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 https://ppss.kr 필자와 독자의 경계가 없는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Fri, 13 Jan 2023 15:21:10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5.8.10 https://ppss.kr/wp-content/uploads/2015/07/ppss-100x100.png ㅍㅍㅅㅅ https://ppss.kr 32 32 밥도 먹고 술도 먹다 보면 논문도 쓴다 https://ppss.kr/archives/213240 Thu, 12 Mar 2020 02:50:42 +0000 http://3.36.87.144/?p=213240 박사 졸업하고 10년 조금 넘는 세월 동안 논문을 이것저것 썼는데, 그중에서 대단하지는 않지만 과정이 재미있었던 논문이 하나 있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다시 보면 나 혼자 나름 뿌듯해할 수 있는 논문이다. 시작은 이 논문이다.

2003년에 출판된 논문인데, OR 분야에서는 아주 드물게 1,700회 이상의 인용 수를 자랑하며 로우버스트 옵티미제이션(robust optimization)가 크게 유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박사 과정 시절 열심히 읽었던 논문이다.

2009년 여름에 한국 들어가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술 마시다가 전북대학교 산업공학과의 이태한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연락을 주고받다가, 이태한 교수님께서 2011년에 연구년을 버팔로로 오시게 되었다. 같이 밥 먹고 술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같이하다가 로우버스트 옵티미제이션 분야에 둘 다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밥과 술이 쌓이더니 논문을 한 편 같이 썼다.

정신 차려 보니 논문이 있었다?

이태한 교수님이 이 논문 이야기도 해주셨다.

『경영 과학과 금융 공학(Management Science and Financial Engineering, MSFE)』은 한국경영과학회에서 발행하던 저널인데, 지금은 폐간되어 『한국경영과학회지(Journal of the Korean Operations Research and Management Science Society)』로 통합되었다. 심지어 저널의 이름도 위 논문이 출판될 때는 ‘경영 과학 국제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Management Science)’이었던 것 같은데, 그 이름으로는 검색도 잘 안 된다.

아무튼 이런저런 사연에다가 미국에서 대학원 교육을 받은 나는 아무래도 잘 모를 수 밖에 없던 논문이었다. 위 논문의 제2 저자이신 이경식 교수님은 현재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에 계시는데, 이태한 교수님과는 박사과정을 같은 연구실에서 마쳤다. 그래서 이태한 교수님께서 위 논문을 알고 계셨던 것.

벌치마스와 심의 2003년 논문에는 어떤 문제를 n+1번 풀면 로우버스트 옵티미제이션 문제의 최적화를 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박경철과 이경식의 2007년 논문에서는 그 숫자를 n+1-\Gamma번만 풀면 된다는 것을 보였다. 물론 \Gamma값에 따라 다르지만, 어쨌든 계산량이 조금 줄어든다. 작지만 재미있는 결과이다.

이태한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자기가 그냥 계산하다 보니 계산을 한 번 더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n-\Gamma. 이걸 어디다가 출판하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본인만 알고 계신다고 했다. 그러다가 이태한 교수님은 전북대학교로 돌아가셨고, 나는 여전히 버팔로에서 빙판길을 운전하며 살았다.

2013년 어느 날 구글 스콜라가 다음 논문을 알려주었다. ‘Robust Optimization’을 알림 키워드로 설정해 두었기 때문이다.

4OR은 분기별 운영 연구 저널(Quarterly Journal of Operations Research)의 줄임말로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의 OR 학회가 연합해서 발간하는 저널이다. 그러니까 MSFE 마냥 로컬 오스카 저널이다. 이 논문에는 이런저런 다른 결과도 있지만, 주로 위에 말한 계산을 n+2-\Gamma번만 하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응?

박경철과 이경식의 2007년 논문보다 하나 더 많네? 심지어 박경철과 이경식의 2007년 논문을 모르고 있다. 해외에서는 검색도 잘 안 되고, 구하기도 어려운 한국 학회에서 발행하는 저널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한국 학자가 한국 학회 저널에 발행한 논문의 결과가 무시당한 것 같은 마음도 들고 이태한 교수님의 n-\Gamma 아이디어를 논문으로 제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태한 교수님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내가 그것의 응용한 내용을 덕지덕지 더럽게 붙여서 같은 저널 4OR에 제출했다. 물론 박경철과 이경식의 2007년 논문을 인용(cite)했다.

결과는 거부(Reject) 및 재제출(resubmit). 심사평을 살펴보니 대체로 논문 내용이 더럽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하나의 아이디어로 잘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것. 사실 이태한 교수님의 아이디어에 내가 덕지덕지 더럽게 붙인 내용은 필요 없는 부분이었다. 그렇다고 계산 한 번 줄이는 내용으로 논문을 마무리하기에는 좀 부족해 보여서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일단 버려두었다.

어느 날 버팔로에서 자동차 엔진오일도 갈고 점검도 받기 위해서 자동차 딜러샵에 딸린 정비소를 방문했다. 두어 시간 딜러샵에서 공짜 커피도 마시고 쿠키도 먹으면서 밀린 일을 처리하다가, 이 논문을 어찌해야 할까 ‘어쩌지 어쩌지’를 반복하면서 머리를 싸매고 있던 중, 새로운 발견을 했다.

논문을 깔끔하게 쓰기 위해서 더러운 것들 정리하다 보니 \lceil \frac{n-\Gamma}{2} \rceil + 1 번으로 계산량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니까 대략 계산량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 덕지덕지 붙였던 것 다 떼어내고 새로운 결과로 정리해서 다시 제출했고 논문은 출판되었다.

이 내용들을 다 정리해보면 다음 표와 같다.

별 내용은 없지만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운 과정 끝에 발견한 것이라 이 논문에 애착이 조금 있다. 아마 수학이나 과학하시는 분들께는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일일 것 같다. 논문 내용을 바탕으로 줄리아 패키지(Julia Package)도 만들었다.

역시 큰 의미는 없는 소프트웨어다.

이 글을 쓰느라 알바레즈 미란다 외의 2013년 논문을 다시 살펴보는데, 제2 저자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이바나 류비치(Ivana Ljubić). 작년 INFORMS 학회에서 내가 조직했던 세션에 무턱대고 이메일 보내 초청했던 분이다. 바일레벌 옵티미제이션(Bilevel optimization) 및 여러 디스크릿 옵티미제이션(discrete optimization) 문제로 잘 알려진 분이시다. 재밌다. 이 바닥 아주 좁고 세상 돌고 도는구나.

 

세 줄 요약

  1. 밥도 먹고 술도 먹다 보면 논문도 쓴다.
  2. 더러운 것은 청소하자.
  3. 뭐라도 하다 보면 될 때가 있다.

원문: 잡생각 전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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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처럼 생각해야 교수가 될 수 있다 https://ppss.kr/archives/27038 https://ppss.kr/archives/27038#respond Tue, 06 Feb 2018 01:55:04 +0000 http://3.36.87.144/?p=27038 6년 전 교수가 된 이후로 운이 좋게도 제가 몸담은 학과가 계속 성장하는 바람에, 그리고 몇 몇 교수가 자리를 옮기는 바람에, 대략 여덟 차례 정도에 걸쳐 교수 채용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후보자가 좋은 평을 받는지, 어떤 후보자가 나쁜 평을 받는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교수 임용을 위해 면접을 보러 가시는 분들께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저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는 조금 다른 사항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아마도 대동소이 할 것 같습니다.)

교수 면접까지 갔다고 하면, 사실 딱히 준비할 것도 없습니다. 교수 면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Be yourself”이기 때문입니다. 몇 시간의 준비로 자기 본 모습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교수 면접은 적어도 하루 종일, 대부분 1박 2일, 어떨 때는 2박 3일처럼 아주 길 기 때문에, 본 모습이 어디에선가는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면접 보러 갔다가 오면 됩니다. 끝.

 

벼락치기 면접 준비는 별로 의미가 없다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는 다 했으니, 이제 제가 관찰한 바를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저는 제가 임용 후보자가 되어 면접을 보러 다닐 때는, 왜 면접을 보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교수가 되고 나서 면접의 반대편에서 관찰해 보고 나서야 면접이 정말 중요한 과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면접을 보러가서는 모든 후보자가 준비한 것을 잘 이야기 하고, 자기가 가진 것을 잘 포장해서 적절히 잘 전달하고, 겸손하면서도 즐거운 모습을 보이고, 멋진 사람 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후보자가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하루 이상의 면접 일정에서, 후보자는 학과 내의 모든 교수와 개별적으로 30분 이상 면담하게 되고, 학장도 따로 만나고, 학과장도 따로 만납니다. 학생들을 따로 만나는 경우도 있고, 학과 내의 직원들도 따로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떨 때는, 다른 학과의 관련 분야 교수들도 만납니다. 아주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여러 배경을 가지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후보자는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조금씩 보여줍니다. 나중에 후보자가 집으로 돌아간 후에, 학과 내의 구성원이 한 자리에 모여서 회의를 합니다. 그 회의에서 각자 그 후보에 대해 받은 느낌과 생각을 서로 교환하고 토의합니다. 만약 한 축으로 치우친 의견이 있다면, 다른 교수가 그 의견에 반대 의견을 내면서 그 후보자에 대해 공정한 잣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 에서, 후보자가 아무리 자신의 장점은 더 내세우고, 단점은 감추려고 노력해 봐야, 결국엔 대부분 본모습이 다 알려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 드린 것 처럼, 별로 면접을 준비할 것은 없습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오면 됩니다.

교수 임용에 성공하려면 우선 운이 좀 좋아야 합니다. 아무리 자기가 훌륭한 연구 업적을 쌓았다고 한들, 연구 분야가 학과에서 채용하고자 하는 분야와 다르다면 무용지물입니다. 그리고 비슷한 연구 업적을 쌓은 두 후보자가 있다면, 학과의 발전 방향에 부합하는 후보자를 뽑으려고 할 겁니다.그러니까, 이런건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Be yourself”의 범주 안에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별로 후보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교수를 닮은 사람이 교수에 가장 가깝다

제가 지난 6년간 느낀 점입니다. 제가 겪어 본 교수 채용 과정은 모두 신임 조교수 채용을 위한 것이었어서, 교수 임용 면접에 오는 후보자들은 대체로 박사학위를 받은지 2년 이내, 혹은 곧 박사학위를 받으실 분들이었습니다. 박사과정 혹은 박사 후 과정 중이시거나, 연구소 같은 곳에 연구원으로 있으시거나, 학교에 강사로 계시거나 하는 분들이셨습니다. 경력이 길건 짧건 무관하게 제가 볼 때는 두 부류의 후보자들이 있었습니다. 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후보자들과 그렇지 않은 후보자들.

“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한다”라고 하면, 강압적인 표현을 한다거나 잘난 척 하는 행동을 한다는 식의 뜻으로 받아들일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두 후보자가 극명하게 대비되던 채용 과정이 있었습니다. 두 후보자 모두 아직 박사학위는 없는 박사 말년차, 즉 박사학위 임용 예정자였습니다. 연구 실적도 비슷 비슷 했습니다. 연구 분야의 호불호도 없었습니다. 서류 상으로는 두 후보자 모두 저희 학과에 좋은 후보자였습니다.

한 후보자는 자신이 교수로 만일 임용 되었을 경우, 어떤 주제를 가지고 연구를 계속해 나갈 것인지, 그 연구를 하려면 어떤 실험 장비들이 필요한 것인지, 어떤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찾을 것인지, 어떤 과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은지, 어떤 연구재단에 어떤 제안서를 제출할 것인지, 어떤 교수들과 협업할 것인지 등에 대한 준비가 모두 되어 있었고 잘 정돈된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후보자와 대화하고 있으면 그 사람이 꾸린 연구실의 모습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했고, 우리 학교에서 이미 몇 년 간 지냈던 사람 처럼, 학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단순히 직장이 필요해서 교수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박사과정 학생과 교수는 그저 자기가 하는 연구의 측면에서 볼 때 같은 선 위에 있는 다음 단계였던 것뿐입니다. 이 후보자가 하는 이야기는 모두 이미 교수가 된 사람에게서나 들을 법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말은 아니고..
이런 말은 아니고..

반면에 다른 후보자는 면접에서 많이 당황한 듯 보였습니다. 면접에 와서 본인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듯 했습니다. 앞의 후보자가 가지고 있었던 계획을 이 후보자는 전혀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 후보자는 면접에서 깨달았던 것이 많았는지, 집으로 돌아간 뒤 며칠 뒤에, 학과로 전화를 걸어와서는 자기는 지도교수님 밑에서 박사 후 과정 연구원으로 지내기로 했다고 알려왔습니다. 아직 마지막 후보자가 면접을 보러 오기도 전의 일이었습니다.

앞의 잘 준비된 후보자는 결국 저희 학과에서 교수 임용을 제안 했지만, 더 좋은 조건을 제안한 다른 학교에서 교수 생활 중입니다.

똑같이 박사학위 임용 예정자일지라도 후보자 마다 보여주는 모습은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후보자는 누가 봐도 그냥 “학생”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반면에 어떤 후보자는 함께 이야기를 해 보면, 학생과 대화하는 것 같지 않고, 동료 교수와 대화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교수로써의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해 본 사람이 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할 수 있고, 교수가 됩니다. 교수가 하는 여러가지 일들, 즉 연구, 강의, 학생지도, 다른 교수들과 교류 등등을 즐길 수 있고 좋아하는 사람이 그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 역시 “Be yourself”가 의미하는 것의 범주 안에 들어가고, 결국은 따로 준비한다고 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제가 한 만화책에서 본 구절에서 말하는 것 마냥, 교수가 되는 것이 그냥 자연스러운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교수라는 직업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너무 잘 맞아서 학생이지만 교수라는 직업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많이 고민해 본 사람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모든 교수가 임용 전부터 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건 아닙니다. 분명 어딘가 중간 쯤 에 있는 사람들이 있지요. 제가 그랬던 것 처럼 말이죠. 저처럼 헤매고 계실 분들을 위해 교수 면접 준비를 위한 한 가지 조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어떻게 하면 교수 임용 면접을 잘 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잘못된 질문입니다. “교수들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으며, 어떤 고민을 하면서 살까?”가 제가 볼 때는 옳은 질문입니다. 가장 가깝게는 지도교수님께 여쭤 볼 수 있을 것이고, 다른 멘토 교수님이 있으시다면, 그 분께 여쭤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advice for new assistant professors” 따위로 검색을 해 보고 여러 글을 읽어 봐도 좋을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책을 (미리) 읽어 보고 고민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Tomorrow’s Professor: Preparing for Careers in Science and Engineering

– A PhD Is Not Enough!: A Guide to Survival in Science

– Advice for New Faculty Members

– What They Didn’t Teach You in Graduate School: 299 Helpful Hints for Success in Your Academic Career

– Tomorrow’s ProfessorA PhD is Not Enough!

– Advice for New Faculty Members What They Didn’t Teach You In Graduate School

혹시 몰라서 덧붙이는 글: 저는 교수라는 제 직업을 정말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직업이 모든 사람에게 최고의 직업을 아닐 겁니다.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많습니다.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교수가 되는 것만이 최고의 길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라, 그저 제가 지난 시간 동안 관찰하면서 느겼던 점을 정리하여 다른 분들께 도움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원문 : 잡생각 전용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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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지도를 시작하는 신임 조교수들께 https://ppss.kr/archives/60690 https://ppss.kr/archives/60690#respond Thu, 09 Nov 2017 06:19:33 +0000 http://3.36.87.144/?p=60690 박사과정을 막 졸업하여 이제 자신만의 연구 프로그램을 꾸려나가시고 대학원생을 지도해야 하는 신임 조교수에게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제가 조교수 1, 2년차에 가졌던 어려움을 주변의 다른 분들께서도 비슷하게 겪으시는 것 같아, 제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씁니다.

졸업을 앞두고 학계에 자리를 잡고 싶은 대학원 고년차 분들은 교수 생활을 시작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을 미리 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신임 교수의 지도를 받게 된 대학원 저년차 분들께는 지도교수님의 어려움을 이해할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과 제 주변 분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는 글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 맞지 않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미국의 한 주립 대학교의 공대, 그중에서도 산업공학과에 재직하고 있습니다. 제 연구 분야에서는 대체로 학생이 교수와 일 대 일 혹은 일 대 이(교수가 두 명)로 연구를 합니다.

 

신임 조교수의 어려움

먼저 신임 조교수가 초기에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조교수가 실적을 쌓아 부교수로 승진하고 테뉴어를 받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필요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선순환이 필요합니다.

  1. 좋은 학생을 지도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연구 제안서를 써서 연구비를 지원받는다.
  2. 연구비를 사용하여 좋은 연구 결과를 내고 논문을 출판한다.
  3.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더 좋은 강의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는다.
  4. 흥미로운 주제로 강의하여 실력 있는 학생의 흥미를 끌어내 함께 일할 기회를 가진다.
  5. 다시 1번.

신임 조교수가 자신만의 연구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승진하기 위해서는 연구비를 지원받고 좋은 논문을 쓰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처음 시작하는 조교수는 그 단계에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걸리므로, 그것을 도와주기 위해서 학교에서는 정착자금 혹은 start-up fund라고 하는 것을 줍니다. 그 돈을 이용해 연구에 필요한 여러 가지 설비도 마련하고 대학원생도 고용합니다. 위의 선순환 1단계를 잘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주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필요한 학생을 찾기가 어렵다

이제 막 임용된 조교수는 보통 두 가지 큰 숙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대학원에서 자신의 지도교수와 함께 진행하던 연구를 마저 마무리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생각하고 있던 자신만의 연구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일입니다.

첫 번째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진행 된 일이므로, 본인이 학생 때 하던 것을 그대로 이어서 직접 마무리 하면 됩니다. 두 번째의 경우에는 자신의 연구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가진 학생이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즉시 전력감’이 필요합니다. ‘유망주’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시 전력감’이라 함은 대체로 박사 과정 2, 3년 차 이상의 학생일 것이고, ‘유망주’라 함은 이제 막 들어온 학생을 말합니다.

문제는 ‘즉시 전력감’에 해당하는 학생은 신임 조교수가 함께 일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 있습니다. 실력 있는 학생은 대체로 1년 차에 두각을 나타내고 기존의 다른 교수들의 눈에 띄어 이미 지도교수가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또 그런 학생은 대체로 명망 있는 정교수, 부교수와 함께 일하는 것을 더 선호하기도 합니다.

3년 차가 되어서도 지도교수가 없는 학생은 큰 문제가 있는 학생일 확률이 높고, 2년 차 중에서도 지도교수가 없는 학생은 많은 경우에 다른 동료 학생들보다는 실력이 뒤처지는 학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경우에도 역시 학생들은 이제 막 임용된 조교수보다는 이미 입지를 다지고 좋은 연구 결과물을 내고 학생 지도 경력도 많은 기존의 다른 교수와 일하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이런 이유로 ‘즉시 전력감’으로 교수의 연구에 당장 도움이 될 만한 학생을 찾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물론 예외의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신임 교수의 연구분야가 소위 말하는 hot topic이고, 그 분야를 연구하는 다른 교수가 없을 때, 그리고 신임 교수가 실력이 굉장히 뛰어나 이미 좋은 연구 결과를 내고 있는, rising star의 경우입니다. 그럴 때는 실력도 있고 경험도 있는 ‘즉시 전력감’ 학생이 신임 교수와 일하고 싶어 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아 저한테는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대체로 신임 교수와 함께 일하게 되는 학생은 다음의 두 경우입니다.

  • 실력이 조금 뒤처지는 2, 3년 차 학생
  • 실력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고 경험이 부족한 1년 차 신입생

1년 차 신입생 중에서도 충분히 좋은 실력을 갖추고 있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학생들은 대체로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학교에서 장학금(fellowhip/scholarship)을 받았거나 교육조교(teaching assistant, TA)로 일하고 있어 아직 교수와 일하면서 연구조교(research assistant, RA)로 일해야 할 동기부여가 부족합니다. 1년차 때는 수업을 듣고 자격시험을 통과하는 데 집중하면서 함께 일할 지도교수를 천천히 찾아봐도 괜찮기 때문입니다. 한 교수와 연구조교로 일하게 되면 대체로 그 교수가 지도교수가 됩니다.

1년 차 신입생은 물론이고 실력이 조금 뒤처지는 2, 3년 차 학생도 교수가 시간을 가지고 좋은 지도를 해 주면 충분히 훌륭한 연구 성과를 낼 수 있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임 조교수는 시간도 급하고 마음도 급합니다. 임용된 지 2년 혹은 3년 후에 재계약 심사를 해야 하는 데, 그때 까지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불어 또 한가지 심각한 문제가 더 있습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대학원 과정을 거친 신임 교수는 연구에 필요한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했을 겁니다. 이제 교수가 되었으니 연구 제안서도 써야 하고 새로운 강의도 준비해야 하고,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하고 싶으니, 많은 부분을 학생이 도와줬으면 할 겁니다. 자신이 학생 시절 지도교수를 도왔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학생에게 몇 가지 과제를 줍니다. 예를 들어 Java를 이용해서 간단한 계산을 하는 프로그램을 짜오라는 식입니다. 수 주가 지나도 소식이 없길래 학생에게 진행사항을 물어보니, 학생은 Java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컴퓨터에 설치하고 개발 환경을 설정하는 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어안이 벙벙해진 교수는 Java 홈페이지에 접속해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학생 컴퓨터에 직접 설치해주기에 이릅니다. 교수가 직접 했으면 서너 시간이면 끝났을 일을 학생에게 시키느라 서너 달이 지체됩니다.

학생에게 교육도 할 겸 쓰고 있는 논문의 한 단락 정도를 학생에게 한 번 맡겨보기도 합니다. 논문 몇 편 읽고 대 여섯 문장으로 정리하는 일을 시켜보기도 합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려서 학생이 가지고 온 결과물을 보고 있자니 기가 찹니다. 마음을 다잡고 앉아서 수정합니다. 한 시간 정도 수정하기 위해 씨름하다가 그냥 처음부터 새로 쓰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학생에게 줬던 논문을 다시 꺼내들고 새로 요약합니다.

이쯤 되면 신임 교수는 자신의 지도교수를 떠올릴 겁니다. ‘도대체 내 지도교수는 나를 어떻게 지도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공들여 작성한 논문 초안을 교수에게 가져다줬을 때 붉으락푸르락 하던 지도교수의 표정이 이제서야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교수가 직접 해야 합니다

신임 조교수에게는 학자 및 교육자로서 자리잡기 위해 (혹은, 승진하고 테뉴어 받기 위해) 두 가지, 어쩌면 상반되어 보이는, 목표가 있습니다.

  1. 좋은 연구를 해서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 논문을 쓴다.
  2. 대학원생을 지도해서 스스로 독립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박사학위자로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졸업시킨다.

조교수에게 재계약 심사의 압박은 생각외로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물 흐르듯이 잘 넘어가는 분들이 있는 반면에 제가 그랬던 것처럼 좌충우돌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미국의 공대 기준으로 테뉴어 심사는 보통 임용된 지 6년째가 되면 시작됩니다. 그리고 보통 중간심사가 있어서, 빠르면 임용된 지 2년, 대체로 3년이 되면 한번 평가를 받습니다. 중간심사에서 잘 안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말이 3년이지 그 전에 성과를 내려면 아주 급합니다. 그래서 괄호 속에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사실 좋은 연구는 ‘빨리’ 혹은 ‘많이’라는 단어와는 큰 상관관계가 없어서 이런 말을 하자니 조금 부끄럽습니다.)

1번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마냥 학생에게 맡겨두고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학생에게 맡겨두지 않고 교수가 혼자 알아서 다 하자니, 학생 교육이 안 됩니다. 멀리 보자면 학생에게 더 기회를 주면서 기다리면 좋겠지만, 그래서 그 학생이 2, 3년 뒤에는 독립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교수와 동등한 입장에서 학문적인 교류를 하면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신임 조교수에게 2, 3년은 기다리기엔 너무 긴 시간입니다. 그러니까, 스타크래프트로 치자면, 멀리 보고 넥서스를 하나 더 지으면 좋겠는데, 지금 당장 옆에서 저글링이 뛰어올 것만 같은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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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가 직접 연구 하는 시간과 대학원생 교육 하는 시간을 잘 배분해서 ‘균형’을 추구하면 참 좋겠지만, 어디 그게 쉽습니까. 혹은, 교수의 연구는 그대로 하고, 대학원생의 연구 주제는 따로 마련해서 대학원생이 성장하기를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저는 안 되더군요. 좋은 연구 주제 찾는 것이 참 어려웠습니다. 안 그래도 좋은 연구 주제가 부족한데 따로따로 진행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냥 다 합쳐서 억지로 억지로 왔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교수가 직접 해야 합니다. 다만, 교수가 직접 하는 모습을 학생에게 자세히 보여줘야 합니다. 학생은 원래 잘하지 못합니다.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학교란 게 있습니다. 몇 가지 아이디어와 함께 자세히 말해보겠습니다.

  • 정규 미팅 시간에서: 저는 매주 한 시간씩 대학원생과 개별적으로 정규 미팅을 합니다. 성숙한 학생이라면 이 시간에는 그 학생이 스스로 잘 진행하고 있는 연구의 진행사항을 점검하고 문제점이 있으면 그 점을 해결하기 위해 같이 고민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학생과 일하는 신임 조교수에게는 이 시간이 ‘교수가 연구하는 시간’이자 그 연구하는 모습을 학생에게 보여줄 소중한 시간입니다. 연구하다 보면, 연구 주제를 찾고 문제를 정의하는 동안 여러 가지 단계의 생각이 필요하고 몇 번의 수정 과정을 거칩니다. 그 과정에서 선행 연구에 대한 지식, 여러가지 방법론에 대한 아이디어 등 생각해볼 것들이 매우 많습니다. 이것을 그냥 학생이 보는 앞에서 교수가 단계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됩니다. 학생에게 ‘강의’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알아듣던지 말든지 일단 계속 말하고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됩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실제로 교수가 스스로 연구를 진행하면 됩니다. 그저 중간중간 중요한 지점에서 한 번 더 학생에게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 학생에게 주는 숙제: 정규 미팅 시간이 끝나갈 무렵에는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수학적 해석이라던가, 관련 문헌 찾기라던가, 아니면 간단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라던가 말입니다. 해야 하는 ‘숙제’를 학생에게 최대한 자세히 알려줍니다. 어떤 해석방법을 쓰라고 알려준다든가, 도서관 이용 방법을 자세히 알려 준다든가, 프로그래밍 환경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는 문서를 보내준다든가 말입니다. 그리고는 교수가 그 ‘숙제’를 직접 합니다. 1년 차 대학원생과 1년 차 교수의 만남에서 ‘숙제’를 학생이 스스로 짧은 시간 내에 잘 해오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대학원생은 배경지식과 훈련이 부족하고, 교수는 지도방법이 미숙합니다. 그래서 잘 안 됩니다. 그래서 교수가 그 ‘숙제’를 직접 해야 합니다. 숙제는 내주고 학생이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되, 연구의 실질적인 진행을 위해서는 교수가 직접 그 숙제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물을 보여줍니다.
  • 논문을 쓸 때: 연구가 어느 정도 무르익어 출판을 위해 논문을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이 논문을 쓸 수 있게 기회를 줍니다. 하지만 교수가 직접 써야 합니다. 훈련이 잘된 고년 차 학생에게는 논문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맡겨두고, 어느 정도 논문이 완성이 되어가면, 교수가 여러 가지 교정을 몇 차례 하면 잘 됩니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학생은 학술 논문에 어울리는 글쓰기를 해 본 경험이 없어 여러 가지로 굉장히 미숙합니다. 그래서 많은 부분을 교수가 직접 써야 합니다. 학생에게 어느 부분 부분을 맡길 수 있지만, 학생이 가져온 결과물은 아마 교수가 거의 다시 쓰다시피 해야 합니다. 그렇게 예상을 하고 교수가 직접 쓸 준비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교수가 글을 쓰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Dropbox 혹은 Git을 활용하여 문서를 학생과 공유합니다. 그러면 학생은 어찌됐든 교수가 글을 쓰고 고쳐나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논문의 구성을 크게 바꿀 때는 정규 미팅 시간에 왜 그렇게 바꾸는지 자세히 일러줍니다.

학생의 연구에 이렇게까지 교수가 많이 개입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신임 조교수가 1년 차 대학원생을 지도 할 때는 학생의 연구가 곧 교수의 연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많지도 않습니다. 이견의 여지가 굉장히 많은 교수법이지만, 저의 상황에서 제가 내린 결론은 그렇습니다.

 

개인적인 경험

학생 1. 자국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미국으로 박사과정 유학을 온 학생입니다. 같이 연구를 하면서, 문제 정의, 수학적 해석, 알고리즘 개발, 코딩, 논문 쓰기의 대부분을 제가 직접 했습니다. 코딩 같은 경우는 제가 먼저 다 끝마친 다음, 그 코드를 이용해서 여러 가지 반복적인 실험을 하는 일을 학생에게 맡겼습니다. 논문 출판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고, 학생에게도 좋은 교육의 기회가 되었는지, 두 번째, 세 번째 연구에서는 학생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아졌습니다.

학생 2. 자국에서 학사만 마치고 미국으로 석사과정 유학을 온 학생입니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은 대부분 제가 했고, 컴퓨터 코드의 경우에도 아주 조금만 바꾸면 되는 코드를 학생에게 줬습니다. 학생이 큰 어려움 없이 연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박사과정에 와서는 저도 잘 모르는 분야의 연구를 거의 혼자서 독립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학생에게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학생 3. 자국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박사 유학을 온 학생입니다. 자국에서 가장 좋다고 알려진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미국에 와서도 모든 수업에서 최고 성적을 받았습니다. 그 학생을 수업시간에 만난 모든 교수가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습니다. 똑똑한 데다가 성실하답니다. 그러니까 자질은 굉장히 좋은 학생입니다.

저도 많은 부분을 학생에게 맡겼습니다. 문제 정의는 이미 잘 되어 있는 연구 주제였지만, 세세한 수학적 해석은 학생에게 맡겼습니다. 1년이나 지나고 나서야 결국 다시 손봤습니다. 알고리즘 개발에 대한 핵심 아이디어는 공동 지도하던 동료 교수가 제공하고 제가 살을 덧붙였습니다. 알고리즘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는 일을 맡겼습니다. 1년 넘게 걸렸습니다. 게다가 아주 느립니다. 논문 작성도 맡겼습니다. 1년 걸렸습니다. 결국엔 많은 부분을 제가 다시 썼습니다. 결국, 이 논문은 처음 시작한 지 4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출판이 안 되었습니다.

두 번째 연구에서는 제가 더 많은 부분에 깊숙이 개입했습니다. 학생 1, 2의 경우에처럼 제가 많은 부분을 직접 했습니다. 학생도 더 성장한 상태였기 때문에 훨씬 더 부드럽게 연구가 진행되었고 더 성숙한 연구 결과를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일 년 반 정도 만에 논문을 투고할 수 있었습니다. 진행 상황으로 볼 때 두 번째 논문이 첫 번째 논문보다 더 빨리 출판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련한 교수와 함께 일하기

처음에는 좋은 학생과 일할 기회를 얻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그 학생을 잘 지도하기도 정말 어렵습니다. 대학원생 교육을 아주 잘 해내는 훌륭한 교수님들도 많이 계시지만, 저처럼 어려움을 겪는 교수님들도 많이 계십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다른 노련한 교수님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학생을 공동지도 하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노련한 교수님들을 보면 제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직접 뭔가를 많이 하시지는 않습니다. 다만 학생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좋은 조언을 주시고 적절한 아이디어를 냅니다. 직접 뭔가를 많이 하는 부분은 교육자로서 경험이 별로 없는 제가 담당했습니다. 노련한 교수님들과 일하면서 연구에 대한 자세라던가 학생지도에 대한 방향이라던가 많은 부분에서 큰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학과 내외의 다른 노련한 교수님들과 함께 일하면서 학생을 공동지도 하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네 마음대로 하세요

주저리주저리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극히 제 개인적인 경험이었을 뿐이고, 저한테 잘 맞는 방법을 제가 찾았을 뿐입니다. 교수라는 직업의 큰 즐거움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Academic Freedom이라는 말이 이 경우에 어울리는 말일지 모르겠습니다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대학원생 지도에 어려움이 있어 ‘방황’하는 신임 조교수님들께 ‘이런 방법도 있구나’정도의 도움이라도 된다면 제게는 큰 기쁨일 것 같습니다.

원문: 잡생각 전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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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지도를 시작하는 신임 조교수님들께 https://ppss.kr/archives/54477 https://ppss.kr/archives/54477#respond Fri, 18 Aug 2017 16:00:17 +0000 http://3.36.87.144/?p=54477 박사과정을 막 졸업하여 이제 자신만의 연구 프로그램을 꾸려나가시고 대학원생을 지도해야 하는 신임 조교수에게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제가 조교수 1, 2년 차에 가졌던 어려움을 주변의 다른 분들께서도 비슷하게 겪으시는 것 같아, 제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씁니다.

졸업을 앞두고 학계에 자리를 잡고 싶은 대학원 고년 차 분들은 교수 생활을 시작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을 미리 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신임 교수의 지도를 받게 된 대학원 저년차 분들께는 지도교수님의 어려움을 이해할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과 제 주변 분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는 글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 맞지 않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미국의 한 주립 대학교의 공대, 그중에서도 산업공학과에 재직하고 있습니다. 제 연구 분야에서는 대체로 학생이 교수와 일 대 일 혹은 일 대 이(교수가 두 명)로 연구를 합니다.

먼저 신임 조교수가 초기에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조교수가 실적을 쌓아 부교수로 승진하고 테뉴어(종신 재직권)를 받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필요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선순환이 필요합니다.

  1. 좋은 학생을 지도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연구 제안서를 써서 연구비를 지원받는다.
  2. 연구비를 사용하여 좋은 연구 결과를 내고 논문을 출판한다.
  3.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더 좋은 강의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는다.
  4. 흥미로운 주제로 강의하여 실력 있는 학생의 흥미를 끌어내 함께 일할 기회를 가진다.
  5. 다시 1번.

신임 조교수가 자신만의 연구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승진하기 위해서는 연구비를 지원받고 좋은 논문을 쓰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처음 시작하는 조교수는 그 단계에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걸리므로, 그것을 도와주기 위해서 학교에서는 정착자금 혹은 start-up fund라고 하는 것을 줍니다. 그 돈을 이용해 연구에 필요한 여러 가지 설비도 마련하고 대학원생도 고용합니다. 위의 선순환 1단계를 잘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주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필요한 학생을 찾기가 어렵다

이제 막 임용된 조교수는 보통 두 가지 큰 숙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대학원에서 자신의 지도교수와 함께 진행하던 연구를 마저 마무리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생각하고 있던 자신만의 연구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일입니다.

첫 번째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진행된 일이므로, 본인이 학생 때 하던 것을 그대로 이어서 직접 마무리 하면 됩니다. 두 번째의 경우에는 자신의 연구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가진 학생이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즉시 전력감’이 필요합니다. ‘유망주’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시 전력감’이라 함은 대체로 박사 과정 2, 3년 차 이상의 학생일 것이고, ‘유망주’라 함은 이제 막 들어온 학생을 말합니다.

문제는 ‘즉시 전력감’에 해당하는 학생은 신임 조교수가 함께 일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 있습니다. 실력 있는 학생은 대체로 1년 차에 두각을 나타내고 기존의 다른 교수들의 눈에 띄어 이미 지도교수가 있을 확률이 큽니다. 또 그런 학생은 대체로 명망 있는 정교수, 부교수와 함께 일하는 것을 더 선호하기도 합니다.

3년 차가 되어서도 지도교수가 없는 학생은 큰 문제가 있는 학생일 확률이 높고, 2년 차 중에서도 지도교수가 없는 학생은 많은 경우에 다른 동료 학생들보다는 실력이 뒤처지는 학생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 경우에도 역시 학생들은 이제 막 임용된 조교수보다는 이미 입지를 다지고 좋은 연구 결과물을 내고 학생 지도 경력도 많은 기존의 다른 교수와 일하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이런 이유로 ‘즉시 전력감’으로 교수의 연구에 당장 도움이 될만한 학생을 찾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물론 예외의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신임 교수의 연구분야가 소위 말하는 hot topic이고, 그 분야를 연구하는 다른 교수가 없을 때, 그리고 신임 교수가 실력이 굉장히 뛰어나 이미 좋은 연구 결과를 내고 있는, rising star의 경우입니다. 그럴 때는 실력도 있고 경험도 있는 ‘즉시 전력감’ 학생이 신임 교수와 일하고 싶어 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아 저한테는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대체로 신임 교수와 함께 일하게 되는 학생은 다음의 두 경우입니다

  1. 실력이 조금 뒤처지는 2, 3년 차 학생
  2. 실력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고 경험이 부족한 1년 차 신입생

1년 차 신입생 중에서도 충분히 좋은 실력을 갖추고 있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학생들은 대체로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학교에서 장학금(fellowhip/scholarship)을 받았거나 교육조교(teaching assistant, TA)로 일하고 있어 아직 교수와 일하면서 연구조교(research assistant, RA)로 일해야 할 동기부여가 부족합니다. 1년 차 때는 수업을 듣고 자격시험을 통과하는 데 집중하면서 함께 일할 지도교수를 천천히 찾아봐도 괜찮기 때문입니다. 한 교수와 연구조교로 일하게 되면 대체로 그 교수가 지도교수가 됩니다.

1년 차 신입생은 물론이고 실력이 조금 뒤처지는 2, 3년 차 학생도 교수가 시간을 가지고 좋은 지도를 해 주면 충분히 훌륭한 연구 성과를 낼 수 있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임 조교수는 시간도 급하고 마음도 급합니다. 임용된 지 2년 혹은 3년 후에 재계약 심사를 해야 하는 데, 그때까지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불어 또 한가지 심각한 문제가 더 있습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대학원 과정을 거친 신임 교수는 연구에 필요한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했을 겁니다. 이제 교수가 되었으니 연구 제안서도 써야 하고 새로운 강의도 준비해야 하고,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하고 싶으니, 많은 부분을 학생이 도와줬으면 할 겁니다. 자신이 학생 시절 지도교수를 도왔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학생에게 몇 가지 과제를 줍니다. 예를 들어 Java를 이용해서 간단한 계산을 하는 프로그램을 짜오라는 식입니다. 수 주가 지나도 소식이 없길래 학생에게 진행사항을 물어보니, 학생은 Java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컴퓨터에 설치하고 개발 환경을 설정하는 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어안이 벙벙해진 교수는 Java 홈페이지에 접속해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학생 컴퓨터에 직접 설치해주기에 이릅니다. 교수가 직접 했으면 서너 시간이면 끝났을 일을 학생에게 시키느라 서너 달이 지체됩니다.

괜찮아요...처음이라 그럴 수도 있죠...
괜찮아요… 처음이라 그럴 수도 있죠…

학생에게 교육도 할 겸 쓰고 있는 논문의 한 단락 정도를 학생에게 한 번 맡겨보기도 합니다. 논문 몇 편 읽고 대 여섯 문장으로 정리하는 일을 시켜보기도 합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려서 학생이 가지고 온 결과물을 보고 있자니 기가 찹니다. 마음을 다잡고 앉아서 수정합니다. 한 시간 정도 수정하기 위해 씨름하다가 그냥 처음부터 새로 쓰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학생에게 줬던 논문을 다시 꺼내 들고 새로 요약합니다.

이쯤 되면 신임 교수는 자신의 지도교수를 떠올릴 겁니다. ‘도대체 내 지도교수는 나를 어떻게 지도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공들여 작성한 논문 초안을 교수에게 가져다줬을 때 붉으락푸르락하던 지도교수의 표정이 이제서야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교수가 직접 해야 합니다

신임 조교수에게는 학자 및 교육자로서 자리 잡기 위해 (혹은, 승진하고 테뉴어 받기 위해) 두 가지, 어쩌면 상반되어 보이는, 목표가 있습니다.

  1. 좋은 연구를 해서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 논문을 쓴다.
  2. 대학원생을 지도해서 스스로 독립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박사학위자로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졸업시킨다.

조교수에게 재계약 심사의 압박은 생각외로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물 흐르듯이 잘 넘어가는 분들이 있는 반면에 제가 그랬던 것처럼 좌충우돌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미국의 공대 기준으로 테뉴어 심사는 보통 임용된 지 6년째가 되면 시작됩니다.

그리고 보통 중간심사가 있어서, 빠르면 임용된 지 2년, 대체로 3년이 되면 한번 평가를 받습니다. 중간심사에서 잘 안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말이 3년이지 그 전에 성과를 내려면 아주 급합니다. 그래서 괄호 속에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사실 좋은 연구는 ‘빨리’ 혹은 ‘많이’라는 단어와는 큰 상관관계가 없어서 이런 말을 하자니 조금 부끄럽습니다.)

1번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마냥 학생에게 맡겨두고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학생에게 맡겨두지 않고 교수가 혼자 알아서 다 하자니, 학생 교육이 안 됩니다. 멀리 보자면 학생에게 더 기회를 주면서 기다리면 좋겠지만, 그래서 그 학생이 2, 3년 뒤에는 독립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교수와 동등한 입장에서 학문적인 교류를 하면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신임 조교수에게 2, 3년은 기다리기엔 너무 긴 시간입니다. 그러니까, 스타크래프트로 치자면 멀리 보고 넥서스를 하나 더 지으면 좋겠는데, 지금 당장 옆에서 저글링이 뛰어올 것만 같은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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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가 직접 연구 하는 시간과 대학원생 교육 하는 시간을 잘 배분해서 ‘균형’을 추구하면 참 좋겠지만, 어디 그게 쉽습니까. 혹은, 교수의 연구는 그대로 하고, 대학원생의 연구 주제는 따로 마련해서 대학원생이 성장하기를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저는 안 되더군요. 좋은 연구 주제 찾는 것이 참 어려웠습니다. 안 그래도 좋은 연구 주제가 부족한데 따로따로 진행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냥 다 합쳐서 억지로 억지로 왔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교수가 직접 해야 합니다. 다만, 교수가 직접 하는 모습을 학생에게 자세히 보여줘야 합니다. 학생은 원래 잘하지 못합니다.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학교란 게 있습니다. 몇 가지 아이디어와 함께 자세히 말해보겠습니다.

 

정규 미팅 시간에서

저는 매주 한 시간씩 대학원생과 개별적으로 정규 미팅을 합니다. 성숙한 학생이라면 이 시간에는 그 학생이 스스로 잘 진행하고 있는 연구의 진행사항을 점검하고 문제점이 있으면 그 점을 해결하기 위해 같이 고민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학생과 일하는 신임 조교수에게는 이 시간이 ‘교수가 연구하는 시간’이자 그 연구하는 모습을 학생에게 보여줄 소중한 시간입니다.

연구하다 보면, 연구 주제를 찾고 문제를 정의하는 동안 여러 가지 단계의 생각이 필요하고 몇 번의 수정 과정을 거칩니다. 그 과정에서 선행 연구에 대한 지식, 여러 가지 방법론에 대한 아이디어 등 생각해볼 것들이 매우 많습니다.

이것을 그냥 학생이 보는 앞에서 교수가 단계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됩니다. 학생에게 ‘강의’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알아듣든지 말든지 일단 계속 말하고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됩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실제로 교수가 스스로 연구를 진행하면 됩니다. 그저 중간중간 중요한 지점에서 한 번 더 학생에게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학생에게 주는 숙제

정규 미팅 시간이 끝나갈 무렵에는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수학적 해석이라던가, 관련 문헌 찾기라던가, 아니면 간단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라던가 말입니다. 해야 하는 ‘숙제’를 학생에게 최대한 자세히 알려줍니다. 어떤 해석방법을 쓰라고 알려준다든가, 도서관 이용 방법을 자세히 알려 준다든가, 프로그래밍 환경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는 문서를 보내준다든가 말입니다.

그리고는 교수가 그 ‘숙제’를 직접 합니다. 1년 차 대학원생과 1년 차 교수의 만남에서 ‘숙제’를 학생이 스스로 짧은 시간 내에 잘 해오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대학원생은 배경지식과 훈련이 부족하고, 교수는 지도방법이 미숙합니다. 그래서 잘 안 됩니다. 그래서 교수가 그 ‘숙제’를 직접 해야 합니다. 숙제는 내주고 학생이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되, 연구의 실질적인 진행을 위해서는 교수가 직접 그 숙제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물을 보여줍니다.

 

논문을 쓸 때

연구가 어느 정도 무르익어 출판을 위해 논문을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이 논문을 쓸 수 있게 기회를 줍니다. 하지만 교수가 직접 써야 합니다. 훈련이 잘된 고년 차 학생에게는 논문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맡겨두고, 어느 정도 논문이 완성되어가면, 교수가 여러 가지 교정을 몇 차례 하면 잘 됩니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학생은 학술 논문에 어울리는 글쓰기를 해 본 경험이 없어 여러 가지로 굉장히 미숙합니다.

그래서 많은 부분을 교수가 직접 써야 합니다. 학생에게 어느 부분 부분을 맡길 수 있지만, 학생이 가져온 결과물은 아마 교수가 거의 다시 쓰다시피 해야 합니다. 그렇게 예상을 하고 교수가 직접 쓸 준비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교수가 글을 쓰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Dropbox 혹은 Git을 활용하여 문서를 학생과 공유합니다. 그러면 학생은 어찌 됐든 교수가 글을 쓰고 고쳐나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논문의 구성을 크게 바꿀 때는 정규 미팅 시간에 왜 그렇게 바꾸는지 자세히 일러줍니다.

학생의 연구에 이렇게까지 교수가 많이 개입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신임 조교수가 1년 차 대학원생을 지도 할 때는 학생의 연구가 곧 교수의 연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많지도 않습니다. 이견의 여지가 굉장히 많은 교수법이지만, 저의 상황에서 제가 내린 결론은 그렇습니다.

 

개인적인 경험

학생 1

자국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미국으로 박사과정 유학을 온 학생입니다. 같이 연구를 하면서, 문제 정의, 수학적 해석, 알고리즘 개발, 코딩, 논문 쓰기의 대부분을 제가 직접 했습니다. 코딩 같은 경우는 제가 먼저 다 끝마친 다음, 그 코드를 이용해서 여러 가지 반복적인 실험을 하는 일을 학생에게 맡겼습니다. 논문 출판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고, 학생에게도 좋은 교육의 기회가 되었는지, 두 번째, 세 번째 연구에서는 학생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아졌습니다.

 

학생 2

자국에서 학사만 마치고 미국으로 석사과정 유학을 온 학생입니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은 대부분 제가 했고, 컴퓨터 코드의 경우에도 아주 조금만 바꾸면 되는 코드를 학생에게 줬습니다. 학생이 큰 어려움 없이 연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박사과정에 와서는 저도 잘 모르는 분야의 연구를 거의 혼자서 독립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학생에게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학생 3

자국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박사 유학을 온 학생입니다. 자국에서 가장 좋다고 알려진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미국에 와서도 모든 수업에서 최고 성적을 받았습니다. 그 학생을 수업시간에 만난 모든 교수가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습니다. 똑똑한 데다가 성실하답니다. 그러니까 자질은 굉장히 좋은 학생입니다. 저도 많은 부분을 학생에게 맡겼습니다. 문제 정의는 이미 잘 되어 있는 연구 주제였지만, 세세한 수학적 해석은 학생에게 맡겼습니다.

1년이나 지나고 나서야 결국 다시 손봤습니다. 알고리즘 개발에 대한 핵심 아이디어는 공동 지도하던 동료 교수가 제공하고 제가 살을 덧붙였습니다. 알고리즘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는 일을 맡겼습니다. 1년 넘게 걸렸습니다. 게다가 아주 느립니다. 논문 작성도 맡겼습니다. 1년 걸렸습니다. 결국엔 많은 부분을 제가 다시 썼습니다. 결국, 이 논문은 처음 시작한 지 4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출판이 안 되었습니다.

두 번째 연구에서는 제가 더 많은 부분에 깊숙이 개입했습니다. 학생 1, 2의 경우에처럼 제가 많은 부분을 직접 했습니다. 학생도 더 성장한 상태였기 때문에 훨씬 더 부드럽게 연구가 진행되었고 더 성숙한 연구 결과를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일 년 반 정도 만에 논문을 투고할 수 있었습니다. 진행 상황으로 볼 때 두 번째 논문이 첫 번째 논문보다 더 빨리 출판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련한 교수와 함께 일하기

처음에는 좋은 학생과 일할 기회를 얻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그 학생을 잘 지도하기도 정말 어렵습니다. 대학원생 교육을 아주 잘 해내는 훌륭한 교수님들도 많이 계시지만, 저처럼 어려움을 겪는 교수님들도 많이 계십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다른 노련한 교수님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학생을 공동지도 하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노련한 교수님들을 보면 제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직접 뭔가를 많이 하시지는 않습니다. 다만 학생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좋은 조언을 주시고 적절한 아이디어를 냅니다.

직접 뭔가를 많이 하는 부분은 교육자로서 경험이 별로 없는 제가 담당했습니다. 노련한 교수님들과 일하면서 연구에 대한 자세라든가 학생지도에 대한 방향이라든가 많은 부분에서 큰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학과 내외의 다른 노련한 교수님들과 함께 일하면서 학생을 공동지도 하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네 마음대로 하세요

주저리주저리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극히 제 개인적인 경험이었을 뿐이고, 저한테 잘 맞는 방법을 제가 찾았을 뿐입니다. 교수라는 직업의 큰 즐거움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Academic Freedom이라는 말이 이 경우에 어울리는 말일지 모르겠습니다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대학원생 지도에 어려움이 있어 ‘방황’하는 신임 조교수님들께 ‘이런 방법도 있구나’정도의 도움이라도 된다면 제게는 큰 기쁨일 것 같습니다.

원문: 잡생각 전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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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란 무엇인가? R과 D https://ppss.kr/archives/67968 https://ppss.kr/archives/67968#respond Wed, 23 Mar 2016 03:32:56 +0000 http://3.36.87.144/?p=67968 연구(Research)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굉장히 거창하고 어려운 주제입니다. 학문의 길을 수십 년은 걷고 나서 대답할 수 있는 주제인 듯 하지만, 제 생각도 한번 정리 해 보고, 나중에 시간이 더 지나 제 생각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확인할 수 있게 글로 남겨봅니다.

 

아인슈타인의 말

이전에도 언급한 적 있는 아인슈타인의 말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아인슈타인

“If we knew what it was we were doing, it would not be called research, would it?”

저는 “우리도 우리가 뭐하는지 잘 모르잖아요. 알면 연구 아니잖아요. 그렇잖아요.” 정도로 번역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음미할 수 있는 말이지만, 우선 ‘모른다‘에 주목해봅시다.

 

사전의 정의

사전에서는 ‘연구’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살펴봅시다. 다음사전은 ‘연구’를 “어떤 일이나 대상을 깊이 있게 조사하고 생각하여 이치나 진리를 밝힘”이라고 하고, 구글과 메리안-웹스터 사전에서는 ‘research’를 각각 “the systematic investigation into and study of materials and sources in order to establish facts and reach new conclusions”와 “careful study that is done to find and report new knowledge about something”이라고 정의합니다.

뭔가 조심스럽고 깊이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치나 진리를 ‘밝히고’, ‘새로운‘ 지식을 얻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말과 조합해보면, ‘뭘하는지도 모르면서 뭔가 열심히 하다가, 수많은 과정을 거쳐서 결국에는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는 과정‘이 연구인 것 같습니다.

 

연구의 목표

앞에서 내린 정의는 말은 잘 되지만, 뜬구름을 잡는 것 같은 이야기니까 조금 더 알아보겠습니다. 무엇이 연구가 아닌지와 한번 대비시켜 이야기해보지요. 더 정확히는 무엇이 연구의 목표인지, 무엇이 아닌지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제가 연구 제안서를 쓰면서 아주 큰 도움을 받은 문서가 있습니다. 경전처럼 생각하며 자주 다시 읽어 보곤 합니다.

Hazelrigg는 미국의 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 혹은 NSF—의 공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신 분입니다. 이 분께서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There are many words that, to reviewers, mean “not research.” These include “develop,” “design,” “optimize,” “control,” “manage,” and so on. If your statement of your research objective includes one of these words, for example,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develop….,” you have just told the reviewers that your objective is not research, and your rating will be lower.

무엇인가를 개발(develop), 설계(design), 최적화(optimize), 제어(control), 관리/조종(manage) 등을 하는 것은 연구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재미있습니다. 공학 분야에서는 저런 것을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겠다고 하는 논문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았고, 심지어 연구 제안서에서도 저런 것이 목표라고 하는 연구자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연구의 목표는 아니라고 합니다. 순수 연구를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미국과학재단에서 수십 년간 일해오신 분께서, 개발, 설계, 최적화, 제어, 관리/조종은 연구의 목표가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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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재미있고 도움이 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공학 연구의 목표를 기술하는 방법은 자신이 알기로는 단 4가지 밖에 없다고 합니다.

  1.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test the hypothesis H.” (가설 검정)
  2.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measure parameter P with accuracy A.” (측정)
  3.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prove the conjecture C.” (추측 증명)
  4.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apply method M from disciplinary area D to solve problem P in disciplinary area E.” (학제간 융합 연구)

사회과학과 공학이 어렴풋이 겹쳐지는 분야를 연구하는 제가 보기에 반드시 맞는 말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4가지 범주 이외의 일반화된 연구 목표 기술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혹시 아시는 분은 Hazelrigg에게 연락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을 법도 합니다.

제 분야의 NSF 프로그램 담당자께서 해주신 조언이 있습니다. 어떤 연구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그 결과로, ‘지금은 우리 인류가 알지 못하는 어떤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는가 없는가, 그 지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비교적 명확히 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만 NSF에서 연구비를 지원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의 사전적 정의와 일맥상통합니다. 아인슈타인의 말과는 조금 다르지만, 아인슈타인 본인도 연구비를 따기 위해 제안서를 쓸 때 즈음 되서는 목표가 비교적 명확해졌을 것이라 (제 마음대로) 추측해봅니다.

새로 얻게 되는 지식이 얼마나 중요하고 큰 것인가는 두번째 문제입니다. 우선 우리 인류가 현재 모르는 새로운 지식을 얻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유타 대학교(University of Utah)의 Matt Might 교수는 이것을 그림으로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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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학위를 위한 연구이든 그냥 연구이든 인류 지식의 한계선을 밖으로 확장시켜나가는 것이 연구라는 겁니다.

 

연구(Research)와 개발(Development)의 구분

그럼 위에서 언급한 개발, 설계, 최적화, 제어, 관리/조종은 무엇일까요? 이런 단어를 언급하는 연구 논문과 연구자들이 아주 많은데, 연구의 목표는 아니라고 하니 그 실체가 궁금해집니다. 제가 짧은 경험으로 판단하건데, 이것들은 어떤 연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여러 행위들입니다. 언급한 행위들 자체가 연구는 아니지만, 저 행위들을 하지 않고 어떤 연구를 할 수는 없습니다. 연구제안서를 쓸 때를 생각해보면 저런 행위들이 연구의 목표가 될 수는 없지만,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여러가지 작업(task)일 수는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도, 저런 행위들이 연구 그 자체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Hazelrigg의 글을 읽었을 때는 놀랐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새로운 지식을 알아내는 ‘연구’는 지도교수님께서 하고 있었고, 저는 그 일을 도우면서 연구에 필요한 여러가지 개발, 설계, 최적화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새로운 알고리듬을 개발하는 일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Hazelrigg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연구가 아닙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새로운 알고리듬을 개발’하는 것이 연구의 목표일 수는 없습니다. 알고리듬을 개발하는 일은 분명 중요한 연구 행위이지만, 알고리듬을 개발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연구의 목표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말입니다. 만일 그 알고리듬이 동물 사진 중에서 고양이 사진을 골라내는 알고리듬이라면, 고양이 사진을 잘 골라내는 것이 목표이지, 알고리듬 개발이 목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장난 같지만, 차이는 명확합니다.

차이는 명확합니다.
차이는 명확합니다.

심지어, 고양이 사진을 잘 골라내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한 연구를 하는 분들께서도 단지 고양이 사진 구분만이 연구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은 잘 인지하고 계실겁니다. 고양이 사진, 개 사진을 넘어선 그 너머 어딘가에 목적이 향하고 있을 겁니다. 고양이 사진을 잘 골라내는 연구를 하다 보면, 사진을 빠르게 스캔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할 필요도 있을 겁니다.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고속 스캔 장비 개발이 목표가 아닙니다. 고양이 사진을 잘 골라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연구의 목표와 본질

물론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뭘하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뭔가를 하다가 점점 더 목표가 명확해지고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연구가 이런식으로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이전에 관련된 글을 두 개 남긴 적이 있습니다.

파인만 알고리즘에서는 문제정의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한 바 있지만, 문제를 명확히 정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문제를 정의해 가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시도를 해 보게 되는데, 이 과정이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뭘하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벌어집니다. 문제가 명확히 정해지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열심히 이것 저것 해 보고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얻게 되는 연구를 할 수 있겠지요.

연구에 대해 삼 단계로 말해보기를 예시로 알아봅시다.

(당신은 무엇에 대해 공부하고 있나요?)
1. 저는 X라는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왜 그 주제를 공부하고 있지요?)
2. 왜냐하면, 저는 왜 Y인지 알고 싶거든요.

(그걸 알면 뭐가 어쨌다는 거죠?)
3. 그러면, 제가 다른 사람들이 왜 Z인지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거든요.

1번 단계가 Hazelrigg가 말하는 연구가 아닌 작업(task)입니다. 개발, 설계, 최적화 같은 것들 말입니다. 2번은 연구의 결과로 얻어지는 직접적인 새로운 지식이고 연구의 목표(objective)입니다. 3번은 파급효과로 인해 얻어질지도 모르는 새로운 지식이며 연구가 추구하는 방향, 즉 목적(goal)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2번과 3번을 항상 생각하며 연구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적절한 연구 목표 없이도 좋은 ‘논문’은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논문이란 것이 사실은 특정 분야 연구 덕후들이 잡지에 싣는 기고문 같은 것이라, 그냥 궁금해서 해 봤는데 이런 재미있는 결과가 나오더라 하는 식의 논문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논문이 나중에 어떤 파급효과를 가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또 좋은 논문이 아니더라도, 좋은 목표가 없는 논문이라도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논문도 많이 쓰다 보면 나중에는 목표도 뚜렷하고 연구 내용도 훌륭한 좋은 논문을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화여대의 오욱환 교수님께서도 “걸작이나 대작보다 습작에 충실하십시오.”라고 조언하신 바 있습니다.

다만, 저처럼 평범한 대부분의 연구자들에게는 좋은 연구 목표에 대해서 끊임 없이 생각해보는 것이 좋은 연구를 하고 좋은 논문을 쓸 수 있는 기회를 넓혀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연구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열심히 생각하고 열심히 연구하겠습니다.

원문: 잡생각 전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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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공학자가 바라본 교육열 https://ppss.kr/archives/60688 https://ppss.kr/archives/60688#respond Fri, 27 Nov 2015 07:01:49 +0000 http://3.36.87.144/?p=60688 이 글은 그저 제 잡생각에 불과합니다. 아무런 과학적인 증거가 없습니다. 미리 알려드립니다.


한국의 사교육 문제, 크게 봐서 지나친 교육열 문제는 제가 기억하는 한도 내에서는 문제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던 듯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고등학생, 중학생,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 밤낮으로 공부하고 노력합니다. 물론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나무랄 일은 아닙니다만, 그것이 과도한 경쟁을 부추긴다는 데 있겠습니다. 이런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교 교과 과정을 바꾸고, 대학 입시를 바꾸지만, 별 소득은 없었습니다. 이 글에서 그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저는 산업공학 분야에서도 운용관리(Operations Research 혹은 OR)분야를 연구하고 있으며, 주로 수리계획법(Mathematical Programming) 혹은 최적화(Optimization), 그리고 게임이론(Game Theory)을 주요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사교육 문제를 게임이론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도 가능할 법합니다만, 우선은 최적화 관점에서 한 번 바라보겠습니다. 저는 경제학을 그리 잘 알지는 못하지만, 미시경제학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에 가길 바라는 걸까요?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대체로 ‘성공’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 ‘성공’의 정의는 사람마다 각양각색이겠지만, 우선 일차적으로 나와 내 가족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이 지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경제적인 성공’이 우선 고려될 것 같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아주 큰 돈을 벌 가능성은 사실 그리 크지 않습니다. 20대 기준으로 고소득자를 나열해 보면,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등이 앞 순위에 많이 있겠지요. 어린 나이에 큰돈을 상속받은 사람들을 제외하면 말이죠. 이런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성공에 공부해서 받은 성적표가 큰 변수는 아닐 것이라 생각 됩니다. (똑똑하고 현명한 것과 공부 잘하는 것은 또 별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직종에서는 성공할 확률이 아마도 굉장히 작을 겁니다. 수많은 연예인 지망생이 있지만, 실제로 데뷔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성공하는 사람들은 아주 적은 숫자일 겁니다.

College-Degree
공부를 잘하는 것과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것은 좀 다른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기를 바라는 이유는 아마도, 향후 미래소득의 ‘기댓값(Expected Value)’을 높이고 싶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좋은 대학을 나온다고 해서 모두가 좋은 소득을 올리는 것은 아닙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내일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체로 좋은 대학을 나오면 적당한 수준의 소득을 보장하는 좋은 일자리가 있다고 예상합니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졸업하면, 그에 따라서 미래소득의 기댓값이 증가하리라는 것이 제 추측이고, 이 글의 가정입니다.

우선 아래 그림을 보겠습니다. 가로축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더 좋은 대학입니다.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노력함으로써 분명 잃는 것이 있을 겁니다. 사교육에 투자하는 비용도 있을 것이고, 시간을 입시 공부에 더 많이 쓰느라, 정작 자기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들에 시간을 못 쓰게 되는 기회비용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공부 그 자체를 좋아하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그 학생들 역시 공부하는 시간을 줄이면 다른 곳에 시간을 쓸 수 있으니, 분명히 ‘잃는 것’ 혹은 ‘비용’이 존재합니다. 이 비용을 정확히 수리적으로 나타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논의의 간편함을 위해 선형 함수라고 가정하겠습니다.

linear-loss-1024x586

교과 과목 공부를 좋아하는 학생은 아마 비용함수 cx 에서 계수 값 c의 크기가 작을 것이고, 다른 것에 더 흥미를 느끼는 학생은 그 값이 상대적으로 더 클 것입니다.

좋은 대학을 가게 되면, 기대 소득이 증가한다고 가정하면, 좋은 대학 지표 x가 증가함에 따라, 기대 소득 E(x)는 단조 증가(monotonically increasing)하는 함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조 증가하는 함수에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습니다만, 다음의 두 가지 경우를 고려해보지요. 볼록 함수(convex function)와 오목 함수(concave function)입니다.

convex-expected-income-1024x570

concave-expected-income-2-1024x570

(위의 두 그래프에서, 왼쪽 아래의 기대소득이 반드시 0은 아닙니다. 편의상 원점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인식하는 바는 아마도 볼록 함수 형태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목 함수의 형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볼록 함수의 경우와 오목 함수의 경우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학생들이 입시 공부에 투자하는 노력은 다음과 같은 최적화 문제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maximize f(x) = E(x) – cx, subject to 0 ≤ x ≤ X

여기서 X는 최상의 조건에서 최고 수준의 노력을 기울이면 갈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대학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문제의 목적함수인 f(x)는 만일 E(x)가 볼록 함수면 같이 볼록 함수가 되고, 오목 함수면 같이 오목 함수가 됩니다. 이것은 cx가 선형 함수라서 그렇습니다. 목적 함수 f(x)를 최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입시 공부에 투자하는 노력과 비용을 결정할 것입니다.

우선, 볼록 함수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f(x)의 형태는 다음과 같이 됩니다.

convex-objective-1024x570

이 경우에 목적 함수를 최대화할 수 있는 방법은 x를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즉, 최적값 x^*=X 가 됩니다. 일반적으로, convex function의 maximum 값은 boundary에서 얻어진다는 것이 잘 알려졌지만, 그 내용을 끌어올 것도 없이, 이 경우에는 단순한 관찰로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목적 함수 값을 최대화시키기 위해서는 가로축의 오른쪽 끝까지 가야 합니다.

반면에, 오목 함수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concave-objective-1024x570

볼록 함수의 경우와는 달리, 중간에 꺾이는 경우가 생깁니다. c 값이 작은 학생에게 이 오목 함수는 가장 위쪽의 점선과 같이 그저 계속 증가하는 함수일 것이고, c 값이 큰 학생에게 이 함수는 가장 아래쪽의 점선과 같이 조금 더 왼쪽에서 꺾일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학생의 성향에 따라,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입시 공부에 들이는 노력과 비용을 결정할 수 있게 됩니다. 남는 시간과 비용을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다른 곳에 쓸 수 있도록 하겠지요.

저는 이런 형태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한국 사회가 그간 고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 들인 많은 노력 역시 이러한 방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학 수준에 따른 기대 소득이 볼록 함수인 경우에도, 목적 함수가 오목 함수가 되어, 입시 공부에 자신의 모든 역량을 기울이지 않고,  그 시간을 다른 곳에 쏟는 학생들이 분명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비용 함수가 선형이 아니라, 역시 단조 증가하는 볼록 함수여야 합니다. 자신이 입시 공부에 시간을 쓰면 쓸수록, 하고 싶은 다른 것을 하지 못함으로써, 잃는 것이 점점 더 크게 증가하는 경우입니다. 많은 수의 연예인 지망생이나, 운동선수, 혹은 예술가 등이 대체로 이런 경우입니다.

흥미와 관심사를 고교 시절부터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박사학위를 가진 30대 중반의 교수입니다. 아직도 제가 정말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잡생각 하는 것은 분명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위에서 제가 기대 소득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지만, 일반적인 ‘삶의 만족도의 기댓값’으로 바꾸어도 됩니다. 경제학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효용(utility)’입니다.

이효용_utility
KBS 이효용 기자님은 경제학을 공부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지나친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려면, 좋은 대학을 가게 되면 얻을 수 있는 기대 효용 함수(E(x))를 오목 함수로 바꾸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큰 노력을 기울여서 한두 순위 높은 대학을 가봐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증가하긴 하나 노력에 비해서 그리 크지 않다면, 학생들이 다양한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와 같은 볼록 함수의 경우에는 노력해서 좋은 대학을 가게 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집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모든 학생이 입시 공부에 ‘올인’하게 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사실 더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사실, 위의 최적화 논의에서는 ‘불확실성(uncertainty)’에 대한 것이 빠졌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단순한 기댓값 뿐만 아니라, ‘위험’ 역시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입시 공부를 소홀히 했을 때, 내 미래의 기대 연봉이 오천만 원이긴 하지만, 내 미래의 연봉이 천만 원 이하가 될 확률이 99%라면, 입시 공부 할 시간에 다른 활동에 신경 쓸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 경우에는 1%의 확률로 수십억을 벌어들이는 부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대학을 졸업하느냐 마느냐 여부와 상관없이,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기대 효용 함수(E(x))를 오목 함수로 바꾸고,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답을 저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 시민단체, 학술단체, 정당, 정부기관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조금 고민해 봤는데, 정말로 잘 모르겠습니다. 굉장히 복잡한 문제인 듯합니다. 저소득자에 대한 복지를 늘리고,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을 높인다면, 오목 함수로 바꾸는 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또, 최저 임금을 높인다면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되겠지요. 삶을 바라보는 방식과 성공을 정의하는 각자의 기준 등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사회 문제는 제 전공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좋은 결론을 내리긴 어렵네요. 다만, 한국의 교육 정상화 문제의 원인은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등 교육기관과 교육제도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더 위에서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내가 좋은 대학을 나온다면, 더 윤택한 삶을 살 가능성이 굉장히 올라간다면, 모두가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너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이상 제 잡생각이었습니다.

원문: 잡생각 전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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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문제보다 에세이: 한 교수의 이야기 https://ppss.kr/archives/31733 Tue, 14 Oct 2014 06:48:28 +0000 http://3.36.87.144/?p=31733 학부생을 가르치다 보면 항상 실망하게 된다. 내가 바라는 만큼 학생들 시험성적이 안 나온다. 지나칠 정도로 시험문제가 쉽다고 생각한 경우에도, 대체로 평균 점수가 잘 안 나온다. 수업시간에 수십 번 강조했던 사항을 조금만 뒤틀어서 다르게 물어보면 반 이상이 답을 하지 못 한다. 가르치는 내가 한심한지 배우는 학생이 한심한지, 한심해진다.

버팔로에서 내가 5년째 매년 가르쳐 온 과목이 하나 있다. 산업공학과를 선택한 학부 3학년 학생들이 필수로 들어야 하는, 생산 관리 과목이다. 원래 과목 이름은 Planning for Production이었는데, 좀 더 멋진(?) 이름을 위해 Planning for Production and Service Enterprises라는 이름으로 지난해부터 바뀌었다.

이 과목을 다섯 번째 가르치다 보니, 이제 어떤 부분을 학생들이 어려워하고 어떤 부분을 학생들이 재미있어하며, 어떤 방식으로 강의할 때 효과적인지가 조금씩 보인다. 매년 같은 과목을 가르치다 보니, 수업 준비하는데 들어가는 시간도 많이 줄어든다. 수년째 강의 노트가 바뀌지 않는 교수가 불성실한 교수의 예로 지목이 많이 되는데, 내 경우에는 강의 노트가 바뀌긴 바뀐다. 조금씩 변동사항이 있으나, 대체로 5년간 많이 줄어들었다.

처음엔 내 욕심에 이것도 가르치고 저것도 가르치고 해보았으나, 강의는 재미가 없고, 학생들은 관심도 없고, 이해하지도 못하고, 나중에 별 쓸모도 없어 보인다. 그런 내용을 잘라내고 나서, 중요한 내용은 재미있는 방식으로, 재미있는 내용은 더 재미있는 방식으로 가르치려고 노력 중이다.

내가 학교에서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기 위해서 주로 들르는 곳에 Tim Horton’s라는 도넛 가게와 (Dunkin Donuts와 비슷하다.) Subway라는 샌드위치 가게가 있다. 이 두 가게가 어떻게 비슷한지, 어떻게 다른지를 수업시간에 이런저런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예로 사용한 것이 3년 차 때였다. 학생들도 이 두 곳을 자주 이용하는지라, 설명에 흥미를 보였으며, 반응도 꽤 괜찮았다. 물론 나는 이 두 곳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자세히 모른다. 내 경험은 고객으로서의 제한된 경험뿐이다.

작년, 4년 차 때는 내가 관찰하고 느낀 것을, 학생들도 비슷하게 하기를 원해서, Tim Horton’s와 Subway, 두 곳을 비교하는 에세이를 쓸 것을 학기 말에 요구했다. Final Project가 아니라 Final Essay였다. 프로젝트를 내 주기는 내가 귀찮고, 그저 학생들이 에세이나 써보면서 학기 중에 배운 내용을 정리나 해 보라는, 내가 예로 들며 말한 것들을 다시 복기나 해보라는 식이었다.

결과는 정말 놀라웠다.

어떤 학생은 가게 앞에 죽치고 앉아서 손님이 언제 가장 많은지, 직원은 어떻게 교대로 일하는지, 도넛과 샌드위치는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고 팔려나가는지를 관찰했다. 어떤 학생은 그 가게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친구를 찾아서,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그것을 학기 중에 배운 내용을 토대로 정리했다. 어떤 학생은 아예, 가게의 매니저를 직접 인터뷰해서 프랜차이즈가 어떤 식으로 관리되고 운영되는지를 알아냈다.

난 정말 놀랐다. 나는 내가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마치면서, 이런 식의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학생들도 나처럼 책상 앞에서 앉아서 검색 좀 해보고, 손님으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적당히 정리하는 글을 써올 줄 알았다. 에세이를 받아 보고는 너무 놀랐다.

올해는 아예 Tim Horton’s와 Subway 두 곳으로 한정하지 않고, 아무런 business 두 가지를 선정해서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토대로 비교하는 에세이를 써오라고 했다. Tim Horton’s와 Subway도 물론 좋은 주제라고 이야기했고, 실제로 몇몇 학생들은 두 곳을 비교했다.

올해 수업에서는 iPhone 이야기 Amazon 이야기를 많이 해서인지, Apple, Samsung, Amazon, Google, Microsoft 등을 주제로 선택한 학생들이 꽤 있었다. 어떤 학생은 패션 쪽 주제를 선택했고, 어떤 학생은 버팔로 윙, 어떤 학생은 게임기, 어떤 학생은 항공기 등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의 것들을 선택했더라.

그중에서 내가 가장 관심 있게 읽고 가장 큰 점수를 준 에세이는 Advanced Auto Parts와 Pepboys라는 자동차용품 전문 체인점 두 곳을 비교한 에세이였다. 학생 본인이 자동차를 수리하고 부품을 교체하는 것에 큰 관심이 있어 보였다. 에세이 곳곳에서 ‘나 이런 거 좋아해’, ‘내가 관심이 있어서 더 알아보지 않고는 못 배기겠어’와 같은 학생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기말고사를 칠 때, 에세이를 같이 가져와서 제출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 에세이에 대한 피드백은 점수로 알려줬다. 내가 만약 그 학생이었다면, 자기가 쓴 에세이에 대해서 발표를 하고 싶어 미칠 것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이렇게 재미있는 주제를 이렇게 열심히 조사해서 멋진 글을 썼는데, 누구한테라도 보여주고 싶고 누구한테라도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 같다.

그래서, 내년에 또다시 이 과목을 강의하게 된다면, 에세이 제출을 조금 일찍 하도록 해서, 멋진 에세이를 쓴 몇 학생을 골라 수업시간에 발표하도록 해야겠다. 물론, 내가 강의하는 시간은 줄어들테니 (룰루랄라) 강의 노트도 여남은 장이 다시 줄어들겠지.

그리고 평점에서 차지하는 에세이의 비중을 늘려야겠다. 그저 강의노트 공부 열심히 해 문제 잘 푼다고 해서 강의 내용을 더 잘 받아들였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시험이라는 것은 학생 평가가 좀 더 쉬워진다 뿐이지, 효과적인 학생 평가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에세이를 잘 쓴 학생들을 보면, 대체로 수업시간에 결석과 지각이 거의 없었고, 수업 시간에 질문을 많이 하고, 내가 이야기하는 것을 경청하는 등, 수업에 열의를 보였던 학생들이다. 수업에 열의를 보였다고 해서, 꼭 시험을 잘 쳐서 좋은 평점을 받는 것은 아니더라. 학생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데 있어서, 이 수업의 경우에는, Final Essay가 단순한 시험문제보다는 훨씬 좋은 방법인 것 같고, 교육적인 효과도 훨씬 큰 것 같다.

원문: 잡생각 전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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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가 꼭 알아야 할 3단계 질문 https://ppss.kr/archives/23031 https://ppss.kr/archives/23031#comments Wed, 25 Jun 2014 00:17:31 +0000 http://3.36.87.144/?p=23031 책을 읽다 많은 연구자들에게 도움 될 내용이 있어 공유합니다. 모든 연구는 목표가 있습니다. 대체로 어떤 질문에 답을 찾아내는 것이지요. 어떤 유형의 질문이 있는지, 어떤 연구가 좋은 연구인지, 연구자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김연아와 트리플 악셀

피겨 스케이팅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김연아 선수의 팬들은 피겨 스케이팅 관련 자료를 많이 보고 듣고 읽고 모을 겁니다. 김연아 선수의 사진도 모으고, 김연아 선수가 출전하는 대회를 알아 보고, 피겨 스케이팅 경기의 규칙도 찾아 보고, 김연아 선수와 같은 대회에 출전하는 다른 선수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겁니다. 팬이기 때문에 자신의 관심사와 관련 있는 여러 자료를 접합니다.

참 쉽죠?
참 쉽죠?

덕후 연구자들은 그저 이런 저런 자료를 접하기보다는 어떤 질문에 답을 하기에 필요한 자료들을 선별하여 집중적으로 모을 겁니다. 예를 들어 “김연아 선수는 왜 트리플 악셀을 뛰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점프 기술의 성공률, 점수 배점, 기술의 난이도, 체력 소모 등 여러 자료들을 모을 겁니다. 그리곤 분석하고 답을 하겠지요.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도출해낸 답이 얼마나 정확하고 좋은 답인지 주장을 할 겁니다.

좋은 연구자는 질문의 답이 얼마나 좋은 답인지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 질문이 좋은 질문인지, 대답할 가치가 있는 질문인지 이야기할 겁니다. 그 질문에 대답하면 다른 더 큰 주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 될 것인지, 다른 더 큰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될 것인지를요.

앞서 언급한 ‘김연아 선수가 왜 트리플 악셀을 뛰지 않는가’의 답을 찾아낸다면 아마 다른 여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에게 가장 적합한 기술 구성 요소들의 조합을 찾아내는데 도움 될지 모릅니다.

 

3단계로 말하기

모든 연구자는 3단계로 자신의 연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공부하고 있나요?

1. 저는 X라는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예: 저는 피겨 스케이팅의 점프 기술의 배점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왜 그 주제를 공부하지요?

2. 왜냐하면, 저는 Y라는 질문에 답을 하고 싶거든요. (예: 저는 왜 김연아 선수가 트리플 악셀을 뛰지 않는지 알고 싶거든요.)

왜 그 질문이 중요하죠?

3. 그러면, 제가 다른 사람들이 Z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거든요. (예: 제가 다른 여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이 가장 적합한 기술 구성 요소 조합을 찾아내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요.)

제가 예제를 재미있게 만들어 본답시고 원래의 의미를 많이 망친 것 같습니다. 본래 책에 나오는 예를 알려 드립니다.

1. I am working on the topic of X

– I am working on the topic of stories about the Battle of the Alamo,

2. because I want to find out Y

– because I want to find out why its story became a national legend,

3. so that I can help others understand Z

– so that I can help others understand how such regional myths have shaped our national character.

아래 세 종류의 연구에 이 3단계 질문을 적용해보겠습니다. 세 종류의 연구는 개념적인 연구(Conceptual), 실용적인 연구(Practical), 그리고 응용 연구(Applied)입니다.

 

개념적인 연구

개념적인 연구에서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질문을 하고 연구를 합니다.

Q1. 무엇을 공부하고 있나요?

A1. X라는 주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Q2. 왜 그 주제를 공부하지요?

A2. 왜 Y인지 알고 싶거든요.

Q3. 그걸 알면 뭐가 어쨌다는 거죠?

A3.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왜 Z인지 이해할 수 있게 제가 도와줄 수 있거든요.

이런 연구는 보통 순수학문이라고 불립니다. 그저 사람들의 이해도를 높일 뿐,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둥 실제로 어떤 행동지침 따위를 주는 데 도움이 되진 않기 때문이지요.

순수학문의 경우 세 번째 질문에 좋은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연구를 시작할 때는 그 연구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불명확한 경우가 아주 많고, 심지어 연구를 끝마친 뒤에도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알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세 번째 질문에 답을 해야 합니다. 좋은 대답을 내놓지 못하면 본인만을 위한, 다른 사람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연구가 될 수 있습니다.

 

실용적인 연구

실용적인 연구는 주로 학계 밖에서 회사를 운영하거나 사업을 할 때 더욱 필요한 연구 형태입니다. 종종 경영학이나 공학에서 이런 형태의 연구를 하기도 합니다.

Q1. 무엇을 공부하고 있나요?

A1. X라는 주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Q2. 왜 그 주제를 공부하지요?

A2. Y가 어떤 건지 알고 싶거든요.

Q3. 그걸 알면 뭐가 어쨌다는 거죠?

A3. 그러면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Z를 고치거나 더 낫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거든요.

 

응용 연구

경영학이나 공학에서는 실용적인 연구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개념적인 연구와 실용적인 연구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형태의 연구를 합니다. 실용적인 연구는 실질적인 행동 지침을 주지만 응용 연구의 경우 그러한 행동 지침을 향해서 계속 다가갈 뿐이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Q1. 무엇을 공부하고 있나요?

A1. X라는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Q2. 왜 그 주제를 공부하지요?

A2. 왜 Y인지 알고 싶거든요.

Q3. 그걸 알면 뭐가 어쨌다는 거죠?

A3. 그러면, 우리는 Z1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Q4. 그걸 알면 뭐가 어쨌다는 거죠?

A4. 그러면, 우리는 Z2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Q5. 그걸 알면 뭐가 어쨌다는 거죠?

A5. 그러면, 우리는 Z3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Q6. 그걸 알면 뭐가 어쨌다는 거죠?

A6. 그러면, 우리는 Z4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Q7. 그걸 알면 뭐가 어쨌다는 거죠?

A7. 그러면, 아마도 정부가 Z5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맺음말

제 학생들과 연구 주제를 정할 때 위의 방식으로 정리해보려고 노력합니다만 항상 좋은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건 아니더군요. 특히나 석사 학생들과 함께 일할 때 더 큰 어려움을 느낍니다. 박사과정 학생의 경우에는 첫 번째 연구를 제가 이끌어 주면 그 뒤로는 학생이 경험이 생겨서 혼자서도 잘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석사 과정 학생은 박사 과정 학생과 비교해서 학생의 지식과 주어진 시간이 부족합니다. 결국엔 제가 갖고 있던 연구 주제 중 하나를 줄 수 밖에 없더군요. 석사 학생과 함께 좋은 논문도 많이 쓰고 싶은데, 쉽지 않습니다. 항상 아쉽네요.

위의 방식은 연구비 수주를 위해서 제안서를 작성할 때도 유용했습니다. 제 연구를 위의 방식으로 3단계로 설명하면 모두에게 명확한 설명이 되므로 제안서를 심사하는 분들께도 도움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3단계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오랜 기간 생각이 쌓여야 하더군요.

위의 내용이 실린 책은 『영어논문 바로쓰기』의 원서 『A Manual for Writers of Research Papers, Theses, and Dissertations』입니다. 원래 시카고대학교에서 학생들의 학위 논문을 편집하고 교정 보는 일을 돕던 케이트 트레이비언(Kate Turabin)이 참고 문헌 인용, 문장 부호 사용 방법 등을 정리해서 출판한 책입니다. 소위 말하는 ‘시카고 스타일’이라는 것을 만들어 낸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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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7판이 넘어가면서 시카고대학교 출판부는 새로운 내용을 덧붙입니다. 「연구와 글쓰기: 계획에서 완성까지(Research and Writing: From Planning to Production」입니다. 『The Craft of Research』이라는 책을 축약 및 정리한 부분인 듯 보입니다. 좋은 연구 문제를 찾고 연구를 진행하는 데 도움 되는 내용이 많아 두루 권합니다.

9780226065663-199x300

영어로 쓰인 글을 제 마음대로 자르고 붙이고 번역하다 보니 글이 매끄럽게 읽히지 않네요. 번역 일 하시는 분들께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원문: 잡생각 전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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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교수에게 좋은 이메일 보내는 방법 https://ppss.kr/archives/18052 Mon, 17 Mar 2014 00:46:13 +0000 http://3.36.87.144/?p=18052 좋은 답변을 교수에게서 받는 것, 좋은 질문이 우선이다

학생들의 질문에 항상 만족스러운 대답을 해 주시고, 학생들의 요구에 항상 기대 이상의 것을 해 주시는 교수님을 지도교수님으로 모시고 있다면, 복 받았다.

학생 시절 내가 직,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대부분 교수님은 그러시지 않으셨다. 논문을 쓰다가 부딪힌 문제에 대한 물음에 대한 만족스러운 대답을 지도교수에게 얻을 수 없는 경우가 아주 허다했으며, 어느 정도 진척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동안 작성한 논문을 지도교수에게 보여줬더니, 책상 위 귀퉁이 어느 한 곳에서, 혹은 받은 편지함 어느 깊숙한 곳에서 교수의 관심을 잃곤 했다.

왜 교수님은 학생들의 질문과 요구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주시지 않을까? 이 글의 첫 문장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써보겠다. “자신의 질문에 지도교수님이 항상 만족스러운 대답을 주시고, 자신의 요구사항에 기대 이상의 것을 지도교수님이 해 주신다면, 복 받았다.”

이런 답변을 받는 학생은 질문과 요구를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도교수님이 학생 지도에 얼마나 열의가 있느냐와는 무관하게, 학생의 관점에서 지도교수에게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하는 것이다.

 

질문은 반드시 ‘구체적’이고 ‘부분적’이어야 한다

지도교수를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만, 이 글에서는 이메일을 통해서 교수님께 질문하고 요구하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자.

“교수님, 제가 현재 작성하고 있는 논문을 보내드립니다. 괜찮은지 한 번 봐주십시오.”

아주 높은 확률로, 교수님은 괜찮은지 봐주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그저 기계적으로 논문의 논리나 내용이 아니라 글쓰기 자체에 대한 제안만 해주기도 한다. 논문이 완성되어 가고, 어느 시점이 되면, 지도교수가 학생의 논문을 전체적으로 꼼꼼히 읽어 보고, 여러 가지 문제점 및 개선안을 알려줄 필요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저렇게 이메일을 보내면, 안 읽어본다.

문제점이 뭘까? 일단 교수는 바쁜데, 학생이 연구한 내용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고 하면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 위와 같은 식으로 질문/요구를 한다면, 문제점에 대한 해결방안을 생각해 내는 데 필요한 시간보다,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데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더 많다. 교수는 아마 그 일을,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나중의 여유시간으로 미룰 것이다. 그리곤 잊을 거다.

학생이 작성하고 있는 논문에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학생은 대체로 이미 알고 있다. 교수가 더 잘 알고 있다면, 이전의 다른 글에서 말한 것처럼, 학생이 논문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교수의 논문을 그저 도와주고 있을 확률이 높다. 공부를 안 해서 불안한 내용에서, 꼭 시험 문제가 출제되고, 프로젝트 발표를 하는 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자신이 없어 불안한 곳에서 꼭 교수님의 날카로운 질문이 들어온다. 자신 없는 부분은 본인이 이미 알고 있다.

논문 전체를 던지는 대신, 자신 없는 부분에 대한 것을 콕 찍어, 질문을 쪼개서 간단하게 만든다. 그 리스트를 만들고, 그 리스트의 각각의 항목의 핵심적 질문을 쓴다. 그리고는 그 리스트를 논문과 함께 이메일로 보낸다.

아니다. 그 리스트의 항목 한 개, 혹은 두 개, 아주 많이 양보해서 세 개 정도만 보낸다. 질문이 얼마나 대답하기 쉬운 질문인지에 따라 달렸다. 질문을 쪼개고 쪼갰지만, 그래도 여전히 대답하기에 생각을 꽤 해 봐야 하는 질문이면 한 번에 한 개만 보낸다.

이메일로 질문하는 경우에, 그 이메일에 대답하기 위해 오랜 생각이 필요한 경우라면, 교수는 어쩌면, 나중의 여유시간으로 대답을 미룰지 모르고, 아마 그리곤 잊을지도 모른다. 여러 질문을 한꺼번에 보내면, 교수가 질문 하나에 대한 대답은 가지고 있지만, 나머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생각을 좀 해봐야 해서, 답장을 미루다가, 그 하나의 대답마저 못 듣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교수마다 반응이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답장을 미뤘다가, 결국은 학생에게 답장하는 것을 잊은 경험이 있다.

 

교수에게 많은 생각을 요구하게 하지 말라

물론, 연구라는 것이 아무리 단계를 쪼개고 쪼개도, 더는 간단해질 수 없을 때가 있고, 어쩔 수 없이 오랫동안 생각을 해야 답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있을 거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여전히 질문의 단위를 쪼개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쉽게 얻을 수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쪼개진 물음도 질문하는 방법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을 비교해보자.

1. ABC 방법으로 접근했더니, 이러이러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ABC 방법으로 접근했더니, 이러이러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ABC 방법이 def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def 요소를 고려하는 DEF 방법이나, GHI 방법을 사용해서 접근해보려고 합니다. 어느 방법이 더 나을까요?

1번의 질문도 교수의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2번 질문이 훨씬 더 대답하기 쉬운 질문이다. 아주 간단하게는, 1번 질문은 주관식이고, 2번 질문은 객관식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2번 질문이 답변자가 생각해야 하는 길을 간략화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좋은 학생이라면, ABC 방법으로 접근해서 문제가 생겼을 때, 왜 문제가 생겼는지, 어떤 대안이 있을지, 고민해 보았을 거다. 1번 질문에서는 학생의 그 고민을 질문에 포함을 시키지 않았고, 2번 질문에서는 그 고민을 질문에 포함했다. 교수는 학생의 고민이 정말로 무엇인지를 쉽게 알 수 있고, 학생이 이미 해 본 고민의 사고 과정을 따라가면서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기가 쉽게 된다.

2번과 같은 질문에서도, 교수의 답이 반드시 DEF, GHI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대답이 아닐 수도 있다. 발생한 문제가, 실제로는 문제가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올 수도 있고, def 요소가 핵심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고, JKL 방법을 제안할 수도 있다. 어찌 됐든, 1번 질문보다는 2번 질문이 훨씬 나은 질문이다.

물론 2번과 같은 방식으로 질문 할 경우에도, 이메일을 너무 길게 쓰면 안 된다. 핵심만 추려서 질문해야 한다. 이메일을 너무 길게 쓰면, 교수가 읽는 것조차 미룰지도 모른다.

 

좋은 질문을 하다보면 스스로 답을 찾을 수도 있다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서, 질문을 작은 단위로 쪼개다 보면,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기 전에 학생 스스로 해답을 얻을 가능성도 많다. 해답을 얻지 못해 질문하는 많은 경우는 본인 스스로 질문의 핵심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일 수 있는데, 이 경우 질문 쪼개어, 질문의 핵심을 파악하는 것이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에 도움이 된다. Feynman Algorithm (파인만 알고리즘)에 대한 글을 참고하자.

지도교수는 대체로 학생들의 일을 도와주고 싶어하고,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나쁜 교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교수는 자신의 학생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학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혹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투자해야 할 때에는 도와주고 싶으나, 도와줄 수 없을 수도 있다. 교수에게 질문하고 요구를 할 때, 만족스러운 대답과 반응을 원한다면, 교수가 대답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줄여 줘야 한다.

 

이메일의 기본으로 돌아가자

이 잡담은 사실, “하나의 이메일에는 하나의 질문/요구만을 담아야 하고, 될 수 있는 한 짧게 보내야 한다.”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이메일 예절을 쓸데없이 길게 쓴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내가 2003년에 참석했던 한 모임에서 접한 “교수의 시간을 아껴주는 학생이 좋은 학생이다.”라는 짧고도 함축적인 조언을 역시 쓸데없이 길게 쓴 것에 불과하다.

다음 글을 참고하자.

Keep Emails Short

How to Get Your Questions Answered, Tasks Done in Emails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메일의 제목과 내용은 일치해야 한다. 잊고 있던 학생의 질문이 생각이 나서, 검색했는데,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제대로 찾기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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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 학생이 유의해야 하는 점 https://ppss.kr/archives/17953 https://ppss.kr/archives/17953#comments Tue, 11 Mar 2014 01:44:59 +0000 http://3.36.87.144/?p=17953 박사 학위를 위한 길은 꽤 길다. 평균적으로 5~6년 정도는 걸린다. 이런 길고 긴 과정의 마무리는 역시, 졸업 논문을 완성하고, 최종 발표(디펜스)를 하고, 지도교수를 비롯한 커미티에게 서명을 받는 게 아닐까 한다. 이렇게 마무리를 하기까지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학생의 실수로 생기는 어려움도 많이 있다. 학위 과정 중에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아주 많은 유형이 있지만, 그 중에서 실수임을 알아 채기 어려운 한 가지만 골라서 이야기해 보겠다.

“나는 열심히 하는 데, 지도교수는 자꾸 이상한 소리만 하고, 교수가 졸업 준비를 시켜주지 않는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이와 같은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 박사과정 학생이 있다면, 아마 이 글이 도움될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자세하게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 적이 있다면, 이 글이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는 교수가 하라는 대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정말 열심히 했는데, 교수가 자꾸 논문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기만 하고, 논문 진도는 안 나가고, 도대체 교수는 생각이 있는 건지, 이 교수 밑에서 배울 게 있는 건지, 내가 졸업이나 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일단, 교수가 하라는 대로 했기 때문에 문제다. 정확히는 교수가 뭘 하라고 말하게 놔둬서 문제다. 박사 학위 논문은 학생 본인이 쓰는 거다. 물론, 처음에는 지도교수가 이런 거 저런 거 하라고 하는 거 해 보면서, 연습도 하고 실력도 쌓고 논문도 읽으면서 준비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게 박사 말년차 때 까지 계속 된다면, 문제가 아주 심각해 진다.

교수는 일단 기본적으로 어떤 연구를 하면 성과를 내서 졸업을 할 수 있는지 잘 모른다. 어떤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연구해서 졸업할 수 있을만한 (대체로, 출판할 수 있는) 논문을 쓸 수 있는지 안다면, 그건 이미 연구가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우리도 우리가 뭐하는지 잘 모르잖아요. 알면 연구 아니잖아요. 그렇잖아요.”) 그래서 일단 가슴 속에 명심하자.

“교수는 아무 것도 모른다.”

물론 지도 교수 말고, 다른 교수들도 아무 것도 모르고, 이 세상 사람들 그 누구도 모른다. 알기 위해서 연구를 하는 거고, 그래서 박사학위를 주는 거다.

박사 과정에 들어간지 2~3년차가 되면, 일단 어느 정도 연구가 어떤 건지 감은 잡았다고 보고, 그 단계에 들어서면, 더 이상 논문의 주인이 교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 본인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학생이 주인이 되기를 꺼려하고 있다면, 교수는 어쩔 수 없이 무언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이것 저것 시켜보기 시작한다. 학생이 감을 잡고 연구 주제를 정하고 연구 방향을 정하고 연구 방법을 정하기 어려워 하는 것 같으면, 지도교수는 도와주기 위해서 당연하게도, 이것 저것 시도를 해보게 한다. 그러다가 학생이 언젠가 주인임을 선언하고 나서기를 기다리며.

그런데 이 시도라는 게 그야말로 시도다. 앞서 말했듯이, 교수도 뭔지 모른다. 그래서 자기가 생각하기에 가장 가능성 있어 보이는 몇 가지를 시켜볼 거다. 근데 당연히 안 될 가능성도 많다. 그래서 연구하는 거니까.

학생이 이 몇가지 시도를 해 보고 나서, 잘 안 되었을 경우에는 두 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다. 첫번째는, 관련 논문들을 읽어 보고, 다른 방안을 생각해 보고, 대안을 생각해서 교수에게 말한다. “이렇게 이렇게 해 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면 교수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아예 말이 안 되는건 아닌지를 따져 줄 거다. 이건 좋은 경우.

두번째는, 교수가 시키는 (사실은 시킨 게 아니고,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를 한 것) 대로 “열심히” 해 보고 안 됐기 때문에, 다시 교수를 만났을 때, “잘 안 되네요. 이제 어떻게 할까요?” 라고 물어 본다. 아주 안 좋은 경우다.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뭔가 질문이 들어오면 대체로 대답을 해 준다. 왜냐하면, 그게 직업이기 때문에. 학생의 질문에 답을 주려고 노력 하는 것.

문제는, 박사 수준의 연구에서 교수의 대답이라는 건 별로 믿을 게 못 된다. 왜냐하면, 교수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답이 아니다. 아마 “잘 안 되네요. 이제 어떻게 할까요?” 라고 물어보면, 교수는 또 뭔가 이것 저것 말 해 줄꺼다. 그러면 학생은 또 돌아가서 시킨 대로 열심히 해본다.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당연히 논문은 진도가 안 나갈 것이고, 학생은 초조해 지기 시작할 것이다. 교수가 이런 말을 할 지도 모른다. “이 상태로는 졸업이 어렵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학생은 교수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는데, 맨날 했던 말을 “뒤집고”, 방향을 “바꾸고” 했던 것은 교수인데 왜 졸업을 못 시켜주겠다는 건가? 학생은 불평 불만이 아주 많을 것이고, 화도 날 것이고, 믿었던 도끼에 발등찍힌 기분일 것 이고, 여러가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다. 황당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교수는 “뒤집고”, “바꾸고” 했던 적이 없다. 학생의 도움 요청에 반응을 했을 뿐이다.

학생의 연구 내용은 그 학생이 가장 잘 안다. 연구의 큰 줄기는 지도 교수가 파악하고 있을 수 있으나, 세부적인 사항들은 당연하게도 학생이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방향에 대해서 주도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은 학생이다. 지도교수는 그저,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도와줄 뿐이다.

지도교수가 자기 논문을 쓰게 만들면 안 된다. 자기 논문은 자기가 써야 한다. 물론 학생이 주도적으로 연구를 하고 방향을 정하고 여러가지 결정을 내려도, 졸업 후에 돌아보면, 결국 자기 논문은 지도교수가 기여한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할 확률이 높다. 그래도 어쨌든, 학생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자기 논문을 이끌어야 한다. 그래야 졸업할 수 있다. 그렇게 주도적으로 연구를 하는 사람에게 수여하는 것이 박사학위 이며, 주도적으로 연구를 하지 않으면 졸업논문을 완성할 가능성도 매우 낮을 것이다.

최종발표 때 지도교수를 놀라게 하지 말자.

학생이 주도적으로 연구를 해야 한다고 해서, 지도교수를 연구에서 배제하고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지도교수는 학생이 어떤 주제의 연구를 어떤 흐름을 가지고 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 지도교수를 주기적으로 만나서, 자기가 어떤 주제로, 어떤 방법으로 연구를 하고 있고, 지금 상황은 어떤 상황이며, 졸업 논문 전체의 구성은 어떻게 될 것이며, 앞으로 시간 계획은 어떤 것인지를 끊임없이 업데이트를 시켜줘야 한다.

만일 교수가 생각하기에 문제가 될법한 것들이 있다면, 조금 더 자세히 물어 볼 것이며, 그것이 정말로 문제가 된다면, 교수가 지적을 해 줄 것이고, 어쩌면 해결 방법이 될 수도 있는 여러가지 대안들을 알려줄 것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교수는 학생의 연구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한다.

만일 지도교수가 학생의 연구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면, 당연하게도, 학생 본인이 준비가 되었다 안 되었다를 어떻게 판단하든, 지도교수는 학생이 졸업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생각 할 것이고, 아마 뭐가 잘 못 됐다면서 연구를 다시 하라고 할 가능성이 높다. 끊임 없이 업데이트를 시키면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최종발표를 하려고 하는 내용에 지도교수가 놀랄 만한 이야기가 있으면 안 된다.

간단하게만 업데이트 시키는 경우에도, 만날 때 마다 했던 이야기 또 해야 한다. 매주 혹은 2주마다 지도 교수를 주기적으로 만나는 학생의 경우에도 이런 불만을 터트릴 수 있다. 교수가 지난 미팅 때 했던 이야기를 전혀 기억 못 하고, 했던 이야기 또 해야 한다. 당연하다. 교수는 원래 학생 연구를 자세히 기억하지 못 한다. 학생은 교수랑 일대일로 만나는 거지만, 교수는 만나야 할 학생도 많고, 자기 연구 생각하는 것만 해도 기억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 교수가 학생 연구를 너무 잘 알고 있으면, 아마 그건 학생 연구가 아닐 거다. 교수 연구를 학생이 도와주고 있는 것일 뿐이다.

내가 위에서 길게 말 한 것이 정리가 잘 안 된다면, 한 가지만 기억하자. “교수도 잘 모른다.” 교수가 멍청해서 잘 모르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잘 모른다. 그래서 연구다.

한 가지를 더 기억할 수 있다면, 이 점을 명심하자. “그런데, 교수가 잘 알게 돼야, 학생이 졸업을 한다.”

원문: 잡생각 전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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