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용태: 바이오빛 대표 김용태입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연구 교수로 있다가, 8년 전 펩타이드를 아이템으로 창업했습니다.
이승환: 펩타이드가 뭔가요?
김용태: 우리 몸을 이루는 기본적인 구성 성분이 ‘아미노산’입니다. 수십 개의 아미노산이 특정 형태로 연결된 걸 ‘펩타이드’라고 해요. 펩타이드는 종류에 따라 다양한 효능을 발휘하는데, 소량으로도 효능이 뛰어나서 의약품, 화장품 등 다분야에서 사용되고 있죠. 문제는 안정성이 매우 떨어져요.
이승환: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게, 펩타이드가 다시 아미노산으로 분해가 된다는 건가요? 아니면 효과 자체의 지속성이 낮다는 건가요?
김용태: 둘이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펩타이드는 아미노산이 특정 형태로 계속 연결되어 구조를 유지해야만 효과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어요. 그런데 산소 접촉 등 외부 요인에 의해 이 구조가 쉽게 무너집니다. 자연히 효능도 떨어지죠.
이승환: 아무리 효과가 좋아도 구조가 금방 무너지면 무쓸모 아닌가요?
김용태: 그래서 기존에 펩타이드 의약품들은 대부분 주사제 형태였어요. 바로 신체에 주입하면 구조가 무너지기 전에 효과를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박사과정부터 펩타이드를 구조적으로 안정화시킬 수 있는 기술을 연구했어요. 이게 상업적으로도 큰 잠재력을 가질 것으로 기대하고 창업한 거죠.
이승환: 펩타이드가 되게 다양하잖아요. 그러면 다양한 구조에 따라 안정화 기술도 다른가요? 아니면 몇 가지 표준 방법으로 안정화가 가능한가요?
김용태: 특정 펩타이드에 맞춤 적용하는 기술도 있지만, 그보다는 여러 펩타이드에 범용적으로 적용하는 기술 연구가 훨씬 많습니다. 가장 많이 쓰이는 방식은 고분자를 이용해 나노구조체를 만들어 펩타이드 유지 시간을 높이고, 원하는 신체에 전달된 후 녹아 효능을 발휘하는 거죠. 그런데 이런 기술의 문제가 몇 있는데요. 첫 번째는 정말 원하는 곳에서 잘 녹아져 나오냐는 거고, 두 번째는 독성으로 인한 염증이나 면역거부반응 문제가 있어요. 아무래도 고분자가 원래 신체 안에 있는 물질은 아니니까요.
이승환: 바이오빛은 이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요?
김용태: 제가 하는 기술은 ‘프로테인 모디피케이션(Protein modification)’이라고, 쉽게 말해 단백질에 펩타이드를 붙이는 거예요. 이 기술은 펩타이드 구조를 거의 가리지 않고 대다수 펩타이드에 적용 가능하고요. 또 펩타이드를 이루는 아미노산도 단백질이잖아요? 원래 신체 안에 있는 단백질이니 신체에도 안전하지요.
이승환: 그럼 이 안정화된 펩타이드가 하는 역할이 뭔가요? 기능이 다양할 것 같은데…
김용태: 항균/항바이러스 펩타이드가 저희 핵심 물질입니다. 사람, 동식물 모두 외부 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항균펩타이드를 가지고 있어요. 이걸 활용한 겁니다. 항균펩타이드는 외부 균이나 바이러스를 죽이기도 하고, 면역반응을 통해 몸의 염증을 줄여주기도 하죠.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는 물질이기 때문에 외부 균은 죽이지만 우리 몸에는 안전한 겁니다.
이승환: 안전하면서도 오랫동안 지속되는 항균인 거네요.
김용태: 네. 안전한 항균을 구현하기 위해 ‘바이오 항균 코팅’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항균’ 제품을 너무 많이 쓰잖아요. 코로나 이후에는 더 그렇구요. 그런데 균을 죽이기 위해서 쓰는 항균제품이 실제로 우리 몸에까지 유해한 경우가 꽤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만 봐도 알 수 있죠. 10여 년 동안 피해자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어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게 바이오빛의 목표입니다.
이승환: 근데 원천기술을 가진 것과 돈을 버는 건 또 다른 일이지 않나요? 주변에 벤처 창업한 교수님들 생고생하는 경우 많던데.
김용태: 아… 이게 어렵죠. 과학자는 연구를 잘하고 기술을 잘 만드는 사람이지, 상업화는 다른 일이거든요. 스타트업에서 ‘시장’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원천기술은 그걸 어느 시장에 쓰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제가 처음 적용하려고 했던 분야는 화장품 쪽이었어요.
이승환: 뷰티요? 시장 너무 좋은 거 같은데요.
김용태: 그게 아모레퍼시픽에서 저희가 투자를 받았기 때문이기도 해요. 창업 초기, 아모레퍼시픽이 주관하고 퓨처플레이가 진행한 ‘아모레 테크업플러스’라는 행사가 있었어요. 기술력 있는 200여 개 스타트업들이 모여서 참여한 행사였는데, 저희가 최종 3개 팀으로 뽑혀 퓨처플레이랑 아모레퍼시픽 투자를 받았고요. 이후 자연히 TIPS까지 연결됐습니다.
이승환: 그리고 자연히 아모레퍼시픽과 협업으로 연결된 거군요.
김용태: 네. 아모레퍼시픽에서 그러려고 만든 행사니까요. 여자분들 쿠션에 쓰는 ‘퍼프’ 있잖아요? 이것도 펩타이드를 잘 쓰면 굉장히 좋아요. 퍼프를 얼굴에 바르고 다시 넣고 할 때마다 피부와 공기 중에 닿고 오염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 회사 바이오빛, 아모레퍼시픽, 퍼프 납품 업체와 3자 계약까지 마치고 시제품까지 만들었죠.
이승환: 시작부터 대박인데요?
김용태: 근데 마침 그때 사드 배치로 인한 한한령이 터졌어요. 아모레뿐 아니라 화장품 업계 전체가 가라앉았죠. 그러면서 신규 프로젝트가 완전히 무산됐어요.
이승환: 눈물 났겠네요…
김용태: 그래도 그때는 창업 초기라 기술력 하나는 우리가 인정받았다는 자부심이 있었죠. 아모레퍼시픽이 택했다고 하면, 전 세계 어디든지 관심을 가질만한 거니까요. 그러면 우리는 잘하는 기술개발을 계속하자. 그러다 우연히 미국 최대 안과 관련 업체 ‘VSP’와 연결됐어요. 여기서 안경렌즈 항균 코팅 의뢰를 받았습니다.
이승환: 오, 안경렌즈에 항균을 얹는 건가요…?
김용태: 맞습니다. VSP는 우리가 잘 아는 Ferragamo, Calvin Klein, Nike 등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회사입니다. 여기에서 저희 기술을 활용해 항균 펩타이드를 안경 렌즈에 코팅해서 항균 기능을 부여하기로 했죠. 렌즈에 항균 코팅을 하면 안경이나 선글라스를 장기간 착용할 때 발생하는 안구감염에 도움이 되거든요.
이승환: 되면 대박이겠네요. 미국 최대 업체와 거래하게 되는 것이니.
김용태: 맞습니다. 그런데 이게 굉장히 어려운 도전이었어요. 렌즈면 빛이 투명하게 투과해야 하잖아요? 투명도가 99% 이상 나와야 하는데, 이러려면 은(Ag) 입자 사이즈를 엄청 줄여야 되는 거예요. 은 입자 사이즈가 조금만 커지면 haze 현상이라고, 렌즈가 뿌옇게 됩니다.
이 때문에 렌즈 겉부분에만 나노 사이즈 은 입자를 코팅하는데, 이러면 항균 기간이 굉장히 짧아요. 항균 펩타이드의 경우, 크기가 나노 단위이기 때문에 코팅을 해도 투명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항균 지속력이 있어서 투명도가 나오면서도 항균 효과가 오래 유지되는 것이죠. 이런 점을 VSP에서 좋게 봤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출시를 못 했어요.
이승환: 이번엔 또 뭔가요…
김용태: VSP 미국 공장에서 양산테스트까지 완료했는데, EPA에서 저희 항균 렌즈에 들어가는 펩타이드를 두고, 이게 신고된 물질이냐고 질의가 들어왔어요. 미국에서 항균 물질은 EPA, 한국으로 따지면 환경부의 규제를 받더라고요. 저희는 이거는 바이오 물질이다, 아미노산으로만 연결된 안전한 물질이다… 이렇게 답했죠. 그런데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 바이오빛 김용태 대표 [email protected]
이승환: 별 문제 없을 거 같은데 왜 통과되지 않은 거죠?
김용태: 기본적으로 미국 환경부, EPA에서 이야기하는 항균 물질이라는 거는 다 농약이에요. 저는 따졌죠. 이건 단백질이지 화학 물질이 아니다, 논문 자료부터 해서 여러 자료를 다 보냈어요. 하지만 EPA는 일단 모든 항균 물질은 등록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그 비용만 최소 몇억이었고, 시간도 3년 이상 걸려요. 돈이야 어찌 해도, VSP는 당장 제품화를 원했으니 계약이 무산됐죠.
이승환: 눈물 나겠네요…
김용태: 그사이에 놓친 기회도 많아요. 효성 TNS가 미국 ATM기 보급률 1위로 점유율이 50%가 넘는 회사입니다. ATM기 화면부터 손에 닿는 키보드까지 전면 항균 코팅하는 기술이 필요해서 저희를 먼저 찾아왔었어요. 미국 뿐 아니라 러시아, 중동까지 수출을 논의해서, 아주 저온부터 사막과 같은 뜨겁고 건조한 조건에서의 성능평가까지 완료했어요. 테스트 통과하고 유통 계획까지 세웠지만, EPA 허가를 받기까지 너무 긴 시간이 필요해서 무산됐어요.
이승환: 미국에서 계속 큰 기회를 잡을 뻔하다 놓쳤네요;;; 결국 인허가 때문에 항균 코팅 사업을 접게 됐나요?
김용태: 고민 끝에, 결국 인허가를 받고자 도전했습니다. 주변에서 모두 미쳤다고 했습니다. 인허가는 공인임상시험기관(GLP)에서 진행해야 하는데, 3년 이상의 시간과 10억 이상의 돈을 투자해야 하거든요. 진행한 지 4~5년째인데 이제야 가닥이 잡힙니다.
이승환: 진짜 고난의 행군이군요… 새로운 물질 하나 만들고 등록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네요.
김용태: 그래도 뿌듯한 게, 전 세계에서 항균 펩타이드를 등록한 회사가 우리가 최초예요. 각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아직 등록된 항균 펩타이드는 아직 없거든요. 사업 기회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에서도 계속 연구개발 의뢰가 들어오고 있고, 자동차나 공기청정기 필터, 마스크, 키오스크 등 적용 범위가 매우 광범위합니다. 항균물질이 기존에 있음에도 저희에게 계속 의뢰가 오는 이유는 안전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저희 물질이 필요한 거겠죠.
이승환: 그러면 바이오빛의 기술을 쓰면 펩타이드의 효과가 얼마나 유지되는 걸 목표로 하나요?
김용태: 보통 항균제가 뿌리면 금방 효과가 없어져요. 사실상 닦을 때 없애고 마는 거죠. 저희는 이미 렌즈 업체 VSP, 효성 TNS, 3M 등과 기술 평가는 마쳤잖아요? 다들 1년 정도 유지 가능한지 테스트했고 통과됐어요. 심지어 안정적으로 생산 가능한지 양산까지도 말이지요.
이승환: 대체 10년 가까이 어떻게 버티며 물질 인증까지 간 거죠.
김용태: 초기에는 아모레퍼시픽과 퓨처플레이의 투자금으로 버티다가, 중간에 중기부에서 빅3 창업기업이라고 반도체, 미래차, 바이오, 세 가지 분야의 미래선도 국내기업을 뽑는 프로그램에서 바이오헬스 유망기업으로 선정됐어요. 이때 받은 지원금과 국가 R&D자금으로 기술개발과 인허가를 위한 비용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진짜 10억 넘게 들였고, 지금은 미국 EPA, 유럽 BPR, 한국 환경부, 이렇게 다 등록 예정입니다.
그 외에도 화장품 원료로 펩타이드를 판매하기도 했어요. 항균, 항감염쪽으로 연구를 하다보니, 탈모나 트러블 방지, 아토피와 같은 피부면역질환에 대한 효능 스터디도 깊게 했습니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국내 대기업 반려동물 계열사에 원료를 판매하기도 하고, 로레알, P&G와 같은 글로벌 회사와 원료 적용을 위한 논의 중에 있습니다. 인허가를 준비하는 사이에 화장품, 동물의약외품을 5종이나 만들었어요.
이승환: 그나저나 사업은 어쩌다 시작하게 되셨나요?
김용태: 첫 직장은 유한양행이었어요. 제가 학부 마치고 취업할 당시, 국내 제약회사들이 다 카피약을 만들고 있었어요. 저는 철없는 마음에, 국내 1위 제약회사도 이러고 있구나, 다른 분야처럼 글로벌 경쟁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학부 졸업생이니 아는 게 없잖아요? 그래서 회사를 5년 정도 다닌 후 뒤늦게 석박사를 했습니다. 그래도 국내 1위 제약회사에서 제품 기획과 제작 경험이 있으니 잘 적응했어요. 이후 연구교수가 됐고, 연구 쪽에서는 인정받는 교수님들과 창업하게 된 거죠.
이승환: 8년 동안 개고생했는데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습니까?
김용태: 대기업 인수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어요. 대기업 바이오 계열사의 임원분이 단백질 쪽 연구하셨던 분이라 저희 기술을 바로 이해해주시더라구요. 투자 논의가 있었고 실사까지 완료되었는데, 제 욕심도 있고 대기업과 딜이 쉬운 것도 아니라 막판에 서로 갈 길을 가게 됐습니다. 박사 출신이다 보니 사업을 하면서 이런저런 시행착오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기술에 대한 확신이 있고, 그동안 다양한 기업들과 협업을 하다 보니 올 하반기부터 필터, 의료기기 등에 저희 펩타이드를 적용한 제품이 시장에 나올 겁니다.
이승환 : 코로나 특수가 다 지났는데 너무 아쉽지 않나요?
김용태: 코로나가 한번 오고 말 일이 아니에요. 요즘 기후위기 이야기가 많은데, 코로나도 박쥐에서 왔다고 하잖아요? 기온이 1도만 올라가도 박쥐들의 서식지가 훨씬 넓어져요. 사스, 메르스, 코비드19, 어차피 다 같은 코로나 종이거든요. 많은 과학자들이 이제 그런 질병들이 더 빠르게 올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 바이오빛의 다음 스텝은 무엇인가요?
김용태: 단기적으로는 공기청정기나 에어컨에 사용되는 필터에 항균 코팅을 적용하려고 합니다. 대기질 악화, 반려동물 증가,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 기후변화 등으로 항균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겁니다. 직접적인 호흡기와 연관된 만큼, 안전한 항균기술이 꼭 필요한 분야입니다. 저희 기술로 기여할 수 있는 바가 클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의료보건분야로 적용을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수술 후 사용되는 스킨 스테이플에 항균펩타이드를 적용해서 수술 후 감염 문제를 해결할 겁니다. 임상을 진행하고 있어서 빠르면 내년부터는 본격적 상용화를 예상하고 있어요. 바이오 기술로 보다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강한 바람이 부는 고층 빌딩 옥상이나 아파트, 그리고 바람이 센 지역에서는 태양광 패널처럼 소규모 풍력 발전기를 설치해 전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실 바람이 센 고층 빌딩의 경우 태양광 패널보다 더 지속적으로 전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지만, 풍차를 건물에 설치하기 어렵다 보니 현재까지는 널리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관련 스타트업 가운데 하나인 에어리바 (Airiva)가 꽈배기 같은 독특한 외형의 수직 풍력 발전기의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지난 2021년 디자이너 조 듀셋(Joe Doucet)이 개발한 모듈러 로타리 풍력 발전기는 여러 개의 수직 블레이드를 연결해 무한히 길이를 늘릴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두 개의 혹은 4개의 수직 블레이드를 연결한 모듈을 옆으로 붙여 길이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두 개짜리 모듈의 크기는 2.1×2.1×1.05m인데, 건물에 설치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서 그런지 일반 건물 한 층에 들어가는 높이입니다.
에어리바의 풍력 발전기는 작은 크기 덕분에 교량 아래나 건물 옥상 위처럼 좁은 공간에 설치할 수 있지만, 발전 용량 자체는 크지 않습니다. 8개 터빈 블레이드 기준으로 연간 2200kWh의 발전이 가능하다는 게 제조사의 설명입니다. 따라서 설치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가 결국 상업성을 좌우할 것으로 보입니다.
판매는 내년부터 시작할 계획인데, 소규모 건물풍 풍력 발전기가 성공할 수 있을지 결과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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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파의 성질을 이용하여 식품을 가열하는 조리 기구. 고주파 전기장 안에서 분자가 심하게 진동하여 발열하는 현상을 이용한다.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에어프라이어
가열한 공기를 골고루 쐬어 음식을 익히는 조리 기구. 주방 가전제품의 하나로, 기름을 덜 사용하여 튀김 요리를 할 수 있다.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방위산업체 레이선(Raytheon)은 레이더 부품을 공급하던 기업이었습니다. 그중에는 마이크로파를 생성하는 ‘마그네트론’이라는 부품을 연구하던 엔지니어 퍼시 스펜서(Percy .L. Spencer)가 있었죠.
그는 1945년 마그네트론을 실험하던 중 우연히 자신의 주머니 속 초콜릿이 녹은 것을 발견합니다. 이 현상이 마그네트론과 관련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마그네트론으로 달걀과 팝콘, 그리고 가재를 조리하기 위한 적정 주파수가 무엇인지 연구해서 특허를 내죠.
레이선 사는 스펜서가 발견한 이 현상을 적극적으로 이용했습니다. 그러던 중 스펜서와 함께 마그네트론을 연구했던 마빈 복(Marvin Bock)이 전자레인지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1954년 레이선은 레이더레인지(Radarange)라는 이름으로 1~3kW(오늘날 가정용이 700w)의 출력을 내는 대형 전자레인지를 상용화했습니다. 이 제품은 호텔, 레스토랑 등 영업용으로 판매되었죠.
1955년에는 타판(Tappan)에서 레이선의 라이선스를 구매해 최초의 가정용 전자레인지를 출시합니다. 하지만 약 1,300달러라는 높은 가격과 더불어 벽걸이 형태로 출시되는 바람에 일반 가정에서 쓰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1967년이 되어서야 레이선의 자회사 아마나(Amana)에서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가정용 전자레인지를 출시했습니다.
1970년대 미국의 전자레인지는 아마나, 타판, GE 등이 시장을 주도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말부터 일본과 한국의 저렴한 제품에 밀리게 됩니다. 심지어 GE는 1980년 모든 전자레인지를 삼성에서 제조하기로 합니다.
1976년 삼성전자 임원이 미국에서 우연히 전자레인지를 봤습니다.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는 전자레인지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GE 전자레인지를 리버스 엔지니어링하여 1978년 첫 번째 시제품 ‘RE-7700’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하고, 1979년에는 전자레인지의 핵심 부품인 마그네트론을 자체 제작하는 데 성공했죠.
하지만 당시 국내에서의 전자레인지 보급량은 400여 대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평균 월급의 2배에 달하는 RE-7700의 가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냉동식품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시대적 배경 때문이기도 합니다. 전자레인지의 용도가 애매했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래서 전자레인지는 내수가 아닌 수출에 중점을 뒀어요.
삼성전자는 1979년 파나마에 340대를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1987년에는 영국에 공장을 설립해 빠른 속도로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합니다. 금성사도 1982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 전자레인지를 수출했고, 1983년에는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해 1988년 미국에서만 210만 대를 팔며 세계 시장 점유율 19%로 1위를 기록하죠.
하지만 그해 전자레인지로 조리하면 식중독을 유발하는 리스테리아균이 살균되지 않는다는 소문이 유럽에 퍼지면서 큰 타격을 입습니다. 이러한 악재 속에서 금성의 세계 시장 점유율 순위는 4~5위로 하락했죠. 하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저렴한 가격과 뛰어난 성능으로 일본과 점유율 1위를 다툴 만큼 다시 성장했습니다. 우리나라 전자레인지가 너무 잘 팔리자 1996년 유럽 연합에서는 한국산 전자레인지에 9~24.4%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도 했어요.
전자레인지의 위험성에 관한 이야기는 1973년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소비자 연합회에서 ‘전자레인지에서 방사능이 나올 수 있으니 구입하지 말라’고 권고한 것이죠. 물론 소비자 보고서를 통해 매년 전자레인지를 테스트하면서 몇 년 후에는 이런 두려움이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소비자 단체를 통해 1989년 방사능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 나왔습니다. 국립전파연구원은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전파가 건강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지도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실제로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해도 전자레인지의 문을 닫으면 밖으로 나오는 전파량이 아주 적어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 힘들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실제로 전자레인지가 인체에 해로웠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GE에서 출시한 전자레인지 문틈에서 915MHz의 주파수가 새어 나와 리콜한 적이 있었거든요.
에어프라이어는 오븐에 팬을 장착해 뜨거운 열을 대류시키는 장치를 의미합니다. 크기가 크면 컨벡션 오븐(Convection Oven)이라고 구분하기도 하죠. 팬이 장착된 오븐은 1914년 전기 공기 압축 오븐(Electric Air Pessure Oven)이라는 이름으로 테크니컬 월드 매거진에 등장합니다. 하지만 개인 발명품에 그쳤죠.
최초의 상용품은 1945년 윌리엄 맥슨(William L. Maxson)에 의해 개발됩니다. 윌리엄 맥슨은 군수품을 발명해 납품하는 일을 했습니다. 다연장포, 자신의 위치를 계산해 주는 비행기용 내비게이터 등을 개발했죠. 그가 발명한 군수품 중에는 냉동식품도 있었어요. 당시는 전자레인지가 발명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맥슨은 냉동식품을 데우는 기계도 직접 만들게 됩니다. 그게 바로 에어프라이어의 시작이 되는 회오리 오븐(Whirlwind Oven)이었죠.
회오리 오븐은 오븐 뒤에 선풍기를 설치한 형태로 뜨거운 공기를 순환시키는 장치였습니다. 이 기계는 일반 오븐보다 2배 빠르게 음식을 데울 수 있었고, 모든 곳을 균일한 온도로 데울 수 있었어요. 회오리 오븐도 군수품으로 납품되면서, 미 해군 항공 수송기에서는 전쟁 중에도 차가운 샌드위치와 전투식량이 아닌 스테이크와 비프스튜를 먹을 수 있게 되었죠.
전쟁이 끝나자 맥슨는 일반 시장에 진출할 계획을 세웁니다. 냉동식품을 슈퍼마켓에 판매하고, 회오리 오븐을 가정용으로 판매할 계획을 세우죠. 1947년에는 일반 항공기에도 도입합니다. 하지만 그해 윌리엄 맥슨이 사망하고, 아무도 그의 회사를 인수하지 않아 계획은 사라지고 맙니다.
맥슨이 사망하고 20년이 지난 후에야 일반 시장에 회오리 오븐(에어프라이기)이 등장합니다. 맥슨의 오븐은 최고 온도가 약 93도에 불과했는데, 노르드스코그 컴퍼니(Nordskog Company)에서 더 높은 온도를 낼 수 있는 회오리 오븐을 만들어 냈죠.
비슷한 시기 멜리어블 아이언 레인지(Malleable Iron Range)에서는 가정용 오븐 크기의 회오리 오븐을 제작했습니다. 하지만 개량된 제품들도 2000년대까지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냉동식품을 데우기 위한 역할은 전자레인지가 꽉 잡고 있었기 때문이죠.
200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회오리 오븐이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우선 2011년 필립스(Philips)에서 에어프라이어(Air Fryer)라는 이름의 제품을 출시합니다. 네, 바로 여기서 에어프라이어라는 이름이 굳어졌죠.
에어프라이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필수품 취급을 받지는 않았어요. 비싼 가격도 문제였지만, 쓰임새가 애매했기 때문이었죠. 당시만 해도 에어프라이어는 ‘기름 없이 튀기는 건강한 튀김기’라는 포지션을 내세웠는데, 막상 에어프라이어는 오븐이었기 때문에 튀김기를 기대하고 산 소비자들에게 실망을 안긴 것입니다.
그러다가 에어프라이어가 튀김기가 아닌 소형 오븐이라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 사이에서 레시피가 활발히 공유되기 시작하면서, 에어프라이어가 인기를 끌게 된 거죠.
전자레인지와 에어프라이어 중에 하나만 산다면 어떤 걸 사야 하나요?
인터넷에 종종 올라오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은 더 이상 안 해도 됩니다. 전자레인지와 에어프라이어를 합친 제품이 이미 출시되었거든요. 2018년 SK매직에서 ‘오븐 레인지’라는 이름으로, 2021년 삼성전자에서는’비스포크 큐커’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제품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물론 가격은 에어프라이어와 전자레인지를 각각 사는 것보다 좀 비싼 30만 원대네요.
전자레인지와 에어프라이어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둘 다 불 없이 음식을 조리하는 기기라는 점,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만들어졌다는 점이 있죠.
전자레인지와 에어프라이어 모두 기계 자체가 발명되었을 때보다 기기를 활용할 수 있는 냉동식품과 레시피가 등장했을 때 유의미해졌습니다. 이 모습은 오늘날의 플랫폼 산업과도 비슷해 보입니다. 플랫폼의 기능 그 자체보다, 플랫폼을 구성하는 콘텐츠의 양과 질이 더욱 중요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죠.
결국 옛날이나 지금이나, 제조업이나 IT 산업이나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가 핵심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듯합니다.
원문: 사소한 것들의 역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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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의 정확한 가치는 원석의 절단 상태, 색상, 크기(“캐럿”), 흠 유무에 따라 결정된다. 투명하고 무겁고 무색에 가까울수록, 그리고 완벽하게 커팅되었을수록 더 좋은 다이아몬드다.
투자자에게도 다이아몬드는 매력 있는 상품이다. 역사적으로도 꾸준한 투자 수익을 제공해 왔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가격 데이터는 없지만, 2015년 발표된 틸부르크 대학의 뤽 레네부그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매년 수천 건의 경매를 분석한 결과 1999년부터 2012년까지 평균 수익률이 주식과 부동산에 필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이아몬드 보유자들은 연간 8% 정도의 높은 수익을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이아몬드의 꾸준한 수익률은 엄청난 변동성으로 바뀌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오랫동안 다이아몬드 공급을 독점해 온 컨소시엄 드 비어스가 최근 2~4캐럿 원석 가격을 40% 인하했다고 한다. 2~4캐럿 원석은 1~2캐럿의 약혼반지로 만들 수 있어 인기가 높았다. 또한 이 회사는 수요를 늘리기 위해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라는 상징적인 광고 캠페인을 다시 실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과거에 다이아몬드가 안정적인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꾸준한 수요덕분이었다. 금에 대한 투자 사례와 마찬가지로, 다이아몬드는 경제가 불확실해지는 시기에 강력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주요 용도가 주얼리이기 때문에 호황기에도 가격이 상승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가장 주요한 원인은, 독점적인 공급이었다. 한 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드 비어스는 이 보석의 생산을 지배해 왔다. 레네부그가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시장 구조는 두 가지 방식으로 꾸준한 가격 상승을 촉진해 왔다.
드 비어스는 1980년대에 전 세계 다이아몬드 공급량의 80%를 점유했다. 이후로는 러시아의 라이벌 기업 알로사 등의 경쟁 업체들이 점유율을 잠식해 나갔다. 현재 드 비어스는 전 세계 다이아몬드 공급량의 3분의1만 생산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실험실에서 나타났다. 회사들은 땅에서 원석을 파내는 대신, 탄소에 압력을 가해 육안으로 보기에도 똑같은 인공 보석을 생산하고 있다. 인공 보석은 1980년대부터 사용 가능했지만, 2018년까지만 해도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몇 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후 몇 년 동안 실험실에서 합성한 보석이 더 많이 시장에 출하되었고, 시장 점유율도 10%에 이를 정도로 증가했다.
드 비어스가 이러한 변화를 우연찮게 앞당겼을 수도 있다. 이 회사는 실험실에서 합성한 다이아몬드가 채굴한 다이아몬드 가격의 약 80%에 불과했던 2018년에 최저가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두 가지 유형의 보석을 차별화하여, 실험실에서 합성한 보석의 매력을 줄이는 것이었다.
뉴욕에 본사를 둔 약혼반지 판매 업체 클리어 컷은 게릴라 마케팅 전술을 도입해 같은 목표를 달성했다. 클리어 컷은 1만 달러 이상의 반지를 구매하는 고객에게 실험실에서 합성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무료로 제공하며, 낯선 곳을 방문할 때 ‘여행용 반지’로 사용하도록 했다.
현재 실험실에서 합성한 다이아몬드는 채굴한 다이아몬드 가격의 20~30% 가격에 불과하다. 드 비어스는 실험실에서 합성한 다이아몬드의 공급이 가속화됨에 따라 두 종류 보석의 가격 격차가 계속 벌어져 새로운 사람들이 약혼반지로서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근의 가격 변동으로 미루어 볼 때, 실험실에서 합성한 다이아몬드의 여파로 채굴한 다이아몬드 가격은 급락했다. 이 전략은 역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시장의 구조적 변화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다. 미국 커플들은 약혼하기 전 평균적으로 3년 동안 데이트를 하는데, 2020년에는 코로나19 덕분에 미래의 남편이나 아내를 만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비정상적으로 적은 수의 사람들이 약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강력한 다이아몬드 카르텔이 공급을 줄임으로써 완화할 수 있는 종류의 변동성이다. 가격 인하는 시장 지배력이 약화되었다는 분명한 증거다. 프로포즈를 하거나 새로운 주얼리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주얼리 투자를 고려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다.
원문: 피우스의 책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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