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조 포스팅: [구인공고] 스타트업에서 연봉 1억 인터넷방송 캐스터를 뽑습니다)
리승환(이하 리): 안녕하세요. 뭐하는 사람인가요?
장효빈(이하 장): 증권 정보와 교육 콘텐츠를 유통하는 에이스탁 대표 장효빈입니다.

리: 어쩌다 이런 일을 하게 됐나요?
장: 음… 그냥 해보고 싶었다? 그게 너무 커졌죠.
리: 원래 뭘 하셨기에…
장: 군인이었습니다.
리: ……
장: 원래 전기전자 쪽 전공이었는데, 제복 입은 사람들을 보다가 멋있어 보여서 지원, 사관학교로 편입했습니다.

1. 직업군인에서 민간인이 되기까지
리: 군인이 되니 어떻던가요?
장: 진짜 싫더군요(…) 일단 너무 딱딱하고 획일화된 틀에 맞춰야 해서… 심지어 시험 때는 자기 생각도 못 쓰고, 맞춤법 토씨 하나까지 안 틀리게 외워 써야 했고… 그래도 장교가 된 후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열이 너무 올라오고 쇼크가 와서 병원 갔더니 군병원에서 간에 종양 생긴 것 같다고 11시간 동안 수술을 받았어요. 전역 사유더라고요.
리: ……
장: 정확히는 전역해도 되는 공무상 재해인데… 중환자실에서 누워 있다 보니, 군대를 관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침 제가 인사참모여서 규정 다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유리하게 서류작성해서(…) 1년간 급여 받으며 쉴 수 있는 유급휴가 승인을 받았어요. 1년 쉬면서 여러 알바도 해보고. 보험사 비서, 쿠키 관련된 케이터링, 쇼핑몰도 하나 만들어 운영해 봤고… 그때 세상 넓은 걸 알겠더라고요.
리: 정말 신기한 전역 사유로군요(…)
장: 음… 사실 또 하나 영향을 줬던 사건이 있는데… 제가 장교로 있던 부대의 사병이 목숨을 잃었어요. 졸음운전이니 책임이 없지는 않지만… 우리 부대 장교와 사병이 모은 돈이 천만원이 넘는데, 국가에서 나온 돈은 수십만 원에 불과하더라고요. 애들 시킬 수 없으니 제가 직접 시체를 꺼내고, 장례식까지 다 우리가 직접 했는데… 그런 현실이 좀 서글프고…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가야겠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리: 군대에 아픈 기억이 많군요.
장: 아니오. 전 군대에 아직까지 감사합니다.
리: 너무 의례적인 거 아닙니까?
장: 아닙니다. 제가 재해장교로 분류돼 위탁진료 받을 때 막내 간호사 꼬셔서 결혼했기 때문에(…)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리: ……
장: ……

2. 꿈의 직장 군대에서 새로운 꿈을 키우다
리: 그래도 꿈의 직장 군대를 그만두다니, 불안하지 않으셨나요?
장: 그렇죠. 마침 제가 재해장교로 분류되며 행정기관에서 근무하게 됐는데… 전방 부대와 달리 사회생활도 자유롭고, 당시 진급도 무난해 보였고… 왜 그만두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죠. 그런데 한 번 죽다 살아나니까, 가슴 뛰는 일을 해야 죽어도 덜 억울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리: 하지만 군대에 있다가 갑자기 사회 나와서 직원도 아닌 사장이 되려는 결심을 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장: 일단 뭐 하고 싶기에 앞서 군대를 떠나겠다는 생각이 강했고… 군대 있으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오만 일을 다 하게 되는데, 이 정도면 사회에서 뭐 안 될까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제가 에이스탁 전신인 재테크 카페를 다음에서 운영하고 있었어요. 카페 중에는 1위였고요.
리: 재테크 카페라니… 군대에서 일 안 하고 뭐한 겁니까?
장: 그게 군대 때문에 시작된 거라… 제가 부대원과 간부들에게 경제, 재테크 교육을 해야 했어요. 그때 자료 좀 모으려고 만든 카페가 그렇게 커진 거죠.
리: 인사장교가 왜 경제, 재테크 교육을 하는 거죠?
장: 그게 군대라는 겁니다. 그냥 하라면 하는…

리: ……
장: 그것도 윗사람들 눈에 맞추려면 정말 칼같이 자료를 깔끔하게 만들어야 해서… 그냥 버리기 아까우니 카페에 공유하기 시작한 거죠. 그게 회원 10만 카페가 되고, 정보를 주고받게 됐죠.
리: 애초에 카페를 사업화하려 하신 건가요?
장: 그냥 이걸로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어요. 유급휴가 끝날 때쯤 동호회 내 콘텐츠를 유료화했어요. 회원들이 증시 동향 문자를 보낸다거나 고급 리포트 등을 요구했는데, 그냥 운영자들끼리 아무 생각 없이 월 1만원에 해보자… 이렇게 한 거죠.
리: 반응은 어떻던가요?
장: 과금 첫날에 총무 통장에 1억 넘게 들어오더라고요. 금융감독원 질의가 오더라고요. 거래가 하나도 없다가 하룻밤 사이 1억 넘게 들어오니 다단계 하냐고(…) 답변서 제출하라고… 증권 재테크는 순수 동호회 인정 못하니까, 사업화하거나 문 닫거나 무료로 해라… 그래서 갑자기 사업을 시작하게 됐지요.
리: 총 몇 명이서 시작했지요?
장: 저 혼자요.
리: 네-_-?
장: 운영자가 8명 있었는데, 1억 들어온 날 맥주 마시면서, 다들 직장 때려치우고 본격화하자고 했어요. 그래서 전 전역했는데, 아무도 안 나왔더라고요(….). 본의 아니게 혼자 하게 됐죠.

리: 아니, 그러면 그 1억은 어떻게 했죠?
장: 중간에 나온 분도 있었는데, 정리가 제대로 안 되니 당연히 분쟁이 많았죠. 일단 돈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끼리 갈등이 터지기 시작했어요. 다들 자기 공이 더 크다고 하고… 운영자 외에 스탭들도 자기 몫을 달라고 하고… 결국 돈도 엔빵으로 나누고 카페는 매각하기로 했어요. 제가 운영자여서 더 가져갈 수 있었는데, 뒷말 없게 하려고 그 매각자금도 엔빵했고요.
리: 뭔 시작부터 좌충우돌이…
장: 그때 느꼈죠. 내가 하는 일은 사업이지, 재미로 하는 게 아니라고… 중간에 배신도 있었고… 저는 그냥 선배 사무실에 혼자 들어가서 카페를 새로 만들었어요.
3. 인간을 믿고 직원을 챙기며 밑바닥부터 시작하다
리: 시작부터 밑바닥에서 시작하니까 어떻던가요?
장: 그야말로 차가운 계절이었죠… 군대가 월급이 짜서 퇴직금은 꼴랑 천 만원에 모아둔 돈도 거의 없었어요. 또 선배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사무실도 빼야 했고… 내친 김에 싸구려 사무실 하나를 얻었죠. 그걸 4년이나 썼으니, 정말 오랫동안 제대로 못 벌긴 했네요.
리: 수익이 별로 없었던 건가요?
장: 그때 좀 무리해서 직원 3명을 뽑았어요. 운영비가 없으니 정말 회사 돈으로 주식 투자해서 메꾼 적도 있고… 또 그러다 안 돼서 어머니 돈도 빌려보고… 그런데 이미 잘 된 카페를 굴리는 것과, 카페를 새로 키우는 건 너무 다르더라고요. 이미 충분히 커진 곳과 경쟁해야 하니… 그때 많이 참조한 카페가 야놀자였어요. 분야는 다르지만 단순히 동호회를 넘어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사업화시킨…

리: 그렇게 꾸역꾸역 명줄을 늘려왔군요.
장: 네. 그러다가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는 걸 보고, 이게 기회이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2011년에 남은 돈 다 부어서 알짜증권정보라는 앱을 출시했어요. 말 그대로 매일 주요 증시 정보를 푸시로 날려주는 앱이죠.
리: 2011년이면 그리 빠르지는 않은 듯한데…
장: 이때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는데, 외주 개발사에게서 사기를 당했어요. 일을 맡겼는데 중간에 회사가 망했더라고요. 거기 담당자가 한 번만 더 자기 믿어달라고 해서, 또 한 번 돈 주고 일을 맡겼는데 이번에도 일을 안 했어요. 그런데 술자리에서 또 한 번 믿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알겠다고 하니, 그 양반이 갑자기 자기가 성 내면서 “야, 이 바보 같은 놈아. 내가 지금 너한테 사기 치는 거 모르겠냐고…” 그래서 한참 미뤄졌죠. 돈은 돈대로 나가고.

리: 정말 바보 같군요(…)
장: 제 소신이 그래요. 한 번 믿은 사람은 끝까지 믿는다고… 아무튼 정말 끝까지 믿었으면, 파산할 뻔 했습니다(…) 다행히 다음으로 맡긴 회사에서는 앱을 잘 만들어줬어요.
리: 아무튼 돈은 좀 됐나요?
장: 정작 만들고 나니 마케팅 비용이 없더라고요.
리: ……
장: 그래서 정말 눈물나는 장문의 글을 썼어요. 제가 지금까지 이런 일을 했는데, 마케팅 비용이 하나도 없다고. 제가 이런 삶을 살아오며 정말 노력해서 만든 앱이라고… 구구절절 적으니 뽐뿌, 디씨인사이드 등에서 엄청나게 반응이 왔어요. 하루에 매출 천만원씩 나고…

리: 드디어 인생이 피는 거군요.
장: 아뇨. 정작 서버가 계속 다운돼서 그 인기가 오래 가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처음으로 회사가 활기를 찾았어요. 우리가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죠. 이후 그 앱으로 계속 다양한 시도를 했어요. 지역 모임 만들어서 정모도 하고, 연간 상품권도 만들고… 그렇게 수익모델을 늘려 나갔죠.
리: 그렇게 인생이 피는 건가요?
장: 아뇨. 각 지역까지 관리하려니 그 비용이 너무 들어서… 계속 뭔가 투자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긴 했어요. 북팔이랑 전자책도 만들고, 다른 증권사 연동한 서비스도 내고, 재테크 포럼도 해보고… 그래도 계속 적자이니 제 몸을 팔기 시작했어요. 전국 순회 강연에, YTN라디오, 이데일리 아침 방송까지 다 뛰면서 겨우 월급 줬어요. 뭔가 딱 한 방이 터지지 않으니 2012년까지도 계속 적자였어요. 바빠 죽겠는데 증권 서비스를 하다 보니, 시세조정 혐의 참고인으로 경찰 불려가고;;;

리: 군인정신으로 극복합시다.
장: ……
4. 끈질긴 고객분석으로 출구를 찾다
리: 그 추운 겨울을 어떻게 벗어났나요?
장: 계속해서 고객 분석을 하다 보니 답이 나오더라고요. 사람들은 복잡한 걸 싫어한다.
리: ???
장: 시중에 재테크 서적이 넘치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공부하려 하지 않아요. 주식 투자 기법이든 투자 환경이든… 이런 걸 궁금해 하는 게 아니에요. 무슨 주식을 사면 얼마나 먹을 수 있을지가 전부에요. 그래서 2012년 하반기부터 정답을 찍어줬어요. 간결하게 이 회사 상황이 어떠니까 목표주가 얼마로 사라… 이런 매수 문자를 내보냈죠. 종목을 찍어주는 거죠.

리: 좀 위험하지 않나요. 주식 추천은…
장: 사실 저도 정말 부담스러웠어요. 하지만 어차피 증권사에서도 다 하고 있는 것이고… 되도록 틀리지 않으려고 만전을 기했죠. 위험하거나 수급량이 적은 주식은 최대한 피하고, 각종 수치를 볼 때 안정성이 있는 추천 로직을 정교화했죠. 시장에 사짜가 많긴 하지만, 또 추천하는 입장에서는 다들 엄청 조심스럽긴 해요. 저희 입장에서도 실제 수익률이 높았던 여러 연구원과 로직을 통해 고심 끝에 내놓았으니까요.
리: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홍보한 거지요?
장: 2013년 안드로이드 앱까지 나온 후 한국경제TV와 백만개미라는 프로젝트를 했어요. 하루에 4건의 콘텐츠를 MMS로 제공했죠.
리: 왜 MMS죠?
장: 아무래도 한국경제TV 이용자층의 연령이 높았으니까요. 앱으로도 볼 수 있지만, 문자메시지를 통해 접근성을 높인 거죠. 월 9900원에 런칭했는데, 접었을 때 사용자가 4000명에 달했어요. 이때 가서야 비로소 흑자를 보기 시작했죠.

리: 읭? 그렇게 잘 되는데 왜 접었죠?
장: 사업이 생각보다 너무 잘 되니까, 한국경제TV에서 직접 하기로 했죠. 마침 그맘때쯤 SBS CNBC와 제휴를 해서, 이번에는 아예 프로그램이 아니라 방송사 전체와 함께 하게 됐어요. 그렇게 해서 탄생한 서비스가 컨닝이에요.
5. 주식 종목 추천 서비스 ‘컨닝’을 성장시키다
리: 어떤 서비스지요?
장: 아프리카의 주식판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능력 있는 연구원들이 직접 방송하고, 그들이 주식을 분석해주고… 이를 월 유료 결제로 보는 거지요.
리: 왜 하필 이름이 컨닝이죠?
장: 시험 때 컨닝하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주식은 잘 하는 사람 컨닝해서 도움 받으라는 취지에요. 이때부터 회사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누적 매출이 100억을 넘었어요.
리: 투명성 이슈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장: 시장에 증권전문가라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검증도 안 되고 사건사고도 많죠… 그래서 저희는 투명성을 최대한 강조했어요. 연구원 전체를 투명하게 경쟁시키고, 그들이 추천한 주식 수익률을 생방으로 내보냈어요. 또 그들이 주식 거래를 못하게 계약서에 엄중한 조항을 넣었고요. 수익률 집계도 엄정하게 하기 위해 여러 장치를 넣었어요.
리: 수익률 집계가 힘들지 않나요?
장: 그래서 저희는 과감하게 당일 매수 당일 청산을 기준으로 삼았어요. 오늘 추천하면 무조건 오늘 팔아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나중에 뒷말이 무성해질 수 있잖아요. 대신 혹시라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시가총액, 매수, 기업에 대한 재무구조 등에서 가이드라인 벗어나면 추천을 할 수 없게 했어요.
리: 연구원 모으기도 힘들었을 것 같군요.
장: 2013년 초에 개발을 시작했는데, 사이트가 없으니 섭외가 안 됐어요. 그래서 기존 증권업계 연구원 풀을 총동원해서 직접 찾아다녀서 빌었어요. 어떻게든 잘 되게 만들 테니 같이 하자고… 그런데 비전만으로는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죠. 그래서 업계 최초로 만든 게 기본급 제도에요. 콘텐츠 만드는 연구원에게 최소 월 150만원은 줄 테니 계약하자고… 그렇게 10분을 모아서야 런칭할 수 있었죠.
리: 의외로 다들 망할 거라 생각했나 보군요(…)
장: 그렇죠. 시장에 없는 새로운 모델이었으니… 경쟁사가 자기 내부 직원끼리 컨닝 첫달 매출이 천만원 넘어가느냐에 내기를 했는데, 한 사람 빼고 다 반대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첫 달 매출이 8천만원 정도 찍었어요. 그 직원은 저한테 고맙다고 술 사고(…)

리: 홍보는 어떻게 했죠?
장: 그때는 예산이 없으니 진짜 먹고 살려고 별의별 짓 다 했어요. 솔직히 처음에는 경쟁사 사이트에 우리 쪽으로 유도하는 리플도 달았어요. 거기 뿐 아니라 네이버, 다음 증권게시판에서도 엄청 활동하고… 전직원이 매일 그랬죠. 이 바닥이 다 이렇습니다(…)
리: 갑자기 서비스가 커지니 유지도 힘들었을 것 같은데…
장: 그렇죠. 요구사항이 막 쏟아지니, 직원들이 죽어났죠. 그래도 원칙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거였어요. 한국이 액티브 엑스 등등 때문에 유료 서비스가 힘들잖아요. 한 할아버지는 네이트온 원격제어로도 안 돼서 아예 직접 집에 가서 공유기 만져도 안 돼서, 컴퓨터 한 대 직접 설치해준 적도 있어요. 고맙다고 포차에서 소주 한 잔 하고, 우리 회사 대리한테 자기 딸도 소개해 주고(…) 이런 친절이 저희 나름의 홍보 방식이었어요.
리: 저도 좀……
장: …….

6.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한 플랫폼을 꾸리다
리: 최근에는 케미스터디라는 교육 앱도 출시했던데, 왜 돈 되는 주식에서 갑자기 돈 안 되는 교육을…
장: 제가 촌동네… 경북 영주 출신이에요. 고향 고등학교 특강 제안 받아서 갔는데, 교장 선생님이 차 한잔 하면서 학교 자랑을 하더라고요. 그 중 하나가 여름방학마다 대치동 명강사를 데려와서 우수학생을 과외시킨다고… 그 예산 재원확보 위해 소방서 등에서 돈 걷어서 서울에 애들 대학교 많이 보낸다고…
리: 자랑할 만 한데요?
장: 그런데 그 기준이 뭐냐면 전교 1등에서 50등까지란 거죠. 그래서 “51등부터는요?”라고 물으니, 그 애들은 알아서 혼자 공부한다고… 뭔가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뭔가 공부하고 싶은 애들도 성적 별로라고 공부 못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서울만 해도 돈 있는 애들은 대치동 과외 받고, 없는 집은 혼자 공부하고… 그래서 회사 회의를 열어서 어떤 식으로든 교육 정보 격차를 해소할 프로젝트 해보고 싶다고 했죠.
리: 직원들이 뭐라 하던가요?
장: 우리 회사도 나름 군인정신이 베어 있어서, 하기 싫어도 시키면 잘 하긴 합니다(…) 해커톤 같은 걸 열어서 어떻게든 해보자고 했죠.

리: 케미스터디는 어떤 서비스지요?
장: 컨닝에서 많은 힌트를 얻었어요. 우리 주식 콘텐츠 유통 첫 원칙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만 주는 거에요. 그 정보는 투자 1등하는 사람을 따르는 거고요. 공부도 마찬가지에요. 전국 1등하는 애들은 다 서울대에 있으니, 서울대 학생들에게서 과외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거죠.
리: 이번에는 서울대 학생들 모으기 힘들었겠군요…
장: 서울대 동아리 연합 가서 아이템 이야기했는데, 애들이 안 될 거라 하더라고요. 자기들도 여러 서비스 다 제안 받았는데, 안 되더라고… 그래서 우리는 증권도 했는데 왜 안 되냐, 할 수 있다… 이러다가 결국 마음을 움직인 건 서피스를 한 대씩 제공한다는 거였어요(…). 콘텐츠 만들 저작도구는 필요하니. 그렇게 40명의 연구원을 모집했어요.

리: 학생들은 잘 참여해 주던가요?
장: 그렇죠. 서울대 학생들이라 진짜 똑똑하더라고요. 우리 프로그램을 학생들이 다 기획해 줬어요. 수능은 교과서 본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나오는 빈도수로 봐야 한다고… 그렇게 자기들끼리 총 3만 개의 콘텐츠를 기획, 제작했어요. 언제부터 공부했냐고 물으니 초등학교 4학년부터 했다고 해서, 초4부터 고3까지 콘텐츠를 만들었어요.
리: 헐. 쩌네요…
장: 그렇게 학생들이 커리큘럼과 테크트리를 만들었어요. 각 과정마다 3분 이내 영상을 만들어달라고 하니, 방학 때 미치도록 교재를 만들어주더라고요. 편한 장소에서 작업하는데도, 월 기준으로 3백 가까이 받은 친구들도 있어요. 그 콘텐츠가 2만 개 정도 모이고 월 9900원 서비스를 오픈했어요.
리: 장사는 잘 되던가요?
장: 한 유명 강사가 엄청나게 까더라고요. 이런 건 공부 잘 하는 애들이 아니라, 입시 전문가가 해야 한다… 다른 곳 반응도 그랬고… 하지만 덕택에 바이럴만 잘 됐어요. 순식간에 회원들이 늘어나고 고객들이 질문 답변 만들어달라고 해서, ‘질문하기’라는 추가 수익모델까지 만들었어요. 사용자 질문을 영상으로 답해주는 거죠. 워낙 빠르게 잘 돼서 베트남과 중국에서도 런칭 파트너십 제안이 들어와 검토 중이에요.
리: 순식간에 교육업계의 공적이 되었군요…
장: 사실 큰 기업에서 백억대 인수 제안도 들어왔어요. 구성원들이 좀 솔깃해 했는데, 저는 죽어도 안 팔 거라고 못박았어요. 컨닝은 팔 수 있어도, 케미스터디는 정말 비싼 사교육에서 배제된 저소득층, 지방 거주 학생들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고 내놓았거든요. 단순 수익 모델을 넘어 앞으로 소외된 학생들을 위해 다양한 사회기여 모델도 펼칠 예정이에요. 예로 도서산간지역 학생들에게 무료 서비스를 제공한다거나… 창작자인 서울대에 장학금을 준다거나…

7. 최종목표 디즈니: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즐거운 생활밀착형 컨텐츠를
리: 아무튼 성공을 축하 드립니다. 얼마나 벌고 있나요?
장: 케미스터디를 올해 3월에 런칭한 후 6개월만에 누적 매출 20억을 찍었고, 컨닝은 올해 70억… 연말에는 100억까지 갈 것 같아요. 이를 바탕으로 내년 상장을 준비 중이고요.
리: 상장은 왜죠.
장: 직원들에게 우리는 10년차에 상장하자고 이야기했는데, 법인 전환 전 기간까지 합치면 내년이 10년차에요. 증권과 교육 외에도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돈과 인재가 필요하고요.
리: 회사를 통해서 무엇을 하고 싶나요?
장: 우리 에이스탁의 모토는 ‘즐거운 세상을 만들자’라는 거에요. 우리 콘텐츠로 세상을 즐겁게 하자는 철학이죠. 그래서 제 맘 속의 경쟁사는 항상 디즈니에요. 제 애가 둘인데 첫 딸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보면 너무 좋아하면서 극장 나올 때 인형 사달라고 하거든요. 저는 인형을 사주며 너무 기분이 좋고요. 우리 딸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까…

리: 경쟁사가 엄청나군요(…)
장: 네. 그런데 영화관에서 봤더니 대다수 사람이 돈을 쓰며 즐거워하더라고요. 우리도 증권으로 시작해서 교육 컨텐츠까지 영역을 확장했는데… 더 다양한 분야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생활에 밀착된 컨텐츠로 즐거움을 주고 싶어요.
리: 고생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 드립니다.
장: 음… 군인도 사업할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요. 군 출신이라면 다 재미 없을 것 같고 유연하지 못할 것 같고… 그런 이미지를 갖는데, 실제로 많은 군 출신의 창업가가 있어요. 알토스벤처스의 한 킴 대표님도 미국 사관학교 출신이고… VC도 미국 사관학교 출신. 군대 특유의 실행력이라면 충분히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 그리고 최근 컨닝 2.0을 런칭했는데…
리: 축하드립니다. 덕택에 행사장에서 잘 얻어 먹었습니다(…)
장: 이번에 저희가 사용자가 편하게 사용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투명성과 신뢰에요. 실은 몇 년 전 저희 서비스 이용자 중 한 분이 자살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회사를 접을 생각까지 했어요. 하지만 정말 필요한 건, 내 스스로 당당할 수 있는 정도의 투명성이다…
리: …..
장: 그래서 이번 2.0부터는 연구원 얼굴이 방송에 나오고 수익률도 더욱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설정했어요. 감히 개미 투자자분들을 돈 벌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이런 이야기보다, 정말 어느 서비스보다 투명하고 당당한 서비스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