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분야에 대해 파고들기 시작할 때는 책부터 뒤진다. 열 사람에게 물어볼 수 없어서 책 10권을 읽는다. 동영상 n배속 시청, 챗GPT의 요약이 흔한 요즘 속도와 비교하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느리고 무식한 방법이란 걸 안다. 인터넷 검색 한 번이면 지구 반대편에 사는 축구선수의 점심 식사 메뉴까지 알 수 있는 시대에 어쩌자고 난 이리 미련스러운 방식으로 책을 읽게 됐을까?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1년간 1권 이상 책을 읽은 19세 이상 성인 독서율은 43%고, 평균 독서량은 3.9권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난 그 수치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으로 책을 읽는 인간이었다. 베스트셀러나 업무차 읽어야 하는 책을 제외하면 자의로 읽는 책은 1년에 두세 권? 누가 봐도 독서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에도 ‘책벌레’라 불릴 만큼 책에 대해 애정을 품은 적은 없었다. 대신 그 시간에 TV를 보거나 라디오를 듣는 편이었다. 덕분에 성인이 돼서는 영상 만드는 일로 밥벌이를 했다. 책보다는 영상과 뉴스를 보며 요즘 뭐가 ‘핫’한 지를 파악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책도 자주 안 읽으면서 막연히 마흔 살이 되기 전에 책 한 권 내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도무지 감이 안 잡혔다. 대체 어떤 글이 좋은 글일까? 글 잘 쓴다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쓸까?
그게 궁금해 책을 뒤졌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려면 호랑이의 취향부터 파악해야 했다. 내가 내고 싶은 분야의 일반적인 책부터 글쓰기에 대한 책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글을 먼저 쓰다가 부족함을 느껴 글쓰기 책을 읽다니, 뭔가 앞뒤가 바뀐 거 같지만 내 인생은 늘 그런 식이다. 모르고 살다가, 부족함을 느끼고 뒤늦게 파고드는 스타일.
간절함보다 좋은 동력은 없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으니 차곡차곡 데이터가 쌓였다. 글 잘 쓴다는 작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글을 잘 쓰는 공통 방법이 있었다.
꾸준히 쓸 것! 독자를 염두하고 쓸 것! 구체적으로 쓸 것! 말하듯 쓸 것! 뜸 들이듯 시간을 두고 퇴고할 것!
물론 각기 생각이 다른 부분도 있었다. 누군가는 단문이 좋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단문 강박에 빠질 필요는 없다고 했다. (장문을 써도 이해하기 쉽게 쓴다면 진정한 능력자가 아닐까?)
단문 제일주의에 반기를 드는 작가의 책 한 권만 읽었다면 아마 나는 일찌감치 글쓰기를 포기했을지 모른다. 생각이 많아 문장이 길어지면 장황해지는 편이라 단문이 익숙하다. 그 기준에 맞추면 내 글은 흐름과 호흡이 뚝뚝 끊기는 ‘나쁜 글’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여러 책을 읽으며 단문과 장문, 각각의 장단점을 파악하게 됐다. 그 후 장문과 단문을 섞어 내 머릿속 생각을 끄집어내 글을 쓰는 사람이 됐다.
한 권을 읽으면 글쓴이 개인의 의견을 알게 된다. 10권의 책을 읽으면 작가 10명의 생각을 훔쳐볼 수 있다. 열 권을 읽으면 공통으로 말하는 단단한 척추가 보인다. 그게 흔들리지 않는 진리라고 믿는다.
책 10권을 천천히 꼭꼭 씹어 소화하듯 읽다 보면 느껴진다. 돌아서자마자 머릿속에서 휘발되는 정보들과 달리 오래도록 단단하게 남아 있다.
원문: 호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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