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 https://ppss.kr 필자와 독자의 경계가 없는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Fri, 06 Jan 2023 10:31:05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5.8.10 https://ppss.kr/wp-content/uploads/2015/07/ppss-100x100.png ㅍㅍㅅㅅ https://ppss.kr 32 32 ‘될놈될’ 회사의 비밀 https://ppss.kr/archives/236744 Thu, 05 Aug 2021 07:36:12 +0000 http://3.36.87.144/?p=236744 ‘유키즈 온 더 블럭’에서 드라마 작가 김은희 씨가 했던 이야기가 있어요.

처음 드라마 〈싸인〉이라는 장르물을 하려고 할 때 다들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했어요. 누가 밤 10시에 배 가르는 거 보겠냐고. […] (성공한 뒤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내가 하자 그랬잖아!’ 그랬죠. (웃음)

출처: tvN D ENT 유튜브

항상 그렇지만 새로운 길은 불신과 걱정을 동반하고 성공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법이죠. 흔히 홈쇼핑에서 성공하는 회사, 라이브 커머스에서 성공하는 회사들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오늘은 그런 소위 ‘될놈될 회사’의 비밀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쇼호스트로 일하면서 인상 깊었던 세 회사가 있습니다. 모두 획기적인 아이디어 상품을 만드는 회사죠. 홈쇼핑을 발판으로 코스피 상장까지 이른 성장의 아이콘과도 같은 회사들인데, 상품 또한 워낙 훌륭하다 보니 처음 나왔을 때부터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한 단계 더 큰 성장해야 할 시점에 특히 눈에 띈 회사가 그중 A사.

A사는 육식 위주의 식습관이 문제라는 인식이 만연할 때 채소와 과일을 좀 더 맛있고 다양하게 먹을 수 있도록 개발한 제품을 주력으로 판매하는 회사였습니다. 세련된 디자인과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쓴 덕에 일찌감치 고급스러운 제품이라는 이미지로 주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도 마찬가지지만) 어릴 때 어머니가 녹즙기를 구입해서 몇 번 갈아주다가 어느샌가 서랍 어딘가로 들어갔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죠. 이런 제품들은 부지런히 만들어 먹지 않으면 아무리 비싼 돈을 주고 산 주방용품이어도 무용지물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 제품이 과일주스로 눈길을 끌며 인기몰이를 할 때도 이 인기가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곧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곧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A사는 이미 같은 고민을 먼저 시작했고, 특히 이 고민에 대한 접근을 직원들과 함께 공유하면서 보완했기 때문입니다.

A사는 제품 판매 외에도 이 제품을 활용해서 주스를 만들어주는 카페를 운영했는데, 촬영 및 시장조사차 이 카페에 다녀온 뒤로 ‘잘되는 회사의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단순한 채소, 과일 주스를 넘어 정말 다양한 주스를 개발 중이었습니다. 주스를 시각적으로 접근하는 젊은 세대를 위해 재료의 온도를 다르게 해 재료 층이 분리되는, 마치 플루팅 칵테일 같은 건강 주스를 내기도 하고, 집에서는 먹기 쉽지 않은 신기한 재료를 사용한 메뉴도 있었습니다.

출처: Unsplash

재미있는 점은 일반 손님도 많았지만, A사 직원들이 주스를 마시며 회의하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카페는 단순히 부수익 창출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이 제품이 지속적으로 많은 소비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거대한 연구 공간인 셈이었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얼마나 소비자에게 선택받을지 사전 조사할 수 있는 마케팅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저도 유기농 농산물을 더 잘 팔고 싶어서 채소소믈리에 자격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그 뒤에는 단순히 쇼호스트 석혜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채소소믈리에 석혜림으로 한 번 더 브랜딩되는 것처럼 A회사도 ‘파이토스 개발자’ 과정을 회사 안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서 교육시키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식물이나 농산물이 가지고 있는 영양인 ‘파이토케미컬’ 에서 따온 이름일 듯싶습니다.)

교육을 이수한 사람은 따로 유니폼을 갖춰 입고 바리스타처럼 연구하거나 주스를 만듭니다. 외부에서 인정받는 자격증이 아니더라도 회사 내에 이렇게 자체적인 자격 과정을 만들어서 따로 역할을 만들면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캐릭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니까요.

가장 중요한 비밀은 단지 가르친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우리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공유한다는 점입니다. A사의 제품이 가진 단점 중 하나는 채소와 과일을 짜고 나면 꽤 많은 양의 찌꺼기가 남는다는 점이었는데, 직원들의 연구 끝에 이 찌꺼기를 사용해서 쿠키, 빵을 만드는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사계절에 맞춘 시즌 레시피를 만들어 웹사이트, 책자, SNS를 통해 제안하는 방식 또한 직원들의 주도하에 이뤄졌습니다.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비밀이었구나 싶었습니다. 어차피 제품의 완성도는 출시 시점에서 90% 이상이라고 봅니다. 이런 초기 아이디어가 중요한 상품은 버전 2, 버전 3를 만들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따라서 제품이 더 좋아질 수 없다면 이 제품을 꾸준히 사용할 수 있도록, 구입한 사람들이 ‘괜히 샀네’라고 후회하지 않도록 활용 방법을 계속 고민해서 제안해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런 작업은 사장 한 명의 힘으로는 할 수 없겠죠. 기계적이고 수동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직원들에게는 좋은 답도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회사는 직원들과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직원들에게 주도적인 마인드를 키워주어야 합니다. A사 곳곳에서 회의가 진행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가치와 의미가 공유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출처: Unsplash

〈스타트업〉이라는 드라마가 나올 정도로 스타트업 회사들이 늘었죠. 아이디어만 있다면 누구나 스스로 회사가 되고 사장이 됩니다. 창업에 관심도 많고요. 이렇게 시작한 회사는 투자를 받거나 그 가치를 인정받아서 소위 ‘유니콘’ 이 됩니다. 회사가 커지고 직원도 많아지죠.

아이디어가 중요한 회사들은 사회 환경이나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니즈를 더 많이 고민해야 합니다. 시대를 앞선 제품을 만들거나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이런 과정은 필수입니다. A사는 그 부분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회사 직원들과 생각과 가치를 공유하는 작업에 큰 비중을 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넘어 유럽의 시장을 개척하는 모습에 감탄했어요. 유럽은 전통적으로 유기농 식재료와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굉장히 높은 시장입니다. 그런 유럽의 유치원과 학교에서 채소와 과일에 거부감을 가지는 아이들과 함께 직접 주스를 만들어 먹는 교육을 진행하고 이 과정을 판매의 활로로 삼는 모습이 멋졌습니다.

건강에 대한 고민, 올바른 식습관에 대한 고민은 단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 세계의 공통 문제이며 앞으로 지구 환경이 변화될수록 그 관심은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A사의 이런 방식은 굉장히 효과적인 성공 비밀입니다. 이런 니즈를 파고들면서 동시에 제품 활용이 주는 가치와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한 것입니다. A사는 주방용품 박람회뿐 아니라 아예 건강 관련 해외 박람회에 진출해 제품의 니즈와 가치로 세계 판매의 활로를 찾고자 했고, 성공적으로 유럽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A사 제품의 원리가 엄청나게 새롭고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독보적인 기술력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 제품이 우리나라에서 사랑을 받던 초기에 A사가 직원들과 구축해온 무형의 공감대와 자체적 브랜딩의 시도는 경쟁사에서 쉽게 따라올 수 없는 힘입니다. 제품이 지닌 가치나 회사가 성장해야 하는 이유 공유, 회사와 직원 사이의 연대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봅니다.

원문: 석혜림의 브런치


함께 보면 좋은 글

]]>
만약 김혜자 씨가 쇼호스트였다면? https://ppss.kr/archives/236741 Fri, 19 Mar 2021 06:00:11 +0000 http://3.36.87.144/?p=236741 ‘자극’ 은 과연 좋은 전략일까? 나쁜 전략일까?

홈쇼핑은 자극의 고수다. 있는 특징을 더 극대화해서 정해진 시간 안에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원래 예쁜 연예인이라도 화장품 방송을 할 때는 조명과 메이크업을 활용해서 더 극적으로 아름다워 보여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들은 그 화장품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원래 매콤하고 달짝지근한 떡볶이지만 방송에서는 뭔가 더 음식의 색이 선명해 보이고 위에 올리는 고명부터 담아내는 그릇까지 훨씬 더 먹음직스러워야 한다. 그래야 배가 고프지 않던 소비자들에게도 식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오감을 자극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적자면 오조오억 개다. 홈쇼핑이라는 구조에서 17년간 일하며 그런 방법들을 끊임없이 연구해왔다. 앞으로 기술이 발전해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방송, 촉감을 느낄 수 있는 방송이 된다면 더욱 강렬해질 것이다.

홈쇼핑의 모델들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평소 집에서 혼자 먹을 때 거울을 앞에 놓고 보면 의외로 표정이 참 단조롭다. 머릿속으로는 ‘맛있네’라고 생각하더라도 무표정할 때가 많다. 하지만 홈쇼핑에서는 가족 또는 연인과 같은 콘셉트가 있고 그 콘셉트 안에서 소리나 대사 없이 몇 초 동안에 오직 표정만으로 음식이 얼마나 맛있으며 이 음식으로 인해, 또는 이 상품 덕분에 얼마나 행복한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이 ‘이 상품을 구입해서 가족과 저렇게 먹으면 되겠군’이라는 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짧은 정해진 방송 시간 안에 상품 구입에 드는 비용보다 상품의 활용도나 상품에서 얻는 행복이 더 크다는 판단을 하게 만들어야 소비로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홈쇼핑 속 인물들은 실제보다 더 극대화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많은 양의 음식을 게눈 감추듯 빠르게 먹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보이게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건 오히려 판매 후 반품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상품의 전환율(순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쌀 방송을 하는데 돌솥에다 하느냐, 일반 밥솥에다 하느냐를 선택해서 좀 더 고향의 밥맛을 연상시킨다거나, 뚜껑을 열었을 때 약하게 올라오는 수증기를 더 극대화하는 건 가능하다. 물기가 코팅되면서 윤기가 돌기도 한다.

출처: The Spruce Eats

조립형 가구가 좀 더 쉽게 조립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쇼핑호스트는 수없이 연습해서 방송에서 능숙하게 시연하기도 한다. 이 조립은 누구나 간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강렬하게 전달하고 싶기 때문이다.

즉, 가장 강렬한 한방을 준비하는 쇼호스트는 마치 최고의 연주를 준비하는 피아니스트이다. 최고의 연주를 보여주기 위해 피아니스트는 얼마나 긴 시간을 준비하는가. 그리고 그 최고의 연주가 언제나 마음에 쏙 들게 펼쳐지는 건 아니지만 그 누구도 단 한 번 보여준 피아니스트의 최고의 연주를 가짜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가장 고객에게 진하게 다가갈 원초적 자극을 위해 쇼호스트는 갖은 방법으로 연구와 연습을 한다. 사실 홈쇼핑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잘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 더 예쁘게 보이고 싶은 욕구가 있다. 소중한 사람에게 대접하는 음식이 더 맛있어 보이길 원한다. 심지어 잘 모르는 타인에게도 더 멋지게 보이길 원한다. 그러니 홈쇼핑이라는 비즈니스 공간에서 벌어지는 ‘∽처럼 보이기’ 전략은 비즈니스의 성공을 위해서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그래서 업체는 점점 자신들의 상품이 더 멋져 보이는 방법을 알게 된다. 쇼핑호스트는 점점 이 상품이 돋보이는 시연이나 멘트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상품과 함께 자신이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이는가에 익숙해진다. 아름다워 ‘보이고’, 맛있어 ‘보이고’, 화려해 ‘보이는’ 비즈니스 메이크업 기술에 능해진다.

초보 피디는 선배 피디가 방송을 준비하고 연출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극대화하고 더 임팩트 강한 연출 방법을 배우게 된다. 홈쇼핑에 처음 온 모델은 옆의 노련한 모델을 따라 하면서 배운다. 흔히 사람들이 느끼는 홈쇼핑 스타일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도 이런 점에 꽤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 방법들이 매출을 올리기에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국민엄마 김혜자 선생님을 만나 함께 방송하면서 진짜 고수에게는 의외의 한 수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국민엄마 김혜자 배우와 안창살 구이, 육수팩 제품을 NS홈쇼핑 론칭 기획 단계부터 꽤 오래 전담할 기회가 있었다.

이제 홈쇼핑에서 연예인 브랜드를 내 건 상품은 너무 흔하다. 직접 제조에 관여하는 연예인부터 브랜드 모델만 하는 연예인, 자신이 하는 음식점의 메뉴를 홈쇼핑 상품으로 제품화한 연예인까지 다양하다. 그만큼 소비자들로 하여금 짧은 시간에 상품을 인지시키고 호감으로 끌어내는 데 수월한 마케팅이 연예인 마케팅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동안 연예인 전담 상품들을 수없이 진행하면서 효과를 극대화하고 제품과 연예인의 호감 이미지를 연결해 판매에 도움이 되게 하는 자극적인 기술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았다. 그리고 그런 자극의 기술을 알려주면 대다수 연예인은 무릎을 치며 수긍했다.

그런데 김혜자 안창살구이 첫 방송을 준비하면서 생각지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첫 만남부터 김혜자 선생님이 ‘난 진실만 이야기하겠다’고 강하게 선언했기 때문이다. 즉 ‘실제로 내가 이 제품을 하나씩 자르고 숙성하고 포장해서 파는 게 아닌데 마치 내가 만든 것처럼 팔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홈쇼핑에서 연예인이 나올 때는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연예인이 직접 그 음식을 음식점에서 판매하거나 제조공장이나 기술력 부분에 관여한 경우이다. 두 번째는 브랜드의 모델로 활동하거나 제품의 1차 소비자가 되어 홍보대사처럼 제품력을 자랑해주는 경우이다. 세 번째는 가족 중 누군가가 하는 사업이라 자신의 이미지로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경우다.

출처: KBS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

김혜자 선생님은 사실 마지막 이유였다. 아들이 음식 사업을 시작하면서 어머니로서 나서게 된 것이다. 한평생 연기만 하느라 가족을 많이 못 챙긴 미안함이 있다 보니 아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서 출연을 결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요리 전문가처럼 양념의 황금 배합 비율을 직접 만드는 콘셉트는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제품과 김혜자를 동질화하고 싶지 않고, 제품의 모델이나 홍보대사가 될 자신도 없다고 솔직히 이야기하셨다. 아니, 가능하면 그냥 영원한 배우로만 살고 싶다고 하셨다. 그런데 아들이 부탁을 하니 내가 애 클 때 연기하느라 바빠서 엄마로 해준 것도 없고 미안하니 안 해줄 수도 없어서 나왔다고 솔직히 이야기하셨다. 그래서 콘셉트도 필요 없고 배우이자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정직함만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셨고, 나는 이번 방송만큼은 그동안의 홈쇼핑 방송과 다르게 진짜 김혜자 선생님의 모습을 정직하게 전달하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첫 방송부터 깜짝 놀랄 멘트가 줄줄이 나왔다. 원래 시나리오 없는 홈쇼핑 방송이라 예상은 했지만. 엄마의 입장에서 아들이 만드는 안창살 구이의 품질에 대해 얼마나 염려하는지, 그래서 제조하는 아들에게도 공장을 방문한 뒤 불안한 마음에 끊임없이 잔소리했다는 이야기, 자식들이 엄마의 이름으로 선보이는 음식이라 오히려 엄마가 직접 만드는 것보다 더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는 솔직한 이야기가 나왔다.

배우라는 세계에서 워킹맘으로 생활하면서 가족들에게 직접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주지 못한 미안함이 있다 보니 홈쇼핑도 내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오게 됐다는 속내까지 이야기하셨다. 요리는 잘 못 하지만 이건 이렇게 편하게 먹어요. 정도?

상품 판매 방송인데도 ‘제품이 이래서 좋다!’가 아니라 정직하고 담백한 그녀의 생각이 주를 이뤘다. 제품을 앞세우고 국민엄마 이미지를 내세워서 음식과 요리에 눈을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품은 조금 뒤로 놓고 선생님과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들로 귀를 집중시키는 방송이었다.

출처: KBS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

기존의 홈쇼핑다운 모습이 아니다 보니 처음 방송을 본 관계자들은 기함했다. 자신 없다는 식의 멘트나 아들이 걱정돼서 나오긴 했는데 사실은 연기만 하는 게 좋다는 이야기, 엄마이다 보니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됐지만 출연 여부를 두고 마지막까지 아들과 싸웠다는 투박하고 세련되지 않은 이야기에 다들 놀랐다. ‘홈쇼핑에서 저런 이야기를 해도 돼?’라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방송 후반이 되면서 홈쇼핑이 아니라 김혜자 선생님의 토크쇼를 보는 것 같다는 소감과 함께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고 오히려 콜이 오르면서 대박이 났다. 전국 엄마들의 대공감이 느껴졌다. 2차 방송도 매진, 3차 방송도 연속 매진을 기록했다. 그 당시 다른 식품 방송의 매출과 비교해서도 엄청난 성공이었다. 그 당시 종편 프로그램에서도 우리의 홈쇼핑 방송을 취재할 만큼. 처음엔 왜 그런 멘트를 하냐고 타박을 주던 관계자들도 연속 매진 행진을 하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그런 이야기를 왜 방송에서 하세요~!!’ 부끄러워하던 아드님까지도 나중엔 엄마의 솔직함에 박수를 보냈다.

나도 예전에 비슷하게 방송에서 가족 이야기를 했지만 이렇게까지 진심을 다 보여주진 못했던 것 같다. 가족을 보여줘도 예쁜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고,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담아내도 잡지 속 가족들처럼 아름다워 보이길 바랐다. 하지만 김혜자 선생님과 함께 방송하면서 진정성은 오히려 화려하지 않기에 빛난다는 것을 배웠다.

특별한, 강렬한, 익숙한 자극이 아닌, 자꾸 손이 가는 린넨 소재의 옷 같은 소탈함. 언제나 곁에 있었던 것 같은 친근함. 그런 감정으로 상품과 나를 보여주면서도 빛나는 김혜자 선생님이 참 멋졌다. 만약 쇼호스트 김혜자가 있었다면 우리는 그의 홈쇼핑 방송을 정말 사랑했을 것이다. 여러분은 여러분만의 채널에서 어떤 전략으로 다가가는가?

원문: 석혜림의 브런치


함께 보면 좋은 글

]]>
엄마이기에 탁월한 비즈니스맨이 될 수 있다 https://ppss.kr/archives/227128 Wed, 17 Feb 2021 09:04:22 +0000 http://3.36.87.144/?p=227128 엄마들은 재밌는 특징이 있다. 눈이 4개고 손이 10개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 어릴 적 아침 풍경을 떠올려 보라. “엄마! 내 교복 어딨지?”라며 내 눈에는 죽어도 보이지 않는 옷을 찾아 헤매면 오른손으로는 내 등짝을 철썩 때리면서도 왼손으로는 순식간에 교복을 찾는 엄마의 모습. 심지어 시간이 촉박해지면 나의 옷과 동생의 준비물을 동시에 찾는 신기술까지 선보이곤 하셨다.

더 놀라운 건 그 과정에서 딱히 엄마에게 무슨 물건을 찾는다고 하소연하지 않았는데도 물건을 찾는 눈빛만으로도 상황을 파악하고 먼저 해결하기도 했다는 거다. 아버지를 비롯한 식구들은 자신들의 로직에 따라 아침 출근이나 등교를 준비하고 엄마는 놀랍게도 그 과정에서 생길 문제를 미리 또는 즉시 해결하여 모두의 동선에 문제가 없도록 조율하곤 했다.

아마 많은 집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마법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는 엄마는 다른 인종, 엄마는 다른 영역의 능력자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원래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 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마치 누군가는 영어를 잘하고 누군가는 수학을 잘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 그 마법의 비밀은 저절로 풀렸다. 누구도 엄마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엄마의 조율 능력은 수업 시간에 배우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훈련되는 후천적 능력으로 개발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필요하다. 바로 ‘애정을 기반으로 한 관찰’이라는 엔진이다.

가족들이 아침의 바쁜 순간에 잘 준비를 하고 나갈 수 있도록, 출근 뒤 또는 등교 후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앞을 내다보면서 조율하는 건 가족에 대한 애정이라는 엔진이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이 능력이 참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

흔히 〈아들과 딸〉 〈사랑이 뭐길래〉 같은 1980년대 드라마를 보면 능력 있는 딸들은 평생 가족들을 위해 희생만 한 엄마에게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를 외쳐 엄마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엄마 역을 맡은 배우는 가족을 위해 손발이 되어 살피고 챙겨준 자기 역할이 참 덧없다고 느낀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몇 회가 지나면 딸은 반성하고 엄마에게 용서도 구하며 결국 화해하지만.

그동안 엄마의 이런 능력은 그저 집에서만 소비되는, 가족들에게만 가치 있는 능력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비즈니스맨의 관점으로 본다면 이 능력은 대단히 섬세하고 멋진 능력이다.

흔히 말하는 빅데이터 시대에 사람들이 쏟아내는 데이터에는 모두 각각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요즘처럼 빅데이터가 이슈가 되면서 사람들이 관심 있는 단어, 주로 검색하는 소스들, 반복되어 쌓이는 데이터 중 이유가 없는 것이 있던가? 단어 하나만 꿰뚫어도 그 단어가 데이터가 되는 과정의 스토리가 있기 마련이고 결국 이런 스토리를 찾아내고 상대의 상황과 입장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상대가 필요한 것이 뭔지 알아채는 관심, 상대의 동선과 상대의 니즈를 반걸음 먼저 읽어내는 능력 또는 배려는 꼭 가족 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비즈니스맨의 영역에서 이 능력을 발휘해보자.

나는 홈쇼핑 방송을 할 때 전문 게스트와 함께 많이 진행한다. 지금까지 함께 한 요리 명인, 쉐프, 연예인, 제품 개발자들. 일부는 능숙하게 생방송에 적응하지만 사실 홈쇼핑에 처음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황스럽다. 심지어는 꽤 오랜 기간 동안 방송 생활을 한 사람도 생방송은 녹화방송과는 좀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수정이나 편집이라는 게 없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 동안 판매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경직된다. 게다가 홈쇼핑은 그 어떤 채널보다도 심의가 까다롭다. 상업성을 띠기 때문에 그렇다. 할 수 있는 말보다 하면 안 되는 말이 더 많다. 그래서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사람이 아니면 처음에는 고생을 한다.

나는 쇼핑호스트 중에서도 유난히 이런 상황의 분들과 함께 생방송을 많이 기획해왔다. 여느 카테고리 아이템보다 식품이 중소 아이템이 많고 철저히 개인의 기술력에 의존해서 상품화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TV를 틀어 홈쇼핑을 보면 공감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능력보다도 이 부분에서 좀 탁월함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연예인 같은 외모를 타고나지는 못했지만 용케도 비즈니스 분야에서 써먹을 능력이 있었나 보다. 특히 엄마가 되면서 더욱 이런 부분의 능력이 나의 일에 큰 도움이 됐다. 가족들을 눈으로 먼저 챙기듯, 함께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가 먼저 보이는 것이다.

아이들은 늘 나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된 채 쏟아진다. 나는 그걸 익숙하게 재배치한다. 같은 방법으로 상품의 장점을 더 나열하고 싶지만 간단명료하게 정리되지 않아서 입에서 맴도는 60세의 요리명인 마음속에 들어가기도 한다.

지방에서 평생 한 가지 채소만 재배하던 어르신이 계셨다. 이분의 눈에는 채소가 내 새끼고 내 자식이다. 그래서 홈쇼핑 심의와는 관계없이 ‘무조건 최고’인 것이다. 자식 사랑에 이유가 없듯이 이분은 왜 내 작물이 좋은지, 왜 먹어야 하는지 마케팅적 접근 없이 그냥 좋고 ‘무조건 먹어봐!’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홈쇼핑 생방송을 할 수 없다. 이 어르신의 마음에서 필요한 것, 그리고 이 어르신이 소비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신 전해주는 것이 바로 쇼핑호스트의 역량이다. 그리고 이 역량은 엄마의 마법과도 닮아있다.

요리를 참 좋아하는 연예인이 자신의 이름을 건 상품을 런칭했다. 소비자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건 음식을 이렇게도 보여주고 싶고 저렇게도 보여주고 싶지만 생방송의 스튜디오는 우리 집, 내 부엌이 아니기에 웬만큼 숙달되지 않으면 어디에 뭐가 있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 어렵다. 게다가 생방송으로 이뤄지는 작업이라 카메라와 호흡을 맞춰서 모든 시연을 해내야 한다. 당연히 어렵고 손이 부족한 느낌을 받게 되고 내 마음 같지 않다.

다시 한번 엄마의 부엌을 떠올려보자. 참 신기하게도 엄마는 뚝딱뚝딱 요리를 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던 우리 집 부엌에서 늘 맛있는 음식이 나왔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객관적으로 맛있다기보다는 주관적으로 우리 식구의 입맛에 맞는 음식, 또는 우리 가족의 건강 상태에 맞춘 음식들이 나왔다.

고등어 넣고 매콤하게 지진 조림을 좋아하던 아버지가 통풍으로 고생하실 때는 통풍에 좋지 않은 등푸른생선 대신 흰살생선을 써서 조림을 만드시곤 했다. 장아찌 하나면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던 내가 임신 후 임신성 당뇨로 고생할 때 어머니는 설탕을 대체하는 천연 감미료를 활용해서 맛과 모양은 똑같지만 혈당을 잡는 나만의 장아찌를 만들어주셨다. 맛있게 먹는 것을 포기하는 식구들이 없도록 요리 프로그램의 쉐프처럼 전문적이고 빠르진 않지만 엄마의 요리는 늘 맞춤형이었다.

나도 엄마를 닮았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남편용 떡볶이를 만들 때 소스를 넣기 전 한 주먹 정도만 옮겨 담아 케찹과 파프리카를 갈아 만든 소스에 아이용 떡볶이를 먼저 만든다. 어렵지 않지만 식구들 모두의 니즈를 만족시킬 수 있고 가족들은 모두 모여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다. 새로운 레시피도 아니고 어디 내놓을 음식도 아니지만 우리 식구들에게 맞춤이 될 수 있는 푸드 소프트웨어들이 우리 집 부엌에는 하나하나 쌓여간다.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가 보자. 자신의 이름을 건 상품을 좀 더 자세히 보여주고 싶은 연예인. 그가 필요한 건 제품의 패키지가 될 수도 있고 제품을 담을 멋진 그릇이 될 수도 있다. 또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해주었던 제품을 활용한 응용요리가 될 수도 있다. 어른들의 입맛에 맞춰 한 그릇 먹고 나면 땀이 시원하게 나는 매운 육개장을 만들었지만 같이 먹고 싶어 하는 아이를 위해 달걀을 풀어서 주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을 수도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그들이 원하는 시연의 진행 상황을 반걸음 앞에서 도와줄 수 있는 능력, 왠지 엄마의 배려와 닮았다. 내가 아는 것을 말하고 나를 빛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주고 그들의 스토리를 빛나게 해주는 것도 쇼핑호스트의 멋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은 데이터를 관찰하고 분석해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내는 것과도 같다. 생방송의 정해진 시간 동안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찾아내다 보면 구매와 이어지고 구매의 결과는 수치가 되어 또 다른 데이터가 된다.

기술이 발전하고 시스템이 진화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과학으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술이라는 단어와 시스템이라는 단어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결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결을 아주 잘 읽는 엄마라는 여성들은 얼마든지 비즈니스맨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월등할지도 모른다.

원문: 석혜림의 브런치


함께 보면 좋은 글

]]>
인맥 관리 말고 ‘인간관계’를 유지하자 https://ppss.kr/archives/227139 Fri, 22 Jan 2021 06:00:38 +0000 http://3.36.87.144/?p=227139 수다는 힘이 세다

회사 생활의 꿀맛 중 하나가 바로 커피타임일 것이다. 어느 회사를 막론하고 잠깐 숨을 돌리면서 갖는 커피타임은 인간관계를 맺기 좋은 시간이다. 자신만의 일에 몰입해 있다가도, 잠깐 고개를 들어 옆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이 커피타임 덕분에 많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주변 여성 동료와 서로의 고충을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아이 문제나 남편 이야기를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커피타임은 회의 시간이 아니다. 그러므로 굳이 이야기를 내가 이끌어갈 필요도 없다. 그저 진심으로 상대를 위하고 생각하는 마음을 갖고 듣다 보면 상대의 필요를 세심하게 챙길 수 있고, 적절한 조언도 해줄 수 있다. 쇼핑호스트 후배 중에도 이런 커피 타임의 수다를 통해 진심으로 깊은 관계를 형성한 사람들이 있다. 지금도 이들은 힘들 때 나에게 ‘커피 한잔해요, 선배님’이라며 찾아온다.

물론 이런 방법이 적극적인 인맥 관리는 아니다. 하지만 꼭 인맥이 넓어야 좋은 걸까? 요즘은 SNS까지 활발해져서 명함 하나만 주고받아도 다음 날이면 SNS 친구가 되어 있다. 일 년에 한 번도 연락하지 않는 연락처가 주소록을 더 많이 차지하는 ‘강제 인맥 시대’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인맥 다이어트’라는 말까지 나왔다. 넓지는 않아도 하나의 관계라도 깊게 제대로 맺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관계만큼은 드립 커피처럼 천천히, 진하게, 아날로그가 좋다.

 

‘인맥 관리’ 할 것인가, ‘인간관계’ 맺을 것인가

내가 인간관계에서 깨달은 게 있다. 흔히 인맥 ‘관리’에 방점을 찍는 사람은 상대가 잘 됐을 때만 연락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만 연락을 한다. 그런데 인간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람은 상대방의 지위고하, 역할의 경중을 막론하고 상대가 좋아서 연락을 한다. 이 연락에는 상대가 잘되길 응원하는 애정의 맥락이 있다.

상사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만 관리하려고 하지 마라. 오히려 그들을 서포트하는 사람들이나 큰 역할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관심을 보이고 대화를 나누면서, 관계 형성에 정성을 들여라. 소중한 관계를 유지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얻는 경우가 많다.

인간관계를 맺을 때 친한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예의를 지키기 위해 거절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거절은 무례한 행동이 아니다. 아닌 걸 아니라고 하지 않으면 온갖 쓸데없는 것들이 내 시간을 점령해버린다. 냉정하게 생각하고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어야 자신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가 거절하면 인간관계가 어색해지겠지?’라고 걱정하지 말자. 그렇게 해서 정리될 관계라면 오래갈 수 없다.

 

인맥 관리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좀 더 자유롭게 생각하자. 예전에는 업무가 끝나고 술 한잔은 해야 인맥이 만들어진다, 진해진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종일 붙어 다니면서 이야기하고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해도, 헤어지면서 ‘나머지 얘기는 이따 전화로 하자구!’ 말하던 관계들만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가족이 생기고 육아를 하게 되면, 퇴근 후에도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제2의 출근을 해야 한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쏟아지는데 예전 같은 방식의 인맥 쌓기는 어렵다. 이대로라면 나 같은 워킹맘은 평생 인맥 관리가 불가능한 걸까? 결혼과 출산과 함께 퇴직하게 되는 진짜 경단녀가 아니더라도, 회사는 다니지만 인맥 관리나 네트워크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잠재적 경단녀가 된다.

이 알고리즘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꼭 같이 술을 마셔야 친분이 쌓이는 건 아니다. 일주일 중 하루 정도는 자기 일이 끝났다고 허겁지겁 퇴근하는 게 아니라, 동료나 선배의 일도 도와주려고 노력하다 보면 친밀감이 생기고 우호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도와줄까?”라고 이야기했을 때 “얼씨구나” 하며 몇 시간의 야근거리를 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만 서로 생각하는 그 마음이 고마운 것이다.

그리고 저녁보다는 점심식사 시간을 활용하자. 나는 특히 다른 업무 파트의 사람들과 식사를 하려고 노력했는데, 어차피 평생을 같은 자리에서 근무하는 게 아니므로 다른 직무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영감을 얻고 흐름을 읽는 것이 도움 되기 때문이다.

인맥 관리를 단순히 나의 성취에 대해 보여주고 현재의 실질적 도움을 주고받는 것에 포인트를 둔다면 이 방식은 도움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나와 너의 관계’가 가지는 건강함, 서로의 내면이 건강해질 수 있도록 힐링을 주고받는 관계에 포인트를 둔다면 나의 방식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삶의 목표가 같은 사람들과 만남을 많이 가지려고 노력했다.

30대 초반에는 자기 분야에서 성장하고 싶은 여자들이 모이는 자리를 적극적으로 찾아가기도 했다. 인맥 만들기 자체에만 얽매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만드는 법’이나 ‘자기계발’, ‘자기 연마’ 등에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아군들과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내 경우에는 ‘YWCA 직장여성 인문리더십스쿨’과 ‘성주재단 글로벌 여성 리더십 프로그램’이 도움이 많이 됐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수업을 듣기에 좋도록 저녁과 주말 수업으로 운영됐고, 비슷한 고민을 가진 여성들이 연대를 이루기 좋도록 운영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지역에 따라 이와 비슷한 모임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상황에 맞춰 선택해보는 것도 좋다.

일단 기준은 단기적인 모임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모임이 좋다. 연대를 형성하고 작게라도 변화를 실천할 수 있다면 더 좋다.

 

칭찬에서 인간관계는 시작된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솔직히 인맥 관리가 뭔지 잘 모르겠다. 명함을 정리하고 기념일에 축하 문자를 보내는 게 전부는 아니지 않을까? 가끔은 나도 인맥 관리를 정말 잘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아서 답답하기도 하다. 그럴 땐 주변에서 따라 하고 싶은 인맥의 롤모델을 참고해본다.

내가 매주 금요일마다 진행하는 <건강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예전에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이지연 아나운서와 함께 기획해서 실버계층의 소비자를 타깃으로 만든 프로그램이다.

건강에 대한 정보, 레시피, 지역 축제나 음식 궁합을 홈쇼핑 방송에서 함께 전해주는 독특한 콘셉트의 방송이다. 이 방송을 계기로 이지연 아나운서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인간관계의 큰 법칙을 이해하게 됐다. 선생님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이 차가 꽤 나는데도 불구하고 ‘홈쇼핑은 내가 잘 모르니 잘 알려달라’고 겸손하게 말씀하셨다. 방송 경력으로는 이미 교육자의 수준이시기 때문에 그런 겸손함 자체가 송구했다.

그 뒤로 300회 가까이 진행하는 동안 이지연 아나운서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 스태프들, 방송 관계자들의 장점을 보면 항상 어떻게든 반드시 칭찬을 하셨다. 아주 작은 칭찬이어도 꼭 하셨다. ‘나이는 어려도 ○○씨에게는 배울만 합니다.’라며 꼭 언급한다거나, 방송이 끝난 후에라도 반드시 ‘○○는 참 좋았다’고 칭찬하는 걸 잊지 않으셨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한번의 대화를 건네더라도 농도를 진하게 하는 방법을 배우게 됐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명합첩 채우는 인맥 관리 네트워크가 아니라 진심으로 서로를 위할 수 있는 ‘찐 인간관계’가 아닐까? 무너지기 쉬운 멘탈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을 만큼 힘이 되는 관계가 아닐까?

원문: 석혜림의 브런치


이 필자의 다른 글 보기

]]>
‘돈이 되는 말’을 하는 법: 가장 중요한 건 ‘경험’이다 https://ppss.kr/archives/227130 Wed, 06 Jan 2021 06:31:44 +0000 http://3.36.87.144/?p=227130 경험이란 무엇일까

좋아하는 사자성어 중 견문각지(見聞覺知)라는 말이 있다. 보고 듣고 깨달아서 안다는 것. 즉 경험을 이야기한다. 나는 경험이 주는 힘이 엄청나다고 믿는 사람이다. 대학생 때 국문학과와 교육학과를 이중으로 전공하면서 대안학교의 선생님이 되려고 했다. 학과 수업은 열심이었지만 2001년도만 해도 대안학교가 많이 생소할 때라 현장의 이야기나 실제 대안학교가 어떤 것인지를 알기가 쉽지 않았다. 실체를 알지 못하니 선택을 한다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다 교생실습을 해야 하는 시기가 되고, 대부분 자신의 모교로 신청을 많이 하던 때다.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안학교인 경남 산청의 간디 대안학교로 전화를 했다. 최초의 대안학교이자 몇 안 되는 우리나라에서 학적으로 인정을 받는 대안학교였기 때문에 혹시 교생을 받는지 문의를 했다.

아직까지 한 번도 교생을 받아 본 적 없다는 교장 선생님을 설득해 이 학교 최초로 교생실습을 하게 됐다. 대부분 정장을 곱게 차려입고 가는 교생실습 첫날과는 달리 운동화를 신고 굽이굽이 산속을 걷고 걸어서 간디학교를 갔던 기억이 선명하다. 아이들, 선생님과 먹고 자고 공부하고 생활하면서 직접 배운 대안학교는 책에서 보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산청간디학교의 교실 건물 모습. / 출처: 오마이뉴스 윤성효

책이나 언론에서 보이던 대안학교의 가치나 의미를 벗어나, 생동하는 아이들이 보여주던 현실적인 고민과 문제들은 내가 직접 대안학교를 가지 않았더라면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만 권의 책을 읽느니 만 리 길을 떠나는 게 낫고 만 리 길을 떠나는 것보다는 무수한 사람을 접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경험을 소중히 여기게 됐다.

 

그렇다면 비즈니스맨에게 경험은 왜 중요할까

이렇게 경험은 선택과 판단을 돕는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단순히 수동적인 직무를 실행할 때도 그 속에는 선택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그러니 능동적이고 스스로 자기 주도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시기에는 얼마나 많은 선택지가 펼쳐질까. 업무도, 인간관계도 책임을 져야 하는 수많은 판단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한 많은 경험이 필요한 것이다.

연애할 때를 생각해보라. 아무것도 모르고 내 감정만 우선이었던, 서툰 첫 사랑보다 서로 투닥투닥 차고 차이면서 눈물 한바탕 쏟고 이별의 아픔을 안 뒤에 만난 성숙했던 연애를. 그리고 그때야 비로소 보이는 좋은 사람, 만들어졌던 내 사람의 선택 기준들. 그래서 더 나은 것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경험하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경험은 우리에게 현명한 선택을 하게 만든다.

사계절에 맞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제철 먹거리를 팔아본 쇼핑호스트는 다음 해가 되었을 때 지금의 계절에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고 어떤 식품을 보여주어야 소비자들의 지갑이 열린다는 것을 경험치로 안다. 한여름 배추 값은 주춤하지만, 장마가 지나가고 나면 배추 값이 상승할 것이라는 걸 해마다 김치를 판매한 경험으로 알았기에 미리 장만하시라는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계약재배를 해봤거나 매년 김장을 담근 사람, 여름 김치도 먹어보고 겨울 김치도 먹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값이 비싸도 한여름 배추보다는 날씨가 추워진 뒤 고랭지 배추로 담근 게 더 맛있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그래서 이런 경험을 종합해 상품의 가치와 가격의 합리성을 판단하고 매출로 끌어낸다.

 

세일즈 스피치도 경험을 기반으로 강화된다

창업을 하기 전 왜 많은 사람들이 대박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내공을 기르겠는가. 이런 경험을 한다는 건 시장의 소비자 니즈를 직접 파악하고 나의 분야의 앞선 경쟁자가 되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방가전 쿠쿠 밥솥을 자주 방송하던 때 일이다. 공항에서 외국인들이 하나씩 사 들고 갈 정도로 인기템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정작 나는 쿠쿠를 쓰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이 상품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의 경험담이 듣고 싶었다. 아예 쿠쿠 담당자에게 부탁해서 ‘쿠쿠 소비자 모임’에 참여했다. 쇼핑호스트라는 걸 숨기고 소비자들의 모임에 참여하면서 실제 제품을 오래 써온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장단점과 제품을 활용한 다양한 레시피를 배웠다. 쿠쿠로 밥만 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경쟁사 제품과의 차별점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모임은 체험단 혜택도 있어 매년 치열하게 선발하는 과정까지 있었다. 쿠쿠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빅데이터의 산실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소비자 입장, 특히 충성고객에서의 경험은 개발자나 회사 입장에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과 함께 브랜드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기에 훨씬 비즈니스의 힘이 있고 세일즈 스피치의 힘이 생긴다.

 

경험도, 세일즈 스피치도 돈이 된다

여기서 비즈니스의 힘이라는 것은 곧 돈이 된다는 뜻이다. 경험을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비즈니스의 세계이다. 원하는 목표를 위해 그동안 내가 축적해온 경험이 쌓여서 도움이 되고 결정적인 마스터키가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이 성공적인 매출이 될 수도 있고 효과적인 마케팅 홍보가 될 수도 있고 크고 작은 창업이 될 수도 있다. 무엇이든 길잡이가 되어 줄 경험을 열심히 쌓아야 한다.

처음에는 오랜 시간에 걸친 다양한 경험이 각각 서로 연결고리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본인 손에 경험이 있어도 그것이 비즈니스로 돈으로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결정적 계기가 오기까지는 마치 경험은 각각의 구슬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구슬들이 꿰어지면서 나만의 다이아몬드가 되고 비즈니스 파워가 된다.

목동의 유명한 빵집은 다른 빵집에는 없는 독특한 레시피로 만든 식빵으로 유명해졌다. 여기에 멀리서도 보일 만큼 독특한 인테리어도 빵집을 알리는데 한몫했는데 알고 보니 사장님은 젊을 때 미술, 패션 쪽 일을 했고 이때의 감각으로 인테리어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전국 각지의 맛집을 다니며 길러온 미각은 그녀로 하여금 독특한 레시피에 도전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오랜 시간에 걸쳐 돌아온 성공 뒤에는 이렇게 많은 경험이 있었다.

나 역시 지금까지 4,000회 가까이 방송을 하면서 수천 개의 상품을 판매했다. 13번의 계절을 지나면서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며 얻는 경험이 다음 상품의 매출 견인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았다. 캘리포니아 산 호두를 방송하면서 쌓인 노하우로 캘리포니아 산 체리나 오렌지 방송 시 도움을 받기도 했다. 아보카도 원물 방송과 손질이 된 냉동 아보카도 방송을 거치고 아보카도 오일을 판매하니까 그동안 생소했던 아보카도의 마케팅 포인트가 비로소 보이기도 했다.

쇼핑호스트와 별개로 공부해 온 채소 소믈리에 활동을 하면서 유기농 제품을 많이 접하고, 그러다 보니 쇼핑호스트 중에서도 유기농 상품을 많이 방송했다. 새로운 먹거리는 새로운 주방용품과도 연결되고 새로운 건강보조식품의 개발과도 연결된다.

 

책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취업을 마음먹으면서 준비해온 나만의 취업 노트, 홈쇼핑 입사 후 전국 각지의 많은 상품을 만나고 직접 판매한 경험, 쇼핑호스트로서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생방송에서 얻게 된 노하우들, 회사 안팎에서 이뤄진 멘토링의 시간은 각각 떨어져 있는 경험으로 보였다.

책을 집필하면서 그동안의 경험이 하나로 꿰어지고 한 권의 책이 나오는 데 집합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렇게 나온 책은 나를 또 다른 비즈니스의 세계로 이끌었다.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다양한 작업을 하게 했다.

홈쇼핑에서 많이 방송되는 이롬 생식의 경우에도 처음부터 홈쇼핑을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 아니었다. 황성주 박사가 자신을 찾아오는 많은 암 말기 환자들을 접하면서 그들을 위한 식이요법으로 개발된 제품이다. 제대로 씹기 어려운 환자들에게 영양을 골고루 배합하는 방법을 연구하다 보니 일반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제품이 완성되고 이후 홈쇼핑 방송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음식이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경험이 쌓여 새로운 제품이 되기도 한다. 이런 각각의 경험이 이어지고 또 이어져 새로운 상품으로 거듭나고 돈이 되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그리고 이런 아이디어가 세일즈 스피치와 만날 때 엄청난 시너지를 낸다.

원문: 석혜림의 브런치


함께 보면 좋은 글

]]>
회의 공포증, 무대 공포증을 녹이는 공략법 https://ppss.kr/archives/227126 Mon, 21 Dec 2020 05:50:27 +0000 http://3.36.87.144/?p=227126 저는 개그맨 장도연 씨를 참 좋아합니다. 어느 자리에서든 적절한 유머와 주변을 배려하는 멘트가 마음에 들더군요. 그런 센스 만점의 장도연 씨가 사실 대인공포증이 있다고 고백해서 많은 사람이 놀랐죠. 거칠 것 없이 대중을 상대하는 연예인도 가끔 사람 앞에 서는 일이 무서울 수 있답니다.

저도 마찬가지. 쇼핑호스트로 16년을 카메라 앞에 서지만 지금도 새로운 주제로 회의하거나, 새로운 스피치의 영역인 경쟁 PT로 프레젠테이션 업무를 하면 떨릴 때가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회의 공포증과 무대 공포증을 이겨낼 수 있을까 연구하다가 찾아낸 저만의 방법을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1. 칭찬으로 시작하라

어떤 무대이든, 어떤 회의든 시작할 때 분위기를 주도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방송에서도 가장 흐름을 좌우하는 것이 바로 오프닝 멘트입니다. 작은 회의 자리에서나 큰 무대에서 타인과 처음 만나는 자리의 인상을 호감으로 주고자 한다면 ‘칭찬’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칭찬,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양한 각도로 접근해봅니다.

  • 공간에 대한 칭찬
  • 현재 분위기에 대한 칭찬
  • 상대의 선택에 대한 칭찬

진심으로 장점을 찾는 행위만으로도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립니다. 공포증이라는 건 귀찮음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태만하게 아무 준비 운동 없이 경기에 나가면 온몸이 경직되고 사고 위험이 높다는 건 익히 아시죠? 적당한 준비운동이 경기를 뛰는 선수에게 필수이듯 무대도, 회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런 준비운동도 하지 않고 실전에 나가는 것은 공포를 악화하는 일입니다.

부끄럽더라도, 귀찮더라도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칭찬 거리를 적극적으로 찾아볼까요. 첫인사를 위한 장점을 찾는 행위에서부터 긴장은 풀리고 공포증도 누그러들 것입니다.

MBC 예능 ‘라디오스타’의 일화입니다. 녹화 전 출연진의 새 영화 홍보팀에서 커피를 준비해줘서 MC들이 마셨다고 합니다. 다른 출연자나 MC들은 으레 누가 간식으로 준비한 커피겠지 생각하고 아무 의문 없이 마셨지만, MC 중 한 명은 어떤 배우의 무슨 작품을 위해 준비한 건지, 홍보의 중점이 뭔지, 맡은 배역은 뭔지 준비한 팀에게 꼬치꼬치 물어보며 알아봤다고 합니다.

녹화가 시작했을 때 그 MC는 관련 이야기로 오프닝을 열어서 주변 사람들의 집중을 받으면서도 출연진의 근황을 자연스럽게 첫인사로 활용했습니다. 무대 공포증이 있거나 회의 시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면 이렇게 주변을 칭찬하면서 말을 시작해보세요.

 

2. 제스처와 눈빛을 미리 연습하라

무대가 가장 힘들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많은 가수는 ‘관객의 호응이 없을 때’라고 답합니다. 우리가 회의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날 며칠을 준비한 발표 자료의 반응이 냉랭하거나 적극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을 기대했는데 회의 참석자들이 심드렁하면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하얗게 변합니다. 어떻게 이 뒤를 진행해서 상황을 타개해나가야 할지 막막해지면서 무대 공포증, 회의 공포증이 몰려옵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함께 하는 사람들의 집중력을 높이고 참석자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제스처를 사용하라

제스처가 아직 어색하다면 TV나 인터넷에 나오는 전문 강사의 강연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좋습니다. 어떤 식으로 사물을 가리키는지, 자료를 들었다면 어떻게 핸들링하는지, 참석한 사람들을 지칭할 때는 어떻게 가리키는지 보고 따라 하는 거죠.

둘째, 눈빛을 정확히 각각의 개인에게 던져라

허공을 무의미하게 응시하거나 한쪽만 힐끔힐끔 보지 말고 눈빛을 골고루 분배해야 합니다. 자신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쪽이 있다면 그쪽을 향해 좀 더 시선을 주면 쉽겠죠? 그러다 보면 호응이 더 강해집니다. 웬만하면 아래를 너무 오래 쳐다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시선에 자신이 없다면 도수가 없는 안경을 활용하는 것도 팁이지만 제일 좋은 것은 적극적으로 아이컨택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며

저는 쇼호스트인 동시에 전문 경쟁 프레젠터이며, 입찰 PT를 컨설팅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방송 외 발표를 자주 합니다. 스피치도 회의의 형태인가, 발표의 형태인가에 따라 많이 다르기에 언제나 새로운 주제로 IR 피칭을 할 때는 연습을 충분히 하고 작은 무대라도 계속 경험을 쌓으려고 합니다. 결국 하다 보면 긴장감도 줄어듭니다.

공포증이라는 단어에서부터 벌써 땀이 나고 손에 쥐가 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면 생각부터 바꿔보면 어떨까요. 무대에 서는 일도, 회의에 나서는 것도, 중요한 투자를 끌어내기 위한 경쟁 발표를 하는 것도 화살을 맞기 위한 고통스러운 자리가 아니라 결국은 ‘내 사람을 만들고 내 팬을 만드는 자리’라고. 아마 조금은 긴장감을 즐기는 자신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원문: 석혜림의 브런치


함께 보면 좋은 글

]]>
여자들은 왜 비즈니스맨이 되어야 할까 https://ppss.kr/archives/227122 Fri, 11 Dec 2020 05:14:29 +0000 http://3.36.87.144/?p=227122 현실은 여전히 고단하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취업 준비생이나 대학생이 있다면 회사에 입사한 후에 엄청난 꽃길이 펼쳐질 것은 기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특히 여성이라면 더더욱.

지금까지 ‘세상이 이제는 달라지고 있다’고 이야기해놓고 이런 과거 회귀적인 엄포를 놓는 것을 너무하다고 표현하지 말라.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나의 이야기는 유난하지 않다. 내 주변 정말 열심히 달려온 여성 친구들에게, 여성 동료들에게 빈번하게 일어나는 흔한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원하는 회사에 입사하고 남성 동료들과 같은 레이스 선상에서 열심히 뛰게 된다. 나는 25살에 쇼핑호스트로 입사했다. 그때 당시에 동기는 7명이었다. 2005년도 쇼핑호스트 7명을 뽑는데 600명이 넘게 응시자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차부터 시작해서 최종면접까지 몇 단계를 거쳐서 뽑힌 신입사원들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뽑혔다’라는 사실 만으로도 그 기간 반짝거리고 싱그럽다.

매일 아침 청바지가 아닌 출근 의상을 고르고 백수가 되지 않고 회사를 가는 것만으로도 기특한 딸을 위해 차려진 밥상을 ‘받고’ 회사에 와서는 선배와 상사의 눈치가 보이긴 하지만 눈치보다는 빨리 일다운 일을 하고 싶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어깨 너머로 이 일 저 일을 거든다. 중간중간 취직을 축하하는 친구들과 통화도 하지만 딱히 고민스럽고 문제될 일은 없다.

이제 슬슬 소개팅에 나가 연애도 해볼까 하고, 점심은 회사 동료들과 맛있게, 저녁은 종종 회식도 하게 된다. 술에 좀 거나하게 취해서 들어가도 이건 ‘업무의 연장’이니까 가족들 모두 이해해준다. 물론 많이 취하면 안 되겠지만. 은근히 회식은 다음 날 동료들 또는 선배들과 심리적 거리를 줄여주며 돈독함을 느끼게 했다. ‘잘 들어갔어?’ 등의 인사를 하며 말이다. 주말에는 늦잠을 푹 자고 필요한 쇼핑도 하고(왜 그 당시에는 옷은 사도 사도 입을 게 없었을까) 업무에 도움이 될 만한 동호회나 공부도 즐겁게 했다.

가끔 시키지도 않았는데 새벽 출근을 했다. 직업의 특성이었겠지만 홈쇼핑은 새벽 6시부터 생방송이 시작되고 6시에 방송을 하는 사람들은 새벽 4시에 출근을 해서 준비를 한다. 그 당시에는 신입사원들이 업무를 시작하면 새벽 방송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언젠가 하게 될 방송을 미리 준비하고 싶은 마음에 일찍 나와서 생방송 준비를 하는 선배를 따라다니기도 했다.

12년 전 나의 생활을 아주 짧게 한 단락 써보았는데 그때를 되돌아보니 ‘참 여유롭던 시절이구나’ 싶다. 그때는 나만 생각하면 됐고, 나의 성장만 고민하면 됐다. 많지 않은 월급이었지만 저축만 제외하면 나에게 재투자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마음의 자책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세상의 환경은 그때도 하루가 다르게 변했겠지만 회사의 누구도 나에게 그 변화의 주역이 되기까지는 바라지 않았고, 그저 방금 뽑은 이 직원이 자신의 역할을 90% 정도만이라도 잘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기본 업무 인지와 회사 조직의 잔 업무, 보조적 기능만 깔끔하게 처리해도 ‘훌륭하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 방송을 시작하고 직장인 4–5년 차가 되면서 선배도 있지만 후배도 생기고 생방송 업무도 더욱 복잡한 시스템 속에서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해내야 했다. 성장도 하지만 때로는 소모된다는 느낌도 들었다.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했다. 매일 똑같은 회사 생활 속에 결혼은 또 다른 감정도 느끼게 해주고 임신은 새 생명의 놀라움을 안겨주기도 하고 출산은 나를 진짜 어른으로 만들기도 했다. 요즘은 비혼이나 딩크족이 많아지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형성하거나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내 주변의 대다수는 나와 비슷한 라이프 타임라인을 갖는 듯하다.

문제는 조직 안에서 이런 과정을 겪는 동안 여성은 너무 많이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다. 맞벌이가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나는 단순히 회사를 다니는 여성과 남성의 비율을 비교할 것이 아니라 기간 내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성장하는가를 분석해봐야 한다고 본다.

위에서 언급한 각각의 상황들, 흔한 인생의 변화들은 여성으로 하여금 심리적으로 주저앉거나 업무에서 뒤로 물러서게 만든다. 나는 주변에서 임신 출산 기간의 휴직으로 인해 승진에 피해를 보는 경우를 종종 봤다. 수치상으로는 맞다. 임신과 출산을 하는 동안 출근을 하지 못했으므로 같은 기간 출근한 사람에 비해 승진이 미뤄진다는 논리다.

문제는 심경적인 데서 발생한다. 승진이 미뤄진 대리는 동기인 과장의 지시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과장인 후배의 지적을 받기도 한다. 조직을 지탱하는 큰 뼈대는 바로 승진과 직책이다. 이것이 월급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여성은 자연스럽게 뼈대의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고 중심부로 재진입하기에는 더욱 치열한 노력이 필요한 상황에 놓인다.

하지만 예전의 패기로 더 큰 노력을 한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페이스북의 여성 CEO 셰릴 샌드버그가 오랫동안 회자될 테드의 강연을 하기 위해 출장을 떠나야 하는 날에도 그녀의 아이는 엄마의 다리를 붙잡고 ‘엄마 가지 마’라며 울고 떼를 썼다고 고백했다.

한시적 이별인 모닝 이별은 실제로 많은 엄마들이 매일 겪는 일이며, 엄마의 출근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아이가 받아들이기까지 혹시라도 이 과정이 우리 아이에게 분리 불안이라도 느끼게 하지 않을까 염려하며 아침마다 전쟁을 하게 된다. 당연히 누군가 이 과정을 해결해주지 않으면 새벽에 일찍 출근하는 것도 힘들다. 남편, 부모님, 가사도우미 이 셋 중 하나의 충족 없이는 그날의 업무를 위해 새벽 출근을 하거나 야근을 하면서 업무를 좀 더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회사를 온 뒤에도 중간중간 겨울 보일러 동파되듯이 터지는 집안의 대소사, 그리고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기라도 하면 생기게 되는 문제, 이 문제들의 해결 과정 속에 회식이나 나만의 시간이 얼마나 사치인지는 겪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단순히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주체가 되느냐 아니면 뒤로 빠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아주 일상적인 회사의 일마저도 ‘요즘 무슨 일 있어요?’라는 걱정을 들으며 흔들리게 만드는 난관들이 산재해 있다.

출처: Rolling Stone

수전 보이치키 유튜브 CEO는 아이가 다섯인데 모 인터뷰에서 이렇게 격려했다.

일하는 엄마는 정말 너무나 바쁘기 때문에 일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데 익숙해진다. 나는 매일 저녁 6시부터 9시 사이에 아이들과 함께 있기 위해 일의 우선순위를 매기고 재빠르게 처리한다. 그 세 시간 동안 기기를 다 끄고 서로에게 집중한다. 요리도 같이하고 아이들이 전해주는 그 날의 특종을 듣는다. 아홉 시에야 셀폰을 켜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 젊은 워킹맘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육아는 점점 더 편해진다. 미친 듯이 힘든 기간이 평생 가지는 않는다.

문제는 수전 보이치키만큼 아이들과 특종이라도 이야기하려면 최소 육아 6~7년 차에는 접어들어야 한다는 거다. 그전까지 결코 쉽지 않다. 당연한 아이의 역할이지만 아이는 온 힘을 다해서 엄마를 괴롭힌다. 나도 첫째 아이가 6살이 되면서 육아가 일과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다는 논리를 깨달았지만 그 안정기가 오기까지 이미 많은 여성은 엄마의 이름으로 회사에서 뒤로 밀려나거나 무기명이 되거나 엄마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모든 조직이 ‘그러므로 이해해야 한다’를 주장하는 게 아니다. ‘6년만 기다려주시죠’도 아니다. 조직은 원래 그런 거다. 아무리 시스템을 보완하고 나라에서 제도를 만들어 준다고 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은 이익 위주의 선택을 하게 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구조를 본능적으로 찾아간다. 직장인은 수동적으로 이 시스템을 안고 가기 때문에 여성들의 직장 생활은 언제나 ‘계속 다닐 수 있을 것인가’ ‘그만두고 돌아갈 것인가’ 고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비즈니스맨다운 멘탈 체인지로 돌파구를 마련해보자. 조직 내에서 내가 할 수 없는 부분, 역량을 발휘하기 힘든 물리적 조건은 일단 접어두자. 그리고 역발상을 시작하자. 내가 이 미묘한 발상의 전환이 갖는 힘을 깨달은 것은 나의 처지 때문이다.

우리 회사에서 이미 쇼핑호스트가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비즈니스맨으로의 사고 전환을 일찌감치 해냈다. 그러면서도 계속 회사의 동료들과 회사 시스템 속에서 방송을 하기 때문에 완전한 창업의 형태는 아니다. 즉 조직 내 비즈니스맨으로 나의 정체성을 일찍 깨달았다.

그러면서 방송을 위해 찾아오는 개인사업자부터 중소기업, 대기업까지 다양한 비즈니스 현장을 보고 동시에 여전히 조직의 일원으로 여성이 겪는 상황들을 교차점으로 읽어왔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 풀이는 소비자의 니즈와 홈쇼핑의 실적, 시대의 트렌드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뤄졌다. 역시 답은 ‘비즈니스맨이 되어야 한다’였다.

조직에서는 결코 +a로 평가받을 수 없었던 결혼이나 임신 출산 등도 비즈니스맨인 나에게는 또 다른 무기가 되기도 했다. 내가 방송하는 대다수 상품의 소비자가 주부 또는 여성이기 때문에 나는 진심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제2의 조이 망가노가 되어 상품을 머리로 팔지 않고 마음으로 판매하게 됐다. 내가 느끼는 모든 순간의 일들이 다른 아이 엄마의 일상이고 주부 카페에서 자주 올라오는 고민거리이고 방송을 보는 소비자들의 니즈였던 것이다.

앞으로 경제가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입는 것 먹는 것은 줄이겠지만 그 와중에도 절대 줄어들지 않을 분야라고 하는 것이 아이들 시장이다. 출산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저출산 시대에 한 명 낳아서 잘 키우자고 생각한 부모들은 더욱 그 아이를 위해 투자한다. 그렇기 때문에 육아, 교육산업은 더욱 전망이 밝다고 생각한다. 홈쇼핑만 하더라도 최근 몇 년 사이 이와 관련된 상품이 부쩍 많이 방송된다.

자, 과연 이 상품들을 잘 팔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난 자신 있게 ‘엄마’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난 대학교 때 국문학과 교육학을 전공한 중등교육 교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학생 때 배웠던 지식보다 우리 아이와 씨름하면서 얻게 된 지혜가 훨씬 크다.

출산 또한 마찬가지다. 감히 내 성찰의 시기를 출산 전과 후로 나뉜다고 말하는데 나의 정신적 신체적 자신감이 극과 극에 놓이게 되는 시기가 바로 출산 기점이었다. 온몸이 붓고 입덧과 임신성 당뇨, 비타민D 부족, 체중의 변화를 겪으면서 나 스스로가 임상시험을 겪는 것처럼 건강에 대해 많은 것을 고민하게 됐다.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점이 중요한지 여성이 출산 후 죽을 때까지 관리의 포인트는 어떻게 변화되는지 체감하게 된 것이다.

비염과 축농증 때문에 고생하는 식구가 있으니 청정기와 가습기에 관해서 이야기하라고 하면 누구보다 잘 이야기한다. 원리와 제조는 몰라도 니즈와 필요성은 듣기만 해도 비염을 안 겪는 나조차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버티고 해내야 한다.’는 앞 장의 기조는 여전하다. 그런데 나는 무조건 무작정 버티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은 생물체와 같아서 신기하게도 안이한 버팀을 언젠가는 알아챈다. 안이한 버팀만으로는 성공이라는 노선을 탈 수 없다. ‘가만히 있었더니 성공했더라고요’는 ‘눈 떠보니 스타가 됐던데요?’ 같은 먼 이야기다.

우리의 성공 스토리는 ‘비즈니스맨이 되어서 버티고 해냈다’가 되어야 한다. 단점을 장점으로, 어려움을 기회로, 고민의 해결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는 것이 바로 비즈니스맨이다. 여기서 비즈니스맨이 된다는 것은 당장 이직을 하거나 창업을 하는 걸 뜻하는 게 아니다. 자기 자신을 기업으로 생각하고 일한다는 것이다.

편안함과 성장은 절대 공존하지 않는다. 비즈니스맨은 기회가 오면 그냥 잡는다. 속으론 무서워 죽을 것 같으면서도 그 자리에서 수용한다. 그리고 그것과 싸우면서 성장한다. ‘아직 나는 준비가 안 됐어. 더 생각해보고 도전하겠어’ 가 아니라 잘 모르는 분야도 겁먹지 않고 도전하는 비즈니스맨이 되어야 한다.

원문: 석혜림의 브런치


이 필자의 다른 글

]]>
잘되는 아이템, 잘되는 회사가 무조건 가지고 있는 것 https://ppss.kr/archives/227134 Thu, 26 Nov 2020 03:50:11 +0000 http://3.36.87.144/?p=227134 일단 ‘잘된다는 것’이 무엇일까부터 짚어보자. 그동안 성공과 실패 사이의 많은 회사와 아이템을 보면서 한두 번 터지는 대박은 ‘잘된다는 것’의 범주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이 들었다. 오히려 이런 반짝 성공은 ‘잘될 확률이 높아진 것’쯤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진짜 잘된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꾸준하게 목표 이상의 것 달성이라는 게 갖춰져야 한다. 일정 기간 이상의 뚝심 있는 성공을 해낸 회사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탁월한 어법

매 시즌 성공적으로 상품을 판매해온 건강식품 회사가 있었다. 항상 적기에 필요한 상품을 기획해오고 상품의 마무리도 물량 오류 없이 깔끔하게 진행해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이 회사와 몇 년간 방송하면서 중요한 특징을 찾아냈다. 바로 탁월한 어법을 가졌다는 점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남다른 말 센스는 돈과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사장을 비롯해 어떤 직원이 미팅에 참여하든 업무를 지시하거나 보고할 때 간결하게 이야기했다. 자사의 상품에 대한 정리는 항상 미리 페이퍼 형태로 되어 있고, 그 페이퍼를 바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하도록 전 직원이 훈련되어 있었다. 회의를 함께할 때는 오늘 회의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젠다를 서두에 이야기하고, 지난 미팅의 결과를 확인하며, 상대의 성과나 좋은 점을 인정한 뒤,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 질문했다.

너무 궁금해서 한번은 ‘혹시 저희 회사 말고 다른 곳에서 미팅하실 때도 이렇게 하시나요?’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담당자의 답변이 ‘건강식품은 단순 식품보다 좀 더 기능성을 가졌잖아요. 그래서 연구자와 판매자가 하는 일이 워낙 다르다 보니까 항상 정확하게 소통을 해야 해요. 작은 커뮤니케이션 오류만 있어도 식약처의 점검 등 큰 문제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효율적으로 이야기해야 하죠.’였다.

이와 같은 어법은 개인의 업무에도 효율적이지만 전체적인 회사 시스템에도 영향을 끼친다. 서로에게 감정적인 상처를 주지도 않기 때문에 회사의 시스템에도 효율적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군가에게 책임을 미루거나 상대에게 책임소재를 묻는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일의 어느 지점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체크부터 하는 어법이었다. 전쟁터와 같은 쇼핑 시장에서 살아남는 그들의 마르지 않는 무기였다.

 

라떼에 대한 존중

이런 어법과 함께 잘되는 회사의 또 하나의 특징은 선임자에 대한 존경심을 가졌다는 점이다. 이 한 문장에서 벌써 ‘라떼×꼰대’의 향기를 느끼며 코를 막을지도 모르지만. 변하는 것이 당연하고 모든 것이 빨라지는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지 않은가? 누군가는 먼저 이 일을 해왔다는 사실. 앞서 멘토링에 대한 이야기도 했지만, 우리는 늘 먼저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경험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제발 좀 듣자. 잘된 회사 잘된 아이템은 귀 기울임에서 나온다.

회사뿐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과거의 역사, 과거의 건축물이나 문화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노력을 기록하고 기억하지 않으면 그것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말한다. 지금을 이루는 모든 것이 과거 사람들의 열정과 노력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실수를 줄이고 일의 흐름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게도 인생 멘토라 부를 수 있는 선배들이 있다. 나이 마흔인 요즘도 그 선배들을 만나 나의 업무나 육아에 대한 조언을 듣는다. 간혹 내가 눈앞의 이익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선배는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날카로운 조언을 해준다. 연륜 있는 선배의 조언을 통해 다시 한번 자양분을 얻는다.

성장에 있어서 패기와 젊음은 기름진 거름이다. 그래서 늘 성장의 주인공 자리는 미래를 위해 비어 있기 마련이고 미래의 주인공은 언제나 새로운 사람으로 바뀐다. 한 회사에서 16년을 근무하면서 무대의 주인공이 바뀌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봐왔다. 존경하는 선배가 최고의 쇼핑호스트 자리에 앉는 모습도 봤고, 그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는 모습도 봤다. 나 역시도 그 자리에 올라가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고 미숙했던 후배가 성장해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회사가 잘되려면 사업이 길게 성공하려면 순간순간 빛나는 현재의 주역만큼이나 연륜 있고 내공 있는 선임들의 뒷받침도 유의미하다는 것. 이런 선임들의 노력이나 경험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고 고루하고 올드한 것으로 폄하될 때 성공으로 가는 균형은 무너지고 어느새 주변을 돌아보면 어느 한 세대의 사람들만 가득한 회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될 사람

마지막으로 잘되는 회사나 아이템뿐 아니라 ‘잘되는 사람의 히스토리’에 주목하자. 사실 내가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장점 중 하나는 일에 대한 호기심만큼이나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는 것이다. 잘되는 회사나 잘되는 상품을 볼 때도 눈을 반짝이지만 잘되는 사람을 보면 어떤 이유가 있을까 살펴보게 된다. 일하다 보면 정말 똑같은 일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사람도 겪어보면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도 겪어 보면 제각각 다르다. 아마 그게 바로 개성이 아닐까 싶다. 사실 개성이야말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무기이다. 방송인 김지선 씨와 방송하면서 그녀가 가진 개성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아이를 키우면서 몸에 밴 타인에 대한 배려라든지 기본적으로 늘 몸에 배어 있는 유쾌함은 그녀가 왜 성공한 워킹맘인지 알 수 있게 한다.

같은 워킹맘이지만 배우 김나운 씨에게는 깐깐함과 일에 대한 철저함을 배울 수 있었다. 김나운 씨는 때로는 진솔한 독설 속에 책임지는 리더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 내가 깐깐하게 해야 다른 사람이 편하다는 이야기에 무릎을 치기도 했다. 이런 경지의 철저함이 있었기에 배우로서 성공할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인뿐 아니라 비즈니스 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 성공한 업체 대표들에게도 ‘잘된 사람’의 개성을 찾아볼 수 있었다. 2대에 걸쳐 혼합곡을 위해 일해온 사장님의 국내산 곡물에 대한 자부심도 본받을 개성이었고, 평생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고품질의 수입 견과류에 바쳐온 사장님의 글로벌사업에 대한 가치관도 본받을 개성이었다. 이분들의 철학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한 걸음 ‘잘되기’에 다가간 느낌이었다.

모든 사람의 삶을 직접 살아볼 수 없고 모든 비즈니스를 직접 다 경험해볼 수 없다. 대신 이렇게 만나게 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잘된 사람들의 인생을 살펴보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마라. 하나라도 삶의 지혜를 배우고 싶다면 마음과 귀를 열어야 한다. 잘되는 회사와 잘되는 사람은 결코 하늘이 로또처럼 내려주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더라.

운이라고 겸손히 말할 엄청난 노력과 반드시 잘될 수밖에 없는 과거의 경험들이 버틴다. 고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우리도 잘될 사람 잘될 회사 잘될 아이템의 어느 한끝을 이어가는 것이다. 힘내자!

원문: 석혜림의 브런치


함께 보면 좋은 글

]]>
엄마의 희생만으로 ‘완벽한 아이’를 키울 수는 없다 https://ppss.kr/archives/227124 Fri, 06 Nov 2020 04:12:51 +0000 http://3.36.87.144/?p=227124 얼마 전 그런 신문 기사를 봤다. 아이를 키우다가 너무 힘들어서 친정엄마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문화센터 수업을 가야 한다며 도와주지 않는 친정엄마에게 서운함을 느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기사의 말미에는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말로 끝을 맺었지만, 댓글에는 ‘자기 아이는 자기가 키워라’ ‘못 키울 거면 낳지 마라’는 의견이 가득했다.

그러면 이 기사의 주인공인 아이 엄마는 다시는 친정엄마에게 부탁하면 안 되는 걸까? 아무리 힘들어도 본인이 낳은 아이니 감내하는 것만이 답인 걸까?

솔직히 나는 너무 가혹하다고 본다. 아이는 분명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이지만,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육아의 과정이 얼마나 지난한지 잘 알 것이다. 자기 아이니까 자기가 키우라고? 대의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무리 없이 거뜬하게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모두가 ‘완벽한 독박 육아’의 장벽을 넘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를 키우느라 이미 수년 동안 고생한 친정엄마가 다시 손주 보육으로 고생하는 것도 속상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얼마나 많던가.

 

남편이 깨닫게 된 이유

남편은 첫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왜 이 조그마한 아이를 어른 한 명이 보지 못하냐”고 말하던 남자였다. 수학 공식처럼 1:1 보육이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내가 복직할 때까지 굳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저 기사의 댓글 같던 남자였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특히 복직을 준비해야 하는 나로서는 산후조리 기간이 힘들기만 했다. 안 그래도 아이 밤중 수유로 만성피로에 시달리는데, 거기다 예기치 않은 분유 갈이를 시작했다. 분유를 분수처럼 뿜어내며 온갖 고생을 다 하는 아이를 보더니 남편도 ‘우리의 힘만으로는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이 말은 부모님의 도움만을 뜻하지 않는다. 수많은 육아 정보와, 나라에서 제공하는 보육 시스템과, 주변 아이 엄마·아빠들과의 연대 등 모든 것을 포함해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하나의 마을이 필요하다.

예전부터 내려오던 말이다. 그 말처럼 우리는 “육아는 우리끼리 충분해”라 외치던 폐쇄 정책을 내려놓고 개방 정책을 도입했다. 모르는 건 책을 읽고 육아맘 카페에 가입해서 묻고 근처의 친정 부모님과 함께 공동 육아체제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매일 운동 겸 사이클을 타고 우리 집에 오셔서 하루 몇 시간 아이를 돌봐주시게 되었고, 나는 그동안 복직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동네의 가정 어린이집을 활용하게 되었다. 아이가 너무 어린 것도 맞고, 아이는 엄마 품에서 자라는 게 제일 좋은 것도 맞다. 하지만 아이가 가족의 일원이 되는 과정은 엄마가 아닌 모든 가족의 일이다. 그렇다면 가족 모두가 적응할 수 있는 시스템, 아이를 마을이 키워내듯 공동체가 함께 키우는 데 적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는 시스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람들의 지적처럼, 나 하나 복직하자고 친정엄마가 하루종일 독박육아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건 젊은 나도 힘들다.

우리는 몇 주에 걸쳐 동네의 어린이집 리스트를 정리하고 방문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시설도 살피고, 아이가 어린 경우에는 어떻게 보육하시는지 이야기도 들었다. 그중 가장 믿음이 가는 어린이집에 매일 한 시간씩만 아이를 부탁드렸다. 첫째 주에는 1시간, 둘째 주에는 1시간 30분, 셋째 주에는 2시간 이렇게 천천히 늘려나갔다.

결과적으로 아주 현명한 판단이었다. 맡기는 입장의 아이 엄마도 아이와 떨어져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훈련할 수 있었고, 보육해 주시는 어린이집 입장에서도 아이가 적응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준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에서는 아기 침대도 구입하고 방 시설도 변경하면서 아기를 위한 환경을 만들어 주셨다.

 

‘독박육아’를 하는 엄마들이 얻게 되는 짐이란

십여 군데가 넘는 어린이집을 방문하면서 느낀 점은, 아직까지도 우리나라는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에 대해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말도 좀 하고 표현도 할 줄 알고 몸도 자기 뜻대로 가눌 줄 알아야 보육시설에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꽤 긴 시간을 독박육아를 하며 견뎌낸다.

기억할 것이다. 2017년 9월 주말부부를 하던 주부가 우울증으로 인해 아이들을 살해하고 본인도 자살을 기도했던 사건 말이다. 범행 동기로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게 힘들었고, 주말에만 집에 오는 남편도 아이에 대해서 무관심하다고 이야기했다. 이외에도 생후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기가 울음을 그치지 않자 충동적으로 친자식을 살해한다든지, 아이를 안고 8층에서 뛰어내리는 충격적인 사건들도 있었다.

이들에게는 우울증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 우울증은 주변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때 더욱 발전한다. 비극적인 사태로 이어지기 전에 해결되지 못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엄마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우울증을 자각하거나 병원을 찾아가 건전하게 해결하고 도움을 받기보다는 ‘내가 엄마인데 이래도 되나?’라고 자책하거나 ‘엄마라면 누구나 이 정도는 힘들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엄마가 되는 순간 트랜스포머 변신하듯 책임감을 장착하고, 육아는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짊어지려고 한다. 도움을 구하는 엄마는 부족한 엄마고, 자신의 아이 하나 책임지지 못하는 여자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보건소에서 검사한 산후우울증 고위험 판정 산모는 총 5,810명이다. 하지만 정신건강센터 상담까지 이어진 경우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2,623명 뿐이다. 2016년에도 고위험 판정 산모 4,801명 중 51%인 2,494명만 정신건강센터에 상담을 의뢰했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이렇게 산후우울증이 제대로 치료되지 못한 상태로 독박육아의 연결고리로 이어지면서 수많은 안타까운 사례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 불안과 걱정이 엄마의 것으로만 남을 수는 없다

엄마 혼자는 힘들고, 보육 시설에 맡기기는 불안하다. 그래서 1차적으로 생각하는 게 조부모 육아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황혼 육아”할마”할빠’라는 신종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이것도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분명 손주를 보는 기쁨도 크지만, 황혼 육아를 통한 스트레스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육아정책 연구소가 2015년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를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의 주당 평균 양육시간은 42.53시간으로 법정근로시간 40시간보다도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5년 보고서를 보면 조부모가 손주를 돌볼 때 체력적으로 힘들고 (59.4%) 교우관계나 사회 생활을 하지 못하는 어려움 (41%) 이 크다고 이야기했다.

일본에서는 손주를 돌보며 생기는 우울증을 ‘손주블루’라는 신조어로 부른다고 한다. 흔히 손주를 돌본 뒤 조부모들이 부쩍 늙는 것 같다고 토로하는데, 이는 의학적으로도 그럴듯한 말이다. 어린아이를 안고 씻기다 보면 척추후만증(등이 솟고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지는 척추 변형)이 오기도 하고, 노인성 골다공증으로 척추를 압박하게도 된다.

물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도 요즘 뉴스를 보면 완벽한 대안은 될 수 없다. 꽤 큰 비용이 드는 육아도우미 또한 마찬가지다. 완벽한 대안이라는 것은 없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완벽할 수 없다는 걸 그냥 인정해버리자는 거다. 

나는 일하면서 육아를 하는 엄마이다 보니, 아이를 좀 더 밀착해서 돌볼 수 없었다. 내가 청한 모든 도움 중에는 조부모의 희생도 있었고, 어린이집도 있었다. 나의 부모님 또한 아이와 시간을 보냈고, 보육에서 교육의 단계로 넘어갈 때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내가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없듯이, 나의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아이는 자기 또래보다 꽤 일찍 어린이집을 다녀야 했다. 아이 아빠는 점심시간에 유치원 전화를 받고 달려오는 일도 경험해야 했다. 좋은 가사도우미를 만나기 위해 몇 차례나 면접을 보면서 가족이 아닌 누군가도 가족처럼 받아들이는 경험도 했으나, 동네 부녀회나 엄마 카페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 모든 게 내 욕심 때문인가, 싶던 때도 있었다. 나 때문에 아이가 느린 건 아닌가 조바심을 내기도 했다. 아이는 성장하며 스스로 나의 불안을 해소시켜 주었지만, 나의 불안과 걱정은 아이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 다시 시작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불안과 걱정은 엄마의 것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든 벌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아이와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들이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한다. 공동의 문제다. 그리고 이 문제는 잘 해결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하면 또 어떤가. 실패 덕분에 새로운 길이 보일 수도 있다. 엄마가 일하지 않는다고 해서 완벽한 성장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는 엄마의 계획으로 크는 것이 아니기에.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말이지만,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마인드이다. 나도, 아이도, 가족도 힘들 수 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면, 그 실패는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함께 고민하고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떤 경우도 쉽게 희생하지 말라. 누구도.

원문: 석혜림의 브런치

]]>
성공한 여자는 미움을 받는다?: 영화 〈조이〉와 한국의 ‘조이 망가노’들 https://ppss.kr/archives/227120 Thu, 29 Oct 2020 07:53:24 +0000 http://3.36.87.144/?p=227120 〈조이〉는 굉장히 재밌게 본 영화 중 하나다. 제니퍼 로렌스와 브래들리 쿠퍼가 출연한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이다. 실제 주인공의 이름은 ‘조이 망가노’. 미국 롱아일랜드의 평범한 주부인 그녀는 이혼한 부모와 전남편, 할머니와 두 아이까지 떠안고 매일매일 전쟁처럼 살아가는 싱글맘이다.

조이의 엄마는 방안에서 매일 TV만 보고, 조이의 아빠는 바람둥이로 연인과 헤어질 때마다 조이의 집에 얹혀산다. 게다가 조이의 전남편은 무능력해 조이의 집 지하에 같이 살고, 조이의 이복언니는 늘 조이를 시기하고 질투하며 방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쏟은 와인과 깨진 유리잔을 대걸레로 치우던 조이는 손에 유리가 박힌다. 여기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얻은 조이는 손을 대지 않고 깨끗하게 짤 수 있는 대걸레를 발명한다. 이 제품이 바로 ‘미라클 몹’이다.

아빠의 새 여자친구에게 투자자가 되어 달라고 설득하고, 어린 딸의 크레파스를 빌려 허술했던 도안을 보안하고 노력한 끝에 의욕 넘치게 제품을 완성한다. 완성된 제품을 판매하고 세상을 놀라게 해줄 거란 기쁨에 들떠 있던 조이에게 돌아온 건, 집에 가서 가족 뒷바라지나 하라는 수모와 기업과 투자자의 외면이었다. 여자에게 더욱 가혹한 비즈니스 세계의 벽 앞에서 조이는 좌절한다.

이때 전남편의 소개로 미국 홈쇼핑 유명 채널인 QVC의 대표를 만나고 천금 같은 방송 판매의 기회를 얻는다. 단 한국이든 미국이든 홈쇼핑 방송이 가능한 적정 수량이 있다. 그 특성상 5만 개 제품을 선제작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조이는 더 많은 빚을 진다. (영화에서는 5만 개를 요구하는데 현실은 꼭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특히 신상품 런칭은 더더욱.)

하지만 첫 방송에서 쇼핑호스트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조이는 제품을 단 한 개도 팔지 못한 채 더 큰 빚더미에 앉는다. 하지만 조이는 포기하지 않고 직접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의 이야기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하고 마침내 최고 판매기록을 달성한다.

전 매일 바닥을 닦는 여자입니다.

스스로를 이렇게 지칭하며 시작해 소비자들과 공감의 눈높이에서 스토리텔링 하는 개발자로서의 조이의 모습이 인상 깊다. 이 제품을 만든 계기, 만들 때의 심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제품의 우수한 품질을 보여준다. 그 결과 30분 만에 1만 8,000개 판매라는 기적적인 성과를 낸다.

성공한 조이. 하지만 그 뒤로도 가족의 간섭, 납품업체의 부품가격 인상으로 성공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발명품들이 흔히 겪는 특허권 분쟁, 파산의 위기 등 성공은 안주할 틈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조이는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성장의 발판이 되어준 QVC 홈쇼핑과 어깨를 견줄 정도로 성장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미국 홈쇼핑 채널 HSNi의 CEO 조이 망가노의 실제 이야기와 거의 일치한다. 극적인 요소야 있었겠지만 거칠고 험난한 비즈니스 세계의 현실은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으리라.

 

자신의 삶에 미친 여자들

이제 한국 홈쇼핑에서 내가 발견한 ‘조이’들을 소개할까 한다. 15년 동안 홈쇼핑에서 일하면서 대한민국 홈쇼핑 비즈니스 현장에서 한국의 조이 망가노를 수없이 보았다.

미친 여자 중 하나는 바로 나

실제 주부의 입장에서 만든 아이디어 상품의 대표주자인 한경희생활과학의 한경희 대표나 기존의 기술을 더욱 업그레이드 시켜 아이들이 더욱 다양하게 즐기게 만든 간식계의 발명품, 구슬 아이스크림의 계난경 동학식품 사장, 남성 기능성 팬티를 만든 오수정 대표, 헬로키티 화장지를 유통시켜 홈쇼핑 대박을 낸 주민정 대표, 소형 공기청정기로 유명한 에어비타의 이길순 대표를 비롯한 식품계의 수많은 조이 망가노들.

특히 몇 대째 이어 내려오는 김치의 비법을 통해 홈쇼핑 유통에 도전하는 명인이나 예전이라면 며느리의 자리에만 안주했을 된장 명인이 만든 간편 메주 키트, 천연 조미료를 한 알의 태블릿 형태로 상품화하는 데 성공한 평범한 주부, 감귤처럼 익숙한 지역 특산물을 동결건조해 간식으로 만든 여성 등 소비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방송의 뒤 현장에서 만나는 여성 비즈니스맨들의 크고 작은 도전 정신들이 떠오른다.

이들이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성공한 여성이 겪는 시기와 질투, 깎아내림과 실패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도 안다. 직접 개발을 하는 여성 창업자, 유통에 도전하는 여성 대표, 마케팅과 세일에 집중하는 여성 비즈니스맨들. 이들은 현장에서 때로는 가족에게, 주변의 환경과 대중의 시선 속에 고군분투하며 살아남았다. 열악한 현실 속에서 그녀를 성공으로 이끈 것은 일상 속에서 얻은 비즈니스 아이디어와 포기하지 않는 도전 정신일 것이다.

 

조이들이 바꾸는 세상

단지 지금만이 아니다. 또 비즈니스 세계만의 일도 아니다. 하다못해 ‘마리 퀴리’만 하더라도 우리는 노벨상을 두 차례나 받은 대표적인 여성 과학자로 모두 알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파리과학아카데미에서 회원 가입을 받아주지 않았다. 원자폭탄의 중요한 발견을 한 여성 과학자 리제 마이트너도 몇 차례나 수상자 후보로는 올랐지만 번번이 노벨화학상에서 탈락했다.

과학이나 비즈니스의 공통점은 통념적으로 남성이 주로 활약했던 분야라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이야 많이 변했지만 역사 속에서 몇몇 분야의 여성들은 남성들, 또는 같은 여성들에게마저도 리더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능력을 갖췄어도 쉽게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럼에도 견디고 버텨내는 것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전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재미있게도, 어느 정도 수준의 성공을 이룬 여성들은 더 이상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동경의 대상이 된다. 해냈다는 것, 버텨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멘토링을 통해 변화를 원하는 후배 여성들을 만나고 이끈다. 여성들은 이제 패션 리더의 앞서가는 패션을 바라보듯, 살림의 여왕을 만나 알고 싶었던 주방용품의 활용법을 익히듯 세상의 여기저기에서 성공한 여성을 동경의 대상으로 느끼고 그들의 이야기를 알고 싶어 한다. 인터뷰나 개인 SNS, 강연이나 사인회, 심지어는 연예인이 아니어도 팬덤을 형성해 팬카페를 만들고 성공한 여성들과 만나며 ‘어떻게 하면’ 그렇게 성공할 수 있는지 적극적으로 물어본다.

한국장학재단과의 인터뷰.

올해부터 좋은 기회로 한국장학재단의 ‘차세대 리더십’이라는 멘토링을 하게 됐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홈쇼핑 유통이나 쇼핑호스트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을 만나서 교육적 지원을 해준다. 이제 많은 청년이 가고자 하는 분야의 자리를 잡은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고, 어떤 점을 알고 싶어 하는지 체감한다. 이런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원문: 석혜림의 브런치(1부/2부)


함께 보면 좋은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