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 https://ppss.kr 필자와 독자의 경계가 없는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Sat, 19 Oct 2024 04:29:03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5.8.10 https://ppss.kr/wp-content/uploads/2015/07/ppss-100x100.png ㅍㅍㅅㅅ https://ppss.kr 32 32 브랜드 자료를 조사하기 전에 생각할 것들 https://ppss.kr/archives/267409 Sat, 19 Oct 2024 04:29:03 +0000 http://3.36.87.144/?p=267409 하나의 브랜드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자료들이 필요하다. 뉴스나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발행한 칼럼을 읽고, 더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논문도 찾아보고, 직접 서점에 가서 관련 책들에 나오는 정보들을 얻기도 한다. 요즘에는 유튜브나 SNS에 올라와 있는 정보까지 있으니 찾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폴더 하나가 수백 개가 넘을 정도의 문서를 찾을 수도 있다. ‘

그뿐인가? 이제는 챗지피티나 클로드 같은 AI를 활용해 검색 없이도 일정한 수준 이상의 고급 정보들을 찾을 수가 있다. 브랜드에 관련된 정보가 뉴스나 브랜드 관련된 분들의 인터뷰가 전부였던 시절을 생각하면 흘러넘칠 정도의 정보량이다.

Image by DC Studio on Freepik

하지만 이렇게 정보의 양이 늘어났다고 우리가 브랜드를 더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됐을까? 브랜드를 바라보는 눈이 더 넓어졌을까? 몰랐던 부분까지 세세하게 샅샅이 다 알았다고 과연 브랜드가 가진 문제점이 잘 드러나게 됐을까?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량만큼이나 브랜드 컨설팅의 전문성과 인사이트 수준이 올라갔는지는 모를 일이다.

물론 쉽게 정보를 취합할 수 있어 자료 조사 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 정보들을 싹싹 긁어모아 쌓아두기만 한다면 그건 그저 하나의 텍스트 뭉치일 뿐이다. 맥락 없이 늘어놓은 문서들은 헌책방에 먼지 수북하게 쌓여있는 책들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작정 자료 수집을 하고 찾을 것이 아니라, 자료 조사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어디서 찾아야 원하는 만족할 만한 자료들을 찾을 수 있을지를 미리 철저히 계획해야 한다.

 

1. 찾아야 할 자료들이 어떤 목표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기

정보의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브랜드를 파악할 때 중요한 정보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브랜드의 문제가 고객 인지도에 있는데, 브랜드의 품질에 대한 정보만 가득하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또한 브랜드의 이미지와 메시지에 문제가 있는데 브랜드가 가진 기술적인 문제에 관련된 사항들만 잔뜩 찾는다고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질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선 브랜드가 어떤 상황이고 어떤 상태에 있는지 현재를 어느 정도 진단해 본 이후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찾아야 한다.

 

2. 정보들을 어디에서 어떤 경로로 찾아야 할지 생각해 보기

어떤 경우에는 전문적인 학술논문이나 관련 저자의 책이 더 도움이 된다. 또 다른 경우에는 유튜브의 가벼운 인터뷰가 브랜드를 파악하는 데 더 도움을 주기도 한다. 조사 시간 시간이 충분하다면 브랜드 관련 사람들을 만나 직접 얘기를 들어보는 게 논문 다섯 편을 읽는 것보다 도움을 주기도 한다.

브랜드의 결을 잘 파악할 수 있고 설명해 줄 사람이나, 정보처를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경로를 통해 많은 정보를 찾아 헤매는 일은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다.

 

3. 찾은 정보들은 어떤 맥락으로 분류할지 생각해 보기

목표에 맞는 정보를 찾았다면 정보들 사이의 유사성과 연관성 등을 살펴야 한다. 각각의 정보들은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간단히 말해 맥락이 있다.

맥락을 찾아야만 정보에 가치가 생긴다. 맥락에 맞는 기준으로 정보들을 엮어내면 그 정보들은 그저 하나의 실이 아니라 실로 짜여 만들어낸 작품이 된다. 의도한 생각의 형태로 자료를 분류해 가야 한다.

 

4. 분류한 정보들을 어떻게 재구성, 재조직해서 활용할 것인지 생각해 보기

맥락에 맞게 잘 분류한 정보들은 관찰한 인과관계를 따져가며 새롭게 재구성하고 재조직해야 한다. 그렇게 의미가 있는 형태로 재구성된 정보들은 브랜드를 정확하게 조금 더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이렇게 우리 식으로 완전히 이해된 자료들은 하나의 정보로 머물지 않고 우리의 지식이 된다. 정보가 지식이 되면 같은 분야가 아니더라도 유사한 상황의 브랜드를 분석하는 데 쓰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에든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 된다.

우리가 자료 조사를 하는 이유는 ‘자료’ 그 자체가 아니다. 자료 조사를 통해 우리의 목적에 맞는 좋은 자료들을 모으는 것이다. 찾은 자료의 양만으로는 브랜드를 설명하고 분석하는 데 절대 결정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 브랜드가 가진 맥락과 맞닿은 자료들만이 정보로서의 의미가 있다.

꽃이라는 존재도 내가 꽃을 인식하고 불러주고 가꿔야만 의미가 생기지 않은가. 브랜드에 필요한 정보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필요한 정보들을 찾아 나서고 주위 깊게 살펴보고, 관찰하고, 분류하고 우리가 자료 조사를 하는 목적에 맞게 구성해야만 그 자료들이 우리에게 생생하게 다가와 우리에게 진정 필요하고 의미 있는 지식이 된다. 그렇지 않는 자료들은 그 자체로는 하나의 정보 뭉치와 다름없다.

원문: 우현수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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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이라고 나를 잘 알까? https://ppss.kr/archives/265537 Fri, 05 Apr 2024 04:38:11 +0000 http://3.36.87.144/?p=265537 〈유퀴즈 온 더 블록〉 남궁민 편을 봤다. 인상 깊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진로를 고민하던 남궁민이 TV에서 우연히 공채 개그맨&탈랜트 모집 공고를 보고 어머니께 ‘나 이거 지원해 볼까?’라고 말했다 한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비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내가 내 아들을 잘 아는데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라서 우리와는 달라.

그래도 정 아쉬우면 연습 삼아 나가보라고 했고, 남궁민은 결국 떨어졌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모든 연기 시험에 떨어지는 불운이 계속됐다고 한다. 마치 어머니의 예언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남궁민은 비록 떨어지긴 했지만 그렇게나 찾아 헤맸던 ‘재미있는 일’, 연기를 찾아서 너무 좋았다고 한다. 오랜 시간 단역을 전전하면서도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다. 그렇게 세월이 많이 흘러 지금 남궁민은 ‘믿고 보는 배우’ ‘연기 천재’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출처: tvN

남궁민 배우의 에피소드를 들으면서 어쩌면 우리 주변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의 진짜 가치를 잘 모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보다 가까이에 있던 남궁민 어머니와 같은 분들이 얼마나 많을까.

아주 먼 훗날에야 결국 성공한 사람들이 처음에 들었을 ‘너는 안돼’, ‘네가 그걸 할 수 있을 리가’, ‘너는 가능성만 있고 성과는 없잖아’, ‘그런 능력은 타고나는 거야’ 등등의 말들을 가까이에서 얼마나 많이 해왔을까. 본인만 알 수 있는 고민의 깊이, 잠재력의 크기도 잘 모르면서 참 쉽게 상처를 줬을까 싶다.

사실 나조차도 이런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저 사람이 저걸 할 수 있을까?’, ‘애는 쓰겠지만 설마 할 수 있겠어?’, ‘이 정도만 해도 참 다행이지’ 등등의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상대를 의심하고 능력치를 얕잡아 본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졌던 사람이 내 예상과는 다르게 급격하게 성장해서 탁월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경우를 몇 차례 목격한 이후로는 사람에 대한 단정적인 평가를 보류해야 한다는 기준이 생겼다. 정말 사람 일은 모르는 거란 걸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들을 관찰해 보니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고 지속적으로 해가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옆에서 보기에 참 고단하고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단역마저도 주인공 연기를 하는 것마냥 신나하며 즐겼던 남궁민 배우처럼 오래 지치지 않고 하고 있었다. 그런 지속성은 결국 어떤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고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보지 못했던 것이다.

사진: UnsplashSemina Psichogiopoulou

그러니 자신의 가능성을 무조건 가까운 데에서 인정받으려 애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대신 더 넓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내 생각과 능력들을 노출해 보자. 그래야 가까워서 오히려 보이지 않았던 나의 진가를 알아 봐주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나의 지인들은 현미경으로만 보느라 몰랐던 것들을, 망원경을 들고 조망하며 나의 가치를 찾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인정받을 기회를 안팎으로 부지런히 내보이는 게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SNS, 블로그 등 온라인 채널의 활동은 나를 가장 넓은 범위로 지속적으로 노출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아닐까 싶다.

다만 이런 검증이 정확하려면 꾸준히 해나가는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은 재미에서 나오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힘은 의미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재미와 의미를 느끼면서 오래 지속할 수 있다는 게 바로 재능 아닐까 싶다. 그게 천부적인 것이든, 발견되는 것이든 상관없다. 남궁민 배우가 그랬던 것처럼.

원문: 우현수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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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과 비대칭을 로고로 표현하다: 아이돌 그룹 ‘르세라핌’의 브랜딩 https://ppss.kr/archives/257483 Tue, 11 Oct 2022 05:53:13 +0000 http://3.36.87.144/?p=257483 최근 브랜딩 사례 중 보자마자 ‘파격’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인상적인 비주얼의 브랜딩이 있었습니다. 바로 ‘르세라핌(LE SSERAFIM)’이라는 걸그룹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입니다.

사실 읽지도 못하고 뜻은 짐작도 안 되는 이름이었습니다. 하지만 로고의 파격적이고 신선한 비주얼이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좋은 의미로 파괴적이기까지 한 이 로고는 기존의 여자 아이돌의 아이덴티티와는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 로고 이미지의 잔상은 하나의 음처럼 떨리며 우리의 몸과 눈으로 전해집니다. 평면이지만 촉각과 시각을 동시에 자극합니다.

르세라핌의 파격적인 로고
5인조 걸그룹 르세라핌

 

문장 안 단어의 질서를 파괴하다

알고 보니 LE SSERAFIM은 ‘IM FEARLESS’라는 문장의 단어들을 해체하고 재배열해 다른 뜻을 가진 단어로 바꾸는 애너그램의 방식을 차용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르세라핌’, 참 특이한 이름이죠.

‘ㄹ’,’ㅅ’,’ㄹ’,ㅍ’. 이 첫 자음들이 모두 혀끝과 입술, 구강의 앞쪽에서 발음이 되어 뒤쪽 목에서 울리는 음들과는 달리 가볍고 세련된 느낌을 줍니다. 특히 가장 부드러운 발음을 가진 ‘ㄹ’이 두 개나 있어 파격적인 비주얼, 언뜻 보면 남성 아이돌 그룹 같은 느낌을 상쇄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의 ‘핌’은 피어나고, 피어오르는 듯한 기분을 주기도 합니다.

의미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두려움 없이 꿈을 향해 나아가자는 소녀들의 열망과 포부를 문자 안에 숨은 코드로 담아내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뭔가 비밀스럽고 신비주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그룹의 이미지를 참 적절하고 절묘한 방식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파격과 비대칭의 조합으로

직각의 도형이 불규칙하게 겹쳐 만들어내는 조형이 저에게는 마치 흰색의 거친 날갯짓처럼 보였습니다. 블러 효과를 통해 2D 평면 이미지이지만 동적인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죠.

세라핌(Seraphim)이라는 발음의 단어가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높은 단계의 천사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 천사가 인간 앞에 나타날 때 했던 말이 ‘두려워 말라’였다고 하는데, IM FEARLESS의 의미를 내포한 이름을 가진 ‘르세라핌’은 곧 그 천사의 말을 전하는 전령이 아닐까 싶습니다. 천사의 날갯짓치고는 꽤나 거칠고 개성이 있습니다. 르세라핌이라는 천사는 그저 예쁘고 착한 정형화된 천사가 아니라, 개성 강하고 자기주장도 강한 천사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반적인 중간획의 길이보다 짧고 위치가 약간 높은 ‘E’와 ‘F’의 형태가, 저에게는 잔잔하지만 의미 있는 파격으로 보이더군요. 그런 작지만 개성 있는 파격이 날갯짓의 위아래를 받쳐주고 있어 전체적으로 훨씬 더 완성도 있는 로고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 속에 피어나는 희망의 빛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건 뭘까요? 저는 ‘잘 모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두려움은 대상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잘 아는 것들은 사실 큰 두려움이 없죠.

사람도 언어도 지식도 그렇습니다. 모든 두려움은 알 수 없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두렵죠. 보이지 않는 미래도, 존재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도 두렵습니다. 하지만 이걸 넘어서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죠. 이런 두려움을 격파해 나갈 때 꼭 필요한 게 ‘파격’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르세라핌의 디자인에는 그런 그들의 자세가 보입니다. 기존의 생각을 벗어나고, 기존의 나를 뛰어넘고, 원래 가지고 있던 틀을 깨트려 비상하는 날개로, 찬란한 빛으로 연결되는 상징성이 보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 많은 걸그룹 가운데서도 유독 눈에 띄는 아이덴티티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르세라핌을 보고 런던올림픽이 떠올랐던 이유

르세라핌의 디자인을 보고, 문득 2012년에 열렸던 런던올림픽이 떠올랐습니다. 이 올림픽은 역사상 가장 논란이 일었던 올림픽 엠블럼 디자인으로도 유명하죠. 핫핑크와 일렉트릭 블루의 색상이 너무 자극적이라는 비판부터, 너무 현란해서 성행위를 연상시킨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이란은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Zion’을 형상화했다며 불참을 선언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BBC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89%가 반대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과감한 형태와 낯선 감성은 파격으로 다가옵니다. 그 파격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항상 저항과 많은 논란이 따르게 마련이죠.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의 디자인입니다. 지금 런던올림픽의 엠블럼을 보는 여러분의 시각은 어떠신가요?

 

파격에는 항상 반격이 뒤따른다

런던 올림픽의 엠블럼은 지금 시점의 감각으로도 뒤떨어 보이지 않습니다. 끝나고 나서는 소용없는 일이 되었지만, 올림픽이 끝나고 5년이 지난 뒤에야 우호적으로 여론이 돌아섰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10주년을 기념하는 엠블럼도 그 엠블럼을 따라 만들었다고 하고요.

우리는 대중적 인기를 얻기보다 충격을 주길 원했다.

이 프로젝트를 지휘한 울프 올린스 대표 칼 하이젤먼의 인터뷰는 이러한 논란을 예상이나 한 듯합니다.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점점 사그라드는 시기에, 파격적인 로고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참여를 유도하는 전략이 제대로 통한 예라고 하겠습니다.

 

런던 올림픽의 엠블럼에 담긴 파격적 생각들

제가 보기에 런던 엠블럼이 좋았던 점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1. 현대적이고 역동적이며 활력이 넘치는 이미지로, 기존 올림픽들과는 완전하게 차별화된 인식을 심어 줄 수 있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마치 그라피티를 연상시키는 이 감각적인 로고는 점점 노쇄해가는 올림픽이라는 축제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2. 세계 평화나 런던이 주제가 아니라, 2012라는 년도 자체를 과감하게 메인으로 채택했다는 점입니다. 표현하는 소재 자체가 이전의 올림픽 로고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디자인이었습니다.

이는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라 메시지의 문제입니다. 어떤 메시지를 고객들에게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자칫하면 르세라핌이나 런던올림픽처럼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키워드도, 일반적인 걸그룹이나 평범한 올림픽으로 둔갑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브랜딩이란 단 하나의 단어를 고객들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집어넣는 일입니다. 르세라핌과 런던 올림픽이 ‘파격’이라는 키워드를 우리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각인시킨 것처럼 말이죠.

 

모두가 폼나는 파격을 꿈꿉니다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감히 시도조차 꿈꾸지 못할 때가 많은 현실입니다. 그럴 땐 이어폰을 끼고 르세라핌을 들으려고 합니다. 런던올림픽의 환호성을 떠올려 보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꿈꾸는 파격을 위해 용기를 내보겠습니다.

원문: 우현수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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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정치 색깔을 “컬러 코드”로 표현하다 https://ppss.kr/archives/253138 Thu, 28 Jul 2022 04:17:16 +0000 http://3.36.87.144/?p=253138 역대 정당 중 브랜딩적 관점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두 개의 정당이 있습니다. 바로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입니다. 둘 다 정치에 있어 브랜드의 이미지가 대중들의 선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좋은 사례였습니다.

‘이미지 정치’라는 말은 보통 부정적으로 쓰입니다. 하지만 저는 나쁘게만 보이지는 않더군요. 자신들의 정치를 ‘이미지’로써 드러내는 일은 대중들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정당이 가진 관점과 가치를 브랜드 이미지에 담아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효율적이고 빠른 커뮤니케이션일까요. 365일 백분토론을 해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을 몇 마디의 메시지와 이미지에 담아낸다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참 편할 것입니다. 안 그러면 어려운 정치적 상황들을 살피고 공부하느라 정말 수험생처럼 밤샘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색깔, 이미지, 감각, 감성 같은 말들은 정치와는 좀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정치를 브랜드화, 이미지화한다고 했을 땐 이 단어들이 굉장히 중요해집니다. 이걸 잘 이해하고 실행한 두 정당의 사례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새누리당의 영리한 ‘붉은색’ 활용법

먼저 새누리당입니다.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변경하면서 파란색을 버리고 빨강을 선택했을 때, 저는 그야말로 이미지 정치의 ‘혁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의 변화가 아니면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해서이기도 했지만, 혁신을 넘어 혁명적인 자각과 쇄신을 하겠다는 의지가 눈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런 의지들이 당명이나 로고, 디자인 등으로 가시화된 이미지에 적절하게 반영되어 설득력이 더 커졌죠. 그 정도로 새롭게 접근하고 세련되게 시각 언어를 사용했던 정치집단은 그 이전에 볼 수 없었습니다.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소프트한 당명 ‘새누리’도 좋았지만, 저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온 건 바로 색깔이었습니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붉은색을 쓰는 일은 참으로 민감한 일입니다. 레드 콤플렉스를 지닌 우리에게 이념은 아직도 국민 각자의 정치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니까요.

붉은색의 강렬한 이미지는 위험하고 불온한 메시지를 은연중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주당 등의 진보 계열에서는 절대로 쓰지 못하는 색이기도 합니다. 반면 보수당의 입장에서는 그럴 걱정이 없습니다. 이념의 누명을 쓸 일도 없을 테니, 기존의 파랑과 반대되는 색깔인 빨강을 선택할 수 있었겠죠. 색깔 선택만으로도 정당 브랜드 리뉴얼 수준이 아니라, 레볼루션 급의 변화였습니다.

붉은색은 기본적으로 태양을 상징하여 열정적이고 힘 있는 이미지를 줍니다. 새롭게 변화하고자 하는 열정적이고 과감한 정치 혁신의 이미지를 정말 잘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새누리당이 붉은색을 쓰는 방법도 참 영리했습니다. 빨강을 전면에 내세워서 지루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흰색의 여백을 주고 붉은색을 포인트로 활용했습니다. 같은 붉은색이라도 흰색 비율이 많아지니 훨씬 세련되고 산뜻한 느낌을 줍니다. 다소 냉정하고 이성적이면서 도시적인 이미지도 더합니다. 중국이나 북한의 당을 떠올릴 일이 없었습니다.

같은 붉은색이라도 전면에 활용하거나, 오른쪽처럼 금색과 결합했다면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줬을 것입니다.

로고의 모양도 곡선으로 표현해 빨강의 강렬한 이미지를 상쇄했습니다. 그에 비해 자유한국당의 횃불 마크는 안 그래도 뜨겁고 열정적인 색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습니다. 다행히도 국민의힘의 마크는 다시 냉정하고 이성적인 면이 강조되었습니다. 더 동적이거나 복잡한 형태였다면, 원래 빨강이 가지고 있던 에너지가 한없이 분출됐을 것입니다.

새누리당은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정당이 되고 말았지만, 처음 시작할 때의 모습은 정말 브랜드를 잘 이해하고 잘 활용하던 정당으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글라디언트’ 효과

다음으로 인상적인 브랜딩을 보여준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입니다. ‘더불어’라는 일상어가 ‘민주’라는 무겁고 심각한 키워드 앞에 붙으니 훨씬 친근해졌습니다. 운동권 출신들이 모인 집단이라는 다소 과격한 이미지를 좀 더 순하고 부드럽게 만들거든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우리 가까이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주는 것이죠.

변천사를 보시면 변화가 눈에 더 잘 들어옵니다. 색깔의 스펙트럼도 넓어지고, 느낌도 확 바뀌었습니다. 사실 민주당은 오랫동안 노랑과 녹색 계열을 써 왔습니다. 그런데 노랑과 녹색은 약점이 많은 색입니다. 노랑은 정치적으로 미숙한 느낌을 줍니다. 녹색은 수수하고 순수한 자연을 떠올리게 합니다. 인간적인 이미지를 주는 건 장점이지만, 다소 촌스럽고 오래된 느낌을 주기도 하죠. 둘 다 호불호가 갈리는 애매한 색인 겁니다.

반면 ‘파랑’은 성격이 훨씬 명확하죠. 빨강의 보수 정당과 확실한 대비를 통해 확연하게 달라 보이는 효과를 줍니다.

그런데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에는 단점도 있었습니다. 수수하던 캐주얼 차림의 여인이 갑자기 정장 차림의 커리어 우먼이 되어 나타난 느낌이랄까요. 기존의 색깔과는 너무나 달라서 당황스러웠죠. 빨강을 짧은 시간에 흡수한 새누리당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아마도 파랑이라는 색깔을 주도적으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 상대 당의 선택으로 할 수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은 단일의 파랑이 아니라, 파랑과 노랑과 녹색이 ‘더불어 모인’ 정당 색이었습니다. 기존 민주당의 역사에서 가장 많이 썼던 색상을 다 사용한 거죠. 컬러 코드를 통해 ‘더불다’, ‘함께’라는 이미지를 표현할 뿐만 아니라, 정당의 역사성까지 담아낸 것입니다.

색깔 표현에 쓰인 ‘글라디언트’라고 하는 색상 표현 기법은 스미듯 자연스러운 변화를 표현합니다. 갑자기 급진적인 변화를 보여주기보다는, 서서히 스며드는 느낌의 변화를 보여주죠. 더불어 평등의 가치를 생각하는 정당의 가치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전의 민주당이 가졌던 다소 촌스러운 이미지에서, 도시적이고 스마트한 이미지를 얻어낸 것도 이 컬러 코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정치적 비전과 메시지를 잘 담아낼 수 있는 장치가 된 것이죠.

 

마무리하며

올해 대선에서도 두 정당은 모두 ‘브랜드’로 보였습니다. 팽팽한 접전이었던 만큼, 브랜딩적 관점에서도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습니다. 브랜드 이미지도, 메시지 격돌도 무척 치열한 싸움을 보였죠.

저는 정치도 하나의 쇼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가장 짜릿하고 흥미진진한 쇼죠. 이 쇼를 매력 있게 잘 만들어내는 정당이 승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지이고, 그다음은 메시지입니다. 둘 다 브랜딩을 이루는 핵심 요소이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정치 색깔과 생각을 언어적, 비언어적 요소로 적절하고 조화롭게 연출해 하나의 ‘쇼’로 만들어내는 정당이 승리하는 거죠.

정치가 바뀌지 않는다, 새롭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 위에 놓인, 정당의 색깔과 디자인이 놓인 연대표를 보세요.  조선왕조 500년도 아니고 불과 60년 만의 일입니다. 정말 얼마나 발전했는지 모릅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정치 색깔들이 나타나고, 융합하고, 해체하고, 반복해 갔으면 좋겠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색깔을 만들어내는 실험이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연출된 쇼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우리의 삶도 우리나라도 좋아질 것이라 믿습니다.

원문: 우현수의 브런치


매거진 브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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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브랜드는 왜 로고 플레이에 적극적일까 https://ppss.kr/archives/254556 Tue, 21 Jun 2022 05:04:03 +0000 http://3.36.87.144/?p=254556 최근 다양한 로고 플레이로 제 눈에 자주 띄는 패션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디올입니다. 2018년 브랜드 리뉴얼이 된 지 벌써 4년이 넘어가네요. 하지만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할 변화입니다. 조용하고 소리 없이 진화하듯 이뤄낸 변화로 보입니다.

제가 자주 접하지 못한 브랜드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명품 브랜드답게 요란하지 않고 점잖고 고상하게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리뉴얼한 전체의 상황을 살펴보니 크게 2가지 정도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브랜드의 이미지의 변화입니다.

대소문자형의 Dior에서 대문자 4글자 레터 DIOR로의 변화는 아름다움의 격조와 독보적인 아우라, 하이앤드의 감각의 표현을 강조했습니다. 대문자로만 이루어진 레터는 대표성이 더 올라가고 문자가 표현하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세리프의 두께감도 더 얇아져 섬세해지고 정교해진 로고로 변화했습니다.

기존 로고도 같은 세리프가 있는 서체지만 대소문자의 키가 달라 외곽의 층이 생겨 복잡해 보이고 소문자의 개별성이 더 도드라졌습니다. 리뉴얼된 로고는 전체적으로 외곽의 단순한 박스 형태로써 단순하고 모던해진 감각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제품 라인의 구분을 위한 장치로 활용했습니다. 다른 명품 패션 브랜드들처럼 디올 또한 패션에 관련된 모든 영역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의류, 액세서리, 신발, 향수, 화장품 등의 다양한 라인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 각각의 라인들은 완전히 다르다고 해서 괜찮을 정도죠.

예를 들어 화장품 제품 라인과 신발 제품은 같은 카테고리의 제품이라 하기 어렵죠. 가령 백화점에 위치한 상황을 보면 층이 다를 정도로 다른 기능과 감성의 제품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코스메틱 부분은 기타 다른 제품의 영역과는 구분되야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리뉴얼 전에는 Dior이라는 로고가 전 브랜드 영역에 걸쳐 사용되었습니다. DIOR으로 리뉴얼된 이후에는 DIOR은 브랜드 전 영역을 대표하는 로고로 쓰이고 있고, Dior은 화장품과 향수 라인에 걸쳐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리뉴얼과는 상관없이 쓰이는 로고 플레이의 활용사례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Christian Dior”의 축약형인 “CD”는 여타의 명품 브랜드처럼 가방이나 벨트의 버클이나 화장품의 캡 부분에 활용되어 브랜드가 가진 상징성을 시각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축약형의 레터 마크는 풀네임의 로고를 쓰는 것과는 또 다른 감성을 전달하죠. 단순한 조형은 제품에 적용하기에도 유리한 조건을 가집니다.

이번 리뉴얼의 또 다른 방향성 하나는 더욱 과감해진 로고 플레이입니다. 더 과감해지고 다채로워졌습니다. 이름의 표기는 같지만 완전히 다른 라인의 브랜드 같은 모습의 제품 라인처럼 보입니다. 디올의 감성 DNA는 통일되면서도 개별 제품의 특성에 맞게 적용된 로고 플레이와 패턴들은 제품 자체의 미감뿐 아니라 그 외적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소재감을 통한 차별화와 동시에 시각적인 예술적 감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처럼 다양한 로고 플레이는 디올만의 특징은 아닙니다. 거의 대부분의 패션 브랜드들이 로고를 자유롭게 응용하여 쓰고 있죠. 가령 티셔츠 하나를 디자인하더라도 기본 로고만 활용되는 게 아니라 고딕이나 명조 또는 핸드라이팅으로 분위기가 바뀌기도 하고 동물의 심벌마크나 레터 마크까지 다양하게 활용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유로운 로고 플레이가 브랜드의 감성을 더 풍부하게 합니다. 제품이 착용될 장소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가진 브랜드가 됩니다. 이건 아마도 ‘패션’이라는 영역에 있는 브랜드의 특성이자 특권일 듯합니다.

보통 일반적인 브랜드 로고 특히 기업의 브랜드 로고의 경우 일관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죠. 일관성 있는 적용을 위해 수십 페이지의 딱딱한 규정집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규율과 법칙들이 브랜드의 자유를 억압합니다. 이에 비해 패션 브랜드는 훨씬 자유롭고 개방적입니다. 하지만 이런 유연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욱 정교한 계획이 있어야 하겠죠. 시각 전체를 관통하는 브랜드만의 감성적, 감각적 기준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디올이라는 브랜드를 생각하면 우아한 예술성과 고결한 품격이 느껴집니다. 아마도 이 기준에 맞는 로고 플레이들이 어울려 디올의 정신과 철학이 느껴지는 거겠죠.

이번 디올의 브랜드 리뉴얼을 관찰하면서 브랜드가 가진 정신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브랜드가 추구해갈 정신이 중심을 잘 잡고 있다면 그 정신이 제품에 잘 투영하고 있다면 그 외적인 분위기와 스타일은 자유롭게 가져가도 된다는 걸 느꼈습니다.

언뜻 보기에 시각적으로 달라 보이는 데 느껴지는 분위기나 감각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브랜드는 정체성과 정신의 DNA를 제품과 서비스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75년이 넘은 장년의 브랜드 디올의 조용하지만 화려하기도 한 변화를 보면서, 끊임없는 진화만이 브랜드의 생명력과 매력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원문: 우현수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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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말아야 할 일 리스트”를 만든다는 것 https://ppss.kr/archives/253116 Mon, 25 Apr 2022 02:35:18 +0000 http://3.36.87.144/?p=253116 1.

해마다 새해의 계획을 세워왔다. 하지만 계획대로 실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연말이 되어 이룬 게 없는 계획표를 들여다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계획을 세울 게 아니라, 차라리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의 리스트를 만드는 게 낫겠다.

해야 할 것들은 지키기 어렵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지키는 건 그래도 할만하지 않을까란 생각이었다. 보통 하지 말아야 할 리스트에는 이미 해보고 좋지 않았던 것들, 하고 후회하고 몸소 느끼는 것들이 들어있다. 그래서 더 조심하게 된다. 몇 년 전부터는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의 경계를 대충 그어 두고 그 선을 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올해 그어 놓은 경계는 몇 가지가 있다. 일에 있어서는 총 3가지 정도가 있다.

  1. 업무에서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기
  2. 계획 없이 일을 바로 시작하지 않기
  3. 끝난 프로젝트는 그때 바로 복기해 보기

사적인 것들에는 이런 게 있다.

  1. 식사 시간을 넘기지 않기
  2. 아이들에게 화내지 않기
  3. 눈 아플 때까지 스마트폰 들여다보지 않기

하지만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4분의 1이 지난 지금,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거나 가끔은 넘어가는 일들도 간혹 있다. 그래도 이 경계를 머릿속에 담아두지 않았다면 하나도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2.

브랜드 가이드라인에도 이렇게 브랜드가 주의해할 지침을 규정한 목차가 있다. 브랜드 사용 시 실수하기 쉬운 색상이나 형태의 변형이 없도록 금지하는 규정이다.

사실 브랜드 규정을 충실히 따른다면 쉽게 발생하지 않을 것들이긴 하다. 하지만 규정을 만들어 놓는 것과 없는 것의 느낌 차이는 꽤나 크다. 브랜드 가이드라인의 역할은 어떤 행위를 권장하는 것도 있지만, 하지 않도록 막고 강제하는 역할도 있기 때문이다. 이 인식을 강화하고 가이드라인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이와는 다르게 친절한 해설서 같은 가이드라인이 대세를 이루긴 하지만, 엄격한 경고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 손상이 가는 걸 미리 차단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건 여전히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넓게 보면 브랜드 가이드라인뿐 아니라 브랜드 정체성 측면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나의 정체성을 정의 내리고 규정하는 일은 사실 나를 한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할 수는 있는 일이라도 나의 정체성에 혼란을 주는 일이라면 하지 않을 때도 있다.

 

3.

우리나라 힙한씬의 1세대격인 다이나믹 듀오의 개코가 복면가왕에 나와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래퍼가 아니라 보컬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가졌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노래를 들은 사람이라면 분명 보컬로의 전향도 권했을 법한 실력이었다.

하지만 개코는 오랜 활동 기간 동안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힙합과 래퍼라는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고집스런 가이드라인을 지켜왔던 것이다. ‘하지 않을 것’을 지켜온 노력이 힙합씬의 존경받는 리더의 위치에 개코를 올려놓지 않았을까 싶다.


시속삼십킬로미터라는 회사는 ‘꿀빠는 시간’이라는 천연벌꿀스틱을 만드는 곳이다. 펀딩 붐이 막 일어나는 시점에 와디즈 펀딩에 내놓은 그들의 상품 기획을 보고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난다. 글자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이야기로 연결된 그들의 상품 제안은, 마치 신내림을 받은 기획 천재들이 쓴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기획력이라면 꿀 스틱뿐만 아니라 각종 식품류로 다양하게 확장해도 금방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4년이 지난 지금도 꿀이라는 테마 하나로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이 희석되는 게 싫어서였을까. 사실 이들을 보면 하지 못해서라기보다는 일부러 그렇게 안 한 것처럼 보인다.

귀여워! / 출처: 쿠팡

우리 회사 또한 하지 말아야 할 경계를 더욱 견고하고 정교하게 만들어 가는 중이다. 브랜딩이라는 일을 하다 보면 모든 채널의 디자인과 연결되기 마련이다. 웹이나 인쇄물, 홍보영상이나 사인이나 공간까지도 연계되는 일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 본연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더 전문화하기 위해 ‘브랜딩’이라는 울타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일들에는 눈을 돌리지 않고 있다.

때로는 이런 일들이 스스로의 한계를 결정짓고, 당장의 이익을 희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멀게 보면 더 나은 방향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게 회사 미래의 안전하고 견고한 울타리를 만들어 줄 거라 희망한다.

사업에 있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 더 나은 브랜드를 만들어가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리스트’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야 어떤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고 허둥지둥하지 않을 수 있다. 고객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버벅거리지 않고 온전하게 전할 수 있다. 물론 이건 개인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벌써 올해의 3분의 1이 지났다. 나머지 3분의 2 동안 하지 말아야 할 일들, 해서 후회할 일들의 리스트를 다시 한번 들여다봐야겠다.

원문: 유현수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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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보틀의 “블루” 사용법 https://ppss.kr/archives/252356 Tue, 15 Mar 2022 08:37:34 +0000 http://3.36.87.144/?p=252356 소금 사막 가운데 물방울 하나 떨어진 듯한 ‘블루보틀’의 블루

이름에 이미 블루도 들어 있는데, 정작 ‘블루보틀’ 매장에서는 좀처럼 블루를 찾기 어렵습니다. 매장의 넓은 한쪽 벽면에 조그맣게 붙어있거나 매장 입구의 스탠딩 사인에 아주 작은 비율로 적용되어 있을 때가 많죠. 이렇게 제한적인 블루의 사용은 오히려 블루라는 색상이 가진 매력과 심벌의 개성을 한층 돋보이게 합니다.

제가 방문했던 세 곳의 블루보틀 매장 전체 면적을 100이라고 쳤을 때, 실제로 블루 컬러가 차지하는 비율은 1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사용된 면적에 비해 주목도는 오히려 훨씬 올라갔습니다. 그 이유는 블루 주변을 감싸고 있는 주변의 환경이 블루와 싸우지 않고 블루를 더욱 돋보일 수 있는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블루 색상 자체가 예뻐서라기보다는, 주변 환경의 색상과 표현이 밋밋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블루 색상이 더 화사하고 멋져 보이는 거죠.

매장 인테리어 마감재 대부분은 화이트와 밝은 브라운 계열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살짝 형광빛이 감도는 블루보틀의 심벌은 단연 눈에 띄게 됩니다. 못생긴 표정을 지어 사진의 주인공이 더 예쁘고 잘나 보이게 하는 ‘사진 밀어주기 ‘효과와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블루를 조금 적극적으로 쓰는 곳도 있습니다. 의류나 유니폼 등의 섬유 소재들입니다. 많이 톤 다운된 저채도의 그레이 빛 블루가 쓰여 블루 안에서도 여러 색상 팔레트가 느껴지게 합니다. 색상은 같지만 채도와 명도를 달리해 지루함을 덜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블루보틀의 색상 전략이 제대로 먹히는 건, 뭔가 휑하고 비어 있는 매장의 공간 디자인의 컨셉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대지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파란 선인장 같기도 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소금 사막 가운데 한 방울 떨어진 블루빛 물방울 같기도 하죠. 이렇게 블루보틀의 색상 활용법은 반갑고 귀한 느낌을 전달합니다.

비움의 미학이 주는 편안하고 여유로운 분위기. 화룡정점같은 블루 포인트. 그래서 블루보틀의 매장은 지루하지 않습니다. 만약 공간을 구석구석을 쪼개고 꽉 채워냈다면 이런 감각을 절대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어디서나 눈에 띄는 ‘이디야의 블루’

같은 커피 전문점이지만 이디야의 색상 전략은 완전히 다릅니다. 동네 곳곳에 번화가를 약간 벗어난 곳 어디에나 있는 이디야 매장은 온통 블루로 뒤덮인 외관일 때가 많습니다. 멀리서도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띕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매장 수를 가지고 있는 커피 전문점인 것도 맞지만, 고유한 블루의 색감의 차별성으로 인해 매장 수가 더 많아 보이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블루보틀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색상 전략이지만, 이디야라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합리성과 대중성에는 딱 맞는 활용입니다.

 

고급화를 시도하는 ‘삼성 디지털프라자의 블루’

업역이 달라 멀리 간 느낌도 있지만 최근 삼성 디지털 프라자의 블루 사용법도 흥미롭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삼성 디지털프라자의 외관은 온통 파란색이었습니다. 멀리서 봐도 눈에 확 띄는 곳이었죠. 이는 경쟁사인 LG나 롯데 하이마트와의 외관 이미지와 확연한 차이를 줬습니다.

그런데 삼성 디지털프라자는 외관에서 점점 블루가 줄어들더니 이제는 블루가 거의 사라져 버렸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고급화 전략입니다. 삼성의 진한 청색계열 블루는 ‘비스포크’ 같은 맞춤형 고급 브랜드가 가진 다양한 색상들과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삼성 디지털프라자가 갖추고 있는 많은 가전제품 개별 브랜드와 새로운 고급 브랜드 라인들을 모두 보듬어 내기에도 제한 사항이 많은 색상이죠. 진하고 푸른 청색은 단일 제품 브랜드나 기업 브랜드로써는 강력할지 모르지만, 온오프라인 플랫폼 브랜드로써는 한계점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삼성 디지털프라자는 블루 보틀 같은 제한적인 사용마저 극단적으로 줄여버렸습니다. 브랜드의 통합성과 포괄성을 높이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한 선택이죠. 그래서 블루라는 색상에 쏠렸던 시선을 삼성전자의 가전제품과 스마트폰으로 이동하게 만들었습니다. 강한 색상의 방해 없이, 조금 더 편안하게 제품을 감상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든 것입니다.

 

마치며

지금까지 블루보틀, 이디야, 삼성프라자의 블루 사용법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같은 색상이어도 브랜드에 따라 쓰는 방식과 활용 방법이 모두 달랐습니다. 색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브랜드의 정체성이 재정의될 수도 있습니다. 브랜드의 가치와 메시지가 달라지고, 운명까지 결정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브랜드가 가진 색을 지키고 관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색을 어떻게 활용하고 전달하는지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원문: 우현수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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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페이스샵과 더바디샵의 다른 미래 https://ppss.kr/archives/251142 Thu, 24 Feb 2022 09:00:42 +0000 http://3.36.87.144/?p=251142 2000년 초 명동 거리가 생생히 기억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싸다고 하는 건물에 화장품 로드샵이 하나씩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대한민국 쇼핑 1번지였던 거리의 간판들이 미샤, 더페이스샵, 스킨푸드, 이니스프리, 토리모리로 채워졌습니다.

명동 안에만 해도 다섯 개가 넘는 매장이 있는 곳도 있을 정도였구요. 가는 곳마다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뿐 아니라, 국내 소비자들도 가득 찼습니다. 패션 브랜드 위주의 거리가 불과 몇 년 사이 뷰티 중심 거리로 변한 겁니다. 이런 추세는 다른 도심의 중심가에도 점점 번져갔죠.

착시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로드샵이 정점일 때는 편의점보다 많다는 착각도 들 정도였습니다. 편의점 정도는 아니지만 2015년 1위부터 3위까지 브랜드 매장을 합치면, 지금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이디야커피 매장 수인 3000개  가량이 될 때였으니 과장은 아니네요.

그러나 그런 추세도 2016년을 기점으로 꺾이더니, 불과 몇 년 사이에 로드샵들의 매출이 반 토막이 났습니다. 그때쯤 일어난 화장품 로드샵 1세대의 원정도박, 뇌물공여 등의 문제는 뷰티 산업의 깨끗한 이미지에는 치명적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2017년에는 사드 문제로 중국 관광객이 절반 이상으로 줄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가 많았지만, 저는 그중에서 더페이스샵의 성장성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저가 화장품 시장을 열었던 미샤보다 1년 뒤에 나왔지만, 브랜드 런칭 초기부터 ‘자연주의’라는 컨셉으로 일관성 있게 브랜딩해갔습니다. 1등 브랜드였던 미샤와는 완전히 다른 이미지 전략이었죠. 운 좋게도 한참 불던 웰빙 열풍과 맞아떨어지면서 시장에 긍정적인 반응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고딕체로 깔끔하고 단순한 인상을 주는 브랜드 로고는 군더더기 없고 가격의 거품도 사라진 화장품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잘 반영했고, 그런 인식들이 점점 쌓여갔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화장품 로드샵의 원조 격인 ‘미샤’를 밀어내고 금세 시장에서 1위가 됐고, 2009년에는 우리나라 화장품시장의 2위 기업인 LG생활건강에 인수됐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딱 그 시점 이후부터 중저가 화장품 시장이 포화되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점점 소비자들의 관심이 화장품 로드샵들에서 멀어지게 됐습니다.

그런 위기의식 때문이었는지 더페이스샵은 LG생활건강에 인수 6년 된 시점에 전면적인 리뉴얼을 하게 됩니다. 고딕의 깔끔하고 단정한 모던보이 같은 이미지에서 역사와 전통이 느껴지는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강조한 디자인이었습니다. 브랜드의 상징물은 유럽의 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고전적인 상징물과 여인의 얼굴(Face)를 구체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낯선 해외 브랜드처럼 느껴지고, 원래 알던 소비자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혁신적인 변화의 인상을 줬습니다. 이름만 같았지 거의 새로 태어나는 느낌의 변화였습니다.

기존 로고가 표방하는 ‘Natural Story’가 깔끔하고 단정한 느낌이었다면, 리뉴얼한 ‘Natural Story’는 더 고전적이고 스토리가 담긴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 변화까지는 좋았는데, 그 이후가 문제였습니다. 당연히 리뉴얼된 디자인으로 매장도 바뀔 줄 알았는데, 명동의 플래그쉽 매장과 몇 개의 대표 매장에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나머지는 매장들은 ‘Nature Collection’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변해갔죠. 갑작스러운 변화가 부담스러웠는지 ‘Nature Collection’이라는 긴 이름에 ‘by THE FACE SHOP’이라는 말을 아래 덧붙입니다. 이제는 단순한 ‘Shop’이 아니라, LG생활건강의 다양한 화장품 라인 브랜드뿐 아니라 생활관련 용품들까지도 함께 구매할 수 있는 ‘Collection’이 되겠다는 생각에서 만든 온·오프라인 통합 브랜드가 새롭게 탄생한 순간입니다.

‘Nature Collection’이라는 이름은 자연주의를 표방한다는 의미에서는 좋습니다. 그러나그 안에 있는 다양한 LG생활건강의 화장품 라인브랜드까지를 아우르는 이름은 아닙니다. 특히 예화담(한방화장품), CNP차앤박(더마화장품)같은 성격의 제품들과의 조합은 어색해 보입니다. 또한 온라인 시장을 염두했다고 생각했을 때는 나무 모양의 복잡한 심벌이 과연 디지털 공간에서 효과적으로 잘 기능할지는 정말 의문이었습니다. 화장품 패키지 어딘가에 붙는 라벨로는 좋은데, 온라인샵과는 이질적인 측면이 많습니다.

어쨌든 더페이스샵이 이런 상황이 되니, 매장이라는 공간의 성격까지 가졌던 THE FACE ‘SHOP’이 더 이상 ‘SHOP’의 개념이 아니게 됐습니다. 브랜드의 범위가 더 이상 공간의 개념까지 가져가지 못하고 축소되어 LG생활건강에서 나오는 중저가 화장품 라인 제품 브랜드가 된 겁니다.

이는 2000년 초 런칭 초기에 그대로 따라 했다고 말이 많았던 영국 전통의 화장품 브랜드인 THE BODY SHOP과는 다른 행보입니다. 바디샵은 THE BODY ‘SHOP’이라는 브랜드 네임처럼 오프라인 ‘SHOP’의 경험을 여전히 중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로드’샵’으로 시작한 더페이스’샵’에서 ‘샵’이 점점 사라지고 ‘컬렉션’으로 바뀐 이유는 명확해보입니다.

첫 번째는 오프라인 샵에서 화장품을 사는 사람이 줄었기 때문이겠죠. 사람들은 ‘로드샵’에서 ‘온라인샵’으로 급격하게 이동했습니다. 코로나 19의 영향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화장품 로드샵 뿐만 아니라, 뷰티와 헬스 관련된 제품들까지 확장한 편집샵들 또한 올리브영을 제외하면 고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프라인 매장은 없지만 매력적인 중저가의 컨셉을 가진 화장품들은 온라인샵에서 고객들에게 손짓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중저가 화장품들, 특히 로드샵들의 포화상태로 인해 출혈 경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저가 화장품의 이윤이 얼마일진 모르겠지만, 유명 연예인을 내세워서 막대한 광고비를 투입하는 전략이 더이상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초에 가격 거품을 뺀 저가 화장품 컨셉으로 생겨난 이 산업에 막대한 홍보 자금이 들어갔을 때, 과연 가격 경쟁력이 생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런 고민들은 LG생활건강뿐 아니라 1위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에서도 하고 있습니다. 결국 앞으로의 싸움은 ‘로드샵’이 아니라 ‘온라인샵’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겠죠.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THE FACE SHOP의 브랜드가 무척이나 어정쩡하게 돼버린 것입니다.

‘Shop’이 붙은 이름과는 다르게 더 이상 THE FACE SHOP이라는 로드샵도 온라인샵도 없기 때문입니다. 독립적으로 계속 유지해나가기는 쉽지 않겠지만, 이 어려움을 꿋꿋하게 딛고 일어서서 수백 년이 넘는 화장품 브랜드가 되는 길은 없었던 걸까요.

더페이스샵의 인상적인 브랜드 리뉴얼을 보면서 LG생활건강에서 나오는 하나의 브랜드가 아니라, 모기업에 전혀 영향을 받지도 않고 연상도 되지 않는 더욱 독립적인 화장품 브랜드의 탄생을 그렸던 저로서는 무척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서도 쉽지 않다고 생각한 건, 바디샵마저도 2006년 로레알에 매각된 이후 시작된 매출 저조로로 인해 십 년 만에 브라질 회사인 나투라에 매각됐다는 사실입니다. 매장까지 겸한 화장품 브랜드가 성공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시대가 됐습니다. 바디샵도 이런 고민에서인지 제품라인 전체를 2023년까지 비건인증 화장품을 100%로 전화하고 리필 스테이션을 마련하는 등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품 공병을 가져오면 바우처로 교환해주는 서비스도 시작했다. /출처: www.glamourmagazine.co.uk

THE FACE SHOP 또한 THE BODY SHOP처럼 온라인 시장에 빼앗긴 중저가 화장품이라는 포지셔닝을 버리고, 더 윗단계의 새로운 중고가 화장품 라인으로 변화를 하면 어떨까요?

이런 생각의 근간에는 어느 순간부터 화장품 시장이 합리성과는 거리가 있는 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화장품이 싸기 때문에 바르는 게 아니더군요. 비싸더라도, 확실한 효과가 보장이 안 되더라도 아름다움에 대한 기대 때문에 화장품을 바릅니다. 이런 원초적인 사용 요인 때문인지, 일반적인 비누나 샴푸 같은 제품들보다는 한 단계 위의 고관여가 생깁니다. 관여도가 올라가면 가격 민감도는 떨어지기 마련이죠. 저는 이런 소비자들의 화장품 소비 패턴 때문에 ‘저가’ 화장품이라는 게 과연 소비자들에게 지속적인 매력이 될지 항상 의문이었습니다.

물론 지난 10여 년간은 중저가 화장품 로드샵들은 ‘거품을 뺀’ 가격이라는 전략으로 설득력 있게 고객들에게 어필했고, 신화적인 매출 성과도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는 많이 다릅니다. 고객들의 소비 수준과 경제적 수준도 그보다는 훨씬 올라갔습니다. 온라인과 홈쇼핑을 통해 다양하고 매력적인 브랜드들을 많이 체험한 경험이 풍부해졌습니다. 더이상 예전처럼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승부를 걸 수 없는 이유입니다. 가격 경쟁력마저 이미 수많은 온라인샵들에게 빼앗긴 것도 사실이구요.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라도 저는 더페이스샵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가 화장품 브랜드가 중고가의 화장품이 되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브랜드 스스로도 그렇고, 구매하는 소비자의 인식 속에서도 그렇겠죠. 꽤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좋은 브랜드가 일순간에 만들어질 수가 있나요. 모두 그런 난관을 넘어서고 견뎌냈을 때 좋은 브랜드로 인정받습니다.

THE FACE SHOP이 한 단계 올라간 화장품 브랜드가 된다면 매장 경험도 달라야 합니다. 진열장처럼 사기 좋게 놓인 마트의 매대가 아니라, 좋은 제품을 경험하고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품위 있는 아름다움이 놓인 진열장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제품이나 성분, 더욱 차별화된 품질은 당연한 조건이겠습니다.

어렵겠지만 이 방법이 저는 더페이스샵에서 SHOP샵을 버리지 않고 유지해가면서 온·오프라인에서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원문: 매거진 브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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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보다 센 아는 사람의 힘 https://ppss.kr/archives/251144 Thu, 17 Feb 2022 01:59:09 +0000 http://3.36.87.144/?p=251144 혼자서 회사를 시작했을 때, 하루라도 빨리 홈페이지를 만들고 SNS 채널을 만들어 대외적으로 홍보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했습니다. 아직 자체적으로 진행한 변변한 포트폴리오도 없고 내세울 만한 대단한 경력도 없었는데 말이죠.

내 정보를 무작정 인터넷상에 던져 놓으면 누군가는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나타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출처: Unsplash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직 실적도 채워지지 않은 신생 회사에 일을 맡기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어마어마한 경력과 이력을 가진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죠.

인기 있는 셀럽들이야  유튜브나 인스타에 계정만 열어도 하루에 수만 명의 팔로워가 확보되기도 하지만,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SNS에 나를 올려둔다고 해서 그렇게 될 리 만무하잖아요.

저만 해도 어떤 회사에 일을 맡길 때는 그 회사가 전에 해왔던 일들이나 실적들을 보게 됩니다. 가장 기본적인 검증 방법이죠. 쇼핑몰에서 상품을 하나 사더라도, 이게 어떻게 어디서 어떤 경로로 만들어졌는지를 확인하고요. 이걸 만든 회사는 얼마나 오래 만들어왔는지 댓글들의 반응은 어떤지 꼼꼼하게 살피고 평가를 하죠.

하물며 내 회사의 가장 중요한 사안을 믿고 맡길만한 회사를 결정하면서, 아직 실적이 미미한 신생 회사를 고른다는 건 굉장한 모험이죠.

물론 그렇다고 그런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경험상 열 번 중 한 번꼴로 그런 의뢰인들이 ‘짠’ 하고 나타나기도 하더라고요. 주기적으로 자주 발생하는 일은 아니지만요. 결국 열 번 중에 아홉 번은 제가 한 번이라도 봤던 사람이거나, 봤던 분들이 소개해주거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전 회사의 동료거나 함께 일했던 사람들, 원래 알고 지냈던 지인들의 소개를 받으면 그분들이 곧 나의 레퍼런스가 됩니다. 어쩌면 나라는 상품을 미리 경험해 본 사람들이니 소개 받은 입장에서도 안심이 되겠죠. 물론 저의 부담감은 더 막중해지더군요. 저에게 정말 중요한 사람이 어렵게 마련한 소개팅 자리에 나간 느낌이랄까요.

그렇게 연결된 일들이 또 다른 일로 연결되고, 연결되어 알게 된 분들이 다시 소개해주시고. 의도하진 않았지만, 회사의 클라이언트 관계도가 그렇게 ‘알던 사람’의 망으로 얽히고설켜 형성됐습니다.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전혀 예상 못 했던 그림입니다.

그런데 이건 저뿐만은 아니더군요. 인테리어 회사를 혼자서 운영하는 후배에게도 알던 사람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사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후배에게 직장을 다닐 때 잠깐 함께 일했던 분이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로 오래됐고, 자주 뵌 분이 아니라서 얼굴도 목소리도 기억나질 않아 많이 당황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후배를 찾아온 이유는 함께 일할 때 너무나 꼼꼼히 챙겨줘서라고 했다고 하네요. 하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챙기는 후배를 보며 그 의뢰인은 후배가 그 회사의 대표이사라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출처: Unsplash

그 일이 인상에 강하게 남았는지 다른 회사로 이직하면서 생긴 인테리어 프로젝트가 나오자 맨 처음 후배를 찾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후배는 2년 가까이 되도록 홈페이지도 그 흔한 SNS 채널도 없이 대부분 이전에 알던 사람을 통해 일해오고 있습니다.

또 함께 파트너쉽을 맺고 있는 디자인 회사 대표님은 벌써 십 년 넘게 1인 기업을 운영하는 업계의 선배입니다. 그분 역시 일의 80% 이상이 아는 사람을 통해, 즉 입소문을 통해 일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우연히 식품과 농산물 분야의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하는데요.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업계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그 분야 디자인의 유명인사가 됐습니다. 당연히 그쪽 분야의 일들을 시작하기 위해서 꼭 리스트에 올려두는 디자이너가 됐죠.

저 또한 그 디자이너의 작품을 알아서 홍보해주는 열렬한 팬을 통해 알게 되어 인연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의 경우도 영업을 하거나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하고 계시진 않더군요. 즐겁게 일하고, 내 일처럼 하다 보니 고객들이 알아서 소문을 내주었고, 결국 지금과 같은 안정된 클라이언트 풀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신기하게도 앞서 말씀드린 두 분의 1인 기업들도 저와 일이 들어오는 방식이 비슷했습니다. 홈페이지의 힘이 아닌, 아는 사람의 힘으로 1인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계신 분들이었습니다.

물론 저 역시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열 명 중 여덟 명은 아는 사람이거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입니다. 어쩌다 인터넷을 통해 성사된 일도 실은 SNS를 통해 꽤 오랜 시간 알고 있었던 분들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생각하니 혼자 사업을 시작하려고 한다면 그럴듯해 보이는 홈페이지를 당장 만들 생각만 할 게 아니라, 내가 알고 지냈던 분들이나 지금까지 나와 관계를 맺어 왔던 분 중에 인연은 없는지 찾아보는 방법도 좋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서로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되는 부분도 있지만, 서로 코드가 잘 맞는다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매칭 방법이니까요.

출처: Unsplash

그리고 무엇보다 독립하기 전이라면 항상 사람과 일을 대할 때 진심으로 대하고 최선으로 다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람이 또 어떤 인연으로 다가올지 모를 일입니다.

그렇다고 나중을 생각해 눈치를 보자는 말은 아니고요. 인연의 가능성을 이왕이면 열어 놓자는 겁니다. 매번 새롭게 관계를 시작하고 이어 가기에는 인생의 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살면서 매번 느끼는 거지만, 좋은 답은 저 멀리 우주에 있지 않습니다. 인터넷 공간에만 있지도 않습니다. 내 주변에,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원문: 우현수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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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슨 로고가 좋아 보였던 이유 https://ppss.kr/archives/251136 Wed, 09 Feb 2022 05:51:42 +0000 http://3.36.87.144/?p=251136

다이슨의 로고를 처음 보고 상당히 낯선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존 가전 브랜드의 로고가 사용해왔던 표현 문법과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SAMSUNG, LG, PHILIPS, SONY, SHARP 등의 전통적인 가전 브랜드들은 보통 단단하고 묵직해 보이는 대문자 로고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다이슨의 로고는 소문자의 동글동글한 형태라서 직선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더구나 ‘y’자는 글자의 기준선인 베이스라인 아래 걸쳐 있기 때문에 ‘y’를 중심으로 시소처럼 왔다 갔다 할 것만 같은 불안한 동세가 느껴지죠. 툭 하고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생겼습니다.

이렇게 뭔가 불안하고 안정감이 떨어지는 로고 형태로 과연 최고의 성능과 품질을 갖춘 제품을 대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더군요. 제 눈에는 이 이상한 로고가 약간 못생겨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런 불균형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매력이 브랜드가 지향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같은 산업 카테고리인 가전 브랜드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형식이니까요. 그렇게 다르게 인식된 인상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니 dyson 로고 글자가 만들어내는 곡선의 유려한 선들은 마치 다이슨의 제품의 실루엣을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더군요. 소문자 ‘y’ 중 베이스라인을 벗어난 꼬리 부분은 미소 띈 입꼬리 같기도 하고요. 왠지 기분 좋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인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로고는 처음 그대로인데, 제품을 사용하다 보니 제 마음이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요.

다이슨 로고는 마치 ‘나는 네가 생활하는데 편리함을 더해줄 친구 같은 존재야’라고 친근하게 말을 건네지만, 굳이 성능이나 자신의 힘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아끼는 듯 보였습니다. ‘나를 한번 사용해보면 알 거야’ 하는 태도로요.

이런 제 느낌의 변화의 결정적인 요인은 전부는 아니지만 소문자형의 로고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번 본격적으로 소문자형의 dyson 로고를 하나하나 분석해 보면서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다이슨 로고는 소문자 로고의 특성상 외곽 테두리가 굉장히 복잡합니다. 대문자였다면 거의 박스 형태에 담길 테지만, ‘d’와 ‘y’가 있는 로고는 박스의 틀을 한참이나 벗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형태적 특성이 가독성을 더욱더 좋게 하고 이미지 기억을 회상하는 데 있어 더 유리한 점은 있습니다.

두 번째는 글자의 연결성입니다. 스크립체나 핸드드로잉체만큼은 아니지만, 소문자가 그려지는 흐름은 끊김이 많이 없습니다. 직선으로 분절되면서 결합하는 대문자보다는 시선의 흐름이 부드럽고 자연스럽습니다.

마지막으로 베이스라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동세’에 특징이 있습니다. 베이스라인을 뚫고 내려간 ‘y’ 때문에 지면에 안정감 있게 서 있는 게 아니라, 아슬아슬한 균형감으로 서 있는 듯 보입니다. 조금이라도 힘을 가하면 오뚜기처럼 좌우로 왔다 갔다 할 것만 같습니다.

소문자, 대문자라는 표기 사항의 차이지만 그 차이는 이렇게 로고 이미지 전체에 영향을 줍니다. 브랜드의 인상도 달라집니다.

그럼 반대로 ‘SONY’나 ‘PHILIPS’와 같은 대문자형 로고를 소문자형으로 바꿔보면 어떨까요? 어떤 인상의 변화가 생겨날까요? SONY의 경우 대문자 ‘N’에서 소문자 ‘n’으로 변하니 선이 하나 사라지고 훨씬 단순해졌습니다. 또한 다이슨처럼 ‘y’로 인해 전체 로고에 동세와 움직임이 생겼습니다.

대문자형 로고 ‘PHILIPS’가 소문자 ‘philips’는 어떨까요? 조형적으로 좋고 나쁘고를 떠나 확실히 잘 읽힙니다. 그런데 조형미는 너무 뒤떨어져 보이네요. 특히 중간의 ‘ili’부분은 복잡하고 산만합니다. 이 로고를 제품에 붙였다가는 제품 자체의 품질마저 의심받게 될 듯합니다.

이 외에도 많은 전자 브랜드들의 로고를 대소문자별로 분류해서 분석해보고 변환해 보는 것도 재밌는 도전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대문자형 로고’가 훨씬 다양하고 개수도 많았습니다. 그에 비해 ‘소문자형 로고’를 사용하는 가전 브랜드는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전통적인 대부분의 가전 브랜드 로고들이 대문자형을 고집했던 이유는 뭘까요? 아무래도 가전제품이라는 게 주거나 차량을 빼고는 가장 고가의 제품이니만큼 그에 버금가는 신뢰감과 무게감을 주기 위해서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묵직하고 무게감 있게 제품에 붙어 있는 로고를 볼 때 안심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100년이 넘는 명품 가전인 밀레는 창업 당시에도 ‘Miele’라고 소문자 표기를 했는데요. 이런 소문자의 가벼움은 글자의 두께감을 올려 보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브랜드 로고 표현 시 소문자이지 대문자인지에 따라서도 로고 인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러니 굉장히 신중해야겠죠. 고객에게 전달할 브랜드 인상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깊이 고심하고 의사 결정이 이뤄져야겠습니다.

다이슨의 로고가 소문자가 아니라 대문자였다면 어땠을까요? 과연 지금과 같은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요?

아마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이슨이 이렇게 인상적이고 성공적인 브랜드가 되는데는 ‘DYSON’이 아니라, ‘dyson’으로 하자는 세심하면서도 과감한 의사 결정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원문: 우현수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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