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 https://ppss.kr 필자와 독자의 경계가 없는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Fri, 24 May 2024 03:58:08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5.8.10 https://ppss.kr/wp-content/uploads/2015/07/ppss-100x100.png ㅍㅍㅅㅅ https://ppss.kr 32 32 ‘프로 산책러’가 꼽은 부산에서 걷기 좋은 길 https://ppss.kr/archives/266106 Fri, 24 May 2024 03:58:08 +0000 http://3.36.87.144/?p=266106 지난 4월 초 휴가 겸 여행으로 부산에 다녀왔다. 광안리와 해운대에 가보니 산촌과 내륙 도심 지역에만 살았던 내게는 다소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바다와 해수욕장의 경계부를 맨발로 산책하는 이들이 보였다.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바다에서 걷는 것도 아니고, 모래사장에서 걷는 것도 아닌 산책을 일상처럼 즐기는 이들이다. 찰싹찰싹 바닷물이 적셨다가 빠져나가는 모래바닥에 발자국이 남는다.

그런데 해양 자원을 매개로 한 관광 산업이 극단적으로 개발된 광안리와 해운대 말고 걸을 만한 길은 없을까? 외지인이 드물면서도 걷기 좋은 길 말이다.

사진: UnsplashHansel Wong

구포나 동래의 흔적이 남아있는 지역을 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또 다른 부산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일제강점기 이전 부산은 구포와 동래라는 지역 정체성으로 구분된다는 책 내용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책 『부산에 살지만』에서 부산은 구포를 중심으로 하는 낙동강 문화권과 울산 양산 동래를 잇는 동래읍성 문화권이 독자적으로 양립되어 있다고 정리한다.

동래로 향했다. 숙소에서 구포보다 동래가 가까웠고 몇 개의 비건 옵션 식당도 있었기 때문이다. 2024년에 일제 강점기 이전의 부산을 느낀다는 건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이왕이면 예전의 흔적을 최대한 발견하기 위해 동래읍성과 동래시장을 가보기로 했다. 동래읍성은 옛 도시의 물리적 형태를 관찰할 수 있는 장소고 동래시장은 경제와 문화를 관찰할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 복천고분군 위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풍경

수안역 5번 출구나 7번 출구에서 20분 정도 걷다 보면 복천동고분군을 마주할 수 있다. 잔디의 녹색 빛깔에 마음이 안정되었다. 낮은 오르막길에 위치한 복천동고분군은 언덕처럼 봉긋 솟아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어떨지 기대됐다.

언덕 위로 오르자 푸른 하늘과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었다. 동쪽으로는 망월산이, 북서쪽으로는 동래읍성 풍경이 보였다. 동래라는 도시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해운대나 광안리 해안가를 따라 빽빽히 솟은 고층빌딩과 아파트숲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몇몇 분이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한적한 분위기였다. 푸른빛으로 물든 산 중간중간이 벚꽃나무의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이제 막 봄이 왔다는 신호다.

언덕에는 복천동고분군 야외전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복천동고분군은 가야시대 무덤으로서 당시 유물이 함께 출토되었는데 당시 철기 문화와 풍습을 알 수 있는 유적이다. 역사를 좋아하고 지적 호기심이 있는 이들은 야외전시장과 복천박물관을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한다.

 

2. 아름답지만 한적한 산책로, 동래읍성길

복천동고분군 야외전시장을 지나 복천박물관을 지나면 동래읍성이 나온다. 걷기 좋은 길에는 차량이 없다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박물관에서 읍성으로 가는 보행로 양측에 차량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다. 탐방코스 안내도와 같은 표지판이 보이지도 않는다.

조금만 걷다 보니 주차된 차량의 원인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보행로 왼편 저층 주거지 때문이었다. 저층 주거지 특성상 주차시설이 부족해서 주차장에 있어야 할 차량이 모두 보행로로 올라온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을 방치하고만 있는 걸까. 집으로 돌아와 검색해 보니 주차 문제 방치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복천박물관, 동래읍성 주변이 ‘복산1재개발구역(이하 복산1구역)’에 해당한다. 복산1구역은 다수 매체를 통해 문화재 경관을 고려해 정비될 재개발 구역으로 소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재개발이 진행되면 보행로 위 주차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될 테니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부산 동래 지역에 5,000세대의 대규모 재개발이 꼭 필요한 일인지 의문이 든다. 주거 환경, 쓰레기 문제, 주차 문제 때문에라도 저층주거지 정비는 필요하지만 전부 밀어버리고 공동주택을 짓는 일이 적정한가. 부산 인구는 2010년부터 꾸준히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도시와 개발로 인한 부작용은 잊은 듯하다.

동래읍성역사관에 들어가면 1/300 비율로 축소된 동래읍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벽면을 따라 동래읍성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내용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전시시설은 노후화되었다.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전시 내용이나 시설을 정비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읍성 주변 동래역사관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옛 동래읍성의 성벽을 보며 걸을 수 있다. 오래전 축조한 성벽은 현대식 콘크리트 성벽과는 차원이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재개발지역이라서 흔한 역사문화 관광지 주변처럼 상업화되지도 않아서 외지인이나 관광객이 많지 않았다. 한적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멋진 풍경에 한적한 인파라니. 필자가 부산에서 찾던 딱 그런 분위기였다.

 

3. 과거에는 북적였던 동래시장… 지금은?

동래읍성에서 수안역으로 가는 길에 동래시장이 있다. 수안역 5번 출구나 7번 출구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다. 시장은 특별히 무엇을 사지 않더라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장소다. 동래시장에는 어떤 특별한 구경거리가 있을지 기대됐다.

사실 포털사이트 지도 앱에서 동래시장은 하나의 건물로 검색된다. 동래시장 간판이 붙은 건물이다. 2000년대 초반 부산시 지원을 받아 리모델링을 시행했고 2012년에도 시설 현대화 사업을 마쳤다. 내부를 둘러보니 잡화, 식료품, 수산물, 육류 등을 판매하고 있다. 식사할 수 있는 식당도 보이고 폐백 음식도 보인다. 주요 고객층은 50대 이상이 많았다. 상인의 연령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동래시장’에 간다고 했을 때 장소는 이 시설에 그치지 않는다. 따라서 동래시장의 장소성은 이 건축물에 한정되지 않고 주변 상가를 포함한다. 실제로 블로그나 SNS를 올라온 글을 보더라도 그렇다. 이 글에서도 정확히 동래시장의 물리적 경계를 정하기는 어렵지만, 건축물에 한정 짓지는 않았다.

읍성에서 동래시장으로 가는 길 시장 초입에서는 평일인데도 줄을 서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가까이 가서 보면 분식집이다. 떡볶이와 김밥 등을 팔고 호떡을 팔고 있다.

나도 자연스럽게 호떡 줄에 서서 호떡 만드는 모습을 구경했다. 이것이 시장의 묘미 아닌가. 기름에 치익치익, 호떡이 튀겨지는 소리가 들린다. 반죽을 누르개로 누르자 동그랗던 반죽이 펴지면서 넙적한 호떡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미각뿐만 아니라 시청각도 만족시킬 수 있었다.

마치 호떡집은 동래시장의 유인책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덧 자연스럽게 시장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로 시장 풍경은 여느 재래시장 풍경과 비슷했다. 잡화, 생활용품, 식료품을 판매하는 상가가 자리 잡았다.

부산광역시립박물관

동래가 처음인 방문객이자 프로 산책러로서 참견을 해본다. 현재 동래시장에서는 옛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필자와 같이 타지에서 온 관광객, 특히 걷기 좋아하는 이들은 동래시장의 이야기와 문화가 궁금하다. 예를 들면, 옛 동래시장에서 판매되는 물건, 동래파전의 유래와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동래읍성박물관이나 수안역에서 동래시장 역사를 조금 볼 수 있을 뿐, 시장 내에서는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시장은 본래 물건을 판매하고 구매하는 장소이기에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장터의 풍경도 달라진다. 과거 동래시장 문화와 역사를 콘텐츠화했다면 어땠을까? 역사 문화 자원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도시는 경제 발달에 따라 변화한다. 동래시장을 방문한 이후 다음 날 세계 최대 규모 백화점이라고 알려진 센텀시티 신세계에 방문했다. 오래전 부산(당시 동래) 경제의 축이었던 동래시장과 세계 최대 규모 백화점의 풍경은 매우 대조적이었다. 과거에 경제 중심지였던 동래시장이 쇠퇴하는 게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현재 동래시장이 센텀시티에 맞서는 장소로 변화할 수 있을까? 사람이 북적이는 동래시장을 꿈꾸는 건 그야말로 꿈일 테다. 다만 도시 공간이 시대의 변화에 맞게 순응하되 동래시장만이 지닌 역사와 문화를 콘텐츠화한다면, 도시에서 완전히 지워지는 장소는 되지 않을 것이다. 굳이 경제나 관광 활성화 목적이 아니더라도 동래시장은 부산시의 소중한 역사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봄바람 따라 동래로 떠나는 역사 문화산책

시간이 여유롭지 못해 전부 둘러보진 못했지만, 동래에는 이외에도 다양한 역사 문화유적이 있다. 수안역 내부에는 임진왜란 역사관이 있고, 동래시장 인근에는 동래부 동헌이 있다. 동래부 동헌은 부산에 있는 조선시대 유일한 청사다. 또한 동래읍성 인근에는 가야 시대 유물을 볼 수 있는 복천박물관이 있다.

역사와 이야기를 좋아하고 여유 있게 걷는 걸 좋아하는 이들은 동래시장과 동래읍성 인근을 둘러보길 권한다. 걷기 정말 좋은 길이다. 한적하고 조용한 산책로를 걸을 수 있어 좋았다.

동래읍성 인근 복산1구역은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니 오히려 보물을 찾은 듯하다. 재개발 이후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지금과 같은 풍경을 볼 수 없게 된다는 것만큼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원문: 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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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서 제 반려동물을 무료로 전시합니다” https://ppss.kr/archives/250781 Mon, 14 Feb 2022 07:27:14 +0000 http://3.36.87.144/?p=250781 1. 각박한 삶을 사는 당신을 위한 무료 전시회

각박한 삶을 사는 당신을 무료 전시회에 초대합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초대장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이다. SNS에는 귀엽고 예쁜 동물의 모습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SNS뿐이겠는가. 다음 메인의 동물 카테고리를 보라. 이모티콘도 마찬가지다.

2022년 1월 14일 다음 메인 동물 카테고리.

동물은 귀여워야만 하고 예뻐야만 한다. 간혹 강아지를 학대하거나 고양이를 사냥하는 잔인한 학대범의 범죄가 올라오기도 하지만 극히 일부다. 만약 잔인한 학대범의 범죄들이 사라진다면 동물이 살기 좋은 세상이 올까?

동그란 눈망울, 쫑긋 선 귀, 사람을 바라보는 아련한 눈빛, 통통한 엉덩이, 풍성한 털, 짧은 다리, 쭉 뻗은 다리, 세차게 흔드는 꼬리, 몽롱한 눈빛을 비롯한 특유의 행위들.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이러한 강아지와 고양이의 모습에 미소를 짓는다. 어쩌면 귀엽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감정은 다분히 자연스러운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나조차도 그런 감정을 매일같이 경험하니까. 하지만 동물을 보고 느끼는 감정이 꼭 SNS 게시 행위로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반려동물은 우리의 SNS에 전시되고 있다. 동물원, 수족관 등에 있는 동물을 우리는 전시동물이라 부른다. 반려동물은 집에 거주한다는 점에서 ‘전시동물’과는 다르다. 하지만 SNS를 통해 반려동물은 자랑거리가 되고 관심을 받는 하나의 도구가 된 것 같다.

SNS 활동의 자기애가 반려동물에게도 발현한 것이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각종 개량된 품종묘와 품종견의 출현 그리고 이를 소유하기 위해 애쓰는 현실을 미루어 볼 때, 반려동물은 이미 자기애의 표상이 된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SNS에서 동물을 전시하는 행위는 또 다른 위험성을 함의한다. 동물은 말이 없다. 그 누구도 동물에게 사진을 허락 맡고 올리지 않는다. 동물에게 초상권이 있냐고 되물을 수 있다. 동물이 초상권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고 게시물을 올리는 행위로 동물이 입는 직접적인 손해나 불이익은 없어 보인다.

다만 인간이 동물을 대상으로 하여 사진을 맘껏 찍고 올릴 수 있다는 것에는 권력이 숨어 있다는 위험성을 인지해야 한다. 권력 자체가 악은 아니지만, 인간종의 특권이 사회 속에서 인간과 동물 사이에 만들어내는 폭력을 발견할 필요가 있다.

2020년 필자의 SNS.

귀여운 사진과는 달리 반드시 알려져야 하는 동물의 현실은 SNS에 잘 보이지 않는다. 펫숍의 존재, 유기 동물 증가, 반려동물 사료의 실체와 같은 것들이다.

귀여움과 예쁨을 추구하는 문화는 품종견과 품종묘의 탄생을 만들어냈다. 품종견과 품종묘에 대한 수요는 펫숍과 강아지 고양이 공장을 가동한다. 사람들은 돈을 주고 개와 고양이를 산다. 이 산업에 깊이 깃든 문제의 근원은 동물을 귀여움과 예쁨만으로 소비하는 문화에 있다.

덧붙여 개, 고양이 이외 종은 SNS에서 거의 사라졌다. 개, 고양이 이외 종이 등장할 때가 있다. 대부분 구하기 힘든 동물이거나 반려동물로 익숙지 않은 돼지와 같은 종들이다. 정말로 절망스러운 건, 이 또한 대부분 귀엽고 예쁨으로만 소비된다는 것이다. 다른 종에게도 개, 고양이와의 공통점을 알린다는 점에서 득이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돼지의 삶은 반려동물로서 돼지의 삶과 거리가 멀다. 천지 차이다. 그 누구도 사육장과 도살장의 돼지를 들여다보거나 SNS에 게시하지 않는다. 피 칠갑을 한 모습, 악취와 괴성 등은 가려진다. SNS를 통해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실제로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와 매우 흡사하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긍정적인 것만 보기 원하고 부정적인 건 보기 싫어하는 ‘초긍정 사회’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SNS와 인터넷 펼쳐지는 강아지와 고양이 무료 전시회. 우리는 이 전시회를 열고 초대받고 초대에 응한다. 전시하는 이유, 전시에 우리 시선이 머무는 이유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2. 반려동물은 정말 ‘반려’동물인가?

어쨌거나 ‘이렇게나 예쁜’ 개와 고양이 때문인지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 반려동물에서 동거동물이라는 단어까지 생겨났다.

반려동물, 동거동물이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단 뜻이 아니다.

  • 애완동물은 한자로 愛玩動物이다.
  • 반려동물은 한자로 伴侶動物, 영어로 companion animal이다.
  • 동거동물은 同居動物, cohabitation animal이다.

애완동물의 완(玩)은 완구의 ‘완’과 동일한 한자다. 애완동물은 동물이 장난감 혹은 놀잇감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완동물을 제외하고는 동물 앞에 붙인 단어의 뜻이 좋다.

반려동물은 짝이라는 뜻이고, 동거동물은 함께 사는 동물이다. 여기서 역지사지를 해보자. 동물이 인간을 짝으로써, 함께 사는 동물로써 택한 것일까?

애완/반려/동거 동물이 인간의 집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살펴보면, 제 발로 들어오는 경우는 없다. 간혹 길고양이나 유기견이 집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지만, 극히 드물다. 이때만큼은 인간이 신이 된다. 반려와 동거를 선택하는 건 인간의 전적인 권리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간의 마음이 편하도록 만들어낸 단어 아닐까?

네이버에서 반려동물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정서적으로 의지하고자 가까이 두고 기르는 동물’이다. 과하게 표현하자면 소수 사례를 제외하고 반려동물은 사람이 정서적으로 의지하고자 ‘무작정 데려온 동물’이다. 입양보다는 납치에 가깝다.

펫숍이든 유기동물이든 마찬가지다. 길거리의 삶보다는 집이 낫다는 생각도 인간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반대가 낫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다. 확신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함부로 판단하거나 행동해서는 안 된다. 특히 생명의 삶을 다루는 것이라면 더욱 주의해야 하지 않을까?

펫숍에서 구매했지만, 애지중지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있고 유기동물을 입양하여 알뜰살뜰 보살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SNS와 TV 프로그램을 비롯한 각종 미디어에 드러난 반려동물의 모습 속에는 비인간동물에 대한 인간의 권력이 깊이 배어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반려동물 천만이 넘어가고 있다. 카페, 공원, 보험부터 호텔까지 출현하고 있다. 반려동물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바로 반려동물 문화와 그 속에 깃든 인간 종 권력의 위험성을 되돌아봐야 할 적기 아닐까?

원문: 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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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도시는 왜 실패했을까? https://ppss.kr/archives/249852 Thu, 03 Feb 2022 05:23:29 +0000 http://3.36.87.144/?p=249852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 등의 일환으로 수도권 주택시장 및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계획한 공공주택지구입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의 3기 신도시 소개 글이다. 국내 신도시 계획과 개발은 주택 공급이 주목적이다.

3기 신도시뿐만이 아니다. 1972년 박정희는 10년 동안 250만 호를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1980년 전두환은 ‘주택 500만 호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기반으로 노태우는 주택 200만 호를 건설했다.

분당, 평촌, 산본, 일산, 중동은 1기 신도시의 결과물이다. 2기도 마찬가지로 주택 공급을 목적으로 계획되었다. 판교, 광교, 동탄 등이 2기 신도시의 결과물이다.

국내 신도시 계획과 개발은 영국 도시계획가 에버니저 하워드의 전원도시 이론을 배경으로 한다. 하워드의 전원도시 이론은 산업혁명 이후 공업화로 인해 발생한 도시 인구 과밀, 도시 환경,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창되었다.

즉,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심 지역 바깥에 새로운 도시를 계획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문제와 해결 접근 방식이 국내 신도시 개발과 매우 닮아 보이지만 세부적인 계획과 내용상의 차이를 보인다.

2기 신도시 분당의 풍경. / 출처: 픽사베이

 

대한민국 신도시는 ‘주택 공급’, 하워드 전원도시는 ‘자급자족’하는 도시

국내 신도시 계획의 주요 목적은 서두에서 알 수 있듯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방안’이다. 하워드의 신도시 계획도 주거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한다.

다만 하워드의 신도시 이론은 주택 공급만을 목표로 두지 않는다. 주거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자급자족하는 도시를 만들고자 했다. 하워드는 실제로 레치워스와 웰윈 도시계획에 참여했다.

하워드의 전원 도시론 이후 20세기 초 도시계획의 요체는 ‘도시와 농촌의 결합’이었다.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도시 이론’이 완성되었다. 신도시는 거주자들로 하여금 ‘자족적 커뮤니티’로 구획된 경계 내에서 생활이 완결되도록 짜인 구조이다.

  • 『내일의 전원도시』, 197쪽.

하워드 전원도시는 건축 설계도면에 따라 건물이 지어지듯, 하나의 도시도 계획적으로 만들어진다.

전원도시의 공간구조. / 출처: 『내일의 전원도시』

중심부 원형에는 관개가 잘 되는 정원이 있고, 크리스탈 팰리스에는 공공건물과 넓은 유리 아케이드가 있다. 오늘날 그린벨트와 유사한 그랜드 어베뉴도 보이며, 그랜드 에버뉴에 면한 선이 더욱 길어지도록 초승달 모양으로 배치했다. 그랜드 어베뉴 바깥쪽 환형 지대(보라색)에는 공장, 창고, 낙농장, 시장, 석탄 저장소, 목재 저장소 등이 들어선다.

다시 말해, 단순히 잠만 자는 도시가 아니라 일상생활이 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게 하워드 신도시의 모습이었다. ‘베드타운(Bed town)’으로 전락한 국내 신도시와는 큰 차이가 있다.

주거, 경제, 일자리 등 종합적인 평가를 해본다면 국내 신도시는 ‘도시’로서 실패했고 하워드 전원도시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도시계획의 어떤 차이가 반대되는 결과를 낳았을까?

 

영국 전원도시의 비결은 토지 이용제에 있다

영국 전원도시는 도시계획의 세부 내용이 아닌, 도시계획을 뒷받침하는 제도에 성공 비결이 있다.

영국의 토지 이용 제도는 계획 중심 토지 이용제다. 철저히 도시계획에 의해 토지 이용 계획이 결정된다. 계획 중심 토지 이용제는 토지의 ‘소유’보다 계획에 의한 ‘이용’에 우선을 둔다.

소유자의 뜻대로 건축할 수 없는 ‘건축부자유원칙’을 근간으로 한다. 영국을 비롯해 독일과 프랑스 등이 차용하는 방식이다.

영국은 토지의 개발권이 국가에 귀속되어 건축을 포함한 모든 토지개발행위는 지방정부 또는 중앙정부의 계획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토지의 사적 소유를 인정하면서도 개발권은 분리하여 국유화한 것이다.

반면 국내는 용도 중심 토지이용제도다. 미국과 일본에서 채택한 방식이다. 용도 중심 토지이용제도는 용도지역이 결정되면 이에 따라 토지 이용 계획이 결정된다.

용도 중심 토지 이용 제도는 계획에 따른 개발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다. ‘건축자유원칙’을 근간으로 한다.

용도지역 지정 목적에만 위배되지 않는다면, 소유자는 건축과 개발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개발권이 토지 소유와 함께 사유화되어 있는 제도다. 계획적인 개발이 어렵고 난개발과 환경파괴를 초래한다.

두 손이 마주쳐야 박수 소리가 난다. 도시계획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려면, 통합적인 도시계획이 실행될 수 있도록 토지 이용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레치워스 풍경. / 출처: Unsplash (by Nick Hawkes)

 

도시가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지대를 거둬들여야 한다

불이 생기려면 일단 점화되어야 한다. 산소, 온도, 물질 세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이후 불이 꺼지지 않으려면 산소와 연료가 공급되어야 한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토지 이용제는 도시가 잘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이다. 이후 도시가 지속 가능해지려면 세입 제도가 잘 마련되어야 된다.

하워드 전원도시와 국내 신도시는 토지 이용제뿐만 아니라 세입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지대(地代)는 토지 사용자가 토지 소유주에게 내는 사용료다. 지대는 토지 소유주가 무노동으로 벌어들인 ‘불로소득’이다.

하워드 전원도시의 모든 세입은 지대로부터 나온다. 지대를 환수하여 도시로 재투입하는 것이다. 단순히 도시를 만들고 끝내는 게 아니라,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세입을 고려하여 철저하게 염두에 둔 것이다.

 

전원도시 지대 이론, 영국 개발권 제도와 개발이익 환수제도의 시작

하워드 전원도시의 지대 이론은 이후 영국의 개발권과 세입 제도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인다. 하워드(1850-1928)가 활동하던 시기에 ‘토지공개념’이 등장했다.

비록 철회하긴 했지만 한때 토지공개념을 주장했던 허버트 스펜서를 비롯하여 헨리 조지, 존 스튜어트 밀이 심화한 개념이다. 이론적으로는 토지 국유화를 통해 개발이익을 환수하자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미 사유화된 토지를 국유화하는 건 정치적 논쟁을 유발하고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토지 국유화의 대안으로 제시된 개념이 토지 가치 상승분에 대한 환수제도다. The Uthwatt Committee on Compensation and Betterment는 개발 이익을 공공으로 환원하자는 기본적인 내용을 담은 보고서 「The Uthwatt Report」(1942)를 발표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국토를 미개발지와 기개발지로 구분한다. 미개발지는 토지이용권만 인정하고 개발권은 국유화하고 기개발지는 토지 가치 상승분에 대한 정기적 과세를 통해 개발이익을 환원한다.

이 보고서는 제도적으로 제정되지 않았지만, 보고서의 내용은 이후 영국 토지 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947년 개발부담금이 그 예다. 개인이 토지를 개발하고자 할 때 국가에 개발부담금을 지불하고 개발권을 구입하는 것이다. 개발이익의 100%를 징수하는 제도다.

하지만 개발사업 위축, 제도 운영 복잡성 등 문제가 발생하면서 개발환수제도는 개량 부과금, 개발 이익세, 토지 개발세 (1967-1974-1975)로 변화해왔다.

결국, 오늘날 계획 이익 환수제도의 근간이 되는 도시 및 농촌 계획법 제106조가 1990년에 발표되었고 거둬들인 세금을 주택 공급, 기반시설 설치 등과 같은 공공성을 강화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국내 신도시 개발 이익은 누가 가져가나

국내 신도시는 어떠한가? 1, 2기 신도시는 택지개발촉진법에 의해 조성되었다. 반면 3기 신도시는 공공주택특별법에 의해 조성된다. 따라서 공공임대와 공공분양 비율이 합쳐서 50%를 넘어야만 한다. 1, 2기에 비해 공공성을 띤다고 볼 수 있다.

3기 신도시 위치. /출처: LH

하지만 여전히 신도시 개발로 발생한 이익은 개인투자자 혹은 민간건설사가 챙기는 구조다. 1, 2기보다는 콩고물이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토지 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투기가 가능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서는 개발 호재가 있으면 한몫 챙겨보려는 이들이 득달같이 몰려든다.

토지 가치 상승으로 인한 몫을 국가가 환수한다면 투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지대를 환수함으로 인해 부동산 시장과 건설업이 움츠러들 염려가 있다. 하지만 이는 개발에 참여하는 민간업체에 개발이익을 일정 부분 제공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도시계획의 핵심은 제도다

하워드의 전원도시 이론은 도시 문제를 내부에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도시를 탈출하여 새로운 땅에서 해결하려고 했던 점이 한계로 지적되면서도 도시계획가들에게 정통적 이론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워드가 제시한 신도시의 모습은 펜으로 슥슥 그린 그림에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 환경, 사회 등을 통합적으로 사고하고 구체적으로 도시를 계획했다.

하지만 하워드의 전원도시 이론을 만들 수 있었던 토대는 토지이용, 개발권, 개발이익 환수에 관한 제도였다. 단숨에 영국과 같은 제도를 국내에 적용할 수 없을 것이다. 영국 또한 100여 년 동안 제도를 발전시키고 수정하면서 수많은 사회적 논의와 합의의 과정이 있었다.

아직 첫 삽을 뜨지 못한 지역도 있지만, 어쨌건 국내 3기 신도시 개발은 현재 진행 중이다. 우린 이미 실패했다고 낙담하기보다는 3기 신도시의 개발을 통해 토지개발 공공성에 관한 논의들이 진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도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하워드 같은 도시계획가가 백 명, 천 명이 나온다 한들 살기 좋은 도시는 만들 수 없다.

원문: 현우의 브런치


참고 자료

  • 에버니저 하워드, 『내일의 전원도시』, 조재성·권원용 역,  한울아카데미, 2019.
  • 류해웅, 「용도 중심과 계획 중심의 토지이용제도 비교」, 2009.
  • 서순탁, 「토지재산권 분화 및 개발권 국공유화방안 연구」, 1999.
  • 이형찬· 최명식,  「영국의 계획이익 환수제도와 정책적 시사점」, 2009.
  • 3기 신도시 홈페이지, 「 3기 신도시란?
  • 국토교통부, 「외국의 수도권정책 정책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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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도 버스를 탑니다: 프랑스 교통 이야기 https://ppss.kr/archives/249255 Fri, 07 Jan 2022 04:52:18 +0000 http://3.36.87.144/?p=249255 지방 도시가 사라지고 있다. 소멸위험지수는 65세 이상 노인 대비 20~39살 여성의 비율로 소멸위험도를 따진다. 해를 거듭할수록 국내 소멸위험 지역은 점차 증가하고 있고 올해는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08곳(46.5%), 절반에 육박하는 지역이 이에 해당한다.

 

프랑스 ‘살기 좋은 도시’ 1위는 앙제 시

지방 소멸 문제는 국내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동일한 지방 소멸 위기는 찾아왔고 일찍부터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일본의 지방 소멸 문제도 고령화, 인구 감소, 지역 산업 쇠퇴 등 국내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책 『앙제에서 중소도시의 미래를 보다』를 통해 프랑스 중소도시에서 대안을 모색한다.

주간지 《렉스 프레스》는 매년 도시 랭킹 조사를 실시한다. 2012년에서 2014년까지는 모빌리티, 환경, 경제, 건강, 사회 정책이라는 다섯 항목의 바로미터로 50개의 지방 도시를 비교했다. 3년 연속 앙제 시(Angers)가 1위였다. 2019년에 실시된 조사에서도 앙제 시는 1위를 기록했다.

앙제는 파리에서 약 300km 떨어진 도시다. 이를 국내와 비교하면 서울특별시와 대구광역시 간의 거리와 비슷하다. 책에서는 파리에서 TGV로 1시간 15분 거리에 있는 도시라고 소개한다.

책 『앙제에서 중소도시의 미래를 보다』는 앙제를 비롯한 프랑스 중소도시의 선례들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

 

활기가 넘치는 프랑스 중소 도시의 비밀

프랑스 중소 도시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책 『앙제에서 중소도시의 미래를 보다』에서는 교통과 상업을 핵심 요인으로 꼽았다.

책의 3장에서는 도시의 교통 요인을 살펴보며 보행, 자전거, 버스, 트램, 승용차별로 구분하여 정책과 제도를 분석한다. 이 글에서는 책의 내용을 요약하며 국내 현황과 비교하며 적용해볼 만한 점들을 모색해본다.

첫째, 프랑스는 보행자 우선 도로와 보행자 전용 공간 등을 확보한다. 예를 들면 낭시 시 중심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스타니스라스 광장까지는 자동차가 진입할 수 없다. 또한 ‘존 30’과 같이 자동차의 속력을 제한하여 보행자의 안전을 확보한다.

국내에도 스쿨존으로 불리는 어린이 보호 구역은 30km로 속력이 제한되는데 ‘존 30’은 이와 비슷하다. 다만 국내는 스쿨존뿐만 아니라 보행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에 따라 속력 제한 구역을 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

둘째, 자전거 분야에서는 공유 자전거와 자전거 도로 인프라를 살펴본다. 책에서는 서울시의 ‘따릉이’, 대전시의 ‘타슈’와 같은 공유 자전거 ‘밸로프(Velohop)’ 사례가 소개된다.

경사도에 따라 인센티브가 제공되는 점이 인상 깊었다. 파리에서는 언덕 위에 있는 대여 거치대에 자전거를 주차하는 경우에는 15분간의 보너스가 따라온다. 실제로 1시간 사용해도 45분의 이용료만 내면 되는 섬세한 배려다.

자전거 도로 인프라에서도 국내와 큰 차이가 있다. 책에서는 프랑스와 일본의 현황을 소개한다. 프랑스 전역 자전거 전용도로는 1만 1,000km인 반면, 일본은 300km에 미치지 못한다. 한국은 2020년 기준 3,500km를 조금 넘는다.

프랑스 앙제 시의 모습 / 출처: unsplash.com

프랑스는 도로 공간 재분배 계획과 실행 시에 애초에 보행자와 자전거를 포함한다. 국내도 자전거 분담률을 높이고 걷는 도시를 만들자고 목소리만 높일 게 아니라 실제 정책을 계획하고 실행할 때부터 자전거와 보행자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셋째,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살펴본 교통수단은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LRT, BRT, 트램이었다. 트램은 대전시가 2호선을 트램으로 고려한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어 익숙했지만 LRT와 BRT는 생소했다.

LRT는 Light Rail Transit의 약자로 경전철이고, BRT는 Bus Rapid Transit의 약자로 간선급행버스체계를 뜻한다. LRT는 전철과 같이 전용 통행권을 갖고 빠른 속도와 큰 운송력의 장점이 있다. LRT는 안정성에도 장점을 보인다. 주행거리 1만 km 당 LRT 사고율은 0.367%로 버스 사고율(0.66%)의 절반 정도 된다.

 

BRT, 모두를 위한 교통수단

BRT는 버스 두 대를 연결한 교통수단이다. 프랑스 BRT는 차체 디자인이 화제가 되었는데 지역의 개성을 드러내는 좋은 수단이 된다. BRT는 운송력이 좋고 일반 버스에 비해 속력이 빠르다.

BRT는 경제적 장점도 지닌다. 한국교통연구원의 보고서(2007)에 따르면, 국내 청라-화곡 BRT의 경우 차량구입비와 용역비를 제외한 건설비는 ㎞당 55억 원가량으로 국내 지하철(신설 중인 노선) 건설비인 ㎞당 1천억 원 내외의 20분의 1, 경전철(계획 중인 노선) 건설비인 ㎞당 400억 원 내외의 7분의 1 정도가 소요된다.

부산시청의 BRT 소개 면에서도 BRT 건설 비용은 도시철도 건설 비용에 비해 50배가량 저렴하다고 소개한다. BRT는 경제성 면에서도 효율성 있는 교통수단으로 평가된다.

출처: https://www.sustainable-bus.com ⓒ Cyril Garrabos

또한, BRT는 ‘배리어 프리’다. 휠체어 4대분의 공간이 있는 BRT도 드물지 않다. 2005년에 제정된 프랑스 배리어 프리 법에 따르면, 대상자는 휠체어 이용자뿐만이 아니라 다친 비장애인, 어린이를 데리고 타거나 짐이 많은 사람도 포함된다. 물론 유아차를 이용하는 사람도 포함된다. 이동에 제한이 있는 사람은 모두 해당되는 것이다.

프랑스는 다리 힘이 약해진 고령자를 이 범주에 포함시켜 총 1,200만 명, 총인구의 5분의 1이 해당한다. BRT는 배리어 프리를 적용한 ‘모두를 위한 교통수단’으로서 훌륭한 대안이다.

프랑스 BRT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BRT 전용차선화와 같이 제도적으로 버스의 우선성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부산에서 BRT가 도입되었고, 창원에서 시범 도입을 시도 중이다. 다만 부산의 BRT는 배리어 프리가 적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내의 BRT는 모두를 위한 교통수단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국토부는 2030년까지 수도권 25개, 비수도권 30개 노선을 신설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현재 도입된 BRT도 배리어 프리를 적용해야만 하며 추후 신설할 BRT에도 배리어 프리를 반드시 적용해야만 한다. 같은 BRT여도 프랑스와 우리나라가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어떤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인가?

프랑스 중소도시의 교통 현황을 관찰하며 살기 좋은 도시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떤 도시가 모두가 살기 좋은 도시일까?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도시일까, 아니면 유아차를 끌거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안전하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도시일까?

아는 선생님이 평화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공동체원 중 가장 약자라고 생각하는 이가 평화롭다고 생각한다면 평화로운 상태인 것이다.”

이를 도시에 적용한다면, 사회적 약자가 생각하기에 살기 좋은 도시라면 그 도시는 살기 좋은 도시다. 마찬가지로 교통 약자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교통이 편리한 도시라 말할 수 있겠다.

승용차보다는 대중교통과 자전거, 자동차보다는 보행자, 보행자 중에서도 보행 약자를 우선에 둬야 한다. 각 교통수단은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제한이 없어야 한다.

본 글에서는 책 『앙제에서 중소도시의 미래를 보다』에서 활기 넘치는 프랑스 중소도시의 교통 특징을 살펴봤다. 이 책은 교통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가는 공무원과 정치인들에게는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며, 교통과 도시 전문가들에게는 새로운 영감을 줄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빈 상점이 없는 프랑스 중소 도시’에 대해 소개한다.

원문: 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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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미지 출처: Free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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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담근 생애 첫 ‘비건 김치’ https://ppss.kr/archives/248248 Tue, 14 Dec 2021 03:35:35 +0000 http://3.36.87.144/?p=248248 고향에 내려가기 전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피곤한데 쉬지, 뭐하러 내려와.

코스트코도 가고 얼굴도 볼 겸, 겸사겸사 가는 거지 뭐.

지난주에 김장을 다 하긴 했는데. 엊그제 전주 할머니 집에서 배추가 싱싱해 보이는 게 있어서 열 포기 가져왔거든. 젓갈 안 넣고 김장해보려고.

첫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다. 엄마는 마당에서 빨간 고춧가루를 대야에 휘저었다. 집으로 들어오는 우릴 보자 “피곤한데 뭐하러 내려왔냐”며 전화 속 음성을 그대로 재현했다. 하지만 아들과 며느리 얼굴을 보는 게 내심 좋았는지 입이 귀에 걸렸다.

채식한 지 어언 2년이 넘었다. 외식할 때는 거의 김치를 먹지 않지만 집에서는 어머님(아내 어머니)이 보내주신 젓갈이 들어간 김치를 먹곤 한다. 비건 김치도 몇 번 사 먹어보고 겉절이도 자주 만들어 먹지만 귀찮음을 이유로 아직도 젓갈이 들어간 김치를 먹는다.

엄마는 젓갈을 넣지 않고 소금 김치를 하겠다며 몇 포기 가져가라고 말했다. 김장해야 할 배추는 총 열 포기. 엄마는 옷이 더러워진다며 그냥 앉아서 쉬라고 말했지만, 처음으로 비건 김치를 담글 생각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말이 비건 김치이지, 사실 비건 김치는 최근에 새로 생겨난 게 아니다. 젓갈이나 액젓을 뺀 소금 김치가 비건 김치다.

최근에야 하얀 새우젓 넣고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지, 네 아빠가 젓갈 냄새를 싫어해서 우리는 원래 소금 김치를 담갔어.

엄마 그러면 양념은 어떻게 해?

 

비건 김치(소금 김치) 담그는 비법

소금 김치이자 비건 김치 만드는 비법은 다음과 같다.

  1. 다시마와 버섯을 우려 채수를 만든다.
  2. 고춧가루에 채수를 넣고 젓는다.
  3. 빻은 마늘을 넣고 젓는다.
  4. 채소 갓을 썰어 넣는다.
  5. 쓴맛을 완화하기 위해 설탕을 넣는다. (각 과정에 양념 맛을 봐가며 추가로 재료를 넣는다.)
  6. 양념을 배춧속에 넣는다.

고무장갑을 끼고서 양념을 한 움큼 쥐고 배춧잎 하나씩 들어내며 양념을 앞뒤에 발랐다. 김장 30년 차 전문가 엄마는 열심히 양념을 바르는 내게 “김치가 맛있으려면 이파리 부분뿐 아니라 배추 심 안쪽으로도 잘 발라줘야 해”라고 말했다. 김치에 손 한번 안 대고 입만 대 왔던 30년 차 김치 평론가 아빠는 “잘 바르고 있네”라며 칭찬해줬다.

열 포기 담글 때였나. 아내의 옷에 양념이 튀었다. 나는 “꼭 초짜들이 티 내고 일하더라. 나 봐봐. 깨끗하지?” 하며 웃었다. 모두가 함께 웃었다.

열 포기를 다 담그고 고무장갑을 벗을 때였다. 고무장갑 손가락이 쭉 늘어났다가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장갑에 붙어있던 고춧가루가 사방으로 튀었다. 수류탄이 터지고 파편이 퍼지듯 고춧가루가 내 상의에 안착했다. 좀 전의 아내와 엄마 웃음은 신호탄에 불과했다. 고춧가루 폭탄을 맞은 나를 보고서 모두 잇몸과 이가 만개했다. 나는 멋쩍게 옷에 묻은 고춧가루를 떼어냈다. 온몸에 김장의 흔적을 남긴 초짜의 첫 김장은 그렇게 끝났다.

물론 양념을 만드는 과정은 대부분 엄마의 몫이었다. 하지만 양념을 만들고 비건 김치를 담그는 과정이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고 다음부터는 직접 김치를 만들어 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스스로 김치를 담갔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엄마, 아빠와 아내 그리고 내가 공유할 추억이 하나 생긴 것 같아 마음이 포근해지기도 했다.

 

생애 첫 김장, 엄마와 함께 한 김장

생애 첫 김장이었다. 내 손으로 직접 담갔다. 겨우 열 포기 담갔을 뿐인데 허리가 조금 욱신거렸다. 채식을 시작하고 요리하는 시간이 늘면서 자연스레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에 깃든 모든 정성에 감사함이 생겼다. 그동안 매년 김치를 만들어준 엄마와 어머님(아내 어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또한 김장김치를 담그는 우리와 그 모습을 지켜만 보던 아빠를 바라보며 머리로만 알던 사실을 몸소 겪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여성이 온몸으로 김장을 하는 동안 남성은 눈과 입으로만 김장을 하겠구나.

살아온 시간이 달랐기 때문에 물론 아빠가 이해가 안 되는 바가 아니다. 다만 과거의 문화가 지금도 이어진다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었다. 나도 이번 김장이 처음이었으니까. 사실은 이전에도 여러 번 김장하겠다고 엄마에게 이야기는 해보았으나 그때마다 엄마가 거절했던 기억이 난다. 고작 양념 심부름 정도 했을 뿐, 나도 아빠랑 크게 다르지 않은 입만 쓰는 조선의 선비일 뿐이었다.

엄마는 내가 채식을 시작한 이후로 고향 집에 올 때마다 “고기 귀신이 어떻게 고기를 끊었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네, 고기 안 먹고 싶니?” 매번 의심하면서도 동시에 “어떤 음식 해놓을까?”라고 물으며 갖은 채소 반찬과 제철 나물들을 준비한다. 어쩌면 이번 김장도 젓갈을 넣지 않고 김장하길 원하는 날 위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매년 김장할 때쯤 엄마에게 “요즘 김치 저렴하게 잘 나온다”며 사 먹자고 얘기했다. 그러나 매번 엄마는 누군가를 위해 김장을 했다. 앞으로도 그럴 테다. 김장은 무조건 안 하려고 생각할 게 아니라, 차라리 한 포기라도 옆에서 돕는 자식이 되어야겠다. 예전처럼 김장해서 이 집 저 집 챙겨주는 유교 김치공장이 아닌 이상, 가족끼리만 소소하게 함께 만들어 먹으며 추억을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원문: 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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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로 하와이 추억여행 떠나는 법 https://ppss.kr/archives/244826 Wed, 18 Aug 2021 05:09:24 +0000 http://3.36.87.144/?p=244826 ※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우리 부부는 하와이 신혼여행 이야기를 자주 꺼낸다. 하와이에 대한 기억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와이안 피자를 자주 먹기 때문이다. ‘반하와이안’ 피자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파인애플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 주길 바란다.

파인애플은 죄가 없다.

하와이 신혼여행 당시 하와이안 피자는 딱 두 번 먹었다. 첫 번째는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파이터〉 하와이 편에 나온 피자집이다. 숙소로부터 꽤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오픈카를 타고 상쾌한 하와이 공기를 애피타이저로 마셨다.

40분간 고속도로를 달려 피자집에 도착했다. 피자집은 호숫가에 있었는데 사람이 붐비지 않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다만, 토핑을 직접 선택해야 하는 고난도 피자집이었다.

당황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자주 주문해본 것처럼.

어떤 말을 듣고 어떤 말을 했는지 모르는 사이 주문이 끝났다. 어떤 피자가 나올지 상상이 되지 않아 불안했다. 손님이 우리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부터는 불안함은 증폭되었다. 피자의 ‘맛’에도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주문했던 피자가 나왔는데 당연하게도 이상한(?) 피자가 나왔다. TV 속 먹음직스러웠던 피자의 모양새와는 너무도 다른 피자가 나왔다. 백종원 씨를 탓할 게 아니라 내 영어 실력을 탓해야 하는 상황인데 솔직히 백종원 씨가 원망스러웠다.

가게 앞 요트가 정박해 있는 바다를 바라보며 미각이 아닌 시각의 힘을 빌려 피자를 입에 넣고서 씹어 삼켰다. 그랬기 때문일까. 그날을 떠올리면 그때의 피자 맛은 기억나지 않고 오로지 바깥 풍경만이 떠오른다. 참 다행이다.

풍경은 아름다웠다…

두 번째로 먹은 하와이안 피자는 하와이 공항에서 먹었던 피자다. 햄버거와 피자 등 다양한 음식을 파는 음식점이었는데 참새와 비슷한 조그마한 새들이 음식점 내부에서 사람들 사이로 날아다녔다. 새들은 땅에 떨어진 음식물을 먹고 있었다.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음식을 먹었다.

참 진기한 풍경이었다. 우연히 이때의 피자 맛도 기억나지 않는다. 새들이 날아다녔던 음식점의 풍경만 기억에 남았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직전 하와이에서의 두 번째 피자 맛을 보며 생각했다.

한국형 하와이안 피자가 찐이구나.

한국에 돌아와서도 하와이안 피자를 자주 먹었다. 신혼여행 당시에도 채식에 대한 고민을 하던 차였고 하와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채식을 막 시작했기 때문이다. 치즈를 뺀 하와이안 피자는 채식인에게 아주 완벽한 요리였다(사실 내게는 파인애플만 올라가면 다 하와이안 피자다).

요즘에 비건 피자를 판매하는 음식점이 꽤 늘어나기도 했지만 정작 내가 사는 동네에는 하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피자가 먹고 싶어지면 재료를 사서 요리해 먹는다. 요리라고 하기엔 조금 부끄럽지만 오븐만 있으면 쉽게 요리할 수 있는 비건 피자 레시피를 소개한다.

  • 필수 준비물: 비건 토르티야(혹은 피자 도우), 파인애플, 비건 마요네즈, 토마토 페이스트, 그리고 각종 채소.
  1. 토르티야 위에 토마토 페이스트를 고르게 발라준다. 덕지덕지 바르면 짜기 때문에 고르게 펴 발라야 한다.
  2. 비건 소이 마요나 비건 갈릭 마요 듬성듬성 뿌려준다.
  3. 채소는 먹기 좋은 크기와 모양으로 썰어 기름에 살짝 볶아준다.
  4. 볶은 버섯, 양파, 감자, 당근을 토마토 페이스트 위에 올려놓는다. 피망과 파인애플은 볶지 않고 생으로 올려놓는다.
  5. 오븐에 넣어 200℃ 온도로 10–15분 간 데워준다.
집에서 직접 만든 하와이안 피자(?).

조금 어설프지만 하와이안 셔츠가 떠오르는 알록달록한 피자가 완성되었다. 토르티야의 쫀득함과 파프리카와 양파의 아삭함을 비롯한 각종 채소의 다양한 식감, 소이마요의 고소함, 케첩과 파인애플의 새콤달콤함이 잘 어우러진다. ‘피자+파인애플’은 상상도 못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파인애플만 빼고 만들면 된다. (하지만 파인애플을 빼면 피자는 ‘하와이안’이 될 수 없다.)

하와이 여행 후 하와이안 피자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우리는 함께 공유하는 추억이 생겼고 채식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욱 강경한 하와이안 피자파가 된 이유도 그중 하나다.

우리 부부는 하와이안 피자를 먹을 때 하와이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파인애플 하나 얹었다는 이유로 우리는 식탁 위에서 다시 하와이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며 노트북 앞에서 또다시 한번 하와이로 여행을 떠난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참 이상한 존재다. 하와이에서는 제대로 된 하와이안 피자를 먹지도 못했지만 집에서 토르티야에 파인애플을 얹고 하와이 추억을 이야기한다. 이와 반대로 막상 해외여행을 가서 한식을 찾는다. 예를 들면 아내는 해외에 갈 때 컵라면을 반드시 챙긴다. 유럽의 최고봉 스위스 융프라우에서 컵라면을 파는 건 어찌 보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융프라우 정상에서도 신라면을 먹었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가지 못한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어떤 식으로든 여행을 하고 그 안에서 만족하는 법을 터득하는 게 인간이니까.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내는 하와이로 이미 추억여행을 떠났다. 노트북 앞 내 뒤통수에 대고서 하와이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다. 지금 우리가 그때의 하와이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언젠가 ‘집콕 휴일’을 그리워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원문: 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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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의 늑대들 https://ppss.kr/archives/240742 Fri, 07 May 2021 06:55:45 +0000 http://3.36.87.144/?p=240742 ※ 오마이뉴스에도 발행된 글입니다.


아기돼지 삼형제는 엄마로부터 독립을 한다. 삼 형제는 각자 자기가 살 집을 짓는다. 첫째는 짚더미로 집을 짓고 둘째는 나무집으로 짓고, 셋째는 벽돌집을 짓는다. 결국 늑대가 들이닥쳐 첫째와 둘째는 튼튼한 벽돌집이 있는 셋째의 집으로 피신한다. 셋째가 첫째와 둘째를 도우면서 우화는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 우화는 그저 가족 간 우애를 드러낸 감동적인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교훈을 준다. 첫째와 둘째가 짚더미와 나무로 집 짓는 게 게으르기 때문이라며, 셋째의 부지런함을 본받아야 한다는 교훈 말이다.

KOSTAT 통계 플러스(통계청 간행물) 2018년 여름호에 따르면 전국 전체 가구의 주거 빈곤은 1995년 46.6%에서 2015년 12.0%로 개선되었다. 반면 서울의 1인 청년 가구의 주거 빈곤은 1995년 58.2%에서 2000년에 31.2%로 크게 감소하였으나 다시 증가하기 시작해 2015년에는 37.2%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주거 빈곤 가구는 최저 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주택에 거주하거나 지하 또는 옥상 거주 가구, 주택 이외의 기타 거처(오피스텔 제외)에 거주하는 가구를 뜻한다.

<착취도시, 서울>

 

지방에서 서울로, 지상에서 지하로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당시에는 반지하 원룸에서 살았다. 그 게 5년 전이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지만 주거 공간은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갔다. 그나마 학교를 졸업하고 반년간 알뜰히, 부지런히 저축해뒀던 돈 덕분에 보증금을 낼 수 있었다.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26만 원, 공과금 별도였다. 부엌 화장실의 경계는 화장실 문이었다. 방에 매트리스를 깔면 침실이 되고 식탁을 놓으면 주방이 되고 노트북을 켜고 영화를 보면 거실이 되는 신기한 방이었다. 신민주 작가의 책 제목처럼 집이 아니라 ‘방’에 살았던 것이다.

촌사람이 서울에 처음 살아봤기 때문일까. 집에 머무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저녁이면 복싱이나 유도 체육관을 갔고 주말이면 어떻게 해서든 약속을 만들었다. 집에 애정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바깥으로 나돈 건지, 바깥으로 나돌아서 집에 애정이 생기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집은 철저히 잠만 자는 공간이었다.

나는 그나마 운 좋게도 가성비 좋은 반지하를 구했다. 대학가 근처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던 적이 있었다. 내가 살던 집과 크기는 비슷했지만 월세는 2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친구 집에는 침대가 있었는데 과장을 조금 보태면 팔이 긴 사람은 침대에 앉아서 설거지와 요리가 가능해 보이는 구조였다. 알뜰살뜰한 공간, 그야말로 여백의 미가 없는 효율적인 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시내 기숙사 건축은 번번이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상권 하락 그리고 원룸 임대로 생계를 이어가는 건물주가 있다는 이유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서울 내 4년제 대학교에 다니는 청년들은 희망이 있다. 비록 지금은 닭장 같은 집에 살더라도 명문대 졸업장을 손에 쥐고 나면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여 ‘방’이 아닌 좀 더 넓고 아늑한 ‘집’으로 이사 갈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물론 무한경쟁 체계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그 희망도 사라진다.

ⓒ 서울역사박물관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그다음 쪽방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쪽방촌에 사는 사람의 경우는 대학가에 사는 학생과 상황이 매우 다르다. 첫째, 주거 환경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쪽방을 명확히 정의 내린 자료는 없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이렇다.

방을 여러 개의 작은 크기로 나누어서 한두 사람이 들어갈 크기로 만들어놓는 방. 보통 3제곱미터 전후의 작은 방으로 보증금 없이 월세로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3제곱미터는 싱글 퀸 사이즈 침대 하나 사이즈다. 그 안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한다. 쪽방은 보통 화장실이 없고 방 안에서 취사가 가능하지 않다. 쪽방 주민은 건물에 있는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을 사용한다.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한데 심지어 1층을 두 개의 층으로 나뉜 방도 있다. 온수와 난방도 허락되지 않는다. 쪽방은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아래 쪽방’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곳이다.

 

쪽방 평당 임대료는 18만 2,550원, 서울 전체 아파트 평균의 4배

쪽방의 평균 평당 임대료 18만 2550원. 서울 전체 아파트의 평균 평당 월세인 3만 9400원의 4배를 훌쩍 뛰어넘는 임대료다.

  • 『착취도시, 서울』 p.104

둘째, 쪽방 주민의 월 소득은 현저히 낮다. 2019년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쪽방 거주민 1949명 대상 월 소득 100만 원 미만은 82.7%였고 주 소득원은 정부보조 수급비(70.3%)였다. 일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건강상의 이유(72.8%)에 응답한 이가 가장 많았고 일자리가 없다는 이유(8.0%)가 뒤를 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은 서울 기준 1인 가구 주거급여로 23만 3000원 안에서 월세를 지원받는다. 즉 쪽방 주민 복지를 위해 지급되는 국민의 혈세는 쪽방 소유주에게 흘러간다.

전문가들은 쪽방의 주거 기능 자체는 긍정했다. 김선미 서울 성북주거복지센터장은 쪽방이 “노숙을 막아줄 ‘방파제’ 역할을 한다”라고 말하며 실제로 “1970년대에 미국에서는 쪽방과 비슷한 주거자원인 SRO(single room occupancy)가 대거 철거되자 홈리스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쪽방과 고시원이 노숙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그물’이자, 노숙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발판’으로 기능하는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적합한 주거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 쪽방을 이용한 약탈적 임대 행위다.

‘빈곤 비즈니스’는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되, 빈곤으로 벗어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닌, ‘빈곤을 고착화’하는 산업이다. 가뜩이나 돈 없고 오갈 데 없는 이들의 곤궁한 처지를 이용해, 마땅한 노력 없이 불로소득으로 폭리를 취하고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데에만 관심을 보이는 행태를 말한다.

  • p. 58

책을 읽으며 쪽방촌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몰랐던 세계가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쪽방의 환경과 월세 비용에 또 한 번 놀랐고 그 수익을 얻기 위해 투자하고 부를 쌓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넋을 놓게 되었다.

 

우리의 혈세를 약탈하는 이는 누구인가?

쪽방의 계약은 보통 구두로 이뤄진다. ‘방 있음’이라고 적힌 간판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해 관리인과 만나 그 자리에서 계약한다. 부동산 계약서도 없고 보증금도 없다. 계약서가 있을 리 없다. 최저주거기준을 만족하는 ‘주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대료는 일세로 납부하기도 하고 월세로 납부하기도 한다.

ⓒ 이현우

쪽방 건물 한 채다 매달 287만 5168원(평균값을 통한 추정)을 현금으로 받으면서도 카드 결제나 현금 공제가 되지 않아, 수익은 드러나지 않는 ‘그림자 현금’ 형태로 집주인의 주머니 속으로 흐른다.

  • p.103

318채 중 다주택 소유자들이 갖고 있는 건물은 56채(17.61%)에 달했다.

  • p.101

빈곤 비즈니스를 이용해 착취하는 소유주만 있는 건 아니다. 오래된 자료이긴 하지만 2002년 한국도시연구소 <쪽방연구>에는 쪽방 주인 할머니 박 씨의 인터뷰가 나온다. 박 씨는 야박하게 사람을 내쫓지 못한다고 했다. 방세가 밀리면 바로 내보내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은 몇 개월씩 방세를 내지 못하는 사람을 그냥 지내게 해 준 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쪽방촌 소유주가 쪽방촌 지역에 사는 경우에 해당하고, 그중에서도 매우 일부일 것으로 짐작된다.

 

누가 주민인가?

4.7 보궐선거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선되었다. 지난 14일 국민의힘 부동산시장정상화특별위원회가 동자동주민대책위원회와 간담회를 가졌다. 동자동주민대책위원회는 동자동 ‘토지 소유주’로 구성되어 있다. 토지 소유주들은 스스로를 당당하게 주민이라 칭한다.

<한국일보>는 서울시의 쪽방 현황 내부 자료에 명기된 318채 쪽방 건물 가운데 등기가 되어 있는 243채 등기부 등본을 전수 조사를 했다. 전수 조사 결과, 전체 270명 소유주 중 188명(69.62%)이 쪽방촌 밖 다른 지역에 살고 있었다. 반면 2018년 기준으로 서울 시내 쪽방 주민들은 평균 11.7년 동안 쪽방촌에 머물고 있다. 누가 진짜 쪽방촌의 주민(住民)일까?

14일 오후, 동자동에 방문하여 쪽방촌을 둘러봤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이었지만 쪽방촌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고층 오피스빌딩 숲 사이에 쪽방과 여인숙 그리고 작은 가게들이 모여 있었다. 동자동 쪽방촌 곳곳에는 빨간 깃발이 걸려 있었다. 토지 소유주들의 공공재개발 반대 의사 표현이었다. 골목길마다 빨간 깃발이 펄럭이는 데다가 최근 LH 사태와 보궐선거 영향까지 더해져 ‘진짜 주민’들은 더욱 불안에 떨고 있다.

공공재개발이라고 소유주들의 땅과 건물을 빼앗는 게 아니다. 이윤이 없는 게 아니다. 소유주들이 공공재개발을 반대하고 민간재개발을 주장하는 이유는 개발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이미 살고 있는 거주민(居住民)의 삶은 안중에도 없다. 쪽방의 이윤만으로는 모자라서, 공공재개발 이윤만으로는 모자라서, 호시탐탐 민간 재개발을 욕심내고 있다.

ⓒ 이현우

다시 한 번 아기돼지 삼형제 우화를 떠올려본다. 우리 사회에 늑대들이 늘어나고 있다. 늑대가 되길 희망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2016년 JTBC 탐사플러스에 따르면 고등학생들은 가장 선망하는 직업 2위로 ‘건물주와 임대업자'(16.1%)가 꼽혔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혈세가 빈곤한 이들을 위해 복지비로 사용된다고 하지만 결국 누구의 배를 불리고 있는가. 누가 게으른가. 아니, 이렇게 묻자. 누가 여전히 타인을 쪽방에, 고시원에 가두고 싶어 하는가.

우화는 ‘자본주의적 근면’이라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남긴다. 첫째와 둘째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다소 빈곤한 재료로 나름의 집을 지어 살았다. (…)

아기 돼지 삼 형제에서 나쁜 것은 누구인가? 게으르고 불운한 첫째, 둘째 돼지인가? 나뭇가지와 지푸라기라도 쌓아 올린 그 노력을 수포로 만들어버리고 결국 ‘홈리스’로 만들어버리는 늑대인가?

  • 『착취도시, 서울』p. 203-204
ⓒ 이현우

원문: 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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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스타벅스의 새로운 비건 메뉴를 소개합니다 https://ppss.kr/archives/240730 Mon, 03 May 2021 06:53:31 +0000 http://3.36.87.144/?p=240730 비건은 카페 이용에도 제한이 있다. 아메리카노와 같이 순수 커피 음료는 어디서든 즐길 수 있지만 라테류와 요구르트류 음료와 쿠키, 빵과 같은 디저트를 즐기려면 비건 카페를 찾아가야만 한다.

스타벅스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카페다. 나도 비건이 되고서 스타벅스의 행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비건 지향 식단을 하기 전에는 같은 커피인데 스타벅스 커피가 2-3배 비쌀 이유는 뭐냐며 투덜거리기도 했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50,000원 자동 결제를 신청한 Gold 회원이다.

스타벅스는 접근성이 좋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게다가 텀블러를 가져오면 할인을 해주거나 에코별을 적립하는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친환경’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오래전부터 비건과 우유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 그리고 두유를 선호하는 고객을 위해서 우유를 두유로 변경하여 주문이 가능하다.

나의 스타벅스 최애 음료는 ‘제주 유기농 말차 라테’다. 신세계 정용진 회장이 자주 마시는 음료로 화제를 모은 음료기도 하다. 우유를 두유로 변경하게 되면 바닐라샷이 무료로 추가된다. 평소 달달한 음료를 좋아하는 터라 바닐라샷 3번을 추가하여 마시면 속이 든든하다.

ⓒ 스타벅스코리아

2021년 2월, 스타벅스는 Plant Based Food 4개의 디저트류·식사류를 출시했다. 각각 리얼 감자 베이글, 진한 초콜릿 퍼지 케이크, 스윗 칠리 올리브 치아바타, 멕시칸 라이스 브리또다. 이중 베이글을 제외하고 전부 먹어보았다.

 

1. 진한 초콜릿 퍼지 케이크(★★★☆☆)

ⓒ 이현우

퍼지 케이크는 약간 텁텁함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우유나 버터 등이 함유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부드러운 맛이 덜한 편. 하지만 비건 디저트라고 전부 그런 건 아니다. 보통 비건 카페의 초콜릿 케이크에 비교해도 품질이 조금 떨어진다. 개인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메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건을 위한 초콜릿 케이크를 프랜차이즈 카페 최초로 출시해주었다는 점에서 박수를 마구 쳐주고 싶다.

혹시 초콜릿 케이크가 왜 비건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시중에 판매하는 초콜릿 케이크는 대부분 초콜릿 파우더 자체에 우유가 함유되어 있다. 식품의 세계를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먹는 음식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동물성 식품이 함유되어 있다.

 

2. 스윗 칠리 올리브 치아바타(★★★★☆)

스윗 칠리 올리브 치아바타는 가격이 좀 비싸긴 하지만 맛있다. 부드러운 질감의 치아바타가 풍부한 야채와 소스에 잘 어우러진다. 소스는 일명 ‘마법의 소스’인 몬스위트칠리소스다. 대사량이 많은 이들이 한 끼 대용으로 먹기에는 조금 부족한 양이지만, 다이어트를 하거나 아침 대용으로 먹기에는 적절해 보인다. 애초에 반으로 잘려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둘이서 먹기도 간편하다.

 

3. 멕시칸 라이스 브리또(★★★★★)

멕시칸 라이스 브리또는 5,900원이다. 우리쌀볶음밥과 전분두부, 미트프리패티 등이 함유되어 있다. 전부 비건이다. 쫄깃쫄깃한 브리또와 약간 매콤한 소스와 볶음밥이 잘 어우러진다. 치아바타보다 양은 적은데 매운맛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포만감이 느껴진다.

이 외에도 스타벅스 메뉴 중에서는 블루베리 베이글·감자 베이글이 비건이고, 견과류와 고구마말랭이도 비건이다. 스타벅스 외에도 우유를 두유로 변경하여 주문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몇몇 있다. 다만 같은 프랜차이즈여도 두유 변경 옵션이 제공되지 않는 프랜차이즈가 있다. 매장의 위치, 상황과 관계없이 두유 변경 옵션이 가능한 카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원문: 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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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 https://ppss.kr/archives/237877 Fri, 26 Mar 2021 02:30:27 +0000 http://3.36.87.144/?p=237877 한국은 주택이 부족한 나라가 아니다. 2002년을 기점으로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어섰고, 2014년에는 118.1%에 이르렀다. 2015년부터는 ‘新주택보급률’이라는 통계를 새롭게 반영했는데 주택 수에 다가구 구분거처를 반영하고 가구 수에 1인 가구를 포함시켰다. 그럼에도 2015년 102.3%, 2016년 102.6%, 2017년 103.3%, 2018년 104.2%, 2019년 104.8%로 주택보급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가구 수의 변화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집이 멸실되는 것보다 새로 지어지는 주택의 수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이 부족하기 때문에 집을 더 지어야 한다는 말은 온당치 않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집이 없는 걸까. 매일 혹은 매달 잠자리를 옮겨 다니는 사람이 넘쳐나는 걸까. 2년마다 전세나 월세 집을 찾아다니는 나 같은 사람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비닐하우스와 거리에서 살고 죽는 사람들

『집은 인권이다』는 2010년에 출간된 책이고, 소개된 이야기들은 이전의 이야기들이다. 철거민, 홈리스, 장애인, 이주노동자, 청소년, 비혼 여성, 성소수자가 살고 있는 집 그리고 생각하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집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집을 구하는 과정과 살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비닐하우스에 사는 ‘승짱’의 이야기가 있었다. 글을 읽으며 ’11년 전에는 비닐하우스에 사는 사람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야 마땅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도 비닐하우스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11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헹 씨는 비닐하우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어쩌면 사회적으로 살해되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후 경기도는 도내 이주노동자 주거환경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이주노동자의 49%는 비거주지역 숙소에 살며 38%는 비닐하우스 내 숙소에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상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이주 노동자 문제들이 현재 진행형이 아니라 과거형으로 바뀔 날을 고대한다.

  • 247p

 

주거권은 당신과 나의 문제다

나는 결혼 3년 차 신혼부부다. 나라에서 공인한 부부가 된 덕에 우리는 감히 만질 수 없는 돈을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을 수 있었고 이에 대한 이자를 내면서 방 하나, 거실 하나, 화장실 하나가 딸린 집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결혼 전에는 달랐다. 결혼하기 직전에는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26만 원, 관리비 별도인 집에서 살았다. 4.5평 반지하였다. 마음만 먹으면 옆방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소음에 취약했고 창문을 열면 바깥에서 담배 냄새가 흘러들어오는 집이었다. 상상력이 샘솟는 집이었다. 불이 나면 어떻게 탈출해야 할지, 홍수가 나면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상상하게 만드는 집이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 2014년 대학생 때는 발만 뻗으면 꽉 차는 집에 살았다.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28만 원이었다. 그곳에는 변기 하나 간신히 설치된 너비의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은 문이 없었다. 커튼이 문을 대신했고 방과 현관 그리고 화장실은 아슬아슬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고등학생 때는 천정이 다 뚫리고 높은 파티션으로 각각의 방이 구분된 기숙사에서 살았다. 강당을 개조한 것 같은 기숙사였다. 옆방 코 고는 소리는 옆방 담벼락을 넘어 우리 방으로 넘어왔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잠깐 고시원 생활도 했다. 발 뻗으면 닿는 크기의 방이었고 손바닥 두 개로 가리면 충분히 가려지는 창문이 하나 있는 고시원이었다. 내가 살았던 집들은 사실 집이 아니라 방이었다. 나는 방에 살았다. 가난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집에서 살고 있다. 가끔 층간 소음으로 괴롭기도 하지만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2년의 시간이 흐른 뒤 내가 이곳에 머무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 3에 따르면 내가 거주하기 원한다 하더라도 집주인이 거주하겠다고 퇴거를 요구하면 다른 집을 구해야 한다.

전세 보증금이나 월세를 증액하는 경우에도 이사를 고려하게 된다. 주택임대차보호법 7조 2항에 따르면 5% 상한선이 정해져 있지만 전세금을 올린다면 보증금과 대출금리 부담에 따라 우리 부부는 또 다른 집을 구해야 한다. 더군다나 우리의 재정적 상태가 지금보다 열악해진다면 집주인이 허락한다 해도 우리는 이 집에 더 이상 남아있을 수 없다. 관리비와 대출 금리를 갚아나갈 여력이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정착했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서울을 떠도는 방랑자 신세다.

신혼부부 특혜도 7년이란 기간으로 정해져 있다. 7년이 지나면 신혼부부 특혜도 누릴 수 없다. 만약 신혼부부 특혜가 사라지는 때에 우리 부부 명의로 된 집문서 한 장이 없다면 우리는 또 어디론가 떠나야만 한다. 우리는 어디로 밀려나는 걸까. 온갖 상상을 펼치게 된다. 결국엔 우리가 가진 돈이 우리가 살 지역과 공간을 결정한다.

‘내 집 마련’이 대한민국 국민의 꿈이 된 것은 엄밀히 말하면 집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 때문이 아니다. 세 들어 사는 삶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만약 ‘전월세살이’가 불안정하지 않다면 모두가 집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1가구 1주택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든지 아니면 세 들어 살더라도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주거권은 인권이다

인간 삶의 3대 요소를 의식주를 꼽는다. 그야말로 기본 중 기본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살 만한 집에 살 권리가 있다.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많은 인권 문헌들은 주거권을 빼놓지 않고 다룬다.

주거권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국제법적 해석은 1991년 발표된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일반 논평4-적절한 주거의 권리’다. 이에 따르면 주거권은 물리적인 주거만이 아니라 안전하고, 평화롭고, 존엄하게 살 권리를 말한다.

  • 109p

사실 주거권이라는 용어가 낯설기 때문에 주거권이 무엇인지 들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집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 삶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주거권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14조 모든 국민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16조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 헌법

하지만 법의 가장 기초가 되는 헌법에는 주거권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주거에 관한 헌법 조항이 있지만 ‘주거권’에 대한 내용은 없다. 즉 국가가 사는 공간을 제공하거나 보장할 책임은 없다.

주거권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다른 권리와도 직결되는 권리다.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에 따르면 홈리스행동은 지난 5월 ‘노숙인 등’ 102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 실태에 관한 설문을 진행했다. 설문조사 응답자 중 재난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은 사람은 무려 77.5%에 달했으며, 신청하지 않은 이유로는 주소지가 멀어서(27%), 신청 방법을 몰라서(26%), 거주불명 등록자라서(23%) 순으로 다양했다. 50% 이상이 집과 관련된 이유였다.

이외에도 주소가 불분명한 홈리스 같은 경우에는 국민으로서의 권리,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국민’건강보험 혜택도 제공받지 못한다. 주민등록제와 주거권 그리고 기타 다른 국민으로서의 권리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

대한민국에서 집은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2019년 기준 전체 주택 소유자는 1434만 명이고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한 다주택자들은 228만 명이다. 전체 주택 소유자 1434만 명 가운데 무려 16%에 달하는 수치다. 다섯 채 이상 가진 사람도 11만 8천 명이다. 왜 거주하지도 않는 집을 다섯 채나 가지려고 하겠는가. 경제 문외한도 이에 대한 답은 안다. 많은 이들이 집에서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집을 사고 있다. 살기 위한 집이 아니라 부를 쌓게 해 줄 집을 사기를 희망하고 있다.

서두에 썼지만 집이 부족한 시대가 아니다. 집을 더 짓는 게 문제의 해결 방안이 아니다. 즉 공급의 문제가 아니라 분배의 문제다. 현실적인 문제 해결 방안으로 집을 더 짓는다면 그 집은 반드시 집이 없는 자에게 돌아가야 한다.

다시 밝히지만 『집은 인권이다』는 2010년 책이다. 10년도 더 된 글이 왜 오늘날의 일처럼 생생한 걸까.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

원문: 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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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척석사’가 되고 싶은 당신에게 https://ppss.kr/archives/236719 Tue, 16 Mar 2021 06:35:41 +0000 http://3.36.87.144/?p=236719 ※ 오마이뉴스에도 발행된 글입니다.


출처: YouTube/Neuro Transmissions

서른이 넘어 석사 과정 대학원 신입생이 되었다. 배움에 늦음은 없다지만 주변 또래 친구들이 박사 과정을 밟았기에 신경이 아예 쓰이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1년 전부터 아내가 대학원 입학을 계속 권유하긴 했지만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은 없었다. 명석한 편도 아니고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대학원생이 되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것도 아니고 갑자기 명석해진 것도 않았는데 말이다.

우연찮게 취미로 글쓰기를 하면서 학문적인 호기심이 커졌고 의미 있는 논문을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대학원에 관심이 생겼다. 대학원 접수를 앞두고 주변 대학원생 친구들에게 대학원 생활을 묻기도 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와 카페를 기웃기웃 거리며 정보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회사의 형태와 분위기가 가지각색이듯 대학원의 형태와 분위기도 다양했다. 고심 끝에 대학원과 전공을 결정했고 대학원에 지원해보기로 결심했다.

1년 전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던 교수님이 있었다. 저서를 읽고 칼럼을 꾸준히 챙겨봤다. 존경심이 절로 들었다. 다른 학교도 알아봤지만 내가 지향하는 바대로 연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해당 교수님이 있는 학교에만 지원하기로 했다. 면접과 연구실 컨택 과정을 통해 원하는 교수님 연구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합격 통보와 연구실이 결정되고서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이라는 책을 읽었다. 아직 학기가 시작된 건 아니어서 이 책을 집어 든 게 늦은 시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대학원에 지원하기 전에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유용한 정보와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다.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은 대학원생이었던 3명의 저자가 전반적인 대학원 생활에 대해 풀어 써놓은 책이다. 이 중 권창현 저자는 교수다. 덕분에 교수 입장에서 바라본 대학원생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연구한다는 것은 인류 지식의 경계를 조금, 아주 조금 더 확장한다는 것이다.

 

대학원생은 공부하는 사람인가요? 일하는 사람인가요?

대학원생은 연구자다. 대학원생은 대학원에 소속되어 있기도 하지만 대학원 내 교수님의 연구실에 소속되어 있기도 하다. 연구실은 연구하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대학원생은 대학원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이기도 하지만 연구실에 속한 연구원, 연구자다.

따라서 연구 방향과 주제가 설정된다면 연구실과 지도교수 고민은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다. 물론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연구실과 지도교수를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교수님이 ‘합격’ 통보를 해줘야 한다. 솔직한 마음으로 ‘내 돈 주고 대학원에 입학하는데 뭐 이리 들어가기 어려운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책에는 입학 전 연구실과 지도 교수 결정에 관한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학교의 이름보다 연구실과 지도교수가 중요하고 입학 전에는 반드시 연구실을 컨택하고 지도교수를 만나볼 것을 권했다.

물론 대학원 입학의 목적이 ‘연구’가 아니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력서 한 줄을 늘리기 위함이라면 학교 이름이 중요할 테고 인적 네트워크를 확장하기 위함이라면 아는 교수님과 지인들이 있는 학교에 입학하는 게 건설적인 선택이다.

대학원은 학부와는 다르게 ‘지도교수’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지도교수의 연구 주제와 방향이 곧 연구실의 주제와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도교수는 대학원 내에서 ‘절대권력’으로 불린다.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에는 좋은 지도 교수를 선택하는 법이 나온다. 교수의 연구 경력과 성과 그리고 인품들에 따라 유머러스하게 항목을 나누었다.

1위 – 떠오르는 별

2위 – 통제광, 과학 오타쿠

4위 – 반쯤 신

5위 – 달변가

6위 – 노예 주인, 구멍가게 주인, 느긋한 교수

9위 – 사이코

  • 61–65쪽

사실 지도교수를 잘 선택하려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하다. 물론 9위 사이코와는 그 누구도 맞지 않을 테니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의 교수가 있는 법이다. 내가 조급한 사람이라면 느릿한 교수와는 맞지 않을 테고 통제당하는 걸 싫어한다면 꼼꼼하게 챙겨주고 통제하는 교수와는 맞지 않을 테다. 나는 주로 개인적인 연구를 확장하고 심화하고 싶은데 연구실 교수는 프로젝트를 계속 따와서 연구실을 바쁘게 만든다면 이 또한 맞지 않을 테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끝내면 지도교수를 선택하는 과정도 수월해지리라 생각한다.

연구실 선택도 마찬가지다. 질서가 잘 잡혀있고 체계적인 연구실은 능동적인 연구 활동의 폭이 줄어든다. 반면 개인의 시간을 자유롭게 보장해주는 연구실은 능동적인 연구 생활이 가능하겠지만 그만큼 길을 헤맬 가능성도 매우 높다. 삽질할 가능성이 매우 높단 뜻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삽질이 비효율적인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물도 많이 파 본 사람이 어디가 물이 나올만한 곳인지 잘 알기 때문에 삽질은 피와 살이 되리라 믿는다.

나는 대학원 지원 전부터 프로젝트에 대한 반감이 있었는데 막상 여러 이야기를 듣다 보니 프로젝트를 통해 석사 학위 논문을 발전시키는 사례가 꽤 많다고 한다. 좋은 기회의 프로젝트가 생기면 고민해봐야겠다.

석사 학위는 교수님이 떠먹여 주다시피 하고 박사 학위는 스스로 개척하는 것과 같다고 흔히들 말한다. 따라서 이 점을 감안하고 지도교수와 연구실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물론 정답은 없다. 길이야 그냥 걸어가면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는 법이니까.

 

자유와 방종의 차이는 대학원생의 자발성과 책임감이 결정짓는다

프로젝트가 바삐 돌아가는 연구실에서 9to6는 필수이고 야근이 기본일 수도 있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따로 없는 연구실은 시간이 남아돈다. 종일 딴짓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물론 이에 따른 결과 또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무한한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타락의 지름길이 되기도 하며 누군가에게는 창조적인 학문 활동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책에서도 대학원생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는 ‘자발성’과 ‘책임감’이라고 강조한다. 자기 연구를 자발적으로 수행하고 인간관계와 교수님과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자기 성향에 따라 지도교수와 연구실을 잘 선택하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나는 양질의 논문을 양껏 쓰기 위해 대학원에 입학하기로 했다.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읽으며 주로 논문을 쓰는 노하우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며 꼼꼼하게 메모했다. 이 책이 논문을 쓰는 법에 대한 책은 아니지만 논문에 대해 1도 모르는 나 같은 초짜에게는 매우 귀한 자료를 담은 책이었다.

논문 쓰기에 대해 많은 자료가 있었지만 세 가지만 요약해본다.

첫째, 첫 번째 논문은 최대한 빨리 써라.

1단계: 가설 세우기, 실험하기, 데이터 정리

2단계: 논문 쓰기, 그림 그리기, 영어 첨삭, 논문 투고

3단계: 수정하기, 추가 실험하기, 재투고하기

  • 189쪽

논문을 쓰고 투고하는 사이클을 최대한 빨리 경험하는 게 논문을 쓰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이 첫 번째 논문을 최대한 빨리 쓰기 위해 입학하지도 않은 현재, 논문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 지금 넘치는 의욕 때문에 예상보다 일찍 번아웃을 경험할지도 모르지만 지도교수님께 이런 상황을 말씀드렸고 조언을 구했다. 일주일간 고민 끝에 목차와 선행연구 목록을 정리한 A4용지 두 장을 들고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교수님은 연구의 방향 그리고 논문에 대한 조언을 마구 쏟아주셨다. 교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논문 쓰기가 한 발짝 진보한 건 아니었지만 어떻게 연구 주제를 잡을지에 대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안 그래도 활활 타오르는 의욕에 교수님은 기름을 부어주셨다. 논문이 언제 완성될지 모르겠지만 학기 전을 활용해서 개인 연구를 최대한 진전시켜볼 생각이다.

둘째, 아이디어를 남에게 이야기하라.

결국 아이디어를 말하고 안 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 344쪽

단순히 아이디어를 가진 것과 아이디어를 ‘논문화’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논문과 아이디어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을 스터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때론 함께 논문을 써도 되고 따로 논문을 쓰더라도 서로에게 피드백을 주면 윈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논문의 구조를 파악하라.

나는 이런 문제를 풀 거야(abstract)

사실 이 문제는 이런 동기에서 연구가 시작된 건데(introduction)

관련해서 이런저런 접근들이 있었지 (related works)

난 이런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보려고 하는데(method)

정말 이게 효과적인지 실험도 해봤어(experiment)

실험 결과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지(discussion)

마지막으로 너를 위해 요약해줄게(conclusion)

  • 68쪽

때로 논문은 하나의 단행본으로 나와도 부족할 양이 아니기도 하다. 내용은 학문적 가치를 지녀야 하고 논리성을 띠어야 한다. 양만 채워서도, 질만 채워서도 안 된다.

논문에 대해 막막하던 차에 이 책을 펼치고서 논문의 구조를 맛보기라도 할 수 있었다. ‘어떤 동기로 연구를 시작했는지, 어떤 연구를 할 건지, 어떤 연구 방식으로 연구할 건지, 결론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쉽게 이야기해준다. 마침 교수님과 미팅 때 논문에 관한 책을 읽어볼 것을 권유하셔서 논문에 대해 공부하면서 관심 있는 연구 논문들을 읽어볼 생각이다.

대학원 입학 결정 전부터 연구실과 지도교수가 결정된 지금까지도 막막함의 연속이다. 앞으로 대학원 생활이 이런 막막함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통해 온통 암흑으로 가득 찬 대학원 생활에 일부분 빛이 비치었다.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은 아무것도 예상이 되지 않고 막막한 대학원생에게 도움이 될 책이다.

책을 읽는다고 모든 궁금증이 해결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 책이 대학원생 라이프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혹시 대학원에 지원할 예정이거나 이제 막 대학원에 입학했다면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일독을 권한다.

원문: 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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