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거슨 경은 “SNS는 인생의 낭비다. 차라리 책을 읽어라”는 명언을 남겼다. 사실 정확한 멘트는 “어떻게 트위터 같은 것에 신경쓸 수 있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도서관 가서 책을 읽어라. 정말 시간 낭비다”에 가깝다.
하지만 SNS의 문제는 비단 시간 낭비, 혹은 자신의 과오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때로 SNS는 너무나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별 것 아닌 잘못이 완전히 마녀 사냥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사실 인터넷 자체가 애초에 이런 위험성을 담고 있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사건을 모아봤다.
1. 거짓 연애로 소녀를 자살로 몰아넣다: 메건 마이어
페이스북이 인기를 끌기 전 마이스페이스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 역시 엄청난 폭력의 잠재력이 있었고, 결국 수면 위로 드러났다.
메간 마이어는 13살 평범한 소녀였다. 그녀는 마이스페이스를 통해 조쉬 에반스라는 남자와 연애를 시작했다. 조쉬는 어느 날 일방적으로 메간에게 “이 세상에 니가 없는 편이 낫다”며 이별을 선고했다. 그리고 그녀는 목을 메어 자살했다.
경찰의 조사 결과는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조쉬 에반스라는 남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아니, 존재하기는 했다. 조쉬 에반스도, 남자도 아닌, 이웃 아주머니 로리 드루였을 따름이다. 로리는 자신의 딸이 메간과 다툰 후 복수를 위해 거짓 연애를 시작했던 것이다.
SNS에서는 장난성 폭력이 횡행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무척이나 참혹했다.
2. 작은 부도덕이 전국민의 비난 대상이 되다: 개똥녀
개똥녀를 기억하는가? 아마 20대 이상이라면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한 여성이 애완견을 데리고 지하철을 탔고, 개가 지하철에서 똥을 싸자 치우지도 않고 황급히 내렸다.
그녀는 며칠 후 전국민의 비난 대상이 됐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지하철 안 그녀의 모습이 돌아다녔던 것이다. 얼굴은 물론 신상까지 털린 그녀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그녀는 잘못을 했다. 하지만 벌금을 받을 정도의 경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모두에게 비난 받는 게 온당한 일일까?
이 일은 각지 해외 언론에서 다룸은 물론 “인터넷 세상과 평판의 미래”라는 책의 주요 모티브가 되기까지 했다. 당신도 그녀를 비난하고 싶은가? 우리 모두 그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3. 포르노 출연 여대생, 악플에 자살하다: 알리샤 펑키
한국이야 포르노가 없는척 하는 건전 국가이지만 다수의 나라에는 포르노가 있다. 여배우들 중에는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프로도 있지만, 그저 용돈벌이로 한두번 출연하는 사람도 있다. 알리샤 펑키 역시 그 중 한 사람이었다.
펑키는 ‘스텔라 앤’이라는 예명으로 포르노를 찍었다. 그러나 가볍게 찍은 포르노는 웹에서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SNS에는 엄청난 비난의 댓글이 달렸다. 그녀의 동창들은 적극적으로 악플을 생산했다.
그 결과 그녀는 총을 구입했고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포르노 출연이 그토록 비난 받을 일이었을까? 외부인이 그녀를 비난할 자격이 있기나 했을까?
한국에서는 O양 비디오가 유사한 문제를 일으킨 바 있다.
4. 커뮤니티 회원들의 불화, 살인을 낳다: 신촌 살인사건
흔히들 ‘현피(현실 PK: 온라인 싸움을 현실에서 이루는 것)’를 그저 장난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번 결과는 살인이었다.
사령카페에 가입한 박모씨는 진심으로 자신에게 영적인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고,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공격을 가했다. 인터넷으로 연애를 시작한 그녀의 남자친구 김모씨는 박모씨의 그런 모습에 계속해서 태클을 걸었다. 둘의 갈등은 점점 커졌다. 연인 관계는 끊어졌고 둘은 서로를 인터넷에서, 또 그곳에서 알게 된 지인들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박모씨는 자신이 사령 카페로 끌어들인 이모군, 홍모양과 친분이 있던 윤모씨를 끌어들여 김모씨를 살해하기로 결정한다. 흉기와 둔기로 처참하게 난자했다. 이모군의 나이는 16살, 홍모양의 나이는 15살, 윤모씨의 나이는 18살에 불과했다.
이 사건은 처음에는 단순히 오컬트 계의 문제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그런 문제는 아니었다. 인터넷의 문제라 할 수도 없겠으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얼마나 무서운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다.
5. 정의로움의 가면을 쓴 여성 집단 괴롭힘: 게이머게이트
조이 퀸이라는 여성의 이야기다. 그녀는 하나의 아마추어 게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엄청난 비난은 물론 협박까지 시달려야 했다. 작은 비난으로 시작된 움직임은 어느새 ‘#게이머게이트’라는 해시태그를 단 폭력 운동으로까지 번진다.
그 과정에 참여한 이들은 모든 부도덕을 정의의 이름으로 덮으며 폭력을 행사한다. 그녀의 전 남자친구는 자신과 연애하던 중 그녀가 5명의 남자와 바람을 피웠다고 주장했고, 얼마 가지 않아 그녀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공개됐다. 이 폭력이 일어난 4chan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그녀의 음부 모양과 냄새를 논하며 그녀를 조롱거리로 삼았다. (참조 링크)
이것도 모자라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한 이들은 그녀가 게임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는 이유로 이상한 정의를 내세우기 시작한다. 마치 일베가 ‘애국 보수’를 내세운 것과 마찬가지로 ‘#게이머게이트’라는 용어를 내세운 것이다. 그러면서 여성은 물론 유색 인종까지도 차별하며, 자신들을 정의로운 피해자로 돌변시켰다.
이런 면에서 미국판 일베 사건이라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일베에서의 많은 성희롱들이 그러하듯, 그녀는 엄청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6. 한 마디의 말실수, 전세계인의 조롱거리로 전락: 저스틴 사코
트위터 팔로워가 2백명이 채 되지 않던 저스틴 사코는 저급한 차별성 농담 트윗을 남긴다.
“아프리카로 갑니다. AIDS에 안 걸렸으면 좋겠네요. 그냥 농담이에요. 난 백인이잖아요!”
그리고 비행기에 탑승해서 11시간 뒤 내린 그녀는 어마어마한 충격에 시달린다. 그녀의 트윗이 전세계로 퍼져 나가며 비난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아직저스틴은도착하지않았나’라는 해쉬태그마저 유행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대상으로 자신의 분노를 마음껏 뿜어냈다.
물론 이 발언은 큰 잘못이다. 하지만 이런 조리돌림이 과연 정당할까? 공인도, 강력한 조직도 아닌 이들을 향한 맹비난은 올바른 것일까? 존 론슨은 뉴욕 타임즈 매거진을 통해 “나는 또한 죄의 심각성과, 즐거움에 가득찬 처벌의 잔인성 사이에서 단절이 있다는걸 보고 놀라기 시작했다. 마치 조리돌림이 조리돌림 자체를 목적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저 대본을 따라가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참조 링크)
그녀는 그 사건이 일어난 날 회사에서 해고됐다. 하지만 그것은 정신적 충격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과연 이런 결과 앞에서 정의롭고 당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7. 싸이월드의 악플이 불러온 사회적 죽음: 회손녀 사건
베이징 올림픽 당시 왕기춘 선수는 은메달을 딴다. 한국 분위기상 은메달은 아쉽다는 분위기가 많지만, 왕기춘 선수는 부상을 이겨내며 얻은 메달이라 감동과 격려의 분위기였다. 그런데 한 여자가 싸이월드에 악플을 단다. 사건의 시작이었다.
네티즌들은 그녀의 글을 캡처해서 조리돌림하기 시작한다. 특히 그녀가 공격에 ‘명예회손죄로 신고해야지’라는 글을 쓴 후, 그녀는 ‘회손녀’라 불리며 전국민의 비난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 비난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로 번진다. 주소는 물론 주민등록번호, 어머니의 주민등록번호까지 공개된다. 그녀를 벌하자며 그녀의 집 근처 PC방에 모인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열사’, 혹은 ‘공익용자’로까지 불리며 정의로운 파수꾼 행세를 해댔다.
8. 소셜포비아
영화 ‘소셜포비아’는 이런 회손녀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졌다. 유명한 악플러 ‘레나’는 한 군인의 자살 소식에 악플을 남긴다. 이에 네티즌들은 분개해 그녀의 신상을 털고, 몇몇 네티즌들은 와 현피를 뜨고자 레나의 집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죽어 있었다.
홍석재 감독은 위에서 언급한 인터넷의 폭력성은 물론 그 현실적 맥락에도 관심이 깊었고, 이를 영화에 잘 담아낼 수 있었다. 이미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깨어졌고, 단순히 네티즌의 놀이로 치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저 잔혹한 현실의 단면일 뿐이다. 홍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현피나 그로 인한 죽음이 자극적일 수 있다. 허나 SNS가 구축한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윗세대와 확실히 다르다. 10, 20대에게 인터넷은 삶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 웹상의 평판을 현실보다 중요시한다. 그 흐름을 포착하고 싶었다.
등장인물이 폭력이나 죽음을 쉽게 여기는 게 영화의 핵심이다. 이들은 특별하지 않다. 매일 길에서 마주치는, 동시대 사람들이다. 수줍은 소녀가 인터넷에선 광폭한 전사로 변하고, 사회적 ‘루저’가 갑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더 빠져드는 걸지도. 이들을 옹호할 맘은 없다. 악당은 아니지만 꽤나 이기적이고 주장만 앞세운다. 현실 사회가 이들을 품지 못해 잉여인간이 된 건 아닐까.
아마 젊은 분들, 특히 SNS를 많이 사용하는 이들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억이라는 저예산으로 만들어졌지만, 우리가 이 영화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소셜포비아 영화 정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