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 https://ppss.kr 필자와 독자의 경계가 없는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Sun, 13 Oct 2024 11:27:11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5.8.10 https://ppss.kr/wp-content/uploads/2015/07/ppss-100x100.png ㅍㅍㅅㅅ https://ppss.kr 32 32 뉴진스 다니엘과 하니가 인터뷰에서 쓴 영어 표현을 알아보자 https://ppss.kr/archives/267322 Sun, 13 Oct 2024 11:27:11 +0000 http://3.36.87.144/?p=267322 안녕하세요, 소미영어입니다. 이제는 K-POP 가수들 중에서 영어가 제1언어인 사람들도 많습니다. 인기 걸그룹 뉴진스(New Jeans)에도 호주 출신 멤버가 2명 있습니다. 다니엘과 하니입니다.

이번에 공개된 보그 잡지의 호주 유튜브 채널에서는 다니엘과 하니의 인터뷰 영상이 공개되었습니다. 오늘은 해당 영상에서 두 멤버가 쓴 영어 표현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이) “Do you remember how you first met?”

당신은 (하니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나요?

(다니엘) “I actually remember really distinctly.”
사실 저는 정말 명확하게 기억합니다.

여기에서 쓰인 단어 ‘distinctly’는 ‘다른 것과 뚜렷이 구별되는’ 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죠. 이어서 다니엘은 하니와의 첫만남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You were actually the very first member that I met.
사실 너는 내가 처음으로 만난 멤버였어.

이 문장에서 ‘very’를 넣은 이유는 처음으로 만난 멤버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찬가지로 ‘very first’ 표현을 사용한 다른 예문을 살펴보겠습니다.

She was the very first person to arrive at the party.
그녀는 파티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의 말에 이어서 하니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전략) Like the real first, first day you started.
니가 처음으로 시작한 날처럼

Not when I met you really briefly then.
그때는 잠깐 만났을 때가 아니었어. (※ briefly: 짧게, 잠시)

The one you just spoken about
방금 네가 말했던 그 날,

I remember her Austrailian accent being really thick.
나는 네 호주식 악센트가 정말 강했던 걸 기억하고 있어.

여기서 thick accent는 지역 악센트가 있는 원어민 발음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서 텍사스 사투리를 이용하는 미국인의 발음도 thick accenct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뉴진스의 다니엘, 하니의 인터뷰 풀 버전은 보그 유튜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하니가 말하는 다니엘의 ‘thick accent’를 감상해 보세요. 목소리가 매력적이랍니다.

원문: 소미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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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휴전 30년이 지나서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가 방영되다 https://ppss.kr/archives/266508 Fri, 05 Jul 2024 02:41:59 +0000 http://3.36.87.144/?p=266508 1983년 6월 30일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453시간 45분 동안 방송되어 이산가족 상봉을 도왔다.

1983년 오늘(6월 30일), 한국방송공사(KBS)는 1TV를 통해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방송하기 시작했다. 이 특별생방송은 한국전쟁 33주년과 휴전협정(1953.7.27.) 30주년을 즈음하여 일제 식민지 지배와 한국전쟁(1950)으로 인한 남북분단이 낳은, 약 1천만 명에 이르는 이산가족을 찾기 위해 기획한 특별 프로그램이었다.

KBS는 본래 라디오에서 10여 년 동안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해왔던 터였다. 그래서 하루 동안 10가족 정도가 만나게 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시민들이 끊임없이 밀어닥쳤다. 뜻밖의 열기에 KBS는 닷새간 정규방송을 취소하고 이산가족 찾기 릴레이 생방송을 이어갔다.

 

상봉률 19%의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이산가족 찾기 신청은 모두 100,952건이었다. 그중 53,536건이 방송에 소개되어 10,189건의 이산가족이 상봉했다. 성공률이 19.03%였다. 이는 이전의 신문과 라디오를 통한 이산가족 찾기 운동의 미미한 실적에 비하면 대단한 성과였다.

이산가족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고무된 KBS는 전담 방송 인원 1,641명을 투입했고 9개 지역 방송국을 동시에 연결하는 다원 생방송을 중계하는 등 모든 방송 역량을 투입했다. 자원봉사에 참여한 전국의 시민·학생들과 정부의 종합적인 지원(만남의 광장, 간이우체국, 이동 파출소, 법률상담소, 미아보호소 설치 등)도 큰 도움이 되었다.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에 전파를 타기 시작한 이 생방송은 1983년 11월 14일 새벽 4시까지 138일에 걸쳐 방영되어, 총 453시간 45분으로 마감되었다. 단일 주제 생방송으로 기록을 달성한 이 프로그램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어느덧 40년으로 치닫고 있었던 분단 상황과 그에 따른 1천만 이산가족의 존재가 있었다.

방송이 시작되자, 이산가족들의 사연에 온 국민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 ⓒ KBS 아카이브, 이하 같음.

가족을 만나지 못했던가, 할머니의 지친 표정과 좌절은 30년 시간을 넘어 내게 아직도 아프게 다가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족사로 다루어져야 할 이산의 비극을 개인사로 방치했던 정부의 직무유기가 있었다. 일제 식민 지배에서 해방은 38도선 남북에 각각 다른 외국군이 진주하면서 이루어졌고, 이는 곧 남북이 이념으로 대립 갈등하면서 한국전쟁으로 이어졌다.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은 수백, 수천만의 인명 피해와 함께 1천만이 넘는 이산가족을 낳았다. 분단으로 인한 이산가족은 남북에서 생사를 모른 채 살아가야 했다. 그러나 이산가족은 막힌 휴전선 남북에만 있지 않았다.

 

이산가족 찾기는 ‘개인 문제’로 방치되었다

전쟁의 소용돌이와 피난길에서, 전후의 혼란과 절대 빈곤 속에서 각자도생해야 했던 무지렁이 백성들에게도 말 못 할 이산의 아픔이 있었다. 부모와 자식이, 형제와 자매가 헤어져 서로의 생사도 모르고 살아야 했던 이들 남한 내 이산가족들에게 이산가족 찾기는 개인에게 맡겨져 있었다.

남북 당국이 이산가족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953년 12월 11일부터 1954년 3월 1일까지 ‘휴전협정’ 제3조 제59항에 근거하여 설치된 ‘실향 민간 귀향 협조 위원회’가 남북이 이산가족 문제를 인도적 차원에서 해결키로 한 이후 첫 만남이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1971년 8월 20일 남북적십자 간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 회의실에서 사상 첫 회담을 개최한 이래 20여 차례의 예비회담과 8차례의 본 회담을 통해 이산가족 고향 방문 등을 조율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남한의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어떤 정책도 펴고 있지 않았다.

고작 라디오를 통해서 지엽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이산가족 찾기를 통해서 소수의 가족이 가끔 상봉에 성공하는 정도였다. 정부도 남한 내 이산가족 문제를 전 국민적 문제로 바라보지 않았고, 이산가족들 역시 그것을 자신의 개인적 문제로 끌어안고 있었다.

무능한 정부는 직무 태만을 저지르고 있었고, 착한 국민은 분단으로 헤어진 혈육을 찾는 일이 국가의 책임이란 걸 생각지도 못했다.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이야 휴전선으로 막혀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쳐도 이남에서 헤어졌던 가족을 찾는 일을 왜 국가가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가족을 만나지 못했던가, 할머니의 지친 표정과 좌절은 30년 시간을 넘어 내게 아직도 아프게 다가온다.

방송이 시작되자, 온 나라의 국민이 공황에 빠졌다. 영상으로 전달되는 이산가족들의 곡절 많은 사연에 사람들은 함께 눈물을 흘렸고, 상봉에 성공한 이산가족들이 ‘맞다, 맞아!’를 외칠 때 손뼉을 치면서 함께 기뻐했다.

혈육들이 눈물로 재회하고 얼싸안고 울부짖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분단이 우리의 삶에 드리운 깊고 어두운 그림자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헤어져 살던 이산가족들의 상봉을 통해 분단의 아픔이 치유되는 듯한 황홀한 감정의 고양을 체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혈육의 정, 민족적 동질성이 분단을 극복할 수 있는 출발점이라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함께 눈물 흘리며 분단 아픔을 나누다

넉 달 보름여에 걸친 최장 시간의 생방송이 이루어졌지만, 상봉에 성공한 사람은 열에 둘뿐이었다. 여전히 다수 이산가족이 이산의 고통을 치유하지 못했고, 분단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 생방송은 이산가족 상봉의 절실한 필요성을 환기하면서 이태 후 남북 이산가족 최초 상봉(1985.9.)의 촉매 역할을 했다. 냉전 체제의 긴장 완화에도 이바지했다.

이 생방송 소식은 온 세계에 타전되었다. 더는 지구상에 이와 같은 비극이 생겨나서는 안 된다는 평화의 메시지가 되어 보편적 인류애를 고취했다. KBS의 이 프로그램이 제6차 세계 언론인 대회에서 ‘1983년의 가장 인도적인 프로그램’으로 선정되고 세계평화 기여자에게 주는 골드머큐리 국제상(1984)을 받은 것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였다.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 비디오테이프와 사진 등 2만 522건이다.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은 2015년 10월 ‘한국의 유교책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에 등재됐다. 이 기록물은 KBS가 1983년 453시간 45분 동안 생방송 한 남북한 이산가족 찾기 등을 담은 비디오테이프 463개, 담당 프로듀서의 업무수첩, 이산가족이 작성한 신청서, 일일 방송 진행표, 큐시트, 기념 음반, 사진 등 자료 2만 522건 등이다.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그러나 1세대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타이틀곡은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이었고, 이산가족 상봉 시 배경 음악은 패티 김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였다. 눈물을 훔치면서 그 애잔한 가락을 듣던 기억이 어제 같은데 어느덧 세월은 30년이 훌쩍 흘렀다.

1985년 9월, 서울과 평양에서 최초로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 공연 교환 행사 개최된 이래, 남북의 이산가족 상봉은 2015년 10월까지 20차례, 이산가족 화상 상봉은 2005년 8월 15일 처음 이루어진 뒤 2007년 11월까지 7차례에 걸쳐 이어졌다.

남북 정상의 합의를 기반으로 한 6·15선언(2000)과 10·4선언(2007)으로 남북 간 화해와 평화 통일의 실마리가 열리면서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그러나 2008년부터 이어진 보수 정부 9년은 그런 성과를 깡그리 무너뜨려 버렸다.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아카이브에는 이산가족 상봉 관련 기록물이 소개되고 있다. 특별생방송이 진행되던 시기의 자료, 특히 그때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살려 주는 사진 자료들이 주는 감동은 30년 세월을 넘어서 절절하게 다가온다.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이산가족 1세대는 80%가 70세 이상 노인으로, 80세 이상 고령자가 절반에 이른다고 한다. 앞으로 20년 후면 이들은 대부분 사망할 것으로 보이니 이들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이들이 죽기 전에 혈육을 다시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면서 이산가족 찾기 관련 사진을 곰곰 들여다본다.

원문: 이 풍진 세상에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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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지가 않으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https://ppss.kr/archives/258335 Thu, 15 Dec 2022 02:52:15 +0000 http://3.36.87.144/?p=258335

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어?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 전혀 부럽지가 않어

네가 가진 게 많겠니 / 내가 가진 게 많겠니
난 잘 모르겠지만 / 한번 우리가 이렇게 한번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해보자고

너한테 십만원이 있고 / 나한테 백만원이 있어
그러면 상당히 너는 내가 부럽겠지 / 짜증나겠지

  •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어’ 중에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늘 비교라는 프레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부러움이라는 감정은 비교라는 사회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감정이고, 상대가 지닌 무언가를 원하지만 자신은 갖지 못했을 때 생기는 불쾌한 감정이다. 사회적 삶에서 더 나은 지위와 자원을 확보하려는 욕망을 지닌 인간은 지위와 자원을 지닌 대상에 대해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품는다.

부러움에는 긍, 부정의 효과가 혼재되어 있다. 부러운 대상과 같아지려는 노력을 하게 만든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사회적 상향 비교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평가가 저하된다는 측면에선 부정적이다. 한마디로 부러움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동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치명적이게도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느낌인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감정이다.

그리고 현대 소셜미디어의 발달은 더 많은 부러움을 하루하루 더 크게 양산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 심지어 자신이 이룰 생각조차 없었던 무언가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의 소셜 미디어에 여과 없이 노출되며 굳이 느끼지 않아도 될 부러움까지 끌어안고 살고 있다. 소셜미디어 사용 시간에 따른 행복감과 자존감 감소는 이제 더 이상 놀라운 연구주제도 아니다.

부러워… / 출처: irasutoya

최근 연구에 따르면,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의 사용이 오히려 사람들을 더 외롭게 만든다는 결과도 있다. 페이스북 친구가 많을수록 외로움을 덜 느꼈지만, 문제는 사용시간이었다. 페이스북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수록 사람들은 더 외로워했다(Phu, B., & Gow, A. J. (2019). Facebook use and its association with subjective happiness and loneliness. Computers in Human Behavior, 92, 151-159.).

페이스북 상의 많은 친구들에게 잠깐씩 접속하는 것은 충분히 외로움을 달랠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오래 탐닉하는 것은 더 불행해지고 외로워지는 나쁜 습관이다. 과거엔 주변 친구나 이웃 정도만이 비교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전 세계 사람들이 자신과 비교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비교의 빈도가 늘수록 자존감이 떨어지는 속도는 더 빨라지기 마련이다.

결국 현대를 사는 우리는 외로움이 싫어 온라인과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을 만나지만, 자기 조절을 못한다면 부러움과 외로움에 불행까지 더한 상처만 커질 뿐이다. 자기 조절의 핵심은 비교를 멈추고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에 집중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비교를 멈추고 자신이라는 존재에 집중하는 것은 마음 훈련이 충분치 못한 사람에겐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자기 조절이 힘들다면, 페이스북을 끊는 것을 추천한다. 한 연구에서 페이스북을 쓰지 않은 집단의 삶의 만족도는 높아졌으며, 일상에서 긍정 정서 경험도 더 늘었음을 밝혀낸 바 있다(Tromholt, M. (2016). The Facebook experiment: Quitting Facebook leads to higher levels of well-being. Cyberpsychology, behavior, and social networking, 19(11), 661-666.).

이처럼 페이스북을 끊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소셜 미디어가 주는 장점을 살리고 조절하는 것이 더 나은 대안인 것은 분명하다. ‘부럽지가 않어’의 장기하처럼 말이다.

 

“부럽지가 않어”

장기하는 ‘세상에는 말이야 부러움이란 거를 모르는 놈도 있거든 그게 누구냐면 바로 나야’라고 노래하며 자신의 존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장기하는 ‘나는 부러움을 모르는 놈’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다.

심리학에선 행동에 대한 강화보다 성품, 혹은 정체성에 대한 강화의 효과가 더 크다고 주장한다. 토론토대학교 심리학과 조안 그루섹 교수 등의 연구를 살펴보자.

연구진은 아이들에게 유리구슬을 갖고 놀게 한 후, 한 집단의 아이들에겐 “친구에게 구슬을 나눠주다니 참 착하구나”라고 행동에 대해 칭찬을 했고, 다른 아이들에겐 “너는 남을 돕는 친절한 아이구나”라고 성품에 대해 칭찬을 했다. 2주 후, 성품에 대해 칭찬을 받았던 아이들이 행동에 대해 칭찬을 받았던 아이들에 비해 다른 아이들을 더 많이 돕고 더 너그러운 행동을 보였다.

성인들도 마찬가지다. 텍사스대학교 오스틴캠퍼스 맥콤경영대학원의 크리스토퍼 브라이언 교수는 “부정행위를 하지 마세요”라고 행위를 언급하는 대신에 “부정행위자가 되지 마세요“라고 정체성에 대해 언급할 때 더 효과가 크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부정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은 수험생에게 단발성의 행동을 제재하기 때문에 결과의 논리로 판단하는 사람도 생긴다. 즉, 걸리지만 않으면 부정행위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부정행위자는 자신의 정체성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부정행위를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든다(Bryan, C. J., Adams, G. S., & Monin, B. (2013). When cheating would make you a cheater: implicating the self prevents unethical behavior.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 142(4), 1001.).

장기하는 스스로를 “부러움이란 거를 모르는 놈”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증하는 현명한 모습을 노래에 담았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그런데, 우리가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비교적 바람직한 부러움은 무엇일까?

대상이 지닌 품성, 재능, 사회적 지위, 소유물을 포함한 재물 등 세상은 넓고 부러워할 것은 많다. 품성을 부러워한다면 대상에 대한 존경감으로 나타나 그 대상과 자신과의 관계가 개선되고 자신의 품성도 개발할 수 있어 바람직한 부러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부러움은 사회적 상향 비교로 자존감이 깎이는 상황을 만들기 때문에 자기 파괴적인 요소가 있다.

부러움을 넘어 상대가 가진 것이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인 질투심으로 나아가면 자신과 상대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감정으로 악화된다. 자신의 불행을 타인에 대한 적개심과 공격성으로 해소하려 드는 것이다. 이런 파괴적인 정서는 건강한 사회적 삶을 앗아간다.

사람들은 질투심을 느끼면 애먼 공격성으로 자존심을 지키려 든다. 장기하는 이런 악순환에 대해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아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부러워지고

사실, 페이스북 상에서 글을 올리지 않고 주로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르는 수동적 사용 그룹이 자신도 글을 올리며 적극적으로 자랑질을 하는 능동적 페이스북 사용자 그룹에 비해 더 큰 자존감 저하를 가져오는 것으로 보아 부러우니까 자랑질을 하는 것은 그냥 부러워하는 것보다는 낫다. 그렇다고, 능동적 사용그룹이 페이스북 사용으로 삶의 만족도가 크게 높다는 증거도 없다. 그저 수동적 사용 그룹보다 낫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상호 질투심을 유발하는 관계로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는 것이 최악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무엇보다 질투심의 가장 큰 문제는 공격의 대상이 질투심을 느낀 대상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이다. 부러움이나 시기심을 느낀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지 않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성공을 적극 방해한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심리학과 안나 마리아 벨러 교수는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 한 집단에게는 부러움이나 시기심을 느꼈던 경험을 떠올리게 하고 다른 집단에겐 일상적 경험을 떠올리게 했다. 부러움을 느꼈던 집단은 자신의 눈앞에서 필통을 쏟은 사람을 돕지 않았다.

이 논문의 다른 실험에서는 칠교놀이(탱그램, tangram)와 같은 문제를 내는 출제자 역할을 담당하게 했는데, 부러움을 연상한 집단은 실험에 참가한 사람이 쉽게 성공할 수 없도록 어려운 난이도의 문제를 출제하는 경향이 강했다. 부러움을 느끼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성공을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방해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Behler, A. M. C., Wall, C. S., Bos, A., & Green, J. D. (2020). To help or to harm? Assessing the impact of envy on prosocial and antisocial behavior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46(7), 1156-1168.).

 

그렇다면, 부러움이 질투심으로 번지지 않게 하는 묘약은 무엇일까?

사실, 벨러 교수의 연구엔 한 집단이 더 있었다. 바로 감사 집단이었다. 자신에게 나타난 일을 감사하게 생각한 집단은 질투심의 파괴적 유혹에서 벗어나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성공을 지지했다.

나는 장기하가 ‘부럽지가 않어’에서 노래한 ‘나는 부러워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만, 한발 더 나가 자신이 가진 재능과 경험, 그리고 주어진 환경에 감사한다면 더 완벽한 ‘부럽지가 않어’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들어보세요 2022년을 강타한 그 노래

원문: 박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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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하지만 굉장한 그녀”가 업무에 임하는 자세 https://ppss.kr/archives/250088 Tue, 22 Feb 2022 09:30:16 +0000 http://3.36.87.144/?p=250088

패션 잡지 ‘랏시(Lassy)’의 에디터를 꿈꾸며 랏시를 만드는 출판사에 7년째 입사 지원 중인 28세 여성 코노 에츠코. 학창 시절 촌동네에 살면서 랏시를 애독하고 잡지 에디터의 꿈을 키워온 에츠코는 7수 끝에 그토록 바라 왔던 랏시의 출판사 입사에 성공한다.

 

1. 주인공의 삶

한국에는 유독 ‘사짜’ 직업을 가진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가 많다.  이들은 의사, 변호사, 검사 등 소위 말하는 ‘멋진 직업’을 가지고 있다. 이들을 다룬 드라마가 한국에서는 인기리에 방영되곤 한다.

나도 취업준비생 때에는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멋지고 대단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야 내 인생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멋진 일을 하려면 좋은 회사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매일 도서관에 출근 도장을 찍으며 열심히 토익, NCS, 필기시험, 자격증 공부를 했다.

그렇게 암흑 같은 취준 생활 끝에 원하던 회사에서 합격 소식을 접한 순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커리어우먼처럼 멋지게 활약하는 내 모습을 그리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2. 알고 보니 엑스트라의 삶

그러나 막상 회사에 들어오고 보니, 현실은 취업준비생 때 상상했던 회사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그런 멋진 일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맡게 된 일은 상사 뒤치다꺼리나 잡무 같은 사소하고 궂은일뿐이었다. 겨우 이런 일을 하려고 그렇게 죽어라 스펙을 쌓았나, 자괴감이 들었다.

이런 시답잖은 일을 하려고 여기 입사한 게 아닌데. 주인공이 되기 위해 열심히 달려왔는데, 알고 보니 주역은 이미 따로 있고 나는 그냥 지나가는 회사원 1 역할이었다니. 일을 할 때마다 현타가 와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취업 준비에 들였던 노력과 시간이 아깝기도 했고, 집에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참고 다니기로 했다. 오직 돈과 주말만 바라보며 영혼 없이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덧 직장인 4년 차가 되어 있었다.

 

3. 그녀와의 첫 만남

최근 도쿄 주재원 발령을 받은 후, 오랜만에 일본어 공부를 할 겸 일본 드라마를 찾아보다가 흥미로운 드라마 하나를 발견했다. 이시하라 사토미 주연의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다. 출판사 교열부 직원이 주인공인 드라마라니 한국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설정이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주인공 코노 에츠코는 학창 시절 동경해왔던 패션 잡지 출판사에 기적같이 입사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막상 입사하고 보니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혀 엉뚱한 ‘교열부’라는 곳에 배치된다. 교열부는 화려한 출판사의 고층 빌딩 지하 1층에 위치하고 있다. 같은 출판사 직원들도 그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한 ‘존재감 제로’ 부서다. 패션 잡지 에디터를 꿈꾸며 입사했다가, 졸지에 두꺼운 원고에 자를 갖다 대고 한 줄 한 줄 빨간 펜으로 틀린 곳이나 고치는 따분한 일을 하게 된 에츠코. 이건 에츠코가 입사 전 상상했던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여기까진 내 직장생활과 상당히 유사했다. 심지어 에츠코의 상황은 나보다 더 안 좋아 보였다. 화려한 에디터를 꿈꾸며 출판사에 입사했는데, 현실은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교열 업무라니. 분명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지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누가 알아봐 주는 것도 아니고 자칫 잘못해 실수라도 하면 욕이란 욕은 다 얻어먹는 엑스트라 같은 일이다. 내가 에츠코였다면, 한 달도 못 버티고 퇴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에츠코는 달랐다. 물론 교열부 부장이 에츠코에게 교열 업무를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잡지 편집부로 이동’할 수도’ 있다는 말을 했지만, 사실 아무런 근거도 기약도 없는 말이다. 하지만 에츠코는 그 말을 철썩같이 믿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교열 업무에 임하기 시작한다. 유명 작가의 원고를 자기가 교열하게 해달라며 애원하는가 하면, 작가의 글이 사실과 다른 게 없는지 팩트체크하기 위해 작가의 고향을 방문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어느새 에츠코는 진심으로 교열 일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정신차려 보니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기운 없이 일하던 교열부 직원들도 그런 에츠코의 영향을 받아 능동적으로 일하기 시작하고, 교열부에는 활기가 넘치게 된다.

에츠코의 긍정 에너지와 열정 덕분에 활기 넘치는 부서로 탈바꿈한 교열부(출처: 닛테레 방송)

그 모습을 보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도대체 나는 회사에서 4년이라는 세월을 어떻게 흘려보낸 걸까.

일하는 거에 비해 월급이 너무 적은 것 같다.
이런 쓸데없는 일을 도대체 왜 시키는지 모르겠다.
직장 상사 뒤치다꺼리하느라 지친다.
고객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서 피곤하다.
여차하면 퇴사하고 카페나 차리고 싶다.

허구한 날 직장 동료들과 모여 회사생활에 대한 불만과 푸념만 늘어놓았던 4년이었다. 내 4년간의 직장생활은 온통 부정적인 말과 행동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스스로가 엑스트라의 삶을 자처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한심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4. 수수하지만 굉장한 그녀가 업무에 임하는 자세

어떻게 에츠코는 본인이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열심히 해봤자 눈에 띄지도 않고 알아주는 이도 없는 교열 업무에 그렇게까지 진심일 수 있었던 걸까? 몇 가지 요소를 따져보았다.

A. 뚜렷한 목표 의식

교열부장의 기약 없는 약속이 진짜든 아니든, 에츠코는 그 말을 굳게 믿었다. 그녀에겐 교열 업무에서 성과를 내서 편집부로 이동하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

정말 기약 없어 보이는데 확고하게 믿고 따른다 (출처: 닛테레 방송)

B. 맡은 일은 완벽하게 해내고 말겠다는 프로 근성

원했던 일이든 아니든, 에츠코는 눈앞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프로다. 남들은 사소하게 여기는 글의 형식이나 티도 안 날 것 같은 오류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원고에서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현장 조사를 나가 사실 확인을 하고, 작가를 직접 찾아가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C. 근본에 깔려있는 긍정적인 마인드

에츠코는 기대와 달랐던 업무를 맡았다고 해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푸념만 늘어놓지 않는다.

이 길이 맞는지는 몰라도 매일매일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에츠코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업무에 임했다. 그것도 아주 열정적으로 말이다. 드라마에서 에츠코가 일하는 걸 보고 있으면 교열 업무가 엄청 흥미롭고 재밌어 보일 정도다.

에츠코는 주인공으로 사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무슨 일을 하든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주인공의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5. 내 삶의 주인공이 되는 단순하고 쉬운 방법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도쿄 지사로 발령받고 내가 맡게 된 업무는 공교롭게도 에츠코가 했던 교열 업무와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았다. 일례로, 내가 담당하게 된 일은 일본 시장 조사업무다. 일본의 전기차 시장, 핀테크 산업, 농업 시장, 스타트업 환경, 친환경 정책 등 업종·산업을 불문하고 온갖 시장정보를 조사해 한국에 계신 고객분들께 발신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직접 자료를 조사해서 시장 현황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하고, 일본 현지 직원분들이 작성한 일본 시장정보 보고서를 교정·교열하거나 수정하는 일도 겸하고 있다.

분명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전략기획이나 홍보·마케팅처럼 눈에 띄는 일도 아니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누가 알아봐 주는 것도 아니다. 혹시나 실수로 잘못된 정보를 발신하거나 한 주라도 발신하지 않으면 대차게 까이기만 하는 가성비가 좋지 않은 업무다. 예전의 나라면 분명 이런 불평·불만만 가득 늘어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매주 새로운 일본 시장정보를 발신하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최신 트렌드와 산업 동향을 접할 수 있다. 일본 직원분들이 조사한 다양한 산업 분야의 시장 보고서를 교정·교열하다 보면 내가 몰랐던 새로운 분야의 지식까지 습득할 수 있다. 미래의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기에도 최적의 환경이다. 월급을 받으면서 덤으로 지식과 사업 아이디어까지 얻을 수 있다니! 이런 일이 어디 흔하랴.

관점을 바꾸니 놀랍게도 일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업무를 통해 얻은 지식과 아이디어를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깝단 생각이 들어 브런치와 티스토리에도 공유하기 시작했다. 유익한 콘텐츠를 올리기 위해서라도 자료조사를 철저히 해야 되다 보니 더욱 일을 열심히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회사 일이 내 일처럼 재밌게 느껴졌다.

물론 회사 일이 전보다 재밌어졌다고 해서 매일 출근이 기대되는 건 절대 아니다. 여전히 회사 가는 건 싫다. 그래도 어차피 해야 한다면, 불평불만만 늘어놓기보다 내가 하는 일에 조금 더 긍지를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업무를 임하기로 했다.

어떤 일을 하든, 그게 꿈꿨던 일이든 아니든,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에 따라 멋지고 대단한 일로 탈바꿈한다. 그것이 주인공의 인생을 살 수 있는 길이다.

자 그럼 오늘 하루도 기운차게 시작해볼까?

수수하지만 굉장한 그녀가 업무에 임하는 자세 (출처: 닛테레 방송)

 

덧. 수수하지만 굉장한 모든 사람들에게

출처: 닛테레 방송

세상엔 꿈을 이룬 사람도 있지만 이루지 못한 사람도 있다. 튀는 직업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직업도 있다. 개중에는 꿈을 이뤘지만 내 꿈은 이게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하지만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든지 눈앞에 주어진 일은 최선을 다해 해내야 한다. 그것이 자칫하면 평범하게 반복될 일상을 의미 있고 소중한 나날로 바꿔주는 방법이란 것을. 그날까지 나는 그녀를 응원할 것이다.

언젠간 그녀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꿈을 이루었든 이루지 못했든 현재의 일에 긍지를 가지고 세상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수수하지만 굉장한 모든 사람들에게.

  •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중
출처: 닛테레 방송

원문: Moonlighter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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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과 일본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 https://ppss.kr/archives/248968 Mon, 17 Jan 2022 06:35:36 +0000 http://3.36.87.144/?p=248968 일본에서 활동하는 김성민 교수가 저술한 『케이팝의 작은 역사』는 케이팝이 태동한 1980년대 후반부터 방탄소년단, 블랙핑크가 글로벌 무대에서 독보적인 아티스트로 우뚝 선 현재까지 약 30년의 기간 동안 케이팝의 형성 과정, 케이팝을 둘러싼 음악적, 산업적, 사회적 맥락을 살핀다. ‘케이팝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내리려 시도하기보다, 케이팝을 하나의 미디어로 이해하고 그 미디어에 담긴 감각과 스타일은 무엇인지, 또 그것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특히 저자가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만큼 케이팝이 제이팝, 그리고 일본 시장 내에서 지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비중 있게 다룬다. 일본 엔터 업계가 한국의 엔터 업계의 성공을 연구하고 벤치 마크할 만큼 이 두 시장의 판도가 다이내믹하게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케이팝과 일본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가 특히 흥미로웠다.

 

1. 80년대 일본 음악

트로트, 발라드가 중심이던 80년대 한국 가요신에 댄스, 힙합, 락 등의 요소를 가져와 새 장르를 열어젖힌 그룹은 단연코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익스플레인: 케이팝의 모든 것>에서도 서태지 이전과 이후로 한국 가요를 나눌 만큼 이들이 한국 가요계에 미친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이들은 당시 미국과 일본 음악의 사운드를 단순히 모방하는 차원을 넘어, 이를 변용하고 참고하여 새로운 90년대 한국의 10~20대가 원하고 있던 새로운 음악을 선보였다고 평가받는다.

저자는 소방차가 데뷔한 1987년부터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선언한 1996년까지를 케이팝의 원형이 만들어진 시기로 본다. 해적판 카세트테이프, 비디오 등을 통해 한국으로 유통되고 있던 일본 음악은 미국 음악과 함께 한국의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당시 일본에서는 <스타 탄생!>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1970년대부터 등장하는 등 그때부터 가창력보다 스타성을 중시하는 독자적인 일본형 아이돌 시장이 형성되고 있었다고 한다.

90년대 한국 음악이 일본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았다는 건 개인적으로는 생소한 정보였는데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소방차의 무대(1988년)와 소년대의 무대(1987년)를 비교하면서 그 유사성을 확인해 보자.

80년대 제이팝이 한국 가요에 미친 영향력은 발라드 영역에서도 두드러지는데 뮤지션 윤종신은 안전지대와 같은 80년대 일본 뮤지션들이 우리나라의 80~90년대 편곡자들에게 미친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고 언급한다. 1984년 발매된 안전지대의 대표곡 <그대에게>를 들어보니, 어딘가 친숙한 90년대 한국 발라드 감성이 모두 녹아들어 있다.

동일한 곡을 캔이 2001년 <내일 또 생각이 나겠지>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했으며, (TMI 지만 내가 어릴 때 노래방에서 자주 불렀던) 포지션의 <I Love You>  역시 오자키 유타카가 1983년 발매한 곡의 리메이크 버전이다.

하지만 한국 가요계에 미친 제이팝의 영향력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998년 정식으로 일본의 대중문화가 한국에 들어오고 PC 통신 같은 커뮤니티에서 제이팝을 노골적으로 모방하는 한국 가요계의 관행을 비판하며 자정작용이 일어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90년대 들어 제이팝 전반의 감각이 세계적 흐름과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2018년 한 유튜버가 음원을 올려 일본 시티팝의 세련된 감각을 전 세계에 뒤늦게 알린 타케우치 마리야의 Plastic Love는 1984년 발매 곡이며, 마찬가지로 디지털 음원 세계에서 다시 발굴된 마츠바라 미키의 真夜中のドア(Stay With Me)는 1979년에 발매된 곡이다.

이 음악들을 듣다 보면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세련된 사운드를 일본은 30, 40년 전에 만들고 있었다는 점에 놀랍다. 한편, 이 화려한 영광의 시절을 뒤로하고 이후 내리막길을 걸으며 제이팝이 세계 음악 시장에서 갈라파고스화되어버린 점에 아쉬움이 교차한다. 제이팝의 변화는 버블경제 붕괴 이후 장기 경기 침체기로 들어선 일본 경제의 변화와도 그 궤적을 같이한다.

한국의 90년대 학번은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인터넷, 휴대전화, 컬러티비 등 뉴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세대로 이런 소비자들의 감각과 감수성에 맞는 음악에의 요구 역시 높아지고 있었다.

한국의 뮤지션들은 미국의 힙합이나 락, 제이팝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변주하고 융합하여 한국적인 모습으로 재창조하며 케이팝의 초석을 닦아 나간다. (미국의 흑인음악에서 나온 힙합에는 인종차별이나 사회적인 부조리를 고발하는 저항 정신이 깔려 있었지만, 90년대 한국 힙합에는 그런 것이 없지. 사랑 노래! 아름다운 젊음! 예예예)

 

2. 보아의 성공이 갖는 의미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한 1996년, 바통을 이어받기라도 하듯 H.O.T.가 등장한다. SM은 미국의 음악 스타일과 아라시 소속 사무소 쟈니스의 메니지먼트 시스템을 벤치 마크하여 연습생을 뽑아 몇 년간 트레이닝을 시킨 후 최종 데뷔 멤버를 선발하는 아이돌 육성 및 관리 방식을 도입했다.

공식 팬클럽에 부정적이었던 서태지와 아이들과 달리 SM은 공식 팬클럽을 지원하고 관리하며 팬덤을 영리하게 활용하기도 한다. 책에서는 H.O.T. 가 보여준, 케이팝 아이돌의 전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요소를 아래와 같이 나열했다.

노래, 랩, 댄스, 스타성을 포함한 종합적인 트레이닝
블랙 뮤직의 영향을 받은 사운드와 한국어 랩
화려한 집단 퍼포먼스 (칼군무)
시각적 매력과 서사성을 극대화한 뮤직비디오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사회성 높은 가사
해외 출신 멤버
헌신적인 팬덤
해외에서의 높은 인기
『케이팝의 작은 역사』, 4장 케이팝의 탄생, p.82

H.O.T.의 성공적인 데뷔 이후 JYP, YG 엔터테인먼트가 잇달아 설립되면서 케이팝을 이끌어가는 3대 기획사 중심의 업계 구도가 형성된다. 한국 기획사들은 90년대에도 미국에 이은 두 번째 시장 규모를 자랑하는 일본에 계속 문을 두드렸지만 이는 쉽지 않았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90년대 일본의 음악 시장은 세계의 유행과는 살짝 벗어난, 독자적인 감각으로 움직이는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그만큼 한국 아티스트들에게 일본 진출의 벽은 높았다. 보아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2001.5.30 보아의 일본 데뷔 싱글 ID;Peace B / 출처: 나무위키

2000년에 데뷔한 보아는 일본 시장을 정조준해 철저하게 트레이닝 받은 가수였다. 유창한 일본어 구사는 물론, 일본 기획사와 함께 일본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생리에 맞춘 현지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보아 이전의 일본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취향과 감성에 맞는 한국 가요를 선별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한국 음악과 일본 음악의 서열 구도가 은연중에 존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멜로디의 노래를 한국과 일본에서 언어만 달리해서 부르며 두 나라에서 동시에 활동한 보아는 한국과 일본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되돌려 놓았다고 평가한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보아에 이어 2010년대에는 동방신기, 빅뱅, 소녀시대 등 한국 아이돌 그룹이 몇만 명 단위의 관객을 동원하는 돔 투어 콘서트를 잇달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일본 내에서 케이팝은 공고한 팬덤을 형성하게 된다. 이때에도 보아의 선례를 따라 일본어 앨범을 따로 발매하고 현지 미디어 환경에 맞춤화된 홍보 활동을 펼치는 형태는 유지된다.

 

3. BTS와 케이팝의 보편성

출처: 머니투데이

음반 판매량, 뮤직비디오 조회 수, SNS 팔로워 수, 빌보드 차트, 팬덤의 규모 모든 면에서 경이적인 기록을 써나가고 있는 BTS는 더 이상 한국이라는 국가에 가두어 정의하기 힘든 ‘세계적인 보이 그룹’이다. 이들의 성공은 케이팝이 한국, 혹은 일본의 감수성이 아닌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되는 보편성을 획득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스마트폰 보급의 확산과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반 시장이 옮겨간 건 케이팝이 작은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은 강렬한 퍼포먼스를 자랑하는 케이팝 아티스트의 무대를 전 세계로 내보내는 창구가 되었다. 또한 한국의 기획사들은 개인 창작자들이 영상을 재가공해서 활용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케이팝의 외연을 더욱 확장시켰다.

이는 이해관계자가 얽히고설켜 2차 편집은 물론 음원 자체를 디지털 플랫폼에 공개하는 것을 오랫동안 꺼려온 일본의 업계와 대조적인 모습이다. (아라시의 유튜브 공식 채널이 개설된 연도는 2019년이다)

저자는 2017년을 일본이 케이팝을 수용하는 방식에 변화가 일어난 중요한 분기점으로 본다. 일본의 감각과 방식에 맞는 케이팝을 선별적으로 수용해 왔던 일본은, 2017년 이후부터는 글로벌 팬들이 즐기는 케이팝으로서 케이팝을 즐기기 시작했다고.

엑소, 트와이스, 방탄소년단, 레드벨벳, 블랙핑크, 세븐틴, 갓세븐, 워너원, 위너 등 일본에서 인기 있는 케이팝 뮤지션들은 더 이상 일본 미디어 환경에 의존하지 않고 소셜미디어나 아이튠즈를 통해 글로벌 팬들과 소통하고 있으며, 방탄소년단이 지상파 TV에서 자신들의 곡을 일본어 버전이 아닌 오리지널 버전으로 따로 부른 사건을 그 근거로 든다. 그만큼 일본이라는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오리지널 곡을 원하는 일본의 리스너들이 많아졌다고.

방탄소년단이 지난해와 올해 영어로 부른 <다이너마이트>와 싱글을 내기 이전까지 한국어가 아닌 현지 언어로 팬들과 소통하고, 유일한 외국어 앨범을 발매한 곳은 일본이다. 팬클럽 역시 ‘글로벌 vs 한국’이 아닌 ‘글로벌 vs 일본’ 아미로 나누어져 있다는 점은 여전히 일본 시장에 맞춤화된 접근 방식을 방탄소년단 역시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그럼에도 점차 일본 향 케이팝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케이팝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국과 일본의 감각을 받아들이면서 형성된 케이팝은 ‘중심을 욕망하는 주변의 음악공간’에서 2017년 이후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넘어선 음악공간’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4. 2021년 일본에서

요즘 일본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K-Pop (그리고 K-Drama)의 성공을 열심히 분석하고, 벤치 마크하고 있다. 일본 방송사 TBS는 엠넷과의 정식 계약을 통해 프로듀스 101 일본판인 <PRODUCE 101 JAPAN>을 2019년 방송하기 시작했고, 여기서 탄생한 일본의 11인조 보이밴드 JO1은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출처: The Korea Times

NiziU는 소니뮤직재팬이 JYP와 공동으로 기획한 오디션 프로그램 Nizi Project를 통해 데뷔한 9인조 걸그룹이다. 데뷔곡은 발매와 동시에 오리콘 차트 1위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일본의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에 한국인 프로듀서가 등장해 한국어로 참가자들을 평가하는 모습은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외국인이 왜 우리나라 사람을 훈계하냐는 반발심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웬걸, 박진영이 따뜻한 말로 참가자들을 격려하면서 이들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오히려 화제가 되었다. 인터넷에는 같은 기사도 돌아다니는데, 참고로 공기 반 소리 반은 없다.

케이팝의 성공과 제이팝의 상대적인 부진을 분석하는 일본 미디어의 글을 보면, 케이팝은 내수 시장이 작아서 처음부터 글로벌 진출을 염두에 둘 수 밖에 없었지만, 제이팝은 충분히 큰 내수 시장이 있어서 외부의 변화를 민첩하게 따라가지 못했다는 논리가 자주 등장한다.

주변부의 위치에서 중심을 욕망하는 특성이 케이팝 안에 녹아 있다고 하지만, 케이팝 역시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는 점에서 고정적인 시장의 규모만으로는 케이팝의 성격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런 양적인 요소보다는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이들 뒤에 있는 프로듀서, 안무가, 작곡 및 편곡가, 스타일리스트 같은 크리에이터들 개인의 역량이 제일 중요한 요소 아닐까. 지금 한국 엔터 업계를 지금 주름잡는 방시혁, 박진영, 그 외 스타 PD로 불리는 이들 등 1970년대생 크리에이터들이 쌓아온 감수성과 감각, 지적 능력, 문화자본 같은, 콕 찍어 설명하기 매우 어려운 ‘사람’이라는 요소 외에 무엇이 있을까. (이런 김빠진 결론이라니) 시스템이나 형식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의 케이팝과 10년, 20년 후의 케이팝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케이팝의 공간이 되는 한국 사회의 변화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거라고 예상해볼 수 있다.

그래서 한국 엔터 회사와 합작회사를 세워 케이팝의 포맷을 참고해 현지 가수를 육성한다고 해도, 케이팝스러운 제이팝을 듣는 대신 케이팝을 바로 들을 수 있는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반대로, 한국식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쳐 데뷔한 일본의 아이돌 그룹들이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케이팝의 요소를 벤치 마크하면서도, 일본에서만 만들어낼 수 있는 그 어떤 플러스알파의 요소가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원문: 할리할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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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여성은 왜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열광하는가 https://ppss.kr/archives/247391 Mon, 08 Nov 2021 03:46:39 +0000 http://3.36.87.144/?p=247391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에 열광하는 주체는 뚜렷하다. 2030 여성이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0월 14일에 방영된 4회의 경우, 30대 여성 시청자층에서 평균 시청률이 6%까지 솟았다. 1539 남녀, 2049 남녀 타깃시청률에서는 지상파 포함 전 채널 동시간대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방영 직후 여초 커뮤니티의 게시글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SNS에 ‘시청 인증’을 남기는 이 역시 여성이 많다. 왜 여성일까. 여성 댄서들이 춤추는 방송에 남성 시청자가 열광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정체성이 겹치지 않아서일까. 〈스우파〉의 성공 요인과 지금 2030 여성이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엔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스트릿 우먼 파이터〉. / 출처: Mnet

 

엠넷의 시선 전환, 젊은 층 여성에게 먹힌 이유

2030 여성 사이에 부는 〈스우파〉 열풍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요인은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 여성 댄서들의 높은 실력과 매력이다. 최종 우승 크루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홀리뱅의 수장 허니제이는 우승 소감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 댄서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돼 있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댄서 신은 이미 풍부한 콘텐츠 소스가 있었다.

엠넷이 한 건 ‘시선을 돌린 것’뿐이다. 무대의 앞이 아닌 뒤로 말이다. 이 시선의 전환은 쉬워 보이지만 여러 위험 요소를 고려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쇼미더머니〉 〈언프리티랩스타〉 등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일반인, 인플루언서를 콘텐츠 시장의 메인 캐릭터로 등장시키는 데 익숙한 엠넷이었기에 그간 축적된 노하우를 믿고 〈스우파〉를 제작할 수 있었을 테다.

대중은 엠넷의 전환된 시선에 매력을 느꼈다.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줬던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시선이다. 물론 한국 여성 댄스 신이 그만큼 완성도 있는 실력을 갖추지 않았더라면 이 시선의 전환도 성공적이진 못했을 것이다.

엠넷의 ‘시선 전환’ 전략이 먹힌 이유는 페미니즘이 불러온 2030 여성들의 인식 변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에 동조하든, 거부감을 느끼든, 적극적으로 참여하든, 아니면 그저 인식하고만 있을 뿐이든 간에 젊은 여성들은 페미니즘에 관한 인식을 정립했거나 정립해가는 중이다.

페미니즘이 던진 대표적 화두가 바로 주체성이다. ‘인생의 주인공은 곧 나’라는 이 간단한 문장엔 생각보다 많은 의미가 숨겨져 있음을 여성들은 깨달았다. 물론 주체성은 여성뿐만 아니라 2030 세대 전반에 나타나는 특성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MZ 세대는 가족과 공동체를 개인보다 우선시하는 문화에 익숙한 기성세대보다 주체적이다.

페미니즘이 불러온 주체성은 여기에 또 다른 의미가 더해진다. 바로 그간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뒤로 밀려난 자신들에 대한 깨달음이다.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부여한 ‘아내’ ‘엄마’ ‘내조자’ ‘조력자’ 등의 사회적 지위에서 스스로 벗어나고자 하는 흐름이 2030 여성 인식 내부에 자리 잡았다.

출처: youtube @MBCentertainment

〈스우파〉 속 여성 댄서들은 이 인식 변화에 부합하는 캐릭터다. 우선 이들이 댄서(백업 댄서)라는 점에서 그렇다. 가부장제가 부여한 사회적 위치로 인해 누군가(남성)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왔던 여성들이 주체적 인생을 추구하는 것과 연예인을 빛나게 했던 댄서들이 스스로 빛난다는 〈스우파〉의 설정이 일치한다.

주체성은 실제로 댄서들이 춤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서도 비교적 직접적으로 드러났다. 힙합과 걸스힙합의 구분을 부정하는 홀리뱅의 맨 오브 우먼 미션, ‘난 단순한 엉덩이가 아냐’라고 외치는 프라우드먼의 같은 미션 무대가 대표적이다. 일부 남초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해당 미션들에 대한 반응이 부정적인 이유는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데 있다고 추측된다.

 

연대하는 여성

두 번째 요인은 첫 번째 요인보다 조금 더 근본적이다. 바로 주체적 여성 간의 경쟁과 화합을 동시에 보여줬단 점이다.

다른 글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룰 예정이지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니즈가 변했다. 필자는 이 흐름이 공정에 대한 일부 청년의 인식 변화를 시사한다고 생각한다. 엠넷은 이 변화하는 니즈를 기민하게 포착하고 선도한다. 물론 악마의 편집은 여전하지만 〈퀸덤〉 〈굿걸〉에서 보여줬듯이 경쟁에 연대라는 요소를 버무리는 시도를 거듭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스우파〉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방송 초반 허니제이-리헤이의 감정의 골을 부각하고, 춤을 통해 결국 화합을 이루는 과정을 보여준다거나 피 터질 듯이 경쟁하던 크루들이 서로 얼싸안고 응원하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식이다. 〈스우파〉 속 여성은 피 터지게 싸우기도 하지만 결국 화합하고 연대한다. 그리고, 2016년 이후 일종의 동지애와 같은 연대의식이 커진 여성들은 〈스우파〉 속 경쟁과 화합에 열광한다.

방송 중 제시 신곡 안무 창작 미션을 전달하기 위해 등장한 싸이가 ‘여성 댄서들의 기 싸움을 기대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때 프라우드먼 소속 댄서인 립제이는 “기 싸움 어떻게 해야 하는데?”라고 장난기 섞인 의문을 제기했다.

출처: Mnet

해당 장면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은 이 의문이 조금 격화된 수준이었다. “여자가 왜 기 싸움을 해야 해?”란 의문에는 남성이 여성의 기 싸움을 흥미롭게 관전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깔려 있다. 즉 지금의 젊은 여성들은 ‘경쟁하는 여성’보다는 ‘연대하는 여성’에 관심이 높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마침내 얼싸안는 여성들의 모습에서 소속감과 고양감을 느낀다.

 

결과를 깔끔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환영

〈스우파〉를 향한 여성들의 반응 속엔 어쩔 수 없이 MZ세대의 특징도 있다. 바로, 경쟁의 결과에 승복하는 태도를 긍정한다는 점이다.

우승을 한 크루이자 미션마다 높은 유튜브 조회 수를 기록한 홀리뱅의 리더 허니제이의 인기가 이를 보여준다. 물론 허니제이가 인기를 얻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녀가 강한 실력자임에도 승패를 깔끔히 인정하기 때문이다.

허니제이는 자신의 제자였던 리헤이와의 배틀에서 졌을 때, K-POP 4대 천왕 미션에서 라치카에게 패했을 때, 이후 프라우드먼의 리더 모니카와의 배틀에서 졌을 때 등 모두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운이 없었다’고 하면서도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태도였다.

패배를 깔끔히 인정하면서도 높은 실력을 가진 허니제이에게 MZ 세대 여성들은 환호한다. 룰이 공정하다면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는 ‘공정’에 예민한 젊은 층의 인식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출처: Mnet

 

주체적 섹시를 판별하는 이분법, 가능할까

페미니즘이 몰고 온 인식 중에선 ‘주체적 섹시는 진정한 주체성이 아니다’는 인식도 있었다. 실력 있고 당당한 모습으로 사랑받는 마마무도, 지나치게 과한 의상을 입고 나오면 여성들 사이에서도 ‘주체적 섹시 아니냐’ ‘조금 보기 힘들다’는 의견이 달린다. 주체적이라고 해서 남성의 시선에서 형성된 ‘섹시함’이란 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행동마저 긍정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오래도록, 이 주체적 섹시에 대한 의견을 정립하지 못했다. 주체적 섹시를 부정하고 탈코르셋을 주장하는 의견엔 설득력이 있다. 결국엔 모든 여성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 아닐까 생각될 때도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스우파〉 속 댄서들에게는 주체적 섹시 논란이 없다. 댄서들은 팔다리를 모두 드러낸 의상을 입고 등장하지만, ‘지나치게 야하다’는 반응은 거의 없거나 표출돼도 많은 공감을 얻지 못한다. 물론 여기엔 춤출 때 몸의 선이 드러나야 하는 댄서라는 직업의 특수성을 이해하기 때문도 있다.

하지만 춤추는 것이 직업인 여성 아이돌에게는 조금 다른 잣대가 적용된다. 여초 커뮤니티 내에서도 일부지만 지나치게 선정적인 의상을 불편해하는 시선이 있다. 그 이유는 아마 위에서 언급한 대로 〈스우파〉에서 댄서들이 보여주는 ‘주체성’이 ‘선정성’보다 더 돋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현상을 살펴보며 생각했다. 애초에 여성의 주체적 도전에서 ‘섹시’만 추출한 다음, 이를 놓고 “코르셋이다” 혹은 “여전히 가부장제에 귀속돼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미 가부장제가 뿌리 깊은 이 사회에서 순도 100% 주체성으로만 이뤄진 몸짓은 가능할까. 탈코르셋을 제외한 모든 여성의 주체적 움직임은 반페미니즘적인 걸까. 그렇다면 〈스우파〉의 댄서들의 움직임은 진정한 의미에선 주체적이지 않았던 걸까. 어디서부터가 주체적 섹시고 어디까지가 주체성일까. 이런 의문들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스우파〉 못 잃고 쓰는 글… 허니제이 언니 사랑해요… / 출처: Mnet

원문: 초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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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드라마에서는 무슨 맛이 나는가: 〈결혼작사 이혼작곡〉 https://ppss.kr/archives/245679 Fri, 03 Sep 2021 03:49:52 +0000 http://3.36.87.144/?p=245679 매운 맛을 싫어한다. 매운 맛이라고 읽지만, 사실은 아픈 맛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날이 되면 이상하게 그 매운 맛, 아픈 맛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맛을 찾게 된다. 먹고 나면 또 아프다. 다음날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곤욕이다. 시간이 흐른다. 어떤 날이 된다. 반복이다. 나는 매운 맛을 좋아하는 것일까, 싫어하는 것일까.

막장 드라마가 나한테 딱 이런 꼴이다. 나는 막장 드라마를 싫어한다.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엔가 현타가 온다. 왜 이런 걸 보는 걸까. 이게 뭐라고. 자극에 자극에 자극을 더해서, 그저 자극적이기만 할 뿐 아무것도 주는 게 없는데. 물론 드라마라는 것이 꼭 무엇을 얻기 바라면서 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순수 자극이란 너무 심한 것이 아닐까. 이성적으로 생각하기에 그만 보는 것이 백 번 옳다. 하지만 다음날 나는 다음 화를 찾아본다. 반복이다. 나는 막장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일까, 싫어하는 것일까.

최근 아내의 추천으로 본 막장 드라마 〈결혼 작사 이혼 작곡〉을 보며 들었던 생각이다. 낄낄거리는 아내에게 저런 걸 왜 보느냐고 냉소를 짓곤 했는데, 아내가 딱 한 번 맛 좀 보라고 해서 이제는 내가 꼭 그런 모습을 했다. 이쯤 되면 분석을 안 할 수가 없다. 막장 드라마의 매력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 분야 거장 임성한 작가의 작품이다.

두 가지 정도로 말해보고 싶다. 하나는 상상력의 날개가 펼쳐서 어디까지 도달하는지를 보는 재미. 막장 드라마의 상상력의 날개는 보통 드라마가 가진 날개보다 그 용량이 가히 압도적으로 높다. 일반 드라마가 그냥 상상 더하기 수준이라면, 막장 드라마는 상상에 상상에 상상을 더한 수준이다.

‘분명 이 부분에서는 이렇게 되겠지’ ‘이 정도면 장대 끝이겠지’라고 생각한 지점에서 가볍게 한 발, 두 발, 세 발을 나가버린다. 마치 ‘원래 길이란 없다.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이다.’라고 말하는 듯이 말이다. 매회 아슬아슬하게 그 막장의 리즈를 갱신하니 빨리 다음 화를 외칠 수밖에 없다. 무엇을 상상해도 소용없다. 항상 그 이상을 보여주니 그걸 보는 재미란 엄청날 뿐이다.

또 하나의 재미는 숨겨진 욕망을 보는 대리만족과 안도감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욕망이 있고, 대부분의 욕망은 숨겨져 있다. 숨겨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 사회적인 제도나, 도덕, 윤리, 사회적 지위 등에 의해서 그것을 마구 분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영역에 있는 욕망이란 대부분 금지된 것에 가깝다. 아이러니하게 욕망이란 금지된 것일수록 매혹적으로 보이고, 강렬하다.

막장 드라마는 그 숨겨진 욕망, 금지된 욕망이 어디에도 메이지 않은 상태로 폭발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갈 데까지 가버린다. 그런 장면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에 감춰진 욕망의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 준다. 그렇지, 바로 저거지, 저런 모습이 내가 도달해보고 싶었던 욕망의 끝이구나, 와 정말 끝내준다, 이러한 카타르시스를 만끽하게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금지된 욕망이 그러하듯, 역시 그 끝은 파멸이다. 금지된 것은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파멸을 향해 도착한 욕망의 끝을 보며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그렇지, 역시 저런 종류의 욕망은 감춰져 있고, 억눌려 있고, 마음껏 펼쳐지지 않은 것이 좋은 거야, 결국에는 누구 하나 행복하지 않고 저렇게 끝난다니까, 미련하긴 멈췄어야지. 막장 드라마가 주는 교훈이라면 교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렇게 살면 안 된다’라는.

시즌 2 포스터만 봐도 맵다(…)

현재 시즌 3을 기다리는 〈결혼 작사 이혼 작곡〉은 막장이긴 하지만 〈펜트하우스〉에 비하면 훨씬 순한 맛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바람이 이야기의 대부분이기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더 매운 맛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 경우에는 〈펜트하우스〉처럼 한없이 기 빨리고 아프기보다는 위에서 말한 적절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기에 즐겨볼 수 있었다. 막장 드라마에 입문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결혼 작사 이혼 작곡〉을 조심스레 권해본다.

원문: 세상의 모든 문화 / 글: 김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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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모범택시〉 죽지 말고 복수하세요 https://ppss.kr/archives/240303 Thu, 29 Apr 2021 08:38:12 +0000 http://3.36.87.144/?p=240303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즌 2 1부>가 끝나고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모범택시>는 <펜트하우스>와 다른 형태의 복수를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전작 드라마 <펜트하우스>가 ‘악’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인물들끼리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형태의 복수가 그려졌다면, 이번 드라마 <모범택시>는 확실하게 나누어진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으며, 각자 선과 악의 편에 선다. 이번에는 피해자를 위해 가해자에게 대신 복수하는 에피소드가 그려졌다.

지난 금요일(16일)에 방영된 드라마 <모범택시 3화>에서는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피해자의 의뢰를 받는 모습이 그려졌다. 피해자는 모범택시에 전화를 걸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이후 ‘복수를 하시겠어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화면에 뜬 ‘YES’ 버튼과 ‘NO’ 버튼. 피해자는 망설이다가 ‘YES’ 버튼을 누른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학교 폭력은 주위에 도움을 구한다고 해서 쉽사리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학교에 신고해서 학교 폭력 위원회를 연다고 해도, 대다수가 흐지부지하게 결말을 맺는다. 심하면 가해자 대신 피해자가 전학을 가는 일도 발생한다.

학교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으니 당연히 피해자는 학교 폭력 신고 센터 혹은 경찰서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도 미온적인 태도가 논란된 적이 적지 않다. 결국, 학교 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절대적인 방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 폭력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숨을 죽여 남과 같은 형태로 학교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 뿐이다. 괜스레 나서다가 눈총받는 일이 없어야 하고, 일진과 마주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가해자들이 누군가를 괴롭힐 때에는 방관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렇게 학교 폭력의 레이더망에서 빗겨가면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동안 가혹한 학교 폭력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이 옳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을까?

어른이 된 후에도 이 문제는 쉽지 않다. 사회생활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에 따라 갑질을 겪기도 하고, 대학과 군대, 직장이라는 조직 생활에서도 비슷한 폭력이 수없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요즘 같은 시대는 더.

누군가는 이러한 상황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때때로 침묵해야 하고, 때때로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척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잘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그게 최선인 걸까? 당하는 것이 당연하고, 참는 것이 당연하고, 무시하는 것이 당연한 걸까? 복수하면 안 되는 걸까? 이렇게 피가 마르게 만드는 가해자들에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법이 허락하지 못한다면, 그냥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드라마 <모범택시>는 그러한 질문에 대해 당당히 “NO”라고 대답하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에피소드가 그려진다. 피해자가 직접 나서서 복수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에 복수를 대행해주는 주인공과 인물들이 피해자의 사정을 낱낱이 파악한 후 복수에 들어가게 된다.

지난 3화에서 끔찍한 학교폭력을 당하던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하기 위해서 주인공 김도기(역 이제훈)는 학교의 기간제 교사로 위장 취업한 뒤 가해 학생들에게 접근한다(사실 가해 학생들이 만만한 기간제 교사에게 먼저 접근한다).

가해 학생들이 만만한 선생님을 깔보고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에도 반 아이들 몇 명이 만만한 나이 든 선생님이나 여자 선생님을 깔보면서 수업 시간 내내 짓궂은 장난(장난이라고 말하기에 선을 넘는 경우도 있었다)을 치는 등 눈살이 찌푸려지는 행동을 했다. 요즘 아이들은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드라마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나이가 어리다고 죄의 무게가 가벼워지지 않아. 누가 돌을 던졌던 가라앉는 건 마찬가지니까.

부디 이 말을 무게를 보여주는 속 시원한 전개가 그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말 학교 폭력은 지긋지긋하지만, 절대 사라질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원문: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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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젊은이들은 “윤여정”에 열광하는가 https://ppss.kr/archives/240386 Tue, 27 Apr 2021 02:48:09 +0000 http://3.36.87.144/?p=240386 윤여정 배우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포스팅이 쏟아진다. 예전 예능 출연 클립을 훑어보고 왜 사람들, 특히 여성-젊은이들이 윤여정에게 열광하는지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1.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을 하지 않는다. 예능프로 <택시>에서 “선생님의 메시지가 필요하다”는 이영자에게 “아우 무슨, 나는 교황이 아니야”라며 손사래를 친다. 본인의 말이 사실보다 더 멋지게 보이는 걸 경계한다. 멋져 보이는 크고 거창한 단어 사용을 일부러 피한다.

오늘 기자회견에선 ‘진정성’ 대신 ‘진실하다’는 말로 자꾸 바꾸어 쓰는 모습이 보였다. 한국 기자들 앞에서는 영어를 되도록 안 섞어 쓰려고 수시로 무심코 튀어나오는 영어 단어를 검열하고 있었다. 기성 세대가 거대한 단어를 사용해 꼰대질해대는 데 질린 사람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2.

윤여정의 어법엔 “늙었다”는 말이 아주 많이 나온다. (나이듦이란 점잖은 단어가 아니라) 그런데 이게 “그래서 계속 노력한다.”로 이어진다. 늙어서 타인에게 이정도 충고는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스스로에 대해서도 “내가 나 자신을 알면 소크라테스겠죠.”라 한다. 윤여정은 얼마 전 타계한 채현국 선생(“늙은이들이 저 꼴이라는 걸 잘 보아 두어라”)의 소프트한 여성 버전 같다.

 

3.

“새로운 걸 배우는 걸 좋아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비정상회담>에 나왔을 때 살짝 엿보였는데, 그녀가 이 프로를 즐겨 보는 이유가 거기 나온 외국인들이 어떤 개념도 한국 특유의 ‘정형화’해버리기를 안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정형화에 갇혀 있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비정상회담 윤여정 출연 하이라이트

 

4.

언뜻 들으면 전혀 그렇게 안 들리는데, 잘 들어 보면 급진적이고 진보적이다.

  1. “예전엔 빈부격차가 크지 않고 모두 가난해서 상대적 박탈감이 없었다. 그 시절이 그립다” (<비정상회담>)
  2. “모두 최고(最高), 최고 하는데 굳이? 모두 ‘최중(最中)’ 했으면 좋겠어요. 사회주의자라고 하려나?” (수상 후 기자회견)
  3. 색을 섞어놓으면 더 아름답다. 무지개도 7색이잖나. 색깔(피부)은 중요치 않다. 백인 흑인 황인… 이렇게 나누는 거, 옳지 않다. 인종, 성별, 게이냐 아니냐 이런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평등한 사람이다. (수상후 외국 기자회견)

 

5.

75세의 노배우가 “사회주의라고 하려나”란 말을 할 정도로 너무 자연스럽게 평등의식이 배어 나오는 이유는 무얼까. 아마도 이혼녀에게 붙는 주홍글씨, 은근한 차별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윤여정은 이혼 후 생활고에 두 아들을 키워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어떻게든 연기를 해야 했다고 한다. 잘하기 위해서 “대본을 성경”삼아 부단히 노력했단다.

※ 추가: 이 부분에 대해 한 페친이 ‘차별 경험만으론 평등의식이 장착되지 않으며 교육이 필요하다’라고 하셨고, 이에 동의한다. 윤여정 배우는 이혼과 그로 받은 차별 대우를 계기로, 화려하게 데뷔한 과거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깨지고 새로운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느꼈던 것 같다. 단역부터 다시 시작해 연기를 아예 새로 배우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과 접촉했고, 이런 의식을 몸으로 익혔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더 중요한 건 의식적으로 새롭고 다양한 걸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윤 배우가 젊은 배우나 연출자와 인터랙션하는 걸 보며 느낀 것이니, 어디까지나 짐작이다.

 

6.

이건 좀 번외지만, 리 아이작 정 감독이나 스티븐 연이나 윤여정이나 인터뷰하는 걸 들어보면 에고가 강하기보다 다양성에 열려 있는 모습을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리 아이작 정은 <더 데일리쇼>에서 트레버 노아와 진행한 인터뷰, 스티븐 연은 코난 오브라이언과의 인터뷰를 강력 추천한다)

리 아이작 정 감독의 인터뷰

스티븐 연의 <코난 쇼> 인터뷰
원문: 네눈박이엄마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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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윤여정 여우조연상” 축하 트윗 모음 https://ppss.kr/archives/240344 Mon, 26 Apr 2021 03:27:20 +0000 http://3.36.87.144/?p=240344

윤여정 배우가 <미나리>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 한국 배우 최초의 역사를 쓰네요. 축하합니다! pic.twitter.com/Es41T2NWDE

— cine21_editor (@cine21_editor) April 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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