 특화 VPN을 표방한 미꾸라지 VPN의 모습.

 

유료 VPN과 무료 VPN의 차이는?

VPN도 인터넷에 위에서 작동하는 서비스인 만큼 다양한 업체가 존재한다. 대표적인 유료 서비스로는 ExpressVPN, NordVPN 등이 있고, 무료 서비스로는 SoftEther VPN, Hola VPN, Open VPN 등이 있다.

VPN의 본래 목적은 가상으로 사설망을 구현해 사설망 수준의 개인정보 보호를 확보하는 것이었는데, IP를 숨기거나 해외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VPN의 목적처럼 알려지면서 개인정보 보호는 다소 뒷전인 VPN이 많아지고 있다. VPN을 통해 보안성을 높일 수도 있는 것이지, VPN 자체가 보안과 동의어는 아니므로 유의가 필요하다. 사설망이 아무리 보안이 좋다고 해도 관리자가 정보를 훔쳐 도망가면 공용망보다 못할 수 있는 것이다.

명심하자. 기술적으로 안전한 것과 물리적으로 안전한 건 언제나 별개다. / 출처: JTBC 뉴스룸

VPN도 서버와 라우터 등 장비와 투자가 필요한 서비스인 만큼 세상에 공짜는 없다. 무료 VPN은 사용자의 인터넷 이용 정보를 마케팅 회사에 판매하거나, 사용자의 데이터에 개입해 자체 광고를 송출해서 운영비를 충당하기도 한다. 마치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대가로 경품을 제공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에 따라 보안성을 보장할 수 없음을 약관에 명시한 서비스도 있다.

가장 체감되는 차이는 서버에 따른 속도 차이일 테다. 대다수 무료 VPN은 속도와 안정성에서 매우 불안하며, 스마트폰 요금제처럼 데이터 사용량을 제한하기도 한다.

유료 VPN이라고 해서 항상 안심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인터넷 서비스의 특성상 낮은 가격에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업체도 많으니, 사용자가 많고 업력이 긴 업체를 우선해야 한다.

VPN은 사용자의 보안과 직결되는 서비스인 만큼, 사전에 충분한 조사가 필요하다.

그 외 국가 선택이나 보안성 향상을 위한 로그 기록, 암호와의 방법과 수준 등에서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하니, VPN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꼭 목적과 필요성에 맞춰 여러 가지 서비스를 미리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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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애플이 다 이기는 이어폰의 역사 https://ppss.kr/archives/258459 Wed, 21 Dec 2022 20:00:17 +0000 http://3.36.87.144/?p=258459

이어폰

귀에 끼우거나 밀착할 수 있게 된, 전기 신호를 음향 신호로 변환하는 소형 장치. 휴대용 라디오나 보청기, 음악 감상용 장치에서 혼자만 들을 때에 사용한다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1. 전화 교환원이 되고 싶다면 승모근 단련부터

핸즈프리 숄더프레스 헤드셋

학창 시절 배운 플레밍의 왼손법칙을 아시나요? 전자기력의 방향을 알려주는 법칙인데요, 이어폰이 바로 전자기력을 이용해 소리를 내는 장치이죠. 1878년 전자기력을 이용한 소리 발생 장치에 대한 첫 번째 특허가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장치는 이어폰이라기보다는 확성기에 가까웠죠.

1880년대, 이어폰보다 헤드폰이 먼저 등장했습니다. 최초의 헤드폰은 전화 교환원들을 위한 장치였는데요. 전화교환원들끼리 소리를 구분해서 듣기 위함이었죠. 에즈라 길릴란드가 발명한 이 헤드폰은 한쪽에는 이어폰, 한쪽에는 마이크가 있어 마치 전화기를 억지로 어깨에 얹어 놓은 형태를 띄었죠. 심지어 무게도 4kg가 넘었다고 하니, 전화 교환원의 승모근은 남아나기 힘들어 보입니다.

 

2. 최초의 헤드폰은 스트리밍 음악 서비스용?!

1908년 Electrophone을 이용하는 모습 ⓒbritishtelephones.com

1890년대에는 음악 감상을 위한 헤드폰(?)이 탄생했습니다. 이 장치는 일렉트로폰 회사에서 런던 오페라 하우스에 설치한 것으로 실시간 공연을 더 크게 들을 수 있는 장치였죠. 이 장치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서비스에 가입해야 했어요. (그 시절의 스포티파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장치는 생긴 게 헤드폰이라기보다는 청진기에 가까웠는데요. 무게 때문에 머리에 쓸 수  없었기 때문이죠.

 

3. 슬픈 전설을 가진 최초의 현대식 헤드폰

나다니엘 볼드윈의 헤드폰. 요즘 헤드폰과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인다

제대로 머리에 쓸 수 있는 헤드폰은 1910년 미국에서 탄생합니다. 이 헤드폰은 무선 수신기였기 때문에 ‘라디오 헤드셋’이라고 일컫죠. 오늘날의 헤드폰과 모습이 완전히 같습니다.

이 헤드폰에는 슬픈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라디오 헤드셋을 발명한 나다니엘 볼드윈은 부업으로 부엌에서 헤드폰을 만들었는데요. 군에서 이 헤드셋의 유용성을 알아보고 계약을 합니다. 시끄러운 군사 작전지에서 통신을 잘 듣고,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하는데 엄청 유용했거든요.

계약이 성사된 이후에도 볼드윈은 부엌에서 수제로 헤드폰을 만들었고,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허를 내지 않았습니다. 결국 수많은 카피 제품이 탄생하게 되었고, 이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볼드윈은 파산했다고 하네요.

 

4. 헤드폰 음질의 발달: 다이나믹, 스테레오

최초의 다이나믹 헤드폰, 베이어 다이나믹의 dt 48 ⓒbeyer dynamic
최초의 스테레오 헤드폰, Koss의 SP-3

1927년 소리의 혁명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데, 바로 유성영화의 탄생이었죠. 이로 인해 극장용 스피커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합니다. 당시 극장용 스피커를 제작하여 판매하던 베이어 다이나믹스는 1937년 시장에서 한발자국 더 앞서 나가고자 신제품을 출시하는데요. 바로 DT48이라는 헤드폰이었죠.

이 헤드폰은 최초의 다이나믹 헤드폰입니다. 다이나믹 헤드폰이란, 소형 진동판을 설치하고 코일을 감아 전기 신호로 진동판에 진동이 일어나도록 하는 헤드폰으로, 기존의 헤드폰보다 훨씬 음질이 좋은 헤드폰이라는 뜻이었죠.

베이어다이나믹스의 DT48은 최근까지도 그 설계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DT48E가 출시했으나 2011년 단종되었습니다.

1958년에는 최초의 스테레오 헤드폰이 등장합니다. 미국의 재즈 뮤지션인 존 코스가 제작한 Koss SP-3였죠.

이 헤드폰은 최초의 스테레오 헤드폰 말고도 업적이 하나 더 있습니다. 당시 가정용 스테레오 오디오 기계에는 헤드폰 출력 단자가 없었는데요. 존 코스는 이 헤드폰을 출시하면서 오디오 제조업체들을 설득해 헤드폰 출력 단자를 포함되도록 했고, 이때 헤드폰 출력단자가 표준규격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베이어다이나믹스의 DT48과 코스의 SP-3는 비싸고 무거워 오디오 덕후들만을 위한 제품이었죠.

 

5.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헤드폰은?!

천만 대 이상 팔린 젠하이저의 HD 414 ⓒSennheiser

머리에 쓸 수 있게 되었고, 음질도 좋아졌지만 헤드폰은 여전히 대중적인 기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음악 감상용 장치의 가격과 크기가 무지막지했거든요. 그래서 음악은 거대한 붐박스를 들고 뒷골목에서 시끄럽게 듣던가, 집안에서 고상하게 비싼 기계 앞에서 듣는 것이었죠.

하지만 1979년 워크맨의 등장으로 음악을 듣는 모습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이제는 가볍고 저렴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었죠. 심지어는 이동하면서 공공장소에서도 들을 수 있었어요. 가벼운 오디오 기계에는 가벼운 헤드폰이 필요했는데, 이때 두각을 나타낸 헤드폰이 젠하이저의 HD 414입니다.

HD 414는 이미 1967년에 제작되어 세계 최초의 오픈형 헤드폰이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는데요. 오픈형 헤드폰이란 스피커의 뒷부분이 개방되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방식으로 제작을 하게 되면 헤드폰의 음향이 외부로 새어 나가긴 하지만 헤드폰 자체의 음질은 혁신적으로 높아지게 되죠.

젠하이저의 HD 414는 워크맨의 탄생에 힘입어 천만 대가 넘게 팔리며 가장 많이 팔린 헤드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니는 이후 HD 414 제품의 특허 사용료를 지불하고 MDR-3를 제작하기도 했죠.

 

6. 애플이 하면 뭐가 되었든 트렌드가 된다

헤드폰 말고 이어폰은 대체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요? 사실 이어폰은 1920년대부터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음악 감상용보다는 보청기로 사용되었죠. 이러한 이어폰의 초기 쓰임새 때문에 이어폰은 보청기로 인식되었고, 사람들이 쓰기 꺼렸어요.

1926년 발명된 이어폰
1920-50년대 진공관 보청기

뿐만 아니라 이어폰 품질에도 문제가 있었어요. 1950-60년대에는 휴대용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구입하면 이어폰을 끼워 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라디오 가격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하자, 이어폰의 생산 단가를 낮추고 한쪽만 있는 이어폰을 제공하기 시작했죠. 제품 생산도 라디오 제조회사에서 하청을 주었기 때문에 품질이 형편없었어요.

이러한 이어폰의 문제점 때문에 1990년대까지는 헤드폰을 쓰거나, 귀를 전부 덮지만 헤어밴드는 없는 이어폰(?)을 쓰는 게 영미권의 국룰이었다고 합니다. 이 이어폰의 인식을 바꾼 것이 바로 애플의 iPod입니다. 2001년 출시된 iPod은 이어폰을 기본으로 제공했는데요, 이때부터 헤드폰보다 이어폰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고 하죠.

알아두면 아는 척하기 좋은 사실

원래 이어폰이라는 용어는 소니가 워크맨을 발매하면서 만들어낸 상표였어요. 특허가 풀리고 여러 음향 회사에서 사용하면서, 널리 쓰이게 된 것이죠.

 

7. 디자인이 예쁜 적이 없었던 무선 이어폰

Ericsson T36

블루투스가 존재하지 않던 1960년대에도 무선 헤드폰이 있었습니다. 단지 라디오만 들을 수 있는 라디오 헤드폰이긴 했지만요.

블루투스를 활용한 최초의 헤드폰은 2000년 에릭슨에서 등장합니다. 에릭슨의 T36은 블루투스 기술이 탑재된 최초의 핸드폰인데요, 기본 구성품으로 블루투스 무선 헤드폰이 있었어요. 당시의 무선 헤드폰으로는 음악감상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한쪽 귀에만 착용하는 업무용으로 포지셔닝했죠.

2010년에 출시된 HBS-700 ⓒLG
W800BT ⓒOnkyo

무선 이어폰의 역사에는 LG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세계 최초로 넥밴드형 블루투스 이어폰을 선보인 것이죠. 이제는 아저씨의 상징이 되었지만 한때는 잘나갔고, 현재도 넥밴드형 무선 이어폰 제품은 여러 제조사에서 출시된다고 합니다.

이어폰 유닛 간의 선마저 없는 완전 무선 이어폰은 일본의 오디오 제조업체인 욘코에서 2015년에 출시한 W800BT입니다. 켜짐/꺼짐 스위치, 마이크, 그리고 볼륨 조절이 이어폰 안에 들어 있었죠. (에어팟보다 낫다?!)

하지만 어디가 최초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2016년 출시한 에어팟이 시장을 잠식했거든요.

 

8. 노이즈 캔슬링도 애플로 대동단결

파일럿용 노이즈캔슬링 헤드폰 ⓒAUDITORY AND ACOUSTIC RESEARCH & DEVELOPMENT AT AIR FORCE RESEARCH LABORATORY (AFRL)

노이즈 캔슬링 기술은 1930년대에 이미 개발되었고, 헤드폰용으로 만든 시도는 1950년대부터 있었어요. 제대로 된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은 1984년 젠하이저에서 루프트한자 항공사 파일럿을 위한 제품을 제작하면서 등장합니다. 당시 파일럿은 기내 소음때문에 난청을 겪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죠. BOSE 역시 1989년 파일럿을 위한 헤드폰을 제작합니다.

MDR-NC20(좌), MDR-NC10(우) ⓒSony

1995년 소니는 최초로 일반인을 위한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MDR-NC10과 헤드폰 MDR-NC20을 출시했죠. 하지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2019년 출시된 애플의 에어팟 프로가 현재 이어폰 시장 점유율 약 25%인걸요.

원문: 사소한 것들의 역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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