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 https://ppss.kr 필자와 독자의 경계가 없는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Sun, 29 Mar 2015 07:50:40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5.8.10 https://ppss.kr/wp-content/uploads/2015/07/ppss-100x100.png ㅍㅍㅅㅅ https://ppss.kr 32 32 현역 작곡가가 보는 로이킴과 반복되는 표절 문제 https://ppss.kr/archives/9841 https://ppss.kr/archives/9841#comments Sun, 14 Jul 2013 23:39:30 +0000 http://3.36.87.144/?p=9841 나이트에서 룸을 잡아서 놀다가 유명 작곡가와 합석해 즉석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를 원활하게 이루어지게끔 한 모 PD님께 감사드린다.

 

작곡가가 실수로 표절할 수도 있는가?

더블린 : 자기소개합시다.
작곡가 : 저도 이 바닥 사람인데, 그냥 ‘작곡가’라고 하죠.

더블린 : 좋습니다. 그래서 로이킴은 표절입니까?
작곡가 :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깜짝 놀랐다데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더블린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작곡가 : 닝겐노 표절와 똑같데스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더블린 : 이렇게 똑같은 표절은 정말 처음인 듯요… 막걸리사장 아들이면 다야? ㅋㅋㅋㅋㅋㅋ
익명 : ㅇㅇ 심하죠.


더블린 : 그런데 곡 쓰다 보면 이런 현상 종종 생기지 않아요? 인식하지는 못하고, 남의 노래 비슷하게 나오는…

작곡가 : 그쵸. 근데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는 힘들어 ㅋㅋ

더블린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작곡가 : 곡 쓰는 사람들이 천재인지는 모르겠는데, 자연스럽게 쓰는 멜로디는 오히려 멜로디가 부딪히지 않아요. 차라리 비슷하게 쓰려고 용쓰면 맞춰지지…

더블린 : 여튼 표절 땅! 땅!
작곡가 : 네.

 

표절과 레퍼런스, 오마쥬의 경계

더블린 : 근데 요즘 노래들은 샘플링, 미디 이름으로 다 조금씩 표절 삘이 나기는 합니다?
작곡가 : 뭐 그렇다 하던데 전 요즘 노래에 관심이 없고, 듣지도 않아서 아예 모르겠어요.

더블린 : 그런데 대체 표절의 기준이 뭘까요?
작곡가 : 이건 대중이랑 전문가 기준이 좀 달라요. 대중들이 이야기하는 것 중에는 은근히 어거지도 많아서… 가장 대표적인 게 서태지 표절이라고 우기는 바닐란가 뭔가…


더블린 : 그거 좀 표절 같던데요?

작곡가 : 에이, 레퍼런스죠. 레퍼런스랑 표절은 달라요.

더블린 : 레퍼런스?
작곡가 : 네. 우리나라 가요들의 대부분은 닮고 싶은 테마나 레퍼런스가 있어요. 국악인가요? 다 팝에서 영향을 받은거잖아요. 저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뮤지션이나 곡들에서 영감 받고, 이런 노래 쓰고 싶다…! 해서 쓰기도 하는 거죠.

더블린 : 오호…
작곡가 : 물론 그 중에 좀 심한 곡도 있죠. 전람회의 ‘고해소에서’ 같은 곡은 좀 시네마천국 OST 중 한 곡이랑 많이 비슷하긴 해요. 실망했음. 그런데 유희열은 라디오프로에서 전람회 곡과 소스곡을 같이 트는 패기를 보이더군요. ㅋㅋㅋ

더블린 : ㅋㅋㅋ
작곡가 : 그러면서 그 분도 TOTO라는 그룹을 존경한다고 TOTO의 Lea와 비슷하게 쓴 게 ‘넌 어떠니’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들어보면 알겠지만 그 정도는 표절이 아니에요. 오마쥬죠.

더블린 : 오오..!!!
작곡가 : 그러니까 표절 경계는 그거에요. 오마쥬를 얼마나 잘하느냐의 경계인데 로이킴은 오마쥬고 뭐고 없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더블린 : 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오마쥬면 대놓고 밝혀야 하지 않나요? 나 이 곡 존경해, 참고했어… 이런.
작곡가 : 그건 곡 덕후들이 밝혀내는 거죠. 외국 팝가수들도 서로 오마쥬하고 난린데 뭐. ㅋㅋ

 

짜깁기라고 다 표절이 아니다

더블린 : 다시 서태지… 이런 글이 있네요. “당시는 샘플링 CD를 사용해 음악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여러 뮤지션들이 같은 샘플링 CD를 사용해 작업을 했기 때문에 언뜻 들리기에는 음악이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서태지의 곡과 밀리바닐리의 곡은 코드 구성, 악기, 멜로디, 랩 구성등 모든 면에서 다른 점을 보이기 때문에 표절이라고 볼 수 없다”고 단언했다.
작곡가 : 발언이 센 걸 보니 서태지 컴퍼니 발언인가 보네요. 반박하면 소송당할 기세. ㄷㄷㄷ

더블린 : ㅋㅋㅋㅋㅋㅋ
작곡가 : 어쨌든 ‘난 알아요’ 그 곡은 정말 잘 만든 곡이에요. 이런 건 표절이라 보기 힘들어요. 서태지는 천재죠.

더블린 : 짜깁기라 볼 수 있지 않나요?
작곡가 : 그렇게 다 짜깁기 해서 곡 잘 쓸 수 있으면, 개나 소나 작곡하겠죠.

더블린 : ;;;;;;
작곡가 : 짜깁기로 잘 쓰는 사람의 대표가 박진영이에요. 근데 박진영도 인정해요. 경계를 잘 타는데, 대중이 뭘 좋아하는지 감을 알아요. 정말 속된말로 ‘세삥한’ 곡을 잘 쓰죠. 멜로디 감도 좋고, 후크도 알고, 샘플링도 잘하고… 요즘은 예전 같지 않지만 짜깁기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짜깁기라고 하니 좀 그렇다. 잘 취합한다고 하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옷 가져다가 갖다 붙이기가 어디 쉬운줄 알아요? 그것도 능력이고 …. 멜로디 자체도 팝을 인용하지만 한국에 어울리게 멜로디 잘 만들고 … 어쨌든 박진영은 크레이이티브 요소가 많은 작곡가에요. 표절로 확정된 곡도 있기는 하지만. 로이킴은 크레이이티브고 뭐고 없어요. 아니 요즘 트렌디한 음악도 아니고 컨츄리송  표절하는 하는 가수가 뭐임? 차라리 동요를 표절하지 그래…

더블린 : 오오… 프로다운 말을…
작곡가 : 샘플링, 악기 구성… 이런 것들 가지고 표절 시비 붙이면 사실 외국 곡끼리는 더 많아요. 미국 본고장에서 서태지 사례는 수백만 개일 걸요? 그런 걸 표절이라 하는 건 좀 억지라고 봐요.

더블린 : 본인이 작곡한 곡은 표절시비 걸린 적 없나요?
작곡가 : 있죠. 폴 매카트니의 노래로 걸던데 폴 매카트니랑 비교해주다니 영광일 따름이죠.

더블린 : ㅋㅋㅋ
작곡가 : 근데 그 노래는 별도로 소스가 있었어요. 다른 레전드 가수 노래 듣고 그런 스타일로 곡을 만지다가 제 식으로 나온 게 그 곡이었죠. 뭐, 작곡가들이 내놓는 곡은 보통 그런 식으로 다른 노래 영향을 좀 받을 수밖에 없어요.

 

로이킴의 선별적 표절: 김광석과 어쿠스틱 레인

더블린 : 자, 말이 길었는데 다시 로이킴이나 깝시다.
작곡가 : 어쨌든 작곡가는 알아요. 곡이 비슷한 게 우연인지 아닌지. 하지만 저건 너무하자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더블린 : 처음 들었을 때 느낌이 어떻던가요?
작곡가 : 사실 저는 처음 들었을 때 로이킴 노래가 김광석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이랑 컨셉이 똑같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설마 멜로디까지 썼을 줄이야(…) 편곡은 김광석거 가져다 쓰고 멜로디는 딴 사람이 또 있었다니…. 사실 그래서 로이킴은 자존심이 있나? 생각했어요. 김광석 노래에서 멜로디만 안 딴 거지, 대놓고 따라 쓴 거라서 웃겼는데… 그런데 김광석꺼는 기본이고 거기다 멜로디까지 썼다니.. 이건 표절이 아니라 번안곡….

더블린 : 그러면 로이킴이 김광석 노래도 표절했다고도 볼 수 있나요?
작곡가 : 아뇨. 표절은 아니지만 같은 작곡가가 보기엔 쪽팔린 거죠. 저렇게 편곡하는 건 배알 다 내놓고, 존심 버리고…

더블린 : 근데 그렇게 하면… 애초에 어쿠스틱 레인도 김광석 노래 따라 만든 거가 되나요?
작곡가 : 음… 그건 좀 다른 게 어쿠스틱 레인은 리듬이나 전체 다이를 베낀 게 아니잖아요. 그냥 어쿠스틱레인과 김광석은 같은 포크송 가수계열이다… 이거죠. 솔직히 어쿠스틱 레인은 대중적인 곡도 아니고 … 21세기에 상당히 올디한 포크송을 하시는구나… 생각했을 뿐…

더블린 : 다이가 뭐에여?
작곡가 : 당구다이… 그러니까 편곡할 때 전체 판? 악기 구성? 그냥 우리끼리 업계에서 쓰는 말이에요. 녹음할 때 ‘다이 잘 짜고 가자’ 이렇게 이야기하죠. 근데 어쿠스틱 레인은 아쉬운 게 다이가 별로 안 좋죠. 그런데 로이킴은 어쿠스틱 레인에서 멜로디만 쏙~ 김광석한테는 좋은 다이만 쏙~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더블린 : 대단하네요. ㅋㅋ
작곡가 : 장사 잘하는 것 같음. ㄷㄷㄷ

더블린 : 로이킴 너무 까는 것 같습니다만.
작곡가 : 제가 원래 병신 같은 애가 병신짓 하면 신경도 안 써요. 변희재가 뭔 소리하든 무시하죠. 근데 로이킴은 되게 멀쩡하고 스타성 있는 친구가 저러고 있으니…

 

표절여부는 누가 판단해야 하는가?

더블린 : 뭐, 따지고 보면 표절이 하루 이틀 전 일은 아니죠.
작곡가 : 그렇죠. 그래도 예전이 나은 것 같아요. 예전에 김민종도 귀천도애로 잠시 물러났잖아요. 사실 그거 김민종 작곡도 아닌데… 그리고 그 작곡가는 이후 밥줄 끊기다시피 했어요. 잘나가던 작곡가였는데… 그런데 요즘은 뭐 처벌도 없고 그냥 논란만 일어났다 끝나니…

더블린 : 음… 하긴 최근 표절로 조용히 물러난 사례는 이효리 정도로군요.
작곡가 : 네. 모 가수의 경우 또 표절이라고 할만한 곡은 단 한번도 공연장에서 안 부르더군요. 자존심 있는 자세를 보여주는 거죠. 정말로 우연히 걸려서 억울한 건지도(…)

더블린 : 와이낫과 씨앤블루의 표절 논쟁도 치열했죠.
작곡가 : 그 곡도 수긍이 가요. 그런데 김도훈씨 해명도 이해는 갔어요. 와이낫 말고 컨츄리 꼬꼬랑도 비슷함….. ㅋㅋ 근데 당시엔 와이낫이 너무 아이돌 vs 인디계의 대결로 몰아가서 좀 그렇더라. 어쨌든 로이킴 수준은 아니었음….

더블린 : 자… 그래서 표절은 어떻게 막아야 할까요?
작곡가 : 옛날에는 그래도 표절심의단이 있어서 표절판정에 관해 좀 엄격해서 그건 좋았는데… 요샌 누가 제지를 안 하니 저렇게 막 표절해도 욕이나 먹고 끝나죠. 대중들은 또 자기들이 무슨 심판관이라고, 너무 말도 안 되는 잣대로 어거지 들이대고… 그래서 저는 표절은 심의단이 있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솔직히 프로하고 아마추어는 보는 시각의 차이가 크거든요.

더블린 : 감사합니다.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
작곡가 : 안 됩니다.

더블린 : 왜죠?
작곡가 : 삼국지 하러 가야 돼요. 황건적 잡으러 가야함…. 어제 낙양 불쇼했어요…

더블린 : ……
작곡가 : 어제 낙양 먹었으니 이제 허창 먹어야 함.

더블린 : 그러면… 마지막으로 한 말씀을…
작곡가 : 이번 로이킴 표절은 10년 가까이 음악하며 또 제가 31년 살면서 들은 최고의 표절곡인 것 같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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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어도 한참 식은 NLL 떡밥, 왜 또 나온 거야? https://ppss.kr/archives/9013 https://ppss.kr/archives/9013#comments Mon, 24 Jun 2013 00:35:20 +0000 http://3.36.87.144/?p=9013 대선이 끝난지도 벌써 반 년이 지났는데 또다시 노무현이다. 그 인기를 어떻게든 등에 업어 보려는 무리들부터, 부관참시를 기도하며 반전을 노리는 무리들까지, 정치인 노무현은 이승을 떠나서도 사람 여럿 먹여 살리고 있구나 싶다.

다시 불이 붙기는 했지만 NLL을 둘러싼 논란에서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단 하나 추가된 것은 지난 20일 국가정보원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당시 노무현-김정일 회담 대화록 일부를 보여주었다는 (그리고 이에 대해 문재인 의원이 대화록 공개를 제의한 것) 정도. 그러나 이를 통해 새로운 사실관계가 드러나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 할 이야기에도 새로운 내용은 하나도 없다.

 

‘영토를 팔아먹은 종북 노무현’

NLL 논란을 부추기는 쪽에서 국민들로 하여금 떠올리게 하려는 이미지는 ‘김정일에게 영토를 팔아먹으려 한 종북게이 노무현’인 듯싶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문제에 대해서 북한과 협상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영토를 협상의 대상으로 삼는 대통령은 그와 같은 비난을 받아도 싸다.

그런데 NLL이 영토선이긴 한 걸까? 논란은 자연스럽게 NLL의 법적 지위로 이어진다. 한때 헌법 3조를 두고 ‘어차피 한반도 전체가 우리 영토인데 왜 NLL을 영토선이라 주장하느냐’는 반론이 나오자 보수 정치인과 법학자들은 ‘해상경계선’이라고 표현을 바꾸어 가면서 NLL이 사실상 ‘해상에서의 군사분계선’과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작년 11월, 진중권과의 NLL 토론에서 승리하며 인생의 정점을 찍었던 변희재 또한 같은 입장을 견지한다. 개인적인 관측으로는 그전까지 NLL 이슈는 여전히 수면 아래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변희재가 진중권을 토론에서 이겼다’는 대한민국 4강 진출과도 같은 놀라운 소식이 전해지자 NLL 이슈에 크게 불이 붙었다(개인 차원에서의 토론이긴 했지만 준비를 부실하게 한 진중권에게도 대선 패배에 대한 일말의 책임이 있다).

처음엔 키로 이기고, 그 다음에는 토론으로 이겼노라
처음엔 키로 이겼고, 그 다음에는 토론으로 이겼노라

 

NLL에 대한 1974년 CIA 보고서

보수 법학자들은 NLL이 1953년 8월 30일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마크 클라크 대장에 의해 설정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리 해군이 그 내용을 해군본부 작전명령 제1235호로 공식화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는 현재 남아있지 않다. 클라크 사령관의 작전명령서는 물론이고 해군 작명 제1235호도 이미 폐기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보다 결정적인 증언은 1974년 1월에 작성된 미국 CIA의 보고서(The West Coast Korean Islands)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NLL이 1965년에 유엔군 산하 해군 구성군 사령관에 의해 설정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1961년에 비슷한 내용의 기준선을 NLL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지정한 적은 있으나 그보다 이전의 기록은 찾지 못했다는 것이 CIA 보고서의 내용이다.

또한 CIA 보고서는 1965년에 설정된 NLL의 유일한 목적은 “특별한 허가 없이는 유엔군 사령부 소속의 군함이 그 위로 올라가지 않도록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명기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북한의 군함이나 어선이 NLL을 내려온다고 해서 이를 막을 수 있는 근거가 NLL 개념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연유에서 1996년 김영삼 정부 시절, 이양호 당시 국방장관이 “NLL를 침범한다 하여 정전협정 위반은 아니다(관련기사)”라고 답한 것이다.

 

박정희도 NLL을 영해선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영해는 ‘영해 및 접속수역법‘에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이 법에 따르면 서해 5도 해역은 영해에 포함이 되어 있지 않다. 이는 법이 처음으로 제정된 1977년부터 그랬다. 그리고 1977년의 대한민국 대통령은 박정희였다. 영해법에 NLL을 따라 명기를 해두었다면 적어도 국내적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왜 박정희 정권은 서해 5도 지역은 빼놓고 영해법을 선포했을까?

국립해양조사원에서 작성한 영해선 지도
국립해양조사원에서 작성한 영해선 지도

2006년에 비밀등급이 해제되어 공개된 1975년의 미국 외교 전문이 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외교 전문에 따르면 미국은 NLL을 영해선으로 주장하는 것이 국제법에도 위반되며 해양법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에도 배치된다고 보았다. 1975년에 이 전문을 작성한 이는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였다.

"희재야, 형이야..."
“희재야, 형이야… 근데 너 중궈한테 줄 돈은 마련했니?”

 

미국 정부도 NLL을 영해선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한국 국방부가 북한 선박과 항공기의 NLL 월선에 대해 ‘영해’를 침범했다는 주장에 대해(그러므로 대한민국 정부가 한번도 NLL을 영토선이라 주장한 적은 없다는 변희재의 주장은 거짓이다), 헨리 키신저는 “북방정찰한계선(Northern Patrol Limit Line: 키신저는 북방한계선(NLL) 대신 이러한 표현을 쓰고 있다)은 국제법적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 이는 일방으로 설정된 것이며 북한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공해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분할하고 있어 국제법에 분명히 대치되며, 해양법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과도 대치된다”고 말했다.

또한 키신저는 같은 전문에서 “한국 국방부의 ‘영해’라는 잘못된 어휘 사용은 위의 문제를 악화시킨다… 미국 정부와 유엔군 사령부는 해당 사고(북한의 NLL 월선)가 한국의 영해 또는 심지어 배타적어로구역에서 발생했다는 주장을 전혀 지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정희 정부가 영해법에서 서해 5도 해역을 넣지 못한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NLL에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NLL의 소유권 등기가 김정일에게 이전되기라도 한 것인가? 2007년의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NLL 등을 비롯한 협상의 전권을 ‘NLL 사수’를 주장하던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에게 위임했고, 김장수 전 장관은 작년 11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정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래서 NLL에 대해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북한도 암묵적으로 NLL을 수용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CIA의 보고서나 키신저의 전문, 그리고 우리나라 영해법의 구성 등을 살펴보면, 국제법상으로는 변희재가 주장하는 것처럼 그리 굳건하지 못하다. 현실적으로는 군사 분계선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법적으로도 엄연히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이것을 협상의 대상으로 삼느냐 아니면 필사수호하느냐의 문제는 온전히 정치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대급부로 얻어낼 만한 것이 있다면 협상도 해볼 만할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도 NLL을 수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왔으니 앞으로도 계속 실질적인 분계선으로서 기능하게 하여도 좋을 것이다. 국익에 부합하기만 한다면.

그러나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다시 말해 NLL을 협상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국헌을 부정하고 나라를 팔아먹는 행위로 매도될 수는 없다(물론 비판이야 가능하다). 앞서 지리하게 설명했듯이, NLL은 국제법상 그 지위는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지어 미국조차도 NLL을 영토선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국제사법재판소로 이 문제를 가져가면 변희재나 보수 학자들의 확신과는 달리 과거 북한이 1999년에 내놓은 해양경계선안이 절충안으로 채택될 확률이 높다.

녹색선이 NLL이고 노란선이 북한이 99년에 제안한 해양경계선이다
녹색선이 NLL이고 노란선이 북한이 99년에 제안한 해양경계선이다

 

여당도 정부도 국정원도 치졸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대체 이 이야기가 지금 왜 또 나온 것인가? 정전협정 문서에 NLL을 인정한 숨겨진 부속조항이 발굴되기라도 했나? 아니면 NLL 소유권 등기가 역적 노무현에 의해 김정일에게 몰래 이전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라도 했나? 실로 놀랍게도 아무 것도 바뀌거나 새로 밝혀진 것이 없다. 그저 국정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일부를 새누리당의 몇몇 의원들에게 공개한 일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정원은 왜 지금 이를 공개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최근 불거지고 있는 국정원 선거 개입 이슈에 물타기를 하려는 시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정치적 이득을 위한 작당이라지만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치졸한 일이다. 대화록을 공개함으로써 앞으로 대한민국 외교가 입게 될 타격은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본디 외교란 적과의 소통을 위한 것이다. 친구들끼리의 소통에 면책 특권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적과의 소통, 그리고 합의를 일상으로 다루는 것이 외교이기 때문에 외교에서는 (자국의 여론과는 상관 없이) 실무자들의 자유로운 논의를 보장하는 관행 또는 장치가 발달했다. 정치적인 이유로 본래 비공개인 대화록을 함부로 공개한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의 어떤 정치가, 외교관이 진솔한 외교를 펼칠 수 있을까? 정청래 의원이 그랬듯 박근혜-김정일 회담록을 공개하자고 하면, 앞으로 중국과의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여 온 국민은 물론이요 미국도 열람할 수 있도록 하자고 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과연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책임질 일 있으면 책임을 집시다.
책임질 일 있으면 책임을 집시다. 치졸한 물타기로 한 나라의 외교까지 박살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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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시위와 촛불 시위, 민주주의 정권의 비민주적 정책에 맞서 https://ppss.kr/archives/8388 https://ppss.kr/archives/8388#comments Mon, 03 Jun 2013 17:27:53 +0000 http://3.36.87.144/?p=8388 익히 알려진대로 터키에서는 지금 대규모 시위가 한창이다. 지금 이 글을 끄적이는 순간에도 알자지라의 터키 시위 라이브 블로그에는 터키 전역으로 확산된 시위 현장의 사진들이 속속들이 올라오고 있다. 48개 이상의 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번 시위의 발생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개발 독재’식의 무리한 개발 추진이고, 다른 하나는 ‘이슬람화’이다.

 

개발 독재의 그림자

터키의 현 총리인 에르도안과 여당 정의개발당(AKP)은 벌써 10년 넘게 집권을 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민주주의적 절차에 의해서 집권을 연장하고 있는 정권이다. 그리고 그 비결은 눈부신 경제성장에서 나온다. 과거만 하더라도 터키는 국체의 허약함으로 유럽 내에서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에르도안은 2003년 집권 당시의 터키 경제규모를 2011년 세 배로 키웠다. 미국과 유럽과의 관계도 개선시켜 올해 초에는 나토로부터 패트리어트 포대 지원도 받기에 이르렀다.

한편 에르도안은 동의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거침없었다. 많은 언론인들이 감옥을 가기도 했다. 이미 교통 정체로 악명 높은 이스탄불에 또다시 공항을 설치하려는 계획도, 이스탄불의 유럽쪽과 아시아쪽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하려는 계획도, 환경론자와 도시계획 전문가들의 우려를 물리치고 밀어붙였다. 최근 시위가 격화된 것도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이 반감을 불러온 측면이 크다.

이번 시위의 상징이 되어버린 바로 그 사진
이번 시위의 상징이 되어버린 바로 그 사진

이번 시위를 촉발시킨 이스탄불 시내의 탁심 광장 사건도 그렇다. 도심의 얼마 남지 않은 녹지대인 광장을 철거하고 쇼핑몰을 짓겠다는 계획이 환경운동가들의 반발을 낳았다. 그리고 광장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운동가들을 과도하게 압박하면서 예술가들과 정치인들도 시위에 가담하기에 이르렀고, 그렇게 시위는 전국적인 차원으로 확산되었다. (이 상세한 과정에 대해서는 터키 탁심광장 시위, 5일간 잔혹한 현장의 흐름을 참조)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

이 모든 과정의 밑바닥에는 터키의 이슬람화 문제 또한 깔려있다. 터키는 국민의 90% 이상이 이슬람 신자이지만 기본적으로 정교가 분리되어 있는 세속국가이다. 터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터키 건국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이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고 터키 공화국을 세우면서 가장 먼저 확립한 것이 바로 세속주의 원리였다.

이 때문에 서구는 중동 이슬람 국가들의 ‘서구적’ 이상형으로 꾸준히 터키를 꼽아왔다.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 신자이면서도 정교가 분리되어 있는 세속국가이고, 민주적인 방식을 통해 정권을 세우고 교체한다. 게다가 최근 10년 동안 터키는 경제적으로도 꾸준히 발전해왔으니 그야말로 타의 모범이 될만하지 않겠는가. 동아시아에 한국이 있다면 중동에는 터키가 있었다.

사실 터키의 이슬람화 우려는 에르도안 집권 초기부터 있었다. 정의개발당이 기본적으로 이슬람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터키는 9/11 이후의 세계에서 서구(특히 나토)와 협력을 계속하면서 서구 국가들의 불안감을 잠재웠다.

그러나 에르도안은 조금씩 오늘날의 터키를 있게 한 세속주의와 멀어지면서 점차로 터키를 이슬람화시키고 있다. 주류 규제를 강화한 것이 그중 하나다. 이번 시위를 촉발시킨 탁심 광장의 개발도 이슬람주의와 연관이 있다. 쇼핑몰 건설과 더불어 오스만 제국 시절의 포병부대 건물을 재건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스탄불의 새로운 교량의 이름을 짓는 것에서까지도 오스만 제국의 술탄 셀림의 이름을 따 문제의 소지를 만들었다.

 

‘터키의 봄’은 허구

또다시 중동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자 재작년의 ‘아랍의 봄’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터키의 경우는 이전의 중동 국가들과 판이하게 다르다. 이미 언급했듯 터키는 이미 민주국가이고 세속국가이다. 소위 민주국가에서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라고 분개하기 전에 우리나라를 떠올려 보자. 어쨌든 대한민국은 자유민주국가가 맞다.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완벽하다. 터키를 다른 아랍 국가들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또한 ‘아랍의 봄’은 대부분 서구의 자유주의자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로 이집트를 들 수 있다. 독재자 무바라크를 몰아낼 때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이후 선거를 통해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하는 무슬림형제단이 집권하면서 서구가 희망하던 국가의 모습과는 많이 멀어져 버렸다.

무바라크는 물러났으나 이집트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무바라크는 물러났으나 이집트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앞으로의 터키는?

시위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우리나라의 촛불 시위를 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형식적으로 완벽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에 대한 (그러나 경제난으로 인한 것은 아닌) 불만으로 시작되어, 정부의 잘못된 대응으로 크게 번졌다. 이명박 정부나 에르도안 정부나 모두 정상적인 선거를 통해 선출된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정권이다. 세속 성향의 시민들이 최근의 이슬람화 경향에 반발하고 있으나 여전히 다수는 에르도안 정부를 지지하고 있다. 경제난으로 인한 시위가 아니기 때문에 상당 기간 지속되기도 쉽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개인적으로는 시위 자체보다 앞으로 터키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가 궁금하다. 에르도안의 경제 개발이라는 단맛을 입힌 당의정(이슬람화)는 과연 어디까지 진행될 수 있을까? 이슬람화가 된 이후에도 터키는 지금과 같은 발전과 번영을 구가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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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어쩌다 이렇게 되었고 앞으론 어떻게 해야 하나요? https://ppss.kr/archives/8102 https://ppss.kr/archives/8102#comments Tue, 28 May 2013 02:00:48 +0000 http://3.36.87.144/?p=8102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북한은 참 특이한 나라입니다. 의사소통의 방법이 협박 외에는 별로 없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화가 날 때도 협박을 하지만, 뭔가 대화나 협상을 하자고 요구할 때도 협박을 합니다. 문제는 전문가들 조차도 이 협박이 정말 화가 나서 하는 것인지 대화를 하자고 하는 것인지 분간하는 데 애를 먹는다는 겁니다. 내가 기념일을 새까맣게 잊어버렸을 때도 칼춤을 추지만, 자기 방에서 라면이나 먹고 가라고 할 때도 칼춤을 추는 여자친구가 있다면 어떨까요.

북한은 아직까지 미국을 자신의 주요한 대화상대로 여기고 있습니다. 각종 제재로 자신을 옭아맸지만 또 그 제재를 풀어줄 나라도 미국이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했을 때 미사일을 평양에 쏟아부을지 영변에 쏟아부을지 따위를 결정(전시작전권)할 나라도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미국과의 협상이 생각대로 이어지지 않으니 애꿎은 남한을 건드리면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남한도 꽤나 강경하게 대응했습니다.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김관진 국방장관의 ‘인질 사건 발생시 특전사 투입’ 발언이에요. 작전 계획이 얼마나 짜여져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특전사가 개성 공단에 투입되면 이는 실질적인 전쟁 상황으로 이어집니다. 북한이 가장 발끈한 것도 이 대목에서였습니다. 북한은 이전부터 김관진 장관을 무척 미워해서 군용 멍멍이들에게 김관진 장관의 사진을 붙여놓은 인형을 물어뜯게도 시키곤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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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이 폐쇄되면 북한이 입을 피해가 크다던데요?

북한이 ‘특전사 투입’ 발언 외에 가장 툴툴거렸던 대목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노동자들을 철수시킬 폼을 잡자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모든 언론이 ‘폐쇄되면 외화벌이도 못하는데 감히 그러기야 하겠느냐’고 말했거든요. 이 견해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따져보기 앞서, 츤데레에게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반응할지를 함께 상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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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전문가들에게 들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북한이 입을 손실이 그리 크진 않은 것 같아요. 왜냐면 개성공단의 노동자들을 바로 중국에 투입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인건비 저렴하다던 시절도 이젠 옛날입니다. 이제는 중국도 국내의 노동력보다 더 저렴한 노동력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중국과 바로 맞닿은 나라 하나가 여전히 저렴한 노동력을 자랑하고 있어요. 바로 북한입니다.

중국에서는 북한 노동자들에게 한 달에 최저 200달러 정도를 임금으로 준다 하더군요. 우리나라 돈으로 20만 원이 좀 넘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개성공단의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은 150달러 정도입니다. 자기네들 노동력 쓰겠다는 나라가 남한 밖에 없다면 울며 겨자먹기로라도 해야 하겠지요. 그러나 돈을 더 줄 수도 있는 데다가 여전히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중국이 있기 때문에, 공단이 영구히 폐쇄되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더라도 북한이 입을 타격은 별로 크지 않습니다.

 

최악의 상황?

많은 분들이 대북관계에 대해서 느끼는 가장 큰 불만은 이렇습니다. 북한이 억지를 부리면서 난리를 치면 남한은 거기에 질질 끌려다니곤 하니 한심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또 많은 분들이 이번 사태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대응을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지요. 국력도 훨씬 강한 우리가 왜 자꾸 북한에게 끌려다녀야만 하나요?

그럼 이대로 남북이 서로 평행선을 달리면서 최악의 상황에 이르면 어떻게 될까요? 공단에 있는 각종 설비들은 북한이 자체적으로 운영할 능력을 못 가지고 있습니다. 해체하여 다른 지역으로 옮겨 사용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그럼 기존의 공단 부지는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공단이 생기기 전에 그 자리에 있었던 시설이 다시 들어올 가능성이 큽니다. 뭐가 있었냐고요? 군 부대입니다.

전차 및 장갑차 부대도 있었고, 예비군 아저씨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장사정포 부대도 있었습니다. 북한이 ‘서울 불바다’ 같은 엄포를 놓을 수 있었던 근거들이 지난 10년보다 더 많아지게 됩니다. 장사정포의 위력은 실제보다 과장되어 온 측면이 큽니다. 그렇지만 일단 개성공단 지역에 장사정포가 돌아오게 되면 가장 먼저 종편들이 연일 특보를 내보내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할 거에요.

우리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 됩니다. 별로 잃을 게 많지 않은 북한과 하는 게임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가 더 많은 손해를 봅니다. 아마도 북한이 더 잃을 게 많은 경우는 전면전 상황 밖에 없을 거 같군요. 물론 여기서는 ‘모조리 죽고 우리편 한 명만 살아남더라도 우리가 이긴 것’이라는 의미에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상대를 잘 관리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입니다.

내부 의사소통도 안 되는 박근혜 정부

한국 사회를 살펴보면 거의 모든 사회문제의 정점에 북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주요 일간지부터 일베에 이르기까지 가장 자주 보는 단어가 ‘종북’ 아닌가요? 정작 문자 그대로의 ‘종북’ 세력들은 요사이 대중의 관심에서 매우 멀어진 듯한데 종북이란 표현 자체는 꾸준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북한을 어떻게 대해야 하지?’ 라는 질문에 대해 대다수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답안이 아직까지 없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사실 아직까지 북한 문제는 현재진행형인데다가 천안함과 연평도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도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답안이 바로 나오기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출된 정부는 공약을 이행하면서 꾸준히 국민들을 설득시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출범 당시만 하더라도 심지어 ‘종북’ 소리를 듣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도 ‘박근혜 대통령이 대북 관계는 잘할 것 같다’는 말이 오갔습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로부터도 기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심지어 정부 내부에서도 손발이 안 맞아 벌어진 일들이 근래에 몇 번 있었습니다. 특히 통일부와 청와대 사이에서요.

최근에 있었던 가장 심각한 문제는, 5월 3일에 이미 북한측에서 아직 공단에 남아있는 원자재와 제품 등을 반출하는 문제에 대해서 협의할 의사가 있다고 남한측에 전달했는데 이를 공단 입주기업측에도 알리지 않고 아무런 대처를 취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북한측에서 이를 밝히면서 정부도 뒤늦게 이를 인정한 경우입니다. 입주기업측에서는 펄쩍 뛸 일이지요. 개성공단 비상대책위원회의 입장 발표문을 한번 읽어보세요.

발표문에서도 지적하고 있듯, 이미 북한에서 그런 제의를 했는데 박 대통령이 5월 14일에 물자 반출에 대한 대화 제의를 지시하였다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이런 일은 처음도 아닙니다. 정부 내부에서도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데 어떻게 국민들을 설득하고 이끌 수가 있을까요?

그래도 대화 밖에는 방법이 없어요

북한 핵실험 이후에 미국의 주류 언론의 북한 관련 사설과 기고문들을 보면 많은 논자들이 강경한 대응을 주문합니다. 존 볼튼이나 니콜라스 에버슈타트 같은 대표적인 네오콘들이 총출동하여 북한을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심지어 뉴욕타임즈에는 한 교수가 ‘북한을 폭격하라’는 기고문을 써서 논란이 되기도 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북한에 대한 강경대응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강경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에도 일견 일리는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강경파들은 미국의 강경파들이 인정하고 있는 한 가지를 결코 입 밖에 내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가 강경하게 대응하면 결국 또다시 연평도와 같은 무력 도발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강경파들의 기고문을 보면 다들 글의 끝자락 쯤에 “단기적으로는 이런 강경책이 북한의 국지적인 공격과 남한의 보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도는 인정을 합니다. ‘북한을 폭격하라’고 쓴 교수는 심지어 “아직 전쟁이 한반도에서 그칠 수 있을 동안에 전쟁을 시작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까지 말하고요. 이런 사람들은 우리 아저씨들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한미동맹’에도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내놓고 무력충돌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어물쩡 넘기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 멀리 미국에서야 포격 당해서 누가 죽든지 말든지 별 상관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입장은 다릅니다. 우리 피붙이가, 심지어는 우리 자신이 죽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인데요. 뭐 어떤 분들은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같은 말씀도 하십니다만.

국민이 전쟁을 원한다면 전쟁도 해야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국민들에게 가능한 선택지를 모두 제시한 적이 있었나요? 지금의 방향이 어떠한 결과로 이어질지 알려주는 것은 언론의 역할일 텐데 우리나라의 언론들이 그런 역할을 잘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당장은 원칙대로 잘하고 있는 것처럼 언론들이 말하고 있지만, 개성공단 자리에 다시 장사정포가 들어서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게 되면 가장 먼저 호들갑을 떠는 것도 언론일 겁니다.

저는 다소 아니꼽더라도 대화 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합니다. 북한을 당장 비핵화시킬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남한이 할 수 있는 부분은 현재로선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개성공단만큼은 지키지 못하면 남북 관계는 이명박 5년과 소위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을 거슬러 올라가 최악의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만큼은 피해야 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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