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 https://ppss.kr 필자와 독자의 경계가 없는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Fri, 06 Jan 2023 10:03:08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5.8.10 https://ppss.kr/wp-content/uploads/2015/07/ppss-100x100.png ㅍㅍㅅㅅ https://ppss.kr 32 32 나도 “미라클 모닝을 할 수 있을까? https://ppss.kr/archives/253665 Tue, 03 May 2022 09:36:59 +0000 http://3.36.87.144/?p=253665

나는 ‘미라클 모닝’이 유행하기 전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걸 꿈꿨다. 마음 같아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공부하거나 운동하면서 성취감에 취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늘 잠에 취해 시간을 허무하게 떠나보내곤 했다.

아침이면 10분마다 알람을 맞췄다. 결과적으로 잠들지도, 깨지도 못한 채 한참을 밍기적댔다. 이제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에 자신이 없어졌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더 많은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자기 계발 책을 읽곤 했지만, 생각처럼 쉽게 실행할 수는 없었다.

하고 싶은 건 많았으나,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 원하는 것들을 모두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인생의 1/3이나 차지하는 수면 시간만 잘 통제해도 인생이 풍요로워질 텐데, 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인간은 어떻게 하면 쾌적하게 잠을 잘 수 있을까? 수면 시간을 줄일 수 있을까? 수면시간을 줄여도 예전보다 더 쾌적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그러다 일말의 희망을 품고 한 수면 코치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책을 다 읽은 후에야, 나는 그동안 내가 왜 잠을 줄이지 못했는지, 왜 아침형 인간이 되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1. 자기 전에 수면의 질을 낮추는 행동을 했다.

자려고 누워도 핸드폰을 하다 보면 한 시간,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그렇게 핸드폰으로 할 걸 다 한 뒤에는 정신이 말똥말똥해져서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새벽까지 잠 못 들다가 아침에 무겁게 일어나곤 했다. 특히나 일요일 밤이 심하다. 떠나가는 휴일의 밤을 붙잡고자 새벽까지 잠 못 드는데, 다음날이 되면 극심하게 피곤해지곤 했다.

결국 나는 수면의 질을 낮추는 행동을 하면서 잠을 줄이거나 일찍 일어나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러나 ‘적게 자는’ 아침형 인간이 되려면 수면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

  • 자기 전에 폰 하기
  • 업무 생각하기
  • 야식 먹고 자기
  • 8시 이후에 쪽잠 자기

이 모든 것들이 내가 평소 자기 전에 하던 것들이다. 이것들은 오히려 숙면을 방해하는 요소에 가깝다. 잠을 제대로 자기 위해서는 ‘잠에 잘 들어야’ 한다. 그래야 잘 자고, 일찍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다.

‘바로 잠들기’와 ‘바로 일어나기’ 기술로 수면 효율을 높인다.

‘5시간 수면법 X 아침 5시 기상’을 익히기 위해서는 먼저 잘 때 소비하는 ‘불필요한 시간’을 최대한 줄여나갑니다. 여기서 불필요한 시간이란 이불 속에 들어가서 잠이 들 때까지, 그리고 잠에서 깬 후 이불 밖으로 나올 때까지의 시간을 말합니다.

이를 통해 수면에 소비하는 시간 대비 실제 잠자는 시간의 비율, 즉 수면 효율을 최대화할 수 있죠. 또 바로 잠들기와 바로 일어나기 기술은 수면 시간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수면의 질을 향상하는 데도 도움을 줍니다. 수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수면 시간 X 수면의 질’의 조합입니다.

① 이불 위 = 잠만 자는 곳 : 잠자기 직접에 침실에 들어가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이불 밖으로 나오는 습관을 들인다.

② 잠들기 전 먹는 음식이 좋은 잠을 방해한다. : 식사 후 음식물을 소화하도록 위가 부지런히 움직이는데 이 상태가 되면 뇌나 몸은 쉴 틈 없이 활동하게 되어, 잠에 빠져들어도 얕은 잠만 잘 수 있게 됩니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나서 위의 활동이 멈출 때까지 대략 3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저녁 식사는 늦어도 잠자기 3시간 전에 끝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③ 저녁 8시 이후에는 절대 쪽잠을 자면 안 된다. 만약 이 시간대에 졸음이 몰려온다면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확인하거나, 뉴스를 보며 졸음을 쫓아버려야 합니다. 잠들기 2~4시간 전에 체온을 높여주고 활동성이 높아야 자야 할 시간에 쉽게 잠들 수 있습니다.

④ 업무 메일은 아침에 확인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메일을 확인하면 활동적인 뇌로 전환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밤에 업무 관련 메일을 확인하면 에스프레소 커피 2잔을 마셨을 때와 비슷한 수준의 흥분 상태가 되었다.

⑤ 5시에 일어나고 싶다면 베개를 다섯 번 두드린다. : 인간은 ‘몇 시에 일어나자’라고 의식만 해도 그 시간에 일어날 수 있도록 체내 시계를 조절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 정확도를 높이려면 일어날 시간의 숫자만큼 베개를 두드리는 것입니다.

⑥ 아침 샤워는 체온과 혈압을 높이고 단 음식은 혈당과 혈압을 높여 뇌와 몸에 강제로 시동을 걸 수 있습니다.

  • 『적게 자도 괜찮습니다』 中

 

2. 당장 내일 아침부터 1시간, 혹은 2시간 일찍 일어나려고 했다

나는 거창한 목표와 함께 아침형 인간이 되려고 했다. 평소에는 9시에 일어나다가도 갑자기 다음 날부터 6시에 일어나고자 했다. 급진적으로 아침형 인간이 되기를 꿈꿨던 셈이다. 덕분에 6시는커녕 8시에 눈을 떴고, 그러면 ‘미라클 모닝에 실패했다’는 생각에 짓눌려 하루가 찝찝해졌다. 어쩌다 6시에 일어나도 점심쯤이면 잠이 몰려왔다. 그래서 낮잠을 2시간씩 자곤 했다. 오히려 조삼모사가 된 꼴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야, 그동안 무자비하고 무식한 방법으로 새벽형 인간이 되려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실패하는 게 당연했다. 만약 15분 일찍 일어나려고 했다면, 몸에서도 부담 없이 생체 시간을 앞당겼을 텐데 말이다.

수면 시간 단축은 ‘일주일에 15분’을 기준으로 한 달에 최대 1시간 정도만 줄여야 합니다. 인간의 몸은 급격한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서서히 변화된 수면 시간에 몸을 길들여야만 하죠.

 

3. 아침에 무엇을 할지 계획하지 않고 일찍 일어나려 하거나, 아침부터 거창한 일을 하려고 했다

새해가 되면 늘 다이어리에 적어두곤 했다.

아침 6시 기상!

그러면서 아침 7시에 필라테스를 가겠다고 다짐했으니… 아침 7시에 일어나지도 않았던 내가 아침 7시에 운동을 가겠다고 생각하는 건 정말 거창한 목표였다. 오후에 운동하는 것도 힘들어하던 나에게, 아침에 눈뜨자마자 운동하는 일은 고역이었다. 결국 몇 주간 시도하다 운동을 포기해 버렸다. 그 후에는 목표가 사라져 버렸으니, 살짝 정신이 들다가도 이내 다시 따뜻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는 가볍고 설레는, 아침의 할 일이 필요하다. 새벽 배송 음식을 들여놓는다거나 좋아하는 초콜릿이나 차를 마시는 것이다. 이렇게 ‘나를 설레게 하는 일’로 시작하니 자연스레 눈을 뜰 수 있었다.

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해야 할 일 (15~30분 일찍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을 확실히 설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목적을 정하는 것입니다. 수면 시간을 줄여야 하는 확실한 목표를 정한 후, 수면 시간을 줄여서 얻은 시간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정합니다. 설레는 일일수록 일찍 달성할 가능성은 커집니다. 당신이 일찍 일어나야 할 목적은 무엇인가요?

『적게 자도 괜찮습니다』 中

 

아침형 인간이 되어 개운한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면

  1. 수면의 질을 높여라
  2. 15분씩 생체 시간을 당겨보자
  3. 아침에 나를 설레게 하는 일을 계획하자.

아침형 인간이 되는 건 사람의 의지만큼, 제대로 일어날 수 있는 환경적인 부분이 중요하다. 앞으로도 잘 자고 잘 일어나서 잘 삽시다!

 

덧. 수면에 관해 잘못된 진실

1) 성장 호르몬은 주로 오후 10시부터 오전 2시 사이에 180분 내에 다량 분비된다. (X)

→ 시간과 상관없이, 잠든 시점부터 180분 사이에 깊은 논렘수면에 빠지면 다량의 성장 호르몬의 분비된다. 근육과 뼈의 성장 촉진, 몸의 피로 해소, 체내 손상 세포 회복, 지방 연소, 피부 손상 회복, 신진대사를 촉진해주는 성장 호르몬의 효능을 최대한 끌어올리려면 이불 속에 들어간 시점부터 180분 사이에 수면을 절정으로 끌어올리면 된다.

2) 휴일에 너무 많이 자면 오히려 해가 된다. (△)

→ 휴일에는 더 오래 잠을 자는 것보다, 평소와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낮잠을 자는 것이 더 좋다. 최대 낮잠 시간은 90분이다. 특정한 일정이 없는 휴일에는 일찍 점심을 먹고 오후 1~3시 사이에 낮잠을 자면 가장 이상적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원문: 작은버섯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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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동안 하루에 1시간씩 독서하면 어떻게 될까? https://ppss.kr/archives/250096 Tue, 15 Feb 2022 06:10:22 +0000 http://3.36.87.144/?p=250096 올 한 해 밀리의 서재에서 총 372시간 동안 책을 읽었다. 평균 내어 보니 하루에 1시간꼴로 읽은 셈이다. 핸드폰으로 매일 SNS를 들어가 보듯이 밀리의 서재를 매일 들어가곤 했다. 한 권을 완독하겠다는 욕심은 내려놓고 매일 조금이라도 꾸준히 읽으며 나의 세계를 넓혀가려고 했다.

그렇게 독서는 올해 나의 베스트프렌드이자 최고의 취미생활이 되었다. 하루하루 꾸준히 책을 읽으면서 내가 무엇을 얻었는지, 내게 생긴 변화가 무엇인지 정리해보았다. 책을 많이 읽으면 도대체 뭐가 좋을까?

 

1.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여유가 생겼다.

작년 한 해, 나는 누가 옳고 그른지 따지기도 애매한 서로의 입장 차이 그 안에서 어떤 게 현명한 행동일까 고민하곤 했다. 때로는 내 생각에만 매몰되어 오로지 내 의견이 합리적이고 바른 의견이라고 여기고 오만하게 행동하기도 했다. 오로지 내 의견과 감정이 옳다고 여겼기에 나와 대립하는 의견이나 상황은 비난하기 바빴다.

그러나 책은 되돌아볼 여유를 준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고민과 생각을 찬찬히 읽어가면 내가 그동안 편협하게 혹은 융통성 없이 생각한 건 아닌지 성찰하게 된다. 내 기준의 논리를 내려놓고 상황을 찬찬히 읽어가고 다른 사람의 입장도 고려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일례로 나는 명절이 되면 며느리들이 설거지해야 하는 상황을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설거지는 며느리들의 몫일까!

나는 절대 시댁에서 설거지를 하고 싶지 않다. 사위들이 설거지하려고 하면 장모님들은 말릴 텐데, 왜 며느리가 시댁에서 설거지하는 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까.

이런 가부장적 악습에 분노하며 나는 절대 시댁에서 설거지하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한 번은 이 주제로 회사의 기혼 선배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이런 말을 하니 한 남자 선배는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고 조언해주었다.

“시댁에서 며느리가 설거지 못 하겠다고 하는 것보다 차라리 시댁에서는 며느리가 설거지하고 친정에서는 남편이 설거지하도록 하는 게 현명하죠. ‘나는 절대 못 해’ 이러면 갈등이 생길 수 있거든요. 여러 사람이 얽힌 결혼에 있어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해요.”

그때까지만 해도 내 생각에 확신에 차 있었기에 기혼인 선배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흥… 장모님들은 사위가 설거지하는 거 그냥 보지 않고 말리기 바쁠 텐데 그게 가능하겠어? 나의 확고한 생각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렇게 내 생각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B급 며느리』라는 책을 읽었다. 『B급 며느리』는 가부장제와 시월드에 반기를 들고 시부모에게 며느리에 대한 ‘인간 대 인간의 매너’를 요구하는 한 며느리의 투쟁기를 감독인 남편이 직접 찍은 다큐멘터리 기반의 책이다.

책에는 시부모의 말에 고분고분 순응하지 않고 시부모의 무례한 처사에는 단호하게 반기를 드는 며느리의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시부모도 참지 않고 더 이상 명절에 찾아오지 말라며 둘 사이의 갈등은 증폭되었다.

그렇게 다음 명절을 룰루랄라 집에서 보낸 며느리가 어느 날 갑자기 먼저 명절에 시댁을 가겠다고 하는 것이다. 저자인 남편 입장에서는 왜 갑자기 그토록 갈등을 겪던 시댁을 제 발로 찾아간다고 했을까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리둥절한 남편을 보며 다큐멘터리 촬영을 맡은 후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말 모르겠어요? 감독님 때문이잖아요.”

이 마지막의 한 마디는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B급 며느리’였던 아내는 양쪽의 갈등으로 슬퍼하는 남편을 보며 갈등의 골을 심화시키기보다 타협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물러나고 다시 가까워지며 타협의 선을 찾았다. 진영이가 가부장제와 시월드를 모두 전복하지는 않았다. 진영이에겐 애초에 그럴 의도가 없었다. 김진영은 현실 속의 사람이라서 남편과 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인정한다. 진영이는 그 한계 안에서 존중받는 것을 원했고, 이제 전보다 더 존중받고 있다.

  • 『B급 며느리』 중에서.

우리 모두 각자의 기준과 생각이 다르고 그에 따라 각자 생각하는 ‘옮음’과 ‘선’의 기준도 다르다. 내가 나의 기준이 옳다고 행동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기준과 가치관대로 행동할 텐데 이 두 개의 기준이 다르다고 무조건 반기를 들고 투쟁하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전쟁터를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소중한 사람을 위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위한 배려심 혹은 내가 세상 모든 걸 온전히 다 알지 못한다는 겸손으로 나의 기준에 맞지 않아도 고개 숙여 맞춰가는 것도 지혜로운 사랑의 논리라는 걸 배웠다. 그러다 보니 나와 다른 사람의 기준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2)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기며 정서적으로 풍요로워졌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SNS를 보거나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내려보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가 지금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괜스레 마음이 더 울적해지곤 한다. 그럴 때면 괜히 인생 헛살았나 하는 헛헛함도 든다. 그 헛헛함을 채우기 위해 때로 영혼 없는 인간관계에 연연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의 빈 시간을 나 홀로 즐기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 채우려고 열심히 약속을 잡고 밖으로 돌아다녀도 나의 마음이 풍요로워지진 않았다. 그런데 책에 빠져 살면서 주기적으로 오는 그런 새벽녘 센치함을 잊게 되었다.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억지로 노력하기보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생각을 엿보는 재미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에 빠져 살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내가 몰랐던 한 저자의 생각을 읽으면서 감동하는 일이 수십 명의 지인을 만나는 것보다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도 하더라. 책은 남보다 나 자신에 더 집중하게 만드니깐.

우리에게는 소박하고 작은 것들과 사랑에 빠질 권리가 있다. 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모두 의미가 있다. 특히 그 대상이 나라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중에서.

 

3. 내가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한 공감 능력이 높아지고 대화 소재가 많아졌다.

같은 책이라 할지라도 그 책을 읽는 내 마음의 상태나 생각이 어떻냐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농도가 다르곤 하다. 어릴 때 필독 도서였던 『어린 왕자』를 읽었을 때는 책에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서른이 되어 다시 읽어보니 지구에는 수없이 많은 똑같은 장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왕자가 소행성 B621에서 키운 그 한 송이의 장미가 왜 특별했는지 공감이 됐다.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네가 그 꽃을 위해 쓴 그 시간 때문이란다.”

이렇게 감동한 문장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 보면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책에서 나온 문장이 떠오르곤 했다.

하루는 아이를 키우는 회사 선배가 낳은 정보다 키운 정이 더 크다고 말하면서,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는 내가 모성애가 없는 사람인가 싶었는데 막상 한 해 두 해 키울수록 그렇게 이쁠 수가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불현듯 『어린 왕자』에서 읽은 문장이 떠올랐다.

그렇게 나는 출산과 육아를 해보진 않았지만, 모성애라는 사랑이 완성되는 데에는 키우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할 수 있었다. 경험하진 않아도 상대의 말에 공감이 되자 더 많은 대화 소재가 생겨났다.

이처럼 책에서 읽은 문장들이 우리의 삶을 통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이 좋은 문장을 나 혼자 알고 있기 아까울 때가 있다. 어쩌면 특별한 일 없는 평범한 일상일지라도 책에서 읽은 몇 문장만으로도 하루가 특별해지고 다른 사람과 나눌 수많은 대화 소재가 생겨나곤 한다.

‘세상에 많은 장미가 있지만 내 장미가 특별한 이유는 내가 그것에 쏟은 시간 때문이지’

사랑은 이처럼 그 사랑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기간의 문제도 중요하다. 우리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지속되어야 하며 그 기간 동안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알랭 바디우는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지속성을 구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 『내 곁에서 내 삶을 받쳐주는 것들』 중에서.

 

4. 독서의 목적과 목표를 내려놓고 독서 그 자체를 즐겼다.

목적을 갖고 책을 읽다 보니 독서가 고역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예전에 책을 매일같이 읽지 못한 것도 책 읽기를 과제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일 유튜브를 보거나 SNS를 보는 게 숙제가 아닌 하나의 재밋거리인 것처럼 독서도 하나의 놀이가 되어야 오래간다.

올해 내가 꾸준히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건 완독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고 실용서가 아니더라도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거나 문체가 유쾌한 글을 읽으며 재미있는 독서를 했기 때문이다. 독서의 목적과 목표를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독서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읽다가 재미가 없어지면 책을 덮었다. 그래서 서문에서 멈춘 책들도 있었다. 내 맘대로 사는 게 쉽지 않은 세상에서 독서마저 내 마음이 아닌 세상의 시각대로 읽어야 한다면 얼마나 지루한지 모른다. 꾸준히 하려면 뭐든 재밌어야 한다. 재밌으려면 인상적이어야 한다. 남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에서.

저는 책 읽기에 있어 ‘다독 콤플렉스’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독 콤플렉스를 가지면 쉽게 빨리 읽히는 얇은 책들만 읽게 되니까요. 올해 몇 권 읽었느냐, 자랑하는 책 읽기에서 벗어났으면 합니다. 일 년에 다섯 권을 읽어도 거기 줄 친 부분이 몇 페이지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줄 친 부분이라는 것은 말씀드렸던, 제게 ‘울림’을 준 문장입니다. 그 울림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숫자는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보고 잊히는 것과 한 구절 건져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 『책은 도끼다』 중에서.

 

5. 자존감이 높아졌고 스스로 사랑하게 되었다.

행복한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는데 내가 봤을 때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존감’이 높다는 것이다. 반대로 불행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존감이 낮았고 자신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다.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인터넷에 이름 모를 사람들과 나를 쉽게 비교하며 살았다. 인터넷의 진위 여부로 알 수 없는 허풍과 과장에 놀아나며 나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사람, 더 뛰어난 업적을 만들었다는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있었다.

자존감이 낮아져 버린 뒤에는 내가 어떤 방향으로 살아야 하는지 방향조차 잃어 남들이 하는 대로, 수동적으로 회사와 집을 오갈 뿐이었다.

책을 꾸준히 읽으면서 무엇보다 책을 열심히 읽는 내 모습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걸로 돈을 벌거나 업적을 만든 건 아니지만 꾸준히 독서를 했다는 나만의 작은 성공에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

자존감이 높아지니 무슨 일이든 잘할 수 있을 거 같단 자신감도 생겼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목표도 생겼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상적인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자존감은 자기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비록 다른 사람이 자신을 비방하거나 깎아내리는 행위를 하더라도 자신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통제한다. 즉,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성향을 보인다.

a. 자기 존중감 : 본인 스스로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는 것.
b. 자기 효능감 : 인생의 도적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 것.
c. 자기 호감 : 자기 자신을 매력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것.

  • 『당신이 먼저 회사를 잘라라』 중에서.

일 년 동안 책을 372시간 읽으면서 어마어마한 지식을 얻거나 눈에 띄게 논리적이거나 창의적인 사람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독서의 성공 기준을 이로 여긴다면, 나는 아마 실패한 다독가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꾸준히 많은 책을 읽으면서 1년 전의 나와 비교해보면 지금의 내가 좀 더 행복한 사람이라는 건 자부할 수 있다. 책을 통해 나와 다른 신선한 생각, 새로운 표현, 인상적인 메시지, 내가 몰랐던 지식을 곱씹을수록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경이감을 매일 맛보고 있으니까.

모두 멀리 보고 행복을 찾는데 행복은 지금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삶은 순간의 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삶을 레이스로 생각합니다. 레이스가 된 삶은 피폐하기 이를 데 없죠.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그래서 저는 순간순간 행복을 찾아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행복은 삶을 풍요롭게 해 줍니다. 그러나 풍요롭기 위해서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같은 것을 보고 얼마만큼 감상할 수 있느냐에 따라 풍요와 빈곤이 나뉩니다. 그러니깐 삶의 풍요는 감상의 폭이지요.

  • 『책은 도끼다』 중에서.

원문: 작은버섯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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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미지 및 본문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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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탈락 메일 속에서 살아남기 https://ppss.kr/archives/250098 Tue, 25 Jan 2022 07:05:48 +0000 http://3.36.87.144/?p=250098 취업 준비를 하는 지인이 기대했던 회사의 최종 면접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와 친분이 있는 건 아니지만 지인의 지인이었기에 간간이 소식을 듣곤 했다.

나보다 3살쯤 어린 그녀는 이미 한 회사에 다니고 있음에도 더 좋은 회사를 들어가기 위해 꾸준히 도전하기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도전한 회사는 꽤 가고 싶었던 회사인 듯했다.  얼핏 듣기에 합격자 발표가 나면 4일 만에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휴가까지 내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고 하니 말이다.

크게 친분은 없지만, 괜히 나도 나의 취준생 시절이 떠올라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이었고 짐작건대 기대했던 만큼 씁쓸했을 거다.

그녀의 소식을 들으며 나 또한 지원한 결과를 간절하게 기다리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때는 차라리 눈 뜨면 결과가 나오는 날이 훌쩍 다가와 있으면 어떨까 상상하곤 했다.

합격이던 탈락이던 빨리 마음을 정하고 해야 할 일에 임할 수 있게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취준생 때만 그랬으랴. 승진을 준비하던 시기, 사내 이동을 준비하던 시기, 이직을 준비하던 시간도 그랬기에 누구보다 탈락 메일을 받은 그 심정을 이해한다. 아직 면접만 본 상태임에도 벌써 승진해 있을 나를, 이직해서 다른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나를 상상하며 단꿈에 젖곤 했다.

그래서 탈락 메일을 받고 나면 그렇게 달달했던 상상 속에서 깨어나야 하니 얼마나 마음이 아려오는지 모른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고 미리 김칫국 마시며 단꿈을 꾼 대가는 가혹했다. 수많은 탈락 메일에 적힌 ‘당신이 부족해서 떨어진게 아니라~’는 상투적인 위로는 진정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탈락만 하는구나…

나는 부족하구나…

계속 이어졌던 탈락 메일들.

계속 이어진 탈락 메일은 나의 자신감을 야금야금 갉아먹다가 그 자신감 마저  떨어져 갈 때 쯤에는 자존감까지 갉아먹으며 사는 듯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감도 자존감도 무너져 지원하는 것조차 겁먹고 있었다.

여기는 내 능력으로는 못 가. 써도 안될 것 같아.

여기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많을 거야. 어차피 안될 텐데.

어쩌면 이건 저성장, 취업난 시대에 태어난 에코 베이비붐 세대들이 겪어야 하는 치열한 운명일 것이다. SKY를 나온 학생들도 취업이 어렵다고 하고 스펙이 짱짱한 경력자들도 면접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탈락에도 겸허하게 나아가야 하는 게 우리 세대의 운명인 것을 받아들어야만 할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들도 50군데 지원하고 50번을 떨어져 보는 탈락의 홍수를 거쳐왔을 거라 생각하니 조금은 위로가 된다.

 

내가 부족한 게 아니라… 사람은 많고 채용은 적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탈락 소식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위로를 하자면 지금의 탈락이 나중에는 큰 기억도 나지 않을 일이며 우리가 받는 수많은 탈락 중 하나로 남을 거라는 거다. 탈락을 했지만 그 회사를 준비하면서, 면접을 보면서 배운 것들, 얻은 것들은 분명히 있을 테니 실망할 필요도 없다. 그 회사에게 나는 수많은 지원자 중 하나겠지만 역시나 그 회사도 내가 지원했던 수많은 회사 중 하나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간 탈락 메일에 그토록 마음을 잡지 못하고 좌절에 쓰러져 있던 건 기대가 컸던 것뿐만 아니라 그 결과가 나의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승진에 떨어졌을 때, ‘회사에서 내 성과를 인정하지 않는구나. 나는 회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물론 진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회사는 내가 승진에 탈락하고 퇴사할 것처럼 보이니 직무를 이동해주면서 최대한 내가 마음을 잡고 일할 수 있도록 달래주었다. 그러니 그 승진 결과는 진짜 회사가 생각하는 나의 가치가 아니라 현재 내부 상황으로 인해 어찌 못 할 일이었을 수도 있다.

이직에 떨어졌을 때도, ‘나는 이 회사에 들어가기 부족한 사람이구나.‘라고 탈락 메일에 내 가치를 이입했다. 그래서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처럼 나의 자존감도 우수수 떨어지곤 했다.

떨어지는 자존감을 지푸라기처럼 붙잡고 마지막으로 한번 더를 외치며 오기로 동일 회사에 다른 직무를 지원했다. 한 차례 탈락으로 기대 없이 지원했지만 결과는 예상외로 합격이었다.

그러니 내가 그 회사에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당시 그 채용을 결정짓는 팀 매니저가 원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떨어졌던 거다. 겨우 한 시간 남짓 나를 보는 그 면접관이 나를 얼마나 알겠나. 내가 부족한 게 아니라 그때 그 면접관이 틀릴 수 있다. 그러니 어쩌면 속상해할 사람은 이런 인재를 놓친 그 팀장이 아니겠나?!

또 다른 회사에서 최종면접에서 떨어졌을 때도, 이직이 이토록 내게 어려운 일인가 포기할까 고민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2달 뒤에 그 회사의 부사장은 내게 연락이 와서 추가 채용이 결정되었다며 입사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때는 내가 이미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한 후였기에 오히려 역으로 내가 그 회사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고 보면 그때의 탈락은 100% 내가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똑같은 사람은 데 이렇게 결과가 팀마다, 시기마다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 탈락 메일은 그 시기에, 그 팀의 담당자가 보기에 맞지 않아 보낸 탈락일 뿐, 그게 나의 모든 가치를 담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의 탈락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잊지 말자.

내가 나를 탈락이라고 단념하지 않는 한, 언젠가 나는 붙을 수 밖에 없으니까!

출처: <라디오스타>

원문: 작은버섯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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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생산성을 죽이는 회의를 하고 있을까? https://ppss.kr/archives/250094 Wed, 19 Jan 2022 02:00:33 +0000 http://3.36.87.144/?p=250094 직장생활에서 회의란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이다. 물론 회사마다 회의의 분위기와 성격이 다르겠지만 회의가 없는 직장은 없을 것이다. 지금껏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회의를 했지만 회의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회의는 그저 내게 또 하나의 업무와도 같은 존재였다. 서로 의견을 제시하고 의논한다는 의미와는 달리 내게 회의란 업무를 보고하고 평가받아야 하는 자리였다. 그래서 나는 늘 회의를 위한 준비를 해야 했다. 회의 시간은 내가 주간에 했던 일을 설명하고 나의 업무를 증명해 보이는 자리였기에 나의 업무를 포장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 보니 때때로 회의를 왜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회의 준비를 하느라 혹은 의미 없는 말이 오가는 긴 회의 탓에 오히려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할 때가 많았으니깐.

회의(會議) – 여럿이 모여 의논함. 또는 그런 모임

좋은 리더가 되는 법, 성과측정, 직장 내 처세술, 등등 수많은 직무 교육이나 직장생활에 대한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러나 회의에 대한 교육이나 콘텐츠는 흔치 않다. 어쩌면 우리가 직장에서 가장 자주 행하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회의를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회의는 그 자체로 생산성을 죽이는 킬링타임 콘텐츠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수많은 리더들이 알아야 할 건 조직 구성, 성과측정, 등등의 거창한 게 아니라 효율적인 회의방법일지도 모른다. 회의만 효율적으로 바꿔도 조직과 업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거다.

회의에 대해서는 철저한 절약가가 되자.

파슬종합연구소가 릿쿄 대학과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종업원 1만 원 규모인 기업에서 불필요한 회의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은 연간 15억 엔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희를 열 때마다 큰 비용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더욱 의식해야 한다.

  • 『아마존처럼 회의하라』

 

그 회의는 정말로 필요한 것인가?

효율적인 회의를 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질문은 왜 이 회의를 해야 하나? 라는 고민이다. 때때로 우리는 별 의미 없는 회의를 진행하는데 굳이 회의를 하지 않아도 간단하게 전달하고 보고할 수 있는 일들이 불필요한 회의를 통해 소모되곤 한다. 굳이 특이사항이 없음에도 관습처럼 매주, 매월 진행되는 회의기에 시간을 내어 모두 참석하지만 모두 회의가 끝나고 나도 딱히 기억에 나는 건 없는 그런 회의들이 조직에 꽤나 많다.

그러나 이전부터 존재하던 회의이기에 아무도 손댈 생각을 못 한다. 그렇기에 리더들이 판단해야 한다. 이게 정말 필요한 회의인지. 그리고 굳이 특이사항이 없어 회의가 필요하지 않다면 줄여나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 중요한 회의의 질을 높일 수 있다.

  1. 회의 개최 횟수를 줄여라.
  2. 특이 사항이 없다면 ‘취소 가능’ 규칙을 넣어라.
  3. 정보 전달 회의는 이메일로 대체하라.

결재를 바라거나 사안을 결정해 합의를 형성하는 ‘의사결정 회의’, 새로운 정책과 서비스, 사업 등을 고안하는 ‘아이디어 도출 회의’,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정보를 보고하고 공유하는 ‘정보 전달 회의’, 결정 사항의 실시 상황을 추적, 확인하는 ‘진행 관리 회의’.

회의의 생산성이 낮다고 느낀다면 쓸데없는 회의가 너무 많은 것이 원인일 수 있다. 그리고 4가지 유형의 회의 중에 특히 화근을 없애야 하는 것이 정보 전달 회의다. – 특별히 전할 정보가 없는데 관습처럼 회의를 이어갈 필요는 없다. 이런 식의 회의는 한 명이 말하는 동안 다른 사람은 대기 상태가 되기 때문에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원흉이 된다.

우선, 상사만 알면 되는 사항인지, 모든 사람이 공유해야 하는 것인지 살펴본 다음, 쓸데없는 정보 전달 회의는 점차 줄여가도록 하자.

  • 『아마존처럼 회의하라』

 

효율적인 회의를 위해서 무엇이 준비되어야 하나?

가끔 회의를 해도 발표자가 말하는 내용이 모호하거나 생소해 회의 시간 안에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다. 혹은 회의 참석자들이 모두 제각각으로 이해해서 서로 다른 말들을 하며 주제에서 이탈된 회의를 하기도 한다.

그런 회의들은 뭔가 듣고 뭔가 말했지만 회의 시간에 별다른 의미 있는 아웃풋을 내지 못해 회의의 전과 후가 다름없게 된다. 그럴 때, 회의 전에 미리 이런 사항들은 간단하게 숙지하고 생각해보고 의견을 나눴다면 더 양질의 회의, 양질의 시간이 되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든다.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음

그렇기에 회의 주최자들은 회의 참여자들로부터 얻고자 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사전에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회의 참석자가 그 회의의 의도와 방향을 숙지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의미 있는 회의의 결과가 나온다.

너무나 많은 회의의 늪에서 우리는 회의의 목적이나 내가 낼 의견은 크게 생각해보지 않은 채 시간을 소모하곤 한다. 회의 주최자는 회의의 목적과 배경, 성공 기준을 사전에 명확하게 공유하고 회의 참여자는 그 안에서 낼 자신의 질문과 의견을 준비해야 한다.

  1. 회의 주최자는 목표 확인과 시간 체크를 철저히 할 것
  2. 회의 자료로 시간을 단축하라.
  3. 필수 참석자와 임의 참석을 구분하여 필요한 사람만 참석하게 하라.

회의의 성패는 자료 작성으로 결정된다.

자료 한 장 없이 사람만 모여 논의하는 회의는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자료가 없으면 논의할 주제와 목적, 참고할 데이터와 조건을 참석자 간에 올바르게 공유할 수 없다. 그런 상태에서 논의를 거듭해봤자, ‘모두 모여 의논했다’는 핑곗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회의에 자료는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좋은 회의는 좋은 회의 자료에서 비롯된다.

회의의 취지, 목적이 명확하다.
적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읽을 수 있다.
언제, 누가 읽어도 확실하게 전달된다.

회의가 ‘더 짧은 시간에, 더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자리’가 되려면 회의 자료는 이와 같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 <아마존처럼 회의하라>

 

양질의 회의가 회사의 성패 기준은 아닐까?

예전에 일하던 회사는 주간 회의의 시작 시간은 알아도 회의의 종료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리더가 여러 조직원들을 모아 두고 팀원의 업무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파면서 지적하는 회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의 시간이 되면 모두 평가받고 벌 받는 사람처럼 무거운 마음으로 회의실에 들어왔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리더의 기분에 따라 회의의 시간은 늘어졌다.

그 리더는 회의에서 지적하고 공격하여 일을 시키는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굳이 다른 팀들이 혼나는 모습을 보면 차가운 회의실에 있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시간과 감정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출처: 직장인 짤봇

그런 회의가 반복되면 회의 자체는 여러 사람이 모여 의논하기 위한 자리가 아닌 리더를 위한 자리가 된다. 그 리더의 입맛에 맞는 보고를 준비하기 위해 또 다른 시간을 쓰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보여주기 위한 일이 많아지고 진짜 일의 생산성을 낮아진다. 그 조직의 생산성도 낮아지고 리더는 더 오랜 회의를 하게 된다. 비효율적인 회의와 낮아지는 생산성의 악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회의하는 것만 봐도 그 조직이 리소스(인력, 시간 등)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알 수 있으니 조직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조직의 생산성을 죽이는 회의

  1. 무작정 많은 사람이 회의에 참석해 있다.
  2. 한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이나 몰래 다른 업무를 하는 사람이 있다.
  3. 이메일 연락만으로도 충분할 법한 보고가 이어진다.
  4. 질질 시간을 끌어서 시간에 맞춰 끝나지 않는다.
  5. 그런데도 중요한 사항은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는다.

아마존의 회의 효율화 기술

  1. ‘정보 전달 회의’는 줄이고 1:1을 늘려라.
  2. What(무엇을), Who(누가), When(언제)로 회의 목표를 공유하라.
  3. 회의 전에 서술식 1페이저(대형 프로젝트는 6페이저)로 회의 자료를 준비하라.
  4. 회의 시작할 때, 모든 침묵하여 회의 자료를 읽고 시작하라.
  5. 제안할때는 목표를 지향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지 회의하라.
  6. 새로운 서비스를 설명할 때는 보도자료(외부의 관점) 형식으로 작성하라.
  7. 회의 마지막에 어떤 것을 의논했고 무엇이 결정되었는지, 이후 단계는 무엇인지 설정하라.

원문: 작은버섯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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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없는 신입사원의 솔직한 상사 평가 https://ppss.kr/archives/245461 Tue, 07 Sep 2021 01:48:39 +0000 http://3.36.87.144/?p=245461 바야흐로 2016년 여름, 갓 신입사원이던 나는 처음으로 회사에서 ‘성과평가’라는 것을 했다. 당시 나는 입사한 지 6개월 차의 병아리 사원이었기에 성과를 냈다고 적을 만한 게 없었다. 사수가 쓰는 것을 보고 거의 따라 쓰며 성과평가라는 걸 배워나갈 때였다. 알 수 없는 단어들로 성과를 표현하는 일이 낯설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지만 더 어려운 건 그다음이었다. 바로 상사 평가!

 

상사 평가

항목별로 지점장인 상사의 점수를 매기고 경영이념에 맞춰 상사의 장단점을 줄글로 서술해야 했다. 다행히 객관식 항목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모두 만점을 주면 된다길래 만점을 주었는데, 문제는 줄글로 서술해야 하는 장단점 부분이었다.

그나마 장점을 쓰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아무거나 있어 보이는 경영이념을 풀어서 지점장 얘기인 것처럼 쓰면 그럴싸하니깐. 문제는 단점이었다. 단점은 많지만 이 단점을 어떻게 포멀한 단어로 풀어내야 할지 고민이었다. 머리를 쥐어짜다가 결국 사수에게 단점을 ‘없습니다.’ 혹은 공백으로 두면 안 되냐고 물었지만 그럼 상사 평가의 의미가 없기에 무조건 내용을 적어야 한다고 했다.

그 당시 사수는 신입사원의 첫 성과평가가 걱정되셨는지 꼭 다 쓰고 본인에게 최종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중간에 나의 성과평가 부분까지는 OK를 받았다. 문제는 그다음 상사 평가의 단점 부분인데…아무리 생각해도 단점을 단점 같지 않게 써야 하는 이 부분이 정말 어려웠다. 단점은 진짜 많은 게 그중 무엇을 어떻게 포장해야 할지…ㅎㅎ

그렇게 곰곰이 지점장의 단점으로 적을 만한 일들을 떠올려보는데 생각해보면 지점장이 너무 말이 많아서 회의를 한번 시작하면 2시간씩 회의할 때도 있곤 했다. 한여름에 그렇게 회의실에 거의 20명이 모여 회의를 하고 나며 얼마나 숨이 막히고 땀이 나는지 모른다. 가끔은 회의가 끝나고 일어나는데 엉덩이에 땀이 나서 바지가 젖진 않았는지 걱정되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밀폐된 회의실에 20명이 2시간을 갇혀 회의하고 나면 산소가 부족해 머리가 띵해지고 2시간이나 흘러있어 업무는 업무대로 밀려 야근하기 일쑤였다. 긴 회의는 결국 직원들의 체력을 고갈시키고 업무 의욕을 상실시키고 말았다.

물론 그렇다고 유의미한 회의도 아니었다. 지점장의 잔소리와 지적이 난무했기에 오디오의 90%는 지점장의 차지였다. 그래서 가장 구석에 앉아 있기만 했던 신입사원 눈에도 긴 회의에 지쳐 넋이 나간 선배들이 보였다. 그래서 떠오른 한 문장, ‘말이 많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상사 평가의 단점에 녹여냈다.

긴 회의로 인해 직원들의 업무 효율이 저하됩니다.

나름 신입사원으로서 어미에도 상사에 대한 예의를 갖춰 마무리했다. 그런데 이건 아주 비밀스러운 나만의 상사 평가이기에 사수에게 보여주고 검사받기도 애매했다. 정말 순진하게 나와 인사팀만 보는 나만의 상사 평가라고 생각했기에… 수줍게 [전송] 버튼을 눌렀다. 모든 직원이 하는 생각을 내가 깔끔하고 포멀하게 적었다는 마음에 뿌듯함도 들었다.

 

그러나 이건 나의 착각이었다

사수는 내게 자기에게 보여주지도 않고 눈치 없고 솔직하게 상사 평가를 보낸 것에 화를 냈다. 알고 보니 상사 평가에서 단점은 장점 같은 단점으로 적어야 했다. 왜냐면 이건 토씨 하나 정제되지 않은 날 것으로 지점장에게 바로 전달되니 말이다…ㅎㅎ 20명이 하는 평가였기에 지점장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누가 썼는지 유추해낼 수 있었기에 이 상사 평가는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평가였다. 무조건 만점을 주고 장점들을 단점인 척 적어 내는 과제일 뿐 진정한 상사 평가가 아니었다.

신입사원이던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주 솔직히 상사에 대한 피드백을 적은 거다. 아니 이럴 거면 이게 왜 있는 거야… 싶었지만 원래 이런 꼰대 기업에서는 이런 형식적인 형식이 굉장히 중요한 모양이었다. 어찌 되었건 이미 상사평가를 여러 차례 해본 선배들은 모두 다 ‘~임’ ‘~하였음.’으로 어미를 축약했기에 공손한 어미는 누가 봐도 처음 해본 신입사원의 소행임이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사수는 막내가 대장에게 원펀치를 날렸다며 이렇게 쓴 직원은 너밖에 없을 거라고 했다. 내 딴에는 정말 고르고 골라 회사용어로 공손하게 적은 것인데 이게 원펀치라니… 도대체 얼마나 어떻게 더 포장을 해야 하는 건가…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체회의에서 몇 개월간 자기반성 없이 몇 시간을 떠들며 혼을 빼던 지점장이 고작 1시간을 떠들고 회의를 종료하려 했다.

너무 말을 많이 하면 안 되니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할게요!

아차 싶었다… 그도 누가 썼는지 대충 가늠이 된다는 눈치이었기에 괜히 나를 바라보며 하는 말 같았다. 실제로도 그랬을지도… 지점장이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그는 말이 많았다. 우리는 늘 인질처럼 회의실에 붙잡혀 있기 일쑤였다. 결국 내게 첫 상사 평가는 직원들의 상사 평가로 상사를 변화시킬 수 없으니 직장생활에서는 바른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큰 교훈을 주었다. 형식에는 형식적으로 답하는 게 직장생활에서 말하는 눈치라는 것이니…

사회 생활에 찌든 나의 모습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어느새 상사 평가에서 단점 같지 않은 단점을 그럴싸하게 적어내는 나를 보면 괜히 사회 생활에 흑화된 거 같아 애잔하기도 하다. 그러니 눈치 없을 수 있는 건 어쩌면 신입사원의 특권일지도 모른다. 그때는 귀엽게라도 봐줄 수 있으니… 서툴지만 순수한 그 눈치 없는 순백의 시간…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더 크게 적을 거다.

말이 너무 많으셔서 회의 끝나면 바지가 땀으로 젖어요!!

원문: 작은버섯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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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오은영 박사님에 열광할까 https://ppss.kr/archives/245464 Tue, 31 Aug 2021 01:06:38 +0000 http://3.36.87.144/?p=245464 아이를 키우는 부모뿐 아니라 2030 세대도 오은영 박사에 열광한다. 나 또한 ‘금쪽같은 내새끼’의 애청자다. 누군가는 자식을 키워보지도 않는 네가 웬 육아 프로그램이냐고 묻기도 했지만, 자식 없는 나나 내 또래는 ‘금쪽같은 내새끼’를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위로받고 부모의 마음도 이해하게 된다고 하니 오은영 박사는 단순히 육아 코칭이 아닌 마음코칭을 하고 계신 듯하다.

오은영 박사는 미운 짓만 골라 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익숙지 않거나 사랑이 고픈 아이, 그런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밉기도 하다는 부모 혹은 최선을 다하지만 아이에게는 늘 부족하다는 죄책감을 가진 부모의 마음에 공감하고 어루만져준다.

 

“아이는 왜 이렇게 하는 걸까요?”

먼저 오은영 박사는 다른 패널들은 경악하기도 하는 아이의 별난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며 부모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이가 왜 이렇게 행동한다고 생각하세요?

아이는 왜 이렇게 하는 걸까요?

엄마는 아이가 이렇게 하는 이유를 아세요?

단순히 아이의 행동만 보는 게 아니라, 아이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아이에게 빙의해 아이의 마음을 읽어낸다. 우리는 단순히 행동만 보며 아이를 탓하다가도 아이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듣고 나며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뒤늦게 깨닫게 된다.

아직 어린아이는 어른처럼 이성적이고 성숙하게 자신의 상황이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 언어가 서툴러서, 감정표현이 서툴러서 혹은 부모에 대한 신뢰가 부족해서 아이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때로는 과격하게 혹은 잘못된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런 행동이 부모에게도 자신에게도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어떤 아이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스스로에게 벌주며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오은영 박사는 아이들의 행동을 단순히 옳고 그르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이 아이의 입장에서는 정당하다고 공감해주며 다만 어떻게 사회적으로 옳은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 도와준다.

마음이 불안해서 본인 혹은 엄마의 신체를 만지는 아이가 불안할 때는, 그와 비슷한 다른 물건을 만지며 불안함을 달랠 수 있도록 한다. 언어나 감정표현이 서툴러서 엄마에게 폭력적으로 구는 아이는 절대 폭력적인 성향이 아니라고 말하며, 그들이 좀 더 부드럽고 편한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알려준다.

사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건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 속상한 마음, 화나는 마음을 어른스럽게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상대에게 화를 내거나 다른 방식으로 괴롭히며 내 감정을 알아주길 원했다. 내 마음을 솔직한 말로 상대에게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때로 말없이 꾹 참다가 혼자 상대의 마음을 곡해하거나 나의 서운함을 증폭해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 때가 있다.

나 속상해. 나 서운해. 나 슬펐어. 나 아팠어. 나 화났어.

솔직하게 말하고 나면 조금은 풀릴 마음을, 그저 나도 제대로 못 알아챌 만큼 깊은 곳에 숨겨둔다. 그러다 갑자기 기분 상할 포인트가 딱 건드려지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 터지고 만다. 마치 별것도 아닌 일에 울며 보채는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그렇게 터진 감정으로 나도 상대방도 슬프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혼자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는 쌓이고 쌓여서 터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불편한 내 마음을 내가 먼저 꺼내본다. 그리고 상대에게 내 마음을 말로 표현한다. 내가 너의 이런 행동이나 말로 기분이 상했다고. 감정표현에 서툰 내 마음속의 금쪽이가 오은영 박사의 금쪽 처방으로 변하는 걸 보면 오 박사님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리 안에 감정표현이 서툰 금쪽이들을 모두 변화시켜주고 계신다.

 

누군가의 자식이었던 부모에게도

오은영 박사님은 아이에게 불안을 주거나 결핍을 느끼게 하는 부모의 양육하는 방법을 지적하며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부모의 어린 시절을 물어본다. 단순히 지적만으로 우리는 쉽게 바뀌지 못한다. 그렇게 행동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 나의 행동을 이해하고 고쳐나갈 수 있다.

엄마에게 물어볼게요.엄마에게 어떤 일이 있었죠?

아빠의 어린 시절은 어땠죠?

부모에게도 어린 시절 상처(결핍)를 잊지 못하는 내면아이가 있다는 것을 위로해준다. ‘사랑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아빠는 사랑하는 딸에게 자신의 마음처럼 사랑을 표현하기 어려워한다. 아이에게 사랑 표현하는 걸 어색해하던 엄마에게는 자신을 사랑하기는커녕 원망만 하던 아버지가 있었다. 자식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게 서툰 엄마와 아빠에게 오은영 박사님은 그들의 어린 시절 금쪽이를 보듬어준다.

네가 많이 힘들었겠구나. 괜찮아. 지금까지 충분히 잘해왔어. 너는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란다.

내가 엄마의 이모가 되어줄게요! 힘들 땐 은영 이모한테 기대요.

이제는 커버린 어른도 어린 시절 자신의 결핍을 보듬어주는 말에 눈물을 터뜨린다. 자신조차 보듬어주지 못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부모가 되어서야 꺼내 보며 다독인다. 나의 금쪽같은 내면아이를 마주하며 위로할 때 나의 결핍은 나에게서 끝이 날 수 있다. 내가 나를 위로하고 보살필 때 나의 결핍이 아이에게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오 박사는 자신의 결핍으로 아이에게도 불안과 결핍을 준다며 미안해하는 부모를 위로한다. 인간은 모두 완벽하지 않다고. 여기까지 나와서 아이를 위해 배우려고, 바뀌려고 하시는 그 용기라면 지금의 난관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괜찮다고 위로해주신다.

요즘은 이렇게 육아를 할 때 부모가 책도 보고 맘카페에서 공부도 하고 육아 프로그램도 보면서 부모의 자세를, 아이의 마음을 공부한다. 하지만 1980–1990년대 혹은 더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네 부모님, 조부모님들은 먹고살기에 치여 자신의 마음도 아이의 마음을 돌봐줄 여유도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 사랑을 받았지만 완벽하지 않은 육아 속에서 각자 크고 작은 결핍을 가지고 살아간다.

또한, 나의 결핍을 보며 부모의 결핍도 바라보게 된다. 나의 부모 또한 그들의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 표현을 받지 못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나의 부모도 부모로부터 받은 결핍, 다독이지 못한 내면아이로 인해 아직도 자라지 못한 마음으로 자신도 모르게 나에게 상처를 주게 됐을 거라 생각하고 보면 부모를 좀 더 인간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다고 나의 내면아이를 돌보며 노력하여 나로부터 그 결핍의 대물림을 끊어낼 수 있다고 말하는 오 박사님의 위로는 이제는 부모가 될 금쪽이들을 위로해준다.

 

우리 모두의 ‘내면아이’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한다. 그만큼 자식은 부모를 보고 그대로 배우기에 흔히 자식의 잘못은 모두 부모의 영향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성인군자처럼 정말 참고 참으며 양육하지만 엇나가기만 하는 금쪽이를 보면서 부모는 또 자신이 참기만 해서 그런 문제가 발생한 건 아닌지 모든 걸 자신의 잘못으로 돌린다. 최선을 다했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금쪽이를 보며 어찌할 바 모르는 부모에게 오 박사는 말한다.

자녀의 문제가 모두 부모의 잘못만은 아니에요. 부모가 잘못한 게 없음에도 아이의 타고난 기질과 환경적 요인으로 예민할 수 있어요. 처음부터 아이의 기질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춰 양육하긴 쉽지 않죠. 이제 이 아이의 기질을 알았으니 이제부터라도 이렇게 변하시면 되는 거예요.

이는 자식의 문제를 자신의 잘못으로 죄책감을 가지며 고뇌하던 수많은 부모에게 아이를 제대로 양육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덜어준다. 그리고 나와 다른 기질을 가진 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 솔루션을 준다. 아이의 잘못도 부모님의 잘못도 아니다. 다만 부모도 내가 경험해 온 기준으로 아이를 바라보니 나와 정반대의 기질의 아이가 버거울 수 있고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나와 다른 아이의 기질을 알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예민한 금쪽이의 입장에서 나의 예민한 구석이나 못난 구석은 모두 부모를 탓하며 원망하곤 했다. ‘엄마가 이래서 나는 이런 상처가 있어. 이런 성향은 아빠에게 물려받은 게 분명해!’ 이렇게 자식인 나의 문제를 모두 부모의 잘못으로 돌리며 원망의 화살을 던지곤 했다.

되돌아보면 부모와 나는 다른 기질을 가졌기에 내가 느낀 감정을 부모가 전부 알아채고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자식도 부모도 완벽한 인간이 아니기에 서로의 기질을 알지 못하고 상처를 받았던 우리의 관계를 조금은 너그러이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오 박사님은 상처를 가진 금쪽이를 보며 함께 눈물을 흘리신다. 아이의 마음을 아이의 눈높이에서 이해하는 그녀의 공감만으로도, 우리는 미성숙하고 옹졸하게만 느껴졌던 우리의 내면아이를 위로받는다. 어른스럽지 못하고 못났다고 생각했던 내 내면아이가 이제야 따스한 손길로 어루만져진다. 이렇게 매주 ‘금쪽같은 내새끼’에서 울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며 하나씩 부모와 자식의 마음을 배워나간다.

사랑합니다! 오은영 선생님!

원문: 작은버섯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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