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기만 했던 서태지의 등장
나는 ‘가요 톱10’을 보고 자란 세대다. 지금처럼 다양한 음악방송이 없던 시대였고, 어릴 때는 음악을 찾아서 듣지 않았기에 그저 공중파에서 방송되던 이 프로그램을 보고 대중가요와 가수들을 알아갔다. 당시만 해도 인기곡은 대부분 가창력을 앞세운 발라드 가수의 노래나 소방차의 경쾌한 댄스곡 위주였기에 나도 TV에서 보고 듣는 대부분이 그러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1992년 낯선 충격을 맛보았다. MBC에서 첫선을 보인 ‘특종 TV연예’라는 프로그램에 신곡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다. 소개된 신곡 중 한 곡을 골라 생방송 무대에서 바로 부르게 한 뒤 5명의 패널이 조언하고 평점을 주는 방식이었다. 드디어 뽑힌 신곡이 방송되었는데 순간 ‘엇, 이거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3명이 나와서 춤을 현란하게 추는데 멋이 있기는 했지만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나에게 최고의 춤꾼은 소방차였다. 그러나 춤의 낯섦은 노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사를 글 읽듯이 중얼거리는 것도 이상했고, 특히 보컬의 가창력이 형편없다는 생각에 헛웃음까지 나왔다. 무대가 끝난 후 패널들의 평가도 그리 좋지 않았다.
박진영이 가르쳐준 단순노출의 위력
그로부터 2년 뒤에 나는 TV를 보다가 ‘서태지와 아이들’을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신인가수라고 나왔는데 나도 모르게 ‘어떻게 연예인 얼굴이 저렇게 생길 수 있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까지 TV에 나오는 연예인은 대부분 피부는 하얗고 얼굴은 작고 대체로 준수했다. 그런데 이 가수는 얼굴이 크고 피부는 까맣고 머리 모양도 이상했다. 내 주위에서조차 그런 강한 인상을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이 가수의 이름은 ‘박진영’이었고 당시에 ‘날 떠나지 마’라는 곡을 불렀다. 특히 보기 민망한 옷… 비닐바지, 으악!
참 아이러니한 것은 그 충격이 있고 난 후 내 모습이었다. 나는 어느새 〈난 알아요〉의 랩을 다 외우고 있었고 박진영 씨가 ‘가요톱10’에 나와 〈날 떠나지마〉를 부르길 기다리기까지 했다. 당시 문득 이런 의문이 들곤 했다. 처음에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이상한 곡, 적응이 안 되는 모습이었는데 어쩌다가 호감까지 가지게 되었을까?
저명한 심리학자 로버트 자이언스(Robert Zajonc)가 말한 ‘단순 노출 효과(Mere Exposure Effect)’가 나에게 발휘된 것이다. 단순 노출 효과란 어떤 자극이 반복되면 결국 그 자극에 애착을 가지게 된다는 이론이다. 즉 우리는 친숙한 대상에게 더 큰 호감을 갖는다.
한 연구에서 피츠버그대학교의 여러 강의실에 여자를 들여보냈다. 그들은 수업에 참관하면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학생들과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강의실에 들어가는 횟수는 각각 15회, 10회, 5회, 0회로 차등을 두었다. 한 학기가 끝난 후 학생들에게 여자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학생들은 15회 참관한 여자를 가장 매력적인 사람으로 꼽았고, 가장 매력 없는 사람으로는 강의실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여자를 꼽았다.
미국 소매상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물건을 판매할 때 세일즈맨 중 48%는 단 1번 권유하고 포기하고, 2번 권유하는 사람은 25%, 3번 권유하는 사람은 15%였다. 세일즈맨 중 12%만이 4번 이상 권유하는데, 놀랍게도 이들의 판매량이 전체 판매량의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 끈기에 방점을 둔다. 하지만 진짜 힘은 ‘접촉’에 있다. 자주 보면 친숙해지고, 친숙해지면 호감도가 올라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약 눈치 빠른 미혼이라면 알았겠지만 단순 노출 효과는 연애에서 가장 유용한 이론이다. 잘 활용해 보시도록!
“반복적 노출은 사회적 애착의 가장 원초적 기반이다”
보는 것만 아니라 듣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신경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귀에 익은 듯한 노래를 더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음악에 자주 노출되면 나중에는 익숙하게 들려 좋아지게 된다.
예전에 라디오가 음악 시장을 주름잡던 시절에는 정말 띄워야 할 노래는 히트곡과 히트곡 사이에 넣어서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전략을 취했다고 한다. 새로운 것에 익숙한 것을 덧입히면 대중은 새것에 대한 저항이 사라지고 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자이언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반복적 노출은 사회적 애착의 가장 원초적 기반이다.”
어떤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그것에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는 동물도 마찬가지다. 자이언스는 부화를 앞둔 2개의 달걀을 2가지 다른 소리에 노출시켰고, 병아리들은 부화되기 전에 들었던 소리에 더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새로운 자극이 반복되어 해가 되지 않는다면, 이는 안전을 알리는 신호이며 결국 좋은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원문: 그녀생각’s 생각