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그것은 틀렸다. 지구는 이미 고양이들이 지배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만나면 사랑에 빠지고, 그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며, 고양이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도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냥 고양이 없는 사이버집사의 넋두리 아니냐고? 당신이 뭘 알아!
나는 이것을 지난 몇 개월의 취재를 통해 아주 이성적으로 확신하고 말았다. 단지 한국의 위대한 전통 술들을 빚는 곳을 갔는데 그곳에는 어김없이 고양이, 아니 술냥이들이 있었거든.
기호 1번 : 교동 최부자댁 고양이
조선시대 가장 널리 알려진 부자 가문.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지역과 나라를 챙긴다는 경주 교동 최부자댁을 누가 지킬까? 그 해답은 최부자댁 건물에 들어가면 알 수 있다. 고양이다. 이 녀석들은 마루 밑 그늘에 앉아서 오가는 평민 집사들을 지켜본다.
마치 최부자댁에서 비기로 내려오는 집안의 술 ‘교동법주’ 같은 노란빛의 녀석들이다. 교동법주는 최부자댁 바로 옆 건물에서 빚어지는데 달착지근하지만 기품 있는 맛으로 많은 사람들을 홀렸다. 마치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눈빛으로만 취하게 하는 이 고양이들처럼.
기호 2번 : 진달래꽃에서 나타난 면천두견주 고양이
진달래꽃이 피는 봄이면 가장 바쁜 마을. 충남 당진시 면천면에는 진달래꽃으로 빚는 술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그렇게 찾아온 면천두견주 보존회. 그런데 우리를 맞아주는 것은 술 빚는 사람도, 술도 아닌 진달래꽃밭을 헤치고 나온 한 마리의 고양이였다. 위풍당당하게 나타나 초면인 사람들에게 박치기를 한 번씩 해줬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다가오는 걸 보아 주인을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면천두견주 역시 주인을 잃어버렸던 술이다. 술을 빚는 전승자가 세상을 떠나면서 사라질 뻔한 것을 지역 주민들이 합심해서 ‘보존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 건물을 서성이는 고양이도 종종 돌봐주고 있다.
기호 3번 : 문배주… 혹시 고양이 안 키우세요?
눈치채신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앞선 고양이들을 만난 곳은 모두 국가에서 지정한 무형유산에 등재된 전통술 양조장이다. 전국에 3개뿐인데 갈 때마다 고양이들을 만났으니. 언제부터인가 나는 술맛이 아니라 고양이를 볼 생각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김포에 있는 문배주 양조장에 갔다.
하지만 문배주 양조장 근처에는 아직(?) 고양이가 없었다. 배의 향기가 나지만 배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술 문배주처럼. 고양이가 없는 양조장에서 고양이를 생각하게 되다니. 아이러니하지만 참 술의 이름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양조장 근처에는 항상 고양이가 있었다
과거에는 양조장 근처에 언제나 고양이가 있었다고 한다. 술은 쌀과 같은 곡식으로 만들고, 곡식이 있는 곳에는 쥐가 생기기 마련이고, 이런 쥐를 막기 위해 고양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멀리 스코틀랜드에서도 위스키 양조장에 ‘위스키 캣(마우저)’이라는 정식직원을 뽑았다고 한다.
나중에는 시설이 발달해 쥐의 위험이 없어졌어도 고양이는 그 자체의 귀여움으로 양조장들의 마스코트가 되고 있다. 사람들의 근심을 잊게하는 술만큼이나, 고양이들은 귀여움으로 즐거움을 주고 있다고. 여러분이 보시기에 술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고양이는 무엇인가? 선택을 부탁드린다.
원문: 마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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