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시티 오브 호프 (City of Hope) 병원과 UCLA의 연구팀은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 쥐를 이용한 동물 모델을 이용해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연구팀이 집중한 것은 지방 세포로 분화하는 지방 전구 세포 (adipocyte progenitor cells (APCs))입니다. 연구팀은 젊은 쥐의 APCs를 나이 든 쥐에 이식해 지방 세포가 얼마나 형성되는지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흥미롭게도 이식된 젊은 지방 세포는 나이든 쥐의 지방 세포만큼 많이 증식하지 않았습니다. 연구팀은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세포 하나의 RNA의 염기 서열을 분석해 어떤 유전자가 활성화되는지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지방 세포로 활발하게 분화하는 APCs인 CP-A (committed preadipocytes, age-specific)라는 세포가 있다는 사실 역시 밝혀냈습니다.
연구팀이 밝혀낸 기전은 leukemia inhibitory factor receptor (LIFR)라는 신호 체계를 통해 나이가 들면서 늘어나는 CP-A 세포가 지방 세포로 활발히 증식해 복부 비만을 유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인간에서 지방 세포를 이식하는 실험은 할 수 없기 때문에 대신 연구팀은 인간의 지방 조직을 입수해 분석해 인간에서도 CP-A 세포가 비슷한 기전으로 뱃살을 늘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복부 비만은 보기에만 나쁜 것이 아니라 심혈관 질환과 당뇨, 그리고 전체 사망률을 높일 수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치료가 필요합니다. 연구팀은 이번에 밝힌 LIFR이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는 목표가 될 것으로 보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만약 인간에서 LIFR이 뱃살을 만드는 데 중요한 기전이라면 이를 차단해서 뱃살만 조절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전에 운동을 통해 뱃살이 크게 늘어날 기회 자체를 주지 않는 것이 더 건강하고 빠른 방법이 될 것입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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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바빠도 쉬어줘야 그 다음이 있다!
원문: 서늘한여름밤
안녕하세요, 코치 이서현입니다. 아마도 저를 창작자 서늘한여름밤으로 알고 계신 분들이 더 많겠지만, 저는 사실 코칭심리학으로 박사를 수료한 심리학자이기도 합니다.
심리상담이 물리치료라면, 코칭은 헬스PT와 비슷합니다.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 심리상담이라면, 전반적인 마음의 근력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심리코칭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완벽주의가 있어서 자꾸만 나를 비난하게 됩니다.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자꾸 미루고 자책하게 돼요.
제가 주로 만나는 고객들은 너무 높은 기준으로 힘들어하는 완벽주의가 있는 분들,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직장인, 자기비난으로 소진된 분들입니다.
저와 함께 코칭을 통해 성장과 변화를 경험하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블로그 포스팅과 링크를 둘러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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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모(FOMO)증후군이란 말은 2004년부터 사용되었지만, 스마트폰과 유튜브, SNS가 만연한 2010년도부터 널리 퍼졌습니다. 포모증후군은 원래는 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였습니다. 나 혼자 뒤처질까 두려워하는 현상이나, 대인관계에서 홀로 도태되어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해 가지는 강박적 불안입니다. 하지만 부동산 폭등, 2차 전지 관련주 폭등, 비트코인, 벼락거지 등의 출현으로 인해 한국에서는 경제적인 의미가 과도하게 부각된 단어죠.
포모증후군의 가장 무서운 점은 무엇일까요? 내면의 성장이나 성숙에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는 대신, 타인이 이룬 강남 아파트나 포르쉐, 롤렉스 같은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성과에만 가치를 두고 과몰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진득하게 집중하지 못하게 됩니다. 관심을 가져야 할 정보와 주제가 너무 많다 보니, 타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할 시간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죠.
책을 한 권 읽을 시간도 에너지도 없는 탓에, 그 책을 10분으로 요약한 유튜브 시청으로 독서를 대신하게 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유튜브 콘텐츠를 30초로 요약한 숏폼이나 릴스에 탐닉하게 되죠.
최근 한국에서 성인ADHD 유병률이 급증한 것은 포모증후군이 만연하기 시작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손흥민, 오타니 같은 스포츠 재벌이나 비트코인으로 벼락부자가 된 타인의 성공을 볼 때 우리 중뇌변연계의 보상회로와 도파민이 자극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쾌감과 불안을 동시에 경험하게 됩니다. 성공에의 강렬한 갈망과 질투심을 느끼고, 왜 나는 저런 걸 이루지 못했는지 후회하고 열등감을 느끼며 초조해하죠.
이대로 있으면 나는 망해! 뭐라도 해야 해!
강박적인 충동과 불안은 자신으로 하여금 사전에 계획되지 않은 행동을 하게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실수가 반복되면서 자책과 우울에 빠지게 됩니다. 이로 인해 집중력과 인지 능력, 의사 결정능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집니다. 이게 바로 성인 ADHD의 원리입니다.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을까요? 간단한 팁을 드릴까 합니다.
원문: 박종석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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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2~2.5리터의 정도의 물이 소변, 대변, 땀 등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 2.5리터 정도의 수분을 물과 음료, 그리고 음식에서 섭취해야 합니다.
너무 적은 양의 물을 섭취하는 경우 탈수에 따른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나고,심한 경우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물론 수분 섭취가 부족해 몸의 물이 부족해지면 소변으로 나가는 수분을 줄여 조절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신장 결석처럼 여러 가지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어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남는 수분은 소변으로 쉽게 배출되기 때문에 지나치게 많이 마시는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수분을 권장량보다 약간 넘치게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학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의 벤자민 브레이어 박사 (Benjamin Breyer, MD, chair of the UCSF’s Department of Urology)가 이끄는 연구팀은 수분 섭취와 관련된 여러 논문들을 분석해서 많은 양의 수분을 섭취하는 경우 건강상의 이득과 손실을 비교했습니다.
1. 비만
우선 치료적 목적으로 물을 많이 마시는 대표적인 경우 중 하나는 바로 비만입니다. 식사 전 물 한 컵이나 혹은 그 이상의 물을 마시면 포만감이 빠르게 찾아와 식사량을 줄일 수 있다는 데서 기인한 방법입니다.
물은 안전할 뿐 아니라 비용도 거의 들지 않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이 시도된 치료법입니다. 식사 전 하루 3번, 하루 1.5리터의 물을 12주에서 12개월 추가로 섭취한 경우 체중을 의미 있게 감소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내성이 생겨 추가로 간식을 더 먹거나 하는 방식으로 빠져나갈 수 있어 완벽한 해결책은 되지 못합니다.
2. 당뇨
비슷한 원리로 당뇨 환자에게도 식전에 물을 추가로 먹는 방법이 권장되기도 합니다. 식사를 덜 하면 식후 혈당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부가적으로 체중을 줄이면 혈당 조절에 더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다만 식후 혈당이 떨어지는 효과는 부분적으로 피가 희석되면서 나타나는 효과이기도 합니다. 이것 역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보조적인 방법에 그치며 적극 권장할 정도는 아닙니다.
3. 두통
흥미로운 연구 중 하나는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 두통에 미치는 효과입니다. 다만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와 그렇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섞여 있어 확실히 권장하기는 어렵습니다.
4. 요로 결석과 감염
아마도 수분 섭취가 가장 적극 권장되는 경우는 요로 결석과 요로 감염일 것입니다. 요로 결석은 많은 수분 섭취를 통해 돌이 나오는 것을 촉진할 수 있고 요로 감염의 경우에도 세균이 씻겨 나가는 만큼 감염을 예방하거나 더 쉽게 치료할 수 있습니다.
요로 감염의 경우 하루 1.5~1.9리터 정도의 물을 마시면 재발이나 감염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로 결석의 경우에는 하루 2리터 이상의 수분 섭취가 도움이 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요로 결석 예방에는 수분 섭취가 적극 권장됩니다.
다만 반대로 소변이 수시로 보고 싶은 과민성 방광 환자의 경우에는 많은 수분 섭취가 증상을 더 악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실금이 있거나 혹은 야간뇨가 잦은 경우에도 많은 수분 섭취가 증상을 더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증상과 질병에 따른 적절한 수분 섭취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투석을 받고 있는 신부전 환자나 심장의 수축력이 약한 심부전 환자 등도 수분을 너무 많이 섭취하거나 수분을 끌어당기는 소금을 많이 섭취하면 안 되는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일반적으로 권장되는 수준의 수분 섭취 (약 2.5리터)는 건강한 성인에서 모두에게 권장되지만, 일부 질병을 지닌 경우 더 적극적인 섭취가 권장되거나 혹은 약간 줄일 것을 권장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모두에게 맞는 치료법이나 권고안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상황에 맞춰 부족하거나 넘치지 않게 행동하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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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꿈의 비만치료제’라 불리는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가 국내 출시되었다. 기존 약들에 비해 식욕 억제 등을 통한 체중감량 효과가 탁월한 탓에 없어서 못 구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비만은 각종 질병 위험을 높이는 주범이라는 점에서 강력한 비만치료제의 등장을 그 자체로 문제 삼을 수 없다. 다만 위고비 열풍 현상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오남용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위고비는 BMI(체질량지수) 30 이상인 성인이거나 고혈압 등 체중 관련 동반 질환이 있으면서 BMI 27 이상인 과체중 환자만 처방받을 수 있는 전문의약품이다. 하지만 미용 목적의 다이어트약 수요가 상당한 우리 사회에서 이것의 왜곡된 투약 행태가 횡행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미 그러한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 의료기관들의 상업적 광고가 난무하는 가운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증상을 묻지 않고 처방해 준다는 병원 목록이 돌고 있으며, 청소년을 포함한 개인 간 불법 중고 거래도 이뤄지고 있다. 비급여 의약품으로 분류돼 병·의원, 약국마다 판매 가격이 제각각인 탓에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곳에 대한 정보도 공유되고 있다.
특히 전공의 이탈 사태를 계기로 허용 기준이 대폭 완화된 비대면 진료 영역이 부적절한 처방의 온상이 되고 있는데,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별다른 제약 없이, 또 투약법이나 부작용에 대한 설명 없이 단 수십 초 내에 처방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그간 우리 연구소를 비롯하여 시민사회에서 줄기차게 경고했던 비대면 진료의 위험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례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무분별한 투약에 따른 부작용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위고비는 허가 범위 내에서 사용해도 두통, 구토, 탈수로 인한 신장 기능 악화, 근 손실, 급성췌장염 등의 부작용이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희귀 눈 질환의 발병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게다가 냉장 보관해야 하는 주사제인 위고비를 불법 유통하는 과정에서 변질·손상이 발생해 건강에 위해를 끼칠 우려도 적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달 국정감사 자리에서 복지부 장관과 식약처장은 위고비 오남용 예방을 위한 홍보 활동을 적극 펼치는 한편 비대면 진료 처방 금지 의약품 범위에 이를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는데, 과연 이런 조치만으로 충분할지 의문이 든다. 과도한 시장 수요가 사라지지 않는 한 제도적 허점을 파고드는 거래 행태를 근절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위고비 열풍의 또 다른 우려는 접근성의 격차, 즉 소위 ‘위고비 디바이드’라 불리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위고비의 국내 병·의원과 약국 공급 가격은 한 달 투약 기준으로 37만 원이지만, 유통 비용과 진료비 등이 포함된 실제 부담 비용은 최소 40만 원대에서 최대 100만 원대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환자들이 부담하기에 결코 적지 않은 가격으로, 이러면 의학적 필요보다는 경제적 능력에 따라 투약 기회가 불균등하게 주어질 우려가 크다.
실제로 작년 8월 미국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뉴욕시 가운데 비만율과 당뇨 발병률이 가장 낮은 부촌 지역에서 위고비와 같은 비만치료제 처방 비율이 가장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부익부 빈익빈’의 ‘마태 효과’가 나타난 현상으로 설명했다. 즉, 부유층이 미용 목적으로 비만치료제를 쉽게 더 많이 구매할수록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부족한 비만인들은 이를 구하기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강남에 몰려있는 수많은 비만클리닉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국내 사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접근성의 격차는 단순히 체중감량과 건강 결과의 불평등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위고비는 부유층의 체중감량 능력을 증대시킴으로써 비만을 더욱 도덕적 문제로 만들 수 있다(☞ 관련 논문: 바로가기). 이는 비만한 사람은 ‘게으르고 불성실하며 절제력이 부족하다’고 하는 그릇된 편견의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획기적인 치료제가 존재하는데도 여전히 뚱뚱하다는 건 그만큼 살 빼려는 의지가 부족한 개인의 책임 문제로 해석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슈퍼 비만치료제가 등장했다고 해서 비만과 그에 결부된 ‘비만 낙인’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전의 “뚱뚱한 사람은 살 빼기 위해 열심히 운동해야 한다”는 믿음이 이제는 “살 빼주는 약을 살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믿음 정도로 바뀌게 되었을 뿐이다.
비만 치료가 불필요한 사람들조차 위고비를 찾는 까닭은 간명하다. 바로 ‘비만차별주의(Weightism)’가 만연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한비만학회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10명 중 6명이 ‘우리 사회가 비만이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차별하는 경향이 있다’고 응답했을 정도다. 그리고 당연히 남성(52%)보다 여성(71%)이 비만 낙인과 차별을 더 크게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이러한 체지방에 대한 집단적 두려움을 설명하려면 몸을 끊임없이 최적화하도록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지적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독일 역사학자 위르겐 마르추카트는 <피트니스의 시대>(2021, 호밀밭)에서 몸을 ‘핏하게 가꾸는’ 것이 도덕적 의무가 된 시대라고 역설한다. 따라서 이러한 규범적 이상에 반하여 자기 몸을 엉망이 되도록 방치하는 ‘패트니스(Fatness)’에 대한 경멸과 혐오는 정당화된다.
오늘날 핏한 체형은 능력의 상징, 즉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는 능력”과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는 능력”의 상징이 되었고, 뚱뚱함은 이런 능력의 결핍으로, 뚱뚱한 사람은 실패자로 간주된다. ‘매력적’인 체형이 취업 가능성을 높이고 임금과 승진 등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외모가 경쟁력이 된 시대에 ‘몸매 가꾸기’에 대한 투자는 ‘합리적’ 생존 전략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안티비만 담론이 지배적일수록 장애인을 비롯하여 고강도 노동과 저임금 등 사회구조적 원인으로 인해 ‘핏한 몸’을 만들기 힘든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더 큰 피해와 고통을 겪게 된다. 따라서 체형에 따른 부당한 차별 대우에 반대하며 체형 다양성이 존중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전개될 필요가 있다. 한데 해외 사례가 보여주듯이, 위고비의 출현은 ‘자기 몸 긍정하기(body positivity)’와 같이 비만 낙인에 맞서는 운동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물론 비만 치료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비만의 상당 부분이 생리학적, 유전적 요인에서 기인한다는 것은 일찌감치 규명된 과학적 사실이다. 이에 의료전문가들은 “비만은 질병이다”이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면 비만 낙인도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견 타당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이러한 비만의 의료화는 구조적 원인을 은폐하는 방식으로 낙인을 강화하고 살찐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억압하는 측면이 있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이런 긴장이 발생하는 까닭은 비만 개념의 모호성 때문이다. 세계비만연맹의 정의에 따르면 비만은 단순한 과체중보다는 생리적 (식이 섭취 조절) 기능장애에 가깝다. 반면 WHO는 비만을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비정상적이거나 과도한 지방 축적”으로 정의한다. 이는 건강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BMI 범주가 ‘비만’에 속하는 경우가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대개 전자의 의미로 “비만은 질병이다”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뚱뚱함은 질병이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며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다.
이 논란을 해결하는 한 가지 철학적 방법은 비만 논의에서 ‘질병’ 개념의 의미를 의도와 맥락에 따라 실용적, 전략적으로 구분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청각장애인 부모가 자녀의 청각장애를 질병이 아니라 정체성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보험회사가 청각장애를 치료받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이 상호 모순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관련 논문: 바로가기).
하지만 혼란을 피할 수 있는 더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전문가들이 그냥 용어를 바꾸는 것이다. 미국임상내분비학회가 비만 낙인을 해소하기 위해 비만에 대한 새로운 진단 용어로 ‘지방증 기반 만성질환(adiposity-based chronic disease, ABCD)’을 제안했듯이 말이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마지막으로 위고비 열풍 현상과 관련해 좀 더 넓은 차원에서 생각해 봐야 할 점은 의약품 생산 체제의 불평등 문제다. 삭센다와 위고비를 개발한 덴마크 제약회사 노보노디스크는 이 약들 덕분에 단숨에 유럽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이러한 성공 사례는 비만과 같이 큰 수익 창출이 기대되는 치료제로 연구개발이 집중되는 양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렇게 비만치료제 개발에 막대한 R&D 예산이 투입될수록 환자 수가 적어 시장성이 부족한 중증 희귀난치성질환이나 소외열대질환 등의 치료제 개발은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즉, 슈퍼 비만치료제의 눈부신 성공 이면에는 사회적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왜곡함으로써 각종 건강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추세적 경향이라면 조만간 제2, 제3의 위고비가 계속 출시될 것 같다. 그런데 과연 이런 치료제와 산업들이 우리 사회의 건강 불평등 완화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총체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볼 때에야 한편에서는 식품 산업계의 이익을 위해 불량식품으로 살찌우고 다른 한편에서는 바이오제약 자본의 성장을 위해 핏한 몸이 될 때까지 비만약을 먹이는 체제적 힘, 즉 우리를 ‘비만’이라는 굴레에 가둬 놓고 못살게 구는 체제의 통치 합리성을 문제화할 수 있을 것이다. 위고비는 우리 사회를 ‘비만 공포(혐오)’로부터 해방시켜줄 수 없다.
원문: 시민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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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유병률의 증가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40세 이하에서 진단되는 2형 당뇨 환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 래드클리프 의학부 (University of Oxford’s Radcliffe Department of Medicine)의 연구팀은 40세 이전에 2형 당뇨로 진단받은 경우 사망률이 4배 정도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옥스퍼드 및 시드니 대학의 베릴 린 박사 (Dr. Beryl Lin)와 동료들은 25~65세 사이 영국 당뇨 환자 4,550명을 30년 이상 추적 관찰한 UK Prospective Diabetes Study 데이터를 분석해 진단 시점과 사망률의 관계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젊은 나이에 진단받은 당뇨 환자일수록 같은 연령대의 정상 인구와 비교해서 사망률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젊은 나이에 진단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당뇨를 앓는 기간이 길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당뇨를 앓은 기간이 길수록 각종 합병증 발생 위험도는 늘어나며 췌장의 남은 베타 세포의 고갈도 빨라져 결국 더 심한 당뇨를 앓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따라서 심혈관 질환이나 만성 신부전 같은 주요 합병증이 빠르게 나타나 사망률이 네 배 가까이 (3·72 [95% CI 2·98–4·64])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연구는 젊은 나이에서 발생한 당뇨 환자의 빠른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비만과 운동 부족, 건강하지 않은 식습관 같은 위험 요소를 먼저 조절할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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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병원의 폐업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경상남도 동부권에서만 종합병원 2개 기관이 문을 닫았다.
김해 중앙병원은 지역응급의료센터 운영 등 지역의 필수의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했으나 부실운영과 무리한 신축병원 건립 실패로 2023년 10월 운영을 중단하였다. 웅상중앙병원은 동부 양산 유일의 응급의료기관이었지만 병원장 별세 후 인수자를 찾지 못해 2024년 3월부터 폐업 상태다. 경남 서부권 농촌 지역에서도 군 내 유일한 응급실이 있었던 새하동병원이 경영난으로 휴업을 반복하다가 2022년 3월 결국 폐업하기도 했다
병원이 폐업한 후 지역 경제나 의료 접근성, 건강 결과 등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연구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관련 연구 「농촌 종합병원 폐업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 폐업 후 대체로 응급 이송 시간이 길어지고 병원서비스 접근성은 감소했지만, 의료의 질이나 건강 결과 측면에서는 뚜렷한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질문해 보자. 지역 병원이 폐업하고 사망률이 증가하지 않았거나, 심지어 건강 결과는 오히려 좋아졌다고 한다면 병원 폐업은 문제가 아닌 걸까?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병원이란, 의료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만약 병원의 존재 의의가 숫자로 요약되는 건강 결과에만 있다고 하면 지역의 병원 하나쯤 없어져도 괜찮다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병원과 주민이 맺는 사회적 관계 자체를 의미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면, 병원 폐업 후 주민의 인식과 경험을 세심히 살펴야 비로소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된다.
오늘 소개하는 논문은 미국에서 농촌 병원이 폐업하고 1년 뒤에 주민의 인식을 조사한 연구다.
연구의 배경이 된 미국 테네시주는 2010년 이후 14개의 농촌 병원이 폐업했다. 그중에서도 애팔래치아는 산간 지역으로서 경제적으로 낙후되었을 뿐 아니라 의료 접근성도 다른 지역보다 떨어진다. 의사를 비롯한 의료 제공자가 부족하고, 의료기관까지 거리도 멀며, 교통 상황도 열악하다.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의 비중이 높고, 건강 정보를 습득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 병원의 폐업은 기존 건강 불평등을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더 문제적이다.
연구진은 조사를 위해 54병상 규모의 작은 병원이 폐업한 지역을 찾았다. 빈곤율과 실업률이 높고 의료서비스 공급도 부족한 농촌 마을이었다. SNS와 지역 언론의 온라인 광고를 통해 병원에 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모집했고, 연구참여자가 소개해준 다른 주민을 만나는 방식으로 총 24명을 인터뷰했다. 인터뷰 내용을 분석하기 위해 의료 접근성을 가용성(availability), 접근성(accessibility), 편의성(accommodation), 지불능력(affordability), 수용가능성(acceptability) 등 5가지 차원으로 구성한 이론적 틀을 활용하였다.
연구 결과, 접근성 면에서는 모든 연구참여자가 병원 폐업 후 진료를 위한 이동시간이 길어졌다는 데 동의했다. 설상가상으로 외지 병원으로 이동하려면 더 열악한 도로를 거쳐야 했다. 대중교통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했고 특히 노년층과 거동불편자가 교통수단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주민들은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워졌다는 인식도 공유하고 있었다. 응급의료와 전문의 서비스는 더 이상 지역 내에서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주민들은 근처에서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몹시 애석해했다. 과거와 달리 기본적인 CT 검사를 위해서도 외지로 나가야만 했다.
지역 병원이 폐업하면서 의료 이용의 경제적 부담도 가중되었다. 외지 응급실에 가기 위해 구급차를 이용해야 하는 상황은 가장 일반적인 걱정거리였다.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들은 의료비 문제로 병원 방문을 미뤄야 하거나 이용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다고 염려하고 있었다.
일부 주민은 이전보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진료받기가 불편해졌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연방공인보건센터에서 의료진을 만나려면 몇 달이 소요되는 일도 있었다. 병원 폐업 전에는 지역에서 365일 24시간 응급 진료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일과시간에 맞춰 진료를 받으려면 휴가를 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주민들은 병원과 맺고 있던 관계를 잃게 되었다. 기존 병원의 의료진과 직원은 몇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이였고, 이는 ‘저 사람은 나를 진심으로 돌봐줄 것’이라는 신뢰로 이어졌다. 드나들던 병원 시설의 익숙함도 주민들이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병원 폐업과 함께 친숙한 관계도 사라지고 말았다.
논문은 결과를 갈무리하며 농촌 응급의료기관 지정 및 재정 지원, 일차의료 강화, 메디케이드 확대, 대체 의료시설을 확충하기 위한 법 개정 등 다양한 층위에서 의료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전략을 제시한다. 실질적인 정책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함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우리 지역의 의료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동력이 없이는 아무리 좋은 정책도 제대로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와 저성장, 수도권 집중화가 심화하는 시대에 숫자 싸움만으로 비수도권 비도시 지역에 힘을 싣기는 쉽지 않다. 숫자를 통해 불평등을 드러내려는 노력의 가치를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차원에서는 의료란 문서상의 건강지표가 아니라 사람들의 실제 삶과 생활을 낫게 만들려는 도구라는 점을 주장하고, 주민의 고유한 인식과 경험을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있게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연구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인터뷰를 통해 정책의 내용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실마리를 포착한 데 있지 않다. 그보다는 고작 54병상짜리 병원이 없어진 지역을 주목하고, 소중한 병원을 잃은 사람들의 경험세계를 탐구해 공적 의미를 부여한 것 자체에 있지 않은가 한다.
원문: 시민건강연구소
서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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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소포자충은 사람에도 쉽게 감염되며 뇌에 숨어서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인간의 정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별로 좋은 기생충은 아니지만, 과학자들은 이 기생충의 놀라운 능력 하나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바로 뇌를 보호하는 장벽인 BBB(blood-brain barrier)를 쉽게 통과하는 능력입니다.
뇌는 매우 민감한 장기입니다. 그래서 머리는 뇌를 두개골과 뇌척수액으로 둘러싸서 잘 보호하고 있습니다. 혈액에서 아무 물질이나 쉽게 뇌세포로 들어가는 것도 막기 위해 BBB라는 방호벽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약물이나 단백질을 투여해서 뇌 질병을 치료하려 할 때도 BBB가 막기 때문에 의사들을 곤란하게 만듭니다.
글래스고우 대학의 오디드 레카비 교수(Professor Oded Rechavi)와 동료들은 톡소포자충을 살아 있는 약물 전달 장치로 만들기 위해 레트 증후군(Rett syndrome) 치료 물질인 MeCP2를 생산하도록 유전자를 조작했습니다. 이 실험에는 쥐와 미니 인공 장기가 이용됐죠.
결과적으로 유전자 변형 톡소포자충을 원하는 단백질을 주입할 수 있는 미니 공장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BBB를 손상시키지 않고 다른 뇌 조직에 큰 영향이나 염증 없이 원하는 단백질이나 약물만 투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톡소포자충이 계속 살아있으면 뇌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만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스스로 사멸하는 연구도 진행 중입니다. 사람에게 실제 임상 시험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과정이 남아 있겠죠. 하지만 자연이 이미 개발한 BBB 통과 마이크로머신인 톡소포자충을 활용한다는 아이디어가 기발한 것 같습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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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 하면 무엇부터 떠오르는가? 흔히 술, 담배, 마약 같은 물질중독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또 다른 중독 유형인 ‘관계중독(relationship addiction)’을 지적한다. 이는 물질중독이 아닌 행위중독의 일종으로, 타인과의 관계에 과도하게 의존하며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관계중독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개인적으로는 ‘굳이 그런 개념이 필요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쇼핑 중독이나 마약 중독만큼 해로워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관계중독인 사람들은 늘 주변에 사람들이 많고, 인맥도 풍부하며, 외로움을 덜 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다.
둘째, 이건 학술적인 문제인데 ‘관계중독’이 다른 유사한 개념들을 놔두고 굳이 독자적으로 따로 구분 지어 써야 할 이유가 있는 개념인지 분명치 않았기 때문이다(심리학자들은 개념·이론들이 남발되는 것을 싫어한다.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겠지만 심리학자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바는 가급적 적은 개념·이론만으로도 많은 현상을 설명하는 일이다).
애착, 의존성 성격장애, 친밀한 관계, 사회적 지지, 헌신적 관계, 스토킹 등 타인에 대한 열망을 설명하는 다른 개념들은 이미 많다. ‘관계중독’이라는 개념이 살아남으려면 기존의 다른 어떤 개념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현상이 있어야만 한다.
여기에 관해 관계중독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놓았다. 우리가 술에 중독되는 것처럼, 쇼핑에 중독되는 것처럼, 단 음식에 중독되는 것처럼 ‘관계’에 대해서도 중독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이다. 다시 말해 때로 가까운 관계가 ‘중독’으로 정의될 수 있는 이유는, 중독자들이 경험하는 몇 가지 특징을 공유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관계중독자들은 강렬한 ‘갈망’을 경험한다. 퍼마시고 또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 기분이랄까?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관계중독자들은 자신이 집착하는 그 관계 속에 시간과 돈,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들을 아낌없이 쏟아붓는다는 특징이 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특정 관계 하나에 모든 것을 ‘몰빵’하지 않지만, 이들은 무엇이든 다 내어줘야지만 온전히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잘못된 착각을 갖는다.
잠깐만 연락이 닿지 않아도 안절부절못한다. 초 단위, 분 단위로 왜 연락이 안 되냐, 무슨 일 있냐, 나 무시하는 거냐, 제발 연락해라, 폭탄 문자를 보내며 상대를 들들 볶는 것이 관계중독자들의 특성이다. 왜 그럴까? 관계 경험을 충족하지 못할 때의 부정적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관계가 멀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면 공허하고, 우울하고, 불안한 감정에 사로잡히기 일쑤이다.
3. 통제 결여
때로 관계중독자들은 자신이 관계에 대해 갖는 이러한 집착이 비정상적인 것임을 인식한다. 그래서 이제는 좀 집착을 줄여보고자 나름대로 노력을 해본다.
하지만 의식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대로 상대에 대한 관심을 끊기가 어렵다. 자꾸만 돈과 시간을 퍼붓고 싶어서 견디기가 어렵다. 통제를 위한 노력의 반복적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 관계중독자들의 특징이다.
4. 일상생활의 어려움
오로지 인생의 목적이 ‘그 한 사람’으로 고정되고 만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소홀해지기 시작한다. 학교나 회사에서도 도통 집중하질 못한다. 심각한 경우 사람답게 사는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맹목적으로 상대와의 관계에 집착하기만 한다.
결과적으로 일상생활의 어려움이 가중될수록, 관계중독자들은 더 절박해진다. 이제는 진짜로, 저 사람 아니면 난 살아갈 수 없다는 극단적인 신념이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관계중독’과 ‘의존성 성격장애(Dependent Personality Disorder)’를 혼동한다. 그러나 두 상태 모두 타인과의 관계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특징을 공유하지만, 이 둘은 중요한 차이점을 가진다. 관계중독자가 보다 더 적극적이고 주체적이라면, 의존성 성격장애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다.
관계중독자들은 자신이 헌신하는 만큼, 상대방에게도 자기가 하는 것만큼의 헌신을 원하고 요구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관계에 집착하면서도 정작 상대의 생각과 의견에 자신의 행동을 굳이 맞추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느낌일 것이다. 관계중독자들은 진심으로 상대방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자기 자신의 헌신적인 모습을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반면 의존성 성격장애의 경우, 상대에게 모든 결정을 넘긴다는 특징이 있다. 다른 사람의 결정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혼자서는 그 어떠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며(심지어 상대방에게 어떤 종류의 애정과 노력을 쏟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상대방의 승인과 지지 없이는 자신감을 갖지 못한다(관계중독자들은 상대의 반응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그냥 아낌없이 퍼부어댈 수 있는 자기 자신이 좋고, 거기에 어울려주는 상대방이 좋을 뿐).
나름대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감정을 조절한다거나 건강하게 타인과의 경계를 설정하기 위한 노력은 좋다. 필요하다면 자신과 단단히 약속을 걸고 하루 몇 분 이상은 상대에게 연락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식의 실천과제를 내걸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될까? 솔직히 나는 회의적이다. 관계중독이 술 중독·마약 중독·쇼핑 중독·도파민 중독 등 다른 여타 중독들과 증상을 공유한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법마저 비슷하지 않을까?
술 중독이 말로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듯, 담배 중독이 단지 마음만 먹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듯 전문가 등 제삼자의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 적극적으로 개입, 처치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별은 답이 아니다. 아마 하라고 해도 못할 거다(마치 알코올 중독자에게 ‘술 끊는 게 답이다’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그보다는 누군가가 이별을 도와줄 수 있도록, 이별 이후 다친 마음을 추스를 수 있도록, 상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좋다고 본다.
원문: 허용회의 사이콜로피아
위의 내용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허작가의 사이콜로피아 홈페이지(바로가기)를 확인해 주세요.
제 브런치스토리의 글은 유튜브(바로가기)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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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대학 연구자들은 아스피린 복용이 대장암 위험도는 11%, 위장관 암 위험도는 8% 정도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알아내고 더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의 일반 외과 (Chirurgia Generale Unit in Padova, Italy) 연구팀은 그 기전을 좀 더 자세히 알아내기 위해 2015년에서 2019년 사이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대장암 환자 238명의 조직을 확보한 METACCRE 코호트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이 가운데 13%인 31명이 아스피린을 복용하고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우선 전체 코호트에서 인체의 항암 면역력에 중요한 종양 침투 림프구(tumor-infiltrating lymphocytes, TIL)와 면역 화학, 전이 등을 조사하고 일부 환자들을 모은 IMMUNOREACT1 코호트에서는 여기에 더해 면역 조직 화학, 유세포 검사(immunohistochemistry and flow cytometry)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IMMUNOREACT1 코호트 130명에서는 14명이 아스피린을 복용하고 있었습니다.
연구 결과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사람에서 면역 세포가 암세포를 감지하는 능력이 향상되어 더 효과적으로 암세포를 제거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정확한 기전은 알 수 없으나 연구팀은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아스피린의 암 억제 능력이 대장에서 가장 마지막 부분인 직장에서도 잘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곳은 아스피린의 농도가 가장 낮을 수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에 의외의 결과입니다.
정확한 기전을 알아내기 위한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대장암에 좋다고 아스피린을 무턱대고 복용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경구용 아스피린을 대장암 억제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대장에서 높은 농도를 유지할 수 있게 형태를 바꿔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장용제처럼 위산이 아니라 장 안에서 서서히 녹기 시작해 대장에서 높은 농도를 유지하는 알약 형태가 효과적입니다. 실제로 이런 아스피린 제재가 더 효과적인지 역시 앞으로 검증해야 할 과제입니다.
아무튼 나온 지 벌써 100년 넘었지만, 현재도 새로운 약물 효과와 기전이 발견되는 약이라는 점에서 아스피린이 새삼 놀라운 약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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