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밀리의 서재에서 총 372시간 동안 책을 읽었다. 평균 내어 보니 하루에 1시간꼴로 읽은 셈이다. 핸드폰으로 매일 SNS를 들어가 보듯이 밀리의 서재를 매일 들어가곤 했다. 한 권을 완독하겠다는 욕심은 내려놓고 매일 조금이라도 꾸준히 읽으며 나의 세계를 넓혀가려고 했다.
그렇게 독서는 올해 나의 베스트프렌드이자 최고의 취미생활이 되었다. 하루하루 꾸준히 책을 읽으면서 내가 무엇을 얻었는지, 내게 생긴 변화가 무엇인지 정리해보았다. 책을 많이 읽으면 도대체 뭐가 좋을까?
1.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여유가 생겼다.
작년 한 해, 나는 누가 옳고 그른지 따지기도 애매한 서로의 입장 차이 그 안에서 어떤 게 현명한 행동일까 고민하곤 했다. 때로는 내 생각에만 매몰되어 오로지 내 의견이 합리적이고 바른 의견이라고 여기고 오만하게 행동하기도 했다. 오로지 내 의견과 감정이 옳다고 여겼기에 나와 대립하는 의견이나 상황은 비난하기 바빴다.
그러나 책은 되돌아볼 여유를 준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고민과 생각을 찬찬히 읽어가면 내가 그동안 편협하게 혹은 융통성 없이 생각한 건 아닌지 성찰하게 된다. 내 기준의 논리를 내려놓고 상황을 찬찬히 읽어가고 다른 사람의 입장도 고려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일례로 나는 명절이 되면 며느리들이 설거지해야 하는 상황을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설거지는 며느리들의 몫일까!
나는 절대 시댁에서 설거지를 하고 싶지 않다. 사위들이 설거지하려고 하면 장모님들은 말릴 텐데, 왜 며느리가 시댁에서 설거지하는 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까.
이런 가부장적 악습에 분노하며 나는 절대 시댁에서 설거지하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한 번은 이 주제로 회사의 기혼 선배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이런 말을 하니 한 남자 선배는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고 조언해주었다.
“시댁에서 며느리가 설거지 못 하겠다고 하는 것보다 차라리 시댁에서는 며느리가 설거지하고 친정에서는 남편이 설거지하도록 하는 게 현명하죠. ‘나는 절대 못 해’ 이러면 갈등이 생길 수 있거든요. 여러 사람이 얽힌 결혼에 있어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해요.”
그때까지만 해도 내 생각에 확신에 차 있었기에 기혼인 선배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흥… 장모님들은 사위가 설거지하는 거 그냥 보지 않고 말리기 바쁠 텐데 그게 가능하겠어? 나의 확고한 생각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렇게 내 생각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B급 며느리』라는 책을 읽었다. 『B급 며느리』는 가부장제와 시월드에 반기를 들고 시부모에게 며느리에 대한 ‘인간 대 인간의 매너’를 요구하는 한 며느리의 투쟁기를 감독인 남편이 직접 찍은 다큐멘터리 기반의 책이다.
책에는 시부모의 말에 고분고분 순응하지 않고 시부모의 무례한 처사에는 단호하게 반기를 드는 며느리의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시부모도 참지 않고 더 이상 명절에 찾아오지 말라며 둘 사이의 갈등은 증폭되었다.
그렇게 다음 명절을 룰루랄라 집에서 보낸 며느리가 어느 날 갑자기 먼저 명절에 시댁을 가겠다고 하는 것이다. 저자인 남편 입장에서는 왜 갑자기 그토록 갈등을 겪던 시댁을 제 발로 찾아간다고 했을까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리둥절한 남편을 보며 다큐멘터리 촬영을 맡은 후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말 모르겠어요? 감독님 때문이잖아요.”
이 마지막의 한 마디는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B급 며느리’였던 아내는 양쪽의 갈등으로 슬퍼하는 남편을 보며 갈등의 골을 심화시키기보다 타협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물러나고 다시 가까워지며 타협의 선을 찾았다. 진영이가 가부장제와 시월드를 모두 전복하지는 않았다. 진영이에겐 애초에 그럴 의도가 없었다. 김진영은 현실 속의 사람이라서 남편과 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인정한다. 진영이는 그 한계 안에서 존중받는 것을 원했고, 이제 전보다 더 존중받고 있다.
- 『B급 며느리』 중에서.
우리 모두 각자의 기준과 생각이 다르고 그에 따라 각자 생각하는 ‘옮음’과 ‘선’의 기준도 다르다. 내가 나의 기준이 옳다고 행동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기준과 가치관대로 행동할 텐데 이 두 개의 기준이 다르다고 무조건 반기를 들고 투쟁하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전쟁터를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소중한 사람을 위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위한 배려심 혹은 내가 세상 모든 걸 온전히 다 알지 못한다는 겸손으로 나의 기준에 맞지 않아도 고개 숙여 맞춰가는 것도 지혜로운 사랑의 논리라는 걸 배웠다. 그러다 보니 나와 다른 사람의 기준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2)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기며 정서적으로 풍요로워졌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SNS를 보거나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내려보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가 지금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괜스레 마음이 더 울적해지곤 한다. 그럴 때면 괜히 인생 헛살았나 하는 헛헛함도 든다. 그 헛헛함을 채우기 위해 때로 영혼 없는 인간관계에 연연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의 빈 시간을 나 홀로 즐기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 채우려고 열심히 약속을 잡고 밖으로 돌아다녀도 나의 마음이 풍요로워지진 않았다. 그런데 책에 빠져 살면서 주기적으로 오는 그런 새벽녘 센치함을 잊게 되었다.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억지로 노력하기보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생각을 엿보는 재미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에 빠져 살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내가 몰랐던 한 저자의 생각을 읽으면서 감동하는 일이 수십 명의 지인을 만나는 것보다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도 하더라. 책은 남보다 나 자신에 더 집중하게 만드니깐.
우리에게는 소박하고 작은 것들과 사랑에 빠질 권리가 있다. 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모두 의미가 있다. 특히 그 대상이 나라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중에서.
3. 내가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한 공감 능력이 높아지고 대화 소재가 많아졌다.
같은 책이라 할지라도 그 책을 읽는 내 마음의 상태나 생각이 어떻냐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농도가 다르곤 하다. 어릴 때 필독 도서였던 『어린 왕자』를 읽었을 때는 책에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서른이 되어 다시 읽어보니 지구에는 수없이 많은 똑같은 장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왕자가 소행성 B621에서 키운 그 한 송이의 장미가 왜 특별했는지 공감이 됐다.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네가 그 꽃을 위해 쓴 그 시간 때문이란다.”
이렇게 감동한 문장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 보면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책에서 나온 문장이 떠오르곤 했다.
하루는 아이를 키우는 회사 선배가 낳은 정보다 키운 정이 더 크다고 말하면서,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는 내가 모성애가 없는 사람인가 싶었는데 막상 한 해 두 해 키울수록 그렇게 이쁠 수가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불현듯 『어린 왕자』에서 읽은 문장이 떠올랐다.
그렇게 나는 출산과 육아를 해보진 않았지만, 모성애라는 사랑이 완성되는 데에는 키우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할 수 있었다. 경험하진 않아도 상대의 말에 공감이 되자 더 많은 대화 소재가 생겨났다.
이처럼 책에서 읽은 문장들이 우리의 삶을 통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이 좋은 문장을 나 혼자 알고 있기 아까울 때가 있다. 어쩌면 특별한 일 없는 평범한 일상일지라도 책에서 읽은 몇 문장만으로도 하루가 특별해지고 다른 사람과 나눌 수많은 대화 소재가 생겨나곤 한다.
‘세상에 많은 장미가 있지만 내 장미가 특별한 이유는 내가 그것에 쏟은 시간 때문이지’
사랑은 이처럼 그 사랑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기간의 문제도 중요하다. 우리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지속되어야 하며 그 기간 동안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알랭 바디우는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지속성을 구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 『내 곁에서 내 삶을 받쳐주는 것들』 중에서.
4. 독서의 목적과 목표를 내려놓고 독서 그 자체를 즐겼다.
목적을 갖고 책을 읽다 보니 독서가 고역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예전에 책을 매일같이 읽지 못한 것도 책 읽기를 과제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일 유튜브를 보거나 SNS를 보는 게 숙제가 아닌 하나의 재밋거리인 것처럼 독서도 하나의 놀이가 되어야 오래간다.
올해 내가 꾸준히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건 완독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고 실용서가 아니더라도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거나 문체가 유쾌한 글을 읽으며 재미있는 독서를 했기 때문이다. 독서의 목적과 목표를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독서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읽다가 재미가 없어지면 책을 덮었다. 그래서 서문에서 멈춘 책들도 있었다. 내 맘대로 사는 게 쉽지 않은 세상에서 독서마저 내 마음이 아닌 세상의 시각대로 읽어야 한다면 얼마나 지루한지 모른다. 꾸준히 하려면 뭐든 재밌어야 한다. 재밌으려면 인상적이어야 한다. 남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에서.
저는 책 읽기에 있어 ‘다독 콤플렉스’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독 콤플렉스를 가지면 쉽게 빨리 읽히는 얇은 책들만 읽게 되니까요. 올해 몇 권 읽었느냐, 자랑하는 책 읽기에서 벗어났으면 합니다. 일 년에 다섯 권을 읽어도 거기 줄 친 부분이 몇 페이지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줄 친 부분이라는 것은 말씀드렸던, 제게 ‘울림’을 준 문장입니다. 그 울림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숫자는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보고 잊히는 것과 한 구절 건져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 『책은 도끼다』 중에서.
5. 자존감이 높아졌고 스스로 사랑하게 되었다.
행복한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는데 내가 봤을 때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존감’이 높다는 것이다. 반대로 불행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존감이 낮았고 자신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다.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인터넷에 이름 모를 사람들과 나를 쉽게 비교하며 살았다. 인터넷의 진위 여부로 알 수 없는 허풍과 과장에 놀아나며 나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사람, 더 뛰어난 업적을 만들었다는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있었다.
자존감이 낮아져 버린 뒤에는 내가 어떤 방향으로 살아야 하는지 방향조차 잃어 남들이 하는 대로, 수동적으로 회사와 집을 오갈 뿐이었다.
책을 꾸준히 읽으면서 무엇보다 책을 열심히 읽는 내 모습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걸로 돈을 벌거나 업적을 만든 건 아니지만 꾸준히 독서를 했다는 나만의 작은 성공에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
자존감이 높아지니 무슨 일이든 잘할 수 있을 거 같단 자신감도 생겼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목표도 생겼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상적인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자존감은 자기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비록 다른 사람이 자신을 비방하거나 깎아내리는 행위를 하더라도 자신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통제한다. 즉,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성향을 보인다.
a. 자기 존중감 : 본인 스스로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는 것.
b. 자기 효능감 : 인생의 도적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 것.
c. 자기 호감 : 자기 자신을 매력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것.
- 『당신이 먼저 회사를 잘라라』 중에서.
일 년 동안 책을 372시간 읽으면서 어마어마한 지식을 얻거나 눈에 띄게 논리적이거나 창의적인 사람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독서의 성공 기준을 이로 여긴다면, 나는 아마 실패한 다독가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꾸준히 많은 책을 읽으면서 1년 전의 나와 비교해보면 지금의 내가 좀 더 행복한 사람이라는 건 자부할 수 있다. 책을 통해 나와 다른 신선한 생각, 새로운 표현, 인상적인 메시지, 내가 몰랐던 지식을 곱씹을수록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경이감을 매일 맛보고 있으니까.
모두 멀리 보고 행복을 찾는데 행복은 지금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삶은 순간의 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삶을 레이스로 생각합니다. 레이스가 된 삶은 피폐하기 이를 데 없죠.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그래서 저는 순간순간 행복을 찾아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행복은 삶을 풍요롭게 해 줍니다. 그러나 풍요롭기 위해서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같은 것을 보고 얼마만큼 감상할 수 있느냐에 따라 풍요와 빈곤이 나뉩니다. 그러니깐 삶의 풍요는 감상의 폭이지요.
- 『책은 도끼다』 중에서.
원문: 작은버섯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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