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일산대교 무료화를 선언했습니다. 10월부터 일산대교는 무료로 운영됩니다. 국가기반시설 민자사업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버리는 게 공정하고 정의로운 일인지 묻고 싶습니다. 민자사업을 하루아침에 국유화하면, 앞으로 국가 인프라 사업에서 제대로 된 민자사업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신뢰’의 문제입니다.

일산대교는 2003년에 착공해 2008년에 준공한 민자 도로입니다. 많은 사람이 민자사업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작품이라고 오해하고, 그렇기 일산대교 민자사업이 잘못되었다고 얘기하는데, 기간을 놓고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하고 완성한 교량입니다. 국가기반시설은 국고로 시행하면 물론 좋죠. 그런데 모든 일을 국가가 할 수 없으니 민자사업을 한 겁니다.
일산대교의 착공이 2003년이니, 못해도 2000년 즈음에 예산 확보에 들어갔을 겁니다. 그 시점은 인천국제공항 개통한 지 오래되지 않은 시점이고, 아직은 IMF의 여파가 크게 남아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펀더멘탈에 의구심이 있던 기간이었습니다. 인천국제공항 지으려고 우리나라가 국운을 건 국채발행을 한 건 다들 아시죠? IMF 직빵으로 맞은 시기에 인천국제공항 건설비용 조달하려면 나라 넘어가는 거 각오하고 국채 발행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일산대교 예산 확보 시기 즈음 LG카드 사태도 터졌고, 이래저래 사회 전반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여러 의구심이 생기던 시점입니다. 일산대교처럼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인프라 사업에는 국채나 지방채를 발행하기가 부담이 있어 민자로 진행한 겁니다.
물론 나라가 지으면 좋죠. 좋은데, 나라가 돈이 필요하다고 국채 지방채 마구 찍어내면 금리가 빡 오르고 돈이 팍 풀려서 원화가 당백전이 되겠죠. 당백전이 괜히 당백전입니까, 마구마구 찍어냈으니 당백전이 된 거죠. 그러면 인플레이션 오고 원화가치 박살 나고 IMF 한번 더 오는 겁니다. 당시 시기는 2000년대 초반이라고요. 지금의 대한민국 펀더멘탈이 아닙니다. 삼성전자가 소니에게 인수된다는 루머가 호재로 인식되던 그런 시기입니다.

일산대교의 국유화에서 매우 우려되는 점은 ‘신뢰’입니다. GTX-A, GTX-B, GTX-C 모두 민자사업입니다. GTX 시리즈는 규모가 너무 큰 사업이라 국가와 민간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민자사업입니다. 신기한 건 이명박의 맥쿼리인프라에 욕하는 사람은 봤어도 GTX의 BTO 방식 욕하는 사람은 안 보이는 현상입니다. GTX의 BTO 방식은 이명박의 맥쿼리인프라가 시행한 여러 기간시설 투자보다 훨씬 더 민간에 유리합니다.
여러분이 GTX-A/B/C 사업자라 생각해 보십시오. 하루아침에 일산대교 민자사업이 국가에 환수됐습니다. 돈 좀 쳐 준다곤 하는데, 후려치겠죠. 이걸 보며 무슨 생각이 들겠습니까? 낚였다는 생각 들 겁니다. 힘들게 지어 놔봐야 언제든지 국가에 환수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신뢰는 쌓긴 힘들어도 박살 나는 건 한방에 박살 나는 겁니다. (박원순도 지하철 요금 협상 시기에 9호선 서울시 인수 엄포를 놓았습니다만, 그는 협상의 카드로만 쓰고 9호선을 국유화하진 않았습니다.)
GTX-A/B/C 중 A만 그나마 시행이 되고 있는데요, 여기 사업자인 신한은행 컨소시엄은 사업자 선정 익일에 국토부에 불려가서 낙선 사업자인 현대건설 컨소시엄 사업자의 설계대로 변경을 지시받았습니다. 신한은행 컨소시엄이 더 낮은 값을 입찰해서 사업자로 선정된 거고, 설계 자체는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더 좋았기 때문에 이랬다는 게 중론이고요. 그러니 지금 GTX-A가 반쪽짜리 개통된다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GTX-A 시작부터 이렇게 신뢰가 깨지기 시작했는데, GTX-A 개통하면 앞날이 밝을까요? 이미 GTX-A는 사업자 측에서는 편도 요금 8,000–10,000원을 들고나왔고, 정부에서는 4,000원을 들고나왔습니다. 일산대교 사태를 보면, GTX-A 민자사업 해서 돈 제대로 받으면 GTX-A가 국가에 환수되는 겁니다.

대기업이 정부에 한 대 쳐 맞으니 기분 좋은 분도 계실 겁니다. “크 그래 이게 사이다 맛이야!” 하는 분도 분명 계실 겁니다. 그런데 이런 행위가 반복되면 이제 누구도 국가 인프라 민자사업은 안 할 겁니다. 한탕 해 먹고 튀려는 부실 사업자만 입찰할 거고요. 이게 공정하고 정의로운 건가요? 정말 혼란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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