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 https://ppss.kr 필자와 독자의 경계가 없는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Mon, 28 Apr 2025 02:07:19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5.8.10 https://ppss.kr/wp-content/uploads/2015/07/ppss-100x100.png ㅍㅍㅅㅅ https://ppss.kr 32 32 〈소년의 시간〉, 해답 없는 문제를 마주하는 태도 https://ppss.kr/archives/269202 Mon, 28 Apr 2025 02:07:19 +0000 https://ppss.kr/?p=269202 소년의 시간 (Adolescence, 2025)

해답 없는 문제를 마주하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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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 시간이었나, 흔한 예능 프로의 마지막에서나 나올 법한 질문을 아내에게 들었다.

현재 꿈이 뭐야?

어렸을 때 같으면 뭐가 되겠다는 꿈을 얘기했겠지만, 아이를 키우면서부터 내 꿈(목표)은 아이에 관한 것이 될 수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큰 고민 없이 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아이가 큰 문제 없이 학창 시절을 잘 마무리하는 것뿐이야.

내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결코 쉽지 않았다. 아니 누군가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갈래?’라는 비현실적 질문을 던져도 나는 ‘아니, 결코 돌아가지 않을 거야’라는 현실적 답변을 할 것이다.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과연 내가 그걸 다시 할 수 있을까?

내 학창시절은 여러 이유로 복잡하고 힘겨웠다. 지금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딱히 어떠한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는다. 내 경우에는 ‘어떻게 고통을 견뎌냈지?’라는 의문보다는 ‘그럼에도 왜 삐뚤어지지 않았지?’라는 의문이 더 앞설 정도로, 어떻게 흔들리지 않고 혹독한 시간을 견뎌왔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조금 특이한 경우였을지 모르나, 모두의 중고등학교 시절은 각자의 이유들로 쉽지 않은 시간들이다. 그것을 알기에 나는 내 아이가 커다란 사건이나 힘겨움 없이 이 시기를 잘 보내는 것이 언제부턴가 목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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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 (Adolescence, 2025)〉은 힘겨운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제이미라는 한 소년과 그가 연루된 사건을 배경으로 한 범죄·사회 드라마다(원제인 ‘Adolescence’는 청소년기라는 다소 형식적이고 담백한 제목인데, ‘소년의 시간’이라는 우리말 제목에는 좀 더 많은 복잡한 의미를 담았다). 총 4회 분량의 비교적 짧은 드라마인데, 편당 약 50~60분 정도로 편성되어 4편으로 나뉜 드라마라기보다는 1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이 드라마를 얘기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원테이크 촬영이다.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컷을 끊지 않고 진행되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많은 준비가 필요한 작업이다. 보통은 액션 영화에서 현장감을 배가 시키기 위해 사용되지만, 감정이 주가 되는 드라마에서도 원테이크 촬영이 얼마나 효과적인 기법인지 〈소년의 시간〉을 보면 알 수 있다.

원테이크 촬영이다 보니 촬영 장소가 한정적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한정된 공간 내에서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가끔은 제3자가 되어 해당 공간의 분위기를 한발 물러나 전체적인 시점으로 볼 수도 있고, 가끔은 극 중 공감대를 느끼게 되는 인물(상담사나 제이미의 아버지 등)이 느끼는 감정을 아주 가까운 곳에서 현실처럼 체험하게 된다.

이 드라마가 다루는 감정이 매우 격렬하게 요동치다 보니,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전달자 역할을 하고 있는 원테이크 촬영 방식은 여느 액션 영화의 그것 못지않게 효과적이다.

(이후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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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개의 에피소드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3편과 4편이다. 먼저 3편에서는 시설에 구금되어 있는 제이미가 심리상담사와 긴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담겼다. 이 에피소드는 거의 이 대화가(이걸 대화라고 할 수 있을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전부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긴 시퀀스를 통해 〈소년의 시간〉이 보여주고자 했던 현재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시퀀스에서는 흔히 ‘인셀’이라고 하는 현재 10대 남자들의 민낯을 피하고 않고 들춰낸다. 이들이 갖고 있는 여성에 대한 삐뚤어진 가치관과 세상을 바라보는 어긋난 시선을 극 중 제이미의 대사와 태도로 담아내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판타지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현재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문제가(갈등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심화되고 있는 10대 남자들의 어긋난 가치관이 얼마나 정상적인 것과 거리가 있는지, 그 폭력성이 어디까지 닿아있는지 이 작품은 상세히 보여주는 것에 그친다.

다음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세히 말하겠지만, ‘보여주는 것에 그친다’는 것은 이 작품의 중요한 미덕이다. 특히 어쩌면 수많은 범죄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소년의 어긋난 정체성과 사회성에 관해 말하고 있기 때문에, ‘소년의 시간’은 섣불리 결론짓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현재 사회에는 더 선행되어야 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이미의 행동이나 언행에 대해 작품 스스로가 결론짓지도, 교정하지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시청자는 이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 주변을 다시 둘러보게 된다. 아주 복잡해진 마음으로 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4번째 에피소드였다. 4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제이미의 아버지인 에디(스티븐 그레이엄)의 생일날 벌어지는 일들을 담는다. 3번째 에피소드에서 제이미의 현실을 마주했다면, 4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당사자이자 제3자이기도 한 가족, 더 직접적으로 제이미를 낳고 길러낸 부모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이 에피소드 역시 차로 이동하는 장면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에디와 아내, 그리고 딸의 대화로 이뤄져 있다. 나는 이 에피소드 속 대화 한 줄 한 줄을 보면서 〈소년의 시간〉 작가와 제작진들이 얼마나 이 현실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연구하고 조심스레 접근했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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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제이미 부모의 대화를 귀 기울여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말들과 감정들로 여과 없이 담아내는데, 내 분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타인이기도 한 자녀라는 존재. 그 자녀를 상대로 한 원초적인 감정들부터 부모로서 느끼게 되는 무기력함과 죄책감까지 그 꾹 눌린 답답함을 가감 없이 마주한다.

가장 가슴 아팠던 건 대화의 말미에 너무 어른스럽고 잘 자란 딸아이를 보며 에디가 묻는 장면이다.

우리가 저 애를 어떻게 저런 애로 만들었지?

그러자 아내가 대답한다.

제이미와 똑같은 방법으로.

이 대답을 듣고 에디는 하루 종일(어쩌면 처음 사건이 있던 날 이후로 쭉) 억눌러 왔던 감정이 폭발하며 오열한다.

너무 가슴이 아팠다. 똑같은 방법으로 자녀들을 키웠는데, 제이미와 누나는 너무 다른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극 중 제이미처럼 청소년들이 인셀이 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 어른과 사회는 쉽게 원인을 규정짓곤 한다. 부모가 가정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거나, 학교, 사회 등의 만연한 문제들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소년의 시간’에서도 제이미가 다니고 있는 학교를 보면 여러 문제들이 해결책 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학교에 다니는 모든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닌 것처럼, 똑같은 부모의 똑같은 방법으로도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결론짓지 않는 이 작품의 유일한 결론이자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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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서두로 돌아가 내 아이가 큰 문제 없이 학창 시절을 마무리하길 바라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처음엔 부모가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나쁜 것들로부터 접촉을 막아 내면 끝까지 괜찮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불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인터넷을 모두 끊고 사회에서 벗어나 우리 가족만 고립되어 어른이 될 때까지 지낼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이의 학교, 사회생활은 부모가 아무리 관심을 가져도 정확히 알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그저 미뤄 짐작하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 끝까지 몰랐으면 하는 나쁜 것들, 끝까지 접할 일이 없었으면 하는 나쁜 일들을 부모가 영원히 막아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럼 결국 결론은 그런 나쁜 것들을 아이가 독립적으로 판단하여 스스로 거르고 피하거나 이겨낼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이른다. 쉽게 말해 다소 공허할 수도 있지만 아이가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말고는 나쁜 것들의 유혹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부모의 힘만으로 막아낼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이야기다.

이 결론밖에는 없다는 것이 매번 불안하고 무력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 할 수 있어!’라고 쉬이 결론짓는 이야기보다 ‘소년의 시간’처럼 그 무기력함을 뼛속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는 것으로 위로하는 이야기가 더 치명적으로 와닿을 수밖에 없었다.

원문: 아쉬타카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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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혐오에 빠진 모든 어른이들에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https://ppss.kr/archives/263274 Tue, 07 Jan 2025 03:05:35 +0000 http://3.36.87.144/?p=263274 ※ 이 글은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딘가 경험이 없어 어리숙한 이들. 그렇기에 어른이 나서서 먼저 보호해 줘야 하는 이들. 바로 어린이들이다. 그런데 요새는 어린이라는 단어가 어른들에게도 붙는다. 클라이밍을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클린이’, 헬스에 처음 도전하는 이들에게 ‘헬린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처럼. 어린이들 입장에선 나이 꽤나 먹은 이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빼앗아 가니 곡할 노릇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만큼 사회가 불안정한 탓에 어른들도 어린이가 가지는 특권을 시샘하는 것이 아닐까?

철두철미한 준비도 경험의 공백을 메울 수 없기에, 어른들도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 당혹스럽고 무섭다. 그래서 어른이 되었을 법한 나이가 되었음에도 키덜트니 어른이니 하면서 다들 나이 들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도 이건 처음이에요. 그러니 어린이 대하듯 친절하게 대해줘요!’ 하고 말이다.

어른이라고 계속 어린이고 싶었던 건 아니다. 누구보다 멋지게, 사랑하는 이들을 책임지는 삶을 어릴 적부터 꿈꿔오지 않았는가. 그러나 사회는 어느 때보다 다재다능한 사람을 원하고, 우리는 참 미숙해 때로는 자괴감이 든다. 바로 이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오늘의 사회적 영화 보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진작 어른이 돼야 했으나, 결국 어른은 되지 못했던 인간군상들이다. 캡틴 아메리카처럼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정의를 가슴에 품은 것도 아니요, 토니 스타크처럼 멘토가 되어주기엔 자기 앞가림이 바쁘다. 누군가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주기엔 각자 어딘가 부족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 즉 이들은 요즘 사회가 정의하는 ‘어른이’의 정의에 부합하는 이들이다.

각 멤버가 어른이 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선 같은 영화 1~2편, 엔드게임을 거쳐 많이 풀렸는데 유독 과거 이야기를 꽁꽁 숨기고 있는 한 마리(?)가 있다. 바로 너구리(Racoon)인 로켓. 그래서 이번 3편은 그런 로켓을 주인공으로 어린아이 혹은 성장하지 못한 어른을 주제로 이야기를 준비했다.

 

1. 성장하지 못한 어른, 어른이

영화의 3가지 파트. 항상 눈이 즐거운 우주를 만들어 준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크게 나누면 3가지 파트로 나눌 수 있다. 파트 1에서는 아담 워록의 급작스런 습격으로 인해 로켓이 중태에 빠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오갤 멤버들인 친구이자 가족인 로켓을 구하기 위해 로켓의 과거가 숨어있는 오르고 스코프사에 침입한다. 파트 2에서는 로켓의 창조주이자 타노스와 같이 ‘우주를 조금 더 완벽하게 만든다’는, 겉보기엔 이타적인 철학을 품은 빌런 하이 에볼루셔너리를 쫓아 카운터 어스로 떠난다. 마지막으로 파트 3에서는 아센터 연구소에서 로켓을 구하고 가오갤 멤버들이 다시 힘을 합쳐 빌런을 물리친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히어로 무비의 줄거리지만,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철학과 가오갤 멤버들의 대비가 이 영화를 정말 각별하게 만든다. 완벽을 지향하는 빌런과 완벽과는 억만년 거리가 있는 어딘가 모자란 히어로들의 대결이라니…(이 대결 구도는 영화 내내 나를 정말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완벽을 추구하는 빌런과 완벽과는 거리가 먼 히어로들의 대결

영화 속의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다툼과 분쟁이 없는 이상사회를 꿈꾸지만, 그 대의를 위해 수많은 실험체들을 고문하고 잔인하게 개조한다. 타노스가 숭고한 대의를 위해 절반의 우주를 날려버린 것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은 것처럼,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철학 역시 과거에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던 철학이다. 바로 나치즘과 파시즘,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우생학적 사상 말이다.

이런 우생학적 편견들은 여전히 사회 속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유전자 레벨의 개조와 세뇌가 아닐지라도 자신들이 꿈꾸는 ‘이상향’을 위해서라면 대의를 위해 소수를 기꺼이 희생시키고, 누군가의 다양성과 개성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넘쳐나지 않는가? 대체로 이상향이라고 불리는 디스토피아는 다양성의 무덤 위에 세워지는 법이다.

하이 에볼루셔너리 역시 로켓에게 이상향을 약속하지만, 정작 그를 이상향으로 데려갈 생각은 없다. 왜냐면 로켓은 하이 레볼루셔너리의 기준에서 이상향에 어울리지 않는 소수 쪽의 인물일 테니까.

영화 초반의 Creep은 로켓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노래에 가깝다

라쿤은 스스로가 그 이상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한 음악을 흥얼거리며 따라 부른다. 바로 라디오헤드의 전설적인 팝송 〈Creep〉이다.

<Creep>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멤버들, 특히 로켓이 스스로에게 품은 감정을 대변하는 노래이다. 꿈틀꿈틀 기어다니는 벌레와 같은 혐오스러운 물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많이 비꼬는 뉘앙스의)새끼’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다.

이처럼 가오갤 멤버들은 자신을 미워할 동기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사회가 말하는 평범함에 녹아들기엔 너무나 특이하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기에 스스로를 사랑하기가 어렵다. 죽음을 눈앞에 둔 어머니를 외면한 것을 마지막으로 우주 해적에 납치당한 지구인부터, 광적으로 균형에 집착하는 양아버지 덕에 산전수전을 다 겪은 자매, 그 양아버지의 부하 때문에 가족을 지키지 못했던 아버지까지.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가오갤 멤버들이다. (그런 감정마저 자학과 유머로 극복하기에 이들이 사랑스러운 거겠지만)

그런 Creep으로서 자각이 있기에 그들은 항상 어른으로서, 혹은 히어로로서 책무를 다해야 할 때 어른스럽지 못하다. 타고난 재치와 배짱으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긴 했지만, 감정이 앞서 중요한 임무를 망쳐 놓기나 했으니(대표적으로 스타로드가 타노스 뺨따귀를 때린 것) 더 성숙한 어른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었다. 이를테면 아버지(욘두)가 희생하거나, 어른의 책무를 다하고자 했던 히어로(토니 스타크)의 도움을 받는다거나.

몸은 성숙했건만 정신적으로나 인간관계에서나 어중간한 어른이. 바로 요즘 어른들의 모습이 겹쳐지기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MCU 세계관 속 어느 히어로보다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2. 완벽함은 세계를 구할 수 없다

유독 어린아이들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어른이’뿐 아니라 정말로 어린 친구들도 많이 나온다. 생쥐를 베이스로 개조된 종족부터 어린 시절의 로켓과 동물 친구들까지.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상태를 ‘어린이’라고 정의한다면 누구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아담 워록까지 어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어린이란 아직 어른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며, 그 모두를 포용하는 개념이다. 하이 레볼루셔너리는 바로 이 어린이들을 위해(혹은 타노스와 마찬가지로 자신만이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이상향을 건설하고자 행동한다.

그러나 과거 수많은 천재들이 그랬듯, 희생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해결된 것은 거의 없다(이는 하이 레볼루셔너리 같은 천재들이 겉으론 이상을 위하는 척 행동하지만, 자신보다 뛰어난 피조물의 등장에 분노하는 것처럼 위선으로 가득 찬 자기만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상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어린이들이 셀 수 없이 희생된다. 현대 사회에서 정의 내리는 성공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방황하고, 어른들은 자신들이 꿈꾸는 성공을 쫓느라 정작 진짜로 존재하는 문제를 돌아보지 못한다. 이처럼 이상이 구해내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

하이 레볼루셔너리는 자신의 이상향을 기준으로 어린아이(혹은 동물)의 개성과 장점을 무시한 채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강제한다. 뒷다리 힘을 개성과 장점으로 삼는 토끼, 플로어에겐 억지로 거미 같은 다리와 육식 동물의 이빨을 떠올리게 하는 입을 덧댄다. 바다코끼리인 티프를 육지에 억지로 적응시킨다고 바다에 최적화된 지느러미와 꼬리 대신 바퀴를 달아놓는다. 그러나 본래의 태생과 개성을 무시한 교정이 원활하게 작용할 리가 없다. 보기 흉측한 Creep이 될 뿐이다. 결국 하이 레볼루셔너리의 이상에 못 미치는 이들은 구제받지 못하고 사회로부터 폐기 처분 판정을 받는다.

비슷한 사례를 주변에서 종종 발견하곤 한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성공을 강요하는 사회와 학생의 개성은 말소하고 맹목적인 교육과 교정을 반복하는 학교들. 대의를 위해 개인의 개성과 특징을 말소하는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다. 이들을 구하고자 등장한 완벽한 선은 오히려 이들을 구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누구일까? 우문현답일지도 모르지만 바로 어른이다.

 

3. 완벽해서 어른이 아니야, 책무를 다하니까 어른이야

덜떨어진 어른들이 하는 일이 그러하듯 가오갤 멤버들의 작전은 완벽과 거리가 멀다. 원래 목적인 라쿤을 구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본의 아니게 네뷸라와 드렉스, 맨티스가 역으로 인질로 잡혀버리고 만다. 늘 그렇듯 책임을 돌리기에 바쁜 이들의 모습은 어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분노와 자기혐오에 가득 차 모진 말들을 내뱉는 이들 앞에 다른 존재가 나타난다. 바로 하이 에볼루셔너리가 창조하고, 신세계로 이주시키고자 준비한 어린이들이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역시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규정되어 있던 엄격한 완벽이다. 그것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결국 폐기당해야만 하는.

그러나 완벽이 구해내지 못했던 이들을, 누구보다 불완전한 어른인 가오갤 멤버들이 구해낸다. 그것도 가장 완벽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들이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개개인이 완벽해서가 아니었다. 모자란 이들이지만 이들은 어른으로서 책무를 피하지 않았고, 결점만큼이나 뛰어난 개성과 서로의 단점을 감싸줄 좋은 동료들이 있었다. (마블 영화의 히어로들은 영웅을 우상화하지 않는 점이 좋다. 그들은 언제나 인간적인 나약함과 자신의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책무를 다하기 때문에 멋진 히어로이다).

독특한 사람, 괴짜가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결점이 가득한 이도 자신이 모르는(혹은 노력으로 길러낸) 장점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장점이 자신을 혐오하게 만든, 결점에서 유래되었다는 점은 마지막 구출 장면을 더욱 뭉클하게 만든다.

딸을 지키지 못했던 드렉스는 유일하게 아이들과 소통을 할 수 있는 존재였고, 아버지로부터 잔인하게 개조당한 탓에 기계의 몸과 심장을 지니고 있던 네뷸라는 덕분에 거의 망가진 우주선에 동력을 공급하여 아이들을 구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에고가 오로지 자신의 숙면을 위해 만들었던 맨티스는 자신의 태생 덕분에 아빌리스트(2편, 3편에 등장하는 우주 괴수)의 두려움을 이해하고 이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이들을 그토록 괴롭게 했던 자기혐오의 원천이자 결점은, 어떤 의미로는 결점이 아니었다.

 

자기혐오도 긍정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길 바라며

어렸을 때는 100점만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뭐든지 해낼 수 있는 완전무결함이 뛰어난 어른으로서 자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더라. 심지어 내 인생마저도. 하고자 하는 일이 더 큰 대의와 선을 위한 일일수록, 큰일을 해내고자 도전할수록 뼈저리게 느껴지는 건 나의 부족함과 결점이었다. 그런 결점 때문에 스스로가 몸서리 처질 정도로 미워질 때도 있었다.

그렇게 부족한 우리지만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되었다. 아니, 돼버렸다. 나의 모자람으로 인해 무언가 잘못될 때마다 ‘이래도 어른이라 할 수 있나?’라는 기분에 자괴감이 든 적이 여러 번 있다. 그러나 선이란 꼭 모든 준비가 갖춰져야 베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꼭 완벽하고 성숙한 어른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완벽한 어른보다 그런 어른이 분명 멋있다)

분명한 것은 아이들도 부족한 어른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어른이’로서 가오갤 멤버들이 각자 품었던 자기혐오를 극복하고 어른이 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어린이였던 이들이 실패한 멋진 어른들을 보며 배우고 자라는 영화기도 하다. 힘을 분출할 줄밖에 모르던 어린이는 어른들의 등을 보며 깨닫게 된다. 완벽하게 행하기에 어른인 것이 아니라, 책무를 다하고자 하는 모습이 어른임을.

 

PS.

춤은 머저리들이나 추는 것이라 말하던 드렉스가 춤을 추는 장면과, 3편의 영화 내내 거의 웃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던 네뷸라가 웃으며 리듬을 타는 모습에 살짝 눈물이 나올 뻔했다. 오늘도 책무를 다했던 멋진 어른이들이여, 우리도 내일엔 이들처럼 자신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원문: 소라소라빵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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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덕후에서 EBS PD로 덕업일치를 이루다: EBS 박혜민 PD 인터뷰 https://ppss.kr/archives/268235 Fri, 27 Dec 2024 04:32:52 +0000 http://3.36.87.144/?p=268235 평범한 대학생, 다큐멘터리 제작에 입문하다

이승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박혜민: EBS 박혜민 PD입니다. 시즌 3 막판에 <위대한 수업>에 합류했습니다.

크레타 스튜디오 촬영 사진

이승환: EBS는 어떻게 입사하셨나요?

박혜민: ADHD 성향이 있어서 책보다 다큐멘터리를 좋아했어요.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세상을 배웠는데, 특히 EIDF, EBS 국제다큐영화제를 학생 때부터 즐겨 갔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러 다니면서 EBS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키웠어요.

매년 개최하는 유서 깊은 EBS의 영화제

이승환: 다큐멘터리라니, 뭔가 학생 때 좌빨 활동을 하셨던 건가요?

박혜민: 약간 운동권에도 발을 걸치고 있었지만, 운동권이 되기 싫은 마음도 한켠에 갖고 있는 소시민적인 학생이었어요. 뭔가 사회적인 활동을 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생겨서 기웃기웃거리는? 그렇지만 제 미래가 당장 급한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죠. 그러다 영상에 관심이 생겨 ‘미디액트’라는 곳에서 다큐멘터리 수업을 듣고 만들게 됐습니다. 제가 04학번인데 그때만 해도 카메라 장비들이 굉장히 비쌌고 일반인들은 영상을 만들기 힘들었던 때였거든요.

이승환: 어떤 다큐를 만드셨나요?

박혜민: 마침 그때 다큐를 만들고 싶어서 모인 5명이 모두 여성이었어요. 공통의 관심사가 무엇인지에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성으로서 겪는 어려움이나 억울함, 그런 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공통적으로 나왔고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옴니버스 다큐를 만들었어요. 목사님은 여성 목회자로서의 어려움, 한 분은 성형 수술 경험을 밝히시며 외모 지상주의에 대해서, 그리고 또 한 분은 여성 흡연자의 삶, 이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요즘도 계속 열리고 있다

 

사적이고 내밀한 ‘체모’를 주제로 다큐를 만들기까지

이승환: PD님은 어떤 주제의 다큐를 만드셨나요?

박혜민: 털에 대한 다큐였어요.

이승환: …… 다른 분들은 뭔가 사회적인 의미가 느껴지는데, 털이라니 특이하네요.

박혜민: 사적이지만 또 사회적인 의미가 있죠. 그때 당시 제가 팔에 털이 되게 많았어요. 털을 밀었더니, 더 억세게 자라나잖아요. 그런 팔을 보고 남자 선배들이 되게 되게 많이 놀렸었고, 제모 시술을 받게 됐어요. 2000년대 초반 당시만 해도 제모가 꽤 비쌌어요. 당시 거의 노트북 3~4대 가격을 제모에 쓴 것 같아요. 근데 제모하고 나서도 놀리더라고요. 제모했다고.

털은 은근 사회적 시선이 많이 작용한다. 반대로 남자들은 털이 있어야 한다는 편견이 있어서, 한때 남자 아이돌들의 ‘클겨’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승환: 2000년대만 해도 정신 나간 시대여서, 말 가리지 않고 막말하던 시대죠(…)

박혜민: 네. 처음에는 왜 여성들만 털을 밀어야 되지, 왜 우리는 털을 이렇게 터부시하지? 털 많은 여성들은 왜 놀림을 받아야 하지? 이런 고민에서 시작했어요. 근데 촬영하다 보니 저만 그런 생각을 가진 게 아니더라고요. 남자 동기는 털이 없어서 고민이었고, 남자 선배는 코털이 너무 빨리 자라서 매일 아침 깎는 게 성가시다고 하고, 성별을 떠나서 털에 대한 각자의 고민이 있더라고요. 그런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되게 재밌었고요.

이승환: 신기하네요. 남자들끼리도 그런 얘기를 사실 할 일이 없으니까…

박혜민: 네. 그때 경험을 통해 개인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또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도 얻을 수 있다는 것도요. 저만 해도 항상 화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뭔가 말하기엔 민망하고, 그런 걸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방법을 몰랐어요. 근데 카메라 앞에서 그냥 툭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제 문제에 대해서 공감해 주는 사람도 생기고 각자의 고민도 공유하는 일련의 과정이 되게 재미있게 풀렸어요. 나의 고민에 대해 타인의 공감과 지지를 받으면서 심지어 웃길 수도 있다. 억눌린 분노를 웃으면서 해소했던 그 과정이 강렬했던 것 같아요.

 

사회초년생 , 감정노동의 어려움을 배우다

이승환: 그렇게 다큐 PD의 꿈을 키우게 된 거군요.

박혜민: 네. 근데 EBS뿐 아니라 다른 방송사도 다 떨어졌었요. 2009년 리만 브라더스 사태로 언론사 취업 문이 많이 닫혔거든요. 그래서 잠시 모 대기업 계열 백화점에 몸을 담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안 맞았어요. 1년 정도 백화점 현장에서 근무하는데, 그때 정말 하루걸러 이틀에 한 번씩은 울었던 것 같거든요.

이승환: 상사가 꼰대였나요?

박혜민: 진상 고객들이 많았죠. 그때만 하더라도 ‘감정노동’이라는 단어가 사회적으로 많이 이야기되던 때가 아니었어요. 고객이 왕이다, 그러니까 따지지 말고 고객에게 잘해야 한다… 요즘은 그래도 많이 변한 게 전화하면 ‘응대하는 직원도 누군가에겐 소중한 가족일 수 있습니다’ 이런 안내 멘트가 나오잖아요? 2009년에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이 한마디가 나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희생이 있었다

이승환: 진상 고객들이 뭔 짓을 하던가요?

박혜민: 가죽 자켓을 세탁기에 빨고 와서는 교환해달라는 사람도 있고, 내가 이 동네 땅을 몇 평이나 갖고 있는 줄 아느냐. 제가 맞은 건 아니지만, 직원들을 때리는 고객도 있었고요. 근데 뭐 어쩌겠어요? 일단 ‘다 죄송합니다’라고 대응했죠. 고객이 왕이니까. 그때 눈물이 막 흐르는데, 또 매장에 나가서 일을 해야 하니, 눈물 멈추려고 웹툰 보면서 일부러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승환: ……

박혜민: 실제 업무 평가도 좋지는 않았습니다. 미스터리 쇼퍼라고 고객인 척 가장해서 오시는 분들이 몰래 직원들을 평가하는데, 매뉴얼을 지키지 않으면 점수가 깎여요. 제가 60점이었거든요. 90점 이하면 서비스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교육 담당자가 저였습니다;;; 그래도 거기 가지 않았으면 저는 EBS PD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자기소개서도 그렇고 EBS PD 시험에 나왔던 작문도 그때 백화점 서비스 노동 경험을 바탕으로 썼던 글이었고요.

감정 노동자에게 피로 두 배를 선사하는 미스터리 쇼퍼

 

극 내향형 인간의 EBS PD 생존기

이승환: 그토록 가고 싶은 EBS에 입사하니 어떻던가요?

박혜민: 당연히 좋았죠. 게다가 다큐멘터리의 명가EBS에 입사를 하다니, 매일 매일이 믿겨지지 않았죠. 또 EBS가 제일 잘 나갈 때여서 회사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특히 제가 입사할 때 즈음 선배들의 문제제기로, 조연출과 젊은 PD를 같은 분야의 프로그램에 너무 묶어 두지 말자는 분위기가 있어서, 저희 기수부터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경험할 수 있었구요. 문제는 너무 바빴어요. 인력과 예산도 적은데 다른 방송사는 12주에 만들어야 할 걸 저희는 6~7주에 만들어야 했죠.

2000년대에 EBS는 수능에 다큐에 뽀로로에 전성기를 누렸다, 물론 대부분 방송국이 그렇듯 그때가 전성기였다(…)

이승환: 힘든 점은 없었나요?

박혜민: 다른 방송국은 입봉할 때 큰 프로그램에 꼭지 PD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PD로 이름은 올라가 있지만 프로그램 전체 50분이라고 하면, 그중에 5-10분 정도 꼭지 코너를 연출하는 식으로 프로그램에 적응할 시간을 주죠. 근데 EBS는 바로 알아서 하라는 식이에요. 조연출 1년, 1년 반 정도 경험했는데 방송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그렇게 입사 1년 만에 PD가 됐고, 또 1년쯤 지나 드디어 다큐 <하나뿐인 지구>를 맡게 됩니다. 30년 정도의 역사를 가졌던 환경 다큐예요.

EBS에는 <극한직업>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EBS PD도 꽤 힘든 직업이다

이승환: 본격 다큐 PD가 되니까 어땠었나요?

박혜민: 이 자리를 빌어서 그때 같이 일했던 스태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은데요. 모든 게 다 어려웠어요. 근데 PD로서 또, 그 어려움을 티 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아닌 척하다 보니 더 뚝딱거렸겠죠. 당시에는 몰랐는데, 제가 대문자 I형이거든요. 근데 PD는 사람을 만나고 설득하고, 팀으로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그런 모든 게 저한테 되게 힘들었어요. 그래서 촬영 장소에 가는 아침에 일어날 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너무너무 괴로웠고요.

이승환: 지금은 극복하셨습니까…

박혜민: 그래도 많이 하다 보니까 노하우도 쌓이고 사회성도 생기고, 이제 조금 E로 스위치 전환이 되는데요. 어렸을 때는 그게 어려워서 내가 왜 PD가 된다고 했을까, 적성검사 좀 제대로 할 걸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EBS에서 만드는 프로그램들은 세상에 도움이 된다는 보람이었어요. 하지만 그것도 1000이라고 하면, 한 3~4 정도의 기쁨이었습니다. 근데 그 기쁨이 짧지만 커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EBS에서 만든 모든 프로그램이 다 뿌듯하긴 합니다.

이승환: 일할 때 혼을 담는 스타일인가 보군요.

박혜민: 어린 연차 때는 한 편 한 편이 너무 소중해서, 항상 완벽을 추구하려고 했던 것 같고요. 근데 제가 제작 PD를 짧게는 20년, 길게 30년 정도 할 거잖아요. 연출할 방송도 많은데, 장기 레이스라 생각했으면 좋았겠다 싶어요. 어쩔 수 없이 제 선에서 안 되는 것들도 분명히 존재하는데, 어릴 때는 그걸 놓지 못했거든요. ‘안되면 다음에 하지, 뭐’라고 좀 가볍게 생각하는 게 필요하더라고요.

이승환: 스태프들하고 대판 싸우고 했나요?

박혜민: <세계 견문록 아틀라스>라는 프로그램에서 3주 정도 해외 촬영을 함께 한 출연자가, 저한테 쌍욕하고 짐 싸서 귀국하겠다는 거 말리고 한 적은 있어요… 그때 같이 했던 허성호 선배가 사비를 들여가며 출연자 관리하러 중국까지 날라왔었고요.(허성호 선배님 감사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로 출연자 통제가 안 된다면, 그냥 이번 편은 망했다, 어쩔 수 없다, 촬영을 접고 다시 돌아왔을 것 같아요.(시말서 쓰고…) 그런데 그때 당시는 그래도 된다는 걸 몰랐어요. 그렇게 억울하게 욕먹으면서도, 출연자가 잘 나오는 방송으로 만들려고 애를 썼으니까요.

그렇게 열심히 완성한 다큐멘터리

 

인생 다큐로 남을 ‘교육격차’

이승환: 기억에 남는 다큐로는 무엇이 있나요?

박혜민: <다큐멘터리K>의 첫 프로그램인 ‘교육격차’예요. <하나뿐인 지구>같은 레귤러 다큐멘터리는 6~7주 텀으로 한 편을 만들었다면, <다큐멘터리K> 같은 장기 다큐멘터리는 1년 반 정도의 제작 기간에 3~5편 정도 만들거든요. 빠르게 찍어내는 다큐멘터리보다, 더 애정이 갈 수밖에 없죠. 저는 ‘교육격차’ 5부작 중 4부와 5부를 맡게 됐어요.

이승환: 나름 본격적으로 사회 비판 프로그램을 한 셈인데 어땠어요?

박혜민: ‘교육 격차’라는 주제가 사실, 연출자 입장에서는 좀 다루기 어려운 주제예요. 항상 얘기되어져 왔었던 주제인데, 뚜렷한 대안은 보이지 않죠. 이전의 프로그램과 차별 지점을 두기도 어려 울 뿐더러, EBS다 보니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져야 하나 고민할 게 많았죠. 또 시청자들이 좀 지겨워하는 주제일 줄 알았어요. 아무도 안 보면 어쩌지 걱정도 많았구요. 그런데 빵 터졌죠. 진짜 놀랐었어요.

유튜브에서만 도합 30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승환: 어떻게 빵 터진 거죠?

박혜민: 이미 영유아기 때부터 교육 격차가 유의미하게 나타남을, 부모의 사회경제적 격차뿐만 아니라 지역 격차, 정서 격차, 경험 격차, 문화 격차 등 전방위적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줬어요. 촬영이 어려워서 담지 못한 이야기도 있지만, 프로그램에 나온 이야기만으로도 많은 학부모님들이 관심을 가지고 보셨죠. 심지어 교육 관련 유튜버들이 라이브 방송을 할 정도로 이슈가 됐어요.

이승환: 5부작 중 4부와 5부를 맡았는데 마무리는 어떻게 지었습니까?

박혜민: 교육 격차는 ‘내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생각을 담으려고 했어요. 4부 제목이 ‘현수는 행복할 수 있을까’인데요. 현수는 부모님의 돌봄을 못 받는, 가장 취약 계층에 있는 어려운 아이에요. 우리 모두가 현수가 되지 않기 위해서 영유아기 때부터 교육 경쟁을 하는데, 누구나 예기치 못한 이유로 현수가 될 수 있거든요. 사고, 실직, 질병 등으로 현수의 부모가 될 수도 있고요. 우리 누구나 현수가 될 수 있기에, 이 아이를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학교 선생님들, 지자체와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고, 현수가 개인의 노력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된다…

이승환: 5부는 어땠나요?

박혜민: 5부 제목은 ‘스포일러’였어요. 입시 경쟁의 상징인 ‘선행학습’과 우리 모두 이 게임(교육격차)의 결말을 알고 있다는 중의적 의미를 담았는데요. 교육 격차와 공정성에 대해서 다양한 배경의 청년들이 함께 모아았어요. 각자 교육격차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내다가 유일하게 똑같이 ‘아니다’라고 답한 질문이 있었어요. “내 자녀에게 내가 경험한 교육 시스템을 물려주고 싶은가?” 저출생 문제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질문이었는데요. ‘이러다가 우리 모두 죽어!!’라는 메시지를 암시하면서 마무리했어요.

이 질문에 모두가 NO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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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수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

이승환: <위대한 수업> PD 일은 어떠셨나요?

박혜민: 제가 막 40대에 들어섰잖아요. 솔직히 몸을 갉아 넣는 삶을 버텨낼 자신이 좀 없었어요. 몸 여기저기에서도 이상 신호들을 보내고 있었고,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어서, EBS에서 10년 차 이상이면 쓸 수 있는 안식년을 신청할까 고민했어요. 그러던 차에 <위대한 수업>에서 오퍼가 왔어요. 어차피 인생을 돌아봐야 하는 시기라면, 위대한 석학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승환: 예로 어떤 분이 있을까요?

박혜민: 마사 누스바움이라는 법철학자가 ‘동물권’에 관해 강연을 했어요. 원래는 인간 윤리와 법철학을 연구하셨던 분인데 어쩌다 동물권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궁금했어요. 여쭈어보니, 따님이 동물권을 위해 싸우는 변호사였는데 안타깝게 의료 사고로 47살에 돌아가셨어요. 그 딸의 뜻을 이어가고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이야기하시면서, 자기는 그때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한마디에 눈물이 펑 터졌었거든요.

세계적으로 저명한 윤리학자이자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이승환: ……

박혜민: 그러면서 나중에는 애도와 비극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사실 저도 주변에 한 분 한 분 돌아가시거나 아픈 분이 생기다 보니, 죽음과 슬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아픈 일을 겪은 분에게 힘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앞으로 다가올 나의 슬픔들은 어떻게 맞이하고 대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또 사회적으로도 그런 슬픔과 아픔들을 대하는 게 미성숙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댓글을 볼 때, 타인의 슬픔에 어떻게 이렇게 무례할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마사누스바움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문제는 인간 공통의 문제구나 싶었고, 나중에 이 주제로 다큐 한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위대한 수업>을 맡게 돼 참 다행이었죠.

이승환: 그밖에 또 기억나는 분이 있을까요.

박혜민: 청소기로 유명한 ‘다이슨’의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도 엄청난 포스가 느껴졌는데요. 다이슨이 너무 바빠서 저희에게 촬영 시간 50분, 세팅 시간 10분 정도의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는데(실제 다른 촬영은 세팅이 4시간 걸림), 세팅하는 그 짧은 시간에도 다음 제품의 디자인을 연구하시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그런 몰입과 애정의 대상은 무엇이었는지 삶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위대한 수업>은 이제 기업가들도 만나며 다양성을 넓히고 있다

이승환: <위대한 수업>이 어떤 프로그램으로 남았으면 좋겠나요?

박혜민: 사람들이 인생의 고민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이 프로그램을 참고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롱런했으면 좋겠다… 이 프로그램은 KBS, MBC는 물론이고 JTBC나 tvN이 할 수 있는 방송이 아니잖아요. 전 세계에서 EBS만이 할 수 있는 방송이에요.

최근 대니엘 데닛 선생님이 돌아가셨는데, 촬영하기로 한 날 이틀 전에 병원에 입원하시고 돌아가셨거든요. 석학들이 대부분 연세가 많으신데, 이분들의 마지막 대중 강연을 기록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계속 차곡차곡 지성 대백과처럼 쌓였으면 좋겠어요.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방송

이승환: 너무 쟁쟁한 분들이라, 내용이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박혜민: 사실 <위대한 수업> 되게 어렵거든요. 저도 어떨 때는 대학원 수업 듣는 기분이 들 때도 있어요. 보통 방송 제작할 때 중학교 2학년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쉽게 제작하라고 배워요.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료화면, CG, 자막 등 엄청 공을 들입니다. 강연 내용을 100% 소화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우리 프로그램을 통해 해당 석학에게 입문할 수 있는 통로는 될 수 있게 말이지요.

이승환: 하긴 한번 관심 가지면 또 다른 책도 보고 그렇게 되겠네요.

박혜민: 네. 예로 제가 시즌1에 출연하셨던 주디스 버틀러 교수님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젠더 트러블』이라는 책을 몇 번이나 읽으려고 했지만, 정말 너무 어려워서 한 챕터도 제대로 못 읽었거든요. 근데 <위대한 수업> 강연은 대중 친화적으로 하셨어요. 한국 시청자들이 ‘젠더’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교수님이 정말 많이 애쓰셨구나 싶었어요. 저는 그게 이 프로그램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영역의 석학분들을 조금이라도 더 쉽게 접하고, 나아가 더 깊이 공부하고 확장할 수 있는 다리 역할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위대한 수업>의 난이도가 높다지만, 입문용으로 이만큼 쉬운 수업도 없다

이승환: 마지막으로 아무 말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해 주시면 좋습니다.

박혜민: 제가 극 I형 인간이라 PD 생활에 힘든 점이 많았는데요. 그래도 EBS PD 15년을 돌이켜보니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지점들이 있어요. EBS의 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면, 저의 성장과 성숙에 발맞춰 나간다는 느낌이 들어요. 인생의 어떤 숙제를 만났을 때, 그때 맡았던 프로그램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헤쳐나간다거나, 그 문제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들을 마련해 줬거든요.

이승환: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박혜민: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만들 때, 개들에게 제 모습을 투영하게 되더라고요. 문제가 있는 개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 생후 2~3개월 때 어떤 경험을 하는지, 보호자나 모견과 건강한 상호작용을 했는지 여부에 따라, 좋은 개가 되거나 나쁜 개가 돼요. 그때 제가 부모님이랑 마치 사춘기 청소년처럼 싸웠는데요.(다행히 잘 화해했습니다) 저의 내면 아이를 돌보는 계기를 마련해줬던 것 같아요.

잘 보면 사람도 배울 점이 많은 방송

이승환: EBS에서 자체 교육도 받는 셈이군요…

박혜민: 네. 교육격차도 그렇고, 위대한 수업도 그렇고, EBS가 생애주기별로 저를 성장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엔 <명의>와 <귀하신 몸> 보면서 건강 관리 열심히 하고 있고요. 시청자분들께도 EBS가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같이 성장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는 방송으로요. 앞으로도 좋은 프로그램 만들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시청 부탁드리고요. <위대한 수업> 오래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좋댓구알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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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에 맞춘 성장은 ‘개미지옥’이 될 수 있다 https://ppss.kr/archives/267120 Tue, 24 Sep 2024 04:58:35 +0000 http://3.36.87.144/?p=267120 얼마 전 한 성형외과 의사 지인과 이야기를 했는데, 요즘에는 미모가 뛰어날수록 얼굴에 손을 댄다고 한다. 나는 잘 모르는 영역이라 막연히 세상에는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알고 보면 상당수가 ‘만들어진’ 미모의 사람들이라는 게 다소 신기하게 느껴진다. 말하자면 우리는 ‘조작 혹은 계량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 보이는 것들은 원래 그대로가 아니고, 만들어지거나 조작되거나 계량된 것들이다.

또 요즘 아이 부모들은 아이 키 때문에 난리도 아니다. 내가 어릴 땐 키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살았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아이 키가 잘 안 큰다 싶으면 호르몬 주사 등으로 아이 키를 키우려 한다. 교육 같은 것은 물론이고 외모적으로도 아이들이 손해보고 클까 걱정하며 무엇이든 ‘평균 이상’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남들보다 못한 존재로 클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작가 pikisuperstar 출처 Freepik

나도 스스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싶고, 여러 면에서 성장하고 싶은 의욕도 있다. 내 아이 역시 잘자라서 자기 인생을 잘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싶고, 그를 위해 많이 도와주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인생의 모든 것을 ‘조작’하고 ‘계량’할 때,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이 필요할 듯하다. ‘모든 것’에 있어서 ‘남들’보다 못한 존재로 살지 않기 위해 계량하다 보면 근본적으로 끝이 없다.

남들보다 근육도 많아야 하고, 키도 커야 하고, 얼굴도 잘생겨야 하고, 남부럽지 않은 차도 타야 하고, 가방도 메야 하고, 시계도 차야 하고, 남들이 무시하지 않는 동네의 아파트도 가져야 하고, 브랜드 옷도 입어야 하고, 아이 학벌도 좋아야 한다. 남들을 기준으로 놓고 조작과 계량의 세계에 뛰어들면 자기를 온전하게 사랑할 방법이 없어진다. 대신 남들의 기준에서만 자기가 사랑받을 존재가 되는데, 이 남들이란 존재는 만족을 모른다. 우리에게 충족의 기준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얼굴을 고치기 시작하면 몇억을 들여서도 고칠 것들이 있다고 한다. 눈, 코 입, 볼, 턱, 윤곽선 등 하나씩 하다 보면 아파트 한 채 값은 들일 수 있다고 한다. 명품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끝없이 올라가는 영역이 있다. 아파트로 남들의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서울 강남 안에서도 ‘테북’과 ‘테남’이 나뉜다. 그 안에서도 브랜드가 나뉜다. 이렇게 타인들의 기준을 신경 쓰느라 신경쇠약에 걸릴 수준이 된다.

작가 pch.vector 출처 Freepik

우월감과 열등감은 동전의 양면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느끼는 우월감에 중독되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에게는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만족의 기준을 남들과의 비교에 둔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는 기본적으로 성장을 지지하는 사람이고, 정신이나 신체의 자기계발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지 않으면, 성장과 계발도 일종의 개미지옥이 된다. 그 개미지옥은 타인들의 시선이라는 모래로 이루어져 있다. 만족과 행복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아무리 계량되어도 불행하게 살 것이다.

성장의 다른 이름은 때로 결핍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진짜 결핍을 마주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결핍을 무한한 타인들의 기준으로 채울 것이 아니라, 진짜 자신이 되어가는 방식으로 채워야 한다는 점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원문: 정지우 문화평론가 겸 변호사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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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킹 댄서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꿈의 무대, BOTY에 대하여 https://ppss.kr/archives/265282 Thu, 20 Jun 2024 02:50:22 +0000 http://3.36.87.144/?p=265282 브레이킹 댄서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꿈의 무대
2023년 대회 준우승은 한국의 플로우엑셀

얼마 전 일본 오사카에서 세계적인 브레이킹 팀배틀 대회인 <배틀 오브 더 이어 (Battle of the Year, BOTY)> 가 열렸다. 한국 팀으로는 유일하게 플로우엑셀(FLOWXL)이 참가했다. BOTY는 본선과 토너먼트의 경기 방식이 다른 대회다. 각 팀이 준비한 퍼포먼스로 본선을 치른 후, 상위 점수를 차지한 8개 팀이 토터먼트를 시작하는 형태다.

플로우엑셀은 브레이킹에 집중해 깔끔한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높은 점수를 받아 깔끔하게 8강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8강에서는 대만의 헨타이 유니티(Hentai Unity)를 만나 5:0으로 승리했고, 4강에서는 네덜란드의 러기드(Ruggeds)를 만나 3:2로 승리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하지만 결승에서는 난적 러시아의 프레데터즈(Predatorz)를 만나 2:3으로 아쉽게 패했다. 한국 팀이 우승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최근 세계대회를 휩쓸고 다니는 러기드의 정예멤버를 만나 명승부를 펼치며 승리한 것은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BOTY는 1990년 독일에서 처음 시작된 대회다. 브레이킹계에서는 제일 오래된 대회이고, 제일 유명한 대회 중 하나로 꼽힌다. 레드불 비씨원(Red Bull BC One)의 명성이 해가 갈수록 올라가고 있지만, 그 이전에는 BOTY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청팀을 제외하면 한 나라당 한 팀만 출전할 수 있었고, 토너먼트의 기회는 퍼포먼스 배틀을 통과한 상위 2~4개 팀에만 주어졌다. BOTY에 출전하는 것, 나아가 배틀을 해보는 것이 여러 비보이들에게는 꿈이자 버킷리스트였다.

물론 이렇게 유명한 대회라고 해도 항상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매년 비슷한 팀들이 출전하고, 비슷한 전개가 진행되다 보니 대회의 인기가 점점 시들어갔다. BOTY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자신들이 고집하던 토너먼트 방식에 변화를 주었다. 우선, 퍼포먼스의 비중을 줄이고 팀배틀의 허들을 낮췄다. 최근 열린 BOTY의 본선 토너먼트에 8개의 팀이 참가했던 이유다.

장소도 바꿨다. 독일에서 프랑스로 옮겼고, 얼마 전부터는 브레이킹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일본으로 다시 한번 자리를 옮겼다. 2022년 월드파이널은 오키나와에서, 2023년 월드파이널은 오사카에서 열렸다. 대형 컨벤션 센터인 인택스 오사카에서 열린 이번 2023년 대회는 규모와 관객의 숫자 모두 ‘BOTY’라는 거대한 이름에 걸맞은 수준이었다.

BOTY는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꿈의 무대로 꼽힌다. 아무나 참가할 수 없고, 참가한 모든 팀이 브레이킹 배틀에 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리지널 팀배틀의 모습을 간직한 몇 안 되는 대회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각 팀의 라운드 제한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팀 배틀의 운영을 MC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래서 배틀 시간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MC가 배틀을 먼저 끝낼 수 있고, 반대로 더 늘릴 수도 있다. BOTY에서만 볼 수 있는 올드스쿨의 풍경이다. MC라는 단어가 지닌 오래된 뜻 중 ‘Move the Crowd’가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재밌게 다가오는 지점이기도 하다.

수많은 세계 대회가 나타났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간 브레이킹 씬에서 BOTY가 상징하는 바는 여전히 대단하다. 3:3, 4:4 등 댄서의 숫자를 제한하는 형태의 대회가 유행하는 지금, 한 크루의 모든 멤버가 출전해 경쟁을 펼치는 모습은 오히려 더욱 귀하게 다가온다.

올드스쿨의 다른 이름은 전통이고, 전통은 하루아침에 이룰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에겐 아직도 BOTY이고, 앞으로도 BOTY일 것이다.

원문: 스트릿 웨어 컬처 브랜드 DI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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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터로이드 시티〉 웨스 앤더슨, 당신은 정말로 영화를 사랑하는구나 https://ppss.kr/archives/266146 Fri, 24 May 2024 03:49:31 +0000 http://3.36.87.144/?p=266146
애스터로이드 시티 (Asteroid City, 2023) © Focus Features

경계를 넘어 너에게 닿기를

오래전 마틴 스콜세지 영화를 볼 때 그랬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를 볼 때도 그랬다. 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미셸 공드리의 영화를 볼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고, 근래에는 데미언 셔젤의 영화들을 보며 비슷한 생각을 했더랬다.

이 감독은 정말 영화를 사랑하는구나, 진심으로.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영화를 사랑하는 것 같은 감독을 꼽자면 의외로(?) 웨스 앤더슨을 첫 번째로 꼽아야겠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The Grand Budapest Hotel, 2014)〉을 볼 때까지는 잘 몰랐는데, 〈프랜치 디스패치 (The French Dispatch, 2021)〉를 보고 나서는 웨스 앤더슨을 좀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됐고, 이번 작품 〈애스터로이드 시티 (Asteroid City, 2023)〉를 보고 나서는 이런 생각이 완전히 굳어졌다.

한때는 웨스 앤더슨을 그저 비주얼리스트, 구도와 색감을 강박에 가깝게 고집하는 강렬한 스타일리스트 정도로만 여겼었는데, 최근 그의 작품들을 보면 점점 더 그 강박적 구도 안의 이야기(정서)가 더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웨스 앤더슨의 깊이가 더 깊어진 것인지 아니면 그의 영화 속에 항상 존재했었는데 내가 뒤늦게 발견하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랜치 디스패치〉와 〈애스터로이드 시티〉를 통해 〈문라이즈 킹덤〉과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시절보다 그를 더 좋아하게 됐다.

© Focus Features

아, 다시 생각해 보니 이 영화가 그의 전작들보다 더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진 건 한 개의 레이어가 더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외계에서 온 운석이 떨어진 사막 위의 도시 ‘애스터로이드 시티’를 배경으로 한정된 공간, 한정된 인물들이 겪게 되는 연극과 같은(실제로 연극인)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도 삶에 대한 여러 가지 감정과 시대에 대한 풍자 등이 충분히 담겨 있다. 마치 웨스 앤더슨의 전작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애스터로이드 시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연극으로 공연하는 배우들과 작가의 이야기가 하나의 레이어로 더 존재한다. 감독은 컬러와 흑백, 독백 형식 등으로 이를 완벽하게 구분한다. 이 경계를 관객에게 더 어필하려는 듯 각 레이어의 경계선을 분명히 하면서도, 가끔 경계를 넘나드는 유머를 섞기도 한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공연 그 자체도 의미를 갖지만, 그 무대 위 공연을 실현하기 위해 무대 뒤와 밖에서 작가와 배우들이 고민하고 연구하는 과정들을 알게 되는 순간 무대 위 애스터로이드 시티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의 깊이는 더 깊어진다. 그리고 수직적 움직임과 사각 구도의 한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웨스 앤더슨의 영화들에서 가장 궁금한 미지의 세계인 앵글 밖의 이야기, 더 나아가 그 구도 밖 경계에 걸쳐져 있는 누군가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사실 이건 위험할 수 있는 방식이다. 왜냐하면 자칫하면 영화를 만드는 감독과 스텝 본인들에 대한 자기방어에 그쳐 관객에게까지 닿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 Focus Features

하지만 내게 있어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자칫 미학적으로만 아름다운 에피소드에 그칠 뻔했던 이야기에 감정적 울림을 가져다준 놀라운 영화였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웨스 앤더슨의 영화들, 특히 전작들의 미학적 성취를 좋아했던 나로서는 〈프랜치 디스패치〉에 이어 이번 작품까지, 한편으론 기대하지 않았던 예상 밖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분석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더 감정적으로 그의 영화를 바라보게 됐다.

사실 계속 웨스 앤더슨의 영화들을 좋아한다고 말해왔지만 한편으론 동어반복이 계속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다. 특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후 대중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게 되면서 그의 스타일은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는데, 이전과 이후의 작품들을 이런 시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더 잦아졌다는 게 문제였다. 바로 그 프레임에 한정되어 고갈되어 가는 느낌이 짙어져 가는 분위기였으니까.

누군가에게는 〈애스터로이드 시티〉 역시 여전히 색감과 구도만 아름답고 동어반복되는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겐 전혀 다른 기대감으로 웨스 앤더슨의 다음 작품을 궁금하게 만드는 영화가 됐다. 그의 어떤 작품들보다 다음 영화가 가장 기대되는 영화다.

원문: 아쉬타카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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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CM가 장범준 콘서트 티켓까지 파는 이유 https://ppss.kr/archives/265842 Mon, 08 Apr 2024 03:22:50 +0000 http://3.36.87.144/?p=265842 공연도 기획하고, 시상식도 중계하고

29CM가 가수 장범준 공연 티켓 단독 판매에 나섰습니다. 물론 29CM는 2018년부터 컬처 카테고리를 정식으로 운영하며, 여러 문화 예술 관련 상품들을 제공해 오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이 더욱 특별했던 건, 공연 자체가 ‘무신사 개러지’에서 진행될 정도로 아예 콘텐츠 자체를 직접 기획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일회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리미티드 오더’라는 이름으로 지속적으로 다채로운 문화 콘텐츠를 선보일 계획이라 하고요.

이와 같이 최근 커머스 기업들은 문화 콘텐츠 판매는 물론 직접 기획까지 나서며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올해 2월에 프리즘이 한국대중음악상의 단독 중계 파트너로 나서, 앱에서 이를 실시간 라이브로 송출한 것이 대표적인데요.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백화점에 미술관이 들어서고, 미술 전시를 주최하는 등 유사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나 커머스 기업들이 문화 콘텐츠에 진심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취향 기반 소비자를 찾아서

29CM, 프리즘, 그리고 백화점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무언가 가격 이외의 가치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주로 찾는 곳이라는 겁니다. 문제는 선호하는 스타일과 브랜드가 확고한 이들을 찾아서 접촉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점입니다. 어느 정도 소득과 정비례하긴 하나, 수입이 많다고 반드시 취향 소비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인데요.

가격적 강점은 매스 마케팅으로 알려도 효과가 있지만, 이러한 완전히 협소한 타깃에겐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때 주목받은 것이 문화 소비자들인데요. 공연, 전시 등에 기꺼이 돈을 지출하는 이들은 자신만의 취향이 확고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화 콘텐츠는 좋은 브랜딩 수단인 동시에 효과적인 마케팅 채널이기도 합니다

실제 성과로도 이는 확인이 가능한데요. 2021년에 29CM가 피카소전 티켓을 단독으로 선판매했을 당시, 티켓 구매자 중 절반가량이 신규 고객으로 유입되었다고 합니다. 즉 가장 효과적인 신규 고객 확보 채널의 역할을 한 건데요. 이처럼 문화 콘텐츠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브랜딩 수단이면서, 효과적인 마케팅 채널 역할까지 맡을 수 있습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 중 하나가 현대카드의 슈퍼콘서트입니다. 한때 업계 최하위였던 현대카드는 유명 아티스트의 힘을 빌어 인지도를 끌어올리고, 시장 점유율 2위 등극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남다른 경험을 제공하여, 새로운 신규 고객을 확보하였고요. 현대카드의 팬이 된 이들이 나이가 들면서 적극적인 소비층으로 변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마 29CM나 프리즘도 이러한 미래를 꿈꾸고 있을 거고요.

 

차별화만이 살길입니다

요즘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매우 어렵습니다. 거대한 1위 사업자 쿠팡은 가격과 구색, 편의성 모든 측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고요. 가격 하나만으로는 쿠팡조차 따라잡을 수 없다는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 플랫폼의 공세도 거세지고 있습니다.

결국 작은 플랫폼들이 이러한 흐름에서 생존하려면, 차별화된 영역을 확보해야 합니다. 결국 이는 곧 자신만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독특한 브랜드를 구축해야 한다는 걸 뜻하는데요. 문화 콘텐츠는 일반적으로 한정된 재화의 성격을 가지기에, 여기에 활용하기에 가장 적합합니다. 그래서 더 나아가, 아예 29CM가 했듯이 아예 기획까지 하면서 이를 선점하려 하는 거고요.

이처럼 콘텐츠와 커머스 간의 이종 결합은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겁니다. 또 어떤 재밌는 사례가 나올지 더욱 궁금해지네요.

원문: 기묘한의 브런치


커머스와 IT에 관한 트렌드를 기록하고 나눕니다

트렌드라이트는 국내 최대 규모의 커머스 버티컬 뉴스레터로, ‘사고파는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매주 수요일 아침, 가장 신선한 트렌드를 선별하여, 업계 전문가의 실질적인 인사이트와 함께 메일함으로 전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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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릿에서 역사적인 아이템, 푸마 스웨이드 https://ppss.kr/archives/265280 Wed, 13 Mar 2024 02:04:06 +0000 http://3.36.87.144/?p=265280 힙합과 패션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아이템은 푸마 스웨이드(Puma Suede)이다

푸마 스웨이드는 화려한 힙합의 이미지와는 상반된 심플한 외관에 날렵한 이미지가 특징인 신발이다. 대체 언제, 어떻게 힙합과 만나게 된 걸까?

힙합이 처음 탄생할 때는 래퍼보다 DJ가 돋보였고, DJ 앞에는 늘 브레이크 댄서가 있었다. 발로 하는 동작이 많은 브레이크 댄서에게 패션만큼이나 중요한 건 신발이었다. 그때 눈에 띈 게 푸마의 스웨이드 신발이었다. 밑창은 적당히 도톰하니 춤을 추기 적합했고, 스웨이드로 만든 어퍼는 부드러워 어려운 동작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

패션으로도 훌륭했다. 특유의 날렵한 모양새는 스웨이드 특유의 재질 덕분에 보다 고급스러워 보였고, 측면의 폼스트립과 스웨이드의 컬러의 다양한 조합은 댄서로서 멋을 부리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뉴욕을 주름잡은 크루 뉴욕 시티 브레이커스와 락스테디 크루의 사랑을 받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1. 무려 390가지 이상의 컬러로 제작된 적 있다

사실 푸마 스웨이드는 당시 뉴욕의 스트릿에서 이미 인기를 끌고 있던 신발이었다. 인기의 촉매가 된 건 바로 NBA의 스타이자 뉴욕 닉스의 선수였던 월트 프래지어(Walt Frazier)와의 협업이었다. 월트 프래지어는 훌륭한 패션 센스와 개성으로 유명한 선수였다.

푸마의 계약 제안에 프래지어는 꽤나 독특한 제안을 내걸었다. 매 경기마다 다른 컬러 조합의 신발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푸마는 이를 적극 반영했다. 그렇게 그렇게 프래지어에게 제공된 컬러 조합은 총 390가지 이상이라고 한다. 신발의 이름도 월트 프래지어의 닉네임을 따 ‘클라이드(Clyde)’로 바꾸었다. 이후 월트 프래지어와 계약이 종료되며 모델명은 ‘클라이드’에서 지금의 ‘스웨이드’로 변경되었다.

 

2. ‘왠지 모르게 쿨한 아이템’이 된 이유

푸마 클라이드였던 푸마 스웨이드가 출시될 때는 이름이 또 달랐다. 바로 ‘푸마 크랙 (Crack)’이다. 스포츠에서 경기의 흐름을 뒤바꾸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을 ‘크랙’이라고 부르는 데에서 착안한 이름이었다.

푸마 크랙은 출시 직후 열린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의 육상 경기에서 의도치 않은 주목을 받았다. 당시 200m 육상에서 금메달을 딴 토미 스미스는 검은 양말을 신고 오른손에는 검은 장갑을, 왼손에는 검은색 푸마 크랙을 쥔 채 시상대에 올랐다. 신발은 시상대 위에 올려둔 후, 미국 국가가 흘러나오자 고개를 숙이고 장갑을 낀 오른손을 번쩍 치켜올렸다.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의미를 담은 퍼포먼스였다.

푸마 스웨이드가 가진 독특한 문화적 위치와 명성, 왠지 모를 쿨함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스케이트 보더의 ‘스테디 픽’이 되며 스트릿에 정착하다

토미 스미스와 프래지어를 거쳐 스트릿에 정착한 푸마 스웨이드는 힙합이 미디어의 큰 관심을 받으며 덩달아 홍보 효과를 누렸다. 핫하다는 힙합 아티스트들이 미국 전국 방송에 나갈 때 스웨이드를 신고 나가며 다른 지방에도 멋있는 아이템으로 소개되기 시작했고, 힙합과 브레이크 댄스를 다룬 영화 〈Beat Street〉을 통해 미국을 넘어 유럽에서도 조명받았다. 힙합 컬쳐를 이루는 하나의 패션 코드로 확실하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스웨이드는 스케이트 보더들과 만나며 스스로 영역을 한 단계 더 확장하게 된다. 어디에든 잘 어울리는 스웨이드의 실루엣과 다양한 컬러, 스케이트를 타기에 무리가 가지 않는 착화감이 한몫했다. 스트릿에서 인기를 얻은 신발이니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 같지만, 모든 신발이 그와 같은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만큼 푸마 스웨이드는 특별한 모델이다.

 

마치며

여러 브랜드의 신발을 찾아봐도 푸마 스웨이드처럼 다양하면서도 깊은 문화적 배경을 품고 있는 신발은 드물다. 긴 시간 사랑받은 신발 또한 손에 꼽을 만큼 적다. 지금도 레드불 BC ONE이나 IBE, 아웃브레이크 유럽, BOTY 등을 보면 푸마 스웨이드를 신고 나오는 비보이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어쩌면 힙합 문화가, 스트릿 문화가 이어지는 한 푸마 스웨이드의 역사는 계속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원문: 스트릿 웨어 컬처 브랜드 DI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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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를 이탈할지라도 끝까지 간다 〈파묘〉 https://ppss.kr/archives/265499 Mon, 04 Mar 2024 02:59:34 +0000 http://3.36.87.144/?p=265499 ※ 영화 〈파묘〉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가급적 영화 감상 후 보시길 추천합니다.


파묘 (Exhuma, 2024)

〈검은 사제들 (2015)〉 〈사바하 (2019)〉 등 한국 영화계에서는 흔치 않게 오컬트에 진심인 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 평소 그의 전작들을 (아주) 재미있게 보았던 터라 이번 신작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선공개된 예고편과 스틸컷 등은 오컬트를 좋아하는 나 같은 팬들은 물론이고, 일반 대중들도 큰 흥미를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예고편 속 장면이 기억에 쉽게 각인될 만큼 참 잘 만든 티저였다).

공개 당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2차 캐릭터 포스터

마찬가지로 김고은의 굿 장면이 SNS에서 화제가 되었던 1차 예고편

전작들 가운데 〈사바하〉를 가장 좋아하는 입장에서 〈파묘〉는 기대와 동시에 살짝 걱정이 되는 지점도 있는 영화였다. 캐스팅과 예고편만 보아도 전작에 비해 규모나 기대치가 높아진 작품이라, 자칫 이야기와 연출에 있어 대중성을 위한 타협 아닌 타협으로 귀결되기 쉬운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캐릭터, 그 어떤 요소보다도 강력한

〈파묘〉는 관객의 호불호 지점이 분명한 영화다. 흥미로운 건 장재현 감독이 이러한 우려를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인지하고 있었고, 여러 제작진들의 반대에도 오히려 끝까지 본래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밀어붙였다는 점이다. 이런 이야기나 설정을 관객이 좋아하거나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이 지점이 반드시 불호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 영화의 구조는 여러 모로 한 편의 영화라기보다는 일종의 시리즈 에피소드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이미 익숙한 인물들이 평소처럼 팀(유사 가족)을 꾸려 사건을 마주하는 방식이나, 해결 이후의 모습에서도 종결의 느낌이 아니라 연속성의 느낌을 준다.

이런 구조와 맞물려 첩장이 드러나는 순간부터 영화는 다른 결의 전개로 나아간다. 장르적 특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이라면 전혀 다른 장르로의 변주로 받아들일 정도로, 이 이후의 영화는 내용적으로도 장르적으로도 다른 경로를 택한다.

〈파묘〉는 여러모로 전작들에 비해 내레이션 등 친절한 설명 방식을 택하고 있다. ‘경로를 이탈하여 재검색합니다’라는 내비게이션 안내 음성을 삽입한 것 역시 의도적이라 할 수 있다. 마치 관객들에게 ‘이제부터 좀 다르게 진행될 거야,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어’라고 친절히 경고하는 것처럼.

그런 경고가 있기는 했지만 민족적인 배경이 되는 이야기로(아주 직접적인 인물의 대사로) 영화가 방향을 틀 땐 솔직히 ‘엇?’ 하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특히 이 영화가 장르 영화 중에서도 가장 성격이 강한 오컬트 장르라는 점에서 다른 메시지적인 요소들은 굳이 건들지 않아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다음부터는 관객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냐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영화가 선택한 대한민국 국토와 일본의 침략, 그리고 쇠말뚝에 관한 이야기가 선택의 영역이었는지 아니면 대한민국에서 파묘를 이야기하려면 어쩔 수 없이 파내야만 했던 이야기인지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그러나 솔직히, 이런 전개 방향의 호불호와는 상관없이 이 오컬트 세계관 속 네 명의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이들이 등장하는 2시간 조금 넘는 영화 한 편을 봤을 뿐인데, 시즌제 드라마 속에서 각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에피소드들이 너무 쉽게, 또 여러 가지 떠오를(보고 싶을) 정도다. 영화 속에서 인물들의 전사가 거의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 편의 영화로 얼마나 매력적이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캐릭터들을 만들어 냈는지 감탄하게 된다.

너무 두근두근 기대되지 않나? 또 누군가 묏자리를 잘못 쓴 이들의 요청을 수락해, 파묘를 하고 염을 하고 굿을 하며 어둠의 존재와 싸우는 네 사람의 모습이.

원문: 아쉬타카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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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을 이해하고 싶은 ‘힙알못’에게 꼭 추천하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BEST 3 https://ppss.kr/archives/265271 Thu, 01 Feb 2024 03:39:15 +0000 http://3.36.87.144/?p=265271 어떤 문화든, 그 문화가 시작된 이유와 발전의 흐름에 대해 안다면 더 폭넓게 즐길 수 있다. 힙합도 마찬가지다. 일반 대중에게도 힙합에 대한 상식이 넓게 퍼져 있다. 하지만 정작 해답을 아는 이는 적은 편이다.

  • 왜 스트릿 댄스는 힙합에 춤을 출까?
  • 왜 댄서들은 크루를 결성하고 사이퍼를 할까?
  • 어떻게 래퍼가 힙합을 대표하게 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들은 힙합의 역사와 문화적 맥락을 알아야 비로소 대답할 수 있다.

다행히 힙합에는 큰 장점이 있다. 힙합을 만든 DJ, 댄서, 뮤지션이 여전히 살아있고(!) 그들의 목소리가 담긴 양질의 자료가 차고 넘친다는 것이다. OTT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힙합을 즐기는 것을 넘어 제대로 탐구하고 싶다면, 아래 영상 등을 시청해 보자. 손쉽게 해답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 심지어 모두 넷플릭스에서 제공하고 있어 접근성도 좋다.

 

1. 힙합 에볼루션(Hip-Hop Evolution, 2016)

때로는 잘 만든 영상 자료 한 편이 책보다 낫다. 넷플릭스에서 만날 수 있는 HBO의 다큐멘터리 〈힙합 에볼루션〉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 작품은 힙합의 탄생과 발전 양상을 순차적으로 돌아보는 구성으로 진행된다. 그 과정 속에서 힙합과 대중문화가 교차점을 갖게 되는 지점을 이해하기 쉽게 짚어낸다.

특히 가장 큰 장점은 힙합의 역사에 위치한 중요한 사건들을 미국 동부에서 시작해서 서부와 중부, 남부를 골고루 조명하며 당사자 OG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풀어 놓는다는 것이다.

또한 말로만 듣던 턴테이블 기술의 탄생 히스토리나 브레이크 댄스의 시작, 서부와 동부의 음악적 차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눈과 귀를 통해 확인할 수도 있다. 힙합이라는 문화의 전반적인 역사에 대해 가장 알기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2. 더 겟다운 (The Get Down, 2016)

〈힙합 에볼루션〉이 힙합의 역사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라면, 〈더 겟다운〉은 드라마로 접근한다. 힙합 문화와 래퍼의 탄생을 가상의 주인공을 통해 드라마의 형태로 조망한 것이다.

드라마 〈더 겟다운〉은 주인공 북스의 시선에서 힙합 문화 초기의 블록파티를 보여준다. 그 안에서 일개 파티의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던 ‘MC’가 ‘래퍼’로 진화해 나가는 과정을 진정성 있게 보여준다. 당시만 해도 힙합 문화의 주류였던 댄스와 음악 사이에서 어떻게 래퍼가 존재감을 확보하게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 드라마의 제작에는 전설적인 래퍼이자 힙합의 태동을 직접 목격했던 ‘나스NAS’가 참여했으니, 내용에 관해서도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3. 랩처: 래퍼로 살다 (Rapture, 2018)

현시대에서 힙합을 대표하는 파트는 단연 ‘랩’이라 할 수 있다. 〈랩처: 래퍼로 살다〉는 세대와 성별, 지역을 뛰어넘은 미국 최고의 래퍼 8명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다.

여기에는 명실상부 동부 힙합을 상징하는 아이콘인 나스(Nas), 남부 힙합의 왕이라 불렸던 티아이(T.I), 10년 이상의 베테랑인 투체인즈(2 Chainz), 신예 로직(Logic) 등 미국 힙합계의 걸출한 인물들이 초대된다.

다큐멘터리는 그들의 태도와 마인드를 진솔하게 조명한다. 힙합 음악이 어떻게 메인스트림의 궤도에 올라설 수 있었는지, 왜 수많은 뮤지션이 힙합이라는 장르를 택해는지, 힙합이 한 장르의 음악을 넘어 문화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또한 래퍼들의 무대 퍼포먼스를 생생하게 살려낸 것은 이 다큐멘터리의 백미다. 좌중과 함께 호흡하며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는 무대를 직접 확인해 보자.

원문: 스트릿 웨어 컬처 브랜드 DI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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