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 https://ppss.kr 필자와 독자의 경계가 없는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Sat, 27 Jan 2018 08:23:46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5.8.10 https://ppss.kr/wp-content/uploads/2015/07/ppss-100x100.png ㅍㅍㅅㅅ https://ppss.kr 32 32 “우리는 친구 아니에요?” https://ppss.kr/archives/150642 https://ppss.kr/archives/150642#respond Sat, 27 Jan 2018 08:23:46 +0000 http://3.36.87.144/?p=150642 요즘 들어 하는 생각인데, 남자친구보다 친구 사귀는 게 훨씬 더 어려운 것 같다.

연애야 말랑말랑하게 썸 좀 타다가 서로 마음이 맞다 싶으면 “우리 오늘부터 1일!” 하고 연인 관계가 성립된다. 연인이니까 매일 전화를 하고, 주말에 데이트를 하고, 인스타에 #럽스타그램 태그 달아 사진 올리는 게 이상하지 않다.

모쏠이 벌써 이 글을 싫어합니다

친구 관계는 이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우리 친구 된 날’을 디데이 앱에 기념일로 등록해 두는 사람은 없을 거다. 어느 순간 스리슬쩍 친구가 되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지만 소심한 나는 눈치부터 살피게 된다.

나만 이 사람이랑 친하다고 생각하는 거면 어떡하지? 지금 수다 떨고 싶어서 전화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주말에 만나서 밥이나 먹자고 하면 부담스러우려나? 이 사람을 친구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더군다나 나는 낯을 가리는 편이라 친구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있는 몇 안 되는 친구들도 다들 바빠서 자주 만나지 못하다 보니 “주말에 보통 뭘 하고 지내세요?”라는 질문을 들으면 이렇게 이야기하게 된다.

“저 주말에 집에서 하루 종일 자다가 일어나면 치킨 시켜 먹어요. 히히. 만날 친구가 별로 없어서요.”
“엇, 여름님, 우리는 친구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니까 섭섭하다~”
“…?!”

“맨날 친구 없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럼 뭐가 돼요~”라고 이야기하는 이 사람들은 요 몇 달 동안 함께 동호회 활동을 하는 분들이다. 이날은 마침 주말에 일정을 맞춰 같이 영화를 보러 나왔다가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던 차였다. 사실은 주말에 시간 많으니까 앞으로도 같이 놀자는 뜻이었는데 내가 말을 잘못 꺼냈다.

“아, 정말요? 친구라고 해도 되는 거예요?! 사실 저도 우리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라고 불러도 괜찮나 해서… 그러면 부담스러우실까 봐서요.”

내 말에 섭섭했겠구나 싶어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뻤다. 내가 많이 좋아하는 분들이라 더 친해지면 참 좋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입 밖에 내어 말하기 부끄러웠지만 오해는 풀어야 하니까 저렇게 이야기했더니 ‘여름님 나름의 자기방어였구나’, 하고 넘어가게 되었는데… 자기방어. 그래. 내가 함부로 친구라는 말을 쓰지 못하게 된 데 큰 계기가 된 사건 하나가 있다.

몇 년 전 내가 취준생이었을 때, 내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다. 친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곧 결혼한다며 날아온 그 사람의 카톡에 진심으로 축하를 전했고, 며칠 후에 있을 웨딩 스튜디오 촬영을 도와달라는 말에 하루 짬을 내 따라다니며 12시간 동안 스냅사진을 찍었다. 천 장 넘게 찍은 사진 중에 백여 장을 골라 보정까지 해서 보내줬고 결혼식 땐 없는 돈 털어 축의금도 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신혼여행 다녀와서 보자는 인사 한마디를 끝으로 다시는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주위에 이 이야기를 꺼내면 “너 호구였구나? 보통 그렇게 촬영 도와주면 조금이라도 돈을 주거나 축의금을 내지 말라고 하던가 하는데. 밥도 한 끼 못 얻어먹고 고생만 했네.” 하더라.

당시 ‘지인페이’로 거하게 능력을 착취당한 것보다 더 나를 속상하게 했던 건 그 사람과 내가 친하다고 생각했던 게 나 혼자만의 착각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였다. 그 사람은 나를 고작 자기 인생에서 ‘지나가는 행인 23(스냅촬영 가능)’ 정도로 생각했을 뿐이었다니. 이렇게 마음에 생채기가 한번 나니까 새로운 사람과 친해질 듯 말 듯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친구가 될 것 같은 상황에서도 미어캣마냥 경계 태세를 갖추게 된다.

하지만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었다. 지금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그때 나에게 상처를 줬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않기로 마음먹은 다음부턴 예전만큼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일은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건 그만큼 내가 여러 관계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문제가 생길 것이 두려워 피해 버리니 당연히 관계 때문에 고통받을 일도 없다. 하지만 이건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온 사람들마저 섭섭하게 발길을 돌리게 만드는 짓이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가 혼자 먹는 치킨보다 맛나다는 걸 알고 있는 이상, 친구 없이 사는 건 불가능하다. 다른 방법이 없다. 용기를 내 지인에서 친구로, 한 걸음 더 앞을 내딛는 수밖에.

밥 한번 먹자! 는 뻔한 말 대신 언제 시간이 되나 물어보고, 문득 네 생각이 났다며 카톡이라도 한번 해 보고, 당신이랑 이야기 나누는 게 즐겁다는 표현도 좀 해 보고. 아, 진짜. 연애보다 어렵구만!

원문: 여름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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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자꾸 할 일을 미룰까 https://ppss.kr/archives/150644 https://ppss.kr/archives/150644#respond Wed, 24 Jan 2018 06:40:52 +0000 http://3.36.87.144/?p=150644 나는 많은 일을 미루는 편이다. 회사 업무처럼 돈 받고 하는 일은 제때제때 해치우니까 공적인 자리에서는 티가 나지 않으니 망정이지, 사적인 자리에서는 모든 일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미뤘다 한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보내는 내 모습은 가관 오브 가관. 아침에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 퇴근하고 나서는 샤워하는 것, 밤에는 심지어 잠자는 것을 미룬다. 출근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다음날 아침이 되면 이불을 부여잡고 일찍 잘 걸 후회하지만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법. 어느새 이런 미룸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 모든 미루는 과정에는 귀찮다는 묘사가 덧붙는다. 일어나기 귀찮아, 회사 가기 귀찮아, 퇴근하고 집에 가기 귀찮아, 씻기 귀찮아, 자는 건… 귀찮나? 잠깐, 스마트폰 내려놓고 눈만 감는 게 귀찮다고?

표현력이 풍부하지 못하면 슬픔이나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모조리 묶어 ‘짜증나!’ 한 마디로 요약정리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버릇처럼 말하는 내 귀찮음도 그 뒤에는 사실 다른 감정들이 숨어있는 건 아닐까.

귀찮음을 무릅쓰고 내 귀찮음의 뒤를 밟아 보았다. 일어나서 회사 가기 귀찮은 건 전 세계 사람들과 위아더월드! 를 외칠 수 있는 소재니까 넘어가고, 나머지 상황에서 귀찮음과 미룸이 찾아오는 데에는 한 가지 공통적인 조건이 있었다.

 

그 일을 하고 난 다음 시작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

퇴근하고 집에 오면 글을 써야 한다. 가끔 그림도 그려야 한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요즘 이슈라는 콘텐츠도 확인해야 하고 인사이트를 얻으려면 책도 읽어야 한다. 모두 좋아하고 즐기는 일이지만 나중에 이런 일들로 먹고살겠다는 욕심이 있기에 취미 이상으로 시간을 쏟고 노력해야 한다.

칼퇴가 보장된 좋은 회사에 다닌다면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있겠지만 내가 다니는 작은 스타트업은 일이 넘쳐난다. 쌓인 일을 밤늦게까지 쳐내다 집에 돌아오면 운이 좋아야 밤 열 시나 열한 시. 씻고 하루를 마무리할 준비를 마치면 자정을 넘기기 일쑤다. 아침에 출근을 해야 하니까 황금 같은 귀한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그렇지만 스스로 ‘음, 이만하면 되었다’ 싶은 글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예측할 수가 없다. 주제를 잡고 콘티를 짠 다음 문장을 썼다 지웠다 하는 나름의 과정은 있지만 문장을 쓰다가 콘티 단계로 돌아가기도 하고,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까지 찍어 두고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고 모든 과정을 되짚어 보기도 한다.

막힘 없이 쓰인 글이 내 맘에 쏙 드는 운수 좋은 날도 가끔 있지만 보통은 삼 분이면 읽을 글을 쓰는 데 세네 시간 이상이 걸린다. 문제는 긴 시간을 들여 수정을 거듭해도 결국에는 ‘누가 이런 허접한 글을 썼지…?’ 싶을 만큼 형편없는 게 완성될 때가 있다는 거다. 내 고생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작가의 서랍’ 한구석에 머무를 걸 생각하면 글을 쓰는 게 두려워진다.

 

그래, 시작을 미루는 건 욕심 때문이었다. 마음에 드는 글을 완성시키겠다는 욕심

글이 마음먹은 대로 술술 나오는 날만 있는 게 아니니까 내가 지금 쓰게 될 글이 망했을 상황에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지. 욕심을 버리자. 심호흡 몇 번 하고, 귀여운 고양이 사진 몇 장 보고, 유튜브 영상 몇 개 틀어놓고 5분만 10분만 미루다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새벽 두세 시가 된다.

그러고 나면 나란 인간은 이렇게 만사 귀찮다고 대충 살며 산소나 낭비해도 괜찮은 걸까 자책하며 잠이 드는데, 귀찮아하지 말자고 아무리 다짐해도 잘 되지 않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나는 대충 사는 귀차니스트가 아니었다. 제대로 살고 싶은데 실패할까 두려워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욕심쟁이었다.

이 두려움을 없애려면 실패하지 않는 글만 써낼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그보다는 실패하는 글이 나오는 걸 왜 이렇게까지 싫어하는지를 알아내는 게 나을 것 같다. 내 안의 관심종자를 먹여 살리는 조회수나 댓글을 얻지 못해서? 꾸준히 글 쓰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 뒤쳐질까 봐? 이런저런 팩트가 묵직하게 마음을 때리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완성되어 다른 사람에게 읽히지 못할 글을 쓰면 난 시간만 낭비하는 걸까? 당연히 아니지!

글을 쓴다는 건 게임으로 말하자면 경험치를 쌓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제 막 아이디를 만든 신규 유저라면 레벨업이 어렵지 않지만 어느 게임이든 랭킹에 드는 수준, 흔히 말하는 ‘네임드’가 될 만큼 레벨을 올리려면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소싯적 메이플스토리에서 슬라임 좀 잡아봤다 하는 사람이면 다들 알 거다. 레벨 1에서 10까지 올리는 건 몇 시간이면 되지만 레벨 100에서 101이 되는 건 하루 이틀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하지만 레벨업이 까마득해 보이는 그 순간에도 경험치가 꾸준히 쌓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첼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바흐의 무반조 첼로 모음곡을 지금의 위상으로 끌어올린 레전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그는 93세의 나이가 되었을 때도 매일 3시간씩 첼로 연습을 했다.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나아지고 있는 게 보이니까요.”라고 말했다는 그에게서 다음 레벨업이 까마득해 보여도 경험치 쌓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고수의 내공이 느껴진다. 나는 이제 막 튜토리얼을 마친 주제에 레벨업이 어렵다며 찡찡대는 뉴비었구나 싶어 문득 부끄럽다.

실패가 두려워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면 나 자신을 돌아보자. 내가 지금 실패를 두려워할 레벨이라도 되나?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 성장을 향한 경험치를 제대로 쌓을 수 있는 일이라면 잡다한 핑계 대지 말고 일단 시작하자.

글 하나 쓰다 망하는 게 뭐가 대수라고. 계속하다 보면 실력도 어느 순간 레벨업하겠지. 어라, 이 생각이 기대 이상으로 효과가 있는지 이번 글은 미루지 않고 마무리했다. 몇 번 고민하다 발행 버튼을 누른다. 다음 글은 이번 글보다 좀 더 좋을 걸 기대하면서!

원문: 여름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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