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지사님께 드립니다. (읽어보시게 될지요.)
1. 올리신 글을 봐서는 조세재정연구원 발표의 구체적인 어떤 부분이 문제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원문을 찾아봐야 더 객관적이고 정확한 평가를 할 텐데, 물론 나중에 그리할 것이지만, 일단은 비판자도 비판의 요지를 전하시려면 비판의 대상의 어떤 점을 비판하는지를 요약이라도 해주셔야 할 것 아닌가요.
2. 지사님이 말씀하시는 ‘조세재정연구원의 연구 결과 발표가 시기, 내용, 목적 등에서 엉터리인 이유 5가지’를 읽어봤습니다. 일단 ‘시기’나 ‘목적’이 ‘엉터리’일 수 있는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부적절한 시기라거나 불순한 목적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판단하기 나름이고, 특히 목적이야 관심법을 쓰지 않는 이상, 겉으로 표방한 목적 이상의 것을 문제 삼기는 힘들지만) 표현상의 실수를 하신 거로 생각하고 일단 이 부분은 넘어갑니다.
2-1. 지사님이 말씀하시는 첫 번째 ‘엉터리인 이유’가 문제인 정부의 공약이자 주요 정책을 정면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그 근거로는 문재인 정부의 추진내용만 적으셨습니다.

왜 정면부인이라고 평가하는지를 이 지사님의 글만 보고는 알 수가 없네요. 총론이나 취지는 좋은데 현실에서 부작용이 있으니 일부 각론에서 개선을 하자는 주장을 한 것인지, 지역화폐 정책이 A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으나 B측면에서는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인지, 다 좋은데 중앙정부에서 하는 것보다 지방정부에서 하는 게 낫다고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지적을 하면 무조건 ‘정면 부인’인가요? “국책연구원이 정부 주요 정책을 전면 부인한다”고 평가하신 근거가 무엇일지요?
2-2. 두 번째 ‘엉터리인 이유’는 제가 봐도 지사님의 지적이 일리가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지역화폐를 본격 시행하기 전인 2010–2018년 사이 지역화폐에 대한 연구였으므로 ‘현재의 지역화폐 시행 시기와 동떨어진다’라는 것이죠. ‘해당 연구 결과를 이용하여 현재 지사님의 정책을 비판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훌륭한 반론입니다.
(제가 연구책임이었으면 보고서 제목에 ‘이명박-박근혜 시기 지역화폐 제도의 문제점’이라고 쓰던가, 그게 너무 야하면 부제에 ‘2010–2018 시기 시행된 지역화폐제도를 중심으로’라는 식으로 적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만약 연구의 결론이 ‘2018년까지의 데이터 분석 결과 가지고 2020년대의 지역화폐에까지 단순 적용하려 할 경우’, 이 연구의 오류나 한계를 지적하면 될 일이지, ‘엄중문책’까지 할 일인가 싶습니다. 그리고 2018년까지면 상당히 훌륭한 자료 확보라고 봅니다. 다음 절로 이어집니다.

2-3. 왜 2년 전까지의 연구 결과를 지금 시점에 뜬금없이 내놓는 것이냐는 세 번째 ‘엉터리인 이유’는 너무 가혹하십니다. 제가 원 보고서를 못 봐서 (비판자이신 지사님이 비판의 대상에 대해 너무 정보를 안 알려주셔서… 나중에 시간 내서 찾아보겠습니다만) 모르겠지만… 짐작건대 2018년 데이터면 2019년에 구했을 거고 연구해서 내놓으면 2020년이 되는 건 이상할 일이 아닙니다. 다만 연구 대상과 데이터의 성격을 명확히 연구자가 밝혀 놓으면 될 일입니다.
좀 더 부지런했거나 연구행정이 원활했으면 몇 개월 더 빨라질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혹은 좀 더 면밀한 분석을 하면 보고서 발간 시기가 더 늦어질 수도 있겠는데, 그래도 내년쯤 되어 대선 캠프들에서 지역화폐를 다룬 다음에 보고서가 나오는 것보다는 지금 나온 게 참 좋은 것 같습니다.
2-4. 네 번째 ‘엉터리인 이유’는 전혀 이해가 안 갑니다. 지역화폐의 ‘선한 취지’와 ‘기대효과’와 ‘합목적성’을 주장하시고, 본인 주장의 근거자료는 제시하지 않으셨고, 연구 내용 중 일부를 가지고 ‘정부 핵심 정책목표를 완전히 부인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온 국민이 효용을 체감한다고 하셨고, 저도 어느 정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비판이나 반론을 펴시려면 ‘효용 체감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라도 제시하셔야죠. 대통령이나 도지사가 그렇다고 주장하면 국민들도 그렇다고 받아들여야 합니까?
저도 지역화폐를 긍정하고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입장에 있지만, 시장의 어느 세부 영역에서는 오히려 소비자의 후생 효용을 떨어트렸다는 분석이 나오면 정책입안자는 이를 귀담아듣고 분석에 오류는 없었는지 반박하는 자세를 가지고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한편, 한편으로는 또 열린 마음으로 만약 이 분석이 맞을 경우 내 주장에 어느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살펴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지사님의 ‘네 번째 이유’의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넷째, 지역화폐는 정부지원금을 거주지역에서 소상공인 골목상권에서만 일정 기간 내 사용토록 의무화되어 지역경제와 지방경제의 활성화, 소득증가에 더한 매출 및 생산 증가유발이라는 목적에 부합하고 온 국민이 효용을 체감하는데 아무 소용 없는 예산 낭비라고 폄훼하였습니다.
특히 연구내용 중 ‘대형마트 대신 골목상권 소형매장을 사용하게 함으로서 소비자의 후생 효용을 떨어뜨렸다’는 대목은 골목상권 영세자영업 진흥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목표를 완전히 부인하고 있습니다.
2-5. 다른 기관의 분석 결과와 달라서 엉터리라는, ‘엉터리인 이유’ 마지막 경우도 이해가 안 갑니다. 그저 달라서 엉터리라면, 그럼 ‘지방행정연구원’ 쪽이 엉터리일 확률은 없나요? 한 기관의 연구는 다른 국책연구기관의 연구 결과와 상반될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면, 환경적인면, 사회적인 면에서 어느 측면을 중시하느냐, 어느 분석 방법을 썼느냐,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이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서로 다른 연구 결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것 역시 다른 연구기관이나 정치인들이 해야 할 업무 중 하나일 것입니다. 저는 오히려 한 국가의 수많은 국책연구기관이 일사불란하게 하나의 연구 결과를 내는 세상이 더 소름 끼치게 무섭습니다.
3. 원하시는 조치가 어이가 없습니다. “정치적 주장에 가까운 얼빠진 연구 결과를 지금 이 시기에 제출하였는지에 대해 엄정한 조사와 문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라고 하셨는데요, ‘조사와 문책’이라고요? ‘엉터리인 이유’라고 주장하시는 5가지 이유 중 제가 조금이나마 동의하는 이유는 하나 ‘데이터의 시점 문제’ 밖에 없습니다.
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 원문(제목이라도 좀 알려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ㅠㅠ 설마 ‘나쁜 보고서니까 읽어볼 필요도 없고 제목도 알 필요 없다’고 하시거나 연구원 홈피에서 삭제하라고 주장하시진 않으실 거죠?)을 보고 나면 저도 보고서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겠지요. 도지사님처럼 ‘정치적 주장에 가까운 얼빠진 연구 결과’라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조사와 문책’을 요구할 일인가요? ‘반박과 반론’을 제시하면 될 일이지요. 연구자들 입에 재갈을 물리시겠다는 건가요? 이래서야 경기연구원의 연구자들이 경기도정에서 (자신이 소신껏 애정을 가지고 볼 때) 문제점이 발견되어도, 무서워서 이야기 꺼낼 수 있겠습니까?

4. 타격 대상이 엉뚱합니다. “경기도 등에서 도입해 운영하고 있는 지역화폐가 오히려 경제 활성화나 고용 창출 없이 경제적 순손실만 키운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건 국민일보의 기사의 문구입니다. 국민일보가 ‘이재명 흠집 내기’나 ‘대안적인 정책 싸잡아 비판하기’의 차원에서 기사를 교묘하게 썼네요. 문제는 일단 국민일보에 제기하시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보고서에서 그렇게 언급했을 리는 없습니다. 최소한의 양식이 있는 연구자라면 2018년까지의 자료를 가지고, 2018년 이후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제도에까지 무리하게 이를 단순 확대 적용하지는 겁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건 그거대로 비판/반론을 제기하면 되고요.
5. 첨부 사진이 엉뚱합니다. 저는 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 중에 문제가 되고 반박하시고 싶으신 부분을 제시해주신 줄 알았습니다. 클릭해보니, 지역화폐에 대해 긍정적인 연구 결과를 제시한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정책 브리프네요. 쟁점에 대한 논리적 반박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튼 뭐 이것도 자세히 읽어보겠습니다. 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도 같이요.
6. 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의 존재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비판적인 보고서일수록 구해서 읽어보고, ‘지역화폐가 더욱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숙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말씀이 납득이 되신다면… 혹시 ‘엄중조사와 문책이 필요하다’고 하신 부분에 대해서, 사과를 하실 의향은… 없으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