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 https://ppss.kr 필자와 독자의 경계가 없는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Thu, 19 Jun 2025 02:44:08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5.8.10 https://ppss.kr/wp-content/uploads/2015/07/ppss-100x100.png ㅍㅍㅅㅅ https://ppss.kr 32 32 국민의 힘 말실수, 심리학이 설명해 드립니다 https://ppss.kr/archives/269723 Thu, 19 Jun 2025 02:44:08 +0000 https://ppss.kr/?p=269723

제 구박받는 거 멈춰주기 위해서라도 제발 2번 이재명 후보 찍어주셔야 한다.

  • 안철수/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

  • 손학규/전 바른미래당 대표:

이재명 대통령을 모시고 확실하게 대한민국을 지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필승!

  • 한기호/국민의힘 의원

이번 선거에 대해서 아예 투표하지 않겠다는 분들이 굉장히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이재명의 진심, 아니 김문수 후보의 진심…

  • 나경원/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

이번 선거 국면에서 국민의힘 인사들이 한 말들이다. 처음에는 해프닝으로 웃고 넘어갔다. 그러나 발언이 한두 번이 아니다. 손학규 전 대표, 안철수, 나경원, 한기호 의원까지… 정치 베테랑들이 줄줄이 상대 후보를 지지하는 듯한 말실수를 반복했다. 실수의 반복에는 언제나 구조가 있다.

이쯤 되면 물어야 한다. 왜 하필 ‘이재명’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자주 튀어나오는가? 정치 공방이 치열할수록, 말실수는 단순한 언어의 미끄러짐이 아니라 심리의 노출이 된다. 이를 설명해주는 몇 가지 심리 이론이 있다.

 

아이러니 처리 이론(Ironic Process Theory)

  •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게 된다.

하버드 심리학자 다니엘 웨그너는 유명한 실험을 했다.

흰 곰을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자 사람들은 흰 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실험은 뇌가 어떤 생각을 억제하려 할수록 오히려 그 생각을 더 떠올리게 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이를 아이러니 처리 이론, 생각 억제 효과(thought suppression effect)라고 부른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힘은 이재명 후보에 대한 언급을 통제하고, 비판의 수위를 조율하고, 칭찬으로 오해받지 않도록 말조심을 해야 하는 상황에 몰려 있었다. 하지만 이런 억제 시도는 오히려 ‘이재명’이라는 이름을 뇌리에 각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말을 꺼내는 순간, 가장 강하게 떠오른 단어는 오히려 피해야 했던 이름, 바로 이재명이었다.

 

역설적 긍정 강화 효과(Paradoxical Priming)

  • 반복된 비판은 오히려 이름을 강화시킨다.

특정 단어를 자주 들으면 그 단어는 기억 속에서 더 빨리 인출된다. 문제는 그 단어가 비판의 맥락에서 등장했더라도, 단어 자체는 자극 빈도 효과(frequency effect)로 인해 인지적 우선권을 얻게 된다.

지속적으로 “이재명은 안 된다”, “이재명은 문제다”, “이재명은 위험하다”라고 말했지만, 결국 청자나 화자 모두의 뇌에서 가장 많이 들리고 말한 이름은 “이재명”이다. 비판은 오히려 언어적 활성화 수준을 높이고, 의도와 무관하게 이재명이 자동으로 먼저 떠오르며, 발화 실수로 연결될 확률도 커진다.

 

자동화된 언어와 인지 과부하(Cognitive Overload)

  • 말이 생각보다 먼저 나간다.

우리는 빠른 사고(시스템 1)와 느린 사고(시스템 2) 두 가지 시스템으로 생각하고 말한다.

  1. 빠른 사고: 익숙하고 자동적인 반응 (예: 언어, 습관, 인상)
  2. 느린 사고: 논리적이고 통제된 사고 (예: 말 실수 수정, 메시지 조율)

선거철 연설이나 인터뷰 상황은 인지 부하가 극심한 순간이다. 메시지를 공격적으로 설계해야 하고, 상대 후보를 비판하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아야 하고, 당 내부 노선을 고려한 표현 조절도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느린 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가장 익숙한 이름이며 가장 반복적으로 떠올랐던 단어인 이재명이 무의식적으로 먼저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는 단지 기억에 남아서가 아니라, 언어 시스템이 자동 완성하듯 익숙한 단어를 먼저 발화한 결과다.

같은 맥락에서 정서적 긴장과 정서 역설(affective interference)이 발생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감정적 억제는 오히려 언어의 부조화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긴장 상태에서 사람은 감정 표현을 억누르려 하지만, 그 억제가 인지적 자원을 소모한다. 이로 인해 언어-의도 간 일치가 무너지고, 정서적으로 억눌렀던 말이 돌출된다.

이재명 후보에 대해 강한 반감, 정치적 긴장, 감정적 대비를 내면에서 조절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 감정이 말로는 부정되어야 하는데, 실제 언어에서는 이상한 긍정의 형태로 나타나는 부조화가 발생한다.

 

개념 간 활성화 모델(Spreading Activation Model)

  • 연상망에서 가장 활성화된 개념이 먼저 튀어나온다.

우리의 기억과 언어는 개념 네트워크로 저장되어 있다. 특정 단어가 떠오르면 그 주변에 연결된 개념들이 함께 활성화된다. 선거 유세장에서 “후보”, “정책”, “대통령”, “정권 교체” 같은 단어가 언급되면, 그 주변에서 가장 강하게 연상되는 이름이 “이재명”일 수 있다. 이는 그가 정치 담론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로 떠올라 있기 때문이다.

즉, 자당 후보를 말하려다가도 뇌의 네트워크에서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이재명”이라면, 그 이름이 말 앞머리에 실수처럼 튀어나올 가능성도 커진다. 이건 기억력 문제도, 실수도 아니다. 가장 두드러진 개념이 인지적 우선권을 가진다는 구조적 문제다.

Image by benzoix on Freepik

 

말실수의 본질은 ‘실수’가 아니다

사람들은 말실수를 무능, 헷갈림, 착오로 치부하지만, 심리학은 다르게 본다. 이런 실수는 의식적으로 통제하려는 심리, 과잉 억제 피로, 인지적 과부하, 자동화된 언어 반응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심리적 구조물이다. 결국 그 실수는, “이재명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 애쓴 결과, 이재명만 생각하게 된” 아이러니한 심리의 결과물인 셈이다.

실수처럼 보인 그 말은, 정치인의 뇌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였다. 억누르려는 생각이 가장 강하게 떠오르는, 정치적 아이러니의 심리적 메커니즘이다.

원문: 박진우의 브런치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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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정치를 뒤흔든 신생 정당 ‘맥주당의 반격’ https://ppss.kr/archives/266307 Tue, 11 Jun 2024 04:24:34 +0000 http://3.36.87.144/?p=266307 투표는 탄환보다 강하다
… 맥주보다는 글쎄?

맥주러버들의 최애 술안주는 치킨도, 피자도 아닌 정치 이야기가 분명하다. “누가 어쨌다더라… 저게 저랬다더라…” 여와 야로 나뉘어, 나와 너로 나뉘어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는 와중에도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우리는 모두 맥주를 마신다는 것이다. 이렇게 싸울 거라면 그냥 ‘맥주’를 지지하는 편이 낫겠는걸?

한국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유럽 ‘오스트리아’의 이야기다. 오스트리아에는 마시는 맥주가 아닌 정당인 ‘맥주’를 지지하는 국민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오늘 마시즘은 이 ‘맥주당’의 돌풍에 대한 이야기다.

 

의사가 음악을 만들다
맥주당을 차린 이유

오스트리아 의사였던 ‘도미니크 블라즈니(Dominik Wlazny)’가 유럽에서 가장 독특한 정당인 ‘맥주당’의 당대표로, 그리고 최연소 대선후보로 나오게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 그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바로 음악이다. 장르로 따지자면 펑크(Funk).

펑크 버전의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고 보면 된다(아니다)

2014년 그는 의사에서 가수로 직업을 바꾼다. ‘마르코 포고’라는 이명을 쓰고, ‘터보 비어(Turbobier)’라는 펑크록 밴드를 만들었다. 공연도 하고, 맥주도 만들어서 팔고 좋잖아.

‘맥주당’ 뮤직비디오의 이 상황이 실제로 이뤄질 줄은 몰랐겠지

그리고 다음 해에 터보 비어의 첫 번째 히트곡이 나온다. 이름은 ‘비어 파티(die bierpartei)’, 우리말로 하면 ‘맥주당’이다. ‘맥주당에 투표를 하면 맥주쟁이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담긴 곡이었다. 그렇다고 실제로 정치에 출마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풍자의 요소가 강한 곡이었다.

문제는 풍자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꽤 많았다는 것이다. 비어 파티라는 곡의 인기는 많아졌고, 사람들은 터보 비어의 프런트맨인 ‘도미니크 블라즈니’를 응원했다. 이… 이렇게 된 이상 한 번 출마해 봐?

 

맥주에 맥주에 의한 맥주를 위한 정치

2015년에 만들어진 맥주당이 실제 선거에 나간 것은 4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정치권은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오스트리아 부총리가 러시아 재벌에 후원을 요구하는 영상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놈 하나 믿을 것 없는 시대에 도미니크 블라즈니와 맥주당은 2019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다.

정치는 싫지만, 맥주는 좋아한다면 투표하세요!

국민들 입장에서 그들의 공약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일단 당선이 된다면 국민들에게 일정량의 맥주를 보장할 것이며, 비엔나에 있는 낡은 분수대를 맥주가 나오는 분수대로 바꾸겠다고 공언하였다. 마지막으로 맥주지만… 레몬을 탄 라들러 같은 혼합맥주는 세금을 물리겠다는 당의 선명성도 보여주었다.

국민과 관광객을 위해 맥주가 나오는 분수를 설치하려 했던 맥주당

결과는 참패였지만, 주목도는 엄청났다. 그들을 따르는 지지자들이 늘어났고, 다음 해의 지방선거에는 도미니크 블라즈니뿐만 아니라 맥주당의 이름을 건 여러 후보들이 출마했다. 밴드인 터보비어도 열심히 활동을 했으니 이 정도면 정말 잘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2022년 오스트리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 만다.

 

대통령 선거 최대의 이변을 일으키다

도미니크 블라즈니는 그가 처음 공약을 걸었던 ‘비엔나의 낡은 분수대’ 앞에 정체불명의 시설을 설치한다. 바로 자신이 공언했던 맥주분수(라기에는 아리수 음수대에 가깝지만)였다. 그를 따르는 지지자들에게 분수대에서 만든 맥주를 선사했다. 공약의 범위도 넓어졌다. 맥주뿐만이 아닌 환경, 사회, 예술가 등을 위한 정책을 추가했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시간이 흘러 맥주 분수 공약을 지킨(?) 맥주당

대통령 선거는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규모의 돈과 시간이 들었다. 때문에 맥주당은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전국이 아닌 자신들이 활동하는 ‘비엔나’에서만 유세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세차가 없네? 그래서 자신들이 잘하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유세를 했다. 맥주당이 가진 독특함은 언론의 소재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가장 큰 지원군이 나타났다.

독특한 분위기와 주장, 그럴듯한 메시지는 미디어와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바로 오스트리아 국민이 느끼는 ‘정치 피로감’이었다. 국민들은 이미 기성 정치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그 안에서 어떤 당파에도 휩싸이지 않은 후보가 바로 맥주당의 ‘도미니크 블라즈니’였다. 곧 지지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쿨한 이미지를 가지고 싶은 정치인들과 유력인사들도 맥주당을 지지했다.

사람들은 이제 누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과연 맥주당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그리고 결과가 나왔다.

 

오스트리아 역대 최연소 후보, 대통령 선거 3위

맥주 한 잔 마셨을 뿐인데 오스트리아에서는 내가 유력 대선후보?

맥주당의 도미니크 블라즈니는 전국에서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8.3%의 득표율로 3위를 기록했다(33만 7,000명이 그를 지지했다). 1위로 연임에 성공한 대통령이 혼자 50%가 넘는 득표율을 받았다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성과였다. 심지어 그들의 터전(?)인 비엔나로 한정하면 대선후보 중 두 번째로 많은 표를 얻었다.

오스트리아는 물론 많은 유럽의 정치권이 이 소식에 놀랐다. 단지 기인(?)이 벌인 이색 신드롬이 아니었다. 왜 국민들은 기존의 정치가 아닌 맥주당에 투표를 하였는가를 돌아보게 된 것이다. 오스트리아 맥주당은 여전히 맥주를 만들고, 맥주를 노래하며, 올해 치러질 국회의원 선거를 다시 준비하고 있다.

과연 올해는 맥주당이 삭막한 정치계에 어떤 신선함을 가져올까?

 

맥주보다 나은 정치를

상황에 대한 화면은 영상으로도 만날 수 있습니다

국민을 대변하고, 함께하는 사회의 약속을 만들어 나간다는 점에서 정치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 우리의 정치는 본질보다는 서로 갈등과 혐오만 남는 게 아닌가 싶은 걱정도 있다. 이런 목마름을 해결해 줄 정치인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본다.

아니면 한국에도 맥주당이 나올 수도 있을 테니까. 맥주에게 밀리는 정치가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원문: 마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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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 ‘6분 영상’ 스캔들 때문에···오스트리아 최연소 총리 쫓겨난다, 김지아, 중앙일보, 2019.5.28
  • “Wir wollen Österreich zukunftsfett machen!”, Elisabeth Schwester, MeinBezirk, 2019.8.8
  • Wien-Wahl: Bierpartei auf Social Media auf Platz 2, VIENNA.AT, 2020.2.9
  • Marco Pogo: Meet the punk rocker using beer in his bid to become Austria’s next president, Ben Turner, euronews, 2022.9.29
  • Le punk qui se présentait au nom du Parti de la bière, Evelyne Emeri, Lamantin.ch, 2022.10.9
  • Austria’s Beer Party gaining national prominence after election success, Sayan Ghosh, Wionews 2022.11.3
  • The Rise of Satirical Political Parties, Emaan Naeem, foreignaffairsreview, 2022.11.11
  • Beer Party founder vies to be Austria’s next president, AFP, NEW Starits Times 2022.11.29
  • The Beer Party: A Threat to Democracy?, Tobias Schminke, Dalhousie University, 2023. 3.6
  • Austria’s Beer Party aims to add some kick to parliamentary elections, Nick Macfie, Reuters, 2024.1.18
  • Wien-Wahl: Bierpartei auf Social Media auf Platz 2, VIENNA.AT, 2020.2.9
  • 오스트리아의 ‘맥주당’, 최근 전국 여론조사서 10% 기록해, 유성호, 소믈리에타임즈, 2022.11.10
  • 유럽을 경악하게 한 오스트리아 맥주 정당의 실체, 윤한샘, 오마이뉴스, 20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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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궁금한 저작권법 제28조 “인용” 조항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https://ppss.kr/archives/265400 Fri, 07 Jun 2024 02:41:26 +0000 http://3.36.87.144/?p=265400 저작권법의 ‘인용’ 조항에 대해서는 많은 출판 관계인이나 언론인, 연구자 등이 궁금해한다. 내 주변에서도, 저작권에 관심 있는 편집자와 작가들이 저작권자 허락 없이도 인용할 수 있다고 알려주면, 깜짝 놀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용할 때는 일일이 모두 허락을 받아야 하고, 심지어 피인용 작품의 출판사한테 돈 주고 인용해야 하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전혀 잘못된 법적 상식이다. 요 며칠 사이에도 이 문제를 물어보는 분들이 많아서, 이번 기회에 이 저작권법 제28조에 대해 아주 간단히 이야기해 보려 한다.

작가 pikisuperstar 출처 Freepik

 

1.

먼저, 저작권법 제28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ㆍ비평ㆍ교육ㆍ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

많은 분들이 여기에서 “정당한 범위”를 궁금해하는데, 판례는 다음과 같이 판시하고 있다.

그 표현 형식상 피인용저작물이 부연, 예증, 참고자료 등으로 이용되어 인용저작물에 대하여 부종적 성질을 가지는 관계(즉, 인용저작물이 주이고, 피인용저작물이 종인 관계)에 있다고 인정되어야 한다)

복잡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인용한 원작품이 아니라 비평, 연구, 교육 내용 등이 ‘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원문을 500자 인용해 놓고, 비평은 50자를 달아 놓으면, 이는 원문이 ‘주’가 된 것이어서 정당한 범위를 인용한 것이라 볼 수 없다.

반대로 원문을 100자 정도 인용하고 비평을 1000자 정도 적었고, 그래서 그 글의 ‘주’가 되는 것이 원문이 아니라 비평 부분이라고 인정된다면 이는 정당한 범위에서 인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단순화한 면이 있지만, 이러한 분량적인 면도 실제로 중요한 기준이 된다.

 

2.

또 위 규정에서 ‘공정한 관행’이라는 부분도 다소 모호하다. 다만 대법원 판례는 이에 대한 기준을 어느 정도 확립해 주었다.

인용의 목적, 저작물의 성질, 인용된 내용과 분량, 피인용저작물을 수록한 방법과 형태, 독자의 일반적 관념, 원저작물에 대한 수요를 대체하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이 경우 반드시 비영리적인 이용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리적인 목적을 위한 이용은 비영리적인 목적을 위한 이용의 경우에 비하여 자유이용이 허용되는 범위가 상당히 좁아진다.

다소 복잡하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글을 쓰면서, 누군가의 견해를 비판하기 위해 그의 글을 일부 인용하거나 나의 견해를 보강하기 위해 그의 글을 일부 인용하는 식은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는 것이라 본다.

여기에서 하나 생각해 봐야 할 점은,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책에 다른 작품을 인용해도 되느냐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는 그것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즉, 상업성(영리성)이 있다고 하여 곧바로 인용이 불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 보도·교육·연구·비평 등의 영역은 대부분 상업적인 영역과도 결부되어 있다. 비평을 문학잡지에 싣는다고 했을 때 비평가는 원고료를 받고, 문학잡지사는 구독자들로부터 구독료를 받는다. 신문에 보도 기사를 쓰더라도, 신문 구독자나 광고주로부터 역시 돈을 받는다는 점에서 상업성이 있다.

따라서 영리성과 비영리성을 엄격하게 나누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만, 비영리적인 목적이 확실하다면 더욱 자유롭게 공표된 저작물을 인용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공교육 현장 등에서는, 다른 작품의 인용이 매우 관대해진다고 볼 수 있다.

 

3.

그럼에도 출처는 명시하여야 한다. 인용이 가능하다고 해서 출처 표기 의무에서 면제되는 건 아니다. 저작권법 제37조 제1항은 저작물 이용시 출처 명시 의무를 두고 있고, 이는 인용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출처를 명시하지 않으면, 형사처벌도 받을 수 있다.

 

4.

결론적으로 말하면, 저작권법 제28조의 인용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건별로 봐야하긴 하다. 가령 어떤 책에서 유명 작품들의 문장들을 잔뜩 수집하여 별다른 해설이랄 것 없이 ‘어록’ 같은 책을 만들었다면, 이는 인용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책에서 저자가 분명한 논지를 펼치고 있고, 그 와중에 어떤 작품을 비평하기 위해 일부 인용하거나,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기 위해 어떤 작품을 일부 인용하는 식으로 활용하고 있고, 그 저자의 견해가 ‘주’가 되는 것이 분명하고, 인용문은 ‘부종적’으로만 활용되고 있다면 굳이 허락받을 필요도 없이 인용할 수 있다.

이것은 저작권법의 제정 목적을 봐도 타당한 규정이다. 저작권법은 종국적으로 “문화 및 관련 사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제1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문화의 발전은 자유로운 토론과 논쟁, 인용과 논평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저작자의 권리 보호도 매우 중요하지만, 동시에 풍요로운 문화가 성장하는 데 자유로운 소통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그렇기에 저작권법 제28조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조항은 가히 저작권법의 감초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원문:정지우 문화평론가 겸 변호사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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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정말로 ‘자유로운 노동’이 보장되는 사회인가? https://ppss.kr/archives/255908 Wed, 27 Jul 2022 01:39:15 +0000 http://3.36.87.144/?p=255908

나는 보수를 자칭하는 정치인들의 이런 말장난이 싫다. 단언컨대 이 정권의 지지율 10%가량은 권성동이 깎아 먹고 있을 거다.

‘일할 자유’라는 건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노동할 자유’를 뜻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노동이란 임금을 대가로 하는 행위다. 그냥 업무량 많아서 하던 일 조금 더 연장해서 ‘알아서’ 하는 개념이 아니다. 52시간을 일하면 52시간 일한 만큼, 120시간 일하면 120시간 일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주어진다는 게 법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보장’이 될 때, 비로소 ‘일할 자유’라는 말도 의미를 가진다.

자, 과연 한국은 ‘자유로운 노동’이 보장되는 사회인가? 한국의 사업장 중에서 시간 외 근로나 휴일 근로 등에 대한 수당을 정당하게 지급하는 곳은 그 비율이 얼마나 될까? 만일 노동자가 그에 해당하는 대가를 지급받지 못했을 경우 그에 대한 청구를 할 권리는 보장되는가?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근로 시간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가? 사측에는 이익이 되지만 노동자에게는 손해가 되는 형태의 근로 시간/근로 형태를 요구받았을 때 이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 혹은 명목상으로만 거부 가능하고 실질적으로는 불이익을 통해서 이러한 권리들을 제약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회사는 되는데요, 라고 대답할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분들에게는 이런 말밖에는 드릴 수 없다. “좋으시겠네요.” 사실 저게 어느 정도 보장된다는 것 자체가 한국에서는 나름 이름 있는 사업체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대기업’의 범주를 조금만 벗어나도 저런 것들은 엿 바꿔 먹는 사업장들이 흔하다. 사실 대기업조차도 저런 걸 명목상으로만 보장해놓고 암암리에 자체적인 추가 근로를 유도하는 경우도 쌔고 쌨다.

원문: 박성호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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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히나〉를 그린 만화가 아카마츠 켄, 일본 국회의원이 되다 https://ppss.kr/archives/255904 Tue, 26 Jul 2022 06:08:57 +0000 http://3.36.87.144/?p=255904 일본에서 만화가 아카마츠 켄이 참의원에 당선되었다. 만화가가 많은 일본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라 한다.

아카마츠 켄(赤松 健, 1968~) 약 53만 표를 받으며 전국 비례구 후보 중 1위로 당선되었다.

아카마츠 켄은  〈아이러브서티〉〈러브히나〉〈마법선생 네기마!〉〈UQ 홀더〉 등의 작품으로 국내에도 굉장히 잘 알려진 작가다. 흔히들 ‘하렘형’ 러브 코미디라 불리는, 남자 한 명에 여성 여럿이 연심을 품는 장르의 선두주자이자 완성자로도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인 〈러브히나〉.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그의 행보는 무척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문과 출신이지만, PC를 비롯한 공학적 지식이 대단히 풍부한 편이다.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도 대학 이후의 일로 무척 늦은 편이었다. 대신 ‘팔리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요소가 필요한가?’를 철저히 연구하고 기획해서 작품을 냈다. 독자적인 디지털 작화 시스템과 어시스턴트 시스템을 고안해 내기도 했다. 심지어 유튜브의 자동 번역 시스템을 무료 만화책 자동 번역 시스템으로 활용할 정도의 잔머리를 지닌 사람이다.

매우 사업가스러운 일면도 가지고 있다. 절판되고 잊혀진 만화를 디지털화하여 복구하고, 광고를 붙여 무료 공개함으로써 작가와 독자 모두가 윈윈하는 플랫폼 ‘J코미’를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이 사업에는 시운도 따라줬다. 오래전에 묻힌〈렌짱파파〉라는 만화가 있었다. 막가파 파칭코 중독자 아빠 이야기를 다룬 만화였는데, 당시에는 인기가 없어서 단행본도 만들어지지 못했다. J코미는 이 만화를 디지털라이즈하여 무료로 공개했다.

그런데 코로나19 시국 때 전국 각지의 파칭코샵이 거리두기를 하지 않고 영업을 강행하면서 온 국민들의 파칭코에 대한 감정이 나빠진 일이 있었다. 이때 이 만화가 재발굴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국민 만화’로 떠올랐다. 잊힌 만화 중에도 재미있는 것들이 있는데, 무관심 속에 사라졌을 작품들을 보관하고 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그에 대한 칭송이 쏟아졌다.

J코미는 지금도 절찬리에 운영되고 있다. 궁금하다면 여기로.
〈렌짱파파〉 동화적인 그림체에 어울리지 않는 강력한 막장성으로 국내 웹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아카마츠 켄은 초기부터 정치적인 성향이 강했다. 만화가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대해서도 노력하는 한편, 기존의 동인지 시스템이나 상업 만화에서의 표현의 자유(그는 상당히 에로틱한 만화를 그리는 편임에도, 출판사의 중요 부위 노출 불가 방침으로 인해 표현의 제약을 많이 받은 편이다) 등에 지대한 관심과 열의를 가졌다. 덕택에 이미 정치에 반 정도 발을 담그고 있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본격적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서 개인 득표 1위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선거 유세에 그가 그린 만화들을 동원하며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이 행보에 대해 호평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그는 자민당 소속으로 출마했다(한국으로 치면 국민의힘 소속인 것과 비슷하다). 당연히 개헌에도 찬성 의견을 표했다(자위대의 국외 파병 등이 가능하도록 평화 헌법을 뜯어고치는 걸 말한다). 이로 인해 욕도 많이 먹은 편이다. 실제로 〈아이실드21〉〈원펀맨〉의 작가 무라타 유스케는 트위터에서 ‘아카마츠 켄의 당선에 감동받았다, 대단하다’ 등의 축전을 보냈다가 중도 및 좌파들에게 몰매를 맞기도 했다.

반면 그에 대한 기대도 크다. 일본에서도 페미니즘이 대두하고 사회적 인식이 전환되면서 만화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는데, 아카마츠 켄은 이전부터 창작은 사상이나 이념과 별개로 자유롭게 행해져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검열 완화, 오타쿠에 대한 반사회적 인식 개선, 동인 행사 등에 대한 국가적 지원 등 만화가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무척 크다.

그에 비해 한국은 어떤가? 만화가가 국회의원이 된 사례도 없거니와, 웹툰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현재의 시장 상황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규제하고, 만화가 및 동인 작가들의 권익을 보호하며 문화의 한 축인 미래 성장 동력으로 만들기 위한 비전을 가진 정치인도 없는 실정이다. 몇몇 만화를 좋아하는 국회의원이나 정치가들이 기성 작가를 불러 좌담회나 한두 번 하는 게 고작이다.

옆나라 일이긴 하지만, 아카마츠 켄의 국회의원 당선은 서브 컬처계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하겠다. 성공한 덕후의 삶이 어디까지 가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원문: 마루토스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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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가미 데쓰야가 아베 전 총리를 저격하기까지 벌어진 일 https://ppss.kr/archives/255659 Wed, 13 Jul 2022 04:08:16 +0000 http://3.36.87.144/?p=255659 1.

현실은 때때로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아베 전총리 살해범인 야마가미 데쓰야는 전형적인 분노조절장애, 피해망상 증세를 갖고 있다. 실제로 어제(7월 12일) 검찰 측의 요구로 인해 정신감정을 받기도 했다.

일본검찰이 이런 요구를 선제적으로 한 이유는, 재판에서 야마가미의 변호인이 요구할 게 뻔한 ‘정신적 문제로 인한 형사상 책임능력 부분’, 즉 쟁점을 미리 없애 버리겠다는 뜻이다. 이성적 판단이 가능하기에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이번 살해계획은 매우 치밀했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이미 존재한다. 그래서 형사책임 부분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여지지만, 아무튼 검찰 입장에선 시간을 절약하고 싶을 테니까.

아베 신조 전 총리를 피살한 야마가미 데쓰야(41). 일본 나라현 서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

별개로 야마가미의 과거 행적을 보면, 평소에는 과묵한 태도를 유지하다가 뭐에 꽂히면 분노가 장난 아니게 표출되는 성격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직장동료는 물론 학창 시절 급우들이 여러 차례 증언했다. 이로 인해 직장도 오래 다니지 못하고 임시 파견직, 일용직 등을 전전했다.

야마가미는 왜 그런 성격이 되었을까? 타고난 성격 문제도 있지만, 유년기 시절의 파란만장한 가정환경도 영향을 미친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의 모친은 통일교에 빠져 전 재산을 헌납하고 2002년 파산했다. 당시 야마가미 본인은 명문고에 다니고 있었고, 학교에선 응원단 소속이었다. 나름 간사이 지역의 명문대에도 합격했다. 그런데 등록금마저 모친이 써 버려서(이것도 종교단체에 기부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전문학교에 들어갔다가 금세 자퇴하고 자위대에 입대했다.

고등학교 졸업 당시의 야마가미. 그의 집안은 부유했음에도 2002년 파산하고 만다.

3년 후 자위대를 제대한 뒤 나름 제대로 살아보겠다고 이런저런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공인중개사 자격증, 전기 관련 자격증 등). 하지만 그를 둘러싼 사정은 나아진 게 없었다. 오히려 친형이 자살하고, 모친과 여동생은 실종되어 지금까지도 연락이 닿지 않는 등 희망 없는 인생이 지속된다. 나중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구 통일교) 다나카 회장의 인터뷰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모친은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월 1회 꼴로 교단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3.

아무튼 야마가미는 그런 과정을 거쳐 통일교에 원한을 품는다. 그런데 통일교에 대해 알아보니 ‘기시 노부스케’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는 문선명과 친했던 기시 노부스케가 통일교를 일본에 들여왔다는 사실을 믿게 된다. 참고로 기시 노부스케가 통일교를 일본에 들여왔다는 말은 진위여부가 확실치 않다. 하지만 기시와 문선명이 절친한 사이임은 여러 차례 기록이 남아 있다.

야마가미는 결국 기시 때문에 우리 집안이, 내 인생이 이렇게 됐다고 단정지어버린다. 그런데 기시는 이미 죽고 없다. 그래서 외손자 아베에게 복수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이다.

아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1896~1987)

이게 중요한 이유는 처음에 야마가미의 진술이 나왔을 때부터, 혹은 지금도 일부 매체는 종교단체 간부를 노렸다가 아베로 타겟을 바꿨다고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야마가미의 계획을 보면 작년 9월 아베 전 총리가 통일교 산하 단체에 동영상 축하 메시지를 보낸 시점부터 아베를 타겟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부터 아베를, 그게 아니더라도 적어도 둘을 동시에 노렸다고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차피 아베는 처음부터 타겟이었단 소리다.

2021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의 행사에 아베 전 총리가 보낸 기조연성 영상. 야마가미가 암살을 결심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졌다.

 

4.

살해 계획을 세울 때도 그러했다. 그는 동영상을 접한 이후, 그러니까 작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처음에는 사제폭탄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이걸로는 확실하게 죽일 수 없을 것 같고, 주위 사람에게도 피해가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아베 딱 한 명만 노려서 죽일 수 있는 권총으로 바꾼다.

단발 권총에서 산탄총으로 바꾼 것도 그런 의미다. 여러 발 중 한두 발은 맞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즉 처음부터 목숨줄을 끊어버리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무엇보다 범인은 이런 말도 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염려됐다.

즉 일부 언론이 보도하는, 특히 세계일보(?)가 보도하는 ‘외로운 늑대’형 살인자가 아니란 뜻이다. 외로운 늑대는 묻지마 살인, 특히 불특정한 다수를 이유 없이 대량으로 살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야마가미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처음부터 ‘오직’ 아베만을 노렸다.

범행 직후 범인의 모습

 

마치며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내성적이고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범인의 개인적 성격은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한 개인적 성격에는 집안의 파멸이 영향을 미쳤다.
  2. 집안 파멸의 원인은 모친의 통일교에 대한 전 재산 기부다. 친형은 자살했고, 모친과 여동생은 실종되었다. 야마가미 본인 역시 이래저래 인생이 꼬였다. 그래서 통일교에 대한 적대감이 증폭되었다.
  3. 통일교를 일본에 들여온 사람이 기시 노부스케라고 믿었다.
  4. 기시는 이미 죽고 없으니까, 친족이자 후계자인 아베를 검색했다.
  5. 작년 가을에 아베가 통일교에 보낸 동영상 메시지를 발견했다. 복수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작년 겨울부터 살해 계획에 착수했다.
  6. 범행 전날 아베의 오카야마현 지원유세장도 가고, 그날 새벽에 총기 테스트도 했다. 이로 미루어 봤을 때 종교단체 간부가 아니라 처음부터 아베를 노린 것이라 보는(아니면 동시에 노린 것이라 보는) 견해가 우세해졌다.
  7. 참고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구 통일교)의 다나카 회장은 야마가미 집안의 파산 등등을 알고 있고, 요즘도 행사장에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모친이 참석한다고 증언했다.

결과적으로 기시 노부스케로부터 시작된 ‘아베 삼대’는 결국 기시로 인해 끝난 셈이다. 여러모로 너무나 극적이다.

 

덧.

나는 야마가미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일본 내에서도 그가 일으킨 행위에 대해 이해가 간다며 동조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야마가미 본인의 삶이 아무리 엉망이었다고 해도, 아베를 타겟으로 삼고 살해한 것은 명백한 범죄다. 그 둘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원문: 박철현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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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죽음: 이토 히로부미와 아베 신조의 죽음을 보며 https://ppss.kr/archives/255554 Wed, 13 Jul 2022 01:41:31 +0000 http://3.36.87.144/?p=255554 1.

일본의 아베 신조 전 수상이 암살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정치적 테러에는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애도의 마음이나 명복을 빌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그는 강성 우파로서 일본의 반인륜적, 반문명적인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 시종일관 우리에 대해 강압적인 태도를 보인 데다 모욕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던 자였기 때문이다.

일본의 전현직 수상으로서 암살에 의해 죽은 사람은 이번으로 6번째이다. 1909년 초대 수상을 역임하였던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의 총에 의해 사살된 이후 태평양 전쟁 이전까지 4인의 전현직 총리가 암살에 의해 사망하였으며, 전후의 시대에 들어와서는 아베 전 수상이 처음이라 한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입헌군주국으로 바뀐 이래 지금의 101대 기시다 수상에 이르기까지, 총 64명의 인물이 수상의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본다면 약 10%의 전현직 수상이 암살에 의해 사망한 셈이다.

수상 재임 횟수가 가장 많았던 사람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로서 총 5회에 걸쳐 수상직을 역임했으며, 다음으로 4회 수상을 역임한 이토 히로부미와 아베 신조가 있다. 그러나 재임 일수 기준으로 본다면 아베 신조가 사상 최장이다.

 

2.

이토 히로부미와 아베 신조는 여러모로 비교가 된다. 4회에 걸쳐 수상직을 역임했으며, 암살에 의해 사망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리고 출신지가 쵸슈번(長州, 지금의 야마구치현 일대)으로서 같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우리 한국인들에게 나쁜 이미지로 비춰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같다.

이토나 아베 모두 4회에 걸쳐 수상직을 역임했으나, 경력 면에서 본다면 이토가 훨씬 더 화려하다. 아베는 수상의 자리에 오르기 이전 2차례에 걸쳐 수상 도전에 실패한 경력이 있다. 이에 비해 이토는 메이지 유신 공신으로서 쵸슈번의 일개 무사에서 공작이라는 최고 귀족의 자리에 올랐으며, 44세라는 역대 최연소 나이로 초대 수상 자리에 오른 후 4회에 걸쳐 수상직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천황의 자문기구인 추밀원의 의장직을 3차에 걸쳐 맡았고, 또 초대 조선통감의 자리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승승장구였다.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 의사

두 사람 모두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밉상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점도 보인다. 한국에 대해 아베가 매파적 자세였다면 이토는 비둘기파에 가까왔다. 아베는 스스로 강성 우파의 선두에 서서 우리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지만 이토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일본의 정치권력의 핵심은 모두 메이지 유신 공신, 이른바 명치원훈(明治元勲)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 대다수의 공신들이 조선의 병합을 주장하였으나 이토는 이에 반대하였다. 그리고 조선의 부국강병을 도와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여야 한다는 강경파들에게는 이토는 상당한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조선 병합에 반대하던 이토도 암살 직전인 1908년 무렵부터 태도의 변화가 보인다. 조선병합 강행파의 의견에 제동을 걸지 않으며 소극적으로 동조하는 쪽으로 입장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그렇지만 스스로는 자신이 일본의 실세 정치인 가운데 유일하게 진심으로 조선을 위한다는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에 의해 사살된다. 그로부터 꼭 70년이 지난 1979년 10월 26일엔 박정희가 사살되니 10월 26일이 무슨 특별한 날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토 히로부미는 총에 맞아 쓰러진 후, 자신을 쏜 사람이 조선 청년이라는 말을 듣고는 죽어가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를 쏘다니, 바보 같은 자식이다.

그로서는 자신이야말로 일본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 진심으로 조선을 걱정해주는 사람인데, 그런 자신을 죽이다니 어리석은 짓이다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3.

아베 전 수상

그러나 우리의 입장에서는 조선에 대해 매파든 비둘기파든 오십보백보로서 일본의 정치 지도자란 어차피 그놈이 그놈일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초대 조선 통감으로서 우리의 국권을 찬탈하는데 앞장섰다는 상징성을 갖는다. 그가 매파든 비둘기파든 우리에겐 별 의미가 없다. 한국인이라면 그런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칭송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로서는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을 애도할 마음은 요즘의 젊은이들 표현으로 1도 없다.

다시 아베의 죽음을 생각해본다. 우리에게 강성 발언과 모욕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자이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눈곱만큼도 보여주지 않던 자이다. 반도체 원자재 수출 규제로 우리의 등 뒤에 비수를 꽂은 자이다. 나로서는 그의 죽음을 도저히 애도하거나 명복을 빌어 줄 수 없다.

원문: 이재형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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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6·10 항쟁을 맞아 국민훈장을 수여한 이유 https://ppss.kr/archives/255191 Wed, 06 Jul 2022 02:21:40 +0000 http://3.36.87.144/?p=255191 6.10 항쟁일에 김세진, 이재호 열사에게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김세진, 이재호 열사는 서울대 학생으로 1986년 분신을 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의 노래 <벗이여 해방이 온다>는 김세진, 이재호 열사의 죽음을 기리는 노래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민훈장은 매우 매우 잘하는 일이다. 민주화는 이제 진보-보수를 뛰어넘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되고 있다. <님을 위한 행진곡> 탄생의 주인공인 광주항쟁 당시에 시민군의 대변인을 했던 윤상원 열사도 훈장을 받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인혁당 가족들의 억울한 이자 부담을 덜어주라는 법원의 화해 결정을 법무부 차원에서 수용했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왜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는 이런 것을 하지 않았을까? 아마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는 검찰과 싸우느라 이런 걸 챙길 여력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꼭 이 일이 아니더라도, 민주당의 진짜 근본 문제는 ‘만들고 싶은 나라’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한국의 진보적 시민사회는 ‘저항 세력’으로서 오랜 세월을 살았다. 그들은 반대하는 것을 통해 자신을 정립해 왔다. 그래서 예전 운동권 언어로 ‘안티테제’는 있는데 ‘진테제’는 없는 상황인 것이다.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때를 ‘건국 100주년’으로 기념했다. 내가 만약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다면, 박정희 정부 시절 한국의 중화학공업을 주도했던 김정렴(비서실장), 오원철(경제비서관)에게 민주당 정부 대통령의 이름으로 ‘건국 100주년 훈장’을 주었을 것이다. 후배 세대의 한 명으로서 진심을 담아, 한국의 산업화를 이끌고 중화학공업을 일으켜줘서 진심으로 고마웠다고 말이다. 당신들의 진심어린 애국심 덕분에 우리의 아들, 딸들이 선진국 시민이 되는 초석이 될 수 있었다고. 다른 정당이 아닌 ‘민주당 정부’의 대통령 이름으로 훈장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2019년 3월만 해도 두 분은 모두 살아계셨다. 그러다 2019년 연말, 2020년 연초에 각각 돌아가셨다.

정치는 ‘반대의 결집’이 중요하다. 정치는 속성상 전선과 정치적 차별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86들이 잘한다. 구체적으로 반대의 동원, 증오의 결집, 네거티브, 프레임, 뒤집어씌우기를 잘한다. 이들은 20대 때부터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총학생회 선거를 통해 이런 것을 엄청나게 많이 해서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데, 한 차원 더 높은 전선을 형성할 수 있다. 정치는 속성상 “싸우는 것”이다. 다만, 싸움의 방향과 대상을 바꿔서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이다. ‘낡은 우리’와 싸워서 ‘혁신 우리’가 되는 것이다. 이는 ‘낡은 진보’를 내일의 ‘혁신 진보’로 이끌 수 있다. 증오심을 동원하는 진보가 아니라, 한 차원 높은 통합을 선도하는 것이다. 보수를 욕하는 게 아니라, 보수의 역사적 성취를 확 끌어안는 것이다. 그게 바로 ‘주류적 세계관’이다.

민주당과 86들은 비주류 마인드를 버리고 ‘주류적 세계관’을 가지려고 해야 할 때이다. 그때야말로 진짜 주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원문: 최병천의 페이스북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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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대선, 이준석을 묻다: 문문 인터뷰 2/2 https://ppss.kr/archives/255326 Mon, 04 Jul 2022 04:26:48 +0000 http://3.36.87.144/?p=255326 2022 대선, 이준석을 묻다: 문문 인터뷰 1/2」에서 이어집니다.


커뮤니티’라는 ‘물리력’을 등에 업은 선거 전략의 등장

임예인: 둘 다 문제라고는 생각하지만, 적어도 역사적 명분이라도 내세우는 게 소수자 혐오를 내세우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문문: 뭐, 그런 면도 있긴 하지만 말이죠… 혐오동원을 하든 역사적 명분을 ‘소유하는’ 방식이든 현실에서 나타나는 양태는 비슷합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유튜브 채널 등으로 강하게 결속된 여론 집단을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삼는데요. 이건 ‘여론’과는 다릅니다. 여론은 ‘물리적 실체’가 분명하지 않지만, 커뮤니티는 물리적 실체로 존재하고 있거든요. 이 물리적 실체는 선거 때 중요한 힘으로 작용합니다.

민주당의 새로운 지지층으로 떠오른 ‘개딸’. ‘개 같은 딸’의 준말로, 이재명을 지지하는 여초 사이트 팬덤을 지칭한다. 이들은 검찰, 언론 개혁 등 민주당 강경파와 목소리를 같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JTBC)

임예인: 이준석 역시 그런 ‘커뮤니티’를 등에 업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문문: 앞서 이준석이 ‘공정’이라는 키워드를 ‘소유’함으로써 ‘경쟁이 공정하다’는 2030세대의 여론을 등에 업는데 성공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것이 실제 물리력으로 확인된 것은 ‘남초 커뮤니티’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30의 국민의힘 입당 러시로 그 물리력의 규모 또한 확인할 수 있었죠.

이 물리력이 확인된 이후, 이준석은‘남초 커뮤니티’와 더욱 긴밀한 관계로 나아가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이준석의 ‘페미니즘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표가 된 이후, 혹은 대선을 거치면서 이준석은 훨씬 자극적으로 이슈를 제기했습니다. 물리력이 필요한 선거에서 자신이 보유한 물리력을 동원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요?

임예인: 그러고 보면, 최근에는 국민의힘 뿐 아니라 민주당에서도 특정 ‘커뮤니티’를 지지 세력으로 동원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곳들요.

문문: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이 정치와 선거는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겁니다. 선거는 정치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지만, 정치가 곧 선거는 아니죠. 무슨 ‘전략’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사실 전략이라기보다 전술에 가깝습니다. 어떻게 하면 ‘선거를 이길 것이냐’에 집중돼 있죠. 최근 한국 정치의 중요한 경향 중 하나가 정치인들의 관심이 오직 ‘선거’에 집중되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고,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지만요…

이준석은 대선 기간동안 자신이 절묘한 선거전략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비단 주머니’라고 불렀다. 실제로 윤석열 후보에게 비단 주머니를 선물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출처: 국민의힘)

임예인: 정치인들의 관심이 지금처럼 ‘선거’에만 집중된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요?

문문: 원래 보통 정치인들은 자기 소명을 ‘사회통합’이라고 여겼어요. 정치의 방식도 ‘갈등 조정’에 가까웠죠. 물론 실제로는 갈등을 부추기거나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최소한 명분상으로는 정치의 공간에서 타협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려고 했죠.

그런데, 오직 선거 승리가 정치의 목적이 되어가는 분위기에서는 오히려 ‘갈등의 일방’을 잘 취하는 정치인이 두각을 나타내게 됩니다. 국민의힘이든 민주당이든 그렇죠. 이런 흐름에 있어서도, 이준석의 정치는 트렌드를 잘 쫓아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임예인: 다시 ‘세대포위론’ 얘기로 돌아가 보면… ‘세대 포위론’도 결국 여성에 대한 ‘혐오’를 부추겨 2030 남성을 규합하는 식으로 흘러갔죠.

문문: 그렇죠.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준석의 세대포위론은 공정에서 시작해 혐오로 귀결됐습니다. 남초 커뮤니티의 지지라는 ‘물리력’을 확실히 담보할 수 있는 쟁점을 전선으로 긋고, 지지층을 공고히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2030 여성에게 포위당한 ‘세대포위론’, 성공이었나, 실패였나?

임예인: 결국 이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공정’으로 시작했지만 ‘혐오’로 귀결됐고, 2030 남성층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지만 2030 여성의 압도적인 비토에 맞닥뜨린 ‘세대포위론’. 이준석의 ‘세대포위론’이 성공했다고 생각하시나요?

문문: 답하기 무척 어려운 질문이죠. 이 흐름이 ‘성공’이었느냐 아니냐는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 어느 시점에 두는가, 근본적으로 성공이 무엇인가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20대 남성/여성의 극명한 온도 차이는, ‘세대포위론’에 대한 평가 역시 엇갈리게 만들었다. (출처: 주간조선)

임예인: 하지만 ‘성공으로도 실패로도 볼 수 있다’는 말은 너무 애매해서 말이죠… 그래도 결론을 낸다면,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세요?

문문: 일단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이겼으니, 이준석의 세대포위론은 성공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애초 세대포위론 자체가 대선을 염두에 두고 나온 전략이었고, 그렇다면 성공이죠. 사실 국민의힘의 지지층을 확대했다는 측면에서도 성공적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20대에서 힘을 못 쓰던 정당이 절반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그렇죠.

임예인: 하지만 ‘혐오’에 기대는 ‘세대포위론’은 아무래도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거든요. 정치인 이준석이 ‘세대포위론’을 기반으로 계속 승승장구할 수 있을까요?

문문: 이준석 개인을 기준으로 본다면 현재까지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은 성공적이겠죠. 30대 정치인이 ‘2030 남성을 대표하는’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실제 물리력을 보유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민주당의 30대 남성 정치인들이 같은 영역을 공략하고자 군침을 흘리기도 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또 도전은 계속되지 않을까요. 타이틀을 빼앗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든 생길 수 있으니까요.’

21대 총선 예비후보 2천 명 중 20대는 17명, 30대는 98명에 불과했다. 청년들은 여전히 청년을 대변할 정치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출처: SBS)

임예인: 실제로 국민의힘 내부에선 이미 이준석 대표를 흔들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 것 같던데요.

문문: 그렇습니다. 이준석을 싫어하는, 혹은 비판하는 사람들은 결국 이준석이 이용만 당하고 팽당할 위기에 처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볼 필요도 있어요. 이준석 입장에서는 지금 팽당하는 그림이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임예인: 엇, 팽당하는 게 낫다니, 그건 무슨 말씀이신가요?

문문: 글로벌 경기침체가 불 보듯 그려지고, 한국 자산시장도 흔들립니다. 이대로 가면 윤석열 정부는 고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젊은 층의 지지율이 추락할 가능성이 있겠죠. 이렇게 되면, 이준석을 팽한 것이 젊은 층 지지율 추락의 원인으로 대두할 수 있습니다. 이준석이 다시 당을 구할 영웅 취급을 받으며 중앙 무대로 복귀할 수도 있겠죠. 국민의힘 대선 전략으로써의 ‘세대포위론’은 역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세대포위론’을 들고 시작한 이준석의 ‘자기 정치’는 여전히 승승장구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 6월 23일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배현진 최고위원의 악수를 뿌리치는 이준석 대표. (출처: 매일경제)

임예인: 사실 ‘혐오를 동원하는’ 방식의 전술은, ‘전술적’으로만 따져도 위험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문문: 그렇죠. 정치에서 적극적 팬만큼이나 무서운 것은 적극적 안티입니다. 보통 40대 중반을 넘어서면 이념적으로 보수화된다고 합니다.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이죠. 갈수록 이 경향성이 강해진다고도 하고요.

하지만, 지금의 4050세대는 좀 특별합니다. 이들이 5060세대가 되고 이념적으로 훨씬 보수화된다고 해도 지금의 한국 보수정당을 지지할 가능성은 굉장히 낮습니다. 그들은 젊은 시절 군사독재를 경험했고, 그 기억이 흐릿해질 즈음 노무현 서거를 겪었습니다. 정서적으로 ‘적개심’ 수준의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모습. (출처: 오마이뉴스)

임예인: 노무현 서거는 정말 엄청난 사건이었죠. 세계관이 뒤흔들릴 만한 사건이었고요.

문문: 그렇습니다. 뿌리 깊은 반감은 이념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특히 이 반감이 역사적 혹은 사회적 정의와 연결돼 있으면 그 힘은 훨씬 커집니다. 영남의 지역감정보다 호남의 지역감정이 압도적이며 생명력이 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난 대선, 20대 여성층의 국민의힘에 대한 반발은 엄청났습니다. 만일 이게 지속되어 집단적 정서로 굳어진다면, 국민의힘의 미래는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이준석 역시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는 정치인으로 갇히게 되겠죠.

20대 여성의 막판 결집이 앞으로 정치권을 흔들 가능성은?

임예인: 이제 20대 여성의 막판 결집 쪽에 집중해서 말씀을 들어보고 싶은데요. 이 움직임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이준석 대표의 ‘세대포위론’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이 움직임이 앞으로 정치권을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문문: 일단 선거기간 20대 여성층의 여론 흐름을 살펴봅시다. 매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중 18~29세 여성층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겠습니다.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군이 거의 결정된 2021년 12월 시점에서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은 30% 선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여성가족부 폐지’가 등장한 1월 초반 이후 30% 선이 무너졌고, 한 번도 30%를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게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이에요.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함에 따라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긴 했지만, 결국 40%를 넘지 못했습니다.

대선 기간 동안, 20대 여성 사이에서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은 사실 윤석열 후보와 비교해 고만고만한 수준이었다. (출처: 한국일보)

임예인: 사실 이재명 후보가 원래 여성들에게 썩 인기 있는 정치인은 아니었죠. 이재명 후보의 확장성에도 한계가 있었던 걸까요?

문문: 그렇다고 볼 수 있겠죠. 같은 기간 20대 여성층의 지지는 안철수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상당 부분 나눠 갖고 있었습니다.

1월 첫째 주까지 9~11%를 오가던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은, 윤석열 후보의 한 줄 공약 ‘여성가족부 폐지’가 등장한 이후인 1월 2주 22.4%를 기록하며 뛰어오릅니다. 이후에는 조금 떨어져서 15~19%를 오갔고요.

한편 심상정 후보의 지지율은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빠지면서 지속적으로 상승해 15% 전후를 유지했습니다. 여기에 부동층이 꾸준히 15% 수준에서 유지되었고요.

임예인: 20대 여성층의 표심은 뭔가 여기저기 복잡하게 나뉘어 있었네요. 정리해보자면 어떨까요?

문문: 흐름으로 보면, ‘여성가족부 폐지’ 등장 이후 윤석열 비토 – 혹은 이준석 반대가 견조하게 유지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비토 여론이 이재명으로 쏠리지 않고 이재명-안철수-심상정으로 흩어져 있었던 것이죠.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런 추세가 이어졌습니다.

20대 여성의 지지율은 복잡하게 요동치며, 누군가의 절대 우세랄 게 없이 이어졌다. 자료는 JTBC 의뢰/글로벌리서치 여론조사 추이를 그래프화한 것. (출처: 이대학보)

임예인: 그랬는데, 출구조사 결과는 좀 달랐죠.

문문: 네, 출구조사 결과는 ‘이재명에 대한 압도적 지지’로 나타났습니다. 출구조사에서 20대 이하 여성의 투표 결과는 이재명 58%, 윤석열 33.8%로 예측되었죠. 그간 이뤄진 여론조사가 전부 완전히 틀린 게 아니었다면, 결국 극적인 변화가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이후에 벌어졌다고 볼 수 있겠죠.

임예인: 극적인 변화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문문: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윤석열-안철수 간의 후보 단일화겠지요. 후보 단일화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후보에 대한 20대 여성층의 지지율이 30%대 초반에 멈췄다는 점에서, 적어도 이 세대 여성층에서 안철수 지지층이 윤석열 지지로 옮겨가진 않았다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임예인: 결국 누가 됐든 ‘윤석열만 아니면’ 됐다는 얘기 같기도 한데… 그런 점에서 이재명 지지도 그리 공고하지는 않다는 느낌인데요.

문문: 말씀하신 것처럼, 안정적인 모멘텀이 형성되었다고 보긴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20대 남성층과는 다른 부분이죠. 20대 남성층은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꽤 오랜 기간 모멘텀을 형성해 왔고, 이준석이라는 뚜렷한 정치적 대안을 중심으로 결집하기도 했거든요. 이런 공고한 흐름이 20대 여성층에서는 아직까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준석은 많은 논란을 낳고 있는 ‘에펨코리아(펨코)’ 등 남초 사이트를 모니터링한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다만 본인은 페이스북 댓글을 통해 이 사실을 부정했다.

 

20대 여성이 보여준 에너지는 어디로 갈 것인가

임예인: 그렇긴 해도, 이번 대선에서 보여준 파괴력은 놀랍기는 했거든요.

문문: 전반적인 흐름에서 알 수 있듯 20대 여성층은 특정한 정당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20대의 특성이라고 볼 수도 있죠. 20대 여성층은 오히려 ‘제3지대’에 대한 기대가 어느 세대보다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재명에 표심이 쏠리긴 했습니다만, 이는 ‘위기감’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윤석열은 ‘여성가족부 폐지’로 대표되는, 성평등 정책에 대한 백래시 수준의 정책 반동을 시도했습니다. TV 토론에서까지 이런 인식이 드러나면서 ‘윤석열이 되면 위험하다’는 정서가 급속도로 확산된 게 아닐까 합니다.

임예인: 이 힘이 대선이 끝나고 가라앉을지, 오히려 더 커질지도 궁금하네요.

문문: 대선에서 20대 여성층의 에너지가 폭발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들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인 혹은 정치세력이 형성될 것인지에 따라 이 에너지가 지속될 수도, 아닐 수도 있겠죠.

사실 20대 여성층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발견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강남역 사건’ 이후 지속적으로 발견되어왔고, 그 에너지를 결집하려는 시도 또한 계속되었죠. 다만 그들을 설득할 만한 정치인, 혹 정치세력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은 사회적으로 여성혐오 문제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다. (출처: 한겨레)

임예인: 20대 여성을 대변하는 정치인이라… 나올 수 있을까요?

문문: 쉽지는 않아 보이죠? 다만, 여기에서 오히려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국민의힘이 해 왔던 혐오정치가 역풍을 맞았다는 측면이죠. 20대 여성층의 이재명 지지는 민주당에 대한 지지였다기보다, 윤석열의 공격적 정치에 대한 반작용이었습니다. 이 부분이 중요해 보입니다. 혐오 동원 정치가 사회적으로 거부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는 최근 이준석의 ‘장애인 혐오 정치’가 역풍을 맞은 흐름에서도 확인되죠.

임예인: 그것도 놀라운 부분이었어요. 전장연 시위는 거듭되는 출퇴근길 지하철 지연으로 비난을 듣던 상황이었잖아요. 이준석이 또 영리하게 전장을 잡았구나 싶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이준석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하더라고요.

문문: 맞습니다. 이 부분은 확실히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윤석열 정권 동안 진보진영이 선택해야 할 정치적 방향은 ‘이 방향이 옳다’고 설정하고 안티를 생성하더라도 지지자를 강하게 결속하는 방식이 아니라, ‘혐오 동원’에 맞서는 폭넓은 연대, 낮은 수준이지만 혐오에 반대하는 여론 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뉴스토마토의 선거 및 사회 현안 정기 여론조사에서, 이준석 대표의 전장연 발언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과반이 ‘장애인 비하의 잘못된 주장’이라고 응답했다. (출처: 뉴스토마토)

젠더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 것인가?

임예인: 20대 여성 / 남성의 후보 지지도가 극명하게 갈리는 데서 볼 수 있듯, 젠더 갈등은 점점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시비를 떠나, 이처럼 극단적인 갈등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문문: 일단, 질문 중 ‘시비를 떠나’라는 대목이 걸립니다. 극단적인 갈등의 원인 중 하나가 왜곡된 정보에 대한 ‘시비를 정확하게 가리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갈등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사실관계가 엄밀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성평등’을 주장하기에 앞서 관련 정보를 바로잡는데 꽤 많은 노력과 시간이 쓰이고 있죠. 너무 공자님 말씀인가요?

젠더 갈등의 심각성은 2030 등 젊은 층일수록 더 크게 느끼고 있다. (출처: 조선일보)

​임예인: 네, 사실은… 맞는 말씀이긴 하지만, 좀 이상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문문: 그래도, 이 부분을 짚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적어도 ‘시비를 떠나’라는 태도는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사실’을 둘러싼 논쟁을 젠더갈등이라고 포장(?)하지도 말아야 하고요.

임예인: 하지만 참 어려운 이야기이기도 해요. ‘팩트’라는 개념 자체가 오용되고 있는 요즘 세태에서는 더욱 말이죠.

문문: 어려운 이야기인 건 분명합니다만, 할 일은 해야죠. 여기에 더해, 혐오를 배제하려는 노력이 더욱 적극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니, 페미니즘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이유로 진영 내부의 혐오 표현, 다른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을 그냥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오히려 공론장이 왜곡되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꽤 긴 시간 동안, 젠더갈등은 혐오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표출되었습니다. 젠더갈등 이전에 혐오를 배제해야 대화와 토론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혐오 자체에 대한 비토가 갈등 해결의 시작이 아닐까요.

숙명여대에 최초로 합격한 트랜스젠더 학생은, 오히려 페미니즘 진영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등록을 포기해야 했다. (출처: 연합뉴스TV)

임예인: 그렇죠. 페미니즘 진영에서 오히려 트랜스젠더에 대한 배제가 적극적으로 터져 나왔던 것은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기도 했어요.

문문: 그런 측면으로 본다면, 앞에서 길게 살펴본 ‘이준석 정치’에 대한 비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갈등과 혐오에 기반한 정치가 지속적으로 힘을 갖는다면, 갈등과 혐오를 키우고 싶은 정치인들도 계속 등장하지 않을까요.

정치가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갈등을 정치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쓴다면 갈등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당면해서는 ‘이준석 정치’를 공론장으로 끌어내야 하고, 사회적 토론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을 잘 할 수 있는 정치인이 있다면 정치적으로 성공할 가능성도 있겠죠.

임예인: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요.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만 봐도 혐오를 부추기는 콘텐츠들이 전성시대를 맞고 있잖아요.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까요?

문문: 그래서 전장연 시위를 둘러싸고 이준석의 혐오 동원 시도가 역포위된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면서도,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보여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20대에서 두드러지는 젠더 갈등은 사실 경제적 기회에 대한 박탈감과 위기감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위기의 세대인 거죠. 그럼에도 이 세대는 사회적 토론에 참여하기 어렵습니다. 스스로의 위기에 관련된 토론조차도 말이죠.

일자리 창출이든 자산 형성이든, 이 세대에 적극적으로 마이크를 쥐여줘야 한다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성별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난다고 해도 말입니다. 오히려 그 갈등이 폐쇄적 커뮤니티에서 혐오표현과 함께 정서적으로 커지는 상황을 그대로 둔다면 갈등 해결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봅니다.

5월 21일 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환영 만찬에 참석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박지현 민주당 전 비대위장. (출처: 연합뉴스)

이준석식 ‘혐오 정치’를 넘기 위해서

임예인: 사실 ‘혐오’가 대두하는 건 한국만의 일은 아닙니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소수자 혐오’에 자꾸 힘이 실리는 분위기인 것 같은데요.

문문: 이런 현상이 나타난 지는 꽤 오래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2008년 위기 이후 사회적 불안 속에서 보수파가 선택한 정치적 활로로 보기도 하고, 경제적 위기에 놓인 대중의 심리적 경향이라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30년 넘게 세계의 지배적 이념이었던 신자유주의가 저물고 있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아마도 다 맞는 말이겠죠.

임예인: 그러면서 중간 어디쯤의 타협점을 찾으려는 정치세력보다는, 극단적인 목소리나 인기 영합적인 목소리가 대두하는 경향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문문: 어떤 나라에서는 기존 중도좌파 세력보다 더 왼쪽의 정당들이 선거에서 승리하기도 하고, 어떤 나라에서는 극우 성향의 정치세력이 약진하기도 합니다. 쟁점별로 의견을 달리하는, 일종의 ‘혼종’ 정치세력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임예인: 그 과정에서 포퓰리즘이 득세하기도 했죠?

문문: 그렇습니다. 우파는 물론이고, 좌파 진영에서도 ‘포퓰리즘’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라는 책이 세계를 강타하기도 했으니까요.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이렇다 할 대세적 이념이나 정치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이념적 모색기’ 일수도 있겠습니다.

샹탈 무페의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 극우파의 포퓰리즘과 달리 좌파 포퓰리즘은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진보적인 방향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임예인: 포퓰리즘이 여성, 장애인, 난민, 성소수자 등 소수자들을 향해 분노의 방향을 돌리는 방향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게 계속 신경이 쓰입니다.

문문: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은데요. 특히 소수자 혐오 동원 정치가 한국에도 상륙했다는 점이 주목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역시 경제적 불안이 꽤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습니다. 혐오동원 정치가 발호할 물적 토대라는 것이죠. 세계 각국에서 성공했는데 한국에서도 성공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결국, 정치인들이 ‘정치적 성공’ 가능성이 높은 ‘베팅’을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에 맞설 ‘폭넓은 연대’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대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임예인: 말씀 감사합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 주신다면?

문문: 지금 중요한 지점은 적어도 민주당에서라도 혐오 동원 정치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민주당판 이준석의 출현을 막아야 한국 정치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 비슷한 시도가 지난 대선에서 있었죠. ‘그런 정치는 국힘이나 하는 것’이라는 정서적 합의를 이뤄내는 것이 지금 필요한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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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대선, 일본을 말하다: 이헌모 님 인터뷰 https://ppss.kr/archives/255273 Fri, 01 Jul 2022 03:36:19 +0000 http://3.36.87.144/?p=255273 일본.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관용적인 표현이, 일본만큼 딱 맞아떨어지는 나라가 또 없을 것이다. 일본은 지리적으로도, 또 많은 부분 문화적으로도 가까운 나라다. 그러나 77년 전 식민 지배의 역사는 여전히 한국인들의 가슴에 앙금으로 남아있다.

안 그래도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었던 양국 간의 관계는 문재인 정부와 아베 정권 기간 중 악화 일로였다. 이는 박근혜 정부 당시 이뤄졌던 위안부 협의가 잘못되었다는 의견이 비등했고,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이 원고 승소 선고를 내림으로써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무역 제재와 지소미아 종료 논란이 이어졌고, 한국에서는 일본산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한일관계는 돌이키기 힘든 수준까지 경색되었다. (출처: 조선일보)

꼬일 대로 꼬인 대일 관계에 돌파구는 있을까. 문재인 정부를 ‘반일’이라 공격했던 윤석열 당선인은 경색 해소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게 될까.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일본 대학교에서 정치와 행정을 가르치고 있는 이헌모 교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인터뷰이: 이헌모

한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한국에서 졸업했고, 1990년 일본 정치의 격변기에 일본 유학을 감행하여 30년째 일본 도쿄에 살고 있다. 현재 지바현 중앙학원대학 교수로 정치와 행정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도쿄 30년, 일본 정치를 꿰뚫다> 등이 있다.

이헌모 교수의 책 ‘도쿄 30년, 일본 정치를 꿰뚫다’. 일본 정치 이해를 위한 필독서다.


문재인 정부의 대일 외교, 성공으로도, 실패로도 볼 수 있다

임예인: 일단 총평부터 들어보고 싶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대일 외교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이헌모: 사실 한 가지로 얘기할 수는 없겠죠. 보는 관점에 따라 성공으로도, 실패로도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예인: 일단 성공이라는 관점부터 여쭙고 싶어요. 이번 정부 들어 대일관계가 좋아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잖아요. 어떤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할까요?

이헌모: 한일관계가 좋아졌느냐 나빠졌느냐를 따진다면 당연히 나빠졌지요. 다만 이를 온전히 ‘문재인 정부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한국이 크게 성장했고 국제적 위상 또한 문재인 정권 들어 높아진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거와 같이 미국의 압력에 의해, 또는 일본에게 끌려가는 듯한 모양새의 외교에서 탈피했다는 점에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이제 더이상 국제적으로 ‘개도국’ 취급을 받을 수 없는, 명실상부한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했다. (출처: 정책브리핑)

임예인: 그렇다면, 반대로, 어떤 점에서 실패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이헌모: 이유를 막론하고 양국간의 관계가 악화된 이상 이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기도 어렵겠지요. 2019년 들어 ‘한국에 친근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람의 비율은 70%를 넘겼습니다. 1978년 조사 이래 최악을 기록했어요. 특히 위안부 협상을 재협상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입장에서 본다면, 위안부 협상은 양국 외교부 장관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발표한 ‘양국 정부의 합의 결과’였어요. 이를 한국이 정권이 바뀌었다고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가 없다는 논리지요.

임예인: 그런데, 사실 한국 여론이 워낙 나쁘기는 했습니다. 위안부 협상을 추진했던 박근혜 정부는 탄핵으로 붕괴해버렸고, 위안부 협상 자체가 문제였다는 여론이 비등했어요.

이헌모: 그런 면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박근혜 정권에서 졸속으로 처리한 후유증으로 한번은 겪어야 할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7년 대선 때만 해도 보혁을 막론하고 대선 후보 대부분이 위안부 재협상, 또는 파기를 외쳤거든요. 심지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도 위안부 협상을 ‘뒷거래’로 규정하고 파기를 시사했죠. 이를 문재인 정부만의 문제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2017 대선 당시 주요 대선 후보 5명은 모두 위안부 합의에 대한 재협상 또는 파기를 주장했다. (출처: 세계일보)

임예인: 홍준표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같은 목소리를 낸 몇 안 되는 사안이었죠. 두 후보가 모두 ‘파기’를 주장한 걸로 알아요. 재협상보다 어쩌면 더 극단적인 주장이었죠.

이헌모: 그랬죠. 물론 이건 대선 과정에서 나온 정치적 메시지였기에, 실제 당선되었을 때 진짜로 합의를 파기할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예요. 하지만 그런 면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도 대선 후보 당시에는 재협상을 주장했지만 정부 출범 후에는 결국 재협상을 포기했거든요. 현실 외교의 한계를 경험하게 되었지요.

임예인: 그럼 일본 쪽에서 너무 과잉반응을 보인 건 아닐까요?

이헌모: 그렇다고 그렇게 보기는 또 어려워요. 문재인 정부는 재협상은 하지 않겠지만 수용할 수도 없고, 위안부 합의가 해결된 것도 아니라는 어중간한 입장을 폈습니다. 일본 측에서 볼 때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국가 간의 협의를 손바닥 뒤집듯 뒤집는 한국 정부의 태도를 보고 분노하고 실망이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당연히 그럴 것이고요.

2015년, 한일 위안부 협상 무효를 주장하는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의 모습. (출처: 민중의소리)

임예인: 일단 국가간 합의가 이루어진 이상, 그것이 아무리 졸속으로 이뤄진 것이라 해도 지켜져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이헌모: 기본적으로는 지키는 것이 국제적인 룰이겠지요. 그렇다고, 위안부 협상이 잘 됐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모두가 위안부 협상이 잘못되었다고 여겼어요. 문재인 정부로서도 이런 여론과 국민 정서에 맞설 수 있는 이론적 토대나 실리적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따라서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도, 그렇다고 거부하기도 어려운 딜레마에 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요.

다만 이럴 때 진짜 빛을 발하는 것이 정치이고 실용적인 외교력이라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일본 측에 좀 더 성의를 갖고 경색 국면을 풀어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임예인: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죠? 문재인 대통령은 위안부 합의가 진실과 정의의 원칙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며, 일본의 사과를 계속적으로 요구했습니다. 일본은 이를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고요.

이헌모: 결국 협상을 사실상 원점으로 돌리려고 했던 게 우리 정부인 만큼, 문재인 정부에서 꼬인 실타래를 풀기 위한 노력을 했어야 했어요. 최소한 일본측과 공식/비공식적인 외교 창구를 계속 유지하고 활용해야 했지만 그마저도 실질적으로 거의 단절 상태였죠. 물론 한국에게만 책임이 있는 건 아닙니다. 쌍방의 책임이죠. 하지만 ‘원인제공을 한국에서 했다’는 빌미를 준 셈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조금씩 현실 외교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출처: 서울경제)

임예인: 대일관계가 어그러진 또 한 가지 결정적인 장면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었는데요.

이헌모: 그렇습니다. 일본은 여기 대해서도 격앙된 반응을 보였죠. 국제법상 말이 안 된다, 한국 특유의 ‘국민 정서법’이 작용한 것이다, 반일 정서를 이용하고 있다는 등, 비난 여론이 드셌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참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렇다고 일본과의 관계를 우려해 판결을 미루도록 법원을 압박했던 박근혜 행정부가 잘 한 건 아니잖아요. 결국 문재인 정부로서는 전임 정부로부터 어려운 짐을 또 하나 떠안은 셈이 되어버렸죠.

임예인: 문제는 이게 법원 판결이라는 거에요. 뒤집을 수가 없잖아요. 일본의 반발에 문재인 대통령의 반응도 ‘법원 판결에 행정부가 관여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고요.

이헌모: 그 부분도 사실입니다. 삼권분립이 작동하는 이상, 행정부가 법원 판결을 뒤집을 수는 없죠. 하지만 정치적 해결의 폭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일단 한국 정부가 선보상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는데요. 이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대화 단절 수준까지 가서는 안 됐습니다.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개입은 박근혜 정부 당시 사법농단 사태의 큰 축 중 하나였다. (출처: 서울신문)

한일 관계 악화, 일본의 책임은 없었나?

임예인: 한국 내에서는 한일관계 악화에 일본의 책임이 더 크다는 여론이 높습니다.

이헌모: 근본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사실 지금 한일관계 악화 역시 한국 문재인 정권의 문제라기보다는 일본 국내의 환경변화가 더 큰 요인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을 진정한 파트너로 여기지 않고 껄끄러운 경쟁자 또는 무례한 이웃이라 덧칠하며 비난하고 조롱하는 넷 우익, 전반적인 일본의 우경화 현상과 자민당 내의 친한파 의원의 소멸, 전후 세대를 중심으로 한 보수 우익성향 정치가들의 대두가 더 문제지요.

임예인: 여기에 정치적 문제를 경제 분쟁으로 비화시킨 것도 일본이었습니다. 2019년 7월, 일본 정부는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불화폴리아미드 등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조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을 제한하기로 했죠.

이헌모: 그런 면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은 해당 조치가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한’ 조치이며, 한국에 뭔가 ‘부적절한’ 사안이 있다고 주장했죠. 하지만 이것이 강제징용 피해자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라는 것은, 사실 비공식적으론 누구나 알고 있는 문제였어요.

문재인 대통령도 일본 측 제재 조치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출처: 테크M)

임예인: 사실 한국이야 식민지 시기의 앙금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고 볼 수 있을 텐데요. 일본은 한국에 대해 왜 이렇게 공격적일까요?

이헌모: 과거에는 일본이 한국을 한 수 아래로 보고 형님이 아우 도와주는 식으로 대했어요. 미국이 제일 큰 형님, 그리고 일본은 작은 형, 한국은 막내, 이런 위계질서에 한국을 위치시켰죠. 어쩌면 형이 아우를 대하는 것 같은 관용이나 배려적인 측면도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의 국력이나 위상이 일본을 앞지르거나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잖아요. 그러니 한국을 본격적으로 경계하고 방어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일본의 산업 경쟁력’이라는 신화

임예인: 사실 한국이 경제적으로 쫓아왔다 해도, 여전히 양국 경제 사이즈 차이는 크지 않나요?

이헌모: 예전처럼 격차가 분명한 건 아닙니다. 2021년, 일본에서 꽤 큰 파장을 일으킨 기고문이 한 편 있었습니다. ‘왜 일본은 한국보다 가난해졌는가’라는 제목이었죠. 물론 명목국민소득 기준으로 일본은 여전히 한국에 꽤 앞서 있습니다. 그러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구매력평가 기준으로는 일본이 이미 한국에 역전당한 상황이에요.

IMF가 추계한 주요 국가의 1인당 실질구매력 평가 GDP 추이를 나타낸 것. 일본(빨간 선)은 80년대까지는 높은 성장을 보여왔으나 90년대부턴 정체했고, 현재는 선진국 최저 수준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임예인: 하지만 오랜 기간 선진국으로서 일본이 쌓아올린 산업 경쟁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 아닐까요?

이헌모: ‘일본의 산업 경쟁력’이라는 신화 역시 사실 과장된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거기 대해서도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기사가 있었습니다. ‘한국과 중국에 따라잡힌 일본 제조업의 비참한 현실, 모르는 건 일본인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었죠. 이 기사는 반도체는 물론 주방, 거실가전에서도 밀리는 일본의 제조업 현실을 노골적으로 지적했죠. LG의 ‘시그니처’ 브랜드를 예로 들어, 일본 브랜드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임예인: 일본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 제한 조치가 내려졌을 때, 한국 보수 언론에선 큰일났다고 난리가 났었잖아요. 첨단 소재에 대한 일본의 기술 수준이 워낙 높아서, 일본 없이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이죠.

이헌모: 실제로 일본에서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 경제의 뼈대인 삼성,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에 타격을 입히면 한국이 용서를 빌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었죠. 그 결과 일본 경제산업성이 수출 제한 조치를 단행한 것이기도 할 테고요. 물론 양국간의 갈등과 수출 규제 조치가 한국 기업들에도 큰 피해를 끼쳤음을 부정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일부에서 얘기한 것처럼 일방적인 것은 아니었죠. 결과적으로 보면 한국을 한 수 아래로만 본 일본 경제산업성의 실책에 가까웠다고 봐야 할 겁니다.

불화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등은 일본의 대 한국 제재에서 가장 중요한 3대 수출 규제 품목이었다. (출처: 서울경제)

임예인: 사실 잘 이해가 안 되는 조치였어요. 아무리 일본의 첨단 소재 산업이 경쟁력이 높다고는 하지만, 지극히 희소한 자원이라거나 격차가 절대적이라거나 한 건 아니었잖아요.

이헌모: 결국 일본 스스로도 ‘일본의 산업 경쟁력’이라는 신화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앞에서 소개해드린 기사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21세기 초 일본 자체 반도체 프로젝트가 모두 실패하면서, 경제산업성은 체면을 버리고 TSMC 공장을 유치하려 했다고 합니다. TSMC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파운더리 업체죠. TSMC는 사실 일본에 공장을 짓는 걸 썩 내켜하지 않았고 일본이 적극적으로 보조금을 제시하며 세일즈 중이었는데, 이게 이상하게 일본에서는 “TSMC가 일본에 대규모 공장을 짓는 것 같다. 역시 일본은 망가지지 않았다”는 식으로 얘기가 돌았다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TSMC는 일본에 공장을 짓지도 않았죠.

임예인: 일본에서는 “도와주지 않는다“ “가르쳐주지 않는다” “상관하지 않는다“ 등으로 구성된 ‘비한 3원칙’이 나왔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상호 이익을 위한 무역인데, 마치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말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이헌모: 그래서 ‘일본의 현실을 모르는 건 일본인뿐’이라는 지적도 나오는 것이겠지요. 특히 아베 정권 아래에서, 한국과 관련한 조치를 취하는 데 매우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이 경제산업성 출신 관료들이었습니다. 졸속적인 수출 제한 조치를 포함해서 말이죠.

일본 네티즌이 한일 단교를 주장하며 만들었다는 슬로건. ‘도와주지 않는다’, ‘가르쳐주지 않는다’, ‘상관하지 않는다’는 3개 원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예인: 한일간의 격차가 좁혀지면서, 한 번쯤은 겪을 수밖에 없는 고난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헌모: 그렇습니다. 일본 내의 정치적 리더십 이전에, 과거와는 달라진 한국의 위상에 따른 자연스런 변화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나 생각합니다. 즉, 한국이 일본의 진정한 경쟁자가 되었다는 의미지요.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본 내의 여론이 자민당과 우익 세력을 통해 분출되고 있는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우호적인 관계로 변화하려면 일본 정권교체밖에는 길이 없어 보이지만, 지금의 일본 야당으로서는 그도 여의치 않으니… 앞길이 요원하다 할 수밖에 없네요.

‘혐한’을 주도하는 일본 저널리즘

임예인: 더 예전 얘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전부터 계속되어온 일본의 도발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토 분쟁이나 과거사 망언도 계속되었고요.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걸까요?

이헌모: 일본의 역사 교육 문제는 분명 심각합니다. 한국의 경우, 박근혜 정부 때 국정역사교과서 문제처럼 ‘정부가 앞장서서 가르치려고 해서’ 문제라면… 일본의 역사 교육은 ‘정부가 가르치는 걸 막아서’ 문제입니다. 제가 수업 중 학생들에게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해 알고 있었던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질문했더니, 120명이 넘는 학생 중에 10명이 채 안 되더군요. 그나마 거기서 유학생을 빼면 수는 훨씬 적어집니다.

임예인: 최근 미국의 한 드라마에서 관동대지진 학살 사건을 소재로 다룬 걸 보고, ‘일본인들이 불쾌해할 소재’라고 꽤 시끄러웠던 일도 생각납니다.

이헌모: 지금 일본인들은 역사를 모릅니다. 가르치지도 않고 찾아서 공부도 하지 않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지요. 어느 국가든 감추고 싶은 역사는 있겠지만, 일본은 그냥 감추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미화’ 또는 ‘축소’ 시키고 있으니까요. 매년 8월이 되면 일본도 나름 특집 방송 같은 걸 해요. 하지만 자신들이 원폭 피해국가임을 강조할 뿐, 자신들이 아시아 국가를 침략하고 점령 통치하면서 저지른 잔학한 만행은 온데간데 없지요.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등의 주장을 하며 조선인 학살을 자행했다.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임예인: 실제로 양국간의 역사 인식이 첨예하게 갈리잖아요. 한국에서는 일본이 전범국으로서의 인식이 없다고 주장하고, 일본에서는 이미 청산된 과거사에 한국이 계속 집착하며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주장하고요.

이헌모: 여기에는 저널리즘의 문제 또한 한 몫을 합니다. 일본은 선진국 중에서도 신문과 TV의 영향력이 매우 큰 편인데요. 일반지와 스포츠신문을 합쳐, 일본의 신문 발행 부수는 3,300만 부 이상에 달해요. 요미우리나 아사히의 발행부수는 720만 부, 480만 부로, 발행부수가 뻥튀기되었다는 논란까지 있는 조선일보가 100만 부를 겨우 넘기는 것에 비하면 어마어마하죠. 단순히 물량만 많은 게 아니라 신뢰도 역시 높은 편입니다. NHK가 69점, 신문은 67.7점, 민영TV방송도 61.3점에 달해요. 선진국 중에서 TV 방송과 신문 같은 언론 신뢰도가 일본처럼 높은 나라도 드물 겁니다.

임예인: 실제로 일본 저널리즘이 그 점수만큼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헌모: NHK 정도라면 모를까, 보수지나 민영 방송 같은 경우에 그렇지가 않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저널리스트로 이케가미 아키라라는 사람이 있는데요. 일본의 KBS라고 할 수 있는 NHK 출신 방송인으로, 왕성한 방송 활동과 저술 활동으로 일본의 여론 형성에 실제로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죠. 그런데 이 사람의 주장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와요.

그는 상해 임시정부는 실체가 전혀 없는 것이었고, 한국이 자신들의 힘으로 나라를 건국하지 못했다는 콤플렉스 때문에 이 역사를 끌어왔다고 말해요. 상해 임시정부가 일본에 투쟁한 결과 현재의 한국이 있다는 역사를 ‘만들었다’는 것이죠.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지배 과정에서 가혹한 행위를 한 것도 사실이지만, 한국 측에서 역사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그것이 극단적으로 강조되어 결과적으로 반일 정서가 심화된다는 주장이죠.

한국 대선 분석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이케가미 아키라. (출처: 광교신문)

임예인: 한국이 가르치는 역사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일본의 역사 교육이 썩 나은가 하면 그건 전혀 아니잖아요.

이헌모: 그렇습니다. 한국이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본인도 복잡한 근현대사 문제를 지극히 단순한 잣대로 일도양단하고 있는 거죠.

이런 문제는 최근 들어 더 심해졌습니다. 일본 미디어는 한국 정치에 꽤 관심이 높은 편입니다. 한때 조국 전 장관과 관련된 뉴스가 일본 미디어까지 지배할 정도였으니까요. 문제는 이걸 굉장히 단순한 구도로 묘사한다는 데 있어요. 예를 들어 박근혜 촛불시위에 나왔던 사람들은 좌파고, 좌파는 친북세력이라는 식이죠.

임예인: 촛불시위가 외친 박근혜 탄핵은 압도적인 여론의 지지를 받았었는데, 촛불시위 전체가 좌파라고 하면… 그건 너무 조악한 구분인데요.

이헌모: 그래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정부는 좌파고, 반미 반일주의자이며, 친북주의자이고, 주체사상 신봉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일제 부역자 후손 재산 몰수는 법치국가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식의 ‘통쾌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거죠.

외교 문제로 비화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용산역 앞에 보면 강제 징용공 동상이 세워져 있거든요. 일본 아나운서가 이 징용공 동상 앞에서 “이런 조작된 역사에 의한 동상 따위를 만드는 것이 한국은 창피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이 논리에 동조하는 한국인 학자를 섭외해 “창피하다”는 대답을 이끌어내요. 이런 프로그램이 공중파 프로그램으로, 휴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두 시간씩 편성되어 방송됩니다.

일본 방송에 등장한 강제 징용공 동상. (출처: 이 헌모 교수의 도쿄 30년)

임예인: 일본의 혐한 저널리즘이 심각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이헌모: 물론 한국 정부가 무조건 옳고, 반일도 무조건 옳다는 식의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근간이 반일이고 강제징용 같은 역사도 한국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라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노골적이고 편파적인 방식으로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세워 나가는 겁니다.

공영방송인 NHK 같은 경우는 그나마 낫지만, 민영방송사나 신문사 같은 경우 힌국 비하 내지는 깎아내리기로 ‘장사’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이 싫다고 하면서도 주야장천 한국 관련 방송을 하는 까닭이, 그게 시청률 확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참 웃픈 현상입니다. 또 재미있는 게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인데요…

임예인: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요? 한국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말씀이신가요?

이헌모: 네, 그렇습니다. 조선, 중앙을 비롯한 한국의 보수언론들은 일본어판 기사도 제공중인데요. 보통 문재인 정부와 한국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기사를 쓰면, 이게 일본 최대 포털인 야후재팬에 소개되고 바로 조회수 상위 랭킹에 들어갑니다. 그런 기사를 보면서 일본의 넷 우익들은 상대적 우월감에 젖게 되고, 한국을 향한 비방과 조롱을 더하는 거예요. 마치 서로 공조하는 느낌마저 들어요.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은 일본판에서는 제목을 ‘혐한’을 부추기는 내용으로 바꾸어 달곤 한다. (출처: MBC)

임예인: 저널리즘의 문제는 한국뿐만이 아니군요… 아니, 어쩌면 한국보다 더 심한 것 같기도 해요.

이헌모: 사실 한국에서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제가 아무래도 일본에 거주하며 일본 미디어의 문제점을 들여다볼 기회가 많다 보니 일본 쪽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됩니다만… 사실 한국에서도 일본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죠. 일방적인 선의나 섣부른 호의도 경계해야 하겠지만, 일방적인 비난과 매도 또한 경계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임예인: 왜 이런 문제가 오히려 더 심해지는 걸까요?

이헌모: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되는 거죠. 최근에는 유튜브도 문제입니다. 과도한 내셔널리즘을 자극해 돈을 버는 채널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어요. 특히나 한일관계는 양국 모두에서 내셔널리즘을 자극해 돈을 벌 수 있는 주제거든요. 일본에서 이미 혐한은 하나의 비즈니스입니다. 한국에서도 내셔널리즘을 자극하는 유튜브가 점점 늘고 있고요.

 

일본과의 외교 관계 개선은 왜 필요한가?

임예인: 좀 다른 방향에서 질문을 던져 보죠.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왜 필요할까요?

이헌모: 아무래도 한국은 안보나 경제 문제 등에서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크니까요. 한-미-일간 안보동맹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을 무시할 수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침 한국 보수세력은 미국에 대해 숭배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새 정부의 태도는 당연히 미국의 의도대로 일본과의 안보 등 관계를 강화하는 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싶네요.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한미일 공조를 중시해왔다. (출처: 채널A)

임예인: 점점 심각해지는 국제 정세 역시 한 몫을 할 것 같습니다.

이헌모: 그렇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이 홍콩, 대만 문제 등에서 야욕을 숨김 없이 드러내고 있고요. 여기에 최근 벌어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제질서를 크게 뒤흔든 사건이었습니다. 신냉전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 미국은 더욱 한-미-일간의 안보 공조를 강화하려고 할 겁니다.

임예인: 한미일 공조 강화가 중국을 자극할 우려는 없을까요?

이헌모: 미국의 입장을 추종하는 모양새가 되면 중국의 태도가 문제가 되겠죠. 이는 한한령 같은 제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 손을 잡아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지혜롭게 줄다리기하며 밸런스를 잡아야 하는데, 그런 균형외교를 과연 윤석열 정부가 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지요.

중국은 한국에 있어 가장 큰 수출입 상대국이다. (출처: 뉴스타파)

임예인: 반대로, 일본 입장에서는 어떤가요? 일본도 한국을 중요한 파트너로 생각할까요?

이헌모: 일본으로서도 한국은 중요합니다. 지정학적으로 가장 가까운 한국을 적으로 돌리게 되면 동북아시아에서 고립되고 마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한국과는 껄끄럽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려 하겠죠. 그게 북한, 중국, 러시아 등 대륙국가를 견제하는데도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미국의 압력 정도에 따라 일본 정부도 한국에 대한 태도를 바꿀 수 있다고 봅니다.

임예인: 경제적인 측면도 짚고 넘어가고 싶은데요. 일단, 일본의 경제 제재로 인해 한국은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을까요?

이헌모: 물론 ‘수출규제로 한국을 무릎 꿇리겠다’는 일본 넷우익 식의 시나리오가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역은 승패를 가르기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 한국 반도체 업계가 ‘탈일본’에 성공하긴 했습니다만 공급처를 바꾸는 과정은 굉장히 험난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실 어찌 보면 안 해도 될 고생을 했던 셈이죠.

한국 반도체 업계는 큰 피해 없이 ‘탈일본’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출처: 중앙일보)

임예인: 일본 입장도 궁금한데요. 말씀하셨던대로 핵심 소재를 끊어 한국을 무릎 꿇리겠다는 의도에서 출발했는데, 전혀 그렇게 되질 않았잖아요.

이헌모: 일본 내에서도 그런 인식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요즘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반도체 업계는 다소 힘든 시간을 겪긴 했지만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고, 반면 일본 업체들은 중요한 공급처가 끊겨 고난을 겪고 있다고 말입니다. 일부에서는 일본의 경제 제재를 일본의 자살골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임예인: 결국 상처뿐인 싸움이었군요.

이헌모: 한국은 일본에게 더이상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일본은 한국을 더이상 도와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외교나 무역을 마치 싸움의 도구처럼 여기고, 관계를 끊어도 밑질 게 없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사실 양국 관계가 나빠지면 양국 모두 손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씩이라도 대화의 물꼬를 틔웠으면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일관계를 다시 복원할 수 있을까?

임예인: 대선 결과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며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일본에 온건한 스탠스를 취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데요.

이헌모: 실제로 일본에서는 이재명보다 윤석열이 당선되기를 노골적으로 바라고 있었지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일본 저널리즘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이번 대선 역시 굉장히 단순한 구도로 바라보았죠. 이재명은 친북, 반일, 좌파로, 윤석열은 친미, 친일, 우파로 구분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니 윤석열 후보의 당선을 바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겠죠.

일본에서도 한국 대선의 향방은 초유의 관심사였다. (출처: 딴지일보)

임예인: 그런데 국민의힘이 일본과 가깝다는 것도 프레임인 것 같아요.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때도 반일 감정은 강하지 않았나요?

이헌모: 실제로 그렇습니다. 일본 미디어에서 한국 정치를 단순화해 이해하고 있을 뿐, 실제로는 상황이 훨씬 복잡하죠. 실제로 살펴보면,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집권 시기에 김대중, 노무현 집권 시기보다 한일관계는 오히려 더 악화되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독도를 공식 방문해 일본 우익들에게 ‘혐한’을 할 수 있는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지요. 조금만 파악해봐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데, 고정관념을 먼저 세워놓고 거기에 맞춰 세상을 해석한 것 뿐이죠.

임예인: 그럼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 외교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요? 일본의 기대대로, 윤석열 대통령이 꼬여버린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이헌모: 어느 정도 유화적인 제스처가 나올 수는 있을 겁니다. 일본 측에서도 기대 심리가 있고, 우리 측에서도 새 정권이 탄생했으니, 이를 기회로 한일 관계의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한일관계 개선의 의지를 보여왔고요.

다만 가시적인 변화가 당장 일어날 수 있을지는 회의적입니다. 실타래가 너무 꼬여있어요. 윤석열 대통령 개인이 한일 관계 개선을 원한다 해도, 양국 국민의 감정이 골이 상당히 깊게 파여 있습니다. 한국은 일본 전체가 우경화되었다고 생각하고, 일본은 한국이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생각하죠. 여기에 양 국민 모두 양국 협력의 필요성을 그렇게 절실하게 느끼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현직 대통령 사상 최초로 독도에 방문했던 이명박 대통령. 이로 인해 대일관계는 격랑 속에 빠져들었다. (출처: JTBC)

임예인: 맞아요.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요. 정부의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일에도 한계가 있잖아요. 당장 징용공 관련 대법원 판결만 해도 정부가 없던 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요.

이헌모: 그렇습니다. 위안부 문제나 징용공 판결 문제 등은 정부 차원에서 좌지우지하기 힘든 측면이 있죠. 아무리 윤석열이라고 해도 무대포가 아닌 이상, 하루 아침에 환경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랬다가는 과반수의 ‘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고요. 개선을 추구하긴 하겠지만, 아주 획기적인 접근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합니다.

임예인: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관계 개선에 나선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이헌모: 우선 한일관계 개선에 나서고자 하는 윤석열 정부의 의지 자체는 높게 평가합니다. 다만 한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과거처럼 저자세가 아니라, 대등한 입장과 위치에서 당당하게 맞서는 외교를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특히 재일 한국인들은 한국의 위상과 국격이 오른 데 자긍심을 갖고 있어요. 마땅히 대화에는 나서되, 재일 한국인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비굴한 외교는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임예인: 외교관계라는 게 한국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일본 쪽은 좀 어떤가요?

이헌모: 일본도 한국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올해 7월에 참의원 선거가 있는데요. 지금 기시다 정권과 자민당은 이 선거 결과에 따라 장기 정권이 될 수도 단명정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기시다 정권으로서는 선거 때까지는 한국 문제의 전환을 도모하기가 어려울 거예요. 기존의 노선을 유지하는 것이 선거 여론에 유리하다 판단할 테니까요. 따라서 5월에 윤석열 정부가 탄생했지만, 참의원 선거가 치러지는 7월까지는 특별한 액션도 변화도 일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올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어, 굳이 인기 없는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서진 않을 확률이 높다. (출처: SBS)

임예인: 양국 관계를 다시 되돌리려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양극화된 정치, 내셔널리즘을 자극하는 미디어, 나빠질 대로 나빠져 버린 국민 감정…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헌모: 차근차근 나아가는 수밖에 없겠지요. 민간 부문에서의 교류도 도움이 될 테고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의 한일 갈등은 한국의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긍정적인 변화도 분명 관측됩니다.

양국간의 관계가 일방향적인 것에서 쌍방향적인 것으로 점차 변화해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K-POP이나 한류 콘텐츠의 영향으로 한국으로 취업을 희망하는 일본인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해요. 제가 일본에 올 때만 해도, 한국인이 일본으로 취업을 희망하는 경우는 있어도 일본인이 한국으로 취업을 희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거든요.

임예인: 어쩌면 문화가 열쇠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이헌모: 뭐든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보다는 상호간의 밸런스가 맞는 것이 바람직하죠.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대학에서 매년 ‘한국 사정’을 가르치며 ‘친한파’를 십 수년간 양성해온 저도 나름 공헌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분노와 증오만 키워가는 내셔널리즘보다는, 서로의 장점은 인정하고 단점은 타산지석으로 삼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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