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 https://ppss.kr 필자와 독자의 경계가 없는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Mon, 16 Jan 2023 03:09:57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5.8.10 https://ppss.kr/wp-content/uploads/2015/07/ppss-100x100.png ㅍㅍㅅㅅ https://ppss.kr 32 32 산세리프가 로고들을 잡아먹는다 https://ppss.kr/archives/65284 https://ppss.kr/archives/65284#respond Mon, 08 Jan 2018 12:30:01 +0000 http://3.36.87.144/?p=65284 ※ 위 글은 CA Korea 2015년 10월호 ‘INSIGHT’에 기고한 원고를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책의 감각적인 첫 문장은 독자를 설레게 하는 마력을 지닌다. 칼 마르크스가 1848년 발표한 <공산당 선언>의 서문은 그런 흡입력을 주는 예 중 하나다. 이 역사적인 글은 이렇게 자기 존재를 알린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책처럼 아이덴티티 디자인 또한 첫인상이 생명이다. 대중이 가장 먼저 접하는 브랜드의 얼굴 아니던가. 세상 모든 브랜드가 큰돈을 투자해 세심한 부분 하나까지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로고에서는 형상을 양식화한 심볼 뿐 아니라 서체 또한 무척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서체의 미묘한 곡선과 직선의 교차만으로도 수많은 느낌을 직접, 혹은 은유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심볼 없이 글자만으로 구성한 ‘로고 타입(logo type)’을 떠올려보면 서체가 만들어내는 묵직함이란 결코 무시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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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처럼 획 끄트머리에 있는 작게 돌출된 부분, 즉 serif가 있는 폰트를 Serif 체, 오른쪽처럼 없는 폰트를 Sans-Serif 체라고 한다. 한글 서체의 명조와 고딕이 주는 느낌의 차이와 비슷하다.

1980년대 이후 포스트 모더니즘에 얻어맞긴 했지만, 글자 끝에 돌기(Serif)가 없는 산세리프(Sans Serif) 서체의 인기는 21세기 로고 디자인 세계에서 여전하다. 특히 ICT 업계가 바치는 끊임 없는 구애의 격렬함은 놀랄 정도다.

한 번 가만히 생각해보시라. 우리 삶에 깊게 침투하는 브랜드 중 우아한 돌기로 제 매무새를 마무리한 경우가 과연 얼마나 있는지. 그 몇 안 되는 희귀한 예였던 구글마저 17년 동안 고수하던 로고를 리뉴얼하며 로고 타입 서체를 산세리프로 확 바꿔버렸다. 세리프는 이제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칼 마르크스가 지금 살아 있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가령 이렇게 말이다.

“하나의 유령이 로고를 배회하고 있다. 산세리프라는 유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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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로고 리뉴얼 전(위), 리뉴얼 후(아래)

산세리프가 굳건한 인기를 유지하며 존속 가능한 이유는 간단하다. 명징하고 명료한 가독성과 중립적인 성격, 그리고 현대적인 이미지 덕분이다. 전 세계를 휩쓸었던 20세기 중반과 딱히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그 저변에는 일련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로고를 구현하는 매체가 종이에서 스크린으로 확장하면서 명료한 가독성은 예전보다 더 강력한 선택 요인으로 성장했다. 잉크와 종이의 세계에만 신경 쓰던 과거와 달리 다양한 플랫폼과 디바이스 환경을 염두에 두어야만 하는 상황이 찾아왔다.

특히 웨어러블 시장의 성장으로 매우 작은 스크린이 필요한 시점에서 돌기 없는 산세리프는 세리프보다 가독성 면에서 탁월한 장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더불어 요즘처럼 분야를 넘나들며 활약하는 다학제 기반의 기업 문화가 퍼질수록 로고의 중립적인 성격은 더욱더 필요한 덕목이다. 게다가 자고 일어나면 무언가 바뀌는 급속한 기술 발전의 시대에 기업은 자연스레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추구하기 마련이다.

산세리프 서체는 지금 시대의 로고 디자인이 원하는 특징을 두루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앞으로 ‘만국의 로고여 산세리프로 단결하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만으로 로고의 성공이 보장된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구글은 자사의 로고를 바꾸게 된 몇 가지 이유를 명확히 밝히면서 로고 파일의 크기를 언급했다. “예전 로고의 크기는 약 1만4000바이트였던 데 비해 새롭게 바꾼 파일은 단 300여 바이트에 불과해 인터넷 접속 속도가 느린 곳에서도 충분히 매끄럽게 로고를 접할 수 있다. ‘구글 매직’이 어느 곳에서나 발휘되길 바란다.”는 말처럼 말이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로고 이미지를 전달하던 기업의 태도가 증발했다. 오직 사용자가 브랜드 이미지를 좀 더 자발적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상황을 안배하는 노력이 최우선으로 깔렸다. 이런 접근 방식의 변화를 놓친 채 세리프와 산세리프 간 돌기 유무가 만드는 수치의 차이에 경도되어 ‘산세리프 만세’를 외친다면 그만큼 근시안적인 안목도 없을 것이다.

Kiev, Ukraine - October 17, 2012 - A logotype collection of well-known social media brand's printed on paper. Include Facebook, YouTube, Twitter, Google Plus, Instagram, Vimeo, Flickr, Myspace, Tumblr, Livejournal, Foursquare and more other logos.
잘 만든 로고와 그렇지 않은 로고의 구분은 단순히 산세리프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더불어 성공적인 로고 디자인을 위해서 기존 로고에 대한 관습을 버리는 태도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이미 우리는 이제 로고가 제 자리에 가만히 있는 박제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제너러티브(generative) 로고를 비롯한 플렉시블(flexible) 로고의 존재는 심볼이나 서체 등 단순히 로고의 시각 요소에만 매달리던 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멈춘 상태로 형태와 색깔의 차별화를 꾀하던 로고 디자인은 ICT 시대에 시간성을 담보한 움직임을 받아들이면서 ‘인상’이란 개념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 눈으로 명백히 파악하는 게 로고의 미덕이었다면 이제는 천변만화의 개념을 기반으로 물리적인 움직임과 그 잔상의 독특함까지 로고의 범위에 포함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 모른다.

과연 이럴 때에도 산세리프의 장점이 지속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무릇 세상에 변치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만이 언제나 변치 않는 진리’라는 고금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맥락과 다가오는 변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눈앞에 아른거리는 대세에만 침잠한다면 그 차이의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할 것이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로 말이다.

원문: 허핑턴포스트 / 글: 전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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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독점하지 않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디자인 https://ppss.kr/archives/65286 https://ppss.kr/archives/65286#respond Mon, 12 Dec 2016 09:02:11 +0000 http://3.36.87.144/?p=65286 얼마 전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이번에 손에 들어온 책의 제목은 <오픈 디자인 Open Design Now>. 지은이 대신 엮은이가 몇 명 있다. 바스 판 아벌, 뤼카스 에버르스, 로얼 클라선, 피터 트록슬러.

특유의 발음 덕분에 혹시 네덜란드 출신인가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책의 기획을 크리에이티브커먼즈네덜란드(Creative Commons Netherlands), 프렘셀라(Premsela, the Netherlands Institute for Design and Fashion), 바그 소사이어티(Waag Society) 등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오픈 콘텐츠 기관에서 담당했다.

이 책은 ‘오픈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란 대주제에 속한 22편의 글이 244페이지, ‘세상을 바꾸는 오픈 디자인 이야기’란 이름 아래 모인 다양한 예시와 ‘찾아보기’ 란까지 합치면 총 368페이지 분량으로 정갈한 노란색 커버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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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교보문고

<오픈 디자인>이란 제목이 걸어가는 생각의 길은 실로 강력하다. 책 커버 상단에 가지런히 쓰여있는 ‘누구도 독점하지 않는 디자인’, ‘누구나 할 수 있는 디자인’이란 짧은 문구 또한 위험하지만 뛰어들 수밖에 없는 향기를 담뿍 풍긴다. 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시선이 매 페이지 페이지마다 깊숙이 박혀 뽑힐 생각을 하지 않는다. 덕분에 시간을 적잖이 투자했지만 아직도 책의 초반을 훑고 있다.

하지만 내 정신은 고양되다 못해 황홀할 지경이다. 평소 고민하던 주제와 정확히 일치하는 글을 읽는 경험, 그때부터 시작되는 수많은 질문과 고민이 단 몇 편의 글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만일 나머지 부분을 모두 읽는다면 어떤 지적 변화를 겪게 될지 그 기대감에 스스로 어찌할 바 모를 정도다.

예를 들어 한 필자는 디자인의 핵심이라 불리는 창의성을 현대적 맥락에서 너무도 명징하게 정의한다.

오늘날 대중은 적극적인 문화 향유자이자 문화 생산자로서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창작자 그룹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결국 창의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탄생을 의미한다. 창의성은 결코 특수성과 전문성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과 보편성을 갖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기존 창작자들도 좀 더 개방적인 유연한 문화적 생태계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창작하고 그 결과물을 대중과 공유함으로써 창의성의 기존 관념을 바꿔놨다. 천부적 재능을 가진 전문적 창작자의 양성과 폐쇄적 권리 보호에 따른 창의성의 육성이 아니라 다양한 정보와 경험을 기초로 자유로운 사고와 상상력에 의한 지속적인 문화 경험이 만들어 내는, 이른바 ‘열린 창의성’이 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디자이너의 이중적인 입장을 날카롭게 꼬집는 부분을 보라. 아, 가슴이 뻥 뚫린다.

오픈 디자인에 관한 한 가능론자들은 오픈 디자인이 정확히 무엇이 될지 혹은 어디로 이어질지 알지 못하지만, 오픈 디자인이 가져다줄 새로운 기회에 흥분하고 열광한다. 가능론자들은 오픈 디자인이 디자인 업계에 가져오는 혼란에 주목하고, 그 혼란에 내재한 잠재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반응한다.

반면 현실주의자는 오픈 디자인에 두려움과 불신으로 반응한다. 현실주의자는 무언가를 만드는 데 들어간 온갖 노고가 헛수고가 되어버릴까 봐 두려워한다. 또는 누구나 오픈 디자인을 활용할 수 있다면 아마추어가 아름다운 디자인 세계를 오염시킬 거라고 탄식하면서 오픈 디자인 때문에 품질이 떨어지는 디자인 제품이 마구 양산될 거라고 주장하는 디자이너도 있을 수 있다.

이런 논의는 사실 다른 영역, 다른 분야에서도 있었다. 해킹과 관련해서도 촉발됐고, 1960년 해적 라디오 방송, 1990년대 후반 블로그가 출현했을 때처럼 미디어와 언론에서도 지겹도록 경험했다. 이제 그 논의가 디자인의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약 1년 전 ‘디자인의 종말 이후의 디자인’이란 글을 쓰면서 앞으로 새로운 환경에서 디자이너는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때 스스로 제시한 키워드는 ‘안내자(guide)’였다. 디자인의 민주화와 맞물려 참여 형태로 진행되는 디자인의 폭발적인 확산을 접한 디자이너는 종전까지 누리던 창조와 생산의 독점에서 한 발 내려와 점점 붕괴하는(혹은 이미 붕괴해 버린) 기술적인 장벽을 뚫고 창조성의 세계로 넘어오는 대중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을 필요가 있다.

창의성에 대한 열린 개념이 보편화되면 창의성에 대한 요구가 사회 각지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할 것이다. 마치 수능 시스템에 발맞춰 입시를 위한 온갖 학원과 교육자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듯 말이다. 예전 디자이너가 사람들의 숨은 욕구를 귀신처럼 콕 맞출 때 마치 ‘창의력 구루’마냥 추앙받았다면 이제는 대중의 창의성을 고조하고 그들이 더 효율적으로 창의력을 발산하며 결과물을 엮어낼 수 있도록 친절한 가이드이자 일종의 선생님으로 디자이너의 역할을 확장하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대중의 자유로운 취향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 ‘좋은 취향’은 무엇인가 정립하려는 시도도 존재할 것이다. 이때 궁극적으로 정부 차원의 노력 또한 필요하다. 초등교육기관에서 창의성 교육이 선행되어야 하며 공공 디자인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창의성의 미감이 균질해져야 한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전문가들이 국정 과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사회 전반에 걸친 창의력 지수를 높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디지털 사회로의 이행이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변화를 겪는 현대 사회에서 이제 디자인의 변화와 이를 받아들이는 적절한 태도는 급선무다.

책 <오픈 디자인>은 나름의 입장에서 그 해답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내가 아직 책의 진도를 나가지 않는 이유는 읽기에 지루해서가 아니라 같은 부분을 보고 또 보더라도 끝나지 않는 호기심과 질문의 물줄기를 스스로 막기에 역부족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직 책의 작은 부분밖에 읽지 못한 나조차 이런 생각을 하는데 전체를 모두 통달한 사람의 심경은 어떨는지.

디자이너와 대중을 나눌 것 없이 이 노란 책을 한 번 접해보길 강력하게 권한다. 그리고 아직 지식의 토막 조각밖에 삼키지 못한 내게 많은 인사이트를 전달해주면 좋겠다. 열린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지식의 공유니까 말이다.

원문 : 허핑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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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약탈자 전성시대 : 디자이너가 작품을 보호하는 법 https://ppss.kr/archives/65288 https://ppss.kr/archives/65288#respond Wed, 30 Dec 2015 07:51:37 +0000 http://3.36.87.144/?p=65288 1

얼마 전 JTBC 뉴스룸에 디자인 관련 뉴스가 떴다. 혹시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디자인계의 불공정한 면이 화제로 다루어졌다. 이때 문장 하나가 머리 속을 스쳤다.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 신문이든 지상파든 종합편성채널이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디자인 산업은 아직 미디어에서 다뤄주는 것에 감사한 업종인 걸까. 어쨌든 그 고마운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랜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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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JTBC 뉴스룸

이랜드가 젊은 디자이너의 디자인 제품을 그대로 베껴 그룹에서 운영하는 라이프스타일샵에 유통한다는 소식이었는데 그 수준이 정말 가관이었다. 표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준을 넘어 제품을 세밀하게 똑같이 베끼고 그것도 모자라 전 세계 모조품의 메카인 중국 이우시의 한 공장에 OEM 형식으로 직접 맡기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접하자 그 엄청난 창의력과 행동력에 머리를 흠씬 두들겨 맞는 느낌이 들어 신음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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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랜드리테일

이랜드를 시작으로 다른 표절, 카피의 예를 설명하는 뉴스를 계속 보면서 유독 내 시선을 바로 잡아끄는 어휘가 있었다. 바로 ‘디자인 약탈자’였다. 지금 우리나라 디자인 산업의 상황을 이처럼 거칠고 명확하게 표현한 단어가 있었던가. 이랜드처럼 주도면밀한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사소한 표절과 카피는 일상적이지 않던가.

디자인 약탈자는 우리 사회 곳곳에 암약하고 있다. 바야흐로 디자인 약탈자 전성시대다. 이런 세상에서 디자이너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디자인 특허 전문 변리사 김웅은 이제 디자이너도 법을 알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디자인이 어떤 법적인 보호를 받는지, 보호 수단은 무엇인지, 이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은 얼마인지 정도는 창작자로서 꼭 알아야 할 의무라는 것이다. 특히 표절 문제는 법적 조치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미 디자인권, 특허권, 상표권 등 명확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면 소송 이전에 합의에 도달하기 쉽고 분쟁조정 시 유리한 판단을 받기 쉽다.

이런 지식은 디자이너가 사회에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 필수적으로 교육받아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학교에서도 창의력을 극대화하는 연습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디자이너가 누려야 할 최소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호신술 연마가 시급하다. 법적인 무지는 디자이너 스스로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것일 뿐 누구도 배려해주지 않는 부분이라는 그의 말이 더욱 마음 깊숙이 와 닿는 지점이다.

법적 지식과 함께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은, 디자이너의 여론을 내뱉을 수 있는 네트워크의 형성이다. 다수의 디자이너가 모여 목소리를 모은다면 적어도 승소를 예상했던 사건이 거대 기업이나 권력의 입김으로 어처구니없게 패소할 일을 자초하진 않기 때문이다. 협회나 단체를 통한 여론뿐 아니라 SNS 등 비공식적인 채널까지 염두에 두고 폭넓은 유대 관계를 갖는 게 필요하다.

이게 모두 다 뜬구름 잡는 소리에다 예전 백악기 시대부터 매번 나오던 해결책이라고 비꼬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조용히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디자이너가 자신의 창작물을 디자인권으로 보호할 수 있는 ‘골든 타임’에 대해 알고 있으신가요?”

6개월이라는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 이에겐 개인적으로 한 가지 부탁하고 싶다.

“너나 잘하세요.”

디자이너의 권익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남이 대신 지켜줄 정도로 디자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배려가 그토록 깊어 보이진 않으니 말이다.

출처 : 허핑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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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으로 문제 없는 EXO의 표절과, 그 전말 https://ppss.kr/archives/36400 https://ppss.kr/archives/36400#respond Wed, 21 Jan 2015 04:13:29 +0000 http://3.36.87.144/?p=36400 결론은 그래픽 디자이너의 소스에 비용을 지불해 ‘지금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과정을 보면, 표절하다 걸려서 뒷처리한 게 맞다.

 

사건의 시작

12월 3일에 엑소 컴백 티저 영상이 공개된 후 12월 5일에 orisonofkyungsoo라는 블로그 유저가, 스웨덴 디자이너인 Erik Söderberg에게 너네 그래픽 작업이 EXO 영상에 쓰였는데 표절 아니냐며 이의를 제기한다. orisonofkyungsoo에 따르면 당시 자기가 찌를 때 Erik Söderberg와 그의 동료 2명은 EXO 비디오에 자기 작업이 소스로 쓰인 걸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해당 포스트는 에릭 소더버그(Erik Söderberg) 외 2명의 국제적인 디자이너인 카를로 베가(Carlo Vega)와 알렉산더 누식(Alexander Nusic)의 그래픽 아트와 “EXO 2015 COMING SOON”이라는 제목의 엑소 티저 비디오에 나온 그래픽 영상을 비교해 놓았다.”

“The post shows a comparison between graphic art by Erik Söderberg and two other international designers – Carlo Vega and Alexander Nusic – and graphics that appear on EXO’s teaser video titled “EXO 2015 COMING SOON.” <Soompi.com 기사>

 

사건의 진행

그 후 Erik Söderberg와 그의 동료가 한국에 연락을 취했는데 후속조치가 없자 빡친 스웨디쉬들은 저작권 문제가 얽혀있다고 유투브에 이의를 제기한다. 유투브는 저작권 시비가 걸렸다는 친절한 안내문과 함께 해당 동영상 서비스를 중단했다. 그제야 ‘서동혁’이란 인물이 디자이너에게 연락해 저작권 문제를 해결한 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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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They, Them은 SM인지 VM 프로덕션인지 정확치 않지만 VM프로덕션 측이 “이런 상황이 발생해 당황스럽고 작업자에게 연락해 조치를 취했다”니 VM프로덕션일 가능성이 높다. 암튼 디자이너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모든 문제가 처리됐다”가 무슨 의미겠는가. 이에 대해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최소 1명의 아티스트와 함께 이들과 먼저 연락하였으나 그들은 변경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는 이를 유투브에 보고했다. 그러자 그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였고 이제는 정식 라이센스를 통해 해결되었다.

Me and at least one more artist contacted them first but they did not change it, so we reported to youtube.They said it was a big mistake and it is now solved by proper licensing. (어떤 열혈팬이 디자이너에게 트위터를 날려서 얻은 정보)

이는 VM 프로덕션의 이야기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여기에서는 그저 돈을 주고 사용한 것처럼 밝히고 있지만,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들으면, 표절이 적발된 후 돈으로 처리한 쪽에 가깝다.

“이와 관련해 영상을 제작한 VM프로덕션 측은 “해당 소스는 그래픽 작업자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허락을 받아 사용한 것으로 표절이 절대 아니다”고 밝혔다. 제작사 측은 이어 “이런 상황이 발생해 당황스럽고 작업자에게 연락해 조치를 취했다.

현재 정상적으로 유튜브에서 서비스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표절을 주장했던 에릭 소더버그 역시 지난 14일 자신의 트위터에 “엑소의 컴백 예고 영상을 온라인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며 관련 상황이 해결됐다고 알렸다.” <뉴스1 기사>

 

사건의 결말

현재 SM은 “표절”이 아니라 원소스를 “구입”한 정당한 작업이니까 괜히 시비걸다 고소미 먹지 말라는 묵직한 조언을 던진 상태다. 여기서 SM의 빡침이 느껴진다. 잘못은 VM 프로덕션에서 한 건데 자기네가 똥물을 뒤집어 쓰게 생겼으니.

근데 진짜 SM에도 잘못이 없을까 궁금하다. “난 외주 줬는데 걔네들이 잘못했음. 난 몰라. “라고 하기엔 민희진 아트 디렉터를 주축으로 디자인 조직이 따로 있을 정도로 디자인을 전략적으로 운용하는 SM 아니던가.

SM says “본건과 관련,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작성 및 게재, 유포 등 불법 행위 등으로 인해 발생한 제반 문제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 (관련 기사)

 

잡설

난 이런 현상이 무척 좋다. 표절이 좋다는 게 아니라는 건 누구나 이해하겠고, 디지털로 인한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리고 개인이 1인 미디어를 통해 직접 내지르는 목소리가 SNS 공유를 통해 세계 곳곳으로 확산이 되면 될수록, 이제 디자인 분야의 표절은 투명성이라는 이름 아래 두손 두발 다 들 수 밖에 없다.

특히 시각적인 유사성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확인이 가능한 수준이라 감시자가 수십 억명에 가까운 초투명사회에 진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 하지만 이런 적발률이 높아진다고 해도 해당 기업에서 잡아떼면 끝 아닌가. MBC, KBS, 락앤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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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SM은 그들과 근본적으로 필드가 다르다. 전세계 소비자를 상대로 영업을 하는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표절에 대해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우리나라 소비자와 창작물을 중시하는 외국 소비자가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한 마디로 글로벌 차원에서 눈가리고 아웅하다가 큰 화를 당할 거라는 걸 명확히 파악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처럼 아니라고 잡아떼기엔 표절 의혹과 증거가 급속히 퍼져서 리스크 관리는 일이 터진 후 시작할 수 있고 무엇보다 표절이란 단어의 ‘언급’ 자체가 기업의 신뢰도를 급속히 깎아먹는 점이 문제다. 정말 표절을 했느냐 안했느냐 그 사실 관계와 상관 없이, 다수의 불특정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정보가 노출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브랜딩 구축에 들인 돈과 저작권료를 비교하면 저작권을 미리미리 해결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특히 이미지가 중요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는 점도 한 몫 하지만.

 

러브 마크가 필요한 엔터테인먼트 산업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MBC, KBS, 락앤락이란 기업 브랜드는 ‘러브 마크’가 없다. 하지만 SM은 스스로 K-POP의 대표격으로 브랜드 가치를 쌓아왔고 무엇보다 소속 가수들은 팬심이라는 이름의 ‘러브 마크’가 새겨져있는 확고한 브랜드다. EXO라는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일이 곧 남의 일이 아니다. 그들의 가치를 공유하고 그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그 소비자들이 예전처럼 무조건적인 추종을 하지 않고 자존감을 갖는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빠순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며 아이돌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위해 온갖 행동을 하며 소속사까지 변호했다면, 이번 사건을 접한 EXO 팬들의 반응 상당수가 문제점을 지적하며 수치심을 호소하고 있다. ‘모자랄 게 없는’ 내 스타가 ‘남의 것을 탐하는 시정잡배’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 말이다.

이런 빠순만 있는 게 아니다!
이런 빠순만 있는 게 아니다!

수치심이야 말로 인간의 직접적인 행동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요인이다. 수치심에서 시작한 분노심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면 그 메테오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스타’가 아니라 ‘소속사’가 될 것이다.

암튼 디자이너는 애플에게 영원히 감사해야 한다. 디자인 저작권에 대한 가치를 최고치로 높인 게 애플의 ‘너고소’라고 믿기 때문이다. 애플의 고소 사건은 ‘디자인이 곧 자산’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주지시키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왔다.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라는 격언이 디자인에도 적용되는 건 다 그 덕분 아닐까. 땡큐 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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