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 https://ppss.kr 필자와 독자의 경계가 없는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Sun, 29 Mar 2015 05:31:18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5.8.10 https://ppss.kr/wp-content/uploads/2015/07/ppss-100x100.png ㅍㅍㅅㅅ https://ppss.kr 32 32 두 명의 여왕 : 박근혜와 김연아의 평행이론 https://ppss.kr/archives/6958 https://ppss.kr/archives/6958#comments Mon, 20 May 2013 01:59:27 +0000 http://3.36.87.144/?p=6958 평행이론을 보는 듯한 두 명의 여왕: 김연아 vs 박근혜

2013년, 대한민국은 두 여왕의 즉위식을 보았다. 2월에는 옛 공주가 청와대의 여왕으로 돌아왔다. 유신의 위대한 딸 박근혜는 당당히 청와대로 다시 돌아와 아버지가 잃어버렸던 옥좌에 다시 앉았다. 3월에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꽃피운 올림픽의 여왕이 다시 돌아왔다. 압도적인 격차로 대제전의 가장 높은 곳에 올랐던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는 2년여만의 복귀전에서 또 한번 그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그대로 보여주며 다시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근혜와 김연아, 김연아와 박근혜. 노출을 워낙 꺼려 한편에서는 ‘신중’, 한편에서는 ‘불통’의 이미지를 함께 지닌 예순이 넘은 노회한 정치인과, 아이스쇼에서 수많은 관중의 함성과 박수갈채에 화답하는 20대의 젊은 스포츠 스타 사이에 일견 공통점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행보를 조금만 주의깊게 본 사람이라면, 이 두 사람이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와 김연아
어디가? … 라고 물으면 애국보수가 출동해 잡아갑니다

 

시련과 역경… 부상 투혼: 디스크 팽윤 vs 대전은요?

승리의 순간마다 보여준 압도적인 실력 차이 덕분에, 김연아를 ‘피겨 여왕’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시니어 무대에 오른 이후, 김연아를 따라다닌 것은 사실 승리의 영광뿐만은 아니었다. 주니어 부문에서 활동할 때부터 고질적인 허리 통증과 디스크 팽윤이 그녀를 괴롭혔다. 디스크 팽윤이란 척추와 척추 사이를 이어주는 추간판(intervertebral disc, 흔히 허리 디스크라 부르는 것이 이것이다)의 섬유륜이 정상 위치에 비해 다소 밀려난 증상으로, 흔히 허리 디스크라 부르는 추간판 탈출증으로 발달할 수 있는 상태다.

그러나 통증이 괴롭히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주니어 부문의 세계선수권과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하며 당당히 피겨스케이팅을 이끌 차세대 주자로 자리잡았다. 2005년, 시니어 부문 데뷔를 1년 앞둔 해의 일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동갑내기 일본 선수 아사다 마오에 밀려 2인자 이미지가 강했지만, 주니어 마지막 해 바로 그 아사다 마오를 큰 차이로 누르면서 미래의 피겨스케이팅을 이끌 차세대 주자로 확실한 자리를 잡았다.

부상 투혼을 얘기하며 박근혜 대통령을 빼놓을 수는 없다. 2006년 지방선거 유세중 괴한에게 습격당했던 박근혜 대통령. 그의 뺨에는 여전히 그때의 상처가 남아있다. 그러나 그는 여성으로서 치명적인 얼굴의 상처를 입고서도 굳건하고도 의연했다. 그가 마취에서 깨어나 뱉은 첫 마디로 알려진 “대전은요?”는 그야말로 선거판을 뒤흔들었다.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그의 선거불패 신화 속에서도 이 이야기는 화룡점정이다. 뭐, 사실은 “대전은요?”가 아니라 집도의에게 건넨 “당신이 내 속살을 본 첫 남자네요”가 마취에서 깨어난 박 대통령의 첫 대사였다는 비화가 있긴 하더라마는.

구국의 일념 윤창중을 낳은 민족정론 문화일보의 보도입니다
구국의 일념 윤창중을 낳은 민족정론 문화일보의 보도입니다

 

최고의 실력… 그러나 쓰라린 패배: 김연아의 동메달 vs 박근혜의 이명박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김연아는 이미 데뷔 첫 해부터 메달을 놓치지 않는 강력함을 자랑했지만, 그렇다고 늘 승리의 감격만을 경험했던 것은 아니다. 시니어 데뷔 후 첫 세계선수권. 고질적인 허리 통증은 여전히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고, 세계선수권은 그야말로 ‘적진’인 일본에서 열렸다. 그녀는 쇼트 프로그램 ‘록산느의 탱고’를 완벽하게 해내며 세계기록을 세웠지만, 프리스케이팅 ‘종달새의 비상’에서는 점프에서 두 번이나 넘어지고 하나의 점프는 무효 처리 되는 등 평소답지 않은 실수를 범하며 3위에 그쳤다.

두 번째 세계선수권에서도 불행이 따랐다. 허리 통증은 여전히 그녀를 괴롭혔고, 진통제를 맞고 경기에 나서야 했다. 그러나 투혼에도 불구하고 쇼트 프로그램 ‘박쥐 서곡’에서는 러츠에서 넘어지는 실수를 범했을 뿐 아니라, 석연찮은 판정 시비까지 겹쳤다. 김연아는 이를 만회하기라도 하듯 프리스케이팅 ‘미스 사이공’을 비교적 무난하게 연기해냈으나 이번에도 점수는 예상에 비해 높지 않았고, 결국 이 대회에서도 동메달에 그쳤다.

동갑내기 라이벌로 불리던 아사다 마오가 두 대회에서 은메달과 금메달을 가져가는 동안 김연아가 가져간 두 개의 동메달은 분명 값지지만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아쉬운 것이었다.

한편 박근혜에게도 시련이 있었다. 이미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며 가장 존재감있는 정치인으로서 입지를 다졌지만, 김연아에게 아사다 마오가 큰 장애물이었던 것처럼 박근혜에게도 큰 장애물이 있었다. 이명박이라는 큰 산이 그 앞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명박산성
이명박이라는 큰 산(명박산성처럼)이 박근혜를 가로막았다

당시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는 선거인단으로부터는 더 높은 지지를 받았으나, 여론조사에서 패배하며 대선 후보 자리를 이명박에게 넘겨준다. 김연아가 판정 시비의 희생자였듯 박근혜도 경선 규정의 희생자였던 셈이다. 또한 서강대 공대 재학 시절 대부분의 과목에서 최고학점을 받으며 최고의 지성을 증명받았던 그였지만, 경선 토론회에서 두 번이나 ‘이산화 가스’ 발언을 반복하는 등 실수(?)를 범하고 만다.

박근혜의 위대함은 이 한 장의 성적표만으로 충분히 증명된다
박근혜의 위대함은 이 한 장의 성적표만으로 충분히 증명된다
위의 성적표에서 볼 때, 이건 분명한 실수다. 실수라고! 실수일까? 실수겠지. 설마...
위의 성적표를 볼 때, 이건 분명한 실수다. 실수라고! 실수일까? 실수겠지. 설마…

 

위대한 승리… 사상 최고의 기록: 피겨 신기록 vs 대선 신기록

김연아의 시니어 데뷔 세 번째 해, 김연아는 쇼트 프로그램 ‘죽음의 무도’로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강렬한 카리스마와 세련된 표현, 강력한 기술로 무장한 이 프로그램은 실로 적수가 없었다. 그 해 세계선수권에서 김연아는 사상 최초의 200점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당당히 첫 세계선수권 금메달의 주인공이 된다.

이 압도적인 승리는 순식간에 그간의 라이벌리 구도를 해체해버렸다. 김연아는 그 전까지만 해도 아사다 마오 등과 함께 ‘우승권 선수’로 분류되었지만, 이 승리로 인해 피겨스케이팅의 구도가 챔피언 김연아와 그에 도전하는 다른 선수들의 구도로 재편된 것이다. 이 구도는 올림픽까지도 이어져,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김연아는 228.56점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과 함께 경쟁자들을 아득히 앞서며 챔피언이 되었다.

글쓰는 사람도 힘드니 잠깐 정화하고 갑시다(...)
글쓰는 사람도 힘드니 잠깐 정화하고 갑시다(…)

박근혜 역시 경선 패배 이후 절치부심하여, 2012년 대선 구도에서 압도적인 선두주자로 앞서나간다. 특히 여당의 실책과 정권심판론 가운데 펼쳐진 2012년 총선에서 오히려 과반의 의석을 얻으면서 야권연대에 승리하면서, 박근혜의 리더십에 대한 믿음은 더욱 굳건해졌다. 결국 박근혜는 군부 독재 종식 이후로는 최초로 5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승리하였다.

 

승리의 영광, 그 배경…: 어머니 박(미)희 vs 아버지 박(정)희

김연아의 승리의 영광 뒤에 그 어머니 박미희 씨가 있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드물다. 피겨스케이팅은 ‘귀족 스포츠’라 불릴 정도로 돈이 많이 들지만 국가적으로 밀어주는 스포츠도 아니고, 특히나 한국은 피겨스케이팅을 위한 빙상장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제반 사정이 낙후되어 있다.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한 이후에도 김연아는 훈련에 어려움을 겪었고, 훈련장의 환경 문제와 그로 인한 부상 악화, 스케이트화 문제 등 수도 없는 문제를 극복해야 했다. 김연아의 재능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그 재능이 꽃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 여파였을까. 한 사람의 스포츠인을 꽃피우기 위해 뒤에서 묵묵히 토양을 만들어 온 또 한 사람의 매니저, 딸의 앞날을 위해 극성스러울 정도로 많은 것을 챙긴 엄마, 활자화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그리고 서로 상반되는 소문들이 그 어머니를 수식하는 데 동원되고 있다. 김연아와 코치 브라이언 오서의 결별 사태 때는 이 결별이 어머니의 입김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이에 대해 김연아가 직접 반박하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박근혜의 승리의 영광 뒤에도 박정희와 육영수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귀족’을 넘어 ‘왕족’, ‘공주’ ‘여왕’으로까지 불리는 모습도 피겨스케이팅이 ‘귀족 스포츠’라 불리는 것과 무척이나 닮았다. 특히나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의 죽음 이후 박근혜가 갑차기 청와대에서 쫓겨났다고 인식하는 부분이나, 경황이 없는 중에 6억원을 받았다든가 하는 부분은 ‘왕족’ ‘공주’ ‘여왕’ 등의 칭호와 더할나위없이 어울린다. 박근혜의 재능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이름이 없었다면 그 재능이 꽃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박정희 사진
Park정희 Park근혜 Sㅐ아침이 밝았네 Sㅐ벽종이 울렸네

그 여파였을까. 민주주의를 짓밟고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은 장기 군사 독재자, 산업화의 선봉장, 활자화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그리고 서로 상반되는 평가들이 그 부모를 수식하는 데 동원되고 있다. 물론 xxxxxxxxxxxxxxxxxxxxxxx 라든가 oooooooooooooooooo 라든가 하는 소문도 있다(데이터 말소, 코렁탕 방지). 그러고보니 이름도 비슷하고…

 

다시 한 번 왕좌로: 이제 시작인 평행이론

김연아는 다시 한 번 왕좌로 발걸음을 옮긴다. 올림픽을 한 해 앞둔 2013년 캐나다 런던 세계선수권에서의 압도적인 승리를 통해 그녀는 그녀야말로 여왕이란 이름에 어울림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은메달을 딴 카롤리나 코스트너, 동메달의 아사다 마오 등 경쟁자들이 있지만, 이미 해외의 피겨스케이팅 관련 포럼 이용자들도 실력을 비롯한 그 어떤 면에서나 그들이 김연아의 진정한 경쟁자는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퍼스트레이디로서 활동하던 청와대를 떠났던 박근혜도 다시 왕좌로 돌아왔다. 2012년 대선에서의 압도적인 승리를 통해 그녀는 그녀야말로 여왕이란 이름에 어울림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대체 김연아와 박근혜가 어디가 닮은 것이냐고. 아니 뭐 박근혜와 메르켈, 박근혜와 대처, 막판에는 박근혜와 아웅산 수찌까지 닮았다고 하는 판인데 뭐. 이왕 인심 쓴 거 좀 더 쓰면 뭐가 어때서 그러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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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링 퇴출에 즈음하여: 차라리 피겨스케이팅을 폐하라 https://ppss.kr/archives/5122 https://ppss.kr/archives/5122#comments Tue, 19 Feb 2013 04:45:42 +0000 http://3.36.87.144/?p=5122 올림픽, 레슬링 매트를 뜯어내다

올림픽이 얼마나 정치적인지, 혹 상업에 물들었는지, 올림픽 종목은 어떻게 결정되어야 하는지, 올림픽이 상징하는 아마추어리즘이란 무엇인지 – 레슬링 퇴출 사태를 설명하기 위해, 혹 그를 논평하기 위해 가져올 화두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그 수많은 소재를 끌어올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레슬링 퇴출 사태는 명약관화하게 충격적이다. 대체 레슬링처럼 스포츠의 한 원류에 가까우면서도, 역사가 유구하며, 세계적으로 전파되었고, 완전히 개성적인 종목이 또 얼마나 있을지, 도저히 모르겠다.

고대 레슬링

가장 오래된 투기 종목이며, 육상 경주, 복싱 등과 함께 고대 올림픽부터 내려온 유서 깊은 스포츠. 힘과 힘이 맞붙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투기로써 아마추어 스포츠로서도 사랑받고 있는 레슬링의 퇴출은, 자연히 올림픽의 의의 자체를 뒤돌아보게끔 한다. 뿐만 아니라 그 퇴출 이유로 한 목소리로 ‘재미’를 지적하고 있다는 점은 더욱 그렇다.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재미와 흥미를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올림픽의 정신, 올림피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말 그것이란 말인가. 그럼 노력, 선행, 교육, 윤리, 조화로운 발전, 존엄 – 올림픽 헌장이 담고 있는 올림픽의 정신은, 대체 어떤 형태로 구현되고 있단 말인가?

오히려 레슬링이 올림픽 핵심 종목에서 퇴출되었다는 뉴스가 뜨자마자, 언론과 유명 블로거들은 ‘로비’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IOC의 위원 구성, 각 협회의 로비 능력 등 온갖 정보들을 총동원해 레슬링이 퇴출되었다는 상식 밖의 사태를 설명하려 애썼다. 레슬링이 퇴출된 이유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 대부분, 레슬링이라는 종목이 올림픽에 어울리지 않아 퇴출되었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올림피즘을 얘기하는 저 올림픽 헌장을 아무리 뜯어보아도, 레슬링이 퇴출되어야 할 적절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는 탓이다.

여기에 재미있는 대척점이 있다. 동계올림픽의 피겨스케이팅이다. 레슬링이 고대 올림픽에서부터 내려온 가장 전통있는 하계올림픽 종목이라면, 피겨스케이팅은 비록 레슬링 정도는 아니지만 동계올림픽에서는 가장 전통있는 종목이다. 피겨스케이팅은 올림픽에 최초로 도입된 동계 스포츠로,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처음, 동계 스포츠로서는 단독으로 도입되었다.

초기 피겨스케이팅 자료사진
초기에는 이런 느낌이었다고 한다

레슬링이 로비와 국가간 힘싸움의 희생양으로 거론되는 것처럼, 피겨스케이팅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그 속이 새까맣게 썩은지 오래다. 다만 레슬링이 그 결과 핵심 종목에서 퇴출되며 아예 올림픽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것과 달리, 피겨스케이팅은 그 질긴 수명을 용케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결코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판정 시비와 로비 의혹, 국적에 따른 유불리 의혹까지 스포츠가 입을 수 있는 치명적인 의혹을 전부 받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이 얘기를 하고자 한다. 기왕 역사적 의미고 뭐고 다 내버리고 레슬링을 퇴출할 거라면, 차라리 썩어버린 피겨스케이팅도 퇴출해 하계와 동계 올림픽의 두 맏형을 한꺼번에 내쫓자는 이야기다.

개가 굽신대고 있다
아니 뭐 진짜로 둘 다 퇴출하란 얘긴 아니구요… (개굽신)

 

2002년, 솔트레이크

정치적 이해, 심판 로비, 그리고 초유의 금메달 공동 수여. 어쩌면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 빙상은 오늘날 올림픽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난 마당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는 아폴로 안톤 오노의 헐리우드 액션과 김동성의 실격 사건이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겠지만, 세계적으로는 바로 이 사건, 피겨스케이팅 페어 부문에서 나온 금메달 공동 수여 사건이 가장 큰 스캔들이었다.

어쨌든 당시 상황을 정리해보자. 당시 피겨스케이팅 페어 부문에서는 캐나다의 살레 & 펠티에 조와 러시아의 베레즈나야 & 시카룰리체 조가 금메달을 놓고 경쟁하고 있었다. 직전 세계선수권에서 1위와 2위를 차지한 두 팀의 경쟁은, 결국 실수가 있었으나 더 공격적으로 경기를 해낸 러시아의 베레즈나야 & 시카룰리체 조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순간, 또다른 싸움이 시작되었다. 실수 없이 경기를 해낸 캐나다의 살레 & 펠티에 조가 은메달에 그치자, 미국 솔트레이크의 경기장은 야유로 가득찼고, 즉각 편파 판정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 의혹은 삽시간에 불타올라, 프랑스의 심판 마리 렌 르 군유가 의혹의 중심에 섰다.

살레는 승리를 직감하고 빙판에 키스하지만, 결과는 은메달.
캐나다 팀의 당시 모습. 당연히 내가 이겼겠지, 하고 빙판에 키스까지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의혹이 삽시간에 불붙을 수 있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프랑스 심판 마리 렌 르 군유가 의혹의 중심에 서게 되었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피겨스케이팅이 채택했던 독특한 채점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선 첫 번째 요인은 6.0점 만점에 기술 점수와 예술 점수를 따로 채점하는 독특한 채점 방식이었다. 6.0점 만점에 부족한 점이 있으면 점수를 깎아나가는 이 방식은 세부적인 사항 하나하나를 평가하기에는 부적절했다. 덕분에 기술의 난이도나 수행 수준과 별개로, 실수를 하지 않으면 이기고 실수를 하면 진다는 인식이 당연시되었던 것이다.

실제 구채점제 채점의 한 예.
이런 식으로 점수가 매겨진다

두 번째 요인은 독특한 순위 선정 방식이었다. 총 9명의 심판이 나서 판정을 내리는데, 이 심판들의 점수는 합산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따로 계산된다.

예를 들어, 여기 박근혜 선수와 전여옥 선수가 겨루고 있다고 하자. 심판은 임예인, 이승환, 아츠히로 세 명이다. 임예인은 박근혜에게 6점, 전여옥에게 3점을 주었다. 반면 이승환과 아츠히로는 박근혜에게 5점, 전여옥에게 6점을 주었다. 박근혜는 총 16점을, 전여옥은 총 15점을 받은 것이다. 박근혜가 더 높은 총점을 받았지만, 피겨스케이팅 룰에 따르면 이 경우 승자는 전여옥이다. 왜냐고? 더 많은 심판이 전여옥이 이긴 것으로 판정했기 때문이다.

전여옥이 대통령에 당선된 꿈을 꾸었다.
I Dreamed a Dream (출처: 본격 시사인 만화)

솔트레이크 올림픽으로 돌아가, 당시 9명의 심판 중 4명은 캐나다의 살레 & 펠티에 조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었고, 5명은 러시아의 베레즈나야 & 시카룰리체 조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었다. 세부적인 점수나 총점은 중요하지 않다. 과반인 5명이 러시아 조의 승리를 선언함으로써, 금메달은 러시아 조에게 돌아간다.

세 번째 요인은 예술점이다. 실수 없이 연기를 해낸 캐나다의 살레 & 펠티에 조가 대체로 더 높은 기술 점수를 받아갔으나, 빠른 스피드와 공격적인 수행을 해낸 러시아의 베레즈나야 & 시카룰리체 조가 대체로 더 높은 예술점수를 가져갔다. 점수가 같을 경우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예술점수가 높은 쪽이 승자로 간주된다. 이런 특징도 러시아 조의 승리에 큰 역할을 했는데, 스포츠에 매겨지는 예술점수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모호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스캔들에 기여했을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네 번째 요인이 있다.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 판정을 내린 심판의 국적이 그대로 노출된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 캐나다, 독일, 일본 심판은 캐나다 조의 손을, 러시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중국, 그리고 프랑스 심판은 러시아 조의 손을 들어주었다. 전체적으로 서구권이 캐나다의, 동구권이 러시아의 손을 들어주는 양상으로 명백히 갈라진 가운데, 유독 프랑스 심판만 동구권 사이에 붙어 있는 꼴이다. 이런 구도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어디선가 프랑스 심판이 뭔가 이상하다는 의혹이 불거져나왔다. 서구권 심판이 동구권 팀의 편을 들면 안 되는 것인지, 오히려 서구권과 동구권이 명백히 갈린 심판의 진영이 더 문제가 아닌지, 지금 와서는 여러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당시에는 그랬다.

결국 프랑스 심판이 실토를 했다. 결국 아이스 댄스 종목에서 프랑스에 유리한 판정을 내려주는 조건으로 러시아에 유리한 판정을 내렸다는 것. 프랑스 심판의 판정은 무효가 되었고, 이에 따라 러시아와 캐나다 두 조가 모두 금메달을 차지하게 되었다. 뭐 나중에 프랑스 심판은 사실 저 실토야말로 거짓이며 자신은 러시아 조가 더 잘 했다고 생각했다고 또다른 진실(?)을 밝히지만, 글쎄, 어떤 진실이 진짜 진실인지는, 이제 와선 며느리도 모른다.

 

‘예술’을 평가하는 모호한 잣대

그래서 채점제는 변했다. 세부적인 기술 하나하나를 채점하도록 변했고, 총점으로 순위를 결정하도록 변했다. 또 심판의 국적이 표시되지 않도록 변했다. 여기에 세부적인 판정 내용을 채점표로 모두 투명하게 공개하기까지 한다. 지금 김연아가 200점을 넘네 마네, 세계 신기록을 세우네 마네 하는 것은 다 이 6.0점 만점 제도가 싸그리 사라지고 새로 들어선 채점제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좋게 변했는가? 그건 잘 모르겠다. 적어도 예술점이라는, 뭘 채점하겠다는 건지도 마땅찮은 항목이 사라진 것만은 좋은 변화인 것 같지만, 그게 또 따져보면 별로 그렇지도 않다.

이제 심판들은 사라진 예술점 대신 기본적인 스케이팅 기술, 동작과 동작 사이를 연결하는 안무동작, 기술을 수행하는 수준, 안무동작의 충실성, 표현력 등을 세부적으로 채점하여 프로그램 구성 점수(Program Component Score, 이하 PCS)라는 이름으로 내놓는다. 그러나 우습게도, 이 점수는 종종 PCS나 프로그램 구성 점수 따위의 알아듣기 힘든 용어 대신, 예술점이라는 사라진 옛 이름으로 불린다. 그 본질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김연아가 ‘지젤’과 ‘오마주 투 코리아’를 선보였던 2010-2011년 시즌. 시즌의 대미를 장식하는 세계선수권에서는 일본의 안도 미키 선수가 우승하며, 대지진으로 신음하는 일본 국민들에게 작은 선물을 안겨주었다. …

뭐 이렇게 아름다운 스토리로 기억하고 있으면 좋으련만,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같은 시즌에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안도 미키를 누르고 미국의 알리샤 시즈니 선수가 우승했는데, 이에 두 선수의 그랑프리 파이널 – 세계선수권 사이 PCS 점수 추이를 비교해 보면…

채점 변화

알리샤 시즈니는 두 대회 모두에서 점프를 한 번씩 잘못 뛰었다. 두 대회에서 그녀가 얻은 PCS는 약 61점. 세계선수권에서 약간 낮아지긴 했으나 따지고 볼 정도로 큰 변화는 아니다.

반면 안도 미키는 그랑프리 파이널에서에 비해 세계선수권에서 PCS가 무려 6.4점이나 오른다. 그랑프리 파이널 때 대회를 망치기라도 했던 것일까? 혹 세계선수권에서 갑자기 엄청난 연기를 펼친 것일까? 오히려 반대다.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모든 점프를 실수 없이 해 냈지만 세계선수권에서는 오히려 점프 하나를 망쳤다. 프로그램이 바뀌었나? 같은 프로그램이다. 그런데도 수 개월만에 그의 PCS 점수만이 저렇게 급격히 높아진 것이다. 김연아가 올림픽에서 압도적인 점수차로 우승하는 바람에 좀 희석된 바가 있는데, 원래 피겨스케이팅은 1~2점 차이로 순위가 갈리는 스포츠다.

안도 미키가 거미를 형상화한 옷을 입고 있다
안도 미키의 아름다운 예술성

예술점에서 PCS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그 채점의 모호성은 여전하다.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점수가 책정되고 있는지는, 며느리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이름값에 따라 늘어서는 점수임을, 또한 강대국 선수가 경기를 망쳤을 때 쿠션처럼 이를 완충시켜주는 장치임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엉망인 채점

그렇다면 기술 점수는 사정이 좀 나을까. 6.0점 만점으로 뭉뚱그려 채점하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세부적인 항목을 하나하나 분석하며 점수를 매기니 말이다. 그런데 그도 별로 그렇지가 않다. 올해 4대륙 선수권이란 대회에서는 일본의 선수 아사다 마오가 우승을 차지했다. 그것도 200점을 넘는 높은 점수로 우승함으로써, 한국 언론은 아사다 마오가 김연아의 올해 시즌 기록을 뛰어넘는 점수로 우승했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아래는 그 채점표다.

아사다 마오 4대륙 프로토콜

굳이 모두 읽을 필요는 없지만, 혹 궁금하다면 대강의 읽는 법을 ‘빙판에서 귤을 까먹어도 김연아가 이길까’ 라는 글에서 소개하고 있으니 그쪽을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채점표는 피겨스케이팅에 대해 잘 모르는 문외한이 보기에도 대단히 기괴한데, ‘잘못된 기술’로 판정된 세부 항목에 감점이 없음은 물론 오히려 가산점까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채점표의 < 표시는 ‘점프에서 회전을 완전히 해내지 못했다’는 뜻인데, 2A+3T< 라는 점프에 오히려 가산점 0.07점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무려 네 명의 심판이 가산점을 주었을 뿐 아니라, 한 명은 2점이나 되는 가산점을 주고 있다. (가산점은 3점이 최고치다.)

또 채점표의 e 표시는 ‘점프를 뛸 때 규정된 날이 아닌 다른 날을 이용해서 뛰었다’는 뜻인데, 3Lz(e)라는 점프에는 고작 -0.3점의 감점만이 주어졌을 뿐이다. 심지어 한 명은 1점의 가산점을 주기까지 했다. 이렇게 아사다 마오가 ‘잘못 뛴’ 3Lz(e)에서 얻어가는 점수는 무려 5.7점으로, 이는 플립, 룹, 살코, 토룹 등 그 어떤 3회전 점프의 기초점보다도 높은 점수다.

아사다 마오와 죠죠 패러디
사실 스탠드가 한 점프를 대신 채점한 것이므로 저 점수는 정당합니다.

보다 자세한 기술적 분석은 보다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코치나 해설위원 등에게 넘기기로 하고, 어쨌든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이 스포츠가 ‘세부적인 채점’을 통해 극복해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기술을 잘못 구사했다고 표시는 되어 있지만 어쨌든 가산점이 주어진다. 이 채점표에서 선수가 정확히 뛴 점프는 7개 중 단 2개 뿐이지만, 역대급의 점수를 받아가며 우승한다. 굳이 규칙을 세세하게 적용하지 않아도, 이미 스포츠의 판정이라 볼 수 없는 수준이다.

 

올림픽 헌장: 올림픽은 개인간의 경쟁일 뿐이다

귀찮아서분량의 한계 때문에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 경우만 예로 들긴 했지만, 비단 저 두 판정만이 문제인 것은 결코 아니다. 한 번만 대회를 열어도 이상한 판정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온다. 잘못 뛴 점프를 그냥 넘어가는 경우, 잘못 뛰었다고 표시는 되어 있는데 거의 감점이 되지 않는 경우 등, 문외한이 채점표를 들여다봐도 기이하게 여겨질 정도다.

그렇다면 왜 이런 엉터리 채점이 이루어지는가? 많은 사람들은 피겨스케이팅에 정치적 스포츠라는 오명을 붙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한국의 많은 팬들은 피겨스케이팅을 후원하는 기업의 과반이 일본 기업임을 지적하며, 일본의 로비가 이런 엉터리 채점을 낳았다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물론 바다 건너에서는 일본의 많은 팬들이 삼성 등의 로비로 김연아가 도에 지나친 점수를 받고 있다는 음모론을 마찬가지로 제기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정말 로비가 존재하는지, 로비가 존재한다면 어떤 나라의 로비가 더 강하고, 누가 그 로비의 덕을 받고 있는지는 여기서 드러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그런 음모론이 횡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스포츠가 처한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스포츠인들의 땀과 노력의 경쟁 대신, 국가와 로비가 끼어드는 기묘한 마당이 된 것이다.

다시 2002년으로 돌아가 보자. 우승 후보로 꼽힌 캐나다 팀과 러시아 팀, 동구권과 서구권으로 완전히 갈린 심판 판정. 러시아 팀을 1위로 꼽았다는 이유로 경기가 끝나자마자 판정 시비의 중심이 된 프랑스 심판에 이르기까지. 판정 시비가 사실이었든 거짓이었든, 이건 그 자체만으로도 이상하다. 대체 서구권과 동구권의 판정은 어떻게 그렇게 칼로 나누듯 갈라질 수 있었는가? 왜 프랑스 심판은 그렇게 곧바로 의혹의 대상이 되었는가? 정말 판정이 잘못된 것이라면, 왜 다른 동구권 국가의 심판들에게는 의혹이 제기되지 않았나? 그 무엇보다, 로비가 있었으리란 의혹은 왜 기정사실처럼 퍼져나갔는가? 실로 정상적인 게 하나도 없었다.

책 '냉전'의 표지
얼음 위니까 냉전이나 계속 합시다?

제도가 모조리 바뀌었지만, 문제는 여전하다. 여전히 채점은 구체적이지 못하며, 세부적인 항목을 나누어 채점한다고 말은 하지만 그만큼 세부적으로 엉터리인 채점에는 그 어떤 공신력도 없다. 덕분에 흑인은 빙판에서 대접받지 못하며, 약소국의 선수들은 만나보기조차 어렵다. 불공정한 채점이 그들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는 지적은 하도 많이 나와 이제 지겨울 정도다. 거기에 로비와 편파 판정 시비는 대회가 끝날 때마다 나오는 고정 레퍼토리라 이젠 신기할 것도 못 된다. 비록 제도는 바뀌었지만, 스캔들을 낳았던 사람들, 변질된 올림픽 정신, 그 모든 것들은 여전히 그대로다. 어쩌면 아무 것도 변할 수 없다는 게 당연한 귀결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이 오래된 스포츠들을 생각한다. 로비와 국가간의 알력, 정치가 레슬링을 올림픽에서 퇴출시켰는가? 강력한 의심에도 불구하고, 이를 증명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하계올림픽에서 가장 유서 깊은 종목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그 사실 뿐이다.

그렇다면, 피겨스케이팅은 어떤가? 로비와 국가간의 알력, 정치가 피겨 스케이팅을 더럽히고 있는가? 강력한 의심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증명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이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유서 깊은 종목은 이미 사라진 것이나 매한가지라는 사실 뿐이다. 흔한 편파 판정 시비를 넘어, 아예 심판의 신뢰도 자체가 무너져버린 이 종목에 여전히 피겨스케이팅으로 불릴 자격이 남아 있을까? 선수들의 땀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확언할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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