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3일 금요일 기준, 음악방송 시청률 스코어는 이렇다. 엠카운트다운 시청률 0.3% / 뮤직뱅크 0.9% / 인기가요 1.1% / 음악중심 1.1%. 낮잠 자다가 실수로 틀어놓았다고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시청률이다. 이런데도 대체 어떻게 음악방송은 폐지되지 않는 걸까?
먼저 이렇게 시청률이 떨어진 원인을 짚고 가자. 음악방송의 황금기는 1990년대라고 한다. 당시 시청률은 10–15% 정도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럴 만했다. 최전성기 아이돌이던 HOT와 록커 김종서가 같은 무대에 서던 시절이었고, 그래서 보다 다양한 세대의 취향을 아우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출연하는 사람들은?
한 방송당 개인 가수는 많아 봐야 세네 명 정도 출연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다 아이돌이다. 그런데 아이돌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주로 10–20대고, 이들은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다른 장르의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들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나 〈쇼미더머니〉나 〈내일은 미스터트롯〉을 본다. 대체재가 될 만한 예능이 많이 등장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구태여 자신의 구미에 맞지 않는 음악방송을 챙겨볼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해가 잘 안 가는 일이다. 아이돌만 출연시켜서 지금의 시청률 하락을 불러온 것이라면, 다른 가수를 섭외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왜 계속 아이돌만 출연하는 것일까? 아이돌만이 가진 강점이 있는 걸까?
방송이 ‘유튜브 스튜디오’로서 생존하는 시대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는, 음악방송이 자사 예능 프로그램을 위한 ‘인질’로서 활용된다는 가설이다. 홍보 기회가 절실한 신인 아이돌 그룹은 음악방송에 출연할 3분을 위해 내키지 않는 예능 프로그램 출연도 불사하고,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 출연진을 확보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지금도 통용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요 3–4년간 새로운 요인 하나가 추가되었다.
3월 13일 방영된 〈뮤직뱅크〉의 클립이 가수별로 쪼개져 업로드된 네이버TV의 모습이다. 이 클립은 가수의 무대가 끝나고 20분도 지나지 않아 업로드된다. 한국을 제외한 국가에서는 유튜브로 확인할 수 있다. 거의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송출하는 셈이다.
그래서 음악 프로그램의 ‘실제 방송’은 프로그램이 끝날 때 시작한다. 말 그대로 전 세계의 케이팝 팬이 우리나라의 음악방송을 관람한다. 지금의 음악방송은 프로그램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튜브 스튜디오가 된 것이다. 시청률이라는 기존의 방송가 문법으로는 퇴출당해야 마땅한 성적이지만, 인터넷 문법에서는 전혀 정반대의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단순히 방송분만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인기가요 채널의 경우 안무와 대형을 고정된 시점에서 감상할 수 있는 FULL CAM, 높은 곳에 카메라를 설치해 동선 이동을 확인할 수 있는 ‘항공캠’, 아이돌 멤버별로 쫓아다니며 촬영하는 ‘세로 직캠’, 한 곡 내내 아이돌 멤버의 표정만 제공할 수 있는 ‘FACE CAM’ 등을 제공한다. 아이돌의 무대 하나로 많게는 십수 개의 부가 콘텐츠가 창출되는 것이다.
멤버의 인기가 높은 경우 각 클립은 조회 수 몇만 회나 몇십만 회, 많을 경우 천만 회를 넘긴다. 그리고 이 모든 클립에는 광고가 붙는다. 방송이 끝나는 순간 새로운 수익이 창출된다. 이는 지금의 음악방송이 거대한 유튜브 스튜디오이며, 방송 송출은 유튜브 클립을 제작하는 제작과정에 가깝게 변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변화는 더 이상 음악방송이 박재범이나 지코 같은 최고의 힙합 가수, 혹은 차트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발라드 가수를 출연시키려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들은 국내 시장에서는 인기가 높지만, 케이팝처럼 해외 팬덤이 좋아하지는 않는다. 현재의 음악방송은 정확히 유튜브와 해외의 케이팝 팬덤을 겨냥한다. 따라서 해외 팬덤이 좋아하지 않는 가수를 구태여 섭외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신인은 여전히 음악방송에 출연해야만 한다
이달의소녀, 드림캐처, 에버글로우, 에이티즈. 이 아이돌 그룹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한국보다는 외국에서 훨씬 인기가 있는 가수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선전에는 음악방송도 일정 부분 기여한다.
〈프로듀스 101〉 이후 해외의 케이팝 팬덤은 국내 케이팝 팬덤의 흐름과는 유리되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내의 팬덤은 〈프로듀스 101〉로 탄생한 그룹에게 관심사를 돌린 반면, 해외의 팬덤은 지극히 한국적 요소로 점철된 〈프로듀스 101〉에 별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다(실제로 〈프로듀스 101〉로 탄생한 그룹들은 국내의 거대한 인기에 비해 해외 팬덤이 크지 않은 편이다). 대신 이들은 유튜브에서 자신들의 구미를 당긴 아티스트를 직접 발굴해서 지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는 유튜브에 올라온 뮤직비디오와 음악방송 클립, 기획사가 직접 만든 콘텐츠면 된다. 그러면 해외 팬덤은 온라인에서 자신들만의 포럼을 만들고, 한국 내에서의 인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국내 팬덤과 공조하기 시작한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인기를 얻기 전부터 독자적인 해외 팬덤을 가진 BTS가 모범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대신 주기적으로 ‘팬심’을 보충할 수 있는 떡밥이 중요하다. 유튜브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악방송은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그래서 음악방송의 시청률이 한없이 낮음에도, 신인 아이돌은 여전히 목숨을 걸고 출연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해외 팬덤이 필요하지 않은 가수들은 신인이라 하더라도 굳이 음악방송에 출연하지 않는다. ‘METEOR’를 부른 창모는 한 번도 음악방송에 출연하지 않고도 멜론 1위를 차지했다. 지금의 음악방송은 말하자면 새로운 SNS 시대에 맞춰 수익구조를 바꾼 음악방송과 BTS 이후 성공 문법이 바뀐 아이돌 그룹의 합작품인 것이다.
시청률은 새로운 방송의 문법을 어디까지 반영하는가
‘기형적’인가? 하지만 새로운 플레이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해외의 케이팝 붐을 자랑스러워하는 건 이율배반적이지 않나? 거의 절반에 가까운 세대에서의 지지를 시청률이라는 틀로 담아낼 수 없다는 걸 많은 사람이 아는데, 막상 방송으로서의 성취를 계산할 때에는 이전 시대의 문법인 시청률로만 계산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까?
사실 나도 지금의 음악방송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일단 방송으로서 별 재미가 없다(아무리 케이팝을 좋아해도 비슷비슷한 아이돌 가수만 계속 나오다 보니 재미가 있을 수가…). 한 명의 시청자로서는 이 글에 언급된 다른 가수들인 박재범, 지코, 창모가 출연하는 게 훨씬 재밌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지금의 음악방송이 가치 없다는 이야기는 되지 않는다. 이 방송도, 이 형태도 2020년의 존재 의의를 가진다. 해당 산업의 종사자들은 누구보다도 빨리 그 의의를 이해하고 적응한다. 이들이 뿌린 씨앗은 머지않아 새로운 형태의 케이팝 스타로 돌아올 것이다. BTS가 등장했을 때 모두의 어안이 벙벙해졌던 것처럼, 인기 요인을 바닥까지 파고 내려가야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스타로 말이다.
원문: 도수안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